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30년 전쟁, 베스트팔렌 조약

Jobs9 2020. 6. 10.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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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이 끝나고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



The Peace of Westphalia (1648) -Thirty Years War (1618–1648)

베스트팔렌 조약은 최초의 근대적인 외교 회의를 통해 나온 것으로, 국가 주권 개념에 기반을 둔 새로운 질서를 중부 유럽에 세웠다.

유럽에서 1648년 성립한 베스트팔렌 체제는 이후 국제 질서의 토대로 확산됐다.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은 30년 전쟁의 산물이다. 가톨릭과 신교의 투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프랑스가 가톨릭계인 신성로마제국에 대항해 참전하면서 정치와 종교가 뒤섞인 이전투구가 됐다. 동맹국을 서로 바꿔가며 인구밀집지역을 공격한 이 전쟁은 보편성이나 종파 간 단결을 외치는 가식적 주장들을 산산조각 냈다.

웨스트팔리아 평화회의를 "국제법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이 조약의 원인이었던 30년 전쟁을 "최초의 국제전쟁"이라고 부른다.

베스트팔렌 체제는 다양성을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제국이나 왕조, 종파가 아니라 국가를 기본요소로 삼았다. 교회가 정당성의 원천이 되지 못하고 신성로마제국이 약화되면서 세력균형이 질서를 구축하는 개념이 됐다. 각 사회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공동의 질서에 끌어들였다. 20세기 중반 이 체계는 모든 대륙에 자리잡았다.

1947년 예루살렘을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한 유엔 결의 제181호는 모든 종파들의 공존을 규정했다는 점에서 베스트팔렌 개념에 해당한다.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개 종교가 예루살렘을 모두 신성시한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역시 예루살렘에서 양쪽이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전제로 했다.

이 조약을 통해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개신교 국가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탄압에서 벗어나 생존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역사에서 처음으로 프로이센이 왕국으로 등장하였다.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프랑스는 이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확장하였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서의 프랑스  동의 스웨덴이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한 1648년-1700년을 베스트팔렌 체제(Westphalia System)라고 한다.

베스트팔렌 체제는 스페인 계승전쟁으로 서유럽 패권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넘어가고, 대북방 전쟁으로 동유럽 패권이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면서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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