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고향길, 신경림 [현대시]

Jobs 9 2024. 2. 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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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길

신경림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 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만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려네  


개관
- 성격 : 서정적, 향토적, 애상적
- 표현
* 향토색 짙은 시어 및 소재의 활용
* 고향에 대한 화자의 인식과 태도가 부정적임.
* 유사한 종결어미('-려네')를 통한 각운의 형성
* 시간적 흐름에 의한 시상 전개(노을→초저녁→하늘에 박힌 별)
- 화자 : 고향이 그리워서 찾아가고 싶으나 고향에 안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인물
- 제재 : 고향(이 시의 고향은 평화로운 안식처라는 보편적인 모습이 아닌, 시적 화자가 남몰래 숨어들 수밖에 없는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이 시에서의 고향은 설렘과 평화, 안정, 귀향점이 되지 못한 채,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숨어들어야 하는 아픔을 동반하고 있으며 오히려 상실감을 심화시키는 공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시는 고향을 환기시키는 정겨운 소재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는 고향에 자유롭게 돌아가지 못하는 화자의 안타까운 심정과 처지를 효과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산업화가 가속화되었던 1970년대 이후, 삶의 터전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채 변질되어 버린 농촌 사회와 고향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 주제 : 고향 상실감과 비애(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비애). 농촌 현실의 어려움과 이런 현실을 떠나고 싶은 마음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 마지막 시행과 의미상, 구조상 호응 관계를 이룸. 고향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내 줌. 고향을 고통과 그리움이 교차되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음.
* 엿장수, 금전꾼, 나그네 → 고향을 찾아가는 화자의 모습
* 가윗소리 요란한 엿장수 → 요란한 허세를 부리지만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실속없는 초라한 삶
* 감석 → 감돌. 유용한 광물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들어 있는 광석
* 내 좋아하던 ~ 가겟방도 피하려네. → 추억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은 심정
* 금전꾼 → 금광에서 일하는 사람(금점꾼). 고향을 떠난 이후 화자의 어려운 처지를 알게 해 주는 말
* 허망한 금전꾼 → 헛된 욕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삶
* 초저녁 하얀 달 보며 →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며낭만과 애상이 결합된 표현
*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 → 화자의 처지를 암시하는 구절임.
* 길 잘못 든 나그네 →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삶. 고향을 찾아왔으나 고향과의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화자. 고향을 찾아왔음에도 마치 나그네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화자의 정서
* 노을길, 초저녁, 검은 하늘에 박힌 별 → 화자가 고향에 머무는 시간적 배경으로, 고향이 그리워 찾아가고 싶으나 고향에 안주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다.
 

시상의 흐름(짜임)
- 1~7행 : 남몰래 찾는 고향
- 8~13행 : 추억을 떠올리며 둘러보는 고향
- 14~끝 : 고향 상실감과 방황하는 서글픈 운명에 대한 인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지만 그 바람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첫 번째 행부터 단정적인 거부와 부정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제목 '고향길'이 지닌 기쁨과 설렘은 자취도 없다. 오히려 버리고 싶고 잊고 싶은 것이 고향길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시끌벅적하게 정한을 나누는 장길도 거부하고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조차 떨친 채, 허황한 초저녁 낮달에나 마음을 기댈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벗어나고 싶고 기어이 고향을 등지며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가난하지만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고향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현실 속에서 이제 고향은 삶의 터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쫓기듯 도망치듯' 떠나야만 하는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눈물을 머금고 이방인처럼 고향을 등져야만 하는 화자의 고향 상실감과 그로 인한 비애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고향길'은 고향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고향을 버리는 길인 것이다. 이러한 섬세한 서정에 깔려 있는 상황은 앞서 살펴본 대로 피폐한 농촌의 정경이다. 하지만 그 비극적 서술에도 불구하고 일인칭 독백 투로 짜여 있는 이 시의 바람은 시의 내용과는 정반대 쪽에 놓여 있다. 그렇게 '서성이고' '피하고' '떠나고'  싶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애틋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구, 결코 결별할 수 없는 고향을 향해 등이나마 돌리고자 하는 그의 욕구는 유독 그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오히려 동시대를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의 삶을 도저한 애정으로 온몸으로 껴안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경림 시의 장점인 절제된 애정의 표현은 이후의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가락과 결합함으로써 더욱 깊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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