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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 비평, 신비평, 러시아 형식주의, 영미의 신비평, 시카고 아리스텔레스 학파, 프라그 언어학파

Jobs 9 2024. 12. 2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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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 비평은 20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고 활기있었던 비평운동으로 역사주의 비평이 쇠퇴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형식주의 비평은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 작품에 다루어진 사회상, 혹은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등을 세밀히 분석하고 평가하는 배열관계및 전체와의 관계등을 분석하고 평하가는 데 중점을 둔다. 

형식주의 비평은 그 근본적인 미학이론의 토대를 아리스토텔레스에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예비평에 관한 고전적 저작인 시학등을 통해 문예작품의 형식, 구조, 스타일 및 심리적 영향등을 강조했는데 이는 플라톤이 작품의 내용 및 사회적 도덕적 영향을 강조한 것과 상당히 대조되는 견해라 하겠다.

형식주의 비평의 성립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18세기 말엽의 칸트의 미학이론과 19세기의 콜리지의 상상력에 관한 이론이다. 1914년 러시아 형식주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쉬클로프스키는 오늘날 낡은 예술은 이미 죽어 있으나 새로운 예술은 태어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해 무감각해왔고, 모든 것은 죽어 있다 새로운 예술형식의 창조만이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치유할 수 있고 사물을 되살릴 수 있으며 비극론을 물리칠 수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 대표적인 낯설게 하기를 통해 예술이 일상적 인식의 습관적 대상이 되어 버린 사물에 대한 인식력을 우리에게 다시 되돌려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체코에 망명한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결성된 프라하 언어학 서클의 로만 야콥슨 등의 핵심적 인물들은 체코 공산화 이후 미국에 망명하여 신비평과 구조주의를 ㅣㅂ롯한 구미 이론게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제2세대인 체코 출신의 르네 웰렉 역시 미국에 망명하여 형식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로 그 명성을 떨쳤다.

엘리어트는 글 전통과 개인적 재능은 형식주의의 기본적 개념이 되는 다음 세 가지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형식주의의 가장 중요한 문서에 들어간다. 문예전통과 문학사는 돌이킬 수 없게 죄종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며 새로운 작품의 출현에 따라 항구적으로 수정 재정리되고 있다. 예술가의 체험은 실제적인 체험이냐 상상된 체험이냐에 구애됨 없이 모두 그의 작품 속에 최종적으로 응집된다. 예술가의 정서와 개성은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으며 다른 예술작품 속으로 사라진다. 엘리어트는 흄과 더불어 예술을 작가적 개성의 표현이라고 보는 낭만주의 예술관을 공박했다. 엘리어트와 마찬가지로 콜리지의 비평리온의 충실한 계승자인 비평가 리차즈는 말의 의미를 탐색하는 수단인 말의 기본적인 중요성을 믿느 심리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황무지 알크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등의 엘리어트 시를 읽기 시작하엿을 때 자신의 위기를 다른 무엇보다도 엘리어트의 시 속에 명확하고도 완전히 실감하고 그 뿐만 아니라 그 실감에 의해서 해방된 바로 그 에네르기를 통해서 구원의 열정이 소생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말과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랜섬이 신비평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은 형식주의자들이 작가의 특징적 어조. 언어의 사용 문학적 목적을 위해 체험을 정리하는 일과 같은 중요한 미학적 요소 속에서 작가의 존재를 송두리째 무시함으로써 작품에서 의미를 찾는 근거로서의 작가를 완전히 배제해 버렸다고 본다. 공박자들에 의하면 바로 이러한 원리야말로 본체론적 오류라고 하는데 자크 바르장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오류를 가장 적절하게 그려준다. 작품속에서만 머물겠다는 환상이다. 작품이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데에도 이해가 가능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이런 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형식주의 비평의 주요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형식주의를 이해하는 가장 손쥐우면서도 실질적인 방법인 동시에 실제 작품에 그것을 적절히 적용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작품 분석시 작품 외적 요소의 지나친 개입을 경계하기 위해 고안한 의도의 오류와 감동의 오류ㅣ 전통적인 문학용어이지만 그들이 특별히 한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아이러니, 패러독스, 그들이 거의 새롭게 창안하다시키 한 모호성 시 구조 분석의 기초가 되는 어조, 운율, 은유 등의 비평용어가 이에 해당한다. 

의도의 오류는 작품 창작에 임하는 작가의 창작의도가 곧 그 작품의 의미와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감동의 오류는 문예작품의 가치를 그 독자에게 생긴 영향이나 효과에 다 두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한 이론이다.

모호성이라는 용어는 신비평의 대두와 함께 중요한 비평용어가 되었다. 이것은 작품에 쓰인 하나의 어휘가 둘 또는 그 이상의 거리가 먼 내용을 의미하거나 또는 서로 다른 태도나 감정을 나타나게 되는 것을 지칭한다.

아이러니는 시어에서 표면적 의미와 내면적 의미에 차이가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신비평에서 아니러니를 내포한 문학이 그렇지 않은 문학보다 우수하다고 보는 이유는 아이러니가 인생 체험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그것의 양면성과 복잡성을 모두 인식했을 때 나올 수 있는 표현기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분이다.

패러독스는 표면상으로 볼 때 자기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진술처럼 받아들여지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 말의 의미가 올바로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형식주의 비평은 역사주의나 사회 문화적 비평방법으로는 해명하기 어려웠던 작품 자체의 형식적 아름다움을 밝히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즉 본문에서 예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의도의 오류, 감동의 오류, 모호성. 아이러니, 패러독스, 운율 이미저리 등의 독자적 비평용어를 통해 작품 자체가 갖는 구조와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다. 

 

 

 

 

 

 

형식주의 비평


Ⅰ. 서 론

형식주의 비평(formalistic criticism)은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이후 가장 오래된 정통적인 비평의 방법이다. <문학은 작가의 인격과 환경의 반영이다>, <작가의 의도와 텍스트는 일치한다>라는 역사적 방법의 반명제로서 형식적 방법은 문학이 문학다운 속성 곧 문학성을 철저하게 그 언어적 조직과 일체화시켜 분석하고 기술한다. 
작품의 평가보다 상세한 기술과 분석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즉, 문학 작품을 순수한 언어 예술임을 강조하고 역사주의 비평이 역사적 배경과 작가의 생애, 창작 의도나 동기 같은 외적 조건에 치중하여작품 자체의 이해를 소홀히 하는 경향에 반발하여 문학 작품이 언어로 된 예술임을 강조하고 순수하게 작품의 그 자체 구조의 분석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 영미의 신비평, 시카고 아리스텔레스 학파, 프라그 언어학파등은 형식비평의 20세기의 움직임이다. 이 중에서 우리는 형식주의 비평의 가장 큰 갈래라고 볼 수 있는 러시아 형식주의와 영미의 신비평을 그 배경과 특징, 주요 이론가들과 형식주의 비평의 이론의 예를 통해 살펴보겠다.


Ⅱ. 본 론

1. <형식주의 비평> - 이론적 배경

형식주의 비평에 대한 동조자들과 반대자들 모두가 인정하였듯이, 형식주의 비평은 20세기 영·미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활발한 비평 운동이었다. 하나의 특정한 비평 이론이나 실제비평으로서의 형식주의는,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거의 지지자를 얻지 못했지만, 프랑스에서의 이른바 텍스트 해석이라는 교육적 방법이 비록 강의실에 국한되어 이용되기는 했지만 형식주의와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특별한 이론과 실제로서의 형식주의는, 프랑스에서 형식주의를 닮은 이론이 강의실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크게 성행했음에 반하여,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지지자들을 거의 얻지 못했다. 1916년에서 1930년사이에 러시아에서는 특수한 유형의 형식주의가 잠시 성행했었는데, 그 영향은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게까지 퍼졌다. 그러나 1930년대에 와서 통합된 운동으로서의 움직임은 사라지고 대표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 영향권 아래 있었던 사람들 중의 약간은 그 후 언어 학자로서 큰 명성을 떨쳤는데, 그 예로 로만 야콥슨 같은 사람을 들 수 있다. 형식주의 비평이, 그 근본적인 미학원리는 멀리 문학 작품의 형태·구조·스타일, 그리고 심리적 효과를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학파(작품의 내용, 사회적·도덕적 효과를 강조하는 플라톤과 반대되는 입장으로)에서 연유되었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이론은 18세기말 칸트와 19세기의 코울리지에서 찾을 수있다. 비록 현대 형식주의 흐름을 연구한 학자들이 형식주의가 포우, 벨그송, 아놀드, 벤덤,프랑스 상징주의자들, 구르몽 그리고 흄 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증명한 바 있지만,그러나 칸트, 코울리지 못지 않게 크로체, 엘리엇, 그리고 리차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예술은 한 특별한 종류의 인식을 자극할 수 있으며, 이 상징적 기능을 지닌 인식은 논리적 추리에만 의존하는 인식과는 다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형식주의 개념을 고취한 이론서는 칸트의 『심미적 판단력 비판』이다. 이렇게 볼 때 칸트는 심미적 판단력을 정의 내렸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고귀한 것으로 만들기까지 했던 셈이다. 형식주의 비평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코울리지인데, 그는 독일 선험주의 철학을 익힌 후 『문학평전』에서 그것을 문예이론으로 응용하였다.

상상력이야말로 체험을 활성화할 뿐 만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관련이 없고 서로 어울릴 수도 없어 보이는 소재들을 융합하여 시가 되게 하기도 하는 힘이라고 했고, 예술가의 상상력을 강조하는 형식주의 이론도 바로 코울리지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1920년대에 엘리어트와 리차즈는 신비평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확연한 움직임을 일으켰지만, 30년대 이르러서야 비로소 랜섬이 이 운동에 신비평이라는 명칭을 부여했고, 그 중요성도 널리 드러나게 되었다. 구르몽과 프랑스 상징주의자들, 그리고 파운드의 영향을 받은 엘리어트는 이 움직임의 창건자 중의 하나인 동시에 가장 눈부시게 활동한 사람중의 하나가 되었다.

비교적 단시간 내에 자신의 관점이 상당한 변화를 겪은 리처즈는, 형식주의 운동이 과학성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그들의 언어와 방법에 있어 형식주의 비평에 침투한 과학주의의 최초의 근원이 된 사람이었다. 형식주의의 배경이 된 여러 가지 이론적 근거가 시사하듯이 형식주의는 결코 하나의 통일된 단일 이론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전적으로 일관성을 지니고 있지는 못한 여러 이론들의 복합체로 보는 편이 옳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주의의 다양한 분파나 강조점의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형식주의에 승복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근본적이고 불변의 원리에 일치한다. 즉 문학 작품 그 자체를 우선 시킨다는 것이다.


2. <형식주의 비평> - 이론의 특징

2-1. 러시아 형식주의

2-1-1.역사적 전개과정

러시아의 모스크바 언어학회(Moscow Linguistic Circle)의 로만 야콥슨과 시언어연구회(OPOJAS)의 쉬클로프스키와 브룩스, 아이헨바움등은 이전의 막연한 정신주의 및 신비주의에 빠져있는 상징주의자들에 대항하면서 문학은 내용보다 형식(기교)이라며 문학의 언어를 객관적·과학적으로 파악하려는 방법을 택했다.

이들의 노력은 문학연구의 독자적인 입장을 정화시키는 데 있었다. 이들 형식주의 운동은 마침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의 소용돌이 이후 정치적 탄압 속에서 형식주의와 마르크스 전통을 결합시킨 '바흐친 학파'의 활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스탈린의 독재로 와해되었다가 후에 연구 내용을 빅토르 언리치(Victor Erlich)의 『러시아 형식주의』와 츠베탕 토도로프가 번역, 편집하여 펴낸 『문학의 이론』이 출판되고 난 이후에야 서유럽과 미국에 알려지게된다.

2-1-2.주요 비평용어

러시아 형식주의 운동의 비평가들은 나름대로의 선명한 문학론을 세웠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재래의 문학관을 비판하면서 무엇보다 참신한 표현과 예술적인 문학성 및 표현상의 드러내기 기법등을 강조한다. 낯설게 하기 : 형식주의 선구자인 슈클로프스키가 일찍이 1910년대에 주창한 이론이다.

문학은 언어와 문자에 의한 예술이므로 표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낯설게 하기(러:Ostran-enie, 영:Defamiliarization)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즉, 예술은 삶의 경험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써 습관적인 것에 대립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이다. 즉 일상언어에서의 단어는 마치 자판기에서 튀어나오는 초콜렛같이 자동적으로 발음되는데 시의 효과는 언어를 비스듬(oblique)하고, 어렵고(difficult), 끝이 뾰족하고 (attenuated), 비틀린 것(torturous)으로 만드는데 있다는 것이다. 문학성(文學性) :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을 언어의 특수한 예술영역으로 보고 문학적 언어를 일반언어와 변별된다고 보고 있다.

일반의 실용적, 지시적, 과학적, 산문적 언어는 청자에게 어떤 메시지나 정보를 전달하는 지시관계로 파악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문학적 언어는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는 '자기 초점적'(self-focused)인 것이라고 본다. 즉 그 기능은 외부에 지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형식적 자질애, 다시 말해서 언어적 기호 자체 사이의 상호 관계에 의해서 문학의 특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콥슨에 의하면 "문학과 학의 연구대상은 문학이 아니라 일상언어와의 변별적 자질(distinctive feature)로서 하나의 작품을 문학작품으로 만드는 문학성(literariness)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전경화(前景化) : 전경화(foregrounding)란 티냐노프와 무카로프스키가 슈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개념을 발전시킨 용어이다.

문학작품이란 음운적, 사회적, 주지적인 여러 요소들과의 상호작용인데 그 중에서 일군의 지배소(Dominant)를 앞서 드러내서 전경화하고 나머지요소는 후경(background)으로 삼아 전체적으로 체계화한다는 것이다.

2-1-3. 형식주의 비평의 문제점

형식주의 비평도 그 한계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첫째, 시작품들에 대한 철저한 문학 내적 비평으로 세부적인 것에 성공한 대신 장편과 드라마의 분석에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둘째, 형식주의 비평은 형식에 몰두하는 나머지 감정을 간과하고 부정하면서 냉담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R. 웰렉의 지적처럼 형식주의는 유럽문학을 너무 한정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역사적 안목이 너무 짧으며, 문학사를 너무 무시하고 있다. 미학적 근거로서 아직 충분히 개발되어 있지 않으며, 문체론적 분석기법에다 현대언어학을 적용하는데 실패했다는 점등이다.

2-1-4. 주요 이론가들

서구에서 포말리즘이라고 하면 특별히 20세기초에 러시아와 체코에서 일어났던 문학이론,즉 러시아 형식주의는 1925년 혁명 전야에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문학 연구의 한 흐름이다. 이는 1915년부터 1930년까지 활동한 「모스크바 언어학회」와 1916년부터 1930년까지 활동한 「오포야즈」, 곧 시어연구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자에는 야콥슨, 토마셰프스키, 후자에는 쉬클로프스키, 아이헨바움, 야쿠빈스키, 티냐노프 등이 속한다. 어얼리치에 의하면 러시아 형식주의는 세 단계에 걸쳐 전개된다. 첫째 단계는 투쟁과 논쟁의 시기로 1916년부터 1920년까지 전개된다. 이 시기에는 당대의 대표적 문학연구 방법인 공리주의적 방법, 상징주의적 형이상항, 아카데믹한 절충주의에 대한 도전이 대세를 이룬다.

둘째 단계는 소란스런 성장의 시기로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전개된다. 시의 형식에 대한 수정적 견해가 나타나며, 그것은 시에 있어서의 소리의 자율성만을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소리와 의미의 밀접한 관계를 확립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1921년 쉬클로프스키에 의하면 문학작품은 기법들의 총체로 정의되었다. 1924년 기법들의 총체라는 개념은 티냐노프에 의해 미적 체계라는 개념으로 치환된다. 셋째 단계는 논쟁의 시기로 1926년부터 1930년에 걸쳐 전개된다.

이 시기에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형식주의 이론이 첨예하게 대립된다. 트로츠키는 이 시기에 《문학과 혁명》(1924)에서 형식주의의 세계관을 비판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1930년을 전후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수용하거나 아니면 야콥슨처럼 외국으로 망명함으로써 종말을 고한다.

2-2. 영미의 신비평(New Criticism)

2-2-1. 신비평의 전개와 특성

일찍이 1차 대전을 전후한 무렵부터 시작한 신비평은 러시아 형식주의 운동보다는 다소 늦게 시작된 셈이지만 문학비평의 기본 태도에서 텍스트의 언어를 중심으로 삼고 문학 밖의 조건들을 외면하는 면에서 형식주의와 일치한다. 문학의 본질적인 요소인 작품(text) 중심으로 작품 자체내의 언어를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주의의 한 유파인 신비평을 일명 언어비평(言語批評) 또는 분석비평(分析批評)이라고 부른다

2-2-2. 비평용어

객관적 상징물(objective correlative) : 1919년에 엘리엇이 우연히「햄릿과 그의 문제들」에서 『햄릿』에 대한 불만을 표하다가 사용된 용어를 일반화시킨 것이다. 실생활에서의 정서와 예술표현의 차이를 든 경우의 문구이다. 즉 시작(詩作)에서 활용하는 기법의 하나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나 사상을 드러낼 경우, 적절하게 사용한 '내 마음 호수요, 그대 저어오오' 같은 일련의 사물이나 정황을 지칭한다.

그에 의하면 객관적 상관물은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한 때의 사물·정황·일련의 사건으로서, 바로 그 정서를 곧장 환기시키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모호성(amniguity) : 흔히 애매성 혹은 다의성으로 불려지는데 엠프슨의 저작인「모호성의 일곱가지 유형」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모호성은 과학용어의 명백성과 대조되는 것으로 문학예술(특히 시)에서는 오히려 불분명한 언어사용이 효과적인 경우를 가리킨다.

즉 한용운 시작품에서 많이 등장하는 '님'의 정체나 이상의「오감도」에 나오는 13이란 숫자의 경우 등 이 그것이다.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하나의 표면적 문장구조에서 두 가지 이상의 심층문장구조(deep structure)를 가리킨다.의도의 오류(intentional fallacy) : 작품 창작에 임하는 작가의 창작의도가 곧 그 작품의 의미와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으로서, 이는 역사주의 비평이 추구하는 창작의도 연구를 직접 공박하는 이론이 된다.

글 속에서, 작가의 본래 의도와 작품에서 성취된 의미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밝히고, 그것들을 혼동하는 데서 작품의 이해와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시는 비평가나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작품은 그것이 탄생되는 순간 곧 바로 그 작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세계 속으로 떠나가 버린다.

시는 공중(公衆)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작가 위조로 작품을 풀이하려는 전통적인 방법의 타성을 벗어나서 작품을 수용하는 독자 위주로 파악하려는 현대의 형식주의 비평적인 올바른 방법이다. 감동의 오류(affective fallacy) : '감동(感動)의 오류'란 문예작품의 의미나 가치를 그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정서적 반응의 강렬함에서 찾으려는 역사주의자들의 경향은 오류임을 지적한 이론이다. 존재하는 작품과 그것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작용하는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독자의 정서적 반응에 기인하여 작품을 평가하려는 것은 작품의 비평이 인상주의나 상대주의가 되어 끝난다는 것이다. 이런 신비평적인 주장은 오늘날의 베스트셀러 작품이 곧 명작은 아니라는 문제와도 상관된다. 구조와 조직(structure와 texture) : 랜섬이 사용한 용어로서 그에 의하면 구조는 문학작품에 있어서 전체와 부분과의 합리적 통일성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조직은 결이나 짜임새라고도 쓰이는데 시의 사상 내용인 구조와 대조를 이루는 요소로서 상황, 비유, 운율, 이미지, 어조, 각운 등이 이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이런 언어분석의 기본 방향과 방법들이 후에문맥비평에 적용되었다. 

긴장(tension) : 랜섬의 제자인 테이트가 창안한 개념으로써 외연(extension)과 내포(intention)라는 두 개의 단어에서 접두사를 제거한데서 만들어 졌다. 여기서 비롯된 '긴장'이라는 용어는 문학의 본질적 성격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써 그 뜻은 하나의 문학언어란 작품 외부를 향한 문자적 의미와 작품 내부를 향한 비유적 의미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긴장을 품고 있다는 데에 놓여 있다. 

테이트가 강조하고자 한 이러한 의미의 긴장은 하나의 문학적언어가 작용하는 측면, 곧 밖과 안이라는 반대방향에서 서로 당기는 힘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훌륭한 작품은 바로 그러한 의미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은 한 단어 내에
서 서로 반대되는 세력들의 밀고 당김에서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다. 

2-2-3. 신비평의 한계점

철저한 작품 중심의 접근을 주도하는 신비평은 작품의 짜임새나 문체, 모호성, 상징성 등에 유의하며 작품을 연구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하지만 60년대 이후에는 신비평도 시들어가는 형세에 접어들게 되는데 그 이유로는 너무 지나치게 학문성, 고답성(高踏性)을 보였다는 것이다.

일부 지식층 위주의 전문술어를 쓰는 강단비평식의 현학성을 띠기 시작했고, 언어적조건에 매달린 나머지 언어 이상의 그 무엇(사상이나 정열 등)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철저하게 작품 위주의 언어분석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비평가나 독자의 창의성 발휘 및 비평 안목을 좁게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이 미치는 사회적 효용이나 반향을 차단한 결과로 인해 너무 폐쇄된 취약성을 자초함으로서 학계에서 점차 외면당하게 된다. 

2-2-4. 주요 이론가들

신비평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전개된 엘리엇의 비평, 리차즈의 이론, 엠프슨의 실천을 근거로 한다. 이들의 영향 속에서 미국의 비평가 랜섬은 1941년 《신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평론집을 간행하고, 이 책이 계기가 되어 미국을 중심으로 신비평이라는 새로운 비평 양식이 유행하게 된다. 신비평의 전개 과정에 대한 학설 중 라이치의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전개된다. 첫째 단계는 1920년대로 이 시기에는 신비평의 기초가 확립된다. 

영국에서는 위에서 말한 엘리엇, 리차즈, 엠프슨이 미국에서는 랜섬과 테이트가 신비평의 토대 형성에 기여한다. 둘째 단계는 1930년대로부터 1940년대에 걸쳐 전개된다. 이 시기에는 새롭게 형성되는 이런 비평형식에 공감하는 많은 비평가들, 그리고 이른바 신비평가들로 불리는 비평가들이 여러 문학 계간지, 대학교재, 나아가 교과과정을 통해 그들의 문학적 신념을 확산한다. 

1940년대 말까지 활동한 신비평과 관련된 주요 비평가들로는 엘리엇,리차즈, 엠프슨, 랜섬, 테이트, 블랙머, 브룩스, 웰렉, 윔샛 그리고 관점에 따라서는 버크, 리비스, 윈터즈 등을 꼽는다. 이 시기의 신비평의 발전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엘리엇이 중심이 된 《기준》(1922∼39), 리비스가 중심이 된 《검사》(1932∼53), 미국의 경우 브룩스와 워렌이 편집한 《남부 리뷰》(1935∼42), 랜섬이 중심이 된 《케년 리뷰》(1938∼1959), 테이트가 중심이 된 《스와니 리뷰》(1944∼45)등을 들 수 있다. 셋째 단계는 1940년대로부터 1950년대 말까지 전개된다. 이 시기에는 신비평이 그 혁명성을 상실하면서 그 후계자들이 신비평의 이론에 대한 복잡한 규범적 진술을 밝힌다. 이 시기의 산물로는 웰렉과 워렌의 《문학의이론》(1949), 윔샛의 《언어적 도상》(1954), 크리거의 《시를 위한 새로운 변명》(1956), 
브룩스와 윔샛의 《문학비평 소사》(1957)등이 있다.

3. <형식주의 비평> -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단편소설은 방대한 양의 풍요한 인생을 다루기 보다는 한 단편을 이루는 것이며, 또 효과의 단일성과 강렬도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은 극적 방법에 대한 동경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극적 제시 방법이 드문 이효석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효석의 대표작이라고 공인되어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은 효석의 작품 중에서 가장 단편다운 구조와 짜임새를 가지고 있다. 그 특징은 작품의 시작부터 잘 드러나고 있다. 

파장 무렵의 여름장터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메밀꽃 필 무렵』은 서두에 벌써 '쓸쓸한'이란 형용사가 나와서 정서적 유도에의 준비가 보인다. 또한 효석은 허생원이 '얼금뱅이 왼손잡이'라고 서두에 밝힘으로써 주인공의 어두운 반생을 비교적 선명히 노출시키고 있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수시로 편집자적 논평을 가하지 않고는 못 배기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오는 대화의 장면은 스토리에 속도를 가하면서 비비드한 집약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 

그러나 곧 편집자적 논평이 가해진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설 숫기도...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이러한 작가의 전기적 논평은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수 없이 나온다. "반편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여기까지는 중반까지의 중요한 편집자적 논평이나 요약의 예이거니와, 사소한 경우까지 합친다면 그 건수와 양은 굉장히 많다. 

후반에 가서 세 인물의 대화가 비교적 이러한텃취에서 벗어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감상문적 심경토로의 작품, 작가와 작중인물의 거리가 거의 없다시피 한작품이 대부분인 효석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이 그래도 이례적으로 소설로서의 골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석은 이러한 이례적인 작품에서조차도 극적 제시와는 무연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여타의 작품은 거의 분석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고 있다고할 수 있다.극적 제시의 방법에 무연하다고 해서 그 기법이 졸렬하다든가, 혹은 이 작품에서 응분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소재에 적용할 수 있는 이상적 기법이란 추상 속에서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제재와 주제에 따라 거기에 알맞은 방법이 있을 터이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에 있어서 극적제시가 없다는 점과 작가 이효석의 모든 작품이 극적 제시의 방법과는 절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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