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Humanities/동양사 Asian History

퉁구스족, 퉁구스족과 예·맥·한족의 관계

Jobs9 2023. 9. 21. 08:22
반응형

 

시베리아 동부와 연해주, 만주를 중심으로 주로 분포해 있는 퉁구스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또는 그들의 조상으로, 퉁구스라는 단어는 사하 공화국에 사는 튀르크 퇼레스(Töles)인들의 "아홉 부족"이라는 뜻의 "도쿠즈"에서 유래했다. 뭉뚱그려서 퉁구스계 제민족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튀르크계 제민족과 마찬가지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유전학적 연관성을 제외하곤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상당히 단절되었다.

수많은 퉁구스계 제민족 중 가장 유명한 여진족은 농업과 수렵을 주 생업으로 삼았으며, 다른 퉁구스계 제민족도 유목보단 반농반렵 위주의 생업을 유지해왔다. 이것이 순수 유목인이었던 튀르크 및 몽골계 제민족과의 대표적 차이점이다. 만주족의 경우는 과수 재배를 한 사례도 있어서 영농 기반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물론 유목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며, 주로 혹한지에서 농사를 짓기 힘들 경우 순록을 유목, 방목을 했었다. 그리고 과거에도 절반 정도는 유목을 하거나 이목 수준이었으며 굳이 유목민으로 본다면 반(半)유목이나 준(準)유목으로 분류된다. 반농반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튀르크 및 몽골계 제민족과의 또다른 차이점으로는 이슬람교가 주류 종교인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 있다. 튀르크계 제민족은 추바시인, 야쿠트인, 투바인, 유고족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으며, 몽골계 제민족은 대부분 샤머니즘이나 티베트 불교를 믿지만 중국의 보안족과 둥샹족, 아프가니스탄의 모골인, 러시아의 일부 칼미크인들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또한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등을 비롯한 튀르크권, 외몽골의 할하인을 비롯한 몽골계 제족들과는 달리 전원이 나라 없는 민족들이다.

넓은 의미의 퉁구스는 퉁구스계와 몽골계의 혼혈 민족인 다우르족, 거란족과 오환족, 선비족이나 투르크 제족과 혼혈된 야쿠트인들까지 포함시킨다. 그러나 다우르족과 선비-거란들은 대부분 몽골계로 분류되며, 야쿠트는 튀르크계로 분류된다. 다만 이들의 문화나 생활, 사회 등 일부는 퉁구스 제족들의 영향도 받았으며 퉁구스어족에 해당되는 언어들의 방언도 사용한다. 

 

 

 

 

퉁구스족이란 동시베리아와 만주에 거주하는 민족 집단들 중 하나를 일컫는 표현이며, 좁은 의미로는 어웡키(=에벤키, 예벤키, 어웡커; Evenki, Эвэнки)족만 일컫는다. 현재는 이 어웡키족을 퉁구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들은 다른 시베리아 민족들처럼 샤머니즘을 믿으며, 수렵채집경제를 기반으로 살아갔지만, 러시아와 중국 정부의 영향력에 결국 무릎을 꿇고 흔하디 흔한 정착민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은 많이 초라하지만 과거에는 시베리아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녔던 것으로 추정되어, 어웡키족을 필두로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한민족과의 연관성이 아주 깊다고 추정이 되는데, 한국인과 비슷한 유전자(단, 만주족 한정)와 언어 체계, 샤머니즘 문화, 역사적 밀접성 등을 봐서 두 민족은 고대에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름과 그 유래

퉁구스라는 이름은 그 의미가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로 진출하면서 그 이름을 알게 됐고, 그 이름을 유럽에 퍼뜨렸다는 점이며, 퉁구스족은 자기들 스스로를 절대로 퉁구스족이라고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전에는 원시 튀르크어로 돼지를 뜻하는 *donki, 또는 *donqi로 추정했는데, 문제는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에서 접촉하던 퉁구스족들은 돼지를 키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 튀르크어로 "돼지 같은 놈"이라는 멸칭에서 유래했을 수 있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만일 그렇다고 할지라도 끼워맞췄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옛 중국 변방의 민족인 동호東胡(옛 중국어로는 /*toːŋ.gaː/)로 추정을 한다. 동호는 주로 몽골계 민족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퉁구스족들도 섞인 느슨한 연맹체 혹은 민족 집단으로 본다. 그러나 이름의 유사성 말고는 딱히 추론하기가 힘들다.
 


역사적으로는 숙신(肅愼), 읍루(挹婁),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이라고도 불렸는데 이 중 숙신과 여진이 의미가 동일하고 물길과 말갈이 의미가 유사하다고 보며(물길은 그저 말갈과 표기법만 다르다는 학설이 강하다), 숙신과 여진을 제외하면 당대 가장 강력한 퉁구스 씨족을 대표로 하여 민족명으로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당대 동북아가 다 그렇듯 한자로 기록된지라 당대에 어떻게 불렸는지 알기 힘들지만, 물길과 여진은 확실히 밝혀졌다.

女眞은 여진-만주어로 ǯušen/주션/으로 불렸으며, 몽골어로는 ǯurčen/주르첸/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후대에 갈수록 몽골의 영향인지 그 의미가 부정적으로 인식됐는데 16세기에는 의미가 "평민, 노예"라는 뜻으로 고착됐다. 그래서 홍타이지가 자기들이 속한 집단은 Manǯu/만주/라는 이름으로 갈아치웠지만, 다른 퉁구스족은 대충 ǯušen이라고 칭하거나 烏梁海, 兀良哈(한국어 "오랑캐")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女眞보다 더 오래된 勿吉(靺鞨 포함)은 고대 일본어 기록에서 그 음가를 쉽게 찾아낼 수가 있는데, 고대 일본어로 *motukitu(현대 일본어 motsukitsu)라고 했다. 물론 더 정확한 추론을 위해 한국식 한자음가(/-t/로 끝나는 한자어가 /-l/로 변화했다)와 재구성된 고대 중국어를 종합해보면, 당대 자칭은 (勿吉)mudgit, mutgit~(靺鞨)mādgit, motgit로 추정된다. 한편 이에 관련하여 고대 일본어로 maka라는 어휘도 있는데, 이는 靺鞨의 일본식 한자어로 추정된다.

한편 오늘날 퉁구스족은 스스로 나니nāni 계열 어휘로 자칭하며, 이는 "(이) 땅에 사는 사람, 거주민" 등의 의미다. 이러한 자칭의 본뜻은다른 소수민족들에서도 나타난다. 예외적으로 만주족은 자칭이 만주인데, 이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의미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근원지

지금이야 몽골계 부랴트(=부리아트; Buryat, Buriad, Буриад)족이 득실거리지만, 바이칼 호수가 그 근원지로 보며, 그곳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갔다고 한다. 물론 바이칼 호수 자체는 수많은 시베리아 민족의 정신적 고향이긴 하지만, 학자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정말로 퉁구스족의 최초 시발점-근원지로 본다. 


다른 설로는 아무르강, 백두산 근원지 설이 있는데 소수설이며, 그저 아무르강 유역에 사는 씨족이나 건주여진-만주족의 전설일 뿐이라고 본다.





경제와 문화

경제 생활로는 주로 수렵채집활동이며, 만주와 시베리아의 울창한 숲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나 몽골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유목활동도 번번히 나타나며, 중국과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어느정도 농경활동을 했었다. 또한 과거에는 러시아 제국과 중국 왕조에 특산품을 공물로 바쳐야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피로도로 농경 생활로 많이 전환했다.

만주 때문에 초원을 방랑하는 유목민 이미지가 강렬하다지만, 앞서 말했듯이 본디 수렵채집민족이며, 심지어 그 만주족마저도 유목보다는 수렵채집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경제 관념이 더 강했다. 유목이 주 경제활동인 경우, 함니간Khamnigan 같이 몽골에 동화된 씨족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순록 유목이라는 특징이 있는데, 만주야 순록을 키우기 힘든 여건이라서 그런지, 양과 말로 대체했지만, 대다수의 퉁구스족들은 순록 유목이 주된 유목 활동들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본거지가 바이칼 호수인데다가 주로 강을 끼는 숲에서 살아서 그런지 물에 대한 금기가 없으며, 어로 행위 역시 적극적으로 했다. 그래서 이들은 과거에 평소에 숲에서 사냥을 하고 보조적으로 유목과 농사를 지었지만 가능하면 동해를 건너 해적질도 했다. 과거 한반도 국가의 동해쪽 행정구역이 남북으로 길쭉한 게 일본의 왜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퉁구스 해적들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나 무시무시했냐면 왜구 씹어먹고 일본도 털었을 정도였으며, 일본에서는 당연히 신라 해적인 줄 알고 신라에 따졌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민족이었다는 것에 충격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퉁구스 해적이 떴다면 당대 일본인들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오늘날에야 대다수의 퉁구스족의 소련과 중국 공산정부의 압력으로 수렵채집활동의 핵심인 수렵행위를 반강제로 청산해야 했으며, 다른 주류민족들처럼 농경생활을 하고 있다. 소수의 퉁구스족만이 전통적인 수렵채집활동을 주 경제활동으로 삼으며 나머지 상당수는 그저 수입 보조를 위해 수렵채집을 하는 정도다.



종교적으로는 샤머니즘을 믿는데, 지금은 많이 믿지 않는다. 곰을 사람의 형제라고 생각하였으며, 곰을 사냥하는 의례를 지녔다. 일식과 월식은 말코손바닥사슴 혹은 엘크사슴의 정령이 태양과 달을 훔쳐서 생겼다고 믿었으며, 아무르강과 그 지류를 중심으로 사는 것에서 모티브를 따왔는지, 세상을 강의 상류, 중류, 하류로 묘사하는 세계관을 지녔다. 또 불의 정령(우더거어 "Foǯa")의 모습을 보아, 본디 모계사회였다가 부계사회로 전환된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공산주의 시절 때 민족문화 탄압정책에 따라 샤머니즘이 미신이라 몰리고 탄압받은 게 가장 큰 상처였다. 기독교 같은 경우 러시아 제국의 기독교도(동방정교회)에게 세금 혜택(특산품 세금이 아닌 농작물-화폐 세금) 정책 때문에 많이 개종했다.





언어

알타이제어에 속하는 언어답게 알타이제어의 특징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특징도 많다. 다음은 퉁구스어족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1. 기본 어순 체계가 SOV 체계다.

2. 교착어다.

3. 기본 모음은 <a>, <e>, <i>, <o>, <u> 다섯 모음 체제다.

단, 여기서 <e>는 /e/가 아니라 /ə/다.

한국어로 /에/가 아니라 /어/라는 소리.

4. 혀뿌리 위치를 중심으로 한 모음조화가 존재한다. 두 개 이상 어근이 결합된 합성어나 근래에 들어온 외래어를 제외하면 상당히 엄격하게 지켜진다.

기본적인 모음조화 체계는 남성모음 /a/와 /o/, 여성모은 /e/, 중성모음 /i/와 /u/로 나뉜다.

후대 언어들 중 일부는 이러한 모음조화 체계를 안 따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동일하다.

5. 어휘의 끝이 -n을 제외한 자음을 피하려는 경향이 짙다.

후대 언어들에게서는 어말이 -n이 아닌 경우도 상당수 나타나나, 주로 치음들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 경우는, 마지막 모음이 사라진 경우가 아니라면 몽골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에서 유입된 어휘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6. 형용사는 명사를 수식할 때, 따로 조사(접미사)를 첨가하지 않는다.

7. 非 주제우세언어(非 Topic-prominent language)이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어 <-은/는>에 해당되는 조사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주격으로 퉁친다.

8. 주격조사(-이/가)가 없으나 과거에는 있었을 가능성이 존재.

9. 속격조사(-의)는 현대 언어에는 사실상 소실됐다.



퉁구스족은 한국어, 정확히는 중세 한국어와 상당한 부분 닮았지만, 사람에 따라 몽골어하고도 닮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퉁구스 민족들이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들을 정복한 러시아어나 중국어를 모국어로 삼을 정도로 전망이 좋지는 않다. 아예 가장 숫자가 많은 만주족은 그냥 한족에 사실상 흡수되어 자기들 언어를 잊었을 정도이며, 퉁구스족에서는 그나마 숫자가 나름 있고, 일찍부터 인정받은 어웡키족과 그 하위 분파들이 언어적인 세를 유지하는 정도다. 







퉁구스족의 분류와 그에 속한 민족들 (주로 언어학적으로 분류)



 

출처 : wikipedia.org

녹색 : 북퉁구스족 (퉁구스)

빨간색 : 남(동)퉁구스족 (아무르)

파란색 : 남(서)퉁구스족 (만주)



1. 북퉁구스족 

오로치-우더거 그룹
오로치
우더거(=우디거, 우더허, 우디허)
어웡키-어원 그룹
어웡키 그룹
어웡키
네기달(자칭 : 얼칸 바여닌)
오로첸(=어룬춘)
솔론
어원(=에벤, 라무트)


오로치-우더거 그룹은 아무르강 유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어웡키-어원 그룹은 한 때는 저 멀리 퉁구스카 강 유역까지 살았으나, 러시아 제국의 공물 압박에 밀려 셰고 서부로 밀려갔다. 오늘날에는 예니세이강 유여역, 북만주~아무르 상류, 중류에 사는 일파도 많고 오늘날에는 오호츠크해 연안에도 제법 거주하고 있다. 아주 극소수의 지파가 사할린섬까지 거주했으나, 지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본다.





2. 남퉁구스족

나나이 그룹 (남서퉁구스족, 아무르 그룹)
나나이(=허전)
울치(=윌타)
오로크
만주 그룹 (남동퉁구스족)
만주
시버
한편 만주 그룹 같은 경우, 워낙 개성이 강해서 남퉁구스족이 아닌, 제3의 퉁구스족(만주족)으로 구별하기도 하다. 언어학적으로 남퉁구스족과 닮은 구석이 강하지만, 동시에 워낙 개성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산(山)을 원시 퉁구스 제어로 복원하면 "*hurē"이며, 어웡키어로 "ure", 우디거어로 "wē"나 "ue", 나나이어로 "hure(n)", 오로크어 "hure"다. 그런데 그 어휘에서 갈라진 만주어 "wehe"는 돌(石)이다. 반면 다른 퉁구스어 돌(石)은 *ǯolo 계통 어휘들에서 파생됐다. 또한 만주어로 산(山)은 "alin"인데, 다른 언어들은 "산길"이나 "산을 넘다"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나나이그룹은 전통적으로 아무르강 유역에 살았으며, 오늘날에는 아무르강 하류쪽에 많이 거주한다고 한다. 오로크족 같은 경우 사할림섬과 한 때 홋카이도까지 진출했으나, 홋카이도에 진출한 오로크족은 일본인과 섞이거나 사라졌다. 보통 홋카이도 오로크인들은 스스로 오로크인이라고 하기 보다는 일본인이거나 아이누인이라고 주장한다.

만주족은 만주 전역을 휩쓸고 살았으나 지금은 요동쪽에 많이 몰려살고 있으며, 민족 정체성이 가장 없다. 한족화가 너무 잘 진행됐기 때문.




퉁구스족과 예·맥·한족의 관계


 최근 한국과 일본 양국의 인류유전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한민족과 일본민족이 북방 몽골 계통에 속하며, 그 기원은 어쩌면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부근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고고학 및 민족학 연구자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하고 있다. 즉 제4기 洪積世(일명 更新世)의 빙하기에 아시아대륙에 출현한 古몽골인종은 이리저리 대륙을 떠돌다가 바이칼호 근처에 갇혀있던 중 그 일부가 약 2만년 전 제4 빙하기의 혹한 때 한랭한 기후에 적응하면서 新몽골인종이 되었으며, 이들은 약 1만년 전 홍적세가 끝나고 沖積世(일명 完新世)의 초기인 後氷期가 시작되면서 기후가 따뜻해지자 남쪽으로 이동을 개시하여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 정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한민족의 직계조상으로 간주되는 신석기시대 주민인 셈이다. 다만 앞에서 보았듯이 김원룡은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인들이 후빙기의 도래와 함께 원주지를 떠나 북쪽의 한랭한 지역으로 이동해 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나 혹은 반대로 한민족이 구석기시대 말에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을 의심하는 반론도 만만찮은 실정이다.128)

 앞에서 보았듯이 김정배는 한국 신석기문화를 담당한 주인공을 고아시아족이라고 주장했고, 김원룡은 이에 동의를 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종족은 일찍이 시베리아로 진출한 古백색인종과 황색인종과의 혼혈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하며, 현재 동부 시베리아 북쪽 끝으로부터 남쪽으로 사할린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츅치·캄차달(현재의 호칭은 이테르만)·코리야크·유카기르·길리야크(현재의 호칭은 니브흐)의 제족과 예니세이강 중상류에 사는 케트족이 이에 속한다.129) 이들 중 유카기르족은 현재는 인구수나 주거지가 급속히 축소된 채 잔존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 언어 분포로 미루어 볼 때 시베리아의 광범한 지역을 점유했던 가장 오랜 원주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130)

 한편 언어학자들은 고아시아족 계통의 언어가 알타이 諸語와 전혀 친근관계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국어가 퉁구스 제어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을 개연성이 가장 높다고 보는 어떤 언어학자는 한국어에 어떤 基層 언어가 있었을 것으로 상정하고 이를 이른바 ‘原始한반도어’로 명명, 어쩌면 이것은 길리야크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고아시아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 논자는≪三國志≫魏書 東夷傳에 보이는 읍루(挹婁)족이 그 위치로 미루어 길리야크족(아무르강 하구와 사할린 일부 지역에 거주)의 선조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131) 이 같은 想定의 배경에는 신석기시대 한반도의 주인공이 고아시아족에 속한다는 일부 고고학 연구자의 견해가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날 일본인 학자들이나 손진태는 한민족을 흔히 퉁구스족에 ‘속한다’거나 혹은 그와 ‘가까운’ 족속이라고 정의했으나 김정학이 이를 따르는 대신 알타이족(알타이어족의 의미)의 한 독립된 민족단위(ethnic unit)로 설정할 것을 제안한 이래 김정배가 이를 취한 바 있다. 실은 인류학자 중에서도 퉁구스족설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이 없지 않은 듯하다. 요컨대 퉁구스족이 동북아시아의 대표적인 족속이고 한민족이 마치 그 別種인 것처럼 논하는 것은 퉁구스족이 수행한 역사상의 활동이라든지 혹은 현재의 인구수에 비추어 볼 때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132) 하지만 김원룡을 비롯하여 국외의 대다수 연구자들은 변함없이 퉁구스족 개념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다. 가령 만주족의 예를 들어보면 현재 그들은 중국 전체를 통틀어 약 430만 명(1982년)에 지나지 않으나, 그들의 역사적 활동을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실은 만주족 자체가 남방 퉁구스 諸語를 사용하는 종족들을 근간으로 하여 형성된 하나의 특유한 민족적 복합으로 간주되고 있다.133)

 현재 퉁구스·만주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민족(이른바 퉁구스족)은 동시베리아의 아무르강(黑龍江)을 경계로 그 북쪽에 에벤키족이 예니세이강과 오호츠크海 사이에, 그밖에 동부시베리아의 넓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르강 남쪽의 연해주 일대에는 나나이족(지난날의 호칭은 골디족)·오로치족·우리치족·우데헤족·네기달족·오록코족(현재의 호칭은 윌타족) 등이 살고 있다. 현재 야쿠트 자치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 야쿠트족은 바이칼호 연안지방에서 북쪽의 레나강 중류지역으로 이주했는데, 그 원주민의 언어는 퉁구스 계통의 그것이다. 이처럼 퉁구스족은 고아시아족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동시베리아 일대에서 거주지역이 크게 축소된 채 소수의 인구밖에는 남아 있지 않으나, 고대에는 만주지방을 대표하는 족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퉁구스족의 발상지에 대해서는 만주설·알타이 남부설·華中說 등이 있고 또한 시베리아 동부지역으로 이동해 간 시기에 대해서도 B. C. 2000년대로부터 A. D. 10세기경까지로 보는 등 여러 가지로 엇갈린 설이 있다.134) 현재로서는 바이칼호 부근에서 발생했다는 러시아 학자들의 견해가 가장 유력한 실정이다. 즉 아끌라드니꼬프(A. P. Okladnikov)는 바이칼호 서쪽설을, 레빈(M. G. Levin)은 그 동쪽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주의를 요하는 것은 퉁구스족 화중 기원설이 일찍이 중국학자들에 의해서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을 띠고 주장된 학설이라는 점이다. 즉 1931년 9월 일본 군부에 의해서 이른바 만주사변이 돌발하고, 그 이듬해 괴뢰국가 ‘만주국’이 성립되는 등 바야흐로 일본의 만주침략이 고조되었을 때 중국의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은 만주지방이 역사의 여명기로부터 영토상 중국의 완전한 일부라는 취지에서 많은 논문과 저서를 발표, 만주를 중국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획책하는 일본의 만주침략을 역사적, 이론적 측면에서 비판했다. 傅斯年은 중국 고전에 나타나는 東夷族이 산동반도와 그 남쪽의 淮水유역에 분포된 것으로 보던 종전의 견해를 만주로까지 확대 해석한≪東北史綱≫(제1권 ‘古代之東北’)을 발표했으며(1932), 고고학자 李濟는 대략 같은 주장을 피력한≪역사상의 만주≫(Manchuria in History, 1932)를 준비하여 만주사변의 발발 현장에 출장 나온 국제연맹 조사단에 제출한 바 있다. 그밖에 역사학자 馮家昇은 1935∼1936년 역사잡지≪禹貢≫에 원시시대로부터 周·秦시대에 걸친 기간의 만주의 사정, 중국의 만주 ‘경영’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이 동이족을 퉁구스족, 중국 고전에 보이는 예맥족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음은 물론이다. 동이족 곧 예맥족이 산동·요동·한반도에 걸쳐 분포했다는 이 같은 견해는 그로부터 훨씬 뒤까지 芮逸夫·文崇一 등 중국(대만) 민족학자들에 의해서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을 뿐 아니라 동이족의 이동설 내지 이른바 ‘동이문화권’을 신봉하는 한국인 연구자들 가운데서도 이 설을 따르고 있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135)

 앞에서 보았듯이 신석기문화로부터 청동기문화로의 轉化를 갖고 그 문화 담당자가 바뀐 것으로 생각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즉 김원룡은 이를 고아시아족으로부터 퉁구스족으로, 김정배는 고아시아족으로부터 알타이족으로 문화의 담당 종족이 교체한 것으로 보았다. 사실 인류학자 크뢰버(Alfred L. Kroeber)의 고전적 견해처럼 문화변동의 요인으로는 발명·전파·移住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에도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시대의 문화를 올바르게 포착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의 구성요소를, ① 그 이전 시대로부터의 전통적 요소, ② 새로이 전래한 외래적 요소, ③ 새로이 육성된 그 문화 특유의 고유한 요소로 구분해 보는 것이 방법상 옳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136) 주민교체설은 청동기문화의 여러 양상을 오로지 새로이 전래한 외래적 요소만에 의한 것으로 간주한 위에 더욱이 이를 주민 교체에 따른 현상으로 파악한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그렇게 단정할 만한 근거가 매우 박약한 실정이다.137) 요컨대 신석기시대의 유문토기로부터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에로의 변화는 이를 담당한 종족의 교체에 의한 결과라기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어 온 유문토기문화 자체의 발전의 성과가 외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새로이 生成된 때문인 것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다.138)

 그것은 어쨌든 현재 다수의 연구자들이 청동기시대 遼河 동쪽, 松花江 이남의 남만주 일대로부터 한반도 중부 이북지역에 걸쳐 거주했던 한국사의 주인공을 중국의 역사서에 보이는 예맥족으로 간주하고 또한 남한 지역의 韓族 역시 다만 지역차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예맥과 같은 계통의 종족으로 보고 있는 점은 주목되는 사실이다. 이 예맥족과 한족이 고조선을 비롯하여 부여, 辰國 등 많은 국가를 건설하고 뒤에 삼국의 건국세력으로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한민족 형성의 직접적 계기가 마련된 것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예맥·한족에 알타이족과 퉁구스족 가운데 과연 어떤 종족명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이는 현재 어떤 단안을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이를테면 한민족의 기원문제에 큰 암시를 줄 수 있는 한국어의 계통론만해도 어떤 연구자는 한국어가 알타이 제어와 친족관계에 있을 개연성이 크며 그 중 특히 퉁구스어와 가까운 면이 있는가 하면 몽골어와도 가까운 면이 있다고 보는가 하면, 다른 연구자는 퉁구스 제어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이 가장 높다고 보는 등 미묘한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한민족의 계통 문제는 앞으로 더욱 精緻한 연구가 요망되는 과제라고 할 수가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