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특성
* 영탄적 표현을 통해 고조된 감정을 드러냄.
* 역설적 표현과 화자의 역설적 상황 인식
주제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머물고 싶은 소망
주요 시어
* 뜻밖의 폭설 → 화자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시적 설정
* 수십 년만의 풍요 →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 가을에 풍년이 든다는 전통적인 속설과 관련됨.
* 자동차들 → 폭설의 상황에 대해 화자와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대상
*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화자의 소망
* 눈부신 고립 → 비논리적인 역설적 표현
* 동화의 나라 → 잠시나마 함께 할 수 있는 한계령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 인식의 투영
* 헬리콥터 → 조난된 생명을 구조해주는 존재. 화자는 이러한 헬리콥터를 단호히 외면하고 거부함.
* 짧은 축복 → 눈이 녹으면 고립된 상황이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과 관련됨.
시상의 전개
- 1연 : 폭설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계령에 고립되기를 희망함.
- 2연 :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기를 소망함.
- 3~4연 : 헬리콥터의 구조를 거부하려는 화자의 의지와 태도
- 5연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자 하는 소망과 기대
이해와 감상
폭설은 그리움과 기다림에 대한 메타포이다. 오늘처럼 폭설이 내린 날이면 누군가에게 문정희의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들려주고 싶다. 폭설로 인한 고립, 사랑하는 자와 운명적으로 묶이고 싶은 욕망.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면, 이런 메타포에 대한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우체부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나누는, "선생님, 은유가 뭐죠?" "하늘이 운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지?" "비가 온다는 소리겠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은유야." "선생님 큰일 났어요. 사랑에 빠졌어요." "그건 곧 나아." "낫기 싫어요. 계속 빠져 있을래요."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사랑에 빠지면, 정말로 폭설을 만나 고립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 작품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머물고 싶은 화자의 소망을 드러낸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폭설로 인해 한계령에 고립되는 조난의 상황을 설정하고 이러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통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머물고 싶은 화자의 소망이 강렬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이러한 화자의 소망은 헬리콥터를 통한 구조의 손길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려는 의지를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편 조난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구조를 거부하려는 화자의 태도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는 상반된 역설적 상황 인식으로서 이 시의 개성적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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