잡스 국어/현대문학

휴전선, 박봉우 [현대시]

Jobs 9 2023. 3. 2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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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박봉우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서정적, 상징적

 * 운율 : 내재율, 산문적 리듬, 수미 상관적 구성

 * 어조 : 분단 극복을 열망하는 목소리

 * 표현 : 완곡한 어법 구사. 각 연 마지막 시행의 어미가 모두 '-가'로 끝남

 * 제재 : 전쟁으로 인한 슬픔, 휴전선

 * 주제 : 분단으로 인해 갈등하는 민족적 현실. 분단의 비극과 그 극복 의지. 민족 화해와 분단 극복에 대한 열망

 

작품의 구성

  1연: 남북 대치의 긴장된 상황    

  2연: 민족의 비극과 조국 통일에의 염원

  3연: 민족 비극의 참담한 현실    

  4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

  5연: 민족 비극의 참담한 현실

 

시어연구

 #. ·요런 - 이런 ·쓰는가 - '하겠는가'의 사투리 ·시방의 - 지금의

 #.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 ; 남북의 대립 관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 '화산'과 연관된 강렬한 불의 이미지는 이 시에서 가장 중심적인 이미지로, 남북 간의 증오와 불신으로 빚어질 또 다른 전쟁을 암시한다. 즉 증오와 불신으로 계속 대립할 경우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하다는 뜻이다.

 #.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요런 자세'는 증오와 불신 때문에 서로를 적대시하는 자세이다. '꽃'은 아름답지만 연약한 것으로, 불안한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지켜 가려는 존재, 즉 시적 자아를 포함한 '우리'를 가리킨다.

 #.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 조국의 땅덩어리는 그대로 아름다운데, 남북의 같은 민족은 고구려 시대의 웅혼(雄渾)한 민족 정신이나 신라 시대 때의 삼국 통일이라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 같은 것은 갖고 있지 못한가.

 #.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구절이다.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던 6·25 직후(1956)의 현실에서는 민족 간의 화해에 기초한 통일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말줄임표로 처리한 것이다.

 #.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 우리가 항상 불안한 얼굴로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휴전선)에 있었던가. 민족 간의 전쟁에 대한 공포가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구절이다.

 #. 모든 유혈은∼야위어 가는 이야기뿐인가 ; '유혈'은 6·25를 가리킨다.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은 6·25 직후의 피폐한 현실, 혹은 현실의 불모성(不毛性)을 가리킨다. '이야기가 야위어 간다'는 것은 곧 6·25로 인한 민족사의 쇠토와 몰락 즉, 우리 민족의 역사적 비극을 의미한다.

 #. 언제 한 번은 붙고야 말∼징그러운 바람이여 ; 분단이 고착되과 민족 간의 화해가 지연될 경우 언젠가는 또다시 닥쳐올 전쟁에 대한 공포를 암시한다.

 

■ 이해와 감상 1

 박봉우의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육성(肉聲)의 시’이다. 그의 시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불의와 비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른바 참여시의 특성을 갖는다. 50년대의 전쟁과 폐허로부터 60년대의 민주 혁명과 군사 독재, 70년대의 속 빈 강정 같은 풍요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빈곤감, 80년대의 민주화 열망 등 광복 이후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달려온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맞닥뜨리고 시를 쓴 시인이다. 

 이 시는 1956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얼마 안 되는 당시 상황에 대단히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 날을 갈망하는 시인의 절규가 완곡한 산문 율조의 형식으로 절제되어 나타나 있다. 

 화자는 1․5연에서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155마일 휴전선을 마주하고 있는 민족의 분단 상황을 이상할 만큼 담담한 어조로 제시하고 있다. 화자는, 휴전선이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꽃’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꽃’은 실제의 꽃이라기보다는 전쟁은 일시 멈추었지만, 더욱 깊어진 증오심으로 대치해 있는 분단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요런 자세’라는 구절에서 ‘요런’은 ‘겨우 이것 밖에는 안되는’의 의미로, 일시 포성이 멈추기만 했을 뿐,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닌 분단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화자의 심리가 내재해 있다. 

 2연에서 화자는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의 휴전선의 모습을 통하여 팽팽한 긴장감으로 대립하고 있는 남과 북의 현실을 제시하고 있다.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 같은 정신’이나 삼국을 통일한 ‘신라 같은 이야기’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오늘날의 민족 상황을 비판하는 한편, 지금은 비록 남과 북이 허울좋은 이데올로기로 분단되어 있더라도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라며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이냐며 하루빨리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민족의 큰 소망으로 발전한다.

 3연에서는 분단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분단은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이며, ‘정맥’이 끊어진 신체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화자는 분단 상황이 계속되면 될수록 민족사는 더욱 ‘야위어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며 절망하고 있다.

 4연에서 화자는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함으로써 동족 상잔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모진 겨우살이’와 같았던 6․25의 비극적 체험을 겪은 바 있는 화자는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이 바람에 쓰러지는 것 같은 전쟁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며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라고 외친다. 아무리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장식된 전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죄없는 백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정치 지도자들의 허황된 정치 논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이해와 감상 2

 박봉우의 「휴전선」은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라는 역사적 상황이 시의 배경을 이룬다.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는 숨막히는 대치 공간인 휴전선을 빌어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비극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시인은 전쟁 혹은 비극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피하고 암시적인 시어를 채택함으로써 흔히 분단과 전쟁을 떠올릴 때 흔히 범하기 쉬운 감정의 과잉분출을 막고 독자들에게 분단이 우리에게 주는 피폐함을 상기시킨다. 각 연의 서술어는 물음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직접적인 정서의 노출을 피하는 동시에 독자의 시적 반응을 자연스레 끌어내는 구실을 한다. 마주 향한 산과 산, 꽃과 꽃은 자연 상태 그대로 어우러진 상태가 아니라 화산과 같은 변란이 언제 닥칠지 몰라 두려워하는 긴박한 상황이다. 조국은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아니라 전란이 휩쓸고 지나간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가득하며 언제 전란이 닥칠지 모르는 긴박한 대치상태에 놓여있다. 그 `쌀쌀한 풍경' 가운데서 시인은 민족의 기상을 드높였던 고구려와 통일을 이루었던 신라를 떠올린다. 

 화해로운 삶에 대한 역사적 기억은 한 하늘을 두고도 적대관계로 나뉘어 사는 현재의 상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2연에서 우리의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는 시인의 물음은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불안과 고통이라는 대답을 숨기고 있다.  3연에서 전쟁의 의미는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으로, 민족 전체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죄 없이 피어난 꽃이 겪어야 하는 모진 겨우살이로 표현되어 있다. 피폐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며 또다시 되풀이될 것인가에 대한 강한 우려를 시인의 목소리는 담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첫연을 반복하는 것은 이러한 시인의 우려와 현재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구실을 한다. 휴전과 분단의 상황을 `정맥이 끊어진' 상태, `나무도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하는' 상황으로 묘사하여 휴전선과 분단에 대한 저항적이고 고발적인 의미를 부각시키는 이 시는 강대국의 세력 각축과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한민족에게 부과되었던 참혹한 비극을 상징적이고도 강렬하게 형상화하였다. [해설: 유지현]

 

■ 생각할 문제1

 1. 이 작품에 드러난 어조를 생각해 보자.

 ▶ 안타까움. 서정적 자아는 민족의 적대적 대치 상황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2.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을 살펴보자.

 ▶ 진지하고 냉정한 상황의 인식아래, 상징적 이미지들의 적절한 배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산문적 진술을 통한 역동적 리듬을 느낄 수 있으며, 강한 호소력을 주는 의문형 어미의 반복이 돋보인다.

 3. 이 작품의 현실 상황 인식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살펴보자.

 ▶ 남북의 분단 상황

 4. 현실을 인식하는 서정적 자아의 태도를 살펴보자.

 ▶ 서정적 자아는 민족 분단의 암울한 상황을 고발하면서 전쟁이 아닌, 민족의 대화와 화해만이 공존의 길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상호간의 적대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완곡 어법을 구사하여 분단의 고통을 감수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즉, 절망적 현실이지만 그 절망을 넘어서는 의지와 태도를 보이고 있다.

 5. '시방의 자리'가 암시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 분단되어 서로 대치된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증오와 불신으로 마주선 자리를 의미한다.

 6. 이 시의 어조에 나타난 시적 화자의 정서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 노여움 - 이 시의 각 연은 모두 '쓰는가, 있었던가, 이야기뿐인가' 등등에서처럼 의문문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속에 감추어진 의미는 꾸짖음에 가깝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당위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꾸짖음에 대응하는 정서는 노여움이 가장 적절하다.

 7. 서정적 자아가 지향하는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을 찾아보자.

  ▶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8. '꽃'이 상징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 '꽃'은 분단과 대치의 상황에서 아무런 대처도 없이 그냥 앉아 있는 존재로 분단된 상황에서 고통받는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9. 이 시에서 남북 분단의 현실을 암시하는 시구를 찾아보자.

 ▶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 작품 간 비교하기

 1. 다음은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중 일부이다. 이 시에 드러난 현실 상황의 인식과 어떤 점에서 유사한지 비교해 보자.

▷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남북의 분단된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2. 이 시에서 '꽃'의 이미지는 특수하게 형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꽃의 이미지와 비교하여 그 특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일반적인 꽃의 이미지가 아름다움 혹은 생명의 신비를 의미하는 것과 달리 이 시에서의 꽃은 바람에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서성거림의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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