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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교향곡, 탄소와 거의 모든 것의 진화, 생명의 원소이자 종말의 원소 탄소

Jobs 9 2025. 1. 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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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교향곡, 탄소와 거의 모든 것의 진화


생명의 원소이자 종말의 원소, 탄소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 중에 탄소가 들어 있지 않은 물건을 찾을 수 있는가?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숨 쉬는 공기, 잠자는 이불은 물론이거니와 종이, 나무, 약물, 페인트, 고무, 플라스틱 등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에는 탄소가 들어 있다. 탄소는 물질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원소로서 생명 탄생의 비밀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탄소가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반응성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을뿐더러, 최외각전자가 네 개여서 다른 원자들과 다양한 조합으로 결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분자인 아미노산이 하늘과 바다에서 최초로 합성되는 데에도 탄소의 이런 특성이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탄소는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 흔히 알고 있는 바로 탄소는 별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칼 세이건은 우리가 ‘별의 먼지’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파비오 이오코의 연구에 따르면, 약 개(현존 탄소의 1조분의 1)의 탄소 원자가 최초의 별이 탄생하기보다도 훨씬 이전, 그러니까 빅뱅 직후 채 20분이 지나지 않아 합성되었다. 하여 우리는 ‘별 먼지’뿐만 아니라 148억 년 전의 ‘빅뱅 먼지’로도 이루어진 존재다. 

전작 『지구 이야기』, 『과학의 열쇠』, 『제너시스』 등으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헤이즌은 세계 최고의 탄소 전문가이자 40년 동안 여러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한 프로급 음악가다(첼리스트 요요마와의 에피소드가 책에 실려 있다). 그가 『탄소 교향곡』을 썼다. 글로 쓴 교향곡이라니… 처음에는 본인도 갸웃했지만, 그는 2년 만에 걸작을 만들어냈다. 탄소과학의 여러 이야기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한 헤이즌의 글에는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하나의 울림을 자아내는 교향곡과 같은 감동이 있다.

제1악장 흙: 탄소, 결정의 원소

서곡―지구 이전
제시부―지구의 출현과 진화
전개부―깊은 지구 속의 탄소
재현부―탄소 세계
코다―아직 답하지 못한 물음들

제2악장 공기: 탄소, 순환의 원소

도입부―공기 이전
아리오소―지구 대기의 기원
간주곡―심층 탄소 순환
아리오소, 다카포―대기의 변화
코다―알려진 것, 알려지지 않은 것, 알 수 없는 것

제3악장 불: 탄소, 물질의 원소

도입부―물질계
스케르초―유용한 물질
트리오―나노 물질
스케르초, 다카포―고분자화합물 이야기
코다―음악

제4악장 물: 탄소, 생명의 원소

도입부―태초의 지구
제시부―생명의 기원
전개부―생명은 진화한다(주제와 변주)
재현부―인간의 탄소 순환
피날레―흙, 공기, 불, 물

 


어떤 의미에서든 탄소 이야기는 곧 모든 것의 이야기다. 어디에나 있고 없어서는 안 될 이 원소는 비밀도 많다. 우리는 지구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소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행성 깊숙이 숨겨진 다양한 형태의 탄소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지구 표면과 깊은 내부 사이를 순환하는 탄소 원자의 움직임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그 움직임이 수십억 년 지구 역사의 이른바 ‘도저한 시간deep time’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형언하지 못한다. 수백만 가지 탄소화합물이 알려져 있지만 과학자들은 이제야 비로소 풍부한 탄소화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것 중 가장 커다란 미스터리인 생명의 기원은 다른 원소와 복잡한 화학적 조합을 이루는 탄소의 거동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 p.11

오늘날, 탄소함유광물은 무척이나 풍부하다. 캐나다 로키산맥의 거대한 석회암 봉우리에서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광대한 산호초, 도버의 화이트클리프에서 해저에 쌓인 작은 조개껍질에 이르기까지 광물은 지각에서 가장 커다란 탄소저장소다. 알려진 광물‘종’ 400가지에 탄소 원자가 들어 있다. 게다가 최근 연구자들은 그 목록의 수를 늘렸다. 150종 이상의 새로운 탄소함유 결정체가 암석 노두, 이글거리는 화산 분출구 가장자리 혹은 증발하는 호수 근처와 폐광산 토양에 묻혀 그간 우리의 눈길을 피해왔다. 발견되길 기다리는 희귀한 결정도 여전히 많다. 
--- p.46

다이아몬드의 불순물 조성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금속이 풍부한 내포물에는 맨틀에서 가장 많은 원소 산소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탄소와 황이 풍부해서 다이아몬드가 형성될 때 주변에 그 원소들이 녹아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놀랍게도 금속 내포물이 가리키는 곳은, 훨씬 더 고밀도의 철과 니켈 합금 결정질로 이루어진 지름 1520마일(약 2446킬로미터)의 안쪽 깊은 핵을 띠처럼 둘러싸고 있는 고밀도의 용융 철과 니켈의 바다와 화학적 조성이 비슷한 곳이었다. 
--- p.90

지구의 모든 탄소는 우주에서 왔다. 주요한 출처는 세 곳이다. 탄소함유 기체가 풍부한 태양풍에서 소량의 탄소가 지구에 도달했다. 더 많은 양의 탄소는 검은 운석에 든 채로 지구에 떨어졌다. 지금도 가끔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이 매혹적인 돌 안에는 언제든 화학적 변형을 치를 수 있는 유기화합물로 가득 차 있다. 연료로 쓸 수 있는 탄화수소와 알코올, DNA와 RNA를 조립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당, 퓨린, 피리미딘 골격은 물론 아미노산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지구의 탄소재고량을 늘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혜성은 특히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같은 작은 기체 분자와 대양을 채울 물을 풍부히 함유하고 있다. 
--- p.113

지구 지각에 있는 모든 탄산염광물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로 변환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기 농도의 10만 배가 넘는 약 2×톤의 탄소저장소가 갑자기 기체로 바뀌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답은 분명하다. 지구는 금성처럼 변한다. 여러 면에서 금성은 지구의 쌍둥이 행성이다. 크기가 같고 밀도도 같으며 기본 조성도 동일하다. 작열하는 태양에 2500만 마일(약 4023만 킬로미터) 더 가깝고 지구 표면보다 90배 더 높은 압력의 고농도 이산화탄소 대기가 결합한 결과는 폭주하는 온실효과였다. 금성의 표면온도는 평균 섭씨 480도로 납을 녹일 만큼 뜨겁다. 
아마도 지구는 그저 운이 좋았을 것이다. 다 탄소 덕이다. 
--- p.120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 탄소 순환을 이해하는 일은 처음부터 심층탄소관측단의 핵심 목표 중 하나였다. 수백 명의 과학자가 전 세계 수십 곳의 현장과 실험실에서 다양하고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역동적인 심층탄소 순환을 파헤치는 이들의 연구는 세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래로 가는 것은 무엇인가? 저 아래에서 탄소의 운명은 어찌될까? 다시 솟아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 p.124

가장 도발적이고 광범위한 ‘지구심층수’ 관련 발견 중 하나는 잠재적으로 엄청난 양의 메탄이 맨틀에서 올라와 지각에 거대한 저장소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질학자들은 천연가스 및 기타 탄화수소 대부분이 비생물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가설을 옹호해왔다. 하지만 미국과 여러 산유국의 석유지질학자들은 이 가설이 틀렸고 석유나 천연가스 대부분이 죽은 식물이나 동물 또는 미생물에서 비롯되었다며 격하게 맞섰다. 우리 중 일부는 냉전에 따른 적개심과 직업적 경쟁으로 악화일로에 들어선 이런 논쟁이 분명 잘못된 이분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렇지만 아마도 두 진영이 모두 맞을 것이다. 메탄은 여러 경로로 형성될 수 있다. 그것이 심층탄소관측단이 알아보고자 했던 연구 주제다. 
--- p.132~133

지난 200년 동안 인류는 탄소가 풍부한 석탄과 석유를 수천억 톤 채굴했다. 그렇게 석탄과 석유를 태워 연간 약 40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이는 전 세계 모든 화산에서 방출되는 양의 1000배에 해당한다. 인간은 탄소 방정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 p.148

켈러멘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자리할 것이다. 암석이 실시간으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다. 오만에는 인간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생산한 모든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양의 오피올라이트가 있다. 현재 오만 정부는 탄소 격리 계획과 결부된 어떤 투자도 할 의향이 없다. 탄소 격리가 아니라 석유가 이 나라 경제의 토대인 까닭이다. 하지만 오피올라이트는 거기에 있다. 지구 탄소 위기를 해결할 전망도 거기에 남아 있다. 
피터 켈러멘은 인내심을 갖춘 낙관론자다.
--- p.155

1977년 미생물이 서식하는 풍부한 생태계를 가진 깊고 어두운 해저, ‘블랙 스모커’ 화산 분출구가 발견되면서 흥미로운 대체 기원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이 시나리오는 화산 광물에서 계속해서 생성되는 신뢰할 만한 화학에너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암석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생명 가설은 생체분자를 만드는 그럴듯하고 보완적인 방법으로 확 다가왔다. 번개의 파괴적이고 순간적인 효과를 피하는 더 온화한 합성경로로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 p.갑자기 잠재적 당사자가 된 광물학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밀러와 추종자들은 ‘분출공주의자’가 왜 틀렸는지 설명하는 논문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열수분출공 가설에 맞서 싸웠다. 인기 있는 과학잡지 『디스커버』의 1992년 표지면에 열수분출공 가설을 평하면서 밀러는 ‘진짜 패배자’란 표현을 썼다. 그는 “왜 우리가 이런 하잘것없는 것을 논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 p.216

기발한 아이디어가 계속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물속에 있는 생명의 필수 분자혼합물들을 유용한 생물학적 구조들로 바꾸려는 수십 년간의 헛된 노력 끝에 결국, 생명 기원 연구자들은 암석과 광물이 제공하는 견고한 토대가 필수적인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광물 표면에 정렬된 원자 배열은 생명이 탄생하는 데에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어떤 광물은 주요 생체분자인 아미노산, 탄수화물 및 염기의 합성을 촉매한다. 또 어떤 광물은 작은 분자를 선택하고 농축시켜 정확한 위치와 방향으로 표면에 붙이는 동시에 화학적 공격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한다. 또한 광물 표면은 분자를 기능적 막과 고분자 물질로 정렬하고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p.220~221

회로의 단순성과 생화학적 잠재력을 감안할 때 우리는 생명의 기원 게임에서 역 구연산 회로 또는 그와 유사한 생화학 경로가 수십억 년 전에 최초의 자기복제시스템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화학적 혁신을 생명의 실제 기원과 같다고 여긴다. 원시 지구 환경을 모방한 계속되는 실험을 통해 우리는 회로의 필수적 화학 단계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을 재현했다.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우리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 p.226~227

지구의 광물 진화가 생물 진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수십 년 전과 비교하면 시각이 급변했다. 내 학위논문 심사위원이었던 한 교수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생물학 수업을 왜 들어? 쓰잘데라곤 한 군데도 없는걸.” 
--- p.248

지구의 석탄 대부분은 약 3억 6000만 년 전에 시작된, ‘석탄기’라는 적절한 이름이 붙여진 6000만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대개 빨리 썩어서 탄소 원자를 토양으로 되돌려 빠르게 재사용한다. 3억 년 전과 달리 나무의 리그닌 섬유소를 분해하는 ‘목재부패’ 곰팡이가 진화함에 따라 탄소의 효율적인 재활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나무를 분해하는 과정이 등장하기 전에는 죽은 나무가 100피트 이상의 두께로 쌓여 있었다. 식물의 잔해는 점점 더 깊이 묻히고 조직이 압축되고 구워졌다. 그 생물량은 점차 말라갔지만 생체물질은 해중합화 과정을 거치면서 휘발성 물질을 방출하고 무연탄에서 볼 수 있듯 탄소 함량을 90퍼센트 이상까지도 올린다.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그 석탄기 유산을 채굴하여 6000만 년 동안 격리되었던 탄소를 단 몇십 년 만에 고스란히 대기로 돌려보낸다. 
--- p.264~265

두 번째로 훨씬 더 극적인 ‘탄소폭탄’은 비정상적인 야외 핵무기 실험이 벌어졌던 광란의 짧은 시대를 표상한다. 핵실험금지조약이 발효되기 전인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의 일이다.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핵폭발로 인해 대기 중 탄소-14의 농도가 두 배로 증가했다. 달라진 공기 속의 탄소-14 농도는 이산화탄소가 바닷속 분자와 교환되거나 암석에 격리되고 또 식물에 의해 소비되면서 점차 감소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은, 식물의 탄소-14 함량이 두 배가 되었고 다음에는 동물의 몸 안에서, 그리고 냉전시대를 살아간 우리 인류의 몸 안에서 각기 두 배가 되었다. 모든 인류는 여전히 우리의 근육과 뼈에 핵실험 유산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인간 탄소 순환의 일부기 때문이다. 
--- p.271

웅장한 탄소 교향곡의 주제인 물질의 진화 그림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은 평범하면서도 독특하다.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 혈통이 멸종되거나 일부 새로운 종으로 변한다 해도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40억 년 이야기의 또다른 진화 단계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만이 기후와 지구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산소를 생산하는 광합성 미생물과 그 뒤를 이은 다양한 녹색식물은 인간의 행동보다 훨씬 더 심오한 방식으로 지표 근처 환경을 변화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도시, 도로, 광산, 농장 건설을 통해 인류가 대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지만 나무와 풀은 인간의 능력을 훌쩍 넘어서 세계의 풍광을 천천히 바꿔왔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종이 ‘지구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말하지만 소행성의 반복되는 재앙적 충돌과 거대 화산의 폭발적인 분출은 인간이 고안한 그 어떤 무기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 p.278

2008년 5월 15일, 전 세계 탄소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생물학, 지구과학, 유기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모여 새롭고 통합적인 방식의 탄소 연구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얼마 후 ‘심층탄소관측단(Deep Carbon Observatory, 이하 관측단)’이 출범했다. 총연구비 5억 달러 규모로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연구 프로젝트였다. 오랫동안 지구의 탄소 순환과 지하 깊은 곳의 심층탄소를 연구했던 헤이즌이 관측단의 총괄 책임자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10년이 넘는 동안, 관측단은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발견된 광물의 종류와 분포를 조사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광물의 특성과 위치를 예측하는 수학모델을 만들었으며, 적도부터 극지까지 지구상 모든 바다의 바닥을 수 킬로미터 깊이로 뚫어 지하 미생물 군집을 낱낱이 기록했다. 영양분이 없는 고압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존재는 최초의 생명이 광물 에너지를 바탕으로 합성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의 강력한 근거다. 관측단은 또한 압류된 밀수 다이아몬드를 누르고 부수고 태우며 다이아몬드 내포물이 가리키는 맨틀과 판구조론의 비밀(맨틀은 불균질하고 초기 지구는 판구조운동을 하지 않았다)을 밝혀냈고,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광물인 오피올라이트(ophiolite)로부터 기후위기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헤이즌이 관측단의 모든 사업과 연구 결과를 망라하여 쓴 이 책에는 그 밖에도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관측단은 애초의 목표를 초과달성했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과학의 역설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있는 한, 알아내려는 우리의 시도 역시 계속될 것이다. 

교향곡의 선율로 울려퍼지는 ‘6번 원소, 탄소’의 역동적인 연대기

교향곡처럼, 이 책은 각기 다른 분위기와 형식의 네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악장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물을 구성한다고 믿었던 네 원소 ‘흙, 공기, 불, 물’을 주제로 만물의 원소 탄소를 연주한다.
‘제1악장-흙: 탄소, 결정의 원소’는 138억 년 전 탄소의 출현부터 우주 최초의 결정인 다이아몬드의 형성, 현재도 진행 중인 광물과 지구의 진화, 다양한 광물로부터 지구 내부의 모습을 유추하는 방법, 그리고 지구 깊숙이 묻혀 있는 탄소를 추적하는 과학자들의 노력까지, 독자를 빨아들이는 매력 넘치는 첫 악장이다. 

‘제2악장-공기: 탄소, 순환의 원소’의 주제는 지구의 장엄한 탄소 순환이다. 탄소 원자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분출하는 화산을 통해 대기로 나왔다가 때로는 바다로, 때로는 생명으로 스며든다. 이후 광물이 되어 지각을 구성하던 탄소 원자는 섭입하는 지각판을 따라 맨틀 깊은 곳으로 침강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모습을 바꿔 다시 올라온다. 인간이 의도치 않게 그 균형을 깨기 전까지, 유구한 세월 평형을 이루고 있던 탄소 순환의 역사가 아리아의 선율로 잔잔하게 흘러간다. 

‘제3악장-불: 탄소, 물질의 원소’는 강력하고 빠른 스케르초다. 탄소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수천 개의 얼굴을 가진 ‘물질의 원소’다. 다이아몬드, 흑연, 나일론, 석유, 그래핀, 탄소나노튜브…, 놀랍도록 다채로운 탄소화학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지막 ‘제4악장-물: 탄소, 생명의 원소’는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연주한다. 처음에는 지구의 원시 바다에서 생명체가 출현하면서 평화롭게 시작되지만, 곧 생명의 놀라운 진화적 혁신을 나타내는 여러 갈래의 변주곡으로 빠르게 치닫는다. 

‘청정’에너지는 ‘청정’하다?―우리가 탄소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

세계기상기구(WMO)의 2021년 기후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온실가스 농도, 해수 온도, 해양 산성화도, 평균 해수면의 지표가 모두 악화되는 쪽으로 기존 기록을 경신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하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1.5배, 연평균기온은 약 1.1도 상승했다. 또한 1880년부터 시작된 미국기상청 문서기록에 따르면,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 1위부터 7위까지가 모두 지난 10년 안에 들어 있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평균기온이 여기서 조금만 더 높아지면 북극의 영구동토 속에 얼어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메탄가스가 방출되는 ‘급변점(tipping point)’이 온다는 사실이다. 

기후위기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고, 기후위기의 핵심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의 증가다. 정부와 기업은 기후위기 전담 조직을 만들어 2050 탄소중립, ESG 경영 등을 실행하고 있고,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가고 시민들의 열기도 뜨겁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우리가 하는 행동이 기후위기를 늦추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청정’에너지를 얻고자 풍력 터빈과 태양광판을 설치하는 데에도 환경이 파괴되고 이산화탄소가 방출된다. 전기차의 전력도 상당 부분 화석연료 발전소에서 나오고, 배터리를 만들고 폐기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중교통, 유기농업, 재활용품, 천기저귀 등은 모두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의미 있는 방편이지만, 이것들을 운용하려면 여전히 어느 정도 탄소 기반 연료에 의존해야 한다. 헤이즌은 지구가열과 기후위기, ‘탄소중립’ 같은 논의들이 그저 맹목적인 공포나 기업/정부의 눈가림 혹은 마케팅 수단, 개인들의 선하고 소박한 실천(만)으로 오도되지 않기 위해서도, 탄소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탄소는 우리 시대 초미의 과제를 더 근본적으로, 더 깊고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게 해주는, 그리고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해주는 ‘끝과 시작’의 원소다. 


 

 

 



저 : 로버트 M. 헤이즌 (Robert M. Hazen)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 지구과학과의 클래런스 로빈슨 교수이며 카네기 연구소 지구물리학 실험실 산하 심층탄소관측단의 전무이사이기도 하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지질학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지구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광물학회 회장을 지낸 헤이즌의 최근 연구는 생명의 기원, 광물 진화, 지구권과 생물권의 공진화에서 광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과학의 열쇠』, 『풀리지 않는 과학의 의문들 14』, 『제너시스』, 『지구 이야기』 등이 있다.



역 : 김홍표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다.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보건원 박사 후 연구원과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피츠버그대학교 의과대학,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연구했다. 

천연물 화학, 헴 생물학, 바이오 활성가스, 생물학, 자기소화, 면역학과 관련된 다수의 논문을 썼다. 

한국연구재단이 톰슨로이터 DB의 피인용 상위 10% 논문을 대상으로 분석한 조사에서 ‘2009∼2014년 한국인 기초과학 상위 연구자’로 의학(4위), 약학(3위) 두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연구 분야와 관심 분야는 기초 생물학과 진화생물학, 진화의학이다. 

지은 책으로 『가장 먼저 증명한 것들의 과학』(2018),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2017),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2016), 『산소와 그 경쟁자들』(2013)이 있고, 옮긴 책으로 『물의 과학』(2017), 『진화하는 물』(2017), 『내 안의 바다, 콩팥』(2016),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2015), 『진화와 의학』(2015),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2014), 『신기관』(2014), 『제2의 뇌』(2013)가 있다. 2017년부터 ≪경향신문≫에 ‘과학의 한귀퉁이’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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