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망한 이유
근대에 조선과 일본은 둘 다 외압에 의해 개국을 강요당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일본만 식민지화되지 않고 자주적 근대화를 성취하였다. 그 이유는 외압의 차이를 기준으로 비교사적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는 관점은 일본이 조선과 중국에 비해 개국 이전의 생산력 발전 조건이 앞서 있었거나, 지도층이 뛰어났다고 보는 일본 학계의 통설(通說)보다 설득력이 크다. 일본이 식민지화를 면한 이유를 양심적인 일본인 학자 도야마 시게키(遠山茂樹)와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는 동아시아 여러 민족 가운데 일본의 사회 발전 단계가 앞서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의 외압이 조선이나 중국보다 느슨하였다는 점, 개국 시기가 중국보다 늦었지만 조선보다 앞섰던 점 등에 있다고 보았다.347) 특히 강동진은 일본이 식민지화를 면하고 자율적인 근대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개국 이전의 자본주의 발전 단계의 차이, 외압의 강도 차이, 개국 시기의 차이 등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일본이 일찍부터 구미 열강, 특히 영국과 미국의 도움을 받으며 아시아로의 침략주의를 채택하였으며, 침략의 제1차적 대상이 조선이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348)
조선도 후기부터 근대 지향적 실학사상과 자본주의의 맹아(萌芽)가 싹트고 있었으며, 개항 이후에도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 협회 운동 등 근대 국가 수립에 매진하였다. 하지만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이를 모방한 청나라와 일본의 침략 때문에 자주적인 근대 국가 수립에 실패하였다. 일본이 근대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 이전 일본의 역량이 조선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도 아니고,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의 대응 능력이 탁월하였기 때문도 아니다. 또 일본이 식민지 종속의 길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근대 국가 수립기에 외압이 거의 없었고, 발 빠르게 서구에 문호 개방을 하였으며, 조선을 침략하여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본이 조선보다 앞서 근대 문물을 수용할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지리적 위치가 좋아 서구와 먼저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은 그렇지 못한 데서 비롯된 시간의 경쟁에서 뒤처졌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