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저널을 보면 서신란(네이처는 correspondence, 사이언스는 letters)이 있다. 주로 해당 저널에 실린 논문에 대한 독자의 의견을 싣는데, 틀린 곳을 지적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는 서신란을 즐겨 읽는데 가끔 흥미로운 뒷얘기를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이스라엘의 한 연구진이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찾아낸 2000년 전 대추야자 씨앗을 발아시키는데 성공해 세계 최고(最古) 기록을 세웠다는 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렸다. 그런데 몇 달 뒤 서신란에 한 과학자가 그건 틀린 주장으로 1967년 1만 년 된 씨앗을 발아시킨 적이 있다고, 그것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고 언급했다. 바로 이어서 저자는 그 답신으로 1967년 논문은 방사성동위원소분석법 같은 연대측정 없이 함께 발견된 유물을 토대로 추정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논쟁 덕분에 기자는 1만 년 전 씨앗 발아에 대해 알게 됐다. 최근 ‘네이처’(8월 5일자)에도 흥미로운 서신이 하나 실렸다. 요즘 전 세계 입자물리학자들의 관심이 되고 있는 힉스 보손(higgs boson)의 명명에 대한 이야기다. 힉스 보손(우리나라에서는 ‘힉스 입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은 다른 입자가 질량을 갖도록 해주는 가상의 입자다. 이론에 따르면 힉스 입자 자체는 질량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는 대형강입자가속기(LHC) 같은 장비가 있어야 만들 수 있다(질량-에너지 등가원리에 따라). 참고로 보손은 입자의 한 형태다. 스핀(양자이론에서 나오는 입자의 고유한 성질의 하나)의 값에 따라 입자는 보손과 페르미온으로 나뉘는데, 보손은 스핀이 정수인 입자이고 페르미온은 반(半)정수인 입자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 설치된 LHC가 가동되면서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보손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에 대한 책도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영국의 과학저널리스트 이언 샘플이 펴낸 ‘Massive: the hunt for the god particle(신의 입자 사냥)’이라는 책도 그 가운데 하나다. 8월 5일자 서신은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한 한 물리학자의 서평에 대한 반응인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힉스 보손이란 말을 한국의 천재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처음 썼다는 것이다.
●1967년 피터 힉스와 이휘소의 만남 이론물리학자인 영국 옥스퍼드대 프랭크 클로즈 교수는 ‘네이처’ 6월 17일자 서평란에 이언 샘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썼는데 전반적인 어조에서 비전문가인 과학저널리스트의 책에 대한 폄하가 느껴졌다. 그는 저자가 책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예를 곳곳에서 언급했는데, 특히 ‘힉스 보손’은 잘못된 이름이며 ‘골드스톤의 무거운 보손(Goldstone’s massive boson)’이라고 불렸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즉 영국의 물리학자인 제프리 골드스톤이 1961년 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힉스 보손에 해당하는 입자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것. 이는 피터 힉스가 발표한 1964년보다 3년이 빠르다. 클로즈 교수는 적어도 6명의 물리학자가 질량의 생성에 관한 이론을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다만 힉스만이 이 이론을 시험하는데 무거운 보손의 존재를 입증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했다고 덧붙였다. 클로즈 교수는 서평 말미에 “힉스 보손은 이 입자에 대한 힉스의 연구를 인정한 물리학자들이 붙여줬다”며 “하지만 그 기원은 골스트톤의 이론이었다”고 썼다. 참고로 클로즈 교수는 내년 출간을 목표로 힉스 보손에 대한 책 ‘The Infinity Puzzle(무한 퍼즐)’을 준비하고 있다. ‘네이처’ 8월 5일자 서신란에서 저자 이언 샘플은 ‘이 보손에 힉스의 이름만이 붙게 된 긴 사연’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힉스 보손의 명명 과정을 얘기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자신의 책에 대해 냉담한 서평을 쓴 클로즈 교수에게 “당신은 이론물리학자인데 이런 것도 몰랐냐?”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런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힉스 보손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이 바로 이휘소 박사라고 한다. 이 과정을 언급한 부분을 아래에 번역했다. 두 사람의 옥신각신 덕분에 위대한 한국 과학자의 이름이 모처럼 지면에 등장했다. “힉스와 고(故) 이휘소 박사의 동료들의 회고를 토대로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67년 힉스는 한 컨퍼런스 리셉션에서 이 박사와 와인잔을 기울이며 후에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불릴 그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힉스의 유명한 1964년 논문은 질량을 부여하는 메커니즘의 결정적 입자가 될 무거운 보손의 존재에 사람들이 처음 주목하게 했다. 이 박사와의 대화에서 힉스는 그가 구성한 이론 전부를 말하진 않았지만 격의 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1972년 이 박사는 미국 일리노이주 바타비아의 미국 국립가속기연구소(현 페르미연구소)에서 열린 고에너지물리학 국제 컨퍼런스를 주관했다. 이때 5년 전 대화를 떠올린 이 박사는 힉스의 이론에 기초한 연구를 언급할 때 힉스 보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곳에서 이 이름이 굳어졌고 이렇게 힉스 보손이 탄생했다.”
지난 4일 유럽핵입자물리학연구소(CERN)는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예상했던 이른 바 힉스 입자를 99.999994%의 확률로 발견한 것 같다고 발표해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가 발견됐다는 발표에 전세계가 환호하고 있다. 심지어 씨넷 같은 외신은 과학의 독립기념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CERN 팀은 지난 6개월에 걸친 실험에서 얻은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이번에 발견한 입자가 존재할 확률이 5.1시그마 이상이라고 밝혔다. 확률로 99.99932~99.9994%로 300만번 실험했을 때 1번 정도 이상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CERN은 이날 '힉스 발견'이라고 단정하지는 않고 ‘힉스에 일치하는 새 입자 발견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기존 이론에 들어맞는 힉스일 가능성이 확실시 되긴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이론으로 설명해야 할 입자일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도대체 힉스입자가 어떤 의미이길래 이렇게 전세계 과학계, 물리학계가 난리법석일까? 그리고 왜 이런 높은 확률로 발견했다면서도 더 검증해야 한다고 했을까?
● 힉스입자
1964년 영국 에든버러대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우주상에 존재할 것으로 예견한 입자다. 그는 우주 어디엔가 빅뱅이 일어난 137억 년 전 우주 탄생 당시 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한 뒤 사라진 입자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우주 만물을 생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에 질량을 갖도록 매개하는 입자를 생각했다.물질에 질량을 갖는다는 것은 예를 들어 전자가 원자핵 둘레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무한대로 제멋대로 날아가 버리지 않는 것은 전자에 질량이 있어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입자에 질량이 없으면 빛의 속도로 움직이겠지만 다른 입자와는 전혀 반응을 하지 못해 우주 만물을 형성할 수 없게 된다.
힉스입자의 정체는 이처럼 만물을 형성하는 입자에 필요한 질량을 제공하는 매개체다.
지금까지 관측할 수 없었고 태초의 순간에만 잠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돼 ‘신의 입자’로 불려 왔다.
● 왜 힉스입자의 존재 가능성에 환호
우리는 멘델레프가 원소주기율을 생각하고 예견하면서 만물의 구성단위인 원소를 주기율표상에 채워나갔고 이후 발견될 원소까지 예견했으며, 결국 발견해 온 것을 알고 있다.영국의 러더퍼드는 1911년 원자핵 내에 양전기를 띤 입자 인 양성자(proton)의 존재가 있을 것으로 예견해 원자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 최초의 과학자가 됐다.
이후 물리학자들은 1천억분의 1미터 크기에 불과한 만물을 구성하는 존재의 근원을 알기 위해 원자를 구성하는 더 미세한 입자 발견에 몰두해 왔다.
현대 입자 물리학자들은 이후 발견되는 입자를 기반으로 표준모형(Standard model)을 만들어 왔고 파헤친 원자의 비밀을 표로 만들어 빈공간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원자를 구성하는 16개의 입자를 찾아 우주의 구성입자임을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표준모형은 어쩌면 멘델레프의 주기율표와 같은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CERN의 힉스입자 발견 선언은 그동안 채워온 원자를 구성하는 이 표준모형(Standard model) 구성입자 중 12개에 질량을 부여한 입자를 과학자들의 예상대로 찾아냈다는 의미다.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를 설명하는 표준모형은 3개의 커다란 범주, 즉 무거운 입자인 강입자(hadron·하드론)를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인 쿼크 6개, 가벼운 입자인 경입자(렙톤)6개,그리고 이들 입자가 밀고 당기면서 결합할 수 있게 해 준 매개 입자인 글루온,w보손,z보손과 광자 등 16개 입자로 구성됐다.
여기서 쿼크입자와 렙톤입자 12개에는 질량이 없었다. 그래서 여기에 질량을 부여한 힉스입자를 찾는 것은 이들에게 질량을 부여하고 입자에 우주의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LHC 과학자들은 표준모형 이론을 완성할 궁극의 입자인 힉스입자를 발견하고자 했고 이번에 그 존재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우주의 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한 137억년전, 즉 신이 “빛이 있으라”했을 그 시점, 즉 우주가 형성된 빅뱅시점의 입자를 찾았다는 점에서 말그대로 '신의 입자'라 할 수 있다.
●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를 다스리는 4개의 힘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했다는 힉스 입자를 발견하는데 사용한 '강입자 가속기'란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단어다.강입자란 강력(strong force·强力)에 의해 결합된 입자라는 의미다. 학자들은 입자가속기에서 가장 발생시키기 쉬운 강입자인 양성자덩어리들 마주치게 충돌시켜 힉스입자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강입자는 과학자들이 밝혀낸 우주를 구성하는 4개의 힘 가운데 가장 강한 결합력을 가진 입자인 양성자와 중성자 등을 말한다. 이들 입자는 파이온 입자라는 강력을 전달(매개)하는 입자로 구성돼 있다.
만물을 구성하는 근원인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와 힘을 전달하는 입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를 움직이는 4개의 힘의 존재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선 뉴턴의 만유인력으로 잘 알려진 중력(gravity ·重力)이 있다.
우리는 또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는 전자가 떨어져 나가거나 찰싹 달라붙지 않게 해주는 전자기력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아울러 1925년 이태리의 천재 물리학자 페르미가 존재를 예견했고 결국 존재를 발견해 낸 입자로서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할 때 발생하는 힘인 약력(weak force ·弱力)도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자핵 내부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같은 핵자를 서로 단단하게 연결해 주는 강력(Strong force)이 있다. 1935년 일본의 유가와 히데키가 예상했고 12년 후 그 존재가 밝혀졌다. 유가와는 이로써 일본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됐다.
이 네 개의 힘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까?
물리학자들은 ▲지구 중력의 힘을 1이라고 했을 때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서 밀어내고 당겨주는 힘인 전자기력은 그 100배의 힘을 ▲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면서 그 원자의 중성자가 양성자로 될 때의 힘인 약력은 중력의 1천만배의 힘을 ▲원자핵 내부의 중성자와 양성자를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인 강력은 중력의 10의 38승 배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가장 강한 힘의 결합으로 구성된 것은 다른 입자보다 무거운(重) 입자인 양성자,중성자 등으로서 강력 매개입자인 파이온입자에 의해 1억분의 1초 동안 쉴 새 없이 생성됐다 소멸됐다 하면서 이 무거운 입자들을 결합시켜 핵을 형성한다. 강력에 의해 결합된 입자라는 의미에서 이들 무거운 입자(중입자)를 강입자로 부른다.
이런 발견이 생활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대답은 마치 영국의 톰슨이 전자를 발견한 1897년 당시와 오늘을 비교하면 어떨까 싶다. 당시에는 전자 발견이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될지 몰랐지만 진공관을 거쳐 오늘날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반도체의 원리는 전자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