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현대시]

Jobs9 2022. 2. 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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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의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개관

- 화자 :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 주제 :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과 일제강점기 유랑민의 비애

- 성격 : 비극적, 애상적, 이국적, 서정적, 회상적
- 표현 : 수미상관식 구성 /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절제함. /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통해하면서도 다소 절제되고 담담한 어조 / '고향 → (일제 강점) → 러시아 ⇒ 침상 없는 최후'로 개인이 아닌 민족 전체의 아픔을 형상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우리집도 ~ 고향은 더욱 아닌 곳 → 낯선 이국땅(러시아)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 → 아버지의 비참한 객사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화자의 슬픈 정서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청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함. /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과 대비되어 고요한 분위기를 조성함.
노령 → 러시아 영토
자래운 → 키운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의미함.
아무을만 → 러시아 지명으로 헤이룽강 하류의 아무르 지역
설룽한 → 춥고 차가운
니코리스크 → 시베리아의 니콜라예프스크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 아버지의 죽음을 의미
다시 뜨시잖는 →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 → 아버지께서 품었던 꿈과 희망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 → 아버지의 최후를 객관적이고 담담한 어조로 묘사함.
이웃 늙은이의 손으로 ~ 낯을 덮었다. → 아버지의 최후를 객관적이고 담담한 어조로 묘사함.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 다아 울었고 → 가장을 잃은 가족들의 슬픔의 통곡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객사한 아버지와 풀벌레 소리
- 2연 :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 3연 :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
- 4연 :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들의 슬픔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객지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일제 강점기에 이국땅으로 유랑해야 했던 우리 민족의 비극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화자의 슬픔을 '풀벌레 소리'로 표현하여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작품의 비극성을 더하고 있다.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
이 시는 러시아를 넘나들며 상인으로 삶을 꾸려가던 한 조선인 아버지의 최후를 통해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유랑하는 민중의 비참한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론 이 아버지가 시인의 실제 아버지였는지의 사실 여부는 작품 감상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시인 자신의 체험을 어느 정도 객관화시켜 북방 지역에 삶의 근거를 둔 어느 유랑 조선인의 허망한 죽음을 형상화한 것은 틀림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극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세도 안 되어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금을 얻기 위해 소금을 싣고 러시아 영토를 넘나들며 장사를 하였던 것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용악의 시가 대부분 그러한 비극적 삶의 체험 세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그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도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 시의 핵심은 아버지가 '우리집도 아니고 / 일가집도 아닌 집 / 고향은 더욱 아닌 곳', '아라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 있다. 화자는 1연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비참한 심정을 서정적으로 표출한 데 이어, 2연에서는 아버지의 과거 삶과 아버지의 주검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 마디 남겨두는 일도 없었고'라는 구절에서 그의 죽음이 객사(客死)일 뿐 아니라, 급작스러운 죽음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술은 화자 개인의 가족사적 비극 체험을 지나 당대 조선 민중의 비극적 삶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아버지는 당대 유이민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연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그 죽음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라는 표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고,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 없이 돌아간 뒤 / 이웃 늙은이 손으로 / 눈빛 미명은 고요히 / 낯을 덮었다.'라는 표현은 죽음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제시이다. 이렇게 죽음의 현장을 객관적인 묘사와 사건의 제시를 통해 장면 위주로 전달함으로써, 그 처참한 현장이 보다 더 사실적으로 전달되는 한편, 그만큼 슬픔의 강도도 커지는 시적 효과가 있다. 
4연은 1연의 반복으로, 소위 수미상관의 구조로 주제를 강조하는 동시에 안정감을 부여시키고 있다. 여기서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라는 표현은 때마침 집 주위에서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에 대한 사실적 묘사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느끼는 화자의 참담한 내면 심경을 대변해 주는 소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최후의 밤'에 가득 찬 '풀벌레 소리'는 화자가 통곡하는 슬픔의 강도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이 국경을 넘나들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다 결국은 낯선 땅에서 '침상 없는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한 조선인 아버지의 임종을 통해 시베아리 유이민의 참담한 실상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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