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꿈 이야기, 조지훈 [현대시]

Jobs 9 2022. 3. 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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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조지훈

문(門)을 열고
들어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마을이 온통
해바라기 꽃밭이었다.
그 훤출한 줄기마다
맷방석만한 꽃숭어리가 돌고
 
해바라기 숲 속에선 갑자기
수천 마리의 낮닭이
깃을 치며 울었다.
 
파아란 바다가 보이는
산 모롱잇길로
꽃 상여가 하나
조용히 흔들리며 가고 있었다.
 
바다 위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오색(五色) 비단으로 돛폭을 달고
뱃머리에는 큰 북이 달려 있었다.
 
수염 흰 노인이 한 분
그 뱃전에 기대어
피리를 불었다.
 
꽃상여는 작은 배에 실렸다.
그 배가 떠나자
바다 위에는 갑자기 어둠이 오고
별빛만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문을 닫고 나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주제 : 삶과 죽음에 대한 초월 의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꿈의 문을 열고 들어간 시인이 그 곳에서 만나게 된 '마을'과 '바다'라는 두 개의 시적 공간을 통해 죽음에 대한 초월 의지를 담담한 어조의 이야기체 형식을 빌어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마을은 맷방석만한 꽃숭어리의 해바라기가 피어 있는 꽃밭으로, 그 곳에선 수천 마리의 낮닭이 갑자기 깃을 치며 울고 있다. 이에 반해 바다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는 공간이며, 그 배에는 오색 비단 돛폭과 큰 북이 달려 있는 한편, 뱃전에 기대어 피리를 부는 수염 흰 노인도 있다. 
마을은 커다란 꽃송이의 해바라기와 깃을 치며 우는 낮닭의 밝은 이미지로 나타나는 삶의 현실적 세계를 표상하지만, 바다는 꽃상여를 싣고 떠났다는 진술을 통해 그 곳이 죽음의 초월적 세계를 표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상반된 두 세계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파아란 바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제시된 '산 모롱잇길'에 의해 상호 연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세계는 서로 교통하는 것으로, 삶은 죽음으로, 죽음은 삶으로 통하는 것이다. 시상의 개폐 기능을 하는 1연과 8연을 '문을 열고 / 들어가서 보면 /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와 '문을 닫고 나와서 보면 /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라는 구절로 배치시킨 시인의 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에서의 '문'은 시인을 아름다운 꿈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환상의 문이 아니라, 죽음의 세계를 투시할 수 있는 실존의 문이다. 이렇게 시인은 소멸과 허무의 일반적인 죽음 의식을 버리고 삶의 연장으로서의 죽음, 또는 삶과 환치할 수 있는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생과 사를 초월하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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