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라스 전투(Battle of Talas)는 751년 7월 ~ 8월 사이에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 장군이 지휘하는 당나라군과 동맹군 카를루크가 압바스 왕조, 티베트 연합군을 상대로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영토인 탈라스 강 유역에서 압바스 왕조의 동쪽 진출을 막으려 하였다.
배경
아바스 왕조는 세력이 강해지고 710년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에 진출하였다.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위구르 샤틀리에, 카를룩 등의 유목민은 당나라 영토를 계속하여 진출 정복하였고 당나라는 신강지역에의 안서도호부에서 방어하려고 하였다. 750년,압바스 왕조의 군대는 계속 동진하고 있었고 고선지(高仙芝)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소그디아나를 압박한다. 소그디아나 왕은 당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압바스 왕조에 도움을 요청했고 747년 우마이야 왕조 세력을 메르부에서 몰아낸 아바스 왕조의 호라산 총독 '아브 무슬림'은 부하인 지야드 이븐 살리흐를 파견시켜 지야드가 이끄는 아바스 왕조군과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군은 텐산 산맥 서북쪽 기슭의 탈라스 강에서 격돌했다. 751년 4만 명의 아랍-투르크 군대가 진격하였고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탈라스 강에서 고선지의 군대가 진격하였으나 고선지 군대는 패망하였다.
텐산 북쪽에 유목생활을 하는 유목민 카를룩족이 아바스 왕조로 돌아섰기 때문에 당나라군은 괴멸하고 전투는 패배했다. 고선지는 사로잡히고 소수의 병사만이 탈출했다.
결과
아바스왕조는 이 전투의 승리로 이슬람세력이 기반을 굳히게 되었고,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이슬람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나라의 병사가 포로로 붙잡히게 되었고, 그들 중에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는 기술자가 포함되어 있기에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에 퍼지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나라는 이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면서 국력이 쇠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