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개관
- 성격 : 문명비판적, 주지적, 상징적, 우의적
- 표현
*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 제시(청각, 후각, 시각의 심상 대비)
* 비둘기를 의인화하여 인간과 자연의 문제를 대립적으로 설정함
*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다음(묘사), 주제로 집약시킴(서술).
* 상징(비둘기), 의인법, 우의적 표현
- 주제
* 자연미에 대한 향수와 문명에 대한 비판
* 파괴되어 가는 자연의 순수성에 대한 향수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판
- 성북동 비둘기의 상징성
* 자연을 대표하는 사물,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
*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꾸 밀려나기만 하는 도시 변두리의 사람들
*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순수한 자연성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성북동 → 새로운 개발지. 인간 문명의 영역이 확장된 곳
* 번지 → 1행(인간의 삶의 영역), 2행(비둘기의 보금자리), 대유법
* 가슴에 금이 갔다 → 인간의 손에 의해 자연이 손상된 것을 보고 비둘기가 받은 상처 / 평화가 깨지는 아픔을 시각적 이미지로 나타냄.
* 그래도 → 마치 옛날의 버릇처럼
*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 → 인간 문명의 거만한 침입으로 평화로운 삶이 파괴된 공간
* 돌 깨는 산울림, 채석장 포성 → 문명의 횡포를 상징함. 자연 파괴의 현실
*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 자연과 공존하며 살았던 예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인간의 문명(급격한 산업화, 도시화)이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것까지도 잃어 버린 인간의 황폐한 모습을 비둘기를 통해 나타냄. /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과 탐욕을 따라 이 세상에서 비둘기와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없애 버렸고, 그것은 곧 인간 자신의 삶에서 사랑과 평화가 숨쉴 만한 여지를 부수어 버린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 사랑과 평화 → 문명화되기 이전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면서 지니고 있었던 원초적 감정
* 쫓기는 새 → 현대 문명으로부터 쫓기는 자연 / 날카로운 비평적 안목이 뒷받침된 표현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비둘기의 상황(보금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비둘기) ⇒ 묘사
- 2연 : 비둘기의 상황(지향없이 쫓기며 옛날을 그리워하는 비둘기) ⇒ 묘사
- 3연 : 관찰자의 해석(자연과 인간으로부터 소외되고, 사랑과 평화까지 낳지 못하는 새) ⇒ 설명
이해와 감상
이 시는 6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둘기를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자연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세상을 비판하거나 인간들에게 어떤 교훈을 제시하는 것은 김광섭 후기 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는 그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 시는 그야말로 명징한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어가는 세상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1968년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 사고라는 평가도 있다. 이 시는 두 개의 세계 즉, 문명과 파괴라는 이원적 대립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도시화에 따라 삶의 터전을 잃은 '비둘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자기 성찰과 인간적인 삶의 회복을 희구하는 작품이다. 문명 비판적 사상을 무의미하게 지나칠 수 있는 한 마리 비둘기의 움직임에서 포착해 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삶인 것이다.
◆ 1960년대와 '성북동 비둘기'
1960년대 근대화와 산업화가 강력하게 추진되면서 전근대적이며 전원적인 농촌 경제가 빠르게 무너져 갔다. 서구 문명을 뒤쫓아 가는 근대화에 밀려서 한국적 정서는 퇴색해 갔으며, 인간이란 존재는 무시되었다. 발전 논리와 경제적 부의 축적이 최대의 목표였던 것이다. 이처럼 왜곡되어 가는 1960년대의 상황에서 우리가 상실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문명이 무엇인가를 깨우친 것은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였다. <중략> 김광섭은 파괴되는 자연과 인간성 상실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단순 · 소박한 언어로 자유와 평화의 사상을 묘파하였다. 보다 높은 경지에서 현실 상황을 바라보면 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너그러움과 사랑을 통해서만이 참다운 삶의 길을 갈 수 있음을 깨우쳐 주는 것이 이 시이다.
◆ 감상을 위한 읽을거리
우리는 먼저 이 시에서, 오랫동안 그의 시의 특징이나 문제점이 되어온 관념성이 말끔히 가셔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음 우리가 이 시에서 느끼는 것은, 이웃과의 완전한 일체감이다. 이 시는 성북동 비둘기를 빌린 바로 성북동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시인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서민이 되어 서민 속에서 서민의 일상어로 비둘기의 얘기를, 그리고 비둘기처럼 '쫓기는 새'가 된 서민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는 서민 속의 자신을 확인함으로써 민중과의 위화감을 극복했고, 그의 시도 내용 및 표현의 관념성이나 추상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은 이웃 또는 서민과의 일체감 속에 다시 조화를 얻어, '성북동 비둘기'로 하여금 격조 높은 문명 비평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기계 문명에 의하여 점점 살벌하고 세속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가슴에 금이' 가서 이제는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어 버린 인간들, ― 의지가지 없는 그들이 '금방 따낸 동 온기(溫氣)에 입을 닦으며' 인간적인 진실에 '향수'를 느끼는 정경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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