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

현대시 모음 #03 - 공무원 국어 - 문학 - 시

Jobs9 2020. 3. 1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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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시집 󰡔겨울 바다󰡕, 1967)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겨울 바다가 주는 절망감과 허무 의식을 극복하고, 신념화된 삶의 의지를 그린 작품이다. ‘물과 불’의 긴장된 대립으로 사랑과 삶의 생성과 소멸, 갈등을 보여 준다.

‘겨울 바다’는 삶의 끝이요, 죽음을 표상하는 동시에 인생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겨울 바다는 만남과 이별, 상실과 획득, 죽음과 탄생, 절망과 희망의 분기점이 되는 복합 심상이다.

성격 : 주지적, 상징적, 사색적, 회고적, 낭만적

심상 : 물과 불의 대립적 심상

어조 : 기구적, 여성적 사색적 어조

특징 : 자기 응시적 독백체로 허무 극복의 의지를 형상화함.

과거 회상을 통하여 현실적 삶의 인식을 노래함.

구성 : : 이상과 사랑이 소멸된 허무의 현실(1-3) 소멸의 공간

: 깨달음과 생의 긍정(4)

: 허무의 초극을 위한 갈구(5,6)

: 성숙한 의지로 현실 고뇌 극복(7,8) 생성의 공간

제재 : 겨울 바다

주제 : 진실과 사랑에 대한 소망

 

<연구 문제>

1. 이 시에 나타난 화자의 심리적 추이(推移)를 설명하라

☞ 화자는 진실의 부재를 인식한 허무와 절망을 느끼다가 인고의 시간이 주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허무와 좌절을 극복하며 사랑과 소망의 삶의 의지를 갖게 된다.

2. 이 시에서 대립과 긴장을 이루는 두 시어를 찾아, 그 말 앞에 각각 한 어절의 관형어를 넣어 차이점이 드러나게 하라.

☞ 허무의 불, 인고의 물

3. 부정적 세계와 긍정적 세계의 분기점을 암시하는 시구를 찾아 쓰라. ☞ 기도의 문

4. ㉠,㉡,㉢은 화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지 각각 두 어절로 쓰라.

☞ ㉠ 소멸의 공간 ㉡ 깨달음의 공간 ㉢ 생성의 공간

 

<감상의 길잡이>

소멸 이미지로서의 과 생성 이미지로서의 이 대립을 이루는 가운데, 이 시는 부정과 좌절, 대립과 갈등을 통해 깨달음과 긍정에 이르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의 출발은 부재(不在)의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이 시에서의 부재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죽고 없는 상태이며, 다른 하나는 진실의 동결(凍結)’이다. 이런 부재의 현실로 인해 화자는 좌절을 느끼지만,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에서 극적 전환을 이루며, 인고의 시간이 주는 삶의 의미를 깨달은 그는 사랑과 구원과 순명이라는 자기 긍정의 자세로 돌아서 구원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1연에서는 기대와 희망이 모두 사라진 죽음의 공간으로서의 바다를 그렸으며,

2연은 좌절의 체험을 반복한다.

3연에서 물과 불의 대립과 긴장의 심상을 제시하는데, 이는 사랑을 둘러싼 좌절과 욕구, 슬픔과 기쁨, 죽음과 소생의 대립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물과 불의 대립, 갈등 속에는 삶의 모순과 사랑의 좌절을 정화, 극복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4연은 대립 · 갈등을 넘어선 깨달음과 자기 긍정으로의 전환이 표현되고 있다.

5,6연은 주제가 되는 부분이다. 대립 · 갈등이 기도의 문을 통하여 절망에서 희망으로, 고통에서 환희로, 유한자의 한계에서 무한자의 영원으로 인도된다.

8연에서는 허무와 절망과 죽음의 초극을 상징하는 인고의 물 기둥이 단단한 심상을 이루며 이 시의 감동을 정리하고 있다.

 

 

허무의 불

---

겨울 바다

----

인고의 물

소멸 깨달음의 공간 생성

 

<맥락 읽기>

1. 화자는? ☞ 나

2.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 겨울 바다에 가 보았던 경험과 그때의 심정

3. 화자는 겨울 바다에 왜 갔는가? ☞ 미지의 새를 보러

3-1. 그런데 화자는 그 곳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았나? ☞ 아니오.

4. 그럼 결국 화자가 본 것은 무엇이었나 ?

☞ 허무의 불이 물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던 것.

☞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 물기둥을 이루고 있었던 것.

5. 그렇다면 화자의 심경은 어떠했다는 얘긴가? ☞ 허무하고 절망적이었겠지요.

6. 왜 그런 심정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연을 찾아보고 그 이유를 말해 보자.

☞ 1,2연요. 미지의 새를 보러 겨울 바다에 갔었는데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는 죽고 없었고 그대를 향한 진실마저 매운 해풍에 얼어버린 현실이 화자를 허무하고 절망적이게 만든 것 같네요.

6-1.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란 무엇일까?

☞ 이상, 진실, 혹은 화자가 현실에서 추구해 왔던 막연한 그 무엇이 아닐까요.

6-2. 그대를 향한 진실마저 얼어버리고란 무슨 뜻일까?

☞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순수한 열정, 진심 같은 것이 더이상 쓸모없게 돼 버렸다는 뜻이 아닐까요.

7. 그럼 이제까지의 얘기를 정리해 보면?

☞ 어떤 사람이 현실에서 자기가 추구해 왔던 막연한 이상 또는 진실을 찾으러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만 그곳에도 그런 이상과 진실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고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순수한 마음마저 매운 해풍에 얼어 붙어버리는 매운 현실을 확인하고 절망과 허무에 빠져 있어요.

8. 그런데 화자는 끝까지 그런 심정으로 돌아왔나?

☞ 아니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 같네요.

9. 그렇다면 심경의 변화를 기준으로 해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 1~3연 : 허무적, 절망적

5~8연 : 의지적 긍정적.

10. 화자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4연.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아무리 깊은 절망과 고통이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치유된다는 지난 삶의 경험들에서 위로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네요.

11. 화자의 변화된 심정을 단적으로 나타낸 부분을 찾아보면?

☞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12. 이로 보아서 겨울 바다는 화자에게 잇어서 단순한 공간이 아닌 것 같은데. 이 겨울 바다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나 ?

☞ 삶의 허무와 절망을 극복하고 새로운 의지를 깨닫게 해 준 공간.

 

 

김남주

 

― '전사2’를 중심으로 ―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아니 수백만 명이 다시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김남주, `전사 2'의 첫 두 연).

 

한국 현대시사에서 김남주(1945~94)의 시들은 선명한 메시지와 강렬한 어조로 하여 두드러진다. 김남주가 외세에 대한 거부와 부자들을 향한 증오, 독재권력을 상대로 한 싸움을 노래한 유일한 시인은 아니었지만, 그 거부와 증오와 싸움을 노래 바깥의 현실로 옮기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다른 많은 시인들과 구분된다. 그는 시인인 동시에 전사였으며, 그것은 결코 비유적인 의미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압제자의 가슴에 꽂히는/ 창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시인이여')라고 그가 부르짖을 때 그것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고은, `화살')는 선동과 같은 궤에 놓이면서도 훨씬 더 강한 울림을 울린다. 그것은 무기(창:화살)와 대상(압제자:과녁)의 차이가 빚어내는 미학적 거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말 그대로의 전사와 시인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철의 독재자 박정희가 심복의 손에 쓰러지기 불과 보름여 전 내무부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을 발표했다. 김남주는 중심인물인 이재문 등 20여명과 함께 그때 이미 체포된 상태였다. 이후 모두 80여명이 검거돼 그 가운데 2명이 사형을 언도받기에 이른 남민전 사건이란 무엇이었던가.

 

사건 관련자들과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남민전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과 보조를 맞추어 예속적 독재권력의 타도와 외세의 축출, 그리고 부의 공평한 분배를 목표로 한 비밀결사였다. 남민전이 가장 직접적인 모델로 삼았던 것은 베트남 통일의 원동력이었던 남베트남 민족 해방전선이었으며, 국내적으로 그것은 인혁당과 같은 자생적 사회주의 결사의 전통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검거 당시 아직 준비위 차원에 머물러 있던 남민전은 실제에 있어서는 한국민주투쟁국민연맹 명의의 반독재 유인물 살포에 주력했으며, 김남주와 박석률 등 남민전 전위대의 전사들은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잣집 담을 넘기도 했다. 남민전 동지이자 김남주의 부인인 박광숙씨에 따르면 남민전은 무엇보다도 반독재 민주화투쟁 단체였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던 공포통치의 시대에 남민전은 교사와 노동자, 학생 등 각계각층을 망라한 통일운동체였다. 강령에 있어서는 반제국주의와 노동해방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반독재․반유신투쟁이 주요한 활동이었다.󰡓

 

김남주의 대부분의 시는 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1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감방에서 쓰여졌다. 󰡒시는 혁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하는 문학적 수단󰡓이라고 규정한 그에게서 선동의 효과가 미학적 고려에 우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와 혁명의 관계를 논하는 글에서 그는 그 둘이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토를 달았지만, 그것은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에 관한 마르크스의 규정과도 같아서 그에게 있어 우선시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혁명이었다. 그러나 흥미있는 것은 시보다는 혁명에 기운 그의 선택이 오히려 미적 완성도가 높은 시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노래' )

 

󰡒미군이 있으면/ 삼팔선이 든든하지요/ 삼팔선이 든든하면/ 부자들 배가 든든하고요//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부자들 배도 터지고요.󰡓

(`삼팔선' 전문)

 

김남주는 하이네, 네루다, 마야코프스키 등 외국 시인들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다고 밝힌 바 있지만, 한편으로는 `노래'에서 보듯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서 김지하에 이르는 참여적 서정시의 전통 위에 굳건히 서 있다. 제국주의/신식민주의, 독재/자유, 자본/민중의 명료한 이분법에 입각한 그의 세계관은 상황의 핵심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절창을 낳았다.

 

그의 대부분의 시들은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비상한 수단과 방법으로써 쓰여졌다. 집필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감옥에서 시인은 머릿속에 시를 써두었다가 면회온 친지들에게 불러주거나, 읽던 책의 여백이나 우유곽을 해체해서 생긴 은박지에 못으로 눌러서 시를 썼다(간수의 눈을 피해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시를 새기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김남주는 먼저 석방돼 나와 그의 옥바라지를 계속한 박광숙씨와 출옥 한달여 만에 결혼해서 아들 토일이를 두었다. 노동자들이 1주일에 사흘 금․토․일요일은 쉬어야 한다는 뜻이 그 이름에 담긴 토일이는 어느새 초등학교 1학년이 됐다. 시인은 가고 뒤에 남은 처자와 함께 그의 고향 해남을 찾는다. 희고 붉은 코스모스, 노랗고 예쁜 벼들, 그리운 이의 손짓처럼 하느작대는 억새로 해서 가을 들판은 따뜻하고 정겨웁다. 해남읍에서 차로 10여분을 달리면 나오는 삼산면 봉학리 그의 생가에서는 팔순이 가까운 노모가 마당에 넌 고추와 호박을 돌보고 있다가 어린 손주를 반긴다.

 

푸른 대숲으로 둘러싸인 집에는 군 청년회에서 만들었다는 시화 패널들이 처마에 걸려 있을 뿐 시인의 생가임을 알리는 이렇다 할 기념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인이 주로 썼다는 사랑채에 그가 옥중에서 보았던 이런 저런 잡지와 단행본들이 먼지에 덮여 쌓여 있다. `수번 2164, 교부일 81. 3. 23, 요납일 81. 4. 22'의 열독허가증이 붙은 책들은 80년대 초의 어느 시점에 얼어붙은 채 무심한 세월을 견디고 있다.

 

시인은 죽어서 망월동에 묻혔다. 생전에 그가 쓴 시 `망월동에 와서'가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5월 광주 희생자 묘역에서 그의 영혼은 비로소 안식을 찾았을 것인가. 그의 분신인 토일이와 부인 박광숙씨를 일어나 반기지 못하는 무덤 속의 그를 안쓰러워하며 `전사 2'의 뒷부분을 떠올린다.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글 최재봉>

 

 

호롱불

- 김상훈

 

석유를 가득히 부은 등잔은

밤이 깊도록 홰가 났다

끄을음을 까--맣게 들어마시며

노인들의 이야기는 죽구 싶다는 말뿐이다

 

쓸만한 젊은 것은 잡혀 가고

기운 센 아이들 노름판으로 가고

애당초 누구를 위한 농사냐고

이박사(李博士)의 이름을 잊으려 애썼다.

 

곳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흉한 소문이 대소롭지 않다

이백 석이 넘어 쌓여 있는 곡식이

그들의 아들이 굶어 죽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까닭이다.

 

암닭이 알을 낳지 않고

술집이 또 하나 늘었고

손주 며느리 낙태를 했다고

등잔에 하소연해보는 집집마다의 늙은이

 

잠들면 악한 꿈을 꾸겠기에

짚신을 삼아 팔아서라도

부지런히 석유만을 사왔다.

(시집 󰡔대열󰡕, 1947.5)

 

* 홰가 나다 : 불이 타오르다.

* 하소 : 하소연의 준말.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해방공간을 살아가는 고단한 민중의 삶을 노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시적 화자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노인들은 ‘석유를 그득히 부은 등잔’ 아래서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지만, 모두 ‘죽구 싶다는 말 뿐이다’. ‘쓸만한 젊은 것은 잡혀가고’ ‘기운 센 아이들 노름판으로 가고’에서 보듯, 그들의 삶을 이끌어 줄 진취적인 힘은 이미 없다. 토지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아 소작농의 신세는 해방 이전과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애당초 누구를 위한 농사냐고’ 하면서 ‘이박사의 이름을 잊으려 애’쓴다. ‘곳집에 도적이 들었다는 / 흉한 소문이 대수롭지 않’은 현실, 곳간에는 곡식이 쌓여 있지만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역설적 현실, ‘암탉이 알을 낳지 않고 / 술집이 또 하나 늘었고 / 손주 며느리 낙태를’ 하는 비극적 현실하에 노인들은 잠을 이룰 수 없다. ‘잠들면 악한 꿈을 꾸겠기에 / 짚신을 삼아 팔아서라도 / 부지런히 석유만은 사’ 와야 하는 모순적인 현실을 통해 시인은 은연중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드러낸다. 그것은 ‘이박사’로 지칭된 당대 우파적 정치 세력에 대한 비난이자, ‘쓸만한 젊은 것은 잡혀’갈 수밖에 없는 미군정 체제에 대한 비판이다.

이처럼 이 시는 매우 간략한 서술과 역설적 어법으로 일제 잔재․봉건 잔재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서 기인하는 민중의 고단한 삶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아버지의 창 앞에서

- 김상훈

 

등짐지기 삼십리길 기어 넘어

가쁜 숨결로 두드린 아버지의 창 앞에

무서운 글자있어 ‘공산주의자는 들지 말라’

아아 천날을 두고 불러왔거니 떨리는 손 문고리 잡은 채

물끄러미 내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고

 

태어날 적부터 도적의 영토에서 독(毒)스런 우로(雨路)에 자라

가난해두 조선(祖先)이 남긴 살림, 하구 싶든 사랑을

먹으면 화를 입는 저주받은 과실인듯이

진흙 불길한 땅에 울며 파묻어 버리고

내 옹졸하고 마음 약한 식민지의 아들

천근 무거운 압력에 죽음이 부러우며 살아왔거니

이제 새로운 하늘 아래 일어서고파 용솟음치는 마음

무슨 야속한 손이 불길에 다시금 물을 붓는가

 

징용살이 봇짐에 울며 늘어지든 어머니

형무소 창구멍에서 억지로 웃어보이던 아버지

머리 쓰다듬어 착한 사람 되라고

옛글에 일월(日月)같이 뚜렷한 성현의 무리 되라고

삼신판에 물 떠놓고 빌고, 말 배울 적부터 정전법(井田法)을 조

술(祖述)하드니

이젠 가야할 길 미더운 깃발 아래 발을 맞추려거니

어이 역사가 역류하고 모든 습속이 부패하는 지점에서

지주의 맏아들로 죄스럽게 늙어야 옳다 하시는고

아아 해방된 다음날 사람마다 잊은 것을 찾어 가슴에 품거니

무엇이 가로막어 내겐 나라를 찾든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느냐

 

형틀과 종문서 지니고, 양반을 팔아 송아지를 사든 버릇

소작료 다툼에 마음마다 곡성이 늘어가던

낡고 불순한 생활 헌신짝처럼 벗어버리고

저기 붉은 기폭 나부끼는 곳, 아들 아버지 손길 맞잡고

이 아침에 새로야 떠나지는 못하려는가 ……

아아 빛도 어둠이련듯 혼자 넘는 고개

스물일곱 해 자란 터에 내 눈물도 남기지 않으리

벗아! 물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거름에 달려가마

(󰡔문학󰡕, 1946.11)

 

<감상의 길잡이>

김상훈은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18세까지 봉건적 서당 교육을 받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근대적 교육을 받았다. 연희전문을 수료할 무렵 징용에 끌려가 원산 철공장에서 1년 반 동안 선반공으로 일하다가 돌아온 후 항일 투쟁에 가담하기도 한다. 해방 직후에는 잡지 󰡔민중조선󰡕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해방공간의 짧은 시기에 개인 시집 󰡔대열󰡕과 공동시집 󰡔전위시인집󰡕, 그리고 서사시 󰡔가족󰡕을 발간하는 등 왕성한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한다. 그는 해방공간의 시인들 중에서 시에서의 리얼리즘 창조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여, 서사시 󰡔가족󰡕에서는, 시인 주위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가식없이 시적 제재로 취급한다. <아버지의 창 앞에서>는 이러한 김상훈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초기적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의 시는 공통적으로 대상에 가까이 가거나 몰입하여 그것을 주관화시키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시적 자아 자신마저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 시도 이러한 공통적 특징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 시의 화자는 공산주의자로서 ‘등짐지기 삼십리길 기어 넘어 / 가쁜 숨결로’ 아버지를 찾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창 앞에’는 ‘공산주의자는 들지 말라’는 ‘무서운 글자’가 있어 그는 차마 문고리를 잡아당기지를 못한다. 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물끄러미 상념에 잠긴다. 기나긴 식민지의 질곡을 딛고 ‘이제 새로운 하늘 아래 일어서고파’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데, ‘말 배울 적부터 정전법을 조술하’던 그의 아버지는 그의 공산주의적 활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지주의 맏아들로 죄스럽게’ 사는 삶을 거부하고, ‘가야할 길 미더운 깃발 아래 발을 맞추’기 위하여 ‘붉은 기폭 나부끼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곧 아버지와 절연(絶緣)하는 길임을 자각한 시적 화자는, ‘아아 해방된 다음날 사람마다 잊은 것을 찾어 가슴에 품거니 / 무엇이 가로막어 내겐 나라를 찾든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느냐’라고 마음의 고통에 울부짖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쓸데없는 ‘악몽’으로, 한가하게 상념에 젖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금 ‘벗아! 물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걸음에 달려가마’라고 하여 아버지가 아닌 민중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평이한 서술과 독백체의 화법으로 아버지의 창 앞에서 느끼는 회한을 차분하게 풀어가고 있다. 그러한 점이 오히려 시적 화자의 삶의 선택의 길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고 있는 바, 이것이 바로 시인이 의도하는 시적 리얼리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수영

 

― 김수영과 4.19묘지 ―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조용히 개굴창에 넣고/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기념탑을 세우자/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김수영 `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첫 연)

 

김수영(1921~68)의 이 시는 그의 가장 좋은 시도 아니며 4․19를 노래한 가장 빼어난 시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1960년 4월26일 이른 아침에 쓴 이 시는 4․19의 순수 절정의 순간을 직접 호흡하고 있다는 미덕을 안고 있다. 이날 나온 이승만 대통령의 사의 표명은 2백명 가까운 젊은 목숨을 바쳐가면서 학생과 시민들이 갈구하던 바의 최대치는 아니더라도 그 최소치에는 가까웠던 것이다.

1960년 3월15일의 제5대 정부통령선거는 `국부' 이승만의 본질과 한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기회와도 같았다. 노욕과 망상으로 똘똘 뭉친 우남이 입 안의 혀 같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저지른 미증유의 선 거부정은 당장 그날로부터 민중의 거센 저항에 부닥친다. 마산에서 터져나온 항의시위는 8명의 사망자와 72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그보다는 그날 실종된 한사람이 결과적으로 더 큰 파장을 몰고 오게 된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4월11일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몰골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마산상고생 김주열이 그였다.

김주열의 주검에 다시 십여명의 사상자로 대답한 마산의 2차 시위는 남한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4월18일 고려대학생 3천여명이 국회의사당 앞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정치깡패들에게 테러를 당한 사건은 그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피의 화요일'로 불리는 19일 성난 학생과 시민들은 종로와 광화문을 거쳐 경무대 앞까지 치달아 독재타도를 외쳤으며 경찰은 발포로써 응답했다.

비상계엄령이라는 채찍과 자유당 총재직 사임이라는 당근으로써도 우남은 돌아선 민심을 되잡을 수 없었다. 4월25일 대학교수단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거리로 나섰을 때 그의 운명의 나침반은 이미 하와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남에게는 정치적․인간적 실패, 나아가 역사적 죽음으로까지 다가왔을 4․19는 한국문학으로서는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다. 그것은 4․19가 열어놓은 해방의 공간이 자유로운 문학적 표현을 가능케 했다는 의미와, 4․19 자체가 두고두고 한국문학의 가물지 않는 수원(水源)이 됐다는 두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시에 있어서 4․19의 적자는 김수영과 신동엽이었다.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며 4월혁명을 동학혁명에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면서도 그 성과와 한계, 장점과 단점을 냉정하게 가리고자 했다.

김수영에게 있어 4월혁명은 시세계의 전면적인 변모를 가져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50년대를 철저한 모더니스트로 통과한 김수영은 1960년 4월19일을 기점으로 해서 참여적인 사실주의 시인으로 변모한다. 앞서 인용한 시를 비롯해 `기도' `육법전서와 혁명' `푸른 하늘을' `만시지탄은 있지만' `그 방을 생각하며' 등 4․19를 직접 다룬 일련의 시편들은 물론, `가다오 나가다오' `거대한 뿌리'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사랑의 변주곡' 등 현실의 치부를 구체적이면서도 신랄하게 까발린 시들이 직․간접적으로 4․19의 영향 아래 쓰여졌다.

그리고 그같은 변모의 궁극은 뜻밖의 교통사고로 숨지기 불과 보름 전에 토해놓은 절창 `풀'이었다. 산문투의 장광설과 거칠것 없는 발성으로 특징지어지던 김수영 시세계의 또한번의 변모를 예감케 하는 이 시가 그 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는 사실은 한국문학사의 안타까움이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전문)

 

4․19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그 대신 들어선 것은 자유당과 별다를 것도 없는 민주당 정부였다. 그나마도 1년 뒤에는 박정희 소장의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4․19의 이념은 철저히 능욕당했다. 그런 점에서 4․19는 미완의 혁명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계속 진행중인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작가 김승옥씨가 70년대 초 월간 <샘터>에 발표한 짧은 이야기에 `정직한 이들의 달'이 있다. 바로 4월19일 경무대 앞에서 총상을 입고 그날 밤 수도육군병원에서 숨을 거둔 서울 문리대 수학과 학생 김치호의 마지막을 그린 것이다. 김치호가 말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어요. 부정한 짓을 하면 안 된다구. 그래서 선거를 부정으로 한 사람들에게 선거를 공정하게 다시 하라구 말했어요.(…)학교 교과서가 주동자예요. 부정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도 부정이라고 가르치는 교과서가!󰡓

그 김치호는 지금 서울 수유리 북한산 동쪽 자락에 자리잡은 `4․19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다른 많은 교과서주의자들과 함께. 4․19 묘지는 혁명 이태 뒤인 1963년 현재의 위치에 조성됐으며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국립묘지로 새단장했다. 평일 오후의 4․19 묘지는 참배객이 드문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나온 젊은 엄마들, 근처 국립재활원의 환자들, 노인들, 연인들, 그리고 과자 부스러기를 쪼는 비둘기들로 채워져 여느 시민공원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을 연출한다.

그 풍경을 보면서 생각한다. 4․19가 추구했던 정신과 이념은 이 묘역의 어디에서 볼 수 있는 것일까. 제가 와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일까, 청장년의 나이로 4․19를 겪었을, 그러나 이제는 다만 무력한 삶의 구경꾼으로 가라앉아 있는 노인들일까. 아니면 유영봉안소니 만장이니 수호자상이니 수호예찬의비니 하는 각종 시설물일까. 4․19는 성소에서 기림을 받고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이 한정된 넓이의 묘역에 갇혀서 숨막혀 있는 것은 아닐까.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시집 󰡔거대한 뿌리󰡕,민음사,1974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1960년 4․19혁명 직후에 씌어진 작품으로 ‘혁명’과 ‘피’가 이 시의 무게를 이룬다. 이 시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어려움을 절규하고 있으며 자유의 표면으로부터 알맹이로 들어가 ‘자유 정신’을 포착한 데에 의의가 있다.

2. 시상의 전개

* 제1연 - 희생을 치르지 않은 자유는 무의미함

* 제2연 - 자유를 위해 비상한 사람은 피의 냄새와 고독함의 의미를 알 것임

* 제3연 - 혁명의 고독함을 알 것임

3. 주제 : 자유를 위한 투쟁의 어려움

4. 제재 : 노고지리

5. 시어의 의미

* 노고지리의 자유 - 대가나 희생을 치르지 않은 자유

* 비상하여 본 - 투쟁하여 본

* 피 - 투쟁

♣ 유토피아적 전망의 최고치에 도달한 작품으로 평가 ♣

4.19 직후에 쓰여진 것으로 혁명의 본래적 의의에 대한 환기이며 그것을 이루고 있지 못하고 있는 4.19의 진행과정에 대한 냉정한 경고.(혁명에는 전체적 자기 변혁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기 변혁은 자신의 완전한 파괴와 새로운 구성을 요구한다. 자유에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혁명이 고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철저한 자기변혁을 위한 고통과 극기를 스스로 감당해내야 하니 외롭지 않을 수 없다.)

4.19이후 2개월 만에 씌어진(1960.6.25) 이 시의 주제를 우리는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와 “혁명은 고독하다.”로 잡을 수 있다.

여기에서 4.19를 염두에 둘 때 첫 명제는 쉽게 이해되는 것처럼 보인다. 4.19는 학생과 시민의 피값을 대가로 성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 명제는 “올바른 사회가 수립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희생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혁명에는 전체적 자기 변혁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기 변혁은 자신의 완전한 파괴와 새로운 구성을 요구한다. 자유에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혁명이 고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철저한 자기 변혁을 위한 고통과 극기를 스스로 감당해내야 하니 외롭지 않을 수 없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4․19 직후에 창작된 작품으로 자유로의 비상을 위한 고독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먼저 1연에서 시인은 노고지리를 예찬한 어느 시인의 표현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푸른 하늘’은 자유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것을 제압한다는 것은 단순히 즐겁게 노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노고지리가 아무런 희생도 없이 손쉽게 자유를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노고지리가 /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는 도외시한 채, 다만 자유로운 비상만을 노래한 것이 잘못임을 지적하고 있다. 2연은 그것을 설명해 주는 부분으로,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는 것은 ‘무엇을’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피’로 대유된 투쟁, 그리고 ‘고독’을 함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다시금 그러한 혁명적 행위가 ‘고독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함으로써 혁명이라는 미명하에 휩쓸리기 쉬운 타락상을 경계시키고 있다. 흔히 이 구절은 일반 대중과의 연대감을 획득하지 못한 엘리트 의식의 표출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전체 문맥을 고려해 보면 혁명에 수반되는 허탈감이나 승리의 기쁨 같은 일체의 감정을 배제함은 물론, 실패에서 오는 좌절까지도 견뎌낸다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자유는 타인이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수동적․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적극적․실천적 개념임을 확신하고 있는 시인은 노고지리 비상만을 보고 자유를 노래하는 기존 시인들의 온건적․순응적 태도를 비판함은 물론, ‘푸른 하늘’이라는 높고 아름다운 자유를 향한 비상은 ‘피의 냄새’라는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투쟁과 노력을 통해서 근접할 수 있음을 푸름과 붉음이라는 색채의 대조를 통해 뚜렷이 제시하고 있다.

 

 

 

-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자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문학예술󰡕, 1957.4)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김수영은 ‘눈’이라는 제목의 시를 세 편 썼는데, 여기 실린 시가 첫 번째의 것이며, 1961년(민중의 상징체로서의 눈)과 1966년(폐허에 내리는 눈)에 발표된 두 편이 있다. 이 시들은 구성이나 내용에는 차이가 크지만, ‘눈’의 이미지만은 비슷하다. 김수영의 ‘눈’은 「참되고 순결한 생명의 표상」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기침’은 무엇의 상징인가. ‘눈’과 대립되는 관념으로 보면 어떨까?

이 시는 아주 단순한 구조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시의 소재인 눈의 순수성을 통해 현실에 대한 울분의 토로와 날카로운 비판으로 순수한 삶에의 지향을 노래하고 있다. ‘눈은 살아 있다’와 ‘기침을 하자’는 두 구절의 반복으로 의미를 점층적으로 강조하고 있음도 특이하다.

우리가 늘 서정적으로만 파악해 온 눈의 이미지와 이 시에서의 눈의 이미지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여러 번 읽어 보면서 느껴보자.

2. 성격 : 의지적, 주지적, 비판적, 참여적, 상징적

3. 어조 : 단호하고 강인한 남성적 어조

4. 특징 : ① 반복 표현에 의해 점층적 효과, 선명성, 동적 리듬을 형성

② 소박한 일상어로 시적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음

5. 시상의 전개

* 기(1연) - 순수한 생명적 존재로서의 눈

* 승(2연) - 젊은 시인의 기침을 하는 행위

* 전(3연) - 죽음을 초월한 생명으로서의 눈

* 결(4연) - 젊은 시인의 가래를 뱉는 행위

6. 제재 : 눈

7. 주제 : 정의롭고 순수한 삶에의 소망과 의지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반복적 표현의 효과를 쓰라.

☞ 점층적 효과와 함께 의미의 선명성을 드러내며 동적 리듬을 형성한다.

2. 눈을 보고 기침을 하는 행위를 제3연에 나오는 두 어절의 시구를 사용하여 70자 내외로 설명하라.

☞ 기침을 하여 ‘가슴의 가래’를 내뱉음으로써 일상 생활에서 누적된 더러운 것(속물적인 것)을 토해 버리고, ‘영혼과 육체’의 순결성을 회복하려는 행위이다.

3. 과 시적 의미가 호응하는 시구를 찾아 쓰라.

☞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

4. 이 시에서 대립되는 이미지로 쓰인 시어를 찾아 그 상징 의미를 밝혀 한 문장으로 쓰라.

☞ ‘눈’과 ‘가래(기침)’가 서로 대립되며, ‘눈’은 순수한 생명, ‘가래(기침)’는 불순한 일상성을 상징한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구조와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눈은 살아 있다기침을 하자의 변형 · 반복으로 되어 있다. 반복을 통해,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점층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반복은 시의 내용과 형식에서 각각 의미의 선명성과 외형적 운율을 확보해 준다. 아울러 눈과 기침(가래)의 대조를 통한 상징적 의미의 해석은 이 시를 이해하는 데 열쇠를 제공해 준다.

1연은 읽는 이를 매우 당황하게 만들면서 첫 구절이 시작된다. ‘눈은 살아 있다.’ 그것도 떨어지는 눈이 아닌 떨어진눈이요, ‘마당 위에 떨어진눈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1연만 가지고 눈의 의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우리가 전통적으로 느껴온 의 서정적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 눈을 살아 있는 존재, 순수한 생명적 존재로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2연은 설상가상이다. 갑자기 기침을 하자, 그것도 눈에 대고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고 젊은 시인에게 권유한다. 이 웬 권유인가? 그러나 잠시 살펴 보면 곧 실마리가 풀린다. , 우리는 기침의 대비를 발견할 수 있다. ‘눈 위에 대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라는 말로 볼 때, 젊은 시인은 평소 마음 놓고 기침을 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침은 다른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것이요, 눈 또한 그럴 것이다. 그렇다. ‘기침은 우리가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가지게 된 소시민성, 불순한 일상성, 속물성을 뜻하며, ‘기침을 하자는 것은 그것들을 토해 내자는 의미이다. 그 반대 편의 눈은 순수성, 비속물성, 영원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3연은 제1연의 반복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눈은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다. ‘죽음을 잊어버린 육체와 영혼을 위하여살아 있는 것이다. 일상에 더럽혀진 자에게는 보이지 않고 죽음을 초월한 순수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이 있는 자에게만 눈은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4연은 제2연의 되풀이다. 기침을 하다 보면 가래가 나온다. 가장 순수해야 할 젊은 시인은 이미 가래가 가득하다. 곧 소시민성, 불순한 일상성, 속물성이 가득한 것이다. 시인은 바로 이 불순한 것들을 속시원히 내뱉자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눈의 순수성, 비속물성, 영원성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더러운 일상성을 씻어 내라는 권유를 하고 있다. 눈과 기침(가래)의 대비를 통한 고도의 상징적 수법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돋보인다. 눈을 제재로 하여 순수한 삶에의 의지를 표현한 주지시이다.

 

 

 

폭포(瀑布)

- 김수영

 

폭포(瀑布)

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자연물에 대한 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지시다. ‘폭포’를 소재로 하여 사회적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자세를 보여 준다. 단순하고 힘찬 언어에서 양심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는 시 정신을 볼 수 있다. 절벽으로부터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물줄기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정신의 자세를 음미해 보자.

작가 김수영이 자유당 독재 정권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현실 상황에서 양심 있는 세력의 올곧은 목소리를 갈구하는 마음을 더듬어 보자.

성격 : 주지적, 관념적, 상징적, 참여적, 산문적

심상 : 굉장한 기세의 폭포의 역동적 심상

특징 : ‘떨어진다는 반복에 의한 운율 형성

▶ 구성 : ① 폭포의 외형적 모습(제1연)

② 폭포의 내적 속성 ―고매한 정신(제2연)

③ 폭포의 소리, 선구자적 행동성(제3,4연)

④ 폭포의 정신 ―나타(懶惰)와 안정의 부정(제5연)

▶ 제재 : 폭포

▶ 주제 : 부정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의지적 삶의 추구

 

<연구 문제>

1.

폭포(瀑布)

어떤 유형의 인물로 비유되어 있는지 100자 내외로 쓰라.

<모범답> ‘폭포’는 사회 현실의 부조리와 불의에 대해 항상 깨어있는 지성인으로 일신상의 안일만을 탐하여 양심을 저버리고 사회 현실을 외면하는 소시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선구자적 인물로 비유되어 있다.

2. 이 시의 (1)지배적 심상을 이루며 ‘밤’의 이미지와 뚜렷이 대비되는 시구를 찾아 쓰고, (2)그 함축적 의미도 쓰라.

<모범답> (1) 곧은 소리

(2) 양심의 소리. (부정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외침)

3. ㉠, ㉡ 각각의 상징 의미를 간단히 설명하라.

<모범답> ㉠ 소박한 아름다움의 세계

㉡ 인간적 유대 또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

4. 부정적 현실에 안주하는 소시민의 속성을 표현한 두 어절의 시구를 찾아 쓰라. <모범답> 나타와 안정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제목 그대로 폭포를 노래한 것이다. 이 시가 여타의 서정시와 사뭇 다른 인상을 주는 까닭은 아마도 폭포의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을 개인적 감정을 통해 포출하기를 거부하고, 물줄기의 낙하(落下)라는 자연 현상에서 무엇인가 정신적 의미― 사회 현실에 대한 자각과 현실에 대응할 행동 양식을 찾아 내려 고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1연에서는 폭포의 힘찬 외형적 모습이 드러난다.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를 경탄하고 있다. 물론, 감성적 경탄이 아닌 지성에 의해 여과된 것이다.

제2연에서는 강한 주관적 관념이 개입된다. 폭포는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바로 폭포의 자유 의지이며 타협 없는 양심의 자세요, 굴복이나 무기력함이 없는 폭포의 본질적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3,4연에서 폭포의 구체적 모습이 나타난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란 소박한 아름다움도 인간적인 삶의 유대도 없는 암울한 현실을 말한다. 이런 밤이 되면 폭포는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여기서 폭포가 내는 곧은 소리는 그 스스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곧은 소리― 바르고 강직한 지성의 소리를 부르는 것이다. 폭포의 선구자적 행동성, 이것은 곧 시인 자신의 실천 의지의 표현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곧기를 요청하는 대목이다.

제5연에서 ‘곧음’에의 요청은 더욱 뚜렷하다.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현실에의 안주와 무사 안일의 생활을 강렬하게 부정하고 있다. 시인은 폭포를 단순한 구경거리로 보지 않고, 삶의 자세에 대한 준열한 의지의 전형으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나타하고 안이한 타협적 삶을 각성시키는 선구자의 모습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창작과 비평󰡕 가을호, 196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사소한 자연현상 속에서 인간 세계의 여러 문제를 찾아내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시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생명과 그것을 억누르려는 거대한 힘과의 싸움을, 반복되는 단순한 구조의 말로써 그려내고 있다.

이 시에서 ‘풀’과 ‘바람’의 상징 의미를 생각해 보자.

‘풀’은 여리고 상처받기 쉽지만 질긴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바람’은 무수히 많은 생명들을 괴롭히고 억누르는 힘으로 상정해 보며 시를 이해해 보자.

이 시에서 ‘눕다’↔‘일어나다’, ‘울다’↔‘웃다’라는 네 개의 동사가 반복적인 대립 구조를 이루고 있다. ‘풀’과 ‘바람’이라는 대립이 ‘눕는다’와 ‘일어난다’는 운동의 반복 속에서 하나로 합일되는 체험을 노래하고 있음에 유의하여 이 노래를 散文의 내용으로 바꾸어 보자. 문장의 기본 골격은 ‘날이 흐리다’, ‘바람이 분다’, ‘풀이 눕는다’, ‘풀이 운다’, ‘풀이 일어난다’가 될 것이다.

▶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주지적, 참여적

▶ 운율 : 반복과 대구에 의한 리듬 형성

▶ 특징 : 대립 구조

▶ 구성 : ① 풀의 나약함 - 수동적인 모습(1연)

② 풀의 생명력 - 수동성→능동성(2연)

③ 풀의 넉넉함 - 능동성 강조(3연)

▶ 제재 : 풀

▶ 주제 :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갈등 양상을 보이는 중심 시어 둘을 찾아, 각각의 상징 의미를 밝혀 한 문장으로 쓰라.

<모범답> ‘바람’은 민중을 억압하는 세력을, ‘풀’은 그러한 세력에 억압받으면서도 끈질긴 생 명력으로 맞서는 민중을 상징한다.

2. 이 시는 여럿의 대비 속에서 의미를 강화한다. 이 시에 나타나는 시어와 시제의 대조를 설명하라.

<모범답> (1) 풀↔바람, 눕는다↔일어난다, 울다↔웃다, 빨리↔늦게

(2) 제1연의 과거시제↔제2,3연의 현재시제의 대조

3. 풀의 너그러움, 넉넉함을 보여 주는 구절을 찾아 쓰라.

<모범답>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4. 이 시인의 다른 작품 ‘폭포’의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함축하는 의미와 일치하는 두 어절의 시구를 찾아 쓰라.

<모범답> 날이 흐리고

 

<감상의 길잡이>

시인들은 때때로 평범한 자연 현상 속에서 삶의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비유 또는 상징을 발견한다. ‘풀’ 역시 그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표면적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어느 흐린 날 비가 오기 직전의 스산한 바람이 부는 들판을 생각해 보자. 그 들판에는 아주 여린 무수한 풀들이 돋아나 있고, 비를 몰아 오는 바람은 점점 거세게 불어 풀들을 눕히고, 쓰러뜨리고, 또 울리고 있다. 그러나 바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풀은 다시 일어나 웃는다. 이것이 이 시의 표면적 내용이다. 그러나 이 시는 풀과 바람의 단순한 현상적 관계만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시에 대한 더 분명한 이해는 풀과 바람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는 데에 있다.

풀은 만물 가운데 가장 흔하다. 또 한없이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일부러 키우지 않아도 억세게 자라는 끈질긴 생명력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민중들을 이 풀에 비유해 왔다. 결국, 풀은 ‘민중’이며 이 작품은 민중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면 바람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시에서 바람은 풀의 생명력을 억누르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바람은 민중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올바르지 못한 세력의 상징이다.

제1연 : 풀과 바람의 관계를 설명한다. 풀은 바람에 의해 나부끼고, 눕고, 운다.

제2연 : 풀과 바람의 대조가 뚜렷하다. 풀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울고, 먼저 일어난다. 우리는 여기서 풀의 연약함과 아울러 ‘먼저 일어난다’는 끈질김을 볼 수 있다.

제3연 : 풀과 바람이 대립을 반복한다. 이 반복을 통해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의 의미는 대략 드러난다. 풀과 바람의 싸움은 이 세상에 있는 연약한 민중들의 굳센 생명력과 그것을 억누르고 괴롭히려는 세력의 싸움인 것이다. 이 싸움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하잘것없어 보이는 생명의 끈질김이야말로 어떤 불의한 외부의 억압도 이겨내는 힘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에서 역사의 흐름이 비관적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결국, 이 시는 아주 일상적인 자연물인 풀과 바람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한 것이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시집 󰡔거대한 뿌리󰡕, 1974)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을 진솔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발견하게 된 자신의 초상(肖像)은 자신이 추구하는 시의 경향이나 민중 시인으로서의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알게 된다. ‘땅 주인’이나 ‘구청 직원’ 또는 ‘동회 직원’, 소위 가진 자, 힘 있는 자에게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이발장이’나 ‘야경꾼’들로 대표된 가지지 못한 자, 힘 없는 자에게는 단돈 일 원 때문에 흥분한다. 또 그는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다 ‘붙잡혀 간’ 소설가를 보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대항하지 못하고, ‘설렁탕집’에서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한다. 이렇게 커다란 부정과 불의에는 대항하지 못하면서도 사소한 것에만 흥분하고 분개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봄으로써 마침내 시인은 자기 모멸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 또한, ‘절정 위에는 서 있지 /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는 자신의 방관자적 자세를 확인한 그는 ‘모래’․‘풀’․‘바람’보다도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비판, 반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은 아무 죄 없는 소설가를 구속하거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 권력에는 정면에서 대적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 의식을 폭로, 고발하는 진지한 자기 반성을 통해 자신의 최후이자, 최고의 작품인 <풀>이라는 걸작을 창작하게 되는 정신적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맥락 읽기>

1. 화자는 누구인가? ☞ 나

2. 어디에 있는가? ☞ 고궁(왕궁)을 나서고 있다.

3. 왕궁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나 느낌은?

☞ 왕궁의 음탕함을 생각하고 있다.

4. 그래서 화자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화자의 행동을 나타내는 말(동사)을 찾아 보자.

☞ 분개한다, 욕을 한다, 증오한다, 반항한다.

5. 누구에 대해, 무엇에 이렇게 행동하는가?

☞ 오십원짜리 갈비, 설렁탕집 주인(갈비탕에 기름덩이만 나왔다고 분개)

☞ 야경꾼(내야될 돈 20원, 10원, 1원 고작 1원 때문에) / ―이발쟁이

6. 이런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조그만 일에만 분노한다. 옹졸하다. 비겁하다. 우습다.

7. 왜 이렇게 생각할까? 화자(나)는 진정으로 분노해야 할 대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왕궁, 왕궁의 음탕→타파되어야 할 권력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위해

☞ 월남 파병(반대) / ―땅 주인 / ―구청 직원 / ―동회 직원

8. 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속성이나 공통점은?

☞ 힘센자, 권력을 가지고 남을 억압하는 자, 거대한 존재

9. 진정으로 분노해야 할 대상에 대해 분노 못하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자가 진단하는가?

☞ (현실의 절정 위에 서 있지 못하고 옆으로 비켜 서 있는) 비겁한 삶이다.

10. 비겁하고도 옹졸한 나의 태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 오래전부터

10-1. 이렇게 된 예로 무엇을 들었는가? (언제, 어떤 일)

☞ 부산 포로 수용소, 제14 야전 병원에 있을 때 부터

11. 포로 수용소, 그것도 부산에 있는? 화자는 어떤 신분이었겠나? 어떤 역사적 사건을 떠올릴 수 있는가?

☞ 아마도 6.25 전쟁의 포로

12. 그때 어떤 일이 있었나?

☞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다가, 정보원에게 남자답게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놀림당함

13. 이런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 ① (내 나름의) 반항이었다.

cf) 이것이 어떻게 반항일 수 있는가? ―이념, 신념으로 인한 행동.

☞ ② 옆으로 비켜선 비겁한 태도

14. 7연의 내용으로 미루어 자기 삶의 태도를 어찌 생각하는가?

☞ 왜소하다. 모래, 바람, 먼지, 물보다도 작고 못한 존재. 연민을 가진다.

15. 그렇다면 화자가 진정으로 원하고 추구하고 싶어하는 올바른 삶의 자세는?

☞ 절정 위에 서 있는 삶

16. 절정 위에 서 있는 삶은 어떤 것이겠는가? 한 번 생각해 볼까요?

17. 이 사람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생각해보지요.

 

<보충>

1950년 6월 25일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특별한 의식없이, 세태에 따라서 잔류 문인들과 함께 문학가 동맹에 들어감. 의용군으로 북으로 끌려감. 평남 개천 야영 훈련소, 북원 훈련소를 거치다가 유엔군의 평양 탈환으로 남하. 서울 집 근처까지 왔다가 탈주자로 오인되어 경찰에 체포됐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어 이념으로 빚어지는 참상을 목격한 듯하다. 이때의 기억은 평생토록 상처가 되어 심하게 그를 움츠러 들게 했다.

1951년 부산 포로 수용소 제14 야전 병원에 이송(외과병원장 통역)→1952년 12월 석방.

 

 

 

()의 생활난(生活難)

-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 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1949)

 

<감상의 길잡이>

대단히 난해한 이 시는 1945년 창작된 김수영의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이 시의 표현 특징을 살펴 보면 1․2․3연과 4․5연이 형태상은 물론, 표현상으로도 서로 구별됨을 알 수 있다. 앞 단락은 세 연이 모두 2행씩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그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은 데 비해, 뒷 단락은 형태가 안정되지 않으면서도 그 의미는 쉽게 드러난다. 또한, 앞 단락은 안정된 형태로 일정한 호흡을 주면서도 비약이 나타나지만, 뒷 단락은 직설적인 기술로 되어 있으며 빠른 호흡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 시에서 ‘공자’는 세상의 허위,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시인을 표상하며, 그런 ‘공자’가 가혹한 현실 세계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갈등을 ‘생활난’으로 표현하고 있다. 1연에서 제시된 시적 공간은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는 곳으로 나타나 있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다는 것은 꽃보다 열매가 먼저 맺히는 것으로, 이것은 바로 사물의 전도(顚倒) 내지 무질서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공간에서 ‘너’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넘기 작란’을 즐기고 있다. 이것은 2연에서 시적 화자가 보이는 행동과 대조적인 것으로 다분히 유희의 성격을 지닌다. 그 곳에서 화자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는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너’에게 장난처럼 쉽다는 것은, 혼란스러운 삶이 ‘너’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이며 무의식적 삶임을 뜻한다. 그러나 2연의 ‘작전’은 1연의 ‘작란’과 대립되는 어휘로, 화자에게는 그러한 삶이 부자연스럽고 의식적임을 알게 한다. 이렇게 1․2연은 ‘너’와 ‘나’의 대립, ‘작란’과 ‘작전’의 의미상 대립을 통해 시인이 갖고 있는 자아와 타인의 대립적 인식 상태, 자아 의식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3연에서 ‘국수’를 이태리어로 마카로니라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린 아이들도 알 수 있는 ‘국수’를 생소한 이태리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줄넘기 작란’ 같이 유희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1연에서 보여 준 ‘너’의 혼란스러운 생활 태도와 흡사하다. 이에 반해 국수를 먹기 쉬운 것으로 인식하는 화자의 태도는 바로 ‘너’에 대한 반란이다. 즉, ‘너’는 마카로니라는 어려운 말을 쉽게도 얘기하지만, 화자는 다만 국수가 먹기 쉬울 뿐이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본다면, 1․2연의 대립 구조가 3연에서도 계속 이어져 ‘유희’와 ‘반란’으로 나타남으로써 ‘너’는 전도되고 무질서한 공간에서 혼란스러운 삶을 살며 국수를 마카로니로 말하는 허위 의식을 보이는 존재로, 화자는 현실의 실존 공간에서 고통을 겪으며 ‘너’의 허위에 대해 반란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4연에서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고 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겠다는 것이며, 나아가 ‘동무 ― 너’가 지향하는 혼란의 생활 세계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자는 사물의 생리, 수량, 한도, 우매, 명석성까지도 바로 본 다음,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결연한 결의를 통해 모든 가치가 전도, 왜곡되어 있는 현실에 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바로 보려는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선언 속에는 바로 보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절망적 예감이 담겨 있다. 즉, 이 예감은 화자의 의식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고통으로 인해 목표를 결코 성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극적 예감이다. 결국, 이러한 의지와 절망의 상반된 의식으로 말미암아 시적 화자는 2연에서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는 식으로 고통을 토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한 바램으로 마지막 연에서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절망하고 있어, 현실과 당당히 맞서 싸우지 못하는 현실 인식의 한계를 보여 주기도 한다.

 

 

 

()

- 김수영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醉)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無關心)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虛僞)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

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현대문학󰡕 14, 1956.2)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시인 스스로 자신의 현대시의 출발작이라 할 만큼 높이 평가하는 작품이다.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고도의 감정적 절제가 돋보이는 주지적 경향의 모더니즘 시이다. 이러한 감정의 절제는 거의 모든 문장이 ‘끊어준다’․‘무관심하다’․‘있다’ 등의 평서형 종결 어미를 취하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하며, ‘병풍’․‘용’․‘낙일’ 등 우리 고유의 동양적 정서를 함축하는 시어를 통해 죽음의 현대적 이미지를 동양적 정서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문상(問喪)을 와서, 주검을 가리고 있는 ‘병풍’을 바라보며 죽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즉, ‘병풍’ 뒤에 누워 있는 주검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병풍에 그려져 있는 예술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인생의 허무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병풍’은 화자의 인식의 추이 과정에 따라 사전적 의미 → 죽음의 의미 → 예술의 의미로 발전 확산된다. 1․2행에서는 화자가 병풍을 대면하는 상황으로, 여기서 ‘병풍’은 단순히 가리개라는 일상적 사물일 뿐이다. 이와 같은 병풍은 3․4행에서 ‘주검에 취한 사람처럼’, ‘무엇을 향하여서도 무관심하다’는 표현을 통해 죽음의 이미지와 관련되고 5․6행에 이르면 완전히 죽음을 뜻하는 의미 기호로 제시된다. ‘용’은 하늘로 오르는 ‘상승’의 이미지이며, ‘낙일’은 하루 해가 서산으로 지는 ‘하강’의 이미지임을 생각할 때, 그것은 분명해진다. 이제 ‘주검의 전면 같은’ 병풍의 그림 속에서 동양적인 죽음을 발견한 화자는 7행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가르쳐 주는 병풍에서 진정한 예술의 세계는 먼저 개인적 감상을 배척해야 함을 깨닫는다. 8행에서는 ‘허위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병풍을 보여 줌으로써 허위와 가식의 세계에 우선하는 예술의 진실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9행의 ‘비폭’과 ‘유도’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10․11행에서는 두 가지 의미의 주검이 나타난다. 하나는 예술의 주검인 병풍이요, 또 하나는 실제 주검인 시신(屍身)이다. 따라서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는 구절은 영원한 예술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담겨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병풍은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12․13행은 1․2행에서의 병풍을 마주하고 있는 화자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는 병풍과 화자의 관계가 ‘끊어 준다’․‘무관심하다’라는 단절의 상태였음에 비해, 여기서는 ‘바라보다’․‘비추어주다’의 단절의 극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화자와 주검 간의 좁혀지지 않던 거리감이 마침내 ‘달이 나의 등 뒤에서 비추어 주는’ 것으로 극복됨으로써 화자는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와 하나가 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예술의 병풍처럼 그의 영혼도 영원할 것임을 믿게 되는 것이다.

 

 

 

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감상의 길잡이>

마치 한 편의 산문을 대하는 것 같은 이 시는 팽이를 돌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화자가 그 속에서 발견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상을 자신의 삶에 적용함으로써 그간의 수동적인 삶에서 탈피하려는 진지한 생활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팽이 돌리기는 어른들에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놀이이자, 돌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속성을 갖고 있는 놀이로서, 화자는 팽이가 도는 것을 단순히 유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음으로써 팽이는 곧 화자의 모습을 의미한다.

또한, ‘장난’은 진지함과 상반되는 행위로 도시적, 관습적인 대상의 인식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일상의 상투성에서 벗어난 새로움을 의식하는 행위인 어린이들의 팽이 놀이를 바라보는 순간, 화자는 ‘살아가는 것이 신비로울’ 뿐 아니라,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이는’ ‘별세계’ 같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제목 <달나라의 장난>으로 제시된 이 팽이 놀이는 일상의 현실적 가치와는 구별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상을 표상하게 된다. 현실 세계의 팽이 놀이에서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새로운 관념 세계를 발견한 화자는 돌지 않는 팽이는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자세로 변모된다. 다시 말해,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화자가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항상 답보(踏步) 상태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게 된다. 이런 화자의 모습과는 달리,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도는 팽이는 마치 ‘수천 년 전의 성인’ 같은 모습으로 화자에게 각인됨으로써 ‘제트기 벽화’․‘비행기 프로펠러’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생활하지 못한 자신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 준다. 그러므로 팽이는 줄기차게 돌아가면서 ‘스스로 도는 힘’을 갖도록 화자의 의식을 자극할 뿐 아니라, 나아가 독자 모두의 의식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

- 김수영

 

……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죽은 영혼’이라는 뜻의 제목이 암시하듯 자유와 정의가 활자로만 존재하는 부도덕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시인 자신의 영혼을 자책하고 비판하는 작품이다. 자유와 정의가 실제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 사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 사회라 할 수 없으며,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진리도 참된 진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화자는 ‘예언적 지성’으로 불리는 시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소시민적 지식인으로 전락해 버린 자신의 영혼을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여긴다.

현실의 부도덕성을 누구보다 깊이 통찰하고 있으면서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분노는 현실과 자아 일체를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그것은 지식인 모두의 반성을 촉구하고 비판과 저항의 정신이 용출(湧出)하기를 희망하는 화자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화자가 파악하는 현실은 자유와 정의가 상실된, 책으로만 위장되어 있는 거짓된 세계이다. 이러한 현실 세계의 부도덕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행동화하지 못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분노는 결국 현실과 자기 자신 모두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거짓된 현실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겠다고 다짐해 보기도 하지만, 그 행동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수반하는 것임을 아는 화자는 다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라며 절망할 뿐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솔직한 자기 반성의 모습을 반복, 강조함으로써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 모두의 타협적 행동을 준엄하게 추궁함은 물론, 나아가 그들에게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는 주술적 힘을 보여 주기도 한다.

성격 : 주지적, 비판적

심상 : 시각적 심상

어조 : 자유와 정의가 실종된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는 자아를 반성하는 자성적 어조

특징 : 일상적 어휘와 독백적 진술을 사용하여 자유와 정의가 소멸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지식인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 구성 : 수미쌍관의 구성

① 활자로만 존재하는 자유와 죽어 있는 나의 영혼(제1연)

② 침묵만 지키고 있는 자아 반성(제2연)

③ 고요한 현실에 대한 불만(제3연)

④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만(제4연)

⑤ 죽어 있는 나의 영혼에 대한 자괴감(제5연)

▶ 제재 : 부도덕한 현실과 지식인의 죽은 영혼

▶ 주제 : 불의에 적극 항거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자기 반성

 

<연구 문제>

1. 다음 시에 나오는 밑줄 그은 말과 의미가 통하는 시어를 위 시에서 찾아 쓰.

규정할 수 없는 물결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폭포’>

<모범답> 자유

2. 이 시에서, 자유와 정의가 부재하는 거짓된 공간, 곧 타락한 사회를 표현한 구절을 찾아 쓰라.

<모범답>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

3. ㉠에 쓰인 수사법을 말하고, 내포적 의미를 설명하라.

<모범답> (1) 반어법

(2) 불의에 항거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비겁함을 비판

 

<감상의 길잡이>

일반적으로 김수영의 시 세계는 정직과 사랑과 자유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세 개념은 별개로 존재한다기보다 상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는 독자에 따라 정적으로 자유와 사랑을 말하기도 하고, 자유로써 정직과 사랑을 포괄하기도 한다.

󰡔사령(死靈)󰡕의 핵심어는 ‘자유’이다. 그런데 그 자유는 시인이 일상 생활에서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적의 활자로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근대 민주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규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가 활자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비민주적 사회라는 지적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인석하고 있는 화자(시인)는 자유가 억제된 독재 정권에 항거하지 못하는 자신의 영혼을 죽은 것으로 여긴다. 흔히, ‘예언적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작가와 시인은 독재자의 부도덕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의 사회의 구현을 위해 신명(身命)을 바칠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실은 독재 정권에 기생(寄生)하여 개인의 부귀와 영달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사회이다. 자유를 말하는 벗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자는 자신의 비겁함을 고백한다. 이것은 자신의 비겁함과 소심함을 자책하는 의미로 읽힌다.

화자가 파악하고 있는 현실은 자유와 정의가 보재한 거짓된 공간이다. 거짓된 공간은 외면적인 고요로 위장되어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따라서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격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행동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수반한다. 이런 현실에 화자는 절망하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희망하는 자유와 정의가 보장된 사회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일까? 제1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면서 종결되는 이 시의 결구는 화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준다. 그것은 나와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현실 개혁의 운동에 앞장서자는 비판적 지식인의 솔직한 자기 반성의 태도이다. 이런 자기 반성적 태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자유와 정의는 서적 속의 관념에서 현실의 가치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소월

 

우리말의 아름다움 살린 김소월

김소월(1902-1934)을 빼고 우리 시를 논할 수 있을까?

한국 근대시를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김소월이라는 이름 석자는 반드시 거쳐가지 않으면 안 될 필수 코스 같은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그의 시는 우리 주변에서 대중적인 폭넓은 이해와 사랑을 동시에 얻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역대 앙케이트 표본 조사 자료를 검토해 보면, 그는 거의 매번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하나로 손꼽혀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런 결과가 다소간 부풀어진 측면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월의 시는 제대로 읽어보지 못 했을망정,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그의 문명(文名)을 접해 본 사람들의 경우 본인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기 어색한 심사에서 ‘나의 애송시인=김소월’이라는 편리한 도식 위에 잠시 스스로를 맡겨 버린 경우도 결코 적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족시인 김소월 신화의 형성 과정에는 순전히 풍문만을 듣고 모여든 이와 같은 불특정 다수의 허수 독자들의 참여가 크게 작용하였던 것도 사실이리라. 그렇다면 그의 시가 가진 마력은 과연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들을 그 답으로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의 시의 주조를 이루는 여성 편향성과 이별의 정한, 대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 좌절로 이어지는 낭만적 인식 구조 등은 우리 민족 본래의 기본 정조와 닿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널리 알려진 「진달래꽃」을 위시하여 「접동새」,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못잊어」 등 소월 시의 대부분은 어떤 메꾸어질 수 없는 간극,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에서 비롯되는 그리움 같은 것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것은 곧 그의 시가 우리 사회의 기층을 이루는 민중들의 삶과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뜻한다. 동시에 그것은 일제 치하 망국민으로서 민족 전체가 겪어야만 했던 수난이나 설움과도 일정 부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변인(outside)적인 인식과 태도는 일단 전통적인 것에 근거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시대사적인 측면에서 재해석할 때 더욱 그 의미가 뚜렷하게 부각될 수 있다. 그의 시가 당대는 물론 후대 독자들에게까지 폭넓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로 바로 이러한 측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별, 그리움 등 민족의 전통적 정서와 가락 표현한 시 써

둘째, 그의 시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서와 가락의 맥을 잇고 있으며, 동시에 근대적 발상 및 양식, 조어법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에서 그 나름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주고 자신의 출신 지역인 서도(평안도) 지방을 중심으로 구비 전승되어 내려오는 민요와 잡가를 수집하여 이를 새롭게 재창작해 냄으로써 시대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시형(민요조 서정시)으로 발전시켰다.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 볼까요

 

창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눈물은 새우잠의

팔굽 베개요

봄꿩은 잠이 없어

밤에 와 운다

 

두 동달이 베개는

어디 갔는고

언제는 둘이 자던 베개 머리에

죽자사자 언약도 하여 보았지 ― 「원앙침」 일부

 

3음보의 기본 음보와 7·5조의 기본 음수율을 보이고 있는 이 시는 소월이 자주 사용하던 민요조 서정시의 한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전술한 ‘원앙침’ 외에도 우리들에게 익숙한 ‘가는 길’, ‘산’, ‘팔베개 노래’ 등의 작품은 전통적인 율조와 가락에 바탕을 두고 이를 새롭게 재창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그는 재래의 민요가 갖는 운율 상의 정직성으로부터 탈피하여, 다양하고도 융통성 있는 변형과 파격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측면은 그로 하여금 스승인 안서 김억(金億)의 그늘에서 벗어나 우리 시사에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셋째, 그의 시는 그간 자주 사용되었던 한자어나 생경한 외래어의 사용을 가능한 한 배제하는 대신,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던 고유어, 토착어들을 발굴하여 이를 갈고 닦아 그것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펼쳐 보여 주고 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 「접동새」 일부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嶺) 넘어 가려고 그래서 울지 ― 「산」 일부

 

퍼르스럿한 달은, 성황당의

데군데군 헐어진 담 모도리에

우둑히 걸리었고, 바위 위의 가마귀 한 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 「찬 저녁」 일부

 

전통적인 가락 변형시키고,

고유어· 토착어 사용해 우리말의 아름다움 살려

 

위의 인용시들에 사용된 ‘불설워’(-「접동새」), ‘시메 산골’(-「산」), ‘데군데군’, ‘담 모도리’(-「찬 저녁」) 등의 시어는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이 가진 아름다움을 가장 수준 높은 차원에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후대 시인인 정지용, 서정주 등과 더불어 한국 시의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한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상에서 지적한 사항들과 함께 어떤 무엇보다도 소월 시가 갖는 가장 큰 장점 은 청소년층으로부터 중장년,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연령에 구애됨이 없이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와 함께 널리 국민적 애송 시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용운, 윤동주 등의 시가 상대적으로 청소년 독자층에 치우친 것과는 구별되는 면이다. 우리 모두에게 소월이 진정한 국민 시인, 민족 시인으로 칭송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

* 글쓴이 : 김유중 / 1965년생, 서울대, 카톨릭대 강사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개벽󰡕 25호, 1922. 7)

* 즈려 : 살짝 눌러 발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평안북도 사투리)

1922년 ‘개벽’지에 발표된 소월의 대작으로 고려가요[가시리]와 접맥되어 있다. 시의 경향은 유교적인 휴머니즘이며 4연으로 짜여진 민요조의 자유시, 님과의 이별의 한을 전통적 정서로 표현하고, 동어를 반복하여 씀으로써 청각적 리듬 감각을 살린 작품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 정한을 체념으로 정화시킨 유교적 휴머니즘이 기본바탕이 된 이 시의 주제는 이별의 설움과 한이다.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소월의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인구에 회자(人口膾炙)하는 명작의 하나다.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순수 서정이 시 속에 깊게 깔려 있다. 또한, 음악성과 사투리가 주는 향토적 정감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보내고 싶지 않은 여인의 내심이 어디에 있는지 포착해 보고, 행간에 서려 있는 ()’의 본질은 어떤 감정인가를 구명(究明)해 보자.

성격 : 토속적, 민요적

어조 : 여성적 어조

경향 : 유교적 휴머니즘

미감 : 애상미(哀傷美)

운율 : 3음보의 율격, 각운

표현 : 반복적인 리듬과 음악성이 돋보임

특징 : 토속적 사투리와 사랑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처리한 서정시의 백미

순종의 미덕이 잔잔하게 깔려 있으면서 내면으로는 여성의 강한 만류의 뜻이 담겨 있음.

▶ 구성 : ① 1연 : 이별의 정한

② 2연 : 떠나는 임에 대한 축복

③ 3연 : 원망을 초극한 헌신적 사랑

④ 4연 : 슬픔의 극복

▶ 제재 : 진달래꽃

▶ 주제 : 승화된 이별의 정한

 

<연구 문제>

1.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리겠다는 것은 그 행위가 지니는 표면적인 의미와 내면적 진실이 상반된 것일 수 있겠다. 그 상반된 의미를 설명해 보라.

☞ 표면적으로는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그 걸음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의 의미를 지니지만, 내면적으로는 차마 나의 사랑을 짓밟고 가시지는 못하리라는 만류의 뜻이 담겨 있다.

2. 에는 한국 여인의 인고(忍苦)의 정신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태도와 관계가 깊은 4자의 한자 성어를 쓰라.

☞ 哀而不傷 (또는 哀而不悲)

3. 이라고 말한 이유를 35자 정도로 쓰라.

☞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슬픔을 이지적으로 참아, 임의 가시는 발길에 축복을 보내고 싶은 화자의 임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다.

4. 이 시와 고려 가요 󰡔가시리󰡕에서, 작품 속의 화자가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를 한 문장으로 쓰라.

☞ 󰡔진달래꽃󰡕의 화자는 이별의 슬픔을 역설적으로(극적으로) 드러낸 반면, 󰡔가시리󰡕의 화자는 그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

승화된 이별의 정한(情恨)이라고 일단 이해할 수 있는 이 시의 주제는 전통적 시가인 󰡔가시리󰡕나 황진이의 시조 어저, 내 일이야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달래꽃󰡕에서 그러한 주제를 이끌어 내는 것만으로 작품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듯한 이 시적 진술 속에는 한마디로 단정되기 어려운, 아주 미묘하고 야릇한 감정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여성으로 짐작되는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 적어도 결코 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진심을 그 속에 숨겨 놓고 있다. 표면적인 과장과 허세가 역설적으로 그의 내면적 진실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 특유의 과장은 제2,3연에서 확인된다. 임이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뿌릴 테니 그것을 즈려 밟고 가 달라고 화자는 말한다.

떠나가는 사람 앞에 꽃을 뿌린다는 것은 물론 비현실적인 행위이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이 변한없다는 데 있다. 그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花功德)’ , 임의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그 걸음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표면적인 뜻에 매달려 시를 이해할 때, 우리는 거기서 한 여인의 비현실적이고 싱거운 포부밖에는 발견하지 못한다. 이 축복의 이면에는 오히려 가겠다는 임을 강력히 만류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양하(李敭河) 교수는 소월의 진달래와 예이츠의 꿈에서 그가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B.Yeats, 1865-1939)하늘 나라의 옷을 읽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예이츠의 은 소월의 진달래에 상응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가진 모든 것 즉, 혼신의 사랑을 의미한다. 특히, 진달래는 그것이 지닌 붉은 색감에 의해 불타오르는 사랑의 이미지를 환기시켜 준다. 그리하여 사뿐히 즈려 밟고라는 말은 나의 사랑을 무참히 짓밟지는 말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화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사랑이 여성화된 꽃의 이미지를 통해 표현된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 김소월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시메* 산골

영 넘어 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 길은

칠팔십리

도라 서서 육십리 가기도 했소

 

불귀*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히 속이라 잊으렷만

십오년 정분을 못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개벽』40호, 1923.10)

 

* 시메 : 깊은 산골 지방.

* 불귀(不歸) :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뜻. 또는 죽음을 의미.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민족의 보편적 정서를 민요조에 담아 노래한 이 시인의 특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닌 소월에게는 그의 발길이 머문 곳은 정들여 살던 곳이라 모두 고향이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항상 그곳을 잊지 못하고 뼈저리게 사랑하는 것이다. 체념해야 할 입장에 있으면서도 미련을 가짐으로써 시적 화자의 슬픔은 정한의 의미로 표출된다.

소월의 애절한 향수를 노래한 시편에는 󰡔삭주구성󰡕, 󰡔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 󰡔여수2󰡕 등이 있는데, 어느 경우에서나 고향을 그리는 질기고 또 변함없는 시정을 엿볼 수 있다.

성격 : 민요적, 향토적

운율 : 3음보의 율격

특징 : 반복적인 리듬감, 대화체의 친밀감

▶ 구성 : 기·승·전·결의 구성

① 기(1연) : 산새의 울고 있는 모습

② 승(2연) : 눈길의 여정(旅程)

③ 전(3연) : 떠나기를 주저하는 심정

④ 결(4연) : 잊을 수 없는 삼수갑산

▶ 제재 : 산새

▶ 주제 : 임을 만나지 못하는 정한과 비애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은 제4연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반복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시적 의미를 20자 내외로 쓰라.

☞ 삼수갑산에 돌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2. 이 시에서 과 같은 의미로 쓰인 말을 찾아 쓰라.

☞ 삼수갑산

3. 이 시에서 산새의 현실적 고뇌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시어를 찾아 쓰라.

고개()

4. 이 시에서 전래 동요적인 요소가 나타나 있는 연은 어느 연인가?

☞ 제1연

 

<감상의 길잡이>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와 오리나무 위의 새가 비슷한 정황에 놓여 있다. 오리나무 위에서 우는 새는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깊은 산이 그리워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높은 고개를 넘어야만 갈 수 있기에 가지 못하고 울고 있다. 시적 화자도 정든 삼수갑산을 떠나 있으나, 고향이나 다름없는 그곳을 못 잊어 마음 속으로 울고 있다. 첩첩이 쌓인 눈길을 칠팔십 리나 걷지만 오히려 마음은 십오 년의 정분을 차마 못 잊어 뒷걸음쳐서 되돌아간다. 그러나 삼수갑산을 가는 길은 고갯길로 뻗어 있고,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이 시에서 ()’은 넘을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가려는 데 시적 화자의 슬픔이 있고 한이 있다.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깊은 산 속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산새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삼수갑산이기에 지나온 세월의 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합치되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는 자연에 대한 동경과 현실 생활에 대한 미련이 어우러져 화자가 겪는 내면의 갈등을 이룬다.

이 시에서 특징적인 것은 시의 리듬이다. ‘위에서’, ‘울다’, ‘왜 우노’, ‘그래서 울지에서 드러나는 ()의 연속은 운의 효과를 드러낸 것이다. 또한, ‘산에는 / 오는 눈 / 들에는 / 녹는 눈의 대구 형식은 민요시의 특징인 반복적 리듬감을 보인 것이다.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다면

- 김소월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 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 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 가나니, 볼 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느란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산경을 김매이는.

(시집 󰡔진달래꽃󰡕, 1925)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김소월의 시는 흔히 비애와 정한의 전통적 정서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비애와 정한은 임이 없은 상황에서 비롯되었고, 초기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나 1930년대를 지나면서는 강한 현실 의식을 드러낸 시들이 나타난다.

이 시는 1925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소월의 현실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작품으로 민족이 당면한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성격 : 저항적, 의지적, 참여적

어조 : 의지에 찬 남성적 어조

▶ 구성 : ① 1연 : 잃어버리고 없는 행복한 삶

② 2연 : 집과 땅을 잃은 슬픈 역사

③ 3연 : 희망이 없는 고통과 절망의 정황

④ 4연 : 미래 지향적인 희망의 제시

▶ 제재 : 빼앗긴 국토

▶ 주제 : 현실 극복의 의지

 

<연구 문제>

1. 이 시의 정서는 소월의 시에서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정한의 세계와는 다르다. 진달래꽃에서 드러나는 정서와 비교하여 그 정서면의 차이점을 35자 정도로 쓰.

☞ 「진달래꽃」은 임이 사라진 시대의 바장한 감회를 노래한 데 반해, 이 시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체념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강력히 표출하였다.

2. 이 시는 시상의 흐름에 따라 제1-3연과 제4연의 두 단락으로 구분되고, 어조상의 변화가 드러난다. 그 변화의 특징을 간단히 쓰라.

☞ 절망적 목소리에서 의지적 목소리로 전환된다.

3. 이 시에서 문장의 호응이 잘못된 문장을 찾아 쓰라.

☞ 자칫 가느른 길이 이어가라.

(자칫은 ‘ -을 -ㄹ뻔하다’와 호응)

4. 이 시와 관련된 다음 글의 ( ), ( ) 각각에 들어갈 말을 쓰라.

☞ ㉠ : 임, ㉡ : 땅

소월은 국민 시인으로 불릴 만큼 그의 시는 널리 애송되고 있다. 그의 시가 민요에 바탕을 두고, 민족의 호흡과 가락과 정서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는 그러한 서정의 세계에서 눈을 돌려, 사회와 역사의 반영으로서, 사회적, 시대적 현실을 노래하였다. 그것은 원심력을 가지고 그의 내면의 시와 함께 공감의 폭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 )’ 없음의 한()에서 ‘( )’ 없음의 한으로 확대된 것이다.

<감상의 길잡이>

인간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땅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터전이다. 삶의 터전인 땅을 상실하였을 때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의 삶은 바로 땅을 잃어버린 절망적인 삶이었다. 이 시는 이러한 땅이 없는 슬픔을 노래한 작품이다.

소월은 나라를 잃고, 땅도 잃어버린 암담한 현실 속에서 나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서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평범한 농부의 한 사람이 바라는 소박한 꿈이 집을 상실하였기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씨 뿌리고 가꿀 땅을 잃고 끝이 없는 방황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체념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강력히 표출하고 있다. ‘나는 나아가리라. / 한 걸음, 또 한 걸음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단호한 의지는 고난을 극복하려는 미래 지향적 전망을 제시한 것이다.

흔히 소월의 시가 드러내는 어조는 여성적이며 애조를 띤 연민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러한 서정의 세계에서 눈을 돌려 사회와 역사의 반영으로서의 현실을 노래하였다. 이것은 그의 내면의 시가 공감의 폭을 널리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맥락 읽기>

1. 화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 농사짓는 사람

2. 그것을 짐작할 수 있는 시구는?

☞ 벌 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 저 저 혼자…… 산경을 김매이는

3. 내가 즐거이 여기는 꿈은?

☞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벌 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즐거이, 꿈 가운데.

4. 그런 꿈에 비해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 집을 잃고 땅도 없어 아침 저녁으로 떠돈다. 그래서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긴다.

5. 그것을 짐작할 수 있는 시구는?

☞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 손에 /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6. 이러한 현실은 나 혼자만 겪는 것인가? 짐작할 만한 시구를 찾아보자.

☞ 우리 모두가 겪는 현실이다.

☞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7. 이러한 삶에 대한 나의 심정은 어떨가?

☞ 절망적이다. 슬프다.

8. 그러한 삶에 대한 화자의 심정이 은근히 나타나 있는 시구는?

☞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9.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것을 짐작하게 하는 시구는?

☞ 현실을 이겨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 자칫 가느란 길이 이어가라. / 나는 나아가리라 / 한 걸음, 또 한걸음.

10. 나 혼자서만 그렇게 행동하는가? ☞ 아니다.

11. 그것을 짐작할 수 있는 시구는?

☞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12. 그들이 하는 일은?

☞ 새벽 일찍부터 나와 산에 있는 땅이라도 일구려고 한다.

 

 

 

산유화(山有花)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영대」 3호(1924), 시집 󰡔진달래꽃󰡕,1925)

* 갈 : 가을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1923개벽’ 10월호에 발표된 시로 4연으로 구성된 자유시로써 소월의 󰡔진달래꽃󰡕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쉽고 간결한 가락, 소박하고 친근한 구어체, 보편적인 정감을 순수한 모국어와 전통적인 3음보의 가락에 담아 표현함으로써 폭 넓은 전달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 시에서 순수하고 아름답고 외롭게 살아가는 자신을 산유화를 통해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우리는 진실된 소월의 인간상을 엿볼 수 있다.

인간사가 전혀 배합되지 않는 듯하면서도 고도의 상징성과 시인의 존재 의식이 면밀히 담겨 있음을 유의하면서 가락에 맞추어 암송해 보자.

성격 : 민요적, 전통적, 관조적, 낭만적

시상 전개 : 탄생고독사멸

▶ 구성 : ① 1연 : 자연의 순환

② 2연 : 고독한 자아의 운명적인 모습

③ 3연 : 고독을 긍정하는 운명에의 모습

④ 4연 : 자연의 운행과 순환

▶ 제재 : 빼앗긴 국토

▶ 주제 : 현실 극복의 의지

 

<연구 문제>

1.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어떤 점에서 화자의 정서와 비슷한가 설명해 보라.

☞ 여러 꽃들이 떠나서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사람들을 멀리하고 혼자서 산 속에 살고 싶어하는 화자의 고독한 정서와 일치한다.

2. ‘봄 여름 가을 없이를 계절상의 순서를 무시해 가면서까지 갈 봄 여름 없이라고 한 까닭은 무엇인가 설명해 보라.

☞ 운율상의 고려 때문

3. 시적 화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시어를 찾아 쓰라.

☞ 새

4. 이 시에 나타난 화자의 심경을 60자 정도로 쓰라.

☞ 화자는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과 합일되고 싶어하나 그러지 못하는 데에서 안타까워 한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제1연과 제4연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단순한 사실과 시의 배경을 제시하고 있을 뿐, 시 해석상의 특별한 단서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잘 살펴보면, 2,3연에 사용된 낱말 가운데는 단순히 객관적인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을 표시하는 것과 시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 ‘피다’, ‘살다는 전자를 대표하는 낱말들이고, ‘저만치 혼자서좋아는 후자를 대표하는 낱말들이다.

서정시가 객관 세계의 어떤 대상을 통해서 얻어진 시인의 감흥의 표현이라 할 때, 우리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어떤 것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는 무엇보다 꽃이 저만치 혼자서피어 있다는 표현과 작은 새가 꽃이 좋아산에서 산다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면 꽃이 저만치 혼자서피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논자에 따라서는 소월이 저만치라고 지적한 거리는 인간과 청산과의 거리인 것이며, 이 말은 다시 인간의 자연 혹은 신에 대한 향수의 거리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만치를 시인과 자연과의 정서적인 거리로 이해하는 것은 타당할까? 무엇보다 제3연이 그러한 해석을 거부한다. ‘는 시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그 새는 꽃이 좋아산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만치는 시인과 꽃과의 거리라기보다는 산에 피어 있는 꽃들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러 꽃들을 떠나서 저만치 혼자서피어 있는 꽃은 시인의 고독한 운명을 발견케 하는 매개물이지 자연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 그 외로움의 길은 자신이 좋아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만치 혼자서라는 위치 측정은 타인과의 세계에서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키고, 인생을 정면에서 대결하며 살지 못하게 하여 항상 수동적인 자세로 살게 만든다. 그것은 숙명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저만치 혼자서피었다 지는 꽃에서 자신 또는 인간이 어차피 고독하게 태어났다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초혼()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너도 주인(主人)업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듸는

끗끗내 마자하지 못하엿구나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니웟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떠러저 나가 안즌 산(山) 우헤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

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 가지만

하눌과 땅 사이가 넘우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여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시집 󰡔진달래꽃󰡕, 1925)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비탄을 노래한 절정의 시로 소월의 대표작의 하나인 이 작품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처절한 슬픔을 노래한 시로서 살아서도 사랑을 짓밟기 쉬운 세상에, 이 시는 죽은 뒤에 더욱 그리운 사랑을 노래했다. 또한 치유될 길이 없는 세계와의 단절을 절감하면서도 단절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소월의 숙명적 슬픔을 엿볼 수 있다.

‘초혼’의 외치는 소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공허감을 환기한다. 저승으로 뻗치는 사랑의 소리, 유계(幽界)까지를 현실화한 이 시의 주제는그리움이라 하겠다.

절절한 사랑에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끝내 그 마음을 다하지 못해 절규하는 안타까움이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가를 알아본다.

2. 성격 : 애상적, 감상적, 전통적, 격정적

3. 경향 : 혼백을 부르는 고복(皐復) 의식이 강함

4. 운율 : 3음보의 율격

5. 어조 : 의지적이며 절규적인 어조, 직접적인 영탄조, 여성적 어조

6. 표현 : 자아의 내면의 간절한 절규가 애절하게 표출됨

7. 관련 설화 - <망부석 설화> *망부석과 관련된 부전가요 - <치술령곡>

8. 시상의 전개

* 제1연 - 육신 없는 이름을 부르는 슬픔

* 제2연 -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회한

* 제3,4연 - 광막한 공간 · 어둠 앞에 선 허무감

* 제5연 - 슬픔의 응집

9. 제재 : 사별한 임

10. 주제 : 사별한 임에 대한 그리움

 

<연구 문제>

1. 에는 화자의 어떤 결의가 드러나 있는가?

☞ 임의 상실을 상실로 보지 않겠다는 결의

2. 화자와 임과의 거리, 또는 임이 없는 이 세상의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을 나타낸 시행을 찾아 쓰라.

☞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3. 사랑의 절규가 가슴 저리게 북받쳐 무엇으로도 풀릴 길 없는 응어리진 슬픔이 되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시어를 찾아 쓰라.

4. ‘부서진 이름, 헤어진 이름, 주인 없는 이름등을 통하여 점층적으로 그 뜻을 강조시킨 의미를 시대 상황과 결부시켜 그 대상이 되는 것을 한 단어로 쓰라.

☞ 조국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화자는 붉은 해가 서산 마루에 걸린 저녁 무렵 멀리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그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대는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이었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심중에 있던 말 한마디를 끝끝내 들려 주지 못했다. 바로 그 사람이 죽고 없다.

몸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그 이름은 주인이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머지 않아 임이 없는 적막한 밤이 올 것이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화자에게 이 세상은 너무도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라는 말은 바로 임이 없는 이 세상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하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 사이는 임과 나, 죽음과 삶의 거리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이 공허함 속에서 설움에 겹도록 임의 이름을 외쳐 불러 보지만, 그 소리는 허공을 비껴 갈 뿐이다. 이 슬픔의 끝에 그는 선 채로 돌이 될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 무엇으로도 풀릴 길 없는 응어리진 슬픔이 이 의 이미지에 함축되어 있다고 하겠다.

옛날 치술령 고개 마루에 서서 일본으로 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박제상의 아내에 얽힌 망부석 전설과 행상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정읍사를 부르고 선 채로 망부석이 되었다는 백제 여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가는 길

- 김소월

 

그렵다

말을 할ᄭᅡ

하니 그려워

 

그냥 갈ᄭᅡ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져 산(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압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ᄯᅡ라오라고 ᄯᅡ라가쟈고

흘너도 년다라 흐릅듸다려*.

(󰡔개벽󰡕 40호, 1923.10)

 

* 가마귀 : 비관적인 생의 인식을 반영하는 정서적 상관물

* 강물 :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과 삶의 표상

* 흐릅디다려 : ‘흐릅니다그려’의 준말.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전통적인 3음보의 율격을 기본으로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인 정한(情恨)의 세계를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차마 헤어지기 어려운 상황을 설정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을 이루며 전개되는 사랑과 인생의 근원적 원리를 보여 준 작품이다.

성격 : 전통적, 민요적

운율 : 3음보의 율격

특징 : 간결한 구조와 탁월한 언어 구사

유음, 비음, 모음으로 된 시어의 사용으로 음악적 효과를 거둠.

구성 : 그리움의 내면적 갈등(1,2)

떠나기를 재촉하는 외면적 상황(3,4)

제재 : 가는 길

주제 : 이별의 아쉬움과 그리움

 

<연구 문제>

1. 아래에 인용된 한시와 󰡔가는 길󰡕의 구성상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가는 길󰡕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지니는 시적 의미를 서술하라.

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

今春看又過

何日是歸年

☞ 한시의 절구는 선경 후정(先景後情)의 구성법을 취했고, 󰡔가는 길󰡕은 이를 역으로 활용하였다. 전반부는 그리움의 내면적 갈등을, 후반부는 이별을 재촉하는 외면적 상황을 표현하였다.

2. 이 시에서는 화자의 삶의 인식을 반영하는 소재로 ‘까마귀’와 ‘강물’이 제시되어 있다. 두 소재의 대비되는 차이점을 서술하라.

☞ ‘까마귀’는 내면의 정서를 이입한 소재이며, ‘강물’은 떠아는 임의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다.

3. ㉠과 ㉡에 공통적으로 함축된 의미를 두 어절로 쓰라.

☞ 떠남의 재촉. (시간의 긴박성)

4. 이 시의 마지막 연에는 유음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음의 구사를 통하여 강조되는 시적 의미를 10자 이내로 쓰라. ☞ 강물 흐름의 지속성

5. 대상이 내면화되면서 주객(主客)의 융합이 이루어진 시행을 찾아 쓰라.

☞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감상의 길잡이>

· · · 결의 전 4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내용상 다시 전반부(1,2)와 후반부(3,4)로 나누어 볼 수 있게 한다. 전반부에서는 그리움과 망설임이 뒤얽힌 화자의 내면적 갈등이 드러나 있고, 후반부에는 그러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적 배경이 제시되어 있다. 이는 한시의 이른바 선경 후정(先景後情)의 구성법이 도치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겠다.

아마도 이 시의 제3,4연에 나오는 까마귀의 지저귐이나 물의 흐름은 날이 저물고 시간이 계속 흘러 간다는 자연적 배경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지 모른다. 그러나 달리 이해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임과 이별해야 할 순간이 오면 누구나 미련과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해가 져서 헤어져야 할 시간, 안타까운 심정을 직접적으로 진술하는 대신 까마귀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해 낸 제3연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까마귀가 화자의 모습으로 읽힐 수 있다면 제4연의 흐르는 물은 떠나가는 임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 임이 흐르는 물처럼 떠나가면서 어서 따라 오라고손짓하는 것은 아닐까?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떠나는 이 순간에나마 불쑥 던져 보고 싶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회한과 자책과 아쉬움에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을 터이다.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개벽󰡕 19호, 1922.1)*

 

<감상의 길잡이>

가난한 나무꾼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날 나무에 치인 요정을 도와준 그는 산신령으로부터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된다.나무꾼은 아내와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하고 급히 산에서 내려온다.그러나 그들에게는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서 해가 저물도록 세가지 소원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마침 이웃집에서 순대굽는 냄새가 풍겨오자 아내는 무심껏 순대하나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그러자 순대 한 대가 하늘에서 떨어진다.화가 난 나무꾼은 아내를 향해서『평생 그놈의 순대를 코에다 달고 살라』고 욕을 한다.이번에는 순대가 아내의 코에가 붙었다.이렇게 되어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 소원은 그 순대가 아내의 코에서 떨어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결국 그들이 산신령으로부터 얻게된 것은 먹을 수조차 없는 순대 하나가 되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현실욕망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데 곧잘 인용되어온 유명한 전래동화이다.크든 작든 우리가 현실 속에서 추구하고 있는 욕망 그리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산물이란 대개가 다 이 동화 속에 나오는 허망한 순대와 다를 것이 없다.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은 그 뻔한 이야기의 되풀이가 아니라 그 뒤 나무꾼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그 속편이다.만약 그 가난한 나무꾼이 그뒤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속편은 동화가 아니라 시로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동요와도 같은 김소월의 시『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를 읽어보면 그 같은 상상이 결코 비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지 모른다.

 

그렇다.『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의 그 시구는 손 안에 싸늘하게 식은 순대 하나를 들고 서 있는 나무꾼의 새로운 소원처럼 들린다.『살자』라는 한국말처럼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치열한 의지를 나타내는 말도 드물 것이다.구애를 할 때 한국 사람은 서양 사람들처럼『아이 러브 유』라고는 하지 않는다.그냥 『살자』라고 말한다.그리고 한국인에게 있어서 어떻게 사느냐하는 삶의 문제는 바로 어디에서 사느냐의 삶의 장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청산에 살어리랐다』의 고려가요와『서울에서 살렵니다』의 오늘의 대중가요에는 천년 이상의 시차가 있지만 삶의 욕망을 공간으로 표현해 주는 그 방식은 달라진 것이 없다.이렇게『살자』라는 말 속에는『누구』와『어디』라는『인간』과『공간』의 두 욕망이 숨어 있다.더구나『강변에 살자』가 아니라 처격조사『에』마저 빼어 버려『강변살자』라고 한 이 시구는 하나의 공간이 삶 그 자체의 목적으로 나타나 있다.욕망은 결핍과 부재에서 나온다.『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라는 말은 곧 화자가 현재 강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진술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말하자면 강변의 자연 공간과는 정반대인 문명 공간일 것이며,동시에 그것은『엄마 누나』와 대립되는『아빠 형님』의 근육질의 남성 공간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엄마야 누나야』라는 말투에서 드러나 있듯이 그 욕망의 주체자는 어린 아이로 되어 있지만 그 진짜 주체자는 바로 이 시를 쓴 시인 김소월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니까 이 시의 특성은 어른이 어린시절의 시점을 통해서 즉 미래의 시간(살자라는 미래의 바람)을 과거의 시간을 기점으로해서 말하고 있다는 데 있다.강변이 현실 공간이 아니듯이 화자로서의 어린이 또한 현실의 주체자가 아니다.그러고 보면 엄마와 누나 그리고 강변은 말할 것도 없고 살자라고 말하는 욕망의 주체자마저도 부존한다.

이 부재하는 욕망의 공간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그것이 시인의 특권인 이미지라는 힘이다.거기에서『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탄생된다.여기의 뜰이 전방성과 수평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뒷문밖에는』이라는 대구에 의해서 명확히 드러난다.즉 뜰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뒷문 밖에는 산이 솟아 있다.앞과 뒤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 그리고『뜰』은 열려져 있는 세계를 그리고 뒷『문』밖은 닫혀져 있는 세상을 보여 준다.그러한 이항적 대립을 더욱 첨예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금모래 빛』과『갈잎의 노래』의 대조이다.『반짝이는』의 의태어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뜰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래는 시각적인 것이다.그래서 모래는 금모래가 되고 빛이 된다.또한 모래의 그 물질적 이미지의 뒤에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뒷문 밖 산을 덮고 있는 것은 모래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이파리들이다.그리고 그것은『금모래빛』의 빛과는 달리『갈잎의 노래』라고 되어 있어 청각적인 것을 나타낸다.앞뒤로 분할되어 있던 공간은『빛』과『노래』의 시각과 청각의 감각 공간으로 대응관계를 띠게 된다.모래에서 태양빛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제『갈잎의 노래』에서는 숨어 있던 바람소리를 듣게 된다.그래서『반짝이는』의 의태어와 짝을 이루고 있는『살랑이는』갈잎의 의성어마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앞과 뒤,개방과 폐쇄,무기물(모래)과 유기물(이파리), 수평성과 수직성(강과 산) 그리고 시각과 청각…음악의 대위법처럼 시의 병렬법(패러랠리즘)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대체 그 살고 싶은 그 공간이란 어떤 것인가.20여자의 이 짧은 시구 안에 상감되어 있는 그 공간은 산의 부동성과 강물의 유동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저 한국 산수화의 공간,뒤에는 청산을 지고 앞에는 강물을 끌어 안고 있는 초가삼간,몇천년 동안 한국인의 마음에 깊숙이 각인되어 온 그 삶의 원풍경인 것이다.그것은 분명 엄마와 누나라는 말로 상징되는 존재의 그 시원적인 모태 공간이다.그리고 그것은 모든 경계를 나타내는 중간 공간이기도 하다.강변에 있는 모래는 땅과 물의 중간적인 물질이 아닌가.모래는 한 알 한 알이 고체이면서도 물처럼 흐르는 유체적 성질을 갖고 있지 않는가.

 

김소월은 우리에게 산수화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아버지와 형님의 남성의 생존공간-빼앗고 피흘리는 경쟁과 금모래 빛이 아니라 네온사인의 빛이 휘황한 쾌락의 문명공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되풀이 할수록 자동차에 치이며 살아가는 문명의 공해에 살아가고 있는 현존공간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된다.소월의 시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존하는 아버지 형님들의 문명적인 공간과 엄마와 누나의 부재하는 자연 공간의 그 틈사이 강변의 모래와도 같은 경계의 그 문지방 위의 긴장 속에서 탄생되고 있는 것이다.<이어녕 교수>

 

 

 

서도 여(西道餘韻)

- 옷과 밥과 자유

- 김소월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베

눌하게 익어서 숙으러졌네

 

초산(楚山)지나 적유령(狄踰靈)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동아일보󰡕, 1925.1.1)

 

<감상의 길잡이>

소월은 <엄마야 누나야>와 같은 소박한 전원시 또는 동시적(童詩的) 경향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류의 애틋한 사랑시, 그리고 <삭주구성(朔州龜城)>, <길> 등의 향토적 서정시, <부모>로 대표되는 가족주의시, <접동새>와 같은 설화적 민속시 모두를 망라하고 있어, 그야말로 서정시의 다양한 세계를 보여 준 시인이었다. 그러나 이 <옷과 밥과 자유> 같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나 저항 의지가 담긴 또 다른 시세계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이 시는 ‘새’․‘곡식’․‘나귀’를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등장하는 시적 화자의 ‘옷과 밥과 자유’를 상실한 절망감과 탄식을 그려내고 있다. 제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어의 선택으로 인해 다소 모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은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새’에서 ‘옷’을, ‘곡식’에서 ‘밥’을, ‘나귀’에서 ‘자유’를 유추시키는 의도적인 구성 방법을 취하고 있다.

새에게는 ‘털 있고 깃이 있’어 마음대로 ‘공중에 떠다니’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옷’ 한 벌 갖지 못한 시적 화자는 한낱 미물(微物)에 불과한 ‘새’보다도 못한 식민지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의 악랄한 토지 수탈 정책으로 인해 농토를 빼앗긴 그들에게 있어서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진 ‘밭곡식’과 ‘물벼’는 이미 그림의 떡일 뿐이다.

또한 ‘초산 지나 적유령 / 넘어서’는 ‘나귀’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시적 화자의 고통스런 모습을 상징한다. ‘너는 왜 넘니?’라는 반문의 마지막 시행에서 굴레와 같은 코뚜레와 ‘짐’으로 표상되는 ‘나귀’를 통해 ‘자유’를 잃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비극적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옷’과 ‘밥’과 ‘자유’라는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살아가던 당시의 식민지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맥락 읽기>

1. 위 시에는 화자가 직접 드러나 있는가?

2. 그러면 이 시는 대상 중심의 시구나? 이 시의 화자가 어디에서 어떤 대상을 보고 있지? 각 연 별로 말해보자.

☞ 1연 : 새, 2연 : 밭곡식, 물베, 3,4연 : 나귀

3. 1연의 새는 어떤 모습인가?

☞ 털이 있고 깃을 가지고 공중에 떠다닌다.

4. 새의 모습을 이렇게 보고 표현한 화자의 심리적 상태를 제목과 관련지어 짐작해 볼 때 지금 어떤 처지일 것 같은가?

☞ 새는 옷이 있고 자유가 있는데 비해 자신은 옷도 자유도 없다.

5. 2연의 곡식은 어떤 모습인가?

☞ 눌하게 익어 숙으러졌다.

6. 4번에서와 같이 표현한 화자의 내면적인 의도는?

☞ 곡식은 이렇게 잘 익었으나 내가 먹을 것은 없다.

7. 3,4 연에서 나귀의 모습은 어떠한가?

☞ 짐 실은 나귀가 초산 지나 적유령 고개를 넘는다.

8. 여기서 나귀의 삶은 어떠하다고 느껴지는가?

☞ 고단하고 구속된 삶을 살고 있다.

9. 그러면 나귀에게는 ‘옷과 밥과 자유’가 주어져 있는 것 같은가? ☞ 그렇지 않다.

10. 위 시에서 본 화자의 처지와 나귀는 어떠한가?

☞ 같다. 그렇다면 화자는 나귀의 모습에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로구나. 시적 대상에 대한 화자의 자기 동일시 뭐 그런 것이 되겠네.

11. 4연의 물음은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 같냐?

☞ 화자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은데요.

12. 그렇지요. 정리하면, ‘내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왜 사나?’하고 말이다.

 

<보충 해설>

간단한 서경 묘사에 소박하나 절제된 탄식과 연민이 깃들어 있으며 직접 옷과 밥과 자유를 애기하지 않으면서 그 결핍을 선연히 드러낸다. 화자는 우선 공중에 떠다니는 새를 가리키면서 사람들이 헐벗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어서 잘 익은 곡식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화자의 그의 이웃들에게 사실상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나그네 임이 분명한 화자는 짐 싣고 재를 넘는 나귀에서 바로 자신의 고단한 모습을 발견한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란 마지막 구절은 예사로운 반문 속에 화자의 고단함과 굴레와 자유 없음의 긴 사연이 간결하게 암시되어 있다. 소월에게 옷과 밥과 자유를 모두 빼앗긴 상황이 헐벗고 굶주리고 자유없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간절 사연이 애사로운 어조로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금잔디

-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 산천에 붙은 불은

가신 임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왓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신 산천에도 금잔디에.

(󰡔개벽󰡕 19호, 1922.1)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1922년 1월 ‘개벽’지에 발표된 시로, 2연의 자유시이며, 전문 9행 25개 단어로 구성된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다.

사랑하는 사람기리의 이별처럼 큰 슬픔은 없다. 이별의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평생을 가신 님 무덤이나 돌아보며 외롭게 살아가는 고귀한 사랑을 지닌 사람에게는 소생의 계절인 봄은 견딜 수 없는 계절일 것이다. 깨끗하고 뜨겁고 아름다운 사랑을 태우고 먼저 간 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자아내는 이 시의 주제는 이별의 슬픔이라 하겠다.

 

 

 

- 김소월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가왁가왁 울며 새였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定州) 곽산(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문명󰡕 창간호, 1925.12)

 

* 가마귀 : 불길한 새. 답답한 분위기를 더해 주는 소재

* 열십자 복판 : ‘ 명의 기로’를 상징

* 바이 : 전혀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목적지를 상실한 나그네의 비애를 소월 특유의 전통적 리듬과 소박하고 일상적 언어, 자문자답 형식의 대화체를 빌어 표현한 시다.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의 서글픈 정한은 현실의 삶에서 낙오된 소월 자신의 근원적 애수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킨다면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의해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유랑의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비애를 대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성격 : 전통적, 애수적, 민요적

운율 : 3음보의 율격의 정형성

어조 : 하소연하는 어조

문체 : 소박하고 일상적인 구어체

구성 : 현실적 상황(1)

떠돌이의 고달픈 신세와 방향 상실감(2,3)

자기 위안과 연민(4)

방향 상실의 비애(5,6)

유랑인의 비애(7)현실적 상황

제재 :

주제 : 유랑인(떠돌이)의 비애

 

<연구 문제>

1. 이 시의 제재인 ‘길’이 상징하는 의미를 두 어절로 쓰라.

☞ 유랑의 길. (삶의 행로, 삶의 여정)

2. 시의 리듬은 동일 음운의 일정한 배열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어두 운(語頭韻)의 운율적 효과를 드러낸 시구 둘을 찾아 쓰라. ☞ 가마귀 가왁가왁, 갈래갈래 갈린 길

3. 이 시에는 나그네의 정서를 드러내는 소재로 ‘가마귀’와 ‘기러기’가 제시되어 있다. 두 소재를 통하여 드러나는 화자의 정서의 차이를 간단히 쓰라.

☞ 가마귀는 화자의 불안 심리를 반영하며, 기러기는 선망의 대상이다.

4. ㉠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심정을 10자 내외로 쓰라.

☞ 안타깝고 절망적인 심정. (수탈당한 민중의 절망감)

5. 이 시에서 의미가 이원적 대립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두 어절로 쓰라. ☞ 방황과 정착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기질적으로 유랑인의 생리를 타고난 소월의 삶의 투영이며, 개인의 정한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월은 실제로 삶의 터전을 찾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영혼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떠돌고 있다. ‘오늘은 / 또 몇 십 리 / 어디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도 없소등의 독백 속에 고향을 상실하고 유랑하는 나그네의 서글픈 심정이 표백되어 있다.

나그네가 가는 길은 끝이 없는 여정으로서 뚜렷한 목적지가 없이 가야 하는 길이고, 당시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실향미의 비애를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은 우리가 평소 걸어 다니는 시골의 오솔길이나 도회지의 보도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비유적으로 쓰이는 인생길이나 운명의 갈림길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인간의 도리나 종교적 진리를 가리키는, 추상적이고도 관념적인 길일 수도 있다. 이 시에서의 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으로 유랑민의 삶의 행로를 표상한다.

특히, 이 시가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 까닭은 우리의 인생이 지상의 현실 속에서 피안의 세계를 갈구하며 살아가는 역려 과객(逆旅過客)으로 존재하는 데 있지 않은가 한다.

기러기(선망의 대상) 공중(희망의 공간)

(목적지가 없음) 열십자 복판(운명의 기로)

 

 

 

 

접동

- 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배재󰡕 2호, 1923.3)

 

* 불설워 : 평안도 사투리로 ‘몹시 서러워’의 뜻.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전설에서 그 제재를 끌어온 작품으로 민요적인 가랄과 정조를 근대시로 살려 놓은 점이 값지다고 할 수 있다. 민요의 대체적인 모티브가 되고 있는 ‘불행하고도 비극적인 생활과 사랑의 정한’, ‘채워지지 않는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그 별리의 정한’ 등이 이 시에 나타나 있다. 진두강 가에 살던 한 소녀가 죽어 접동새로 재생한 것은 혈육의 사랑 때문이라는 휴머니즘적 측면을 살펴보자.

성격 : 전통적, 애상적, 민요적, 향토적

표현 : 의서어를 통해 육친의 정을 표출

구성 : 접동새의 울음 소리(1)

죽은 누나의 울음 소리의 재생(2)

의붓어머니의 시샘에 죽은 누나(3)

죽은 누나와 접동새의 동일화(4)

애절한 혈육에의 정한(5)

제재 : 접동새 설화(서북 지방)

주제 : 현실의 비극적 삶을 초극하려는 애절한 혈육의 정. (식민지 지식인의 허무 의식)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재생을 통한 영원 불멸의 삶을 의미하는 시어를 찾아 쓰라. ☞ 접동새

2. 7·5조는 우리 전통의 가락이 아닌데도 민요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까닭이 어디 있는지 설명해 보라.

☞ 전통 민요의 3음보 율격에 부합하므로

3. ㉠처럼 접동새가 다른 곳으로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우는 이유를 쓰라. ☞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못 잊기 때문에

4. 제5연의 내용과 역사적 현실을 관련지어 시의 화자는 어떠한 사람인지 20자 정도로 쓰라.

☞ 좌절과 한 속에서 방황하는 식민지 지식인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설화를 소재로 해서 쓴 시다.

옛날 진두강 가에 10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계모를 들였다. 계모는 포악하여 전실 자식들을 학대했다. 소녀는 나이가 들어 박천의 어느 도령과 혼약을 맺었다. 부자인 약혼자 집에서 소녀에게 많은 예물을 보내 왔는데 이를 시기한 계모가 소녀를 농 속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 불탄 재 속에서 한 마리 접동새가 날아 올랐다. 접동새가 된 소녀는 계모가 무서워 남들이 다 자는 야삼경에만 아홉 동생이 자는 창가에 와 슬피 울었다.

이러한 설화의 내용을 알면 작품의 이해는 어려울 것이 없다.

다만, 이 시의 ‘아우래비 접동’이라는 구절에서 ‘아우래비’를 어떻게 볼 것이냐가 문제이다. 정한모 교수가 이것을 ‘아홉 오래비’의 활음조(euphony)로 본 이후 정설처럼 굳어져 버렸다. 이와 관련해 마지막 연에 나오는 ‘오랩동생’이라는 말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남동생을 일컫는 말이다. ‘아우래비’라는 말도 이와 같은 뜻은 아닐까? 이 말은 아마도 ‘아우오래비’로 보는 것이 타당할 줄 믿는다. ‘아우오래비’가 ‘아우래비’로 발음되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아홉 오래비’가 ‘아우래비’로 되는 것은 활음조로도 설명하기 곤란할 터이다.

 

 

주 구(朔州龜城)

- 김소월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 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 리

삭주 구성(朔州龜城)은 산(山)을 넘은 육천 리요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 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반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텐고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개벽󰡕 40호, 1923.10)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삭주 구성’에 대한 그리움을 3음보 율격에 담아낸 작품으로 <산>과 그 성격이 비슷하다. 그러나 이 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삭주 구성’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삭주 구성’은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 가다가 비에 걸려 오’는 곳이요, ‘산 넘어 / 먼 육천 리’인 곳으로, 꿈속에서도 쉽게 갈 수 없는 ‘불귀지지(不歸之地)’의 장소이다. 그러므로 <산>에 등장하는 ‘삼수갑산’과 더불어 유배지, 불귀지지, 또는 죽음의 이미지를 지닌 공간이다. 이렇게 화자에게 있어서 ‘삭주 구성’이라는 곳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체념의 장소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 곳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임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님을 둔 곳이길래’ 그 곳을 지향하는 것이다.

비록 ‘산 넘어 / 먼 육천 리’인 곳이지만,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 리’일 정도로 그리워하는 곳일 뿐 아니라, ‘새들도 집이 그리워 / 남북으로 오며가며’ 하는 것을 바라보며 화자는 귀향에 대한 소망의 의지를 불태운다.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 반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텐고’ 하는 데에서 화자는 그 구름을 타고 어느덧 ‘삭주 구성’ 가까이 가 있는 듯한 꿈에 부풀기도 한다. 이처럼 화자가 갖는 체념과 미련의 양면성을 함께 표상하는 것이 바로 ‘산’이다. 산은 화자가 지향하는 ‘삭주 구성’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넘기만 하면 곧바로 ‘삭주 구성’에 도달할 수 있기에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음속으로나마 ‘산’을 넘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존재하는 이 곳은 고달픈 생활의 연속인 현실의 공간이요, 임이 없는 부재의 공간임에 비해, 화자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삭주 구성’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임이 계신 곳이자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동경(憧憬)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으로 을 내겠소

-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오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오

새 노래는 공으로 드르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시집 「망향(望鄕)」(1937년판) 중에서 / * 첫발표 - 󰡔문학󰡕 2호, 1934.2

 

* 꼬인다 : 유혹한다.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우리 나라 전원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흙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남(南)’이 주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와 함께 시적 화자의 삶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원에서 안분 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의 태도, 훈훈한 인정, 달관의 모습을 넉넉하게 보여 주고 있다.

성격 : 서정적, 전원적, 자연 친화적, 관조적

운율 : ‘-’, ‘-’, ‘-의 반복을 통한 규칙적인 반복

어조 : 소박하고 겸손하고 친근한 회화조

제재 : 전원에서의 생활

주제 : 전원 생활을 통한 달관의 삶. (자연 친화적인 삶의 자세)

 

<연구 문제>

1. 이 시의 화자의 태도와 유사한 고시조 작품 한 수를 외워 쓰라.

☞ 십 년(十年)을 경영(經營)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淸風) 한 간 맡겨 두고

강산(江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송 순>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겻셰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조 식>

 

초암(草庵)이 적료(寂廖)한데 벗 없이 혼자 앉아

평조(平調) 한 닢에 백운이 절로 존다.

어느 뉘 이 죠흔 뜻을 알 리 있다 하리오. <김수장>

 

2. 이 시에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각각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180자 정도로 설명해 보라.

☞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에 잘 나타나 있듯이 ‘새 노래’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모든 혜택의 대유적 표현인데, 공으로 듣겠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가 무상 행위(無償行爲)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원리로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라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도 발전적으로 적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3. ㉠은 화자의 어떠한 인생관을 나타낸 말인지 4자의 한자 숙어로 쓰라. ☞ 安分知足

 

4. ㉡에 나타난 삶의 태도를 10자 내외로 쓰라.

☞ 초월과 달관의 자세. (삶에 대한 관조와 여유)

 

<감상의 길잡이>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아가려는 화자의 삶의 자세가 잘 형상화된 작품이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복잡한 도시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종의 모성 회귀(母性回歸)의 본능과 같은 것이다.

화자는 이 전원 생활 속에서 스스로 만족을 느끼며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도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라고 말하고 있다. 땅을 일구고 자연을 벗하며 인정미 넘치는 삶의 여유와 관조가 회화조의 친근한 어조에 용해되어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잔잔한 웃음으로 답하는 모습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초월과 달관의 경지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시적 표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주막(酒幕)에서

- 김용호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도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친 길

가없고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 「현대 문학」(1967) / 시집 󰡔날개󰡕, 195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인생을 나그네 길로 보고, 그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야만 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을 노래한 작품. 길가는 나그네가 거쳐가는 주막의 정서와 막걸리의 소박한 맛이 어우러져 순박한 서민들의 삶의 애환(哀歡)을 잔잔히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석양 무렵 주막에서 이 빠진 사발로 마시는 막걸리의 맛과 취흥이 인생을 관조하게 하고, 그를 통해 주막을 거쳐간 서민들의 삶이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의 주인들의 호화롭고 영광스런 삶이나 결국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허무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노을 비낀 가없는 길― 인생의 끝없는 삶은 그러나 계속될 뿐이라는 다소 숙명적인 체념도 느껴진다.

성격 : 관조적, 서정적, 감각적

어조 : 영탄적 어조, 차분한 어조

특징 : 삶에 대한 시인의 성찰과 관조적인 자세가 보임.

표현 : 관용적 표현(맵고도 쓴 시간,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 등)과 참신한 표현(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이 조화를 이룸.

▶구성 : ① 주막에서 마시는 막걸리의 맛(1-3연)

② 삶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허무한 것임(4연)―삶에 대한 관조

③ 삶의 고달픈 길을 회고함(5-7연)―삶의 애환

▶제재 : 주막, 인생(人生)

▶주제 : 삶의 애환(哀歡) 또는 인생살이에 대한 관조

 

<연구 문제>

1. 화자의 현실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시구를 2개 찾아 쓰라.

<모범답> 이 빠진 낡은 사발, 노을 비낀 길

2. 삶의 고달픔을 감각적으로 드러낸 시구를 있는 대로 찾아 쓰라.

<모범답> 맵고도 쓴 시간,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

3. 이 시에서 대조적 이미지로 쓰인 시어를 찾아 각각의 의미를 간단히 쓰라.

<모범답> (1) 막걸리 : 서민들의 삶의 모습

(2) 송덕비 : 서민들과 대조되는 삶의 모습.(허황된 영예의 삶)

4. ㉠, ㉡의 상징 의미를 각각 두 어절로 쓰라.

<모범답> ㉠ 인생의 길

㉡ 인생의 황혼(여생)

 

<감상의 길잡이>

김용호는 초기에 일제하의 암울한 사회상을 짙은 감상의 언어로 노래하였고, 6·25 전후에는 서민들의 소박한 삶에 대한 언민의 정을 노래하였다. 후기에는 현실적, 사회적 경향이 짙은 시를 발표하였다.

이 시는 그의 시 경향상 중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주막, 막걸리 등의 소재를 통해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구성상 7연으로 되어 있으나, 시상의 흐름으로 보아 3단락으로 나누어 감상해 보자.

제1-3연은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이 어울리는 주막에서, 낡은 사발로 막걸리를 마시며 상념에 젖는다. ‘정처럼 옮아 오는 / 막걸리 맛’에서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삶을 그윽히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지닌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제4연은 막걸리의 맛을 음미하듯 서민들의 삶을 여유 있게 바라본다. 수많은 서민들이 스쳐갔을 주막과 거기에 묻혀 있을 서민들의 애환, 그리고 저만치 떨어져 그들을 굽어보고 있는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가 대조되어 나타난다. 주막 위로도 그리고 송덕비 위로도 인생의 신고(辛苦)의 시간은 똑같이 흘러갔고, 그들의 자취는 결국 지금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절대적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낮은 서민도, 송덕비의 주인도, 삶도 죽음도 허망한 것일 뿐이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 덧없기만 한 인생을 깨닫는다.

제5-7연에서는 주막을 나선다. 주막을 나서는 것은 현실로의 회귀이다. 막걸리에 스며 있던 정감도 취흥도 사라지고 나자 그가 당면하는 것은 바로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이다. 현실은 이처럼 각박하고 고단하기만 하다. 그러나 ‘노을 비낀 길’을 우리는 가야만 한다. 인생은 끝없는 나그네길이라는, 그리고 이 길은 또 누군가가 내 뒤를 이어 걸을 것임을 안다. 마치 ‘내 입술이 닿았던 사발에 그 누군가가 또 입술을 대듯이’ 말이다.

 

 

 

밤에

- 김용호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시집 󰡔시원 산책󰡕, 1964)

 

<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는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 눈을 밟고 가던 화자가, 누이와 함께 질화로에 밤을 구워 먹으며 할머니께 옛날 이야기를 졸라 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으로, 향토적 서정성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질화로에 밤알이 토실토실 익어 가던’ 어린 시절의 정겨움도 모두 사라져 버린 메마른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화자는 홀로 눈길을 걸으며 고독에 젖다가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떠올리고는 흘러가 버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질화로’․‘밤알’․‘콩기름 불’․‘실고추’․‘불씨’․‘잎담배’․‘초롱’ 등의 순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시어를 사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정겹게 만든 한편, 옛것에 대한 아쉬움을 강조하는 이중 효과를 얻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떠난 것은 모두 정겨운 것이고, 잃어버린 것은 모두 그리운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줌으로써 각박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누구나 지니고 있는 포근한 옛 추억에 젖어들게 하여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김영랑論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준 김영랑

김영랑(1903-1950)의 본명은 김윤식으로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출생하였다. 강진 보통 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휘문 의숙을 다니다가 3·1운동으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이 일로 휘문 의숙을 중퇴한 김영랑은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다시 학업을 중단하고 강진의 자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강진에서 무료한 생활을 하고 있던 영랑에게 송정리의 벗 박용철이 찾아와 시 전문지를 같이 내자고 제안했다. 박용철은 오랜 숙의 끝에 사재를 털어 「시문학」 창간호를 1930년에 발간하게 된다.

1930년은 김영랑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 해 3월에 간행된 「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의 시를 한꺼번에 발표하며 시단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나온 「시문학」 2호에 9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20편이 넘는 작품을 1930년 두 달 동안에 한꺼번에 발표했던 것이다.

김영랑의 시는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카프를 중심으로 쓰여진 경향시는 생경한 사상성과 경직된 목적 의식을 주로 드러냈기 때문에 당시의 시단은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주는 김영랑의 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이로써 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였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방법적 자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경향시 위주였던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시에 대한 인식 변화시켜

김영랑의 시에는 ‘내 마음’이라는 어휘가 유달리 많이 보이는데 그가 이 말을 많이 사용한 것은 내면의 순결성을 표현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직접 제시하지 않고 대부분 자연의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하였다.

그의 초기 시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은 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것들이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에 제시된 아침 햇살처럼 빛나는 은빛의 강물, 「제야」에 제시된 맑은 샘물과 밤의 심상, 「가늘한 내음」에 제시된 보랏빛 노을의 고요한 아름다움, 「내 마음 아실 이」에 나오는 향맑은 옥돌의 심상 등은 모두 마음의 순결성을 나타내는 예들이다.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을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순결한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김영랑 서정시의 출발은 바로 이 순결성에 있었다. 이 순결성이 그의 시를 아름다운 해조와 서정주의의 극치로 몰아간 것이다. 그 순결한 마음은 자연의 미묘한 변화와 대응되므로 분명히 파악되지는 않는다. 순결성은 꽃가지의 은은한 그늘이나 봄날의 미미한 아지랑이처럼 모호한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랑은 자연의 맑고 깨끗한 정경을 통해 마음의 순결성을 보여 주었는데, 자연의 정결한 모습에 집중하게 되면 자연히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황홀감을 갖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본래 자연을 통한 순결성의 추구는 현실 세계의 추악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에 자연은 현실과 대립적 위상에 놓이게 된다. 현실은 고통과 비애가 교차되는 장소로 인식되는 반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결함은 이 모든 현실적인 것을 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의 많은 시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연의 어느 한 순간이 가져다주는 극치의 아름다움은 그의 정신을 몽롱케 할 정도로 황홀감을 안겨 준다. 저녁놀이 물드는 보랏빛 하늘, 밤 깊이 흐르는 물소리와 찬란한 별떨기, 은색으로 황홀히 빛나는 달빛, 맑은 가을날의 고요한 정경, 이 모든 것이 자연미의 한 정점을 보인 것이어서 시인은 그 황홀감에 가슴 설레며 몸둘 바 몰라 한다.

그런데 이 황홀한 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모란이 한번 흐드러지게 피어 그 찬란한 빛을 불태웠다가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쉽게 소멸하는지 모른다. 자연의 순결성도 현실 세계의 혼탁함 때문에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으며, 자연의 황홀한 아름다움 또한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면 영랑의 자연 인식은 비극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그 비극성이 그의 심혼을 긴장시키고 그의 서정시를 가능케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모란이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마음에 비탄과 상실의 감정이 남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뚝뚝’이라는 시어를 통해 모란이 무정히 사라져 버리는 정경을 소리로 나타내는가 하면, ‘떨어져 누운 꽃잎마져 시들어버리고’라는 시행을 통해 처절한 상실의 순간과 상실 뒤에 오는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삼백예순 날을 계속 울고 지낸다는 과정적 표현을 배치하여 그리움의 정도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한편으로 영랑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시인 자신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적 장단과 호응을 이루며 하나의 정경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오롯한 미의 원광을 두르게 된다. 가령 영랑의 「오월」 같은 시는 봄 들판의 약동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인데 시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구사하여 심미감을 높이고 운율의 변화를 통하여 흥겨운 율동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서정적 표현의 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우리 시의 역사에서 귀중히 간직하고 전수해야 할 표현 상의 백미(白眉)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판단한다.

 

 

맑고 깨끗한 자연의 정경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순결한 마음의 세계 표현

김영랑의 시에서 인생과 사회에 대한 발언이 중심을 이룬 작품은 아주 적다. 현실에 대한 반응을 보인 예로는 「거문고」라든가, 「독을 차고」, 「우감(偶感)」, 「춘향」 등의 작품을 들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점 때문에 현실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김영랑의 시가 우리에게 어떤 효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앞에서 말한 「오월」처럼 자연의 정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일관한 작품은 그런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인생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만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는 관련이 없는 듯한 자연에 대한 상상도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며, 새로운 비유와 표현의 구사도 언어사용의 폭을 넓힘으로써 실제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와 절묘한 기법으로 표현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영랑의 시는 그 나름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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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숭원 / 1955년생, 서울대 국문과졸, 현 서울여대 교수

 

 

 

김영랑의 삶과 문학

 

◎ 김영랑의 생애

· 13세에 첫 결혼, 23세에 두번째 결혼

· 당대 최고의 발레리아 최승희와 사랑에 빠짐

· 고향서 친구들과 중등학교(금릉중학교) 설립

· 1950. 9. 29(47세). 6.25 전쟁 중 포탄 맞아 숨지다.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용인공원으로 이장

◎ 성격

· 엄한 편, 그러나 속은 여림-큰누나의 맏딸이 죽었다는 소식 듣고 몹시 울다. 딱 두 번 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할머니 죽고 관에 못 박으면서 한 번 울고, 큰외손녀 죽고 울고.....

◎ 영랑의 학교 생활

· 휘문의숙 재학 : 홍사용, 박종화, 정지용, 이태준 등과 함께 수학

· 일본 청산 학원(영문과) 유학 : 본격적인 문학세계를 열어줌. 시인 박용아와 교류. 청년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박열을 통해 사회주의에 접합. 관동대지인으로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

◎ 생가

전남 강진군 강진읍 탑골. 돌담집. 생가의 모습 복원(우물, 행랑채 등)

◎ 시어의 특징

· 향토적 : 고향의 정서를 담아냄. 남녘 사람들의 숨결이 배어 있다.

· 친숙한 언어. 생성과 소멸의 언어

◎ 김영랑의 문학세계와 고향의 풍광

· 남도의 이미지와 언어로 마음의 상태를 낮은 목소리로 노래

· 감수성 풍부

· 고향의 이미지과 소재 수용. 고향의 풍광과 언어가 배어 있다 - 이것이 카프와 모더니즘에 휩쓸리지 않고 순수한 문학세계를 구축하게 했다.

·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민족적이다’는 것을 증명함.

· 영랑 시의 음악성 : 사랑채에서 판소리와 북의 신명에 도취.임방울,이화중선,이중선 등 당대 최고의 소리꾼들을 불러 노래를 듣다. 소리와 장단에 심취

· 당대의 현실보다는 흩어져 가는 것에 대한 슬픔, 시간 속에서 명멸해 가는 인간의 운명에 집착

· 고향 주변의 자연 환경이 김영랑 시의 정조에 영향을 끼침. 아름답고 고요한 고향의 풍광이 일제라는 가혹한 현실을 잊게 했을 것. 영랑은 다산(정약용)초당 주변의 숲과 길을 좋아함

◎ 문학 활동

· 강진파 시인 형성 : 박용아. 이현구, 김영랑. 인간의 마음에 고요히 스미는 시

· 시문학 창간 : 정지용, 김영랑, 박용아. 목적주의 문학(카프)과 거리를 둠.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내 마음

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시문학󰡕 창간호, 1930.3)

 

* 돋쳐 : ‘돋아’의 힘줌말. 기본형은 ‘돋치다’

* 도도네 : ‘돋우네’의 부드러운 표현

* 도른도른 : 나직하고 정답게 속삭이는 소리. 또는 그 모양.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김영랑의 시는 주로 ‘내 마음’의 세계를 다룬다. 이 시도 외부 현실과 무관한 고요한 내면 세계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그려 내고 있다. ‘강물’이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흐르고 있다는 표현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자유시이지만 사실은 3음보 가락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격 : 서정적, 낭만적, 감각적

경향 : 유미주의적

운율 : 3음보 율격

어조 : 여성적 목소리

표현 : 의성법, 반복법, 상징법

특징 : 세련된 감각어의 사용

음악성의 추구. (유음, 비음의 사용. 각운. 음성 상징)

구성 : 수미 쌍관의 구성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1,2)

강물의 아름다운 모습(3,4)

강물의 위치(5,6)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7,8)

제재 : 강물

주제 : 내 마음 속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

 

<연구 문제>

1. 이 시의 중심이 되는 심상은

내 마음

이다. 이 ‘내 마음’이 지향하는 세계는 어떤 성격의 것인가? 그 이유를 들어 40자 정도로 설명하라.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내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2. 이 시는 마음을 ‘강물’에 비유하고 있다. ㉠을 고려할 때, 화자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20자 이내로 쓰라.

☞ 마음 속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

3. 다음 <보기>는 윤서도의 「만흥(漫興)」이다. 밑줄 그은 ‘먼 뫼’와 이 시의 ‘강물’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한 문장으로 쓰라.

<보기>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ᄇᆞ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리ᄒᆞ랴

말ᄉᆞᆷ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ᄒᆞ노라

☞ 「만흥」은 산(자연)과 화자가 주객 일체가 되는 경지로 나아가고 있는 반면, 「끝 없는 강물이 흐르네」는 실제의 자연이 아닌, 화자의 주관 안에 존재하는 강일 뿐이다.

 

<감상의 길잡이>

우리가 영랑의 시를 읽을 때 어떤 감명을 받는다면, 그것은 주로 그의 시가 지닌 음악성에 연유하는 것이기가 쉽다. 이 말은 그가 시에서 구체적인 체험 내용을 진술하기보다는 그것의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인상과 감흥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선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대상을 향해 열려 있기보다는 그 대상을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 시가 겨냥하고 있는 것도 바로 내 마음이다.

끝없는 강물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흐르고 있고 가슴엔 듯 눈엔 듯 핏줄엔 듯숨어 있다고 화자는 말한다. ‘숨어있다는 말은 마음이 세상을 향해 열려 있지 아니하고 내면 세계로 잦아든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외부 세계의 갈등을 벗어나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구하고 그 속에서 느끼는 그윽한 평화와 안정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율과도 같이 마음 속에 흐르는 끝없는 강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이를 근원적인 생명 자체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만큼 모호한 것이 이 마음 속의 강물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그의 시가 지향하는 음악성과 관련하여 그것이 우리의 마음가슴핏즐에 연면(連綿)히 흐르는 민족적 정서나 가락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붙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시문학󰡕 창간호, 1930.3)

 

* 오매 : ‘어머나’의 전라도 사투리.

* 장광 : 장독대.

* 기둘리니 :‘기다리니’의 전라도 사투리.

* 자지어서 :‘잦아서, 빠르고 빈번하여’의 전라도 사투리.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김영랑의 시는 일반적으로 주제 의식이 약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가락과 섬세한 정서만으로도 훌륭한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운율, 정서, 언어적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 시는 작가가 즐겨 쓰는 4행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4행시는 전통적 시가, 즉 시조의 3행을 변형시킨 것으로 음악적인 효과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투리의 구사는 시어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측면도 있지만, 음악적 효과, 향토적 정서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재인 ‘골 붉은 감잎’을 바라보는 누이의 마음과 시적 화자인 나의 마음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성격 : 낭만적, 서정적

경항 : 유미주의적 경향

심상 : 청각적, 시각적 심상비유와 상징

운율 : 3음보 중심, 반복

특징 : 반복에 의한 음악적 효과

심리 상태를 대조적으로 표현함

토속적인 언어를 시적으로 활용함

관념어를 배제하고 생활어를 사용함

시상 전개 : 대조에 의한 시상 전개

구성 : 42연의 대립적 구성

감잎을 보는 누이의 감탄(1)

누이의 모습을 본 나의 마음(2)

제재 : 골 붉은 감잎

주제 : 가을을 느끼는 감회(感懷)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단풍을 보는 ‘누이’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60자 내외로 쓰라.

☞ 누이가 자연을 통해서 느끼는 생활인의 마음인 데 비해, 나는 누이에 대해 느끼는 인간적인 감동의 마음이다. (‘누이’는 생활인으로서 단풍을 보고 가을에 할 일을 걱정하지만, ‘나’는 천진무구한 사람으로 단풍을 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란다.)

2. ㉠, ㉡의 발화자는 각각누구인가?

☞ ㉠ 누이

㉡ 나

3. 누이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각각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밝혀 쓰라.

☞ 누이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감잎이고, 나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누이다.

 

<감상의 길잡이>

첫 연에는 감잎을 보고 놀라는 누이의 마음과 모습이 그려져 있고, 두 번째 연에는 그러한 모습을 보는 의 마음이 그려져 있다.

1연에서 누이는 장광에 오르다가 바람결에 날아오는 놀란 듯이쳐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를 외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봄이 왔는지 가을이 왔는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누이도 가을이 와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그것을 느끼게 된다. 그 놀라움이 그녀의 얼굴을 붉히게 하고 불현 듯 마음까지도 붉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감잎이 단풍 들었네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단풍 들것네로 읽혀야 한다. 이 시의 마지막에서 둘째 줄이 누이야 나를 보아라가 아니고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2연에서, 첫 두 줄은 누이의 심경을 작중 화자인 가 짐작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마음을 붉히게 하는 가을을 발견한 놀라움과 기쁨은 잠시이고, 곧 추석이 오고 바람이 모질게 불어올 것이라는 걱정을 하는 누이 기쁨의 한순간마저도 생활의 걱정에서 떠날 수 없는 한국의 전형적인 여인의 마음을 읽고 는 말한다. ‘누이야 나를 보아라. 너를 보는 나의 마음 속에도 단풍 들겠다.’

결국 누이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감잎이고, ‘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누이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감잎누이로 연결되는 묘한 동화(同化) 관계를 읽어 낼 수 있게 된다. 주제는 다르지만, 낙엽과 누이와 나라는 이 삼자의 관계가 재미있게 설정되어 있는 작품으로서 신라 시대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제망매가(祭亡妹歌)󰡕와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좋을 듯하다.

 

 

 

내 마음을 아실 이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시문학󰡕 3호, 1931.3)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타인과 함께 나눌 수 없는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는 안타까운 내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시는 음악성과 심상도 매우 중요시한 작품이다. 음악적 효과를 위하여 어떤 언어를 선택했으며 어떤 기법으로 심상화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성격 : 낭만적, 유미적, 서정적

어조 : 여성적 호소의 어조

표현 : 비유와 상징

특징 : 가정(假定)과 자문자답의 형태

구성 : : 임의 존재 가정(假定)(1)

: 임에게 바칠 나의 마음(2)

: 임의 존재에 대한 회의(3)

: 임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4)

제재 : 내 마음

주제 :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연구 문제>

1. 이 시의 중심 심상을 찾아 쓰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하였는지 설명하라.

☞ 중심 심상은 ‘내 마음’이고, 그것을 비유(직유와 은유)로 형상화하고 있다.

2. 이 시에서 운율적 효과를 위해 변형시킨 시어를 모두 찾아 쓰라. ☞ 날같이, 어리우는, 하오련만, 희미론

3. ㉠은 화자의 어떤 심리 상태를 나타낸 말인가? 30자 내외로 쓰라. ☞ 내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없어서 혼자 안타까워하는 마음

4. 1930년대 <시문학파>의 문학사상의 의의를 순수시의 특징 몇 항목을 들어서 설명하라.

☞ 시를 언어의 예술로 보고서 언어의 조탁, 정서의 순화, 미묘한 음악성 등을 살려 시를 예술의 위치에 올려 놓았다.

 

<감상의 길잡이>

김영랑은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등과 함께 <시문학>(1930)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전개한 시인이다. 시에서 일체의 이념적, 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감각과 그윽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순수시의 본령이라고 생각한 결과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 세계에만 편중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의 순수시 운동에 의하여 우리 나라의 현대시가 시의 언어와 형식에서 좀더 세련된 차원으로 발전되었다는 시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감상할 󰡔내 마음을 아실 이󰡕도 그와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나의 마음을 알아 주실 임에게 간절한 그리움과 슬픔이 응결된 결정체를 보배처럼 간직했다가 내어드리겠다는 연가(戀歌)이다.

· · · 결의 네 연은 가정(假定)과 응답, 음과 대답으로 짜여져 있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있다면, 나는 그에게 보배처럼 간직했던 순결한 마음을 내어드리고 싶다고 화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런 가정과 응답은 세상에 진실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줄 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리움은 더 간절해지고 속에서나마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지만 그것도 헛일이 되고, 그럴수록 안타까움이 그를 더욱 달아오르게 한다.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듯이 보이지 않는 임을 향한 사랑은 타오르지만, 끝내 내 마음 속의 사랑을 아실 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슬픈 결론에 이르고 만다. 이 시는 자문자답의 형태를 통해 기대와 좌절의 갈등 구조를 보여 주는 시라고 하겠다.

 

 

 

오월

-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문장󰡕 6호, 1939.7)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1919년 독립 운동의 실패로 나타난 1920년대의 감상적 낭만주의 경향의 시풍에서 벗어나, 잘 통제되고 절제된 순수한 서정시를 개척한 시문학파의 대표적 시인인 영랑의 시로서,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마치 겨우내 얼었던 개울물이 봄을 맞아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시는 초기의 섬세한 감각이나 율조가 사라지고 사계절의 순환을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정관하여 미화한 데 그 특징이 있다. 마을과 들판은 어떤 모습이며 대비되고 있는 심상은 무엇인가? 화자의 시점은 어떻게 이동되고 있는가? 5월의 보리밭에서 화자가 본 것과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하는 매체를 찾아보자.

성격 : 서경적, 묘사적

심상 : 시각적 심상

특징 : 맑고 투명한 서정성

시상 전개 : 소재의 이동. (근경원경, 낮은 곳높은 곳)

구성 : 소재를 보는 시선의 이동에 따른 나열식 구성

: 짙푸른 들판의 풍경(1,2)

: 바람의 출렁거림과 보리의 모습(3-5)

: 꾀꼬리의 정겨운 모습과 산봉우리의 자태(6-11)

제재 : 오월의 들과 산봉우리

주제 : 오월에 느끼는 생명의 약동감. (아름답고 싱그러운 오월 찬미)

 

<연구 문제>

1. 이 시의 화자의 시선 이동을 작품 속의 소재를 통하여 화살표로 제시하라.

☞ 들길→마을→들→바람→햇빛→보리→꾀꼬리→산봉우리

2. 대상을 의인화하여 표현을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는 시행 셋을 찾아 각각의 첫 어절을 쓰라.

☞ 보리도, 얇은, 산봉우리야

3. ㉠은 보리의 어떠한 모습을 표현한 말인지 10자 이내의 구절로 쓰라. ☞ 보리가 막 패어나는 모습

4. ㉡은 화자의 어떠한 마음을 표현한 것인가? 이 시의 제목을 넣어 30자 내외로 쓰라.

☞ 오월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오월의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한 작품이다. 그런 가운데 시인의 자연에 대한 사랑도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자연을 여성적 아름다움으로 노래한 데서 그의 자연관의 일면도 살필 수 있는 작품으로 시인의 다른 작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회화적 이미지가 두드러진게 나타나 있다.

이 시는 오월에 볼 수 있는 자연물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자의 시선이 그 소재들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 ‘들길마을바람햇빛보리꾀꼬리산봉우리가 그것이다.

푸른 들은 꽃이 붉게 피어 있는 들길과 대조를 이루며, 들판의 보리밭 이랑마다 봄의 햇빛이 눈부시다. 보리가 자라서 이삭이 패는데 그 모습이 시골 처녀의 허리로 의인화되어 관능미를 느끼게 한다. 흔히들 봄을 여성의 계절이라 하고, 희망과 사랑이 싹트는 계절이라고 한다. 노란 꾀꼬리는 푸른 들판, 수양버들과 색채의 대조를 이루며 암수가 늘 짝을 이루고 다니기에 다정한 연인에 비유된다. 담록으로 채색된 산붕우리의 모습은 곱게 단장하고 아양 떠는 새색시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금방이라도 사랑하는 이에게로 가 버릴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남도 지방 토속어를 통한 향토색, 시각적 심상의 색채 대조, 전통적인 율격, 맑은 서정성 등이 한데 어우러져 오월의 아름답고 싱그러운 자연을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

*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문학󰡕 3호, 1934.4)

 

* 모란[牡丹] :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활엽 관목.(본음은 목단’)

* 하냥 : 한결같이, 줄곧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일 게다. 비록 그것이 나에게 슬픔을 줄망정 그 꿈을 버리지 않겠다는 집념과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정성들여 가꾼 모란, 그것들이 피기를 기다리는 ‘오월’, 화자가 기다리고 또 보내기를 꺼려하는 ‘봄’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오월’이 가면 또다시 그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봄’은 시인이 시대 배경을 염두에 두고 노래 부른 것인가? 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실의와 좌절감에서 벗어나 보람과 이상이 꽃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화자가 기다리는 ‘봄’의 의미를 앞에서 말한 것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면 그럼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 자아에서 큰 이상과 가치의 세계로까지 확대되는 보람과 최고 목적이 ‘봄’에 포용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며 음미해 보자.

1930년대 시문학파(순수시파)의 대표적 시인인 영랑은 경향파의 목적시를 거부하고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였다. 아름다운 시어, 감미로운 서정, 여성적인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 시문학파 순수시의 특징 : ① 정서의 순화 ② 언어의 조탁

③ 미묘한 음악성

▶ 성격 : 낭만적, 유미적

어조 : 여성적 어조

표현 : 역설적 표현

구성 :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1-2)

모란을 잃은 슬픔(3-10)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11-12)

제재 : 모란의 개화

주제 :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림

 

<연구 문제>

1.

모란

의 상징 의미를 표현한 시어를 둘 찾아 쓰라.

☞ 봄, 보람

2.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때가 되면 모란은 지고 언젠가는 다시 피어나리라는 사실을 이 시의 화자는 알고 있다. 그에 따라 화자는 설움에 잠기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화자는 그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뿐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인생관을 반영하고 있는 부사 두 개를 찾아 쓰라. ☞ 비로소, 아직

3. 모순 형용을 통해, 비애까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김영랑의 유미주의적 태도가 잘 나타난 시구를 찾아 쓰고, 그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하라.

☞ (1) 찬란한 슬픔의 봄

(2) 봄은 그가 기다리는 모란이 찬란하게 피어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덧없이 지기도 하는 계절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찬란하리만큼 승화된 슬픔의 경지로 이해할 수 있다.)

4. ㉠에서 ‘한 해’와 ‘삼백 예순 날’이라는 표현이 지니는 의미상의 차이점을 설명해 보라.

☞ ‘한 해’는 모란이 한순간에 덧없이 진다는 느낌이 표현된 것이고, ‘삼백 예순 날’은 꽃이 필 때까지 손꼽아 기다리는 안타가움과 지리한 느낌(슬픔의 정감적 깊이)이 표현되어 있다.

 

<감상의 길잡이>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이야기는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한다. 1930년대 순수시파의 대표적 시인인 김영랑의 이 시 또한 시를 애송하는 현대인에게 그러한 가치를 깨닫게 한다.

모란이 피면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고, 모란이 졌을 때 그 소망이 무너져 삼백 예순 날을 슬퍼하더라도 나는 다시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겠다는 화자의 모란에 대한 애착과 집념은 눈물겨운 것이다. 쉽게 계획하고, 쉽게 좌절하며, 포기하는 듯한 오늘 우리의 현실 속의 인생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 시는 많은 암시를 주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모란의 상징성이다. 꽃은 아름다움이요, 희망이요, 밝음이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과 좌절과 어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 자체가 어느 일면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다양한 모습과 성격을 지닌다.

유미주의 작가인 영랑은 모란에서, 그러한 사물의 속성을 통해 인간이 절망하고 시련에 빠질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해 냈을 것이다.

문학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할 때, 일제 강점하에서 이 시가 쓰여졌다면, 암울하고 우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몸부림도 한편으로 느껴지리라.

 

 

 

- 김영랑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자진머리 휘몰아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마저사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는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長短)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伴奏)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닥타*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

(시집 󰡔영랑 시집󰡕, 1935)

 

* 만갑 : 조선 시대의 이름난 명창 송만갑(1865-1939)을 뜻함.

* 컨닥타 : 지휘자(conductor).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판소리의 연창과 북의 관계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리에 있어 북의 역할 없이 예술이 성립될 수 없으며, 창과 북의 호흡의 일치에서 예술과 삶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김영랑의 뛰어난 시적 기교가 드러난 부분과 심미적 인생관이 표현된 시구를 찾아보자. 고수가 연창에 맞춰 직접 북을 치는 듯한 느낌이 간결하게 표현된 시구를 찾아 음미해 보자.

성격 : 낭만적, 감상적

특징 : 전통성, 음악성.(소재면에서의 전통성과 3·4음보 간격의 적절한 변화와 조화를 통한 음악성)

구성 : 수미쌍관의 구성

호흡의 일치(1)

판소리 가창의 빠르기(2)

호흡의 일치가 이루어져야 함(3)

북을 잘못 치면 호흡이 깨짐(4)

북은 창을 살리는 반주요, 지휘임(5)

예술과 인생의 조화(6)

호흡의 일치(7)

제재 : 북과 창의 조화

주제 : 예술과 인생의 조화

 

<연구 문제>

1. 이 시를 근거로 하여 ‘북’과 ‘소리[唱]’의 관계를 설명하라.

☞ 북은 창(唱)에 종속되지 않으며, 북에 의해 창은 예술이 될 수 있다.

2. 제4연의 내용을 알기 쉽게 60자 정도로 설명하라.

☞ 소리와 일치하지 않는 북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일 뿐이고, 북을 잘못 치면 판소리 광대 송만갑이도 호흡이 깨어질 수밖에 없다.

3. 북과 소리의 조화 속에서 느끼는 희열을 노래한 연을 찾아 그것이 어떤 경지를 노래한 것인지 30자 정도로 쓰라.

☞ (1) 제6연

(2) 무아지경(無我之境)의 북소리가 가을처럼 익어 조화를 이룬 경지.

4. ‘일 고수, 이 명창(一鼓手二名唱)’이란 말을 생각나게 하는 두 연은? ☞ 제4,5연

5. “시로써 일어나 예로써 서며 음악으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는 「논어」의 구절을 생각나게 하는 연은? ☞ 제6연

 

<감상의 길잡이>

호남 지방은 소리의 고장이다. 특히, 판소리는 이 지방에서 발전한 소리 예술이다. 영랑은 전남 강진 출생으로 소리에 조예가 깊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 시문학파가 시의 음악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영랑의 시는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고향의 삶을 많이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음악인 판소리를 시화(詩化)했고, 우리 시가의 전통적 가락인 3음보와 4음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각 행이 갈수록 길어지다가 첫 행의 반복으로 끝맺음으로써 장단과 완급의 변화와 일체감의 조화를 살려내고 있다.

()에서 북을 반주를 위한 소도구로 생각하기 쉽다. 오히려 북이 창을 이끌어 가는 주체이다. ‘일 고수, 이 명창(一鼓手二名唱)’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판소리에서 북의 역할이 중요함을 이른 말이다. 그러나 북은 소리가 없이는 의미가 없다. 조선조 판소리의 명창 송만갑(宋萬甲)도 북 없이는 그의 소리 예술을 이루어 낼 수 없고, 북 또한 소리 없이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이러한 북과 소리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해하고 있는 작가의 전통에 대한 애정과 그의 삶과의 일체감을 엿볼 수 있다. 움직임 속에 조용함이 있고, 소란 속에 고요가 있듯이 북과 소리의 조화로 이루어진 예술과 삶의 일체감 속에서 인생은 계절의 완성인 가을처럼 성숙하는 것이다.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시문학󰡕 2호, 1930.6)

 

* 새악시 : 새색시의 사투리

* 살포시 : 살며시. 매우 부드럽고 가볍게

* 에메랄드 : 연푸른 빛을 띤 보석(emerald). 한없는 청순(淸純)을 상징.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지상의 세계에서 천상의 세계, 즉 하늘을 동경하는 시다. 왜 화자가 현실 세계인 지상보다는 하늘을 동경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화자가 처한 현실은 고요하거나 평화롭지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에는 유음(流音)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유음은 일반적으로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 김영랑의 시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시어와 섬세한 감각적 표현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는 그러한 특질이 잘 나타나 있다.

성격 : 유미적, 낭만적, 관조적, 감각적

경향 : 유미주의적

심상 : 시각적 심상

운율 : 3음보, 7·5조의 음수율

두운(頭韻)과 각운(脚韻)의 사용

어조 : 여성적 소망의 어조

표현 : 참신한 비유(직유, 의인, 은유)

특징 : 정서의 투명한 순화

언어 본연의 미감을 살림

구성 : 하늘을 우러르고 싶은 소망(1)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소망(2)

제재 : 봄 하늘

주제 : 평화의 세계 소망

 

<연구 문제>

1. 이 시의 첫째 연에서는 ‘내 마음’을 두 가지로 이미지화 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마음을 형상화한 것인지 50자 내외로 설명하라.

☞ 내 마음을 햇발과 샘물로 이미지화 하여 맑고 밝은 마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2. 이 시에서 ‘하늘’은 시적 화자가 동경하는 세계다. ‘땅’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볼 때, 이것은 어떤 세계를 뜻하는가? 차이점을 밝혀 50자 내외로 쓰라.

☞ ‘땅’은 절망과 고뇌가 있는 암담한 현실 세계이고, ‘하늘’은 평화와 희망이 있는 이상 세계다.

3. 이 시의 미묘한 음악성은 어떻게 드러나는지 몇 항목을 들어 설명하라.

☞ ① 유음(流音)과 비음(鼻音)의 울림소리 사용

② 반복적 언어의 사용

③ 두운과 각운의 사용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내용과 형식은 매우 단순하다. 4행씩 두 개의 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의 각 연 제1,2행은 모두 ‘-같이, 마지막 행은 ‘-고 싶다로 끝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직유를 통해 어떤 간절한 소망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얼핏 보기에 그 소망은 지나치게 소박하다.

이 소박함이 영랑 시의 한 특징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시가 쓰여진 1930년대의 현실을 상기하면서 그 소박하고 단순한 생각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 근거를 생각해 볼 필요를 느낀다.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는 소망은 역설적으로 화자가 발붙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불행한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불행한 이 땅의 현실 속에서 그가 지닌 그늘진 마음은 밝고 평화로운 세계를 동경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러한 세계에 대한 지향이 햇발’, ‘샘물’, ‘물결같은 어휘에 나타나 있다. 이 또한 그의 삶이 그늘진 것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영랑의 시는 자신이 겪은 체험의 내용을 극도로 단순화시킬뿐더러, 그것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정한모 교수의 통계적 분석에 의하면, 영랑의 시세계는 한마디로 내 마음의 세계이다. 이 말은 그가 외부 세계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다기보다는 그것을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내면화하는 데 주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을 차고

- 김영랑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문장󰡕 10호, 1939.11)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30년대 말은 일제가 단말마(斷末魔)의 발악을 하던 때다. 우리에게서 국어를 빼앗고, 심지어 일본식 성명까지 강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노래만을 부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시는 그러한 상황에서 작가가 순수 서정의 세계에서 나와 현실 상황과 대결하는 자세를 시화(詩化)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재인 ‘독(毒)’이 뜻하는 바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험난하고 궁핍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대항 의식이며 순결의 의지다.

성격 : 의지적, 직서적, 저항적, 상징적, 우의적

어조 : 결연한 남성적 어조

표현 : 주정적 정감의 직서적 표출

특징 : 상징에 의한 심상

두 삶의 자세의 대조

구성 : 화자의 이동에 따른 구성

벗과의 대화(1)

벗의 충고(2)

()을 찬 배경(3)

나의 결의(4)

제재 : ()

주제 : 순결한 삶의 의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대결 의식과 삶의 의지)

 

<연구 문제>

1. ‘벗’과 ‘나’의 삶의 태도는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라.

☞ ‘벗’은 허무주의에 빠져 현실에 순응하면서 적당히 살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데 반해, ‘나’는 암담한 현실에 대한 대결 의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결연한 태도를 보인다.

2. 이 시의 중심 심상인 ‘독(毒)’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3연의 내용을 고려하여 15자 내외로 쓰라.

☞ 암담한 현실에 저항하려는 의지. (현실에 대한 대결의 의지, 자기 방어의 의지)

3. ㉠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이 시에 나오는 시구를 찾아 쓰라. ☞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감상의 길잡이>

현실 세계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표(言表)하기를 그토록 꺼려 왔던 영랑으로서도 참을 수 없게 만든 일제 말기의 발악적인 분위기가 어떤 것이었던가를 짐작케 해 주는 작품이다.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깨닫고 화자는 마음에 ()’을 품는다.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마음의 평화를 갈구해 오던 영랑이기에 그의 속 어디에 이런 독기가 숨어 있었나 싶게 충격을 준다.

땅떵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이 허무한 세상에서 머지 않아 너 나마저 가 버리면그만인데 독을 차고 살아서 무엇하느냐고 충고를 한다. 그러나 는 나를 노리는 식민지 현실 속에서 태어난 사실마저 저주하며 선선히 독을 차고 가리라고 다짐한다.

이 원망스러운 세상에서 단지 육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며 산다는 일이, 맑고 평화로운 마음의 세계를 지향해 온 영랑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현실 순응주의를 버리고 그는 끝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현실에 맞서 저항할 것을 결의한다.

프란츠 파농의 말을 빌면, 식민지 시대의 민중들은 제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다. 앉아서 짐승의 밥이 되기보다는 저항함으로써 ()’을 건지겠다는 영랑의 결의는 그가 살았던 한 시대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

- 김영랑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문장󰡕18호, 1940.7)

<감상의 길잡이>

영랑이 그 동안 일관되게 고집해 오던 ‘내 마음’의 서정 세계를 버리고 현실 세계로 방향을 돌리게 된 때는 1930년대 말엽으로서 일제의 한민족 말살 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다. 이 시는 <독을 차고>와 함께 그 같은 영랑의 변화를 한눈에 알게 해 주는 작품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일편 단심을 지키는 춘향의 애틋한 정절을 세조의 불의(不義)에 맞서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사육신과, 촉석루에서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憂國)에 대응시켜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발표 시기가 1940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 시의 창작 의도가 단순히 춘향의 사랑과 정절만을 예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잊혀진 역사와 문화를 노래함으로써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적극적 의미가 숨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가사나 민요에 바탕을 둔 정형적 운율로써 순수 서정 세계만을 펼쳐 보인 초기시에 비해, 이 작품은 자유율을 구사하여 시의 산문화(散文化)라는 표현의 변화뿐 아니라, 제재면에서도 개인적인 문제로 국한되었던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역사와 문화로 확대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 김영랑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

너는 너른 세상에 설움을 피로 새기러 오고,

네 눈물은 수천(數千)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南)쪽 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 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젓한 이 새벽을

송기한 네 울음 천(千) 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 별들 버르르 떨리겠구나.

 

몇 해라 이 삼경(三更)에 빙빙 도는 눈물을

씻지는 못하고 고인 그대로 흘리웠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 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

무섬증 드는 이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

저기 성(城) 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 찬 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 어둘 저 흰 등 흐느껴 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 마음마저 가고지워라.

 

비탄의 넋이 붉은 마음만 낱낱 시들피느니

짙은 붐 옥 속 춘향이 아니 죽었을라듸야

옛날 왕궁(王宮)을 나신 나이 어린 임금이

산골에 홀로 우시다 너를 따라 가시었느니

고금도(古今島) 마주 보이는 남쪽 바닷가 한 많은 귀향길

천리 망아지 얼렁 소리 쇤 듯 멈추고

선비 여윈 얼굴 푸른 물에 띄웠을 제

네 한된 울음 죽음을 호려 불렀으리라.

 

너 아니 울어도 이 세상 서럽고 쓰린 것을

이른 봄 수풀이 초록빛 들어 풀 내음새 그윽하고

가는 댓잎에 초승달 매달려 애틋한 밝은 어둠을

너 몹시 안타까워 포실거리며 훗훗 목메었느니

아니 울고는 하마 지고 없으리, 오! 불행의 넋이여,

우거진 진달래 와직 지우는 이 삼경의 네 울음

희미한 줄 산(山)이 살풋 물러서고

조그만 시골이 흥청 깨어진다.

▶ 「영랑시집」(1935)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영랑이 즐겨 쓰던 4행이나 8행의 서정 소곡(抒情小曲)과는 달리 상당히 길다는 것부터가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영랑의 ‘두견’은 키츠의 ‘나이팅게일에게(두견부)’와 그 뉘앙스나 분위기, 그 내용의 일부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촉나라 망제의 넋이 두견이 되었다는 전설을 통하여 노래하고자 한 시심을 알아보자.

두견이 토해내는 음향이 저승까지 울린다는 것은 두견의 음향 구조와 영혼 구조의 동질성을 승인함으로써 비로소 성립됨을 이해하자.

성격 : 낭만적, 감상적

심상 : 시각적, 청각적 심상

어조 : 영탄적 어조

표현 : 감정 이입

구성 : 원한과 슬픔에 지친 두견(1)

저승의 노래를 토해 내는 두견(2)

비탄의 넋에 대한 한()(3)

삶의 고뇌에 대한 설움(4)

제재 : 두견의 울음

주제 : 삶의 비탄

 

<연구 문제>

1. 이 시의 지배적 정서를 드러낸 두 어절의 시구를 찾아 쓰라.

☞ 서럽고 외롭고

2. 이 시의 제2연에서 두견의 울음 소리를 은유로 형상화한 시구 둘을 찾아 쓰라.☞ (1) 저승의 노래 (2) 죽음의 자랑찬 소리

3. 두견의 전설과 관련된 꽃 이름을 쓰라.

☞ 진달래꽃. (두견화,杜鵑花)

4. 이 시에서 죽음을 시각화하여 표현한 시구를 찾아 쓰라.

☞ 흰 등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소재가 전통적인 점이 특징이다. 두견은 슬픈 전설을 간직한 새다. 봄밤에 끊임없이 울어대는 두견새. 그 새의 울음 속에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이고 전통적 정서인 설움, 눈물, 슬픔, 그리움, () 등이 서려 있다.

이러한 감상적, 낭만적 정서를 지닌 두견의 울음 소리를 통하여 시의 화자는 희망과 꿈의 계절인 봄의 흥겨움을 노래하는 대신 어둡고, 암담하고, 쓰라린 삶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설움과 한을 간직해 왔다. 춘향이 그러하고, 왕궁을 떠난 나이 어린 임금(단종)이 그러하고, 먼 섬으로 귀양 간 선비들이 그러하고, 그들을 보내고 맞는 백성들 또한 그러하였다. 이 시의 화자 역시 현실의 암당함과 쓰라림 속에 그러한 삶의 고뇌를 저 두견처럼 밤을 지새우며 비탄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볼 때, 이 시는 특히 화자가 처한 현실적 상황이, 계절적 배경인 봄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마저도 제시할 수 없는 정도의 어려운 상황이었음이 짐작된다.

옛날 중국 촉()나라 망제의 넋이 화하여 된 새, ‘두견’. 그 새의 울음 소리를 통하여 현실적 삶의 비탄을 노래한 이 시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인 한()의 정서와 접맥되어 있다 할 것이다.

참고두견새는 뻐꾸기와 비슷하나 밤에 우는 접동새와는 다른 새이다. 아마도 시인이 두견새를 접동새와 같은 종류의 새로 잘못 알고 이 시를 쓴 듯하다. 접동새는 올빼미과의 소쩍새를 달리 이르는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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