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문학, 비문학-독해

현대 소설 작가와 작품 해설 #12 - 공무원 국어 - 문학 - 소설

Jobs 9 2023. 5. 1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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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남(1932~)

 

소설가. 언론인. 전북 전주 출생. 1953년 <문예>에 “쑥 이야기”가 추천 발표되고, 1956년 <현대문학>에 소설 “파양”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한겨레신문> 논설 고문 등 언론 생활을 하였다. “흐르는 북”으로 이상문학상(1986)을 수상하였다. 가난한 농촌 현실과 그들의 생활상, 도시 서민의 생활고로부터 오는 갈등 문제를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그려내고 있다. 작품으로 “서울 사람들”, “어디로 가시나요”, “살아남은 자”, “우화”, “노래”, “누님의 거울” 등이 있다.

 

▶ 서울 사람들

 

1. 줄거리

주인공인 ‘나’는 국영기업체 비서실장인 김성달과 고교 교사인 윤경수, TV가게를 하는 최진철 등과 함께 답답하고 현기증 나는 서울을 빠져나가 여행을 하고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지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윽고 친구들이 모두 모이자, 이들은 강원도에 있는 읍으로 향했다. 서울을 벗어난다는 후련함에 흥이 났다. 시골의 정취를 느낄려면 깊은 산골이라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종착지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백 리나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갔다. 자신들을 수상히 여기는 이장 집에서 3박 4일을 머물게 되었다. 처음에는 김치와 우거지 국뿐인 밥상에도 흥겨워하며 먹어대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고향의 맛이라고 여긴 것도 잠시뿐이었다. 다음날 저녁부터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김성달을 위시하여 맥주 타령을 늘어놓는 최진철과 TV 쇼를 보고 싶어하는 윤경수 등 모두 서울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 날 아침 차를 놓친 일행은 산행(山行)을 결심하게 된다. 산행 도중 몇 채의 초가집을 만나 쉬려는 찰나 술 취한 작부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들은 산 위에 있는 미군 기지의 군인들을 상대하는 여자들이었다. 일행은 모두 씁쓸한 감정을 지우지 못한 채, 숨이 막힐 듯 답답한 시골을 떠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2. 핵심 정리

◎ 배경 : 강원도 산골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현실화되어 가는 농촌의 실상과 편협된 현대 도시민의 안일한 삶

 

3. 등장 인물

◎ 나 : 관찰자. 건축 설계사로 비교적 순탄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가장

 

4. 이해와 감상

“서울 사람들”은 도시민들의 삶 속에 내재하고 있는 문명화 사회의 각박함과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요소들을 그린 작품이다. 도시적 삶의 허위성과 현실의 냉혹함은 인간의 가치관을 얼마나 잘못 이끌어 왔는가를 보여 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인간과 괴리된 이상, 혹은 삶의 건조함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최일남은 이와 같이 문명된 사회일수록 인간의 가치는 반비례한다는 문명 비판론적 시각을 갖고 있다. 70년대 이후 잃어 가는 자연에의 향수를 그리고들 있지만 이 시대에서 순박한 향수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허위스러운가를 작가는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자체적인 문학의 주류에서 본다면, “서울 사람들”은 70년대 이후 도시 산업화 현실의 몰가치성과 도시 소시민의 삶의 문제를 다룬 작품 계열에 속한다.

 

▶ 흐르는 북

 

1. 줄거리

선천적인 예술적 기질과 역마살로 인하여 가정을 외면한 채 살아온 민 노인은 현재 유배자와 별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민 노인의 아들은 자신의 사회적 체면도 있고, 아버지 민 노인이 북[鼓] 때문에 가정을 버리고 허랑 방탕한 한평생을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또 다시 북 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손자인 성규와 성규 친구들의 권유로 민 노인은 그 동안 놓았던 북채를 다시 잡게 되고, 아들로부터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민 노인의 예술적 기질과 삶을 이해해 주는 성규는 어느 날, 민 노인에게 자기 학교의 봉산 탈춤 공연에 참여해 달라는 제의를 한다. 많은 고민 끝에 민 노인은 이를 승낙한다. 그리고 아들 내외의 눈을 피해 젊은 패들과 연습에 돌입한다. 비록 연배가 한참 위이나 젊은이들과의 연습은 민 노인에게 큰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 공연 당일, 민 노인은 다시 찾은 예술혼을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유감 없이 발휘한다. 그러나 아들 내외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민 노인을 탓함과 동시에 아들 성규를 호되게 꾸짖는다. 일주일 후, 성규는 데모를 하다가 붙잡혀 들어간다. 손녀 수경이와 함께 집에 남게 된 민 노인은 ‘아무래도 그 녀석이 내 역마살을 닮은 것 같아. 역마살과 데모는 어떻게 다를까.’ 하고 생각하면서 손녀의 물음에도 아랑곳없이 둥둥둥 더 크게 북을 두드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세태 소설

◎ 배경 : 시간(1980년대) / 공간(서울 중산층 가정)

◎ 성격 : 풍속적, 비판적

◎ 표현 : 간결체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손님이 방문하는 날 민 노인이 집을 비워야 하는 이유를 통해 아들(대찬)과의 갈등 내력을 소개함.

전개 -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나누는 민 노인과 손자(성규)의 대화와 성규가 탈춤 공연에 필요한 북 장단을 부탁함.

위기 - 민 노인은 대학생들과의 연습과 공연에서 오랜만에 신명을 맛봄.

절정 - 공연 사실이 알려지면서 며느리의 힐문을 받는 민 노인. 그리고 성규를 꾸짖는 아들

결말 - 성규가 데모로 잡혀가고 민 노인은 북을 울리며 자신의 역마살과 손자의 데모에는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함.

◎ 제재 : 북

◎ 주제 : 중산층의 소시민성에 대한 비판과 전근대적 예술혼과 진솔한 삶의 만남

◎ 출전 : <문학사상>(1986)

 

3. 등장 인물

◎ 민 노인 : 평생 북을 치며 살아온 예인(藝人)으로서 가족을 버리고 방랑하다가 늙어서 아들집에 얹혀 살게 된다.

◎ 민대찬 : 민 노인의 아들. 고학으로 자수성가하여 고급 관리가 된 자신의 현재 지위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민 노인이 북을 치는 것을 싫어한다. 현실에 얽매여 기득권을 중시하는 소시민의 전형성을 띤다.

◎ 민성규 : 민 노인의 손자. 할아버지의 광대로서의 삶을 이해하는 대학생으로, 데모 도중 잡혀간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전통 세대, 기성 세대, 신세대를 상징하는 세 인물을 한 가정에 노인, 그의 아들, 손자로 설정하여 이들 간의 갈등, 즉 세대간의 갈등과 모순을 그리고 화해를 모색해 보는 1980년대 배경의 세태 소설이다. 젊었을 때 가정을 돌보지 않고 예인(藝人)으로 살지만 현재는 아들의 집에 얹혀 사는 민 노인, 아버지가 광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을 꺼리고, 가정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하여 증오심을 품고 있으며, 자수성가한 소시민의 전형인 민대찬, 민 노인의 삶을 이해하고 긍정할 줄 아는 성규는 크게 두 갈래의 갈등의 축을 형성하고 대립한다.

민 노인 ↔ 민대찬 부부(갈등의 관계)

민 노인 ― 민성규(이해의 관계)

대찬 부부 ↔ 민성규( 갈등의 관계)

지은이는 이러한 갈등의 모델을 통해 물이 흐르다가 장애물이 나타나면 돌아가거나 뛰어넘어 극복하고 흐름을 지속하듯 세대간의 갈등 문제도 극복할 수 있음을 긍정하고 그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최정희(1912~1990)

 

여류소설가. 함남 단천 출생. 숙명여고, 서울 중앙보육학교 졸업. 1935년 “흉가(凶家)”로 등단. 치밀한 심리 묘사를 통하여 자기 고백적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지맥(地脈)”(1939), “인맥(人脈)”(1940), “천맥(天脈)”(1941), “풍류 잽히는 마을”(1947), “녹색의 문”91953), “인간사”(1960) 등이 있다.

 

▶ 녹색의 문(門)

 

1. 줄거리

하숙을 하며 학교를 다니는 유보화와 도영혜는 자매처럼 사이가 좋았으나 윗방에 김영서란 학생이 하숙을 들어 오고부터는 둘의 사이가 전 같지 못했다. 도영혜는 김영서를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는 의기 있는 남자라고 좋아하지만, 유보화는 김영서의 행동 거지가 공연히 싫고 또 도영혜의 마음이 김영서에게 기우는 것에 더욱 견디지 못했다. 심사가 뒤틀린 보화는 하숙집을 나와 기숙사로 들어가 친구 차순과 한 방을 쓰게 된다. 그러던 중, 학교에는 스트라이크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학교 당국에 여러 요구 조건을 내건 이번 스트라이크가 도영혜의 지도 하에 이루어진 것을 알고 보화는 놀란다. 그러나 조선어 과목의 설강과 신사 참배 폐지 등을 주장한 학생들의 스트라이크는 실패하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영혜와 보화는 다시 친밀해진다. 선배인 도영혜는 학교를 졸업한 후, 유학 준비를 하던 중 보화를 찾아간다. 영혜는 김영서를 변함 없이 사랑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유학을 떠나고자 한다고 했다. 보화는 영혜 언니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생각에 젖어든다. 한편, 보화는 우여곡절 끝에 알게 된 서남령을 잊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와 무작정 걷는다. 한참을 걸었을 때, 우연히 김영서와 상봉하게 된다. 그리고 김영서가 옛날부터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가 영혜 언니의 연인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어느 날, 영서가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때야 비로소 보화는 영서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영서가 별 고문 없이 풀려 나왔을 때, 그녀는 영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김영서는 보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무엇인가 말못할 사정이 있는 듯이 알 수 없는 웃음을 띤다. 한편, 영혜로부터 보화에게 편지가 왔는데 편지 속에는 그녀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 3년 뒤, 일제가 패할 무렵에 실시한 학병 제도 때문에 영서는 피신하게 되고, 보화는 부친의 사망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조선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가정 형편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영서의 소식을 알지 못해 노심초사한다. 그러던 중, 차순의 애인이었던 이성배가 보화에게 동경에 있던 짐을 전해 주면서 영서와 차순의 도망 소식을 알린 후, 옛날부터 보화를 짝사랑하던 성배는 보화를 욕보이고 이로 인해 보화는 죽을 결심을 한다. 그녀는 죽기 전에 지난날에 묵었던 하숙집을 찾아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하숙집을 찾아간 보화는 영혜의 행방을 알게 되고 그녀를 찾아갔다. 영혜는 다방을 하며 술과 남자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 곁에는 영서를 꼭 닮은 아이가 있었다. 지난 날 유학 시절 때, 사실 영혜는 영서의 미움만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영서의 하숙집에 따라가 하룻밤을 지내었으나 곧 버림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조선으로 와 경위의 아들 홍찬구와 결혼했으나 영서를 빼어 닮은 아이를 낳자 홍찬구와 헤어지게 되었고 그 후 타락한 길을 걸어온 것이었다. 보화는 영혜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죽음을 포기하게 된다. 보화는 불쌍하게 살아온 영혜를 위로하면서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강렬한 힘을 깨닫게 된다. 보화는 다시는 남자로 인한 수난은 당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여자의 수난은 남자로 인해 발생되므로 남자와의 관계를 끊고 살리라는 생각을 다져 본다. 그러나 얼마 후, 보화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더 이상 삶에 대한 욕구를 상실하고 다시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녀의 자살 기도는 실패한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곁에는 서 선생이 있었다. 서 선생은 보화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보화도 이제는 어떠한 장애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과 신념이 생김을 느낄 수 있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서울의 하숙집과 일본 동경

◎ 주제 : 여성의 전근대적 애정관과 지순한 사랑의 승화

 

▶ 지맥(地脈)

 

1. 줄거리

‘나’는 동경 M대학에 다닐 때, 문학에 관심이 있었으나 죽은 남편 홍민규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문학보다는 정치를 배우고 사회 과학에 더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 작품보다는 사회주의 이론이나 노동 조합 조직론 등 홍민규가 읽었다는 책을 더 가까이 했다. 그런데 홍민규에게는 본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본처가 있는 홍민규와 동거하게 되고 아이들까지 낳게 되었다. 홍민규의 집 소실로 들어간 셈이 된 ‘나’는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입학시키려 했지만 호적에 입적이 안 된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 후, 홍민규가 죽고 미망인이 된 나를 사랑하며 결혼을 강요하는 상훈과의 만남에 ‘나’는 다시 괴로워한다. 그러나 결국 ‘나’는 아이들의 입적 문제뿐 아니라 상훈의 사랑과 청혼을 물리치고 가톨릭에 입교한다. 그리고 애욕의 감정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신부의 강론에 감화를 받아 상훈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해주 요양원으로 옮겨간다.

2. 이해와 감상

“지맥”은 서울의 기생 김영화의 집에 침모로 가면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나’의 심리적 갈등과 과거의 이력이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중간에 ‘나’와 유사한 삶을 살고 있는 부용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단편 소설 “지맥”은 소실(小室)과 사생아 문제, 그리고 전근대적인 여성의 애정 심리와 윤리 의식을 종교적 차원과 결합시킨 최정희의 대표작이다.

 

▶ 천맥(天脈)

 

1. 줄거리

연이(蓮伊)는 아침저녁으로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모으고 한참씩 앉아 있는다. 그녀는 이렇게 앉아 있는 때가 가장 신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알고 있다. 그녀가 아이 하나만을 데리고 이 옥수정 보육원에 오게 된 유래를 안다면 누구나 그녀와 같은 자세를 지을 것이다. 연이의 첫 남편 상수와의 결혼은 법률과 도덕이 허락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남편 상수가 죽자, 연이와 연이의 아이는 시부모에게서 버림을 받게 된다. 한편, 친정으로 간 줄로만 알았던 상수의 처음 색시는 남편 몰래 시부모와 오래 전부터 함께 살고 있었고, 남편이 죽은 후 시부모는 상수의 첫 색시만을 며느리로 인정했을 뿐, 연이 모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이는 아이의 교육 문제를 위해, 그리고 아늑한 살림을 해 보고픈 생각에 전처와 사별한 남자에게 두 번째 시집을 간다. 연이의 두 번째 남편 허진영은 의사였다. 그러나 허진영과의 결혼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연이가 데려온 아이 때문이었다. 허진영과 연이와 아이, 세 사람 사이엔 묘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를 사랑으로 감쌌다. 아이는 점차 상냥해졌지만, 허진영은 연이와 아이가 더욱 가까워지는 것에 못마땅한 생각이 들어 연이에게 병원일을 보라고 권한다. 연이는 자신이 간호원복을 입고 병원일을 하느라고 아이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기와 아이를 파멸시키는 것임을 깨달았다. 문득 연이는 몇 달 전 신문에서 옥수정 보육원이 소개된 기사를 본 기억이 나서 아이와 함께 있기 위해서 허진영과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연이네 모자는 옥수정 보육원을 찾아갔다. 마침 보육원 원장인 선우 선생은 연이의 여학교 시절의 스승님이었다. 선우 선생은 연이가 그 동안 걸어온 비참한 역경을 듣고 나서, 함께 보육원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자고 한다. 그 후 연이는 혼신을 다하여 보육원 아이들을 보살폈다. 과연 그녀의 정성 덕이었는지 아이들은 점차 양호해졌다. 그러나 보육원의 원장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 때문에 연이는 슬퍼졌으나, 이내 원장의 말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기도하는 버릇을 갖게 된다. 연이가 무릎을 꿇고 손은 마주 잡고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한참씩 앉아, 그의 신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맹목적으로 비는 버릇이 생긴 것은 이 날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옥수정 보육원

◎ 주제 : 본능적 모성애(인간 본능적 사랑)

 

3. 등장 인물

◎ 연이 : 주인공. 아이와 함께 사는 여성

◎ 허진영 : 연이의 두 번째 남편. 의사

◎ 선우 선생 : 옥수정 보육원 원장. 연이의 여학교 시절 스승

 

4. 이해와 감상

“천맥”은 1941년 <삼천리> 4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인맥”, “지맥”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다. 연이라는 여주인공의 일생을 통하여 삶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본연적인 애정을 묘사한 작품으로서, 버림받은 여성의 모성애 문제를 여인의 도덕적 문제와 가족 제도의 전근대적 사회 관습과 관련시켜 다루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최정희는 “천맥”을 통해서 전근대적인 사회 관습이나 사상에 얽매인 여인의 심리적 세계를 날카롭게 파고들어 사회 관습에 대한 비판적 의식으로 여성의 인간성 회복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흉가(凶家)

 

1. 줄거리

‘나’는 정동 집에서 살다가 집달리에 의해서 쫓겨났다. 그런데 아는 이의 소개로 이사를 간 곳이 공교롭게도 여학교 동창생의 집이었다. 그 집의 심부름하는 아이의 방을 차지했는데, 내 아이가 드나들며 온갖 수선을 다 떨어 송구스럽기 그지없는 등 고초를 겪다가 또다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흉가로 소문나 있는 집을 그런 줄도 모르고 세(貰)가 헐하다는 기쁨에 서둘러 이사를 한다. 이사 오던 날, 솥 붙이는 늙은이가 그 집의 바깥주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안주인의 정신 이상에 관한 이야기 등 으스스한 집 내력을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사 온 후 스무 날이 넘던 어느 날, 병원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고 오며 그 늙은이의 말이 떠오른다. 또, 집의 안주인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여자에게 머리채를 쥐이고 맞아대는 꿈을 꾼 것을 생각해 내고는 흉가라고 단정을 한다. 이사 온 후 사흘째 되는 날부터 몸에 열이 있자 더욱 확신하게 된다. 이 날도 밤잠을 한잠도 못 이룬다. 달빛에 비치어 조화를 부리는 것 같은 감나무 그림자. 날이 새면 이사를 가리라고 생각을 굳힌다. 그러나 다시 집을 옮긴다 해도 이십 원으로 단칸방도 얻을 수 없을 뿐더러 이사 온 집에 만족하시는 어머니를 낙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폐병으로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돌아누워 눈물짓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서울 근교 자하문 밖)

◎ 성격 : 심리 소설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표현 : 여성 특유의 섬세한 표현

◎ 구성

발단 - 새로운 집을 계약하고 이사를 하게 되는 기쁨

전개 - 여학교 동창 집에 세 들어 살던 때의 괴로움 회상

위기 - 흉가라고 불리어진 내력과 실성한 안주인의 병세를 들음.

절정 - 어느 날 밤, 심한 악몽에 시달려 또다시 이사를 결심

결말 - 어머니의 실망을 생각하며 눈물지음.

◎ 주제 : 흉가(凶家)를 둘러싼 가난한 삶의 비애(悲哀)

◎ 출전 : <조광>(1937)

 

3. 등장 인물

◎ 나 : 신문사의 여기자. 집안의 생활을 도맡은 가장. 결핵을 앓고 있고, 섬세하고 소심하다. 이사 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 어머니 : 인정이 많고 자상하며 고초를 잘 견디어 낸다.

◎ 솥 붙이는 노인 : 공손하고 친절하다. 흉가에 대한 미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나 별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 안주인 : 남편이 고생하다 죽은 후에 형제간의 이권 다툼으로 인하여 정신 이상자가 된다.

 

4. 이해와 감상

1937년 <조광(朝光)>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한 여성의 번민하는 모습이 섬세하게 포착된 작품. 새로 얻어 들게 된 집이 흉가(凶家)라는 말을 듣고도 쫓겨나지 않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던 주인공 ‘나’는 계속되는 압박감과 공포감에 시달린다. 작중 화자 ‘나’는 지식인 여성으로 신문사 여기자이다. 가족의 생계를 혼자 도맡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늘 피곤하다. 넉넉하지 못한 경제력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가족들의 주거를 확보할 요량으로 새로 얻어 든 집이 흉가라는 말을 듣고도 그 때문에 오히려 쫓겨날 염려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사 온 첫날의 꿈을 떠올리고 공포에 휩싸인다. 어떤 미친 여자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히는 꿈을 꾼 것이다. 그리고 솥 붙이는 늙은이로부터 흉가에 얽힌 내력, 특히 그 집 안주인이 미쳐 버리게 된 이야기의 전말을 듣게 된다. 두려움이 깊어진 ‘나’는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모처럼 집을 갖게 된 기쁨을 지닌 어머니에게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다. 폐병 진단을 받은 ‘나’에게 어머니는 그저 몸살이냐고 물을 뿐이다. 집을 얻어 좋아하는 가족들의 모습, 폐병 진단을 받고도 홀로 앓고 있는 ‘나’의 심정, 괴기(怪奇)스런 꿈, 어머니의 감정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안쓰러움. 특히, 폐병과 악몽에 시달리는 순간에는 탈바가지, 달빛, 닭 울음소리가 뒤엉켜,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개인적 한계 사이에서 번민하는 ‘나’의 심리는 불안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

 

 

최찬식(1881~1951)

 

신소설 작가. 신학문을 공부하고 문학에 뜻을 두어 1907년에 중국 상해에 발행한 소설전집 “설부총서”를 번역(번안?)한 뒤 우리나라 현대 소설의 토대가 된 신소설 창작에 착수하였다. <자선부인화잡지> 편집인과. <신문계>, <반도시론> 등의 기자를 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추월색”(1912)을 비롯하여 “안(雁)의 성(聲)”(1914), “금강문”(1914), “능라도”(1919), “춘몽(春夢)”(1924)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이들은 한결같이 이성간의 애정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중심은 민족 의식이나 자주 독립 등의 정치적인 면보다 애정 문제, 풍속적 윤리, 도덕 문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신식 결혼관이나 연애가 표면적으로만 등장할 뿐, 궁극적인 주제는 고대 소설적인 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찬식의 소설은 당대 신소설의 한계 및 통속화 현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 안(雁)의 성(聲)

 

1. 줄거리

일찍이 부모를 여읜 박정애는 오빠 박춘식과 함께 이곳 저곳을 다니며 걸식하다가 가까스로 오빠가 서울 마포에서 생선 가게를 차린 덕택에 정애는 여학교를 나오게 된다. 박춘식은 본디 양반의 집에서 태어났으나 비천한 생선 장사를 시작한 후로는 스스로를 상놈으로 생각한다. 박정애가 학교 가는 길에 법전을 다니는 김상현과 알게 되어 결혼하려고 할 때, 상현의 어머니는 이웃집에 사는 정봉자를 며느리로 맞이하려 했고 봉자 또한 상현의 누이동생 영자를 통해 상현과 결혼하려 애쓴다. 상현이 쟁애와 결혼하자 질투를 느낀 나머지 봉자는 정애에게 정부(情夫)가 있는 것처럼 중상모략을 한다. 마침내 상현 어머니는 정애를 부정한 여자로 취급하여 상현에게 이혼할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상현은 죽어도 정애와 이혼할 수 없다고 버틴다. 결국 정애는 친정으로 쫓겨나게 된다. 실의에 찬 상현이 구라파로 여행을 떠나고, 친정에 간 정애는 끝내 실성하여 집을 나가게 된다. 정애 오빠는 누이동생의 행방을 찾아 헤맨다. 한편, 영자와 봉자는 정애의 결혼 반지를 훔쳐 전당포에 잡힌 것이 단서가 되어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구라파에서 귀국한 상현은 우연히 정애와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춘식이도 우연히 동생 정애를 만나게 된다. 영자와 봉자는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고, 정애도 상현과 다시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특징 : 기성 사회의 봉건적인 의식에 대하여 신지식과 물질 사회로의 개혁 의지를 담고 있는 작품

◎ 주제 : 자유 결혼과 계급 제도에 대한 비판

 

3. 이해와 감상

1912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지식층 남녀의 삼각 관계를 소재로 하여 자유 결혼을 주장하였으며 봉건 사회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렸고 애정에 대한 새로운 도덕을 제시한 작품이다. 이 소설 역시 “추월색”과 마찬가지로 스토리 전개에 있어 우연(偶然)의 연속으로 되어 있으며 양반과 천인이 결합함으로써 평등 사상으로 부르짖는다든지 법학을 공부하여 판사가 된다든지 하는 내용은 당시의 개화 사상을 고취하는 소설의 공통된 일면에 속한다.

 

▶ 추월색(秋月色)

 

1. 줄거리

이 시종의 외딸 정임과, 옆집에 사는 김 승지의 외아들 영창은 어릴 때부터 다정한 사이로 장차 결혼할 것을 약속한 사이다. 그런데 영창이 열 살 되던 해 김 승지가 초산 군수가 되어 이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뜻밖에도 민란(民亂)이 일어나 난민들은 김 승지 내외를 뒤주 속에 가두어 압록강에 버린다. 영창이 부모를 찾아 가을 따라 헤매다가 쓰러졌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영국 사람인 스미드 박사가 영창을 구해서 본국에 데리고 가서 공부시킨다. 한편, 이 시종은 민란이 일어난 후 추산 지방으로 가 봤으나 김 승지 일가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정임의 부모는 정임의 나이 열다섯이 되었을 때 다른 혼처를 청해 결혼시키려 한다. 그러나 정임은 영창과 결혼키로 약속한 몸으로 두 남자를 섬길 수 없다고 버틴다. 계속되는 부모의 강요에 마침내 정임은 집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 여자 대학에 입학, 음악을 전공하여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그런데 평소 정임에게 접근해서 어느 날 밤 우에노 공원에서 정임을 칼로 찌르고 도주한다. 그 때 공교롭게도 영국에서 귀국하여 이 공원을 지나던 영창이 그녀를 구하나, 살인 미수범으로 재판을 받는다. 결과는 무죄로 석방되고 두 사람은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신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 여행차 만주에 갔다가 어느 청국인에게 체포되어 어느 집에 끌려갔는데 거기서 우연히도 죽은 줄만 알았던 영창의 부모를 만나게 되어 행복하게 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신소설

◎ 배경 : 시간(20세기 초) / 공간(한국 일본 등)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표현 : 근대화가 되지 않은 봉건 제도의 모순과 비합리적인 사회에 대해 계몽하고자 함.

◎ 제재 : 개화기 남녀간의 애정

◎ 주제 : 봉건적 인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윤리와 신교육 사상 고취. 신교육관과 신혼인관

◎ 출전 : <회동서관>(1912)

 

3. 등장 인물

◎ 이정임 :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견디는 강인한 여인

◎ 김영창 : 김 승지의 아들로 정임과 혼인을 약속한 사이

 

4. 이해와 감상

1912년 회동서관에서 낸 최찬식의 첫 작품 “추월색”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1921년까지 15판이나 거듭되었다. 제목을 그렇게 붙여, 서두에서 그린 장면을 아주 인상 깊게 표현하고자 한 것부터가 상당한 솜씨이다. 최찬식은 친일파의 아들이라 사회적 위치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나 통속 소설을 쓰는데 전념하다시피 해서 인기인이 되고자 했다. 이 작품은 신교육관과 신혼인관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부패한 관료에 대한 민중의 봉기가 사건 전개 과정에 삽입되어 당대 현실의 단면을 반영하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일본과 영국 등 선진국에 유학하여 새 지식을 얻고, 특히 신교육을 받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등에서 신교유관이 드러나고, 어릴 때 친구이자 정혼자(定婚者)로서의 당사자들이 성장한 뒤 다시 독자적인 의사로 혼인을 결정하는 신․구 절충적인 모습에서 새로운 혼인관(婚姻觀)을 엿볼 수 있다. 지은이인 최찬식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렇게 젊은이의 애정 문제와 관련되는 면이 많았다. 주인공 영창과 정임의 우여곡절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들을 구시대에서 벗어나서 새 시대를 인도하는 지도적 인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제기되는 재화의 길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하고 관념적인 것인가, 시대에 얼마만큼 밀착되어 있는가 하는 부분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부정적 측면이 지적되고 있으나, 어쨌든 그는 많은 작품으로 신문학 공헌을 했다.

 

 

하근찬(1931~)

 

소설가. 경북 영천 생. 전주사범 졸업. 동아대학교 수학.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수난 이대”가 당선되어 등단. 초기에는 역사적 상황과 연계된 가난한 농촌을 비극적 현실로 인식하고 그 아픔을 이겨내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 즉, 어려운 농촌 현실의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극복해 내려는 농민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단편 “삼각의 집”에서는 도회지 서민의 생활상에 현대의 삶에서 발견되는 부조리를 연결시켰으며, 단편 “왕릉과 주둔군”에서는 외국군의 주둔과 타락한 윤리를 다루었다. 그 외 작품으로 단편 “흰 종이 수염”, 장편 “야호(夜壺)”, “산에 들에” 등이 있다.

 

▶ 수난 이대(受難 二代)

 

1. 줄거리

박만도는 3대 독자인 아들 진수가 전쟁터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마음이 들떠 있다. 그는 아직 아들이 탄 기차가 들어오려면 멀었음에도 일찌감치 역전으로 나간다. 병원에서 나온다는 말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기는 했으나, 설마하니 아들이 자기처럼 불구가 되진 않았으려니 하고 애써 마음을 편히 먹는다. 그는 한쪽 팔이 없다. 일제 때 강제 징용을 나가 비행장 건설 중 폭격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때 그는 기절까지 했었다. 그는 항상 왼쪽 소맷자락을 조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꽂아 놓고 다녔다. 일말의 불안감이 없었던 바는 아니나, 그는 아들이 돌아온다는 생각에 어서 시간이 흘러가 버렸으면 한다. 아들에게 주려고 역전으로 가는 길에 고등어도 한 마리 산다. 정거장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40분, 점심때쯤 온다고 했으니 시간은 아직도 한 시간이나 넘게 남았다. 기다리는 동안 박만도는 옛날에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떠올려 본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울려 만도는 벌떡 일어선다.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아들의 모습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상이 군인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조바심에 안달이 난 박만도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아부지!”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뒤로 돌아선 순간 그는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은 무섭도록 크게 떠지고 만다. 아들은 틀림없었으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쪽 다리가 없어져 빈 바지 자락이 펄럭이고 있었고, 목발을 짚고 있었던 것이다. 박만도는 눈앞이 아찔해진다. 기진 하고 실성한 모습으로 두 부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 진수는 이 같은 꼴을 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느냐고 아버지에게 하소연한다. 만도는 “나 봐라! 팔뚝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왜 못 살아!”라며 격려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외나무다리가 하나 있다. 진수는 도저히 다리를 건널 수가 없다. 머뭇거리는 아들을 바라보던 만도는 대뜸 등을 돌리며 진수에게 업히라고 한다. 팔 하나가 없는 아버지와 다리 한쪽이 없는 아들이 조심스레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전후(戰後)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말기부터 6․25 전쟁까지) / 공간(1950년대의 어느 한적한 시골)

◎ 문체 : 간결 명료한 문장, 관형어․부사어․사투리 사용

◎ 어조 : 격앙된 목소리에서 안정된 목소리로 변화함.

◎ 성격 : 사실적, 토속적, 해학적, 비극적

◎ 인물 : 박만도와 진수 부자는 현대사의 수난을 경험한 우리 민족을 상징함.

◎ 갈등 : 개인 ↔ 사회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과 작가 관찰자 시점 혼용

◎ 구성

발단 - 살아서 돌아오는 아들을 마중하기 위해 정거장에 나가 기다림.

전개 - 십이삼 년 전 만도가 징용에 끌려가던 과정을 회상함.

위기 - 불구가 된 아들에 대한 만도의 슬픔과 분노와 좌절감

절정 - 아버지가 아들과 화해

결말 - 외팔이 아버지가 외다리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넘.

◎ 제재 : 민족의 수난사(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 주제 : 수난으로 일관된 현대사의 비극적 단면과 그 극복의 의지

◎ 출전 : 단편집 <수난 이대>(1972)

 

3. 등장 인물

◎ 박만도 : 아버지. 일제 징용에 끌려갔다가 왼팔을 잃고 돌아옴. 수난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품은 긍정적인 인물로 성격이 다소 급하고 직선적이다. 의지적이고 낙천적이며 익살기가 있다.

◎ 박진수 : 박만도의 아들. 삼대독자. 6․25에 참전, 한쪽 다리를 잃고 돌아온 순박한 시골 청년으로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인생과 역사의 의미 같은 거창한 것에 대한 사색은 할 줄 모르지만, 자기에게 닥치는 사태를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의지적 인간성이 엿보임.

◎ 술집 여편네 : 부자간의 우울한 기분을 해소시켜 주는 분위기 조정자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상호 교차시키며 회상 또는 연상의 수법을 적절히 활용한 역순행적 구성을 보이며 진행 사건의 관계로 보면 병렬 대조형 구성을 보인다. 이러한 구성은 일제 강점이란 역사적 수난과 6․25 동란이라는 민족적 시련의 두 사건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그 수난이 우리 민족 전체의 문제임을 밝히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살아가는 참담한 시대의 인간들이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시련을 극복하는 주제적 차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의 회상 부분은 요약적 서술로, 현재 일어나는 사건의 전개는 주로 대화를 통해 한 인물의 치열한 심리 갈등과 화해를 반영시킨 장면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작품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작가 관찰자 시점이 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주제 표출의 어려움 때문에 전지적 작가 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병행해서 사용되는 복합적 관점으로 관점의 혼란을 극복하고 자연스럽게 적용하고 있다. 또 이 글은 6․25 직후의 한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일제 말기의 식민지 시대에서 6․25 사변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만도와 진수 이 부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 즉 외부적 압력으로 인한 육체적 손상을 입고 있다. 이들 부자의 이러한 육체적 손상은 우리 현대사가 경험한 역사적 수난의 과정을 확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 두 세대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 비극의 상처와 고통을 서로 감싸고 도우면서 역사적 시련을 극복해 가려는 의지가 감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여기에서 외나무다리는 단순한 배경 요소로 그치지 않고 사건의 구성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핵심적 조건 구실을 한다. 이 소설에서 사용되고 있는 농민들의 투박한 언어, 사투리 등은 인물들의 성격과 심리 상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데 이바지하고 있으며 개별적인 소재 즉 주인공의 일정한 버릇 등도 경제적으로 활용되어 단편 소설의 밀도 있는 구성에 기여하고 있다. “흰 종이 수염”과 함께 작가의 대표작이다. 일제에 의해 한 팔을 잃은 아버지와 6․25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의 상봉, 즉 2대에 걸친 수난이 한자리에서 확인되는 짧은 한 순간의 이야기를 통해 민족사적 비극을 암시한다. 간결한 문체 위에 이야기하는 시간의 사건과 과거 회상의 사건이 서로 적절히 교차되어 흥분과 격정이 고조되는 미적 쾌감을 가능케 한다. [수난이대]는 한국 현대사가 당면했던 역사적 비극을 조그만 마을에 사는 부자를 통해 보여준다. 이 수난이대는 단편 소설로서 정통적이고 모형적인 가족사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제목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역사의 변환 속에서 한 가족 부자 이대(父子 二代)가 겪는 비극과 수난의 역사, 즉 수난의 가족 세대적인 역사의 기술이라는 면에서 다분히 가족사 소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역사적인 비극의 재확인이 아니라 차례로 팔과 다리를 잃은 이 두 세대가 서로 협력하여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인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재기를 위한 화합(和合)을 기본 주제로 하고 있다. 외팔이인 아버지가 외다리가 된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장면은 수난의 연대기를 살아가는 삶이 지탱해야 하는 휴머니즘의 귀결적 화해라는 측면이기도 했다.

 

<참고> “수난 이대”에 대하여

□ 운명론자 또는 체념론자 : 이 작품은 역사의 거대한 조류에 휘말려 불구자가 된 두 부자의 상봉 장면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버지 박만도와 아들 박진수는 어찌 보면 역사의 대기권 밖에서 그날그날 자족하며 살 줄 알았던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두 부자는 똑같이 본인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역사와 시대의 부름을 받아 역사의 권내로 뛰어 들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흔(傷痕)을 안고 다시 권외로 밀려나오게 된 것이다. 애초부터 이들 부자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삶의 자세를 계속 지켜 갈 수 있는가 하는 쪽으로 쏠려 있었다. 만도는 속으로 ‘인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타고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주워 섬겼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곧장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하고 중얼거리는···. 이렇게 두 부자는 자신들의 불행을 아파하고 탓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 부자는 운명론자, 혹은 체념론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들 작중 인물에게는 흔히 말하는 ‘의식’이란 것도 없고 자신의 아픔을 역사의 비판으로 이끌어 올릴 만한 지성도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아버지 박만도는 아들이 돌아오면 반찬 해 주겠다고 고등어 묶음이나 들고 다니고, 또 외다리가 되어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 홧술을 거푸 몇 잔 마셔 대는 정도의 반응밖에 보이지 못하는 극히 소박하면서도 직정적(直情的)인 인간형에 속한다. 아버지 박만도와 아들 박진수는 자신들의 불행을 마음놓고 통곡할 만한 적극성도 지니고 있지 못하며, 또 자신들의 삶에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남기고 간 그 거대한 힘의 존재에 대한 분석과 항변을 시도할 만한 지성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런 유형의 독특한 인간형을 형상화한 것은 확실히 하근찬 특유의 개성이 낳은 산물이라 하겠다. 6․25 전쟁을 소재로 한 다른 소설들, 가령 최인훈의 ‘광장’,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위의 두 부자를, 특히 전쟁으로 인한 충격과 상처를 어떻게 수습하고 있는가 라는 측면에서 비교한다면 아주 흥미 있는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앞에 예시한 세 작품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받은 유형, 무형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다스리고 음미하고 있다면 ‘수난이대’의 두 부자는 어리석다고 할 정도로 ‘소극적’인 대응법을 취한다. 이들 부자는 기껏해야 운명론의 무드에 빠지거나 아니면 팔자 타령을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 앞서 예시한 세 작품의 주인공들이 전쟁이란 무엇이고 왜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역사는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식으로 실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반면, ‘수난이대’의 주인공들은 역사와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를 생존 본능의 확인을 통해서 잊으려 하거나 뛰어 넘으려 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 가족의 부자(父子) 2대에 걸친 시련의 중첩을 통해서 역사와 인간의 삶의 떼어놓을 수 없는 상호 관련성을 포착함으로써 우리 현대사의 뼈아픈 경험인 일제 말기와 6․25의 전쟁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다. 커다란 역사의 상처를 두 인물에 투영함으로써 생생한 전형성을 획득한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 배경에 대하여 : 이 작품은 6․25 직후의 한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일제 말기의 식민지 시대에서 6․25 사변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세부적 배경 중에서 중요한 것으로는 작품의 앞뒤에 두 번 나타나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이 외나무다리는 단순한 배경 요소로 그치지 않고 사건의 구성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핵심적 조건 구실을 한다.

□ 인물에 대하여 : 이 소설의 등장하는 인물은 ‘박만도’와 그의 아들 ‘진수’, 그리고 술집 여편네 등이다. 박만도는 일제 시대에 징용으로 끌려 팔 한 쪽을 잃은 불구자이고, 아들 진수는 6․25 사변에 참전하여 다리 한 쪽을 잃은 상이 용사다. 그들은 한결같이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지만 뜻하지 않은 외부 압력으로 육체적 손상을 입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들 부자는 우리의 현대사가 경험한 역사적 수난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만도’는 일정한 버릇을 지니고 있다. 단골 술집에 들를 때마다, ‘서방님 들어가신다.’고 하여 술집 여편네와 농담을 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날만은 그런 농담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여느 때와 다른 심리 상태에 놓여 있으며, 몹시 우울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성격이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간접적 표현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아니예’, ‘우짜다가’, ‘똥이다, 똥’ 등 농민들의 투박한 언어가 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또한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데 이바지한다. 아버지인 ‘박만도’는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두 차례의 역사적 수난을 거듭 겪고 있지만,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지닌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최초의 경험으로 당황하는 아들 ‘진수’와는 이런 점에서 판이하게 구분된다.

□ 주제에 대하여 : 이 작품은 “수난 이대”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가 겪은 가족사적 수난을 다룬 것이다. 즉 아버지는 일제와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팔 한 쪽을 잃고, 아들은 6.25때 참전하여 다리 한 쪽을 잃음으로써 모두 불구가 되었는데,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가 겪은 가족사적 수난의 과정을 통해 이 땅의 현대사가 경험한 역사적 비극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러한 피해와 확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차례 차례로 팔과 다리를 잃은 이 두 세대가 서로 도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 명백히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비극의 상처와 고통을 서로 감싸고 도우면서 극복해 가려는 의지가 감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플롯의 절정을 이루는 이 부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살아가는 참담한 시대의 인간들이 그래도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역사적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데에 이 작품의 근본적 의의가 있다고 했다.

□ 시점에 대하여 : 이 작품에는 여러 가지 시점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사용되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작가 관찰자 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동시에 사용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주인공 박만도의 성격이 말과 동작으로 제시되어 독자에게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은 작가 관찰자 시점에서 서술된 경우이다. 그리고 작중 화자가 인물들의 내면 심리 세계에 대해서까지 서술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 의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관찰자 시점으로는 너무 단조롭고 평이한 서술에 그치기 때문에 전지적 시점을 병용하여 주제 표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여러 시점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면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으나, 이 작품에서는 무리 없이 사용하여 오히려 소설의 다양성을 획득하였다.

 

▶ 흰 종이 수염

 

1. 줄거리

동길이네는 아버지가 일본에 노무자로 징용 갔기 때문에 형편이 무척 어렵다. 동길이는 사친회비를 못 내서 학교에서 쫓겨난다. 철교가 있는 개울에서 놀다가 집에 가니, 아버지는 오른팔 한쪽이 없어진 채로 돌아왔다. 원래 목수였던 아버지는 팔이 없어진 관계로 극장에 선전원으로 취직한다. 흰 종이 수염을 붙이고 광고판을 매달고 머리에는 고깔을 쓰고, 메가폰에 입을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동길이는 막상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눈물이 핑 돈다.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놀리는 소리를 듣고 동길이는 창식이에게 달려들어 마구 때린다. 아버지는 흰 종이 수염의 실밥이 떨어져 가슴에 매단 채 어쩔 줄을 몰라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50년대) / 공간(극장이 있는 경상도의 어느 지방)

◎ 성격 : 민족 수난의 비극적 인식

◎ 표현 : 아버지가 팔 하나를 잃은 모습을 비극적으로 부각시키면서도 그 시대적 불행의 비극을 코믹하게 고발하고 있다.

◎ 제재 : 민족 수난사

◎ 주제 : 수난의 민족사가 불러 온 부권(父權) 실추의 열등감과 분노

◎ 출전 : <사상계>(1959)

 

3. 이해와 감상

하근찬(河瑾燦)의 소설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주된 제재로 삼는다.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 전쟁에 이르는 아픈 역사 자체가 그의 소설의 무대를 이룬다. 이 작품에서는 어린 동길이를 통해 역사적 수난이 어떻게 삶을 비극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하는 것을 조명한다. 주인공이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현실 상황은 대체로 감추어져 있지만, 어린애의 아픈 삶은 결국 시대가 만든 비극임을 극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년이 아닌, 어린애가 받는 충격이라 그 아픔은 훨씬 깊게 그려진다. 전쟁은 아버지의 부채를 불러오고,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 고통은 현실적 가난이다. 그것은 사친회비를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친회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은 어린애로 하여금 열등감에 빠지게 하고, 그 열등감이 과격한 행동을 또 불러온다.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 특히 동길이와 용돌이는 그런 면에서 두드러진 인물이다. 동길이는 담임을 향해 감자를 먹이고, 용돌이는 ‘개똥리 캐라.’고 반발한다. 소년들이 가지는 사회적 반발심을 욕지거리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욕설은 가장 원초적인 거부의 행동이다.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기존의 권위에 대해 일탈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이들이 그런 사회적 억압에 터무니없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아버지의 불행은 고스란히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을 짓는다. 수난기의 아픔은 당대에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그 아픔의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것이다. 하근찬이 “수난 이대”에서도 두 세대에 걸친 아픔을 극화하고 있듯이 이 작품에서 두 세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아픔을 전하고 있다. 동길이가 아버지에 대하여 품고 있는 생각은, 하나는 부자간의 정이요, 또 하나는 못난 아버지를 둔 부끄러움이다. 아버지가 노무자로 가고 없을 때, 그 서러움은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하면 사라질 것이라 믿으며, 아버지를 기다린다. 이 기다림의 기간은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위상을 지니는 관계를 맺는 시간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부터 소년의 직접적 아픔은 시작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부재 기간은 사랑이 있던 시기이며, 아버지가 집에 있는 기간은 거꾸로 아버지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경험하는 시간이 된다. 아버지가 팔을 잃고 돌아옴으로써 동길이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리고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한다. 평소에 반짝이는 눈과 센 주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기죽어 지내는 동길이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외팔이가 되어 돌아온 것 때문에 풀이 죽는다. 아버지가 집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담임을 만나러 학교에까지 왔기 때문이다. 동길이의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은 의기를 소침하게 하는 만큼 과격한 행동을 유발할 원인을 제공한다. 아버지를 놀리는 친구를 보자 안으로 가라앉아 있던 부끄러움이 분노로 발산되는 것이다. 수난의 역사는 결국 어린 영혼으로 하여금 그 순진성을 앗아가고,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의 콤플렉스에 젖게 하여 마침내 폭력을 휘두르게 만들었다. 아버지를 놀린다고 분연히 일어서는 동길이의 심층 심리에는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픈 역사가 터무니없이 부여한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재미나게 읽어 가는 가운데 역사의 비극을 다시금 돌이켜볼 수 있다.

 

 

한설야(1900~?)

 

소설가. 본명은 병도(秉道). 필명은 만년설(萬年雪). 함남 함주 출생. 선대는 600여 년 전 충청도에서 이주해 온 농민으로 이후 대대로 농사로 생업을 삼았다. 그의 아버지는 글을 사랑했고 젊어서는 그 당시의 문관 시험에도 합격하였다. 반면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일평생 흙 속에서 근로에 열중하며 살았다. 작가 한설야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 컸고 이후의 노동자, 농민 문학에의 헌신에는 어머니의 영향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완고한 봉건제 가족 제도의 폐해를 보면서 자랐고 이 점은 장성함에 따라 당대 사회의 모순에 대한 반항을 그의 문학적 성격으로 갖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1925년 <조선문단>에 “그날 밤”으로 데뷔한 후, 카프의 목적 의식기 문학에 적극 참여하여 “문예 운동의 실천적 근거”, “프로 예술의 선언” 등의 평론과 “과도기”(1929)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초기 작품에서는 만주, 간도 등의 농촌을 무대로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둔 현실의 고통을 그렸고, 이 시기의 작품은 계급 사상에 투철하여 다소 관념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 문학 대중화론이 대두된 이후로는 “과도기”를 통해서 농촌 공동체의 해체와 산업화, 도시화 현상에 뒤따라 농민이 노동자로 계층 이동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소설은 카프 안에서도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받았는데 박영희의 혹평과, 임화의 ‘그 양식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실로 그 정신에 있어서도 분명히 새 시대의 문학’이라는 긍정적 평가이다. 한설야의 활동 시기인 1930년을 전후로 해서 경향 소설은 새로운 단계로 변화해 가는 조짐을 곳곳에서 보여 준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첫째, 1930년을 전후하여 식민지 조선의 본질적 모순이 더욱 첨예화되어 이에 따른 민족 해방 운동이 고양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30년대에 이르러 노동 운동이나 농민 운동의 성격은 민족 개량주의의 단계나 지식인 중심의 관념적 계몽 운동의 정도를 넘어서 노동자, 농민 사이에 비합법 조합이 형성되는 등 보다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로 전개된다. 당시 소작 쟁의, 노동 쟁의의 빈번한 발생은 정치적 경향성을 추구해 온 카프의 지식인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문예 운동의 대중화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는 결과를 낳았다. 둘째로, 이 시기에 접어들어 장원유인(藏原惟人)의 리얼리즘 이론에 영향을 입어 조선에서의 리얼리즘 논의가 본격적인 수준에 이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경향 소설의 도식성에 대한 반성으로 박영희의 ‘형식 탐구’ 주장과 ‘작가의 보다 실천적인 자세가 요구된다.’고 하여 예술 운동의 볼세비키화를 주장한 안막, 임화, 권환 등의 주장이 대두된 점은 이러한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설야의 “과도기”가 경향소설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것은 이전의 경향 소설 속에 깊이 배어 있던 동경(東京)에 대한 낭만적 관념과 백조파 류의 시적 열정의 극복, 그리고 만주에서의 극빈 체험으로 만연된 전망 상실의 현실 추수주의(追隨主義)에 대한 극복의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의 주인공이 식민지 중산층의 지식인으로 귀향하여 ‘조선땅이 구데기’임을 깨닫고 동경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달리 한설야의 소설 속 인물은 지식인, 혁명가, 노동자로서 귀향하여 ‘정든 고향 그러나 불행한 고향, 그러나 그 곳에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고향’(임화, <문학의 논리>)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특징을 살필 수 있다.

 

▶ 과도기(過渡期)

 

1. 줄거리 및 해설

프로 문학이 생기고 나서 1929년에 발표된 이 작품에는 본격적으로 공업화의 단계에 들어선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주인공 창선이 돌아간 고향에는 공장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식민지 조선이 자본주의화함에 따라 농민이 몰락하고 노동계급이 대두하고 있음을 창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과도기’의 주인공 창선은 간도로 이민을 갔다가 사 년 만에 처자를 이끌고 함경도의 어촌인 창리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사이 고향에는 벽돌집과 공장이 들어서고 낯선 사람들만이 오고 간다. 그리고 살 길은 공장의 노동자로 취업하거나 화전민으로 전락하는 길밖에는 없다. 그 후 얼마 못 되어서 이 고장 백성들은 상투를 자르고 공장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그렇게 함부로 써 주는 것이 아니다. 맨 힘차고 뼈 굵고 거슬거슬하고 나이 젊고 우둥퉁하고 미욱스럽게 생긴 사람만 뽑혔다. 그리고 거기서 까불여난 늙고 약한 사람이 개똥밭 농사나 짓고 은어 부스러기 고기잡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온 가장을 보따리에 꾸둥쳐 지고 영원 장진으로 떠나갔다. 화전이나 해 먹을까 하는 것이다. 창선이는 요행 공장 노동자로 뽑혔다. 상투 자르고 감발 차고 부삽 들고 콘크리트 반죽하는 생소한 사람이 되었다. 이 작품은 농민층이 분해되어 공장 노동자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식민지의 공업화가 결국 농어촌의 착취와 몰락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 또한 농민과 노동자가 서로 다른 계층이 아닌 동맹적 관계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동안 이런 계통의 프로문학 작품은 이러한 현실의 단면만을 드러내 보일 뿐, 그 현실에 대한 더 이상의 깊이 있는 성찰은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과도기’는 이전의 프로문학이 지니고 있던 여러 가지 결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소설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전의 프로문학의 두 가지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최서해의 현실 묘사에의 집착과 박영희의 관념성을 모두 뛰어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프로문학이 특히 송영(宋影, 1903~?)의 경우와 같이 공장주와 노동자의 투쟁이라는 관계로 도식화되어서 설정되어 있었던 데 반해서 ‘과도기’는 폭넓은 시간적 관찰과 성찰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시각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당대의 민중의 시선으로 사회의 변화 과정을 주시하고 있는 작가의 의식은 상당한 역량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간도에서 가난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돌아온 창선 일가의 눈앞에는 황폐하게 변해 버린 고향 마을만이 펼쳐져 있다. 어린 시절 공동체의 즐거움이 남아 있던 고향은 사라지고 다만 헐벗은 고향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가난에 못 이겨 떠났고, 그리고 결국은 돌아온 고향에서 창선은 공장의 노동자가 되어 새로운 계층 이동을 한다. 표면적으로도 이 작품은 상당히 넓은 시간적 폭을 지니고 있지만 그 공간의 범위에 있어서도 한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서술하는 광범위함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창선의 개인사는 단순한 한 인물의 역사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전 민중을 대표하는 전형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민중의 계층 이동을 보여 주는 생생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선을 통해서 보여지는 식민지 조선 민중의 계층 변화 과정은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그로 인한 간도 이주 그리고 거기에서도 가난을 견디지 못해서 유랑민이 되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공장의 노동자가 되는 수난의 연속이다. ‘과도기’의 작품이 뛰어난 형상력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계층 변화의 과정을 조금의 작위적인 주관성을 개입시키지 않고 면밀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의 프로문학이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지나치게 정형화시키느라 도식성을 많이 노출했던 데 반해서 ‘과도기’는 각 계층이 형성되기까지의 계층 분화의 과정을 역사적 안목에서 원인과 결과를 통찰해 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공동체적 삶의 형태와 그것의 붕괴 이후, 간도 이주 그리고 유랑민 생활, 그 뒤의 노동자로서의 생활의 시작이라는 작품 공간의 배열은 창선이라는 한 개인의 계층 이동 현상이 단순히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 변화, 역사 발전의 변화에 원인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 창선의 귀향이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는 점에서 작가 한설야의 새로운 전망과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다. 작품의 전개 과정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창선에게 있어 고향은 중복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숙명적 공간이다. 어린 시절의 건강한 삶에 대한 추억이 묻혀 있는 그리운 곳, 그러나 지금은 황폐할 대로 황폐한 불행한 고향, 그렇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고향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공장의 노동자가 되어 고향에 남는다는 마지막 결말 처리는 식민지 조선 민중의 새로운 도약을 예시하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 ‘과도기’도 이러한 의미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참고> 1930년대 전후의 프로 문학

□ 프로 문학의 성립 : 1930년을 전후해서 일제의 독점자본은 만주와 중국 본토까지 지배할 야욕으로 함경도와 평안도 등 북부 지방에 대륙 진출을 위한 대공업을 발달시켰는데,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이 새로 형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농민 운동과 함께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때마침 소련이 성립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이 급속히 유포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계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사회주의 사상을 작품을 통해 구현하려는 많은 작가들을 배출시켰다. 이들이 표방한 문학이 곧 프로 문학(프롤레타리아 문학)이었으며, 그들의 조직이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 동맹. KAPF)였다. 카프라는 조직이 결성되기 전부터 시작된 신경향파문학은 프로문학의 초보 단계로 규정된다.

□ 문학을 계급 투쟁의 무기로 파악하다 : 프로 문학의 문인들은 기아와 공포가 지배하는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이 현실을 뒤엎을 주체로서 무산자 노동자 계급(프롤레타리아)을 부각시켰다. 이들의 특징은 무엇보다 계급 투쟁의 고취에 예술이 봉사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을 강조하였다는 점에 있다. 이기영의 “서화”․“고향”, 조명희의 “낙동강”, 강경애의 “인간 문제” 등이 주목할 작품으로 꼽히는데 이 소설들은 대체로 생경했던 여타 프로 문학 작품에 비해 높은 작품성과 사실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카프 작가들의 전반적인 작품들은 과도한 목적 의식으로 인해서 추상적인 관념이 앞서고,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 카프의 활동 : ‘염군사’와 ‘파스큐라(PASKYURA)’라는 두 좌익 작가 단체가 합쳐서 이루어진 카프는 박영희, 김기진, 김영팔, 이익상, 이상화, 김복진, 송영 등을 발기인으로 1925년 결성되었고 조명희, 최서해, 이기영, 한설야, 임화, 안막, 권환, 김남천 등 당대의 젊은 문인들을 회원으로 하였던 강력한 문인 운동 단체였다. '내용․형식' 논쟁 등 창작 기법과 작가의 예술관을 둘러싸고 치열한 내부 논쟁을 벌였던 카프는 1935년 일제의 탄압으로 와해됨으로써 그 이상의 변모를 보여 주지 못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시와 소설, 영화 등 여러 방면에서 시도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작품 활동보다 논쟁을 중심으로 한 평론이 주축이었다. 평론적인 주도자였던 임화, 창작과 평론을 겸했던 김남천, 낭만파 시인으로 출발하였다가 프로 소설과 평론을 전개한 박영희, 박영희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김기진, 초창기에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카프 해산을 전후하여 전향한 백철 등이 있다. 소설에서는 최서해, 이기영, 조명희, 김남천, 한설야, 이북명, 송영 등이 대표적이다. “상록수”의 심훈이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도 초창기 카프 조직원이었다.

□ 프로 문학의 주요 작가와 소설들 : 김기진 “붉은 쥐”, 박영희 “전투”․“사냥개”․“지옥 순례”, 이기영 “고향”․“인간 수업”․“민촌”․“서화”․“홍수”․“농부 정도룡”, 조명희 “낙동강”․“농촌 사람들”, 한설야 “과도기”․“씨름”, 이북명 “질소비료공장”, 송영 “교대 시간”․“노인부”, 김남천 “공장 신문”․“물”

 

▶ 모색

 

1. 핵심 정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일상의 평범한 가장이 겪는 생활상

◎ 주제 :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소외와 피해 의식

 

2. 등장 인물

◎ 남식 : 잡지사에서 보내주는 원고료로 연명하는 가난한 문인

 

3. 이해와 감상

자기 보다 훨씬 나이 어린 후진들도 보기 좋게 문명(文名)을 휘날리고 있는 판에 ‘남식’은 나이 보람도 없이 아직도 신문이나 잡지의 제일 조그만 이름들 틈에 박혀, 그나마 가물에 콩 나듯 드물게 낄 뿐, 원고료래야 어쩌다가 잡지사에서 선심과 자비심이 생길 때만 몇 원씩 만져볼 뿐이다. 정말 그는 한번 맘 나는 대로 팔다리를 쭉 펴고 살아 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바란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렇게 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오늘 아침 일찌감치 집을 나왔다. 아내가 아침부터 붉으락푸르락하고 눈매를 곱지 않게 가지기 때문에 귀찮아서 일찌감치 집을 나선 것이다. 그는 책사에 들러 책을 보기도 하다가 행길에서 오랜만에 K군을 만났다. K군과는 한때 절친하게 사귀었었다. 그러나 오늘 ‘남식’은 제 편에서 먼저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저편 길가로 지나쳐 버렸다. 아니 오늘뿐 아니라 벌써 그렇게 지나쳐 버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K를 지나친 남식은 극장 구경을 갔다. 날씨가 추운 때라, 밤에 가는 것보다 낮에 보아 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영화관으로 간 것인데 마침 공휴일인 데다가 입장료가 싸서 그런지 극장 안에는 벌써 관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얼마 뒤에 그는 누구에게 잔등이를 짓눌려 선뜻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결국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에 한 발 먼저 나와 버렸다. 극장을 나와서는 C잡지사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원고료 이십 원이 우편으로 와 있었다. 아내는 매우 만족한 얼굴이었고 남식이 자신도 놀랐다. 십 원쯤이나 왔으면 아내 보기에도 창피했을 게라고 속으로 은근히 왼새끼를 꼬고 있는 판에 아내가 만족해 하니 남모르는 곤경에서 구원받는 것 같았다. “여보, 내일 돈 찾아 가지고 H부로 갑시다.” “거긴 왜?” “거기 공급소 있지 않소. 거기가 물건값이 퍽 싸답디다 그려. 그러니 두 사람 차비 팔십 전쯤은 문제될 거 없어요.” 이튿날 아침 남식은 우편국에 가서 돈을 찾아 가지고 아내와 함께 H부로 가려고 자동차 정거장으로 나섰다. 공급소로 들어가자 남식은 아래층을 휘휘 둘러보고 바로 이층으로 올라가고, 아내는 뜬 걸음으로 아래층 구석구석을 빼지 않고 찬찬히 돌아보고 있었다. 이층을 둘러보고 한참 뒤에 남식은 아내가 어찌되었나 하며 비슬비슬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말썽이 생겨 있었다. 아내의 목소리였다. “너희한테 이런 수모를 당한 사람이 나 한 사람뿐이 아닐 게다. 또 앞으로도 그런 버르장이를 고치지 않을 거니 소장한테로 가자. 너희 같은 점원 그대로 둘 수 없다.” 아내가 이렇게 소리 질러도 아무도 상대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돌아오는 자동차는 초만원이었다. 마침 오후 네시 퇴근 시간이 되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까 공급소에서 실랑이를 벌였던 젊은 사무원들과 마주쳤다. 얼마 뒤에 그 젊은 사무원들이 내리자 남식은 뜻하지 않게 어깨로 크게 숨을 쉬었다. “오늘 이득 봤지. 물건값이 우리에게 보다 어연간히 싸지 않어?” 남식은 자기의 목소리에 조금도 흐림이나 떨림이 없도록 십분 목을 다듬어 가며 이렇게 말하였다. 자동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아무 것도 따를 것이 없을 성싶다. 산도 뒤로 가고 집도 뒤로 가 버린다. 그리고 또 온다. 와서는 또 간다.

 

 

허준(1910~?)

 

평북 용천 출생. 중앙 고보, 일본 호세이 대학 졸업. <조선일보> 기자 역임. 1935년에 시 “모체”를, 1936년에 단편 “탁류”를 <조광(朝光)>에 발표하여 등단. 만주를 거쳐 해방 후 북한에 거주. 그는 해방기의 현실과 인간의 내면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가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야한기(夜寒記)”, “습작실에서”, “잔등(殘燈)”, “한식일기(寒食日記)”, “역사”, 그리고 작품집 “잔등(殘燈)”(을유문화사, 1946)이 있다.

 

▶ 습작실에서

 

1. 줄거리

나는 방학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고 일본에서 산장으로 스키를 타러 갔다. 시험이 끝난 예과 동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산장의 밤은 떠들썩해 졌다. 나는 밤에 가지던 혼자만의 조용하고도 은근한 즐거움이 다 없어지지나 않을까 하고 혼자 근심도 했으나, 가루따를 치고 사치기를 하고 한데 어울려서 오께사를 추는 동안에 그들의 한 부분이 되고 한 분자가 되어 자연 속에서 생활을 구가하는 것에 안심하였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그 해도 저물어 그믐날이 되는 날 밤이었다. 이 날은 이상하게도 아침부터 없던 눈이 내려서 동료들은 거의 산장에 남아 있고 모리씨(氏)도 전날 삔 발이 낫지 않아 집에 떨어져 있는 날이었는데, 나는 아침에 나와서 어슬어슬한 초혼(初昏)이 지날 때까지 혼자 겔렌데에 남아 있었다. 나는 설날 떠나는 것도 일이 아니어서 설을 산장에서 쇠기로 하고 하루를 더 묵은 후 이튿날 아침 온천을 떠났다. 나는 동경으로 들어가는 기차 본선 속에서 내가 묵는 집주인의 둘째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정초인지라 동경으로 들어가는 찻간은 빈 편이어서 처음은 마주 앉아도 알 리가 없었으나 내가 먼저 의심이 나서 그 신사의 성씨를 물어 그가 집주인의 둘째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젊은 신사로부터 그의 아버지가 임종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나는 산장으로 떠날 때 본 집주인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걸 좀 보아주십시오. 이것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 준 파출부에게서 부쳐 온 아버지의 유서입니다. 내 형도 임종은 지키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가 내 무릎 위에다 꺼내 놓은 편지를 나는 사양 않고 손에 들었다. <나는 꼭 내가 살던 모양으로 자연스럽게 죽기를 결심하였다. 이것은 아무 교훈거리도 아니요, 내 자연에 어그러지는 억지도 아니라서 아버지가 너희들을 불러모으지 않은 것이니 사람의 이 세상 인연이 그처럼 쓸쓸한 것이란 생각을 먹지 않기를 바란다. ……… 내 생은 결단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서양의 어떤 종교가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길로 자기의 손으로 지어 둔 관곽(棺槨)에 한 번씩 들어가 누웠다가 나와서 그 날 하루씩을 살아간다고 하거늘 세속적으로 보더라도 내 죽음은 그만큼 다행하였다 할 것이다.> “내가 스키 떠난 것도 잘못이었습니다.” “내가 방학마다 집에 아니 간 것도 잘못이었습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제주도 인민군 봉기, 4․3 사태

◎ 주제 : 비극적인 전쟁 상황 속에서의 인간미

 

3. 등장 인물

◎ 고두령 : 인민군 반도(叛徒)의 대장

 

4. 이해와 감상

허준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세계는 허무주의적 색채가 농도 짙게 깔려 있다. 그것은 그의 등단 작품인 “탁류”가 허무 의식이 깔린 자의식의 세계를 보여 주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그 후 <조선일보>에 발표된 “야한기”와 <문장>에 발표되기 시작한 “습작실에서”의 연작 형태 소설에서도 허무 의식과 고독감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허무 의식과 고독감에 젖어 있는 그의 자의식의 세계는 해방 후의 감격적 현실에 휩쓸리지 않고 당대 현실의 일상적인 국면과 삶의 의미에 대한 심도 있는 탐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습작실에서”는 ‘북지 어느 산골 병원에 계신 T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된 소품이다. 편지 형식이라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T형을 상대로 하는, 자기 고백적 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다. 따라서, “습작실에서”는 노인의 고독과 자살,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인 외로움 등이 농도 짙게 그려져 있는 작품으로 ‘허무와 나 혼자라고 하는 고독의 의식’을 통하여 인간 내면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 잔등(殘燈)

 

1. 줄거리

해방 후, 광복의 열기에 착잡함, 그리고 무질서가 뒤얽힌 시대. 친구인 ‘방(方)’과 장춘(長春)에서 청진까지 오던 ‘나’는 열차를 놓친다. ‘방’과 헤어진 뒤 화물차를 얻어 타고 청진까지 못 미친 수성까지 온다. ‘나’는 제방을 따라 내려가다가 삼지창을 들고 뱀장어를 잡는 한 소년을 발견한다. 이 소년은 뱀장어를 잡아서 일본인에게 파는데, 사실은 숨어 있는 돈 많은 일본인을 알아내어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일이 본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에 열성적으로 앞장서고 있는 모습을 ‘나’는 망연히 바라만 본다. ‘방’을 만나려고 청진 역으로 왔을 때 국밥 장사를 하는 어떤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갓 서른에 남편을 여의었고 독립 운동 하던 아들마저 일경에 잃은 사람이다. 그런 불행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난민들에게 너그러울뿐더러, 일본인에게까지 원한과 저주를 넘어 관대하고 동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인간 희망의 넓고 아름다운 시야’를 발견한다. ‘나’와 ‘방’은 다시 군용 열차로 청진을 떠난다. ‘나’의 머릿속에는 국밥집 할머니의 잔등(殘燈), 뱀장어를 잡던 소년의 잔등이 흐린 불빛으로 새겨진다. ‘나’는 해방된 조국에서 이국 병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남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배경 : 시간(해방 무렵) / 공간(함경북도의 청진)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친구인 ‘방’과 함께 장춘에서 청진으로 향함.

전개 - 열차를 놓쳐 ‘방’과 헤어짐.

위기 - 수성강 둑에서 뱀장어를 잡는 소년을 만남.

절정 - 청진 역에서 국밥을 장사하는 할머니를 만남.

결말 - ‘방’과 함께 다시 군용 열차로 청진을 떠나 서울로 향함.

◎ 의의 : 해방을 맞이하는 태도에 대한 새로운 조명

◎ 제재 : 해방 직후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일본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 주제 : 식민지 시대의 분노와 복수심. 해방의 감격과 무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 정신의 모색

◎ 출전 : <대조(大潮)>(1946)

 

3.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후, 만주의 장춘에서 함경도 회령, 청진을 거쳐 서울로 오기까지 ‘나’와 친구 ‘방’이 겪은 체험담으로, 해방을 맞이한 한국인의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그려진 중편 소설이다. 처음에 ‘장춘서 회령까지 스무하루를 두고 온 여정이었다.’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인 ‘나’의 귀로에는 광복의 감격도, 고통스러웠던 식민지 체험에 대한 푸념도, 새로운 각오나 희망도 끼어 들지 않는다.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뜻밖의 광복을 맞이하여 거의 무감각하게 무개 화차에 올라탔고 피난민 대열에 휩싸인다. 여기서 귀환 동포 대열을 ‘나’가 ‘피난민’이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이는 주목되는 사항이다. ‘나’는 광복을 맞이한 우리 동포들이 패망한 일본을 어떠한 태도를 바라보고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되는데, 청진에서 만난 두 사람이 그 반응의 실상을 보여 주는 극단적인 예가 된다. 하나는, 광복 이후의 시대를 걸머지고 나아갈 소년으로, 일본인들의 거동을 샅샅이 위원회에 고발하여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서 벌떡 일어설지도 모른다.’면서 일본인에 대한 철저한 증오심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다른 하나는, 청진 역 근처에서 국밥을 팔고 있는 노파인데, 이 노파는 일제에 의해 아들을 잃어버렸으나, 아들과 함께 일본 통치의 비리를 폭로하다가 죽은 일본인을 생각하면서, 패망한 일본인들의 거지 행색에 오히려 동정과 연민의 눈물을 흘린다. 이 두 사람을 통하여 ‘나’는 광복의 격앙된 흥분 상태와 균형을 잃어버린 증오심을 확인하기도 하고, 패자에게 보내는 동정과 그 밑바닥의 더 큰 비애를 맛보기도 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나’가 회령에서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나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청진을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청진을 떠나면서 그 할머니의 영상을 황량한 폐허 위에 퍼덕이는 ‘한 점 먼 불 그늘’, 곧 ‘잔등(殘燈)’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의 불빛이 아니라 지향적인 가치의 불꽃인지도 모른다. ‘나’는 흥분과 비애를 동시에 바라보는 제삼자의 정신, 좀더 냉정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는 패망한 일본을 심정적으로만 인식했던 당시의 흥분과 비애를 객관적으로 응시하고자 했던 작가의 정신이 숨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왜 너의 문학엔 8․15의 희열이 없느냐’고 덤비던 사이비 진보주의, 특히 안회남(安懷南) 등의 문학 동맹 계열과 작가 허준(許俊)은 대립되는 셈이다.

 

 

현기영(1941~)

 

제주 출생. 서울대 사범대 불어과 졸업. 1975년 단편 “아버지”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함. 그는 제주도라는 향토적 세계를 중심으로 민족의 수난기에 처한 역사적 삶의 내부를 치밀하게 탐색하는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꽃샘바람”, “순이 삼촌”, “해룡(海龍) 이야기”, “변방에 우짖는 새”, “난민 일기”, “귀환선” 등이 있다.

 

 

▶ 변방에 우짖는 새

 

1. 줄거리

이 작품은 전체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서장(序章)으로서 제주 백성들의 수난사를 그려내면서 제주도에 대한 ‘유배 문화’라는 통념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제2장과 제3장에는 제주 민란의 증인, 운양 일행의 유배 장면이 다루어져 있다. 제4, 5, 6, 7장에서는 1898년에 발생한 방성칠의 난이 기술되어 있고 제8장은 방성칠의 난의 후일담이다. 제9장에서 제16장까지는 이 작품의 중심 내용인 이재수의 난이 다루어져 있고, 제17장은 그 후일담에 속한다. 제9장에서 제16장까지 다루어진 이재수의 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재수의 난이 폭발할 즈음의 제주 사정은 방성칠의 난 때보다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방성칠의 난을 온건하게 수습했던 제주 목사 박용원이 경질되고 전형적인 탐관 이상규가 새로 부임하면서 설상가상으로 왕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용익(李容翊)의 심복 강봉헌이 봉세관(封稅官)으로 와서는 제주 전지역을 토색질하였다. 또, 여기에다 프랑스 신부가 들어와 프랑스의 배경을 믿고서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광분했다. 방성칠의 난 때의 배신자 최 선달이 이번에는 프랑스 신부의 참모가 되더니, 봉세관과 결탁하여 봉세관의 마름으로 천주교인들을 고용했다. 이제 제주 민중은 봉세관과 프랑스 신부로 대표되는 국내외적 모순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시달리게 되니, 민란은 그 도화선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이재수의 난은 이재수의 등장을 전후하여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바로 유생 및 토호가 주도하는 시기요, 둘째 단계는 노비 출신의 곰보 혁명가 이재수가 주도하는 시기다. 첫 단계의 민란은 유생 및 토호의 천주교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되었다. 발단은 1890년 겨울, 정의 고을의 전 훈장(前訓長) 현유순과 전 장의(前掌議) 오신락이 반(反)기독교 격문을 내건 사건이었다. 정의 향교의 핵심 인물이었던 현유순과 오신락, 특히 현유순은 당시 정의 군수 김희주와 사돈 간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천주교 반격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천주교 측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배경을 등에 업고 이미 황실도 능멸하는 터에 제주 유생의 반격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천주교 교인들은 말꼬리에 두 유생을 매달아 잡아갔고 마침내 오신락은 죽는다. 그러나 아무도 천주교 측을 건드리지 못한다. 이에 위기를 느낀 유생 및 토호는 대정 군수 채구석의 은밀한 후원 아래, 좌수 오대현(吳大鉉), 별감 강우백(姜偶伯), 장의 마찬삼(馬贊三) 등을 중심으로 상무사(商務社)를 조직한다. 상무사가 방성칠의 난 때 활약했던 남학당의 잔당까지 규합하여 조직이 커지자, 이번에는 천주교 측이 상무사를 공격했다. 드디어 상무사는 좌수 오대현을 장두로 하여 봉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봉기는 세폐(稅弊), 즉 경제적 착취에 항의하는 민란의 차원을 결코 넘어서지 않으려고 하였다. 교폐(敎弊), 즉 반제(反帝)보다 세폐를 앞세움으로써 스스로 봉기의 성격을 제한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측은 협상하는 척하며 민란 지도부를 생포함으로써 민당(民黨)은 추풍낙엽처럼 일패도지(一敗塗地)한다. 이제 민중 속에서 직접 지도자가 나와야 할 단계에 이르른 것이다. 그래서 이재수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강우백이 동진(東陳)을 맡고 이재수가 서진(西陳)을 맡아 조직을 재정비한 민당은 이제 세폐가 아니라 교폐를 전면에 내세우고 다음과 같은 격문을 붙였다.

 

“격(檄)!

오호라! 오늘날 탐라 백성이 업을 잃고 도로와 산골에 방황하야 생계의 도를 자유치 못하니, 그 민폐의 근원은 무엇이뇨! 이는 곧 살생과 폭행과 재물 늑탈을 일삼는 교도 무리로 말미암은 것이니, 저들은 교도가 아니라 폭도요, 저들이 믿는 것은 교가 아니라 미신이로다. 모여라! 모여라! 영웅 열사여! 이제 주도권은 민당에 들어오고 천주교 측은 성안에 웅크려 떨고 있을 뿐이었다. 성밖에 웅거한 민당과 성안에서 수비하는 교당의 싸움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성 안 민중의 개문(開門) 투쟁이다. 특히 여성의 역할이 주목된다. 즉, 돼지들이 총소리에 놀라 제물에 죽거나 도망쳐 버려 파산한 돼지 장수 아낙네들, 신부를 철천지원수로 삼는 무녀(巫女)들, 그 외에도 만성월 만성춘 상절 모제비 같은 퇴기(退妓)들과 같은 여인들이 개문 투쟁에 앞장을 선 것이다. 관노(官奴) 출신 이재수가 “배비장전”에 나오는 ‘방자’의 후예라면, 이 여인들은 바로 ‘애랑’의 후예가 될 터이다. 그리고 여기에 가세하여 절도죄로 징역 살고 나온 김남학이 남자 장두로 나섰다.”

 

이재수가 지도자가 되자 이 같이 평민뿐 아니라 천민까지도 전열(戰列)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이 흥미로운 인물들이 다만 삽화로밖에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소설 구성상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성문이 열리고 민당이 입성하여 승리의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입성 후 유생과 토호가 지도하는 동진(東陳)과 민중이 지도하는 서진(西陳) 사이에 그 동안 잠재해 있던 갈등이 표면적 대립 양상으로 나타나 민당이 분열되고, 프랑스 군함의 무력 시위가 벌어지고, 관군이 도착함으로써 1901년 음력 4월 25일, 세 장두가 체포된다. 이렇게 하여 20세기 벽두를 장식했던 반제(反帝) 투쟁은 한 달여 만에 종식된다<최원식, 작품해설 참조>.

 

2. 이해와 감상

“변방에 우짖는 새”는 1981년 <마당>지에 연재된 장편 소설로 1983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간했다. 1987년에는 희곡으로 각색되어 극단 <연우 무대>에서 상연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조선 왕조 말기에 제주도에서 3년 간격으로 발생했던 방성칠의 난과 이재수의 난을 다룬 역사 소설이다. 이른바 남학당(南學黨)이 주축이 된 방성칠의 난은, 거납 운동으로 시작되어 자칫 반란으로 발전할 뻔하다가 좌절된, 비교적 성격이 단순한 민란(民亂)이었는데 비해서 이재수의 난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뒤얽혀 있다.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 작가 현기영은, 거납 운동으로 시작된 이 민란에서 어째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희생당해야 했는가? 관(官)에 의한 천주교 박해가 막을 내린 지 어언 이십여 년이 지난 시점에 어째서 관(官)이 아닌 민(民)에 의해서 그러한 불상사가 저질러졌는가? 그것이 과연 천주교 측이 주장하듯이 ‘박해(迫害)’인가, 아니면 마을 촌로들이 말하듯이 ‘의거(義擧)’인가 하는 관점으로, 두 민란의 진정한 성격을 규명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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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1912~)

 

서울 출생. 제일 고보 중퇴. 1938년 <조선일보>에 소설 “남생이”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해방 후 <조선 문학가 동맹> 출판부장 역임. 한국 전쟁 중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그려내는 데 있어서 사실적인 방법을 추구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폭을 넓히는 데 공헌했다.

 

▶ 경칩(驚蟄)

 

1. 줄거리

가진 재산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인 노마 아버지가 병이 들어 몸져눕게 되었다. 그래서 노마네가 소작 부치던 땅을 자신이 소작하여 농사를 짓겠다는 욕심에 가장 가깝게 지내던 노마 아버지의 친구 흥서는 서서히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다. 경칩이 가까워오자 노마네가 부치던 아홉 마지기 땅을 노리는 이웃 사람 경춘이는 서둘러 거름을 져다가 노마네 논에다 뿌리면서 은근히 지주로부터 소작권을 얻기를 기대한다. 그것을 안 흥서가 경춘이에게 호통을 치고 나무라지만 그 다음날 흥서 역시 노마네 논에다 거름을 뿌린다. 그러면서도 몸져누워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친구를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며 자위한다. 그 후, 노마네의 소작권에 욕심이 생긴 흥서 아내가 지주 댁으로 찾아가더니 결국에는 흥서가 노마네의 땅을 부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인 노마 아버지의 유일한 생계 수단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으로 흥서는 ‘골수에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낀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근대화되면서 자본주의 논리에 지배되는 현실

◎ 주제 : 소작권을 둘러싼 부조리한 농촌 현실과 인간성 상실

 

3. 등장 인물

◎ 흥서 : 주인공. 자본의 논리에 빠져 친구를 버리는 인물

◎ 노마 아버지 : 병들어 소작권을 잃게 된 농민

 

4. 이해와 감상

현덕의 처녀작으로 “남생이”가 있긴 하지만, 소설적 구성으로 보면 이 “경칩”이 “남생이”의 앞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인간이 도덕이나 의리보다는 생존의 본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동물의 논리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지극히 비관적인 작가의 전망을 담고 있다. 이런 비관적 전망은 “남생이”에 오면 더욱 발전적 형태로 나타난다. 노마네 집은 가난에 허덕이고 노마의 어머니는 정부(情夫)를 얻어 남편에게 빨리 죽으라고 윽박지른다. 남생이를 매개로 하는 이 작품은, 약육강식의 논리 위에 윤리적 빛깔을 윤색하여 비극적 삶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노마 아버지가 병마로부터 노동력을 빼앗기고 이어서 아내마저 잃게 된 절망적 한계 상황에서 적극적인 자기 각성이 없었다는 점은 서사적 비극의 요건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지닌 이 작가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되었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현진건(1900~1943)

 

소설가. 호는 빙허(憑虛). 대구 출생. 중국 호강대학 수학. 1920년 단편 “희생자”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 이듬해 발표한 “빈처”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이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타락자”, “운수 좋은 날”, “불”,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의 역작을 계속 발표해 김동인과 더불어 우리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한 그는 사실주의의 기틀을 확립했으며 서사적 자아인 '나'란 일인칭의 자기 고백적 형식과 반어적 대립 구조를 즐겨 다루었다. <시대일보>, <매일신보>,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였고, 1935년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1년 간 복역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술 권하는 사회”, “할머니의 죽음”, “적도”, “빈처”, “유린”, “무영탑” 등이 있다.

 

▶ 고향(故鄕)

 

1. 줄거리

‘나’는 서울행 기차간에서 기이한 얼굴의 ‘그’와 자리를 이웃해서 앉게 된다. 이 좌석에는 각기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다.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짜르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마지못해 고개를 까딱거리는 일본인과 ‘기름진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띠운’ 중국인 사이에 한국인 ‘그’와 ‘나’가 합석하고 있다. 즉, 세 나라 사람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라는 사나이에 대하여 ‘나’는 처음에 남다른 흥미를 느끼고 바라보다가 이내 싫증을 느껴 애써 그를 외면하려 하였지만, 그의 딱한 신세 타령을 듣게 되자 차차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술까지 함께 마시게 되고, ‘나’는 ‘그’의 얼굴에서 ‘조선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는 정처 없이 유랑하는 실향민이었으며 ‘나’는 ‘그’의 유랑의 동기와 내력을 듣는다.대구 근교의 평화로운 농촌의 농민이었던 ‘그’는 동양 척식 주식 회사에 의하여 농토를 빼앗겼다. 떠돌이가 되어 간도(間島)로 떠났으나 거기서 부모는 굶어 죽고, 구주 탄광을 거쳐 다시 폐허의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나 무덤과 해골을 연상하게 하는 고향에서 ‘그’는 이십 원에 유곽(遊廓)에 팔려 갔다가 질병과 부채(負債)만을 안고 돌아온 옛 연인과 해후했다. 그는 괴로운 심정으로 일자리를 찾아 지금 경성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어릴 때 부르던 아픔의 노래를 읊조린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 묘지로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 공간(서울행 열차 안)

◎ 경향 : 사실주의

◎ 문체 : 객관적, 사실적 문체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표현 : 작중 화자의 이야기 속에 주인공 ‘그’의 이야기가 내부 서사를 이루고 있다.

◎ 구성 : 액자 구성

발단 - 서울행 기차 안에서 보게 된 ‘그’의 기이한 차림새와 일본인, 중국인의 모습

전개 - ‘나’와 ‘그’의 대화. ‘그’의 사람됨과 대강의 사정

위기 - 농토를 잃고 고향을 떠나 파란 많던 유랑 생활을 하던 ‘그’의 과거 이야기

절정 - 옛 연인과의 불행한 해후(邂逅) 이야기

결말 - 술에 취하여 부르는 노래

◎ 주제 : 일제 수탈로 인한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 일제 시대 우리 농민(민중)의 참혹한 생활상의 폭로와 일제에의 저항

◎ 출전 : <조선일보>(1926). “그의 얼굴”로 발표했으나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서 “고향”으로 제목을 고침.

 

3. 등장 인물

◎ 나 : ‘그’와 우연히 한 열차 안에 동승하여 ‘그’를 관찰하고,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 당대 지식인으로 초반에는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드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의 현실을 재인식하면서 ‘그’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 그 : 당대의 우리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집약적으로 드러내주는 인물로서, 현실에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과 저항성을 미약하게나마 드러낸다. 동적 인물이다.

◎ 그녀 : 농촌의 황폐화로 20원에 유곽에 팔려 간 여성으로서, 당대의 한국 여성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명징하게 드러내 준다. 정적 인물이다.

 

 

4. 이해와 감상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의 한국 사회. 특히 일제의 수탈로 황폐해진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그’의 말씨, 표정, 의복, 사연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망국민의 모습과 시대 사회의 배경을 역력히 보여 준다. 이 작품은 특별한 흥미를 주는 극적인 사건이나 특징적 인물도 등장하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의 한국 농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현진건은 ‘그’라는 인물을 통해 농촌의 황폐화된 모습과 수탈 당하는 농민의 생활상을 고발하고 있으며, ‘그’의 옛 애인을 통해서는 식민지 여성의 수난상을 보여 주면서 일제의 식민 정책에 강한 저항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다만, ‘그’에 대해 ‘나’가 지니는 동정적 태도가 너무 지나치게 영탄적 문체로 제시된 점은 서술의 미숙성과 함께 당대 사회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데 한 한계로 작용한다. 주관적 감정이 개입된 해설체의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실 이 작품에는 흥미를 자아내는 극적인 사건이나 특징적인 개성을 보여 주는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만큼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의 비참한 생활상을 집약적으로, 극명하게, 또 효과적으로 제시한 소설도 드물다. 이 소설은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현실성뿐 아니라 소설의 기법상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즉 상징법과 구체적인 외양 묘사, 어조의 변화 등에 의한 점차적인 성격 표출, 대화의 사용에 의한 효과적인 사건 서술, 노래의 제시를 통한 주제의 집중적인 표현, 사실적인 언어 구사 등의 능란한 기법으로 광범위한 제재를 단편의 형식 안에 수용, 형상화하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삼엄한 검열망을 뚫고 대일(對日) 저항기에 우리 민족의 비참상을 이 정도까지 실감나게 그려 준 현진건의 작가 정신이 경이롭다.

 

▶ 무영탑

 

1. 줄거리

신라 경덕왕 때 초파일 밤, 다보탑을 2년 만에 완성하고 이제 석가탑을 세우고 있는 불국사에, 왕은 비곡식 행차를 하였다. 일행은 다보탑의 정교한 솜씨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특히 일행에 끼어 온 이손의 딸 구슬아기는 극도의 감격을 느꼈다. 왕 앞에 나온 석공 아사들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는 백제 사람, 고향에는 결혼한 지 불과 1년 만에 헤어져 벌써 3년이 지난 아사녀가 있었다. 아사녀는 추근거리는 아사달의 연적이었던 팽개를 피해 서라벌에 왔으나, 남편을 만날 수는 없고 석가탑이 완성되면 영지에 비칠 것이라는 말만 믿고, 영지 가에서 날을 보내다 몸을 지켜 못에 빠져 죽었다. 탑은 완성되고, 아내의 참변을 들은 아사달은 영지로 뛰어가 울었다. 구슬아기는 뒤따라와 함께 달아나기를 애원하다 국법을 어긴 죄로 죽임을 당했다. 아사달은 영지 가에 있는 바위에 아내와 구슬아기의 영상을 합하여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한 뒤 그도 영지에 빠져 죽는다.

 

2. 이해와 감상

장편 역사 소설. 1939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이 무영탑의 내용은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일명 무영탑)에 얽혀 있고 석수장이 아사달과 그 아내인 아사녀의 애달픈 설화를 다룬 것이다. 가히 신라 예술의 정화라고 할 석가탑을 이룩하는 한 예술가의 예술에 대한 집념과 이성간에 얽힌 사랑을 다루었다. 흔히 역사 소설이 한 왕조의 몰락이나 귀족의 영쇠귀몰을 다룸에 비해서 하층계급인 장인으로서의 석수에게 숨은 인간미와 예술 정신, 불교 사상을 그렸다는 점이 그의 역사 소설관의 특유성이다. 무영탑에 있어서, 인물 설정과 그 형상화 과정과 시대와의 관계는 낭만주의적 감각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첫째 신라 통일기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경덕왕 때의 이야기에서, 빙허는 예리하게도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허점을 제기하여 문제삼고 있다. 즉 견당 유학생 ‘금성’과 그의 아버지 ‘금시중’의 철저한 사대 사상과 부패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표적인 인물은 김양상의 아우 ‘경신’들로서, 사대 근성과 부패상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들과는 동떨어진 계층의 융화와 갈등을 예시한다. 춘원의 안목에 의하면, 계층적으로 보아 반드시 상류 귀족이나 장상급의 인물만이 역사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데 반하여, 빙허는 보잘 것 없는 석공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런 기본적인 관념의 이질성이 두 작가 사이에서 발견된다. 인물 설정에 대한 두 작가의 태도의 차는 실상은 단순한 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가 의식의 근본적인 이질성이라고 생각된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의 건조자가 실제로 아사달인지 아닌지는 사실에서 구체적으로 실증할 수는 없으나, 소위 신라 전성기가 내포하고 있는 퇴락적 배태를 전반적인 투시에서 문제삼기 위하여 빙허는 석공을 채택했다. 신라 문화의 가장 훌륭한 것 중의 하나가 건축 예술이다. 그 시대를 지배한 것은 귀족이나 왕후 장상이지만 신라 예술의 담당자는 보잘 것 없는 석공이었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 현상인가. 빙허는 누구보다도 강하게 깨닫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사달을 통하여 나타났다. 귀족 사회의 주제는 권력 쟁탈이었지만, 평민들의 주제는 혹독한 수탈과 착취와 노예적 학대를 받으면서도 전통적인 문화 창조의 역할을 담당했고, 생명을 바치고 국토를 수호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명예스런 직위도 직전도 훈장도 주어지지 않았다. 민족적인 거창한 사업을 이룬 점에서 김춘추는 크게 추앙됨이 당연하나, 그에 의한 삼국통일에 대한 위축적이고 다소간의 소국주의적 국가 의식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반성할 점이 없지 않다. 그의 사당적(당나라를 섬기는) 가치관은 신라를 교육, 관제, 토지 제도에 있어서 당풍으로 바꾸었지만, 그 목적은 왕족과 극히 한정된 귀족들의 경제적 안정과 권력 유지의 수단에 있었다.

이것이 표면적으로는 통일기의 신라의 전성기지만 내적으로는 극단적인 귀족 계층의 무한정한 소비 생활에 따르는 부패와 퇴락적 경향이 이미 내포된 것이었다.

 

▶ 불

 

1. 줄거리

열 다섯의 순이는 밤에 남편과의 관계를 너무도 힘들어한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남편과 자신이 자는 방이라는 생각에 남편과 함께 자는 방을 ‘원수의 방’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날 새벽에 쇠죽을 끓이고 아침밥을 지을 물을 길러 가서 물 속의 고기를 잡게 되고 그것을 죽이게 되자 처음에 느꼈던 재미는 사라지고 죽였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게 된다. 아침을 치르고 난 후 허리가 부러지게 보리를 찧고 점심을 해 모심는 일꾼에게 가져가다 죽인 송사리가 큰 몸뚱이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실신하게 된다. 깨어 보니 ‘원수의 방’이라 누워 있기 싫어 아픈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자 시어머니는 사발을 깬 며느리가 밉지만 들어가 쉬라고 속에 없는 말을 하지만 ‘원수의 방’이 싫어 거부하자 결국 속마음을 드러내며 며느리를 때린다. 맞으면서도 순이는 도리어 쾌감을 느끼고 버티게 되자 제 풀에 지친 시어머니는 들어가서 저녁을 지으라고 한다. 부엌에 들어가 밥을 안치자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지긋지긋한 밤에 대한 공포심으로 울고 있을 때 남편이 들어와 울지 말라며 눈물을 씻어 준다. 순이는 그 ‘원수의 방’만 없으면 남편이 눈물을 씻어 주며 달래 주고, 고통의 밤을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중에 솥뚜껑을 열려다 성냥을 발견하고 밤에 불을 놓는다. 집이 불에 타는 것을 보고 순이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모로 뛰고 세로 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농사일이 한창 바쁜 유월) / 공간(어느 농촌)

◎ 성격 : 사실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시집 온 지 한 달 남짓한 동안의 고통과 괴로움.

전개 - 바삐 돌아가는 하루의 일과. 밤이 오는 것을 두려워함.

위기 - 일꾼에게 밥을 나르다 현기증으로 쓰러짐. 시어머니에게 매를 맞음.

절정․결말 - ‘원수의 방’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지름. 근래 없이 환한 얼굴로 기뻐함.

◎ 주제 : 열다섯 살 어린 민며느리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학대에 대한 비판

◎ 출전 : <개벽>(1925)

 

3. 등장 인물

◎ 순이 : 열다섯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육체적 고통과 남편의 성적 횡포에 시달리는 여자

◎ 남편 : 부지런하며 일에만 열중하는 인물로서 인정이 없지는 않으나 순이에게는 성적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 시어머니 : 순이에게 모질게 일만 시키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작가가 이전에 다루어 온 자전적(自傳的) 소재를 청산하고 하층민의 삶에 눈을 돌린 작품 가운데 하나로, 작가의 소설 중에서는 드물게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난한 집 민며느리로 들어간 어린 소녀 ‘순이’. 힘에 겨운 농사일과 남편의 과도한 성욕(性慾), 시어머니의 몰이해(沒理解)와 학대(虐待), 이에 견디다 못한 그녀는 집에 불을 지르는 행동으로 반항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주제는 한국적 조혼(早婚) 제도의 비판과 인간 해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소극적이 아니라 불을 질러 태워 없애버린다는 점에서 적극성을 띄고 있다. 다만, 그 행위가 주인공 ‘순이’의 자각되지 않은 일시적 충동에 불과하다는 점에 아쉬움이 있다. 구성적 측면에서 본다면, 쇠죽솥에 불을 지피고 앉아 불붙는 모양을 흥미 있게 구경하는 ‘순이’의 모습을 통하여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암시를 보인 점, 샘물에서 송사리와 희롱하는 천진 난만한 모습과 그 송사리를 태질하는 가학적(加虐的) 행동의 대비를 통하여 ‘순이’의 순진함과 이상 심리를 교차시키는 대목들은 그의 뛰어난 단편 소설적 기교를 보여 준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농촌 상황보다는 민며느리 제도의 비극적 측면에 그 초점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사실적 묘사와 치밀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현실에 대한 당대적(當代的)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난과 갈등의 원인에 대한 이성적인 파악 없이 즉물적인 파괴 행위로 사태에 대응한다는 결말이 문학적 감동을 반감시키고 있는 것이다.

 

▶ B사감과 러브레터

 

1. 줄거리

C학교의 교원 겸 사감(舍監)인 B여사는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로 ‘딱장대’(온화한 맛이 없이 딱딱한 사람), ‘독신주의자’, ‘찰진 야소꾼’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주근깨 투성이인 데다 시들고 마르고 떠서 곰팡 슨 굴비를 연상케 하는 외모를 지녔다. 그녀는 기숙생에게 온 남학생들의 러브레터를 가장 싫어한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배달되는 러브레터를 대할 때마다 그녀는 성을 내고 편지 받을 학생을 불러 발신인을 밝히려 애를 쓴다. 그녀의 문초는 하학(下學) 후에 이루어지며 대개 두 시간 이상 계속된다. 그녀는 사내란 믿지 못할 마귀이며 연애가 자유라는 것도 마귀의 소리라고 억지를 늘어놓기 일쑤이다. 그녀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것은 남자들이 기숙사로 여학생들을 면회하러 오는 것이다. 가족을 포함하여 남자들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자 학생들은 동맹 휴학을 하고 교장이 나서서 그녀를 타일렀으나 그 버릇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금년 가을 들어서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밤이 깊어 학생들이 곤히 잠든 새벽 한 시경, 난데없이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가 새어 흐른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계속 이런 일이 있자, 한 방을 쓰는 세 학생이 소리를 따라 갔다가 사감실에서 뜻밖의 광경을 보고 놀란다. 그것은 그렇게 엄격하던 B사감이 학생에게 온 러브레터를 품에 안고 남녀가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20년대) / 공간(어느 여학교)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 설명적 묘사체

◎ 구성

발단 - B사감의 외양 묘사를 통해 성격 제시

전개 - 러브레터에 대한 B사감의 반감(反感)과 괴벽(怪癖)을 구체적으로 제시

위기 - 새벽의 난데없는 웃음과 속삭이는 말에 학생들이 잠을 깨고 소리나는 방을 찾음.

절정․결말 - 소리의 출처는 B사감 방인 것을 앎. B사감의 본성이 드러남.

◎ 주제 : 위선적인 인간성 풍자. 인간의 이율 배반적 심리

◎ 출전 : <조선문단>(1925)

 

3. 등장 인물

◎ B사감 : 사십에 가까운 못생긴 노처녀로 성질이 엄격하고 괴팍하다. 겉으로는 본능을 감추고 남자를 혐오하고 기피하는 독신주의자처럼 보이나 내면적으로는 이성을 갈구하는 성적(性的)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그 본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이중적인 면 때문에 풍자의 대상이 됨.

◎ 세 처녀들 : B사감의 본성을 발견하고 B사감을 정신병자로 생각하기도 하고 동정심도 보이는 기숙사 생도들

 

4. 이해와 감상

모파상의 “진주 목걸이”나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종말 강조, 경악 강조(驚愕强調)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결말에 이르러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어 독자의 흥미를 고조시키고 있다.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체를 사용하여 주인공인 B사감의 이중성을 조소하고 그 정체를 폭로시키는 데 알맞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본능과 권위 의식이라는 대립 구조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애정의 본능을 감추고 있던 B사감도 끝내 그것을 감추지 못하고 기숙사생들이 모두 잠든 뒤 이상한 행동을 혼자 연출하다가 학생들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녀는 자신의 열등 의식을 감추기 위하여 기숙사생들에게 엄격히 대하면서 기숙사를 찾아오는 남학생이나 가족들에게 박절하게 대한다. 그녀는 마치 남성 혐오자인 듯이 행동하지만 사실 그녀는 남자를 그리워하는 못생긴 노처녀에 불과하다. 이 소설은 기숙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이중적 심리 상태를 사실감 있게 형상화한 수작(秀作)이다.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체를 사용하여 B사감의 이중성을 조소하고 그 정체를 폭로하는 데 알맞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풍자나 희극에 머물지 않고 B사감이라는 위선적 인간형을 해부함으로써,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그 위선이 결국에는 비애로 끝나고 만다는 아이러니까지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현진건의 작품 대다수가 사회 내의 모순과 사회 구조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고발인데 비하여, 이 작품은 ‘인간성의 탐구’를 목적으로 삼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소설이 B사감에 대한 부정적 측면만을 제시하지는 않았다는 데 소설적 묘미가 있다. 작품 결말부에서 한 처녀는 그녀의 기괴한 행동을 동정하고 이해한다. 억눌린 본성에 대한 인간적 아픔이랄까, 비정상적 인물의 풍자 뒤에 다가오는 일말의 연민의 감정도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 빈처(貧妻)

 

1. 줄거리

‘나’는 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전당포에 잡힐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처량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한성 은행에 다니는 T가 찾아와 제 처(妻)에게 줄 양산을 샀노라고 자랑한다. 그것을 본 아내는 매우 부러워하는 눈치였고 그러한 아내의 모습에 ‘나’는 불쾌한 생각이 든다. ‘나’는 6년 전 결혼하여 중국과 일본에서 공부를 하였으나 변변치 못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 사이 곱던 아내의 얼굴에는 주름이 나타나고 세간과 옷가지는 전당포에 잡혀 있었다.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밖에 모르는 ‘나’의 생활이었다. 처가에서 장인의 생일이라고 할멈이 데리러 왔다. 그런데 막상 입고 갈 옷이 없다. 비단옷 대신 당목 옷을 입고 나서는 아내를 보고 ‘나’의 마음은 쓸쓸했다. 장인 집에 모인 처형과 아내의 모습을 보니 너무 대조적이었다. 부유한 모습의 처형과 초라한 아내. 처형은 인천에서 기미(期米 - 쌀 투기)를 하여 돈을 잘 버는 남편을 만나 비단옷을 입고 부유하게 보였다. 모두가 나를 얕잡아 보는 것 같았다. 쓸쓸하고 괴로운 생각을 잊으려 술을 마셨다. 그때 처형의 눈 위에 시퍼런 멍이 든 게 보였다. 그 날 ‘나’는 술을 여러 잔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처형의 멍든 눈자위 이야기를 하며, 없더라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란 아내의 말에 ‘나’는 흡족해 한다. 처형이 사다 준 신을 신어 보며 좋아하는 아내, 물질에 대한 욕구를 참고 사는 아내에게 ‘나’는 진정으로 고마움과 사랑을 표시한다. 이에, 아내의 눈과 ‘나’의 눈에 눈물이 넘쳐흐른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신변 소설

◎ 배경 : 시간(개화기 초) / 공간(서울 종로)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성격 : 자전적, 고백적

◎ 표현 : 자전적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함.

◎ 구성

발단 - 넉넉하지 못한 생활 단면 소개

전개 - 아내와 나의 갈등

위기 - 가난과 부의 대조에서 생긴 아내와의 갈등

절정 - 물질보다는 정신적 행복에 만족함.

결말 - 갈등의 해소와 부부간의 진실한 사랑

◎ 주제 : 가난한 부부의 생활고와 사랑

◎ 출전 : <개벽>(1921)

 

3. 등장 인물

◎ 나 :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무명 작가. 이름이 K라고만 밝혀져 있음.

◎ 아내 : ‘나’보다 두 살 위인 18세에 시집 온 가정 주부로 전형적인 한국의 여성

◎ T : ‘나’의 친구로 은행원. 경제적 능력이 있고 현실적이며 실리적인 인물

◎ 처형 :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여인

 

4.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현진건이 1921년 1월 <개벽>에 발표하여 문명(文名)을 한국 문단에 알려준 작품이다. 제목인 “빈처(貧妻)”란 ‘가난한 아내’라는 뜻이다. 1인칭 자전적인 작품으로서 특별히 극적인 어떤 사건의 전개가 없이 소설은 담담하게 묘사되고 있다. 주요 인물은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으로 현실적으론 전당포 신세나 지는 정신 가치 지향의 무명 작가와 그의 양순하고 가난한 아내이다. 이 작품에는 큰 사건다운 사건이 없다. 사소한 일상 생활 속의 사소한 사건을 통하여 가난한 아내의 헌신적 내조의 정신과 그가 생각하는 내적 욕구를 한 껍질씩 벗겨 가며 캐내는 것이다. 이 작품의 작중 인물 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넷이다. ‘나’, ‘아내’, ‘은행원 T', 그리고 ‘처형’. 그러나 실상 이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동력은 ‘정신(적 가치 지향)’과 ‘물질(적 가치 지향)’ 사이의 갈등이다. 그리고 앞서의 네 사람은 각각 ‘정신’과 ‘물질’에 정확히 대응된다. 먼저 주인공 ‘나’는 소설가인데 출세와 물질주의라는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가난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지식인인 ‘은행원 T'의 물질적 가치 지향의 삶이 대비된다. 가난을 인정하면서 남편을 믿고 따르는 ‘아내’가 있고, 그 반대쪽에는 부유하지만 삶의 보람 없음을 늘 불만족해 하는 ‘처형’이 놓여 있다. 인간형만이 아니어서 그들의 외형도 선명히 대비적이다. 처가로 가는 도중 당목 옷에 청록 당혜로 걸어가는 작고 초라한 아내와 비단옷에 고운 신을 신은 여자들의 자태가 ‘나’를 동시에 괴롭힌다. ‘나’의 궁색한 삶에 비하여 훨씬 ‘넓고 높은 처갓집 대문’이 ‘나’를 또 주눅들게 한다. 이와 같은 인간형의 대립과 상황의 대조 속에 ‘나’는 고뇌하며 그 고뇌의 흐름에 따라 ‘아내’의 태도도 변모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물질적 가치 지향보다 정신의 그것이 우위에 있음을 암시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나’는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실적 욕망에 의해 어느 정도 동요되고 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원상을 되찾아감으로써 정신적 행복의 가치를 인식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아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물가의 폭등과 월급의 상승 및 주식의 이익과 같은 물질적 가치를 따지는 경쟁적 인물들을 그 주변에 배치시킴으로써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은연중에 반영시키고 있다. 또한 물질을 초월하여 정신적 행복만 을 추구하는 것같이 보이는 ‘아내’의 내심에는 역시 물질에 대한 강한 본능적 욕망이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참고 기다리는 것뿐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다만 예술적 의욕으로 아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던 것은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단 신 한 켤레쯤은 사다주게 되었으면….” 하고 한탄하는 것이다. 결국 고등 실업자로밖에는 머무를 수 없는 지식인의 현실 소외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자전적인 고백의 문학이다. 이 소설 역시 현진건의 작품의 특성 인 사실주의적 경향, 서사적 자아인 ‘나’란 1인칭의 자기 고백적 형식의 유형에 속한다. 묘사가 치밀하고 섬세한 사실주의적 성격의 작품이다.

 

▶ 술 권하는 사회

 

1. 줄거리

바느질을 하던 아내는 바늘에 찔려 피를 멈추려 하며 화를 낸다. 새벽 한 시가 되었는데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7, 8년 전 남편이 중학을 마치고 결혼하였고 결혼하자 곧 남편은 동경으로 가 대학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같이 있을 시간은 거의 없었다. 괴로웠어도 남편이 돌아오면 공부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도깨비 부자 방망이 같은 것이어서 무엇이든지 다 얻고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비단 옷 입고 금지환 낀 친척들도 부러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경멸하였다. 남편이 돌아 왔으나 반대로 집안 돈을 가져다 쓰며 분주히 돌아다니기만 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던지 밤새 글을 썼다. 때때로 한숨을 쉬고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찾으며 몸은 나날이 축이나 갔다. 어느 날 새벽 잠결에 눈을 떴을 때 흐느껴 우는 남편을 볼 수 있었고 두어 달 후에는 출입이 잦아 졌으나 술 냄새를 풍기며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였다. 오늘밤에도 그런 남편을 기다리다 바늘에 찔린 것이다. 별 환상을 다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남편이 문 열라는 것 같아 뛰어 나가 보았더니 아무도 없었다. 바람소리였다. 새벽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할멈이 부르는 소리에 깨어 보니 남편이 마루에 누워 있었다. 가까스로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옷을 벗기다, 벗기지 못하고 “누가 술을 권했나”하고 짜증을 내는 소리를 들은 남편과 이야기를 하게 되고 부조리한 사회가 나에게 술을 권한다는 말을 해도 배우지 못한 아내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술 먹는 것에 대한 투정을 부리게 되자 남편은 말상대가 되지 않는 아내를 뿌리치며 비틀비틀 나가 버린다. 아내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듯이, “가 버렸구먼, 가 버렸어.” 하며 밤 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하며 절망적인 어조로 말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20년대) / 공간(도심지)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바느질을 하며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전개 - 과거에 대한 회상과 초조한 심정의 아내

위기 - 만취되어 돌아온 남편

절정 - 술을 먹는 이유에 대한 남편의 변명과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아내

결말 - 집을 나가 버리는 남편

◎ 주제 : 일제 강점기의 지식 청년의 고뇌

◎ 출전 : <개벽>(1921)

 

3. 등장 인물

◎ 남편 : 중학을 마치고 동경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술 마시고 밤늦게 귀가하는 등 매우 문란하다. 일제 강점기에서의 답답하고 절망적인 한 지식인이다.

 

◎ 아내 : 남편과는 달리 학식 차이가 많이 뒤쳐져 남편으로 하여금 더욱 슬프게 한다. 남편에게 술 권하는 사람을 탓하지만 남편은 조선의 사회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아내는 이를 이해 못한다.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

 

4. 이해와 감상

일제 치하에서 이 땅의 젊은이가 절망으로 인하여 술을 벗삼게 되고 주정꾼으로 전락하는데, 그 책임을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고 토로한다. 더욱이 아내의 이해도 얻지 못한다는 데에 이 소설의 페이소스(pathos)가 있다. 본래 현진건의 데뷔작은 1920년에 발표된 “희생화(犧牲花)”였지만, 그가 작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다음해에 발표한 “빈처(貧妻)”와 바로 이 “술 권하는 사회”에서부터였다. “빈처”에서 남편인 ‘나’는 공부를 하러 중국, 일본으로 갔다가 방랑의 세월만 보낸 후 무위(無爲)하게 귀국한다.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 남편 역시 일본에서 공부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작가 현진건은 상해 호강 대학(扈江大學)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다음 이 소설들을 지었는데, 작가의 직접적 체험이 짙게 배어 있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하는 아내의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이 말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나가는 이유를 압축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며, 아내의 절망과 지적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지식인 남편은 봉건적 사고를 지닌 무지(無知)한 아내를 이해시키는 데도 실패하고 사회에도 적응해 나가지 못한다.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기는 하지만 무엇이 그 같은 부조리를 만드는 실질적 힘인지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울분을 터뜨리거나 쉽게 좌절하고 마는 인물이다. 아내는 그러한 남편의 고통을 분담하려고 가난도 참고 견디지만,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남편의 말에 ‘사회’를 ‘요리집 이름’으로 연상해 내는 무지한 여인이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아내의 무지가 남편에게 또 한 차례 술을 권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 작품에서 작가가 표현하려고 한 것은 시대 환경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고뇌이다. “빈처(貧妻)”가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그 고뇌를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가정을 중심으로 하되 사회적인 것이 원인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점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투시(透視)하려고 하는 작가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이, 작가의 신변을 다룬 초기 소설로서 일제의 탄압 하에서 많은 애국적 지성들이 어쩔 수 없이 절망하고 술을 벗삼게 되어 주정꾼으로 전락하였는데, 그 책임은 바로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고 자백하는 것처럼, 일제 강점기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절망적이었는지 한 지식 청년의 불안에서 익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뚜렷한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 운수 좋은 날

 

1. 줄거리

김 첨지는 인력거꾼이었다. 장사가 잘 안되어 며칠 동안이나 돈 구경을 옳게 못했는데, 이 날은 이상하다고 하리만큼 운수가 좋았다. 앞집 마나님을 위시해서 교원인 듯 싶은 양복장이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서는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도합 팔십 전을 벌었다.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앓아 누워 있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다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의 아내는 앓아 누운 지 오래 되었다. 거기다 약 한 첩을 못 쓰니 완치가 되기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졸라댔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비를 그냥 맞으면서 학생을 남대문 정거장까지 태워다 주고서 일 원 오십 전이란 큰돈을 받았다. 기뻤다.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했다. 오늘따라 운수가 너무 좋으니 말이다. 더구나, 아침에 나올 때 아내가 오늘은 제발 나가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머리에 떠올랐다. 정거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짐을 가진 손님을 한 사람 태워다 주었다. 기적 같은 벌이었다. 아무래도 이 기쁨이 계속되지 않을 것 같았다. 불행이 곧 덜미를 내리짚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나오는 그의 친구인 치삼이를 만났다. 그대로 끌고 들어가 곱빼기로 넉 잔을 마셨다. 눈이 개개풀렸다. 머리를 억누르는 불안을 풀어 버리기 위해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다가 금방 껄껄거리며 웃고, 그러다가는 또다시 목놓아 울기도 하며 법석을 떨었다. 김 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래야 남의 행랑방이었다. 너무 조용하다. 다만 어린애의 빈 젖 빠는 소리가 날뿐이었다. 김 첨지는 목청을 있는 대로 내어 욕을 퍼부으며 발을 들어 누운 아내의 다리를 찼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무등걸과 같다. 아내는 죽어 있었다. 이 때에 ‘빽빽.’ 하는 소리가 ‘응아.’ 하는 소리로 변하였다. 남편은 아내 머리를 흔들었다.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적시었다. 김 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아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사실주의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공간(서울)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경향 : 사실주의

◎ 특징 : 속어를 유감 없이 구사해서 현실감이 돋보임. 극적인 구성으로 생동감을 줌. 등장 인물들이 한결같이 식민지하에서 학대받는 민중이며, 그들의 처절한 현실은 일제의 압제 소산임을 대변

◎ 성격 : 사실적

◎ 문체 : 대화의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작중 인물을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제시한다. 또 대화 속에 비속한 말이나 욕설을 삽입하여 하층 노동 계급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 구성 : 작품 속의 사건들이 하나의 초점을 향해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직선적으로 연결된 단순 구성이다. 이로 인해 사건 전개 과정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결말에서의 아이러니에 의한 비극적 감동이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된다.

발단 - 인력거꾼 김 첨지는 오랜만에 행운을 만난다.

전개 - 행운이 계속되자 김 첨지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귀가를 서두른다.

위기 - 친구 치삼이와 술을 마시며 김 첨지는 아내에 대한 불안감으로 횡설수설한다.

절정 - 설렁탕을 사 들고 들어온 김 첨지는 불길한 침묵에 맞서 고함을 친다.

결말 -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하고 독백한다.

◎ 주제 : 일제 치하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상

◎ 출전 : <개벽>(1924), <현진건 단편선>(1941)

 

3. 등장 인물

◎ 김 첨지 : 가난한 인력거꾼. 비극의 주인공으로 하층민을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로 욕지거리 잘하고 몰인정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내를 걱정하는 선량한 인물이다.

◎ 아내 : 김 첨지의 아내로 설렁탕을 먹어 보았으면 하는 최소한의 욕망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 치삼이 : 김 첨지의 친구

 

4.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의 극한적 궁핍상을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병들어 누운 아내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벌이 나가는 남편을 만류하나, 생계를 위해 아내의 애원을 묵살해야만 하는 참담한 시대의 하층 노동자에게 밀어닥친 불행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다양한 문체를 구사하여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으며, 서술에 의한 상황 제시와 대화의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하층 노동 계층의 생활 감각을 현장감 있게 대화 내용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1920년대 하층 노동자의 삶을 날카로운 관찰로 생생하게 그려 놓은 현진건의 대표작이다. 일제 치하 서울 동소문 안에 사는 인력거꾼 김 첨지의 ‘운수 좋은’ 어느 하루를 담아 보이면서, 당시 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암시하고 있다. 대화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문에서도 속되고 거친 말투를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밑바닥 인생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신문화에 수용되는 과정을 학생이나 양복쟁이와 같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표현함으로써 당시 급변하는 사회상의 일면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의 표제가 된 '운수 좋은 날'은 사실 인력거꾼으로 큰 벌이를 한 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병든 아내가 죽은 비운의 날의 ‘반어적(Irony) 표현’이다. 즉, 운수 좋아 돈도 벌고 선술집에서 건주정까지 부리는 김첨지의 표면적 행동과 아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내면 심리가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는 독특한 아이러니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반어, 즉 아이러니는 겉과 실상이 반대되어 표현의 효과를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아이러니에는 말뜻의 속과 겉이 반대가 되는 '말의 아이러니'와 상황이 상반되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있다. 운수좋은 날은 ‘상황의 아이러니’이다. 현진건 문학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문학에서도 단편 소설의 한 전형으로 꼽히며, 더욱이 주인공 ‘김 첨지’에 대한 반어적 묘사는 우리 문학의 하층민 수용이라는 점에서 매우 기릴 만한 성취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직설적인 표현으로 현재의 상황을 나타낼 수 없을 때, 역설적인 표현을 가져오는데 제목에서 이미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 ‘운수 좋은 날’이란 표현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는 현실 속의 빈한(貧寒)과 불행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여 전체 작품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참고> 작품 구성상의 특징

이 작품은 무엇보다 구성의 솜씨가 뛰어나다. 작품 속의 시간은 김 첨지가 인력거를 끌고 나선 아침부터 집에 돌아오는 저녁때까지인데, 그 동안의 사건이 평면적으로만 서술되지 않고 외면적 행동과 내면의 심리, 들뜬 즐거움과 무거운 불안감 등의 반복적 교체로서 교묘하게 엮어져 있다. 그것을 알기 쉽게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은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작품이 전개되는 것이다. <손님을 태우는 장면 - 돈을 번 데서 오는 기쁨 -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 - 불안을 잊기 위한 행동>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을 지탱하는 구성의 주축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다른 날보다 손님을 많이 태워서 뜻밖의 액수를 벌게 되는 외면상 행운의 흐름이요, 다른 하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멀어지는 내면의 불안 심리라는 흐름이다. 이와 같은 긴장 관계는 점점 고조되다가 선술집 장면에서 가장 괴로운 위기에 도달한다. 김 첨지는 마음속이 극도로 불안하면서도 바삐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술을 마시며 돈을 뿌리고 횡설수설하는데, 이와 같은 행동은 아내의 상태에 대한 불안감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까지 발전한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라고 말했다가는 “죽기는 누가 죽어.”라고 손뼉을 치며 웃는 행동은 매우 암시적이다. 이 행동은 단순한 농담이나 장난이 아니라 아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예감의 표현이다. 그러한 예감이 너무나 뚜렷하고 무섭기 때문에 김 첨지는 집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고 선술집에서 울고 웃으며 정신 나간 듯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마침내 김 첨지가 집에 들어서는 부분에 와서 순간적인 공포로서 절정에 이르고, 곧바로 죽음의 확인이라는 비통한 결말에 도달한다. 모처럼 설렁탕까지 사 가지고 돌아왔건만 아내는 차디찬 주검이 되어 누워 있는 것이다. 이 결말은 뜻밖의 사실이 아니라 그 이전까지의 단계에서 불안의 점진적 발전에 의해 암시되었던 결과이다. 여기에서 ‘운수 좋은 날’이란 말은 가장 참혹하고 비통한 날에 대한 반어적(反語的) 표현으로서 그 참모습이 드러난다. 이 통렬한 반어로서 작품 전체의 긴장을 끝맺는 작가의 수법을 단순히 솜씨 있는 기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현실 속에서 하층민들이 겪고 있던 삶의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요 증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참고> 작품의 암시성

□ 상징적 배경 : 소설에 나타난 배경은 인물과 사건에 많은 영향을 준다. 압축된 구성에 의해 줄거리를 전개해 나가는 단편 소설에서는 배경 자체가 주제를 향한 상징성을 띠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전반에 깔리는 배경 즉, 하루 종일 추적대며 내리는 비는 이 소설의 주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특히, 전개 부분의 비가 오는 하늘과 어둠침침한 황혼의 배경은 장차 다가올 인물의 불행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한다. 이는 또한 아내의 죽음을 내다보는 불안한 예감과 함께 행운 뒤에는 또한 다른 불행이 잠재해 있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작품의 배경 묘사를 통해 독자는 인물의 결말을 예측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런 상황 때문에 상징적 요소로서의 배경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이런 배경의 역할은 구성이 치밀한 단편 소설에서 작품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 암시적 요소로서의 삽화 : 압축된 단편 소설의 구성미를 살리기 위해 짧은 이야기를 삽입하여 사건의 방향을 암시하고, 주제를 나타내는 기능을 갖는 것을 일종의 삽화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 김 첨지가 대화를 통해 개화기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은 바로 아내의 죽음을 암시하는 삽화가 된다.

 

<참고> 작품 기법

□ 인물 제시 : 서술자에 의한 직접적 제시로 되어 있으나 대화 속에서 인물의 특성이나 면모를 알 수 있는 간접적 제시 방법도 함께 쓰였다. 특히, 대화의 내용 - 김 첨지의 욕설이나 속어 등은 사회 빈민층의 심리를 단편적으로 보여 준다.

□ 사건 전개의 방법 : 김 첨지의 행위가 추보적으로 전개되는 사건의 중간에 들어감으로써, 사건의 정황을 보다 확실히 전달하는 부분에서 요약, 압축에 의한 기교가 나타난다. 이렇게 삽입된 사건들을 부속 사건이라고 하며, 단편소설의 기법상 길게 서술되지 못한다. “운수 좋은 날”의 ‘발단’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에서 이런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 갈등의 구조 : 이 작품에서의 갈등은 인물의 심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김 첨지의 심리 내부에서 반복되고 심화된 갈등으로 자리를 잡는다. ‘집’이라는 구체적인 공간도 갈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기준이 된다. 즉, 집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주인공의 갈등이 심화되고, 멀어질수록 해소가 이루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집에서 멀어지는 부분에서 떨칠 수 없는 집 생각으로 갈등이 반복 심화된다. ‘집’은 김 첨지가 벗어날 수 없는 내면적 공간이다.

 

▶ 할머니의 죽음

 

1. 줄거리

3월 그믐날 ‘나’는 시골 본가로부터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급히 시골로 내려간다. 곡성이 들릴 듯한 사립문을 들어서니 할머니의 병세는 이미 악화되어 있었다. 여든을 둘이나 넘은 할머니는 연로한 나이 탓에 작년 봄부터 기운이 쇠잔하여 가끔 가물가물했었다. 멀리 떠나 있는 친척들이 모두 모여 긴장된 며칠을 보내는 가운데 집안 내의 효부로 알려진 중모(仲母)는 할머니 곁에서 연일 밤을 새워 가며 할머니를 간호하고 빨리 기운을 회복하길 빌며 염불을 외운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독실한 불교 신자인 할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나’ 또한 “놀라운 효성을 부리는 게 도무지 우리 야단칠 밑천을 장만하는 게로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는 정신이 흐릿해져 자손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된다. 할머니가 겪는 고통과는 달리 빨리 끝장나기를 은근히 바라는 자손들은 직장으로 인해 무작정 눌러 있을 수도 없어 한의원을 불러 진맥을 시킨다. 오늘내일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과는 달리 하루 하루가 무사히 지나자 양의(洋醫)에게 다시 진찰을 시킨다. 그러나 할머니의 병세는 호전되었고, 몇 주일은 염려 없다는 말에 안심한 자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모두 떠나고 ‘나’도 할머니에게 곧 완쾌되실 거라고 위로하며 서울로 올라온다. 그러나 어느 화창한 봄날, 우이동 벚꽃놀이를 막 나가려는 때에 ‘오전 3시 조모주 별세’라는 전보를 받게 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20년대) / 공간(어느 시골)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는 ‘나’

전개 - 극진한 효성으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려는 중모(仲母)의 과장된 행위

위기 - 죽음을 거부하는 할머니의 허망한 몸짓과 고통

절정 -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자손들

결말 - 할머니의 외로운 죽음

◎ 주제 : 인간의 허위(虛僞) 의식 풍자

◎ 출전 : <백조(白潮)>(1923)

 

3. 등장 인물

◎ 나 : 작중 화자

◎ 할머니 : 죽음을 거부하는 허망한 몸짓으로 가족 간의 갈등 요인이 되는 인물

◎ 중모(仲母) : ‘효’를 수단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나치게 드러내려 하기 때문에 다른 가족의 반감(反感)을 사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1923년 <백조(白潮)>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할머니의 임종을 중심으로 여러 가족들의 심리를 포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진건이 신변 소설에서 객관적인 심리 묘사 소설로 변화하는 계기를 이루는 작품으로,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임종을 준비하고 있는 가족의 행동을 그리고 있다. 죽음을 거부하려는 할머니의 허망한 몸짓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이기적이고 작위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임종을 앞에 둔 인심과 인정을 실감 있게 포착하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손들이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모인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벌어지는 자손들의 모습에서 천륜으로 얽혀진 끊을 수 없는 정(情)보다는 요식 행위와도 같은 형식적인 인간의 모습들을 보게 된다. 더욱이 할머니에게 효(孝)를 다하는 중모(仲母)에게서 ‘나’는 효가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간파한다. 즉, 중모의 행위가 도덕적 우월의 표시임을 깨닫는다. 결국, 한고비를 넘기고 할머니의 죽음이 시일을 끌자 자손들은 모두 흩어지고 할머니는 외롭게 죽는다. 이 소설의 묘미는 구성적 측면에서 돋보인다. 즉, 어느 아름다운 봄날, 깨끗하게 봄옷을 갈아입고 친구들과 우이동 벚꽃 놀이를 나가다가 사망 전보를 받는 마지막 장면은 객관적이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로 시작하여 ‘오전 3시 조모주 별세’라는 전보로 끝나는 결구(結構)도 매우 탁월하다.

 

▶ 희생화

 

1. 줄거리

목사의 딸로 태어난 S는 예쁘고 똑똑한 학생이다.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유산으로 살아간다. 같은 학교의 미남이며 똑똑한 대구 양반가 출신의 K를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둘은 K집이 반대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S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S의 집에서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K의 행동거지가 이상함을 안 오촌당숙은 고향에 계신 할아버지를 올라오시게 하여 장가를 가라고 한다. 그때 누나의 편지를 들고 K가 묵고 있던 오촌당숙의 집에 갔던 나는 그 말을 듣게 되고 결국 누나에게 말하게 된다. 누나에게 이 말을 할 때 K는 누나를 찾아와 결혼을 안 하기 위해서 달아나기로 한 결심을 말하고 누나는 부모, 형제를 버리지 말라고 하며 자신은 생각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한다. K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고 누나는 그 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주제 : 관습으로 인해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3. 등장 인물

◎ 누님(S) : 예쁘고 똑똑한 여학생으로 미남이고 똑똑한 K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죽게 됨.

◎ 나 : 누님을 잘 따르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고 온순한 성격

◎ 어머니 : 목사의 부인이었으며 아버지의 유산으로 가정을 꾸미고 사는 이해심 많고 다정한 어머니

◎ K : 미남이고 똑똑하며 S를 사랑하나 과거의 인습을 타파하지 못하고 피해버리는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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