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김광섭
마당에서 봄과 여름에 정든 얼굴들이
하나 하나 사라져갔다
그렇게 명성이 높던 오동잎도 다 떨어지고
저무는 가을 하늘에 人家의 정서를 품던
굴뚝 보얀 연기도
찬 바람에
그만 무색해졌다
그런 늦가을에 김장걱정을 하면서 집을 팔게 되어
다가오는 겨울이 더 외롭고 무서웠다
이삿짐을 따라 비탈길을 총총히 걸어
두만강을 건너는 이삿군처럼 회색 하늘 속으로
들어가 식솔들이 저녁상에 둘러앉으니
어머님 한분만 오시쟎아서 별안간 앞니가
무너진 듯 허전해서 눈둘 곳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축대에 검정 포장을 치고
초롱을 달고 가던 이튿날 목없는 아침이
달겨들어 영원한 이별인데
말 한마디 못하고 가라진 어머니시다!
가신 뒤에 보니 세월 속에 묻혀 있은 형제들 공동의 부엌까지
무너져 낙엽들이 모일 데가 없어졌다
사람이 사는 것이 남의 피부를 안고 지내는 것이니
찬바람이 항상 인간과 더불어 있어서
사람이 과일 하나만큼 익기도 어려워
겨울 바람에 휘몰리는 낙엽들이 더 많아진다
고난의 잔에 얼음을 녹이며 찾는 것은
그 슬픔이 아니요 겨울하늘에 푸른 빛을 띤 봄이다
그 봄을 바라고 겨울 안에서 뱅뱅 돌며
자리를 끌고 한치 한치 태양의 둘레를
지구와 같이 굴러가면서
눈과 얼음에 덮인 대지의 하루를 넘어서는 해질 무렵
천장에서 왕거미가 나리고
우석에서 귀또리가 어정어정 기어나온다
어느날 목없는 아침이 또 왈칵 달려들면
이런 친구들에게 눈짓 한번 못 하고
친구들의 손 한번 바로 잡지도 못하고 가리라
▶ 성격 : 감정적, 부정적
▶ 제재 : 겨울, 어머니
▶ 주제 :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이로 인한 정겹고 따스한 세계로의 회복 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어머니와 같은 따스한 존재의 죽음으로 인해 황량해 진 삶이 그 전으로 회복하기 힘들다는 두려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어머니와 함께 봄과 여름내 마당에서 정든 얼굴들을 대하며 따뜻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생활 형편의 어려움으로 정든 얼굴들이 사라져 가는 늦가을에 산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다. 산동네로 이사한 화자는 그곳에서 어머니를 잃게 된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 어머니의 목숨까지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그러자 화자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확인하게 된다. 없는 듯 살고 계신 어머니였지만 사실 형제들을 모일 수 있게 했던 정점이었으며 낙엽들 같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준 따스하고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부재하는 자리는 화자에게 매우 커 보일 수밖에 없다. 한편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한 화자에게는 인식의 확대가 일어난다. 즉 어머니와 같은 따스한 존재의 부재로 인해 인간 삶 자체가 황량해지고 황폐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화자는 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 봄을 바라고 겨울 안에서 뱅뱅 돌며 자리를 끌고 한 치 한 치 태양의 둘레를 지구와 같이 굴러가면서’ 화자는 살아간다. 봄은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황량해진 겨울날의 극복이다. 그러나 ‘눈과 얼음에 덮인 대지(大地)의 하루’ 하루를 넘기며 살던 화자에게 ‘목 없는 아침은 부지불식간에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결국, 우리 인간은 그 운명적인 죽음의 세계의 엄습 앞에 무기력하다. 그것은 곧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두려움일 것이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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