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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맨 빙하 트레일, 베이커산

Jobs9 2022. 5. 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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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맨 빙하 트레일
글레이셔(마을)~헬리오트로프 트레일~콜맨 빙하 코스


겨울산은 늘 혼자다. 상큼한 꽃 냄새, 곱던 단풍잎 눈(雪)으로 덮고 산새마저 잊어버린 산역은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찬 바람뿐, 찾는 이 없어 겨울산은 홀로 외롭다. 바람을 토해내고 구름과 숨바꼭질하다가 꽃바람 부는 날이 오면 긴 겨울을 참았던 눈물로 쏟아내고 마침내 소복을 벗는다. 

로키의 겨울은 많은 눈으로 덮인다. 가끔 눈사태가 나서 길이 막히고 눈보라로 길을 닫는다. 그러면 우리는 기차를 타고 눈속 산길을 달려 자스퍼로 가 겨울 로키를 만난다.

자스퍼는 자스퍼 국립공원의 중심으로서 롭슨 주립공원과 함께 로키의 북쪽에 위치한다. 로키의 거대한 산줄기는 남하하여 밴프를 지나 마지막으로 워터톤 호수 국립공원을 거쳐 미국으로 내려가기까지 수많은 가지를 뻗으며 태평양쪽을 향해 달려와 밴쿠버 뒷산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는다.

 

로키와 그를 둘러선 산군은 가히 남한 면적을 능가한다. 그 가지 끝에 열매가 열리듯 자리잡고 있는 것이 베이커산(Mt. Baker·3,285m)이다. 이 산은 미국에 있지만 밴쿠버 사람들에겐 캐나다 산이나 다름없다. 산정에 새날이 시작되고 아침노을이 하늘에서 불타면 우리 집 안방까지 들어와 온 방안을 붉게 물들이며 단잠을 깨운다. 

또 해 지고 어둠이 찾아드는 여름밤, 뒤뜰에 벗들과 모여 와인 한 잔 하노라면 산정에 떠오른 달이 와인잔에 들어와 잠기니 우리는 달빛에 어린 산에 반하고 와인에 취하기도 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1시간 반이면 국경을 넘어 그 산 밑에 다다를 수 있다.

이 베이커산에도 좋은 스키장이 있고 아름다운 트레일도 있어 많은 캐내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미국쪽으로 산행할 경우 캐나다와 다른 점이 있다. 주차료를 내야 되고, 12명 이상이 한데 어울려 다니지 못하게 한다. 정해진 트레일을 벗어날 경우 티켓을 받고 벌금도 물게 된다. 

또 한 가지는 미국 비자를 반드시 준비해야 된다. 그 외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날씨가 좋아야 된다는 것이다. 구름이 낀다던가, 비라도 뿌리면 좋은 경치를 보지 못하고 오게 된다. 

베이커산은 높이 3,285m로서 만년설을 늘 이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10개 빙하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 중 산행팀이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빙하는 서북쪽 비탈에 형성되어 있는 콜맨 빙하(Coleman Glacier)다. 이 빙하는 활동이 활발한 빙하다.


로키에 있는 콜롬비아 아이스필드와 비교한다면 크기를 견줄 수 없지만, 경관에서는 견줄 수 없을 만치 아름답다. 언덕에 올라 바로 내려다보는 위치에까지 접근할 수 있고, 또 언덕을 내려가면 빙하 가장자리에까지 가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반해 발을 들여놓으면 크레바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수도 생긴다. 작년에 젊은 사람 셋이 크레바스에 갇혀 겨우 한 사람만 구조되고 두 사람은 생명을 잃기도 했다.

전설을 요약하면 이 베이커산과 레이어니어(Rainier)산은 사랑하는 연인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서로를 기다리면서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초야를 치루지 못했던가, 한 날 한 시에 같이 옷을 벗는 일이 없다. 그래서 늘 베이커는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베이커는 여성이라 그 예쁜 몸매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밴쿠버에 있는 우리 산행클럽은 베이커를 갈 경우 대강 날짜를 잡아놓고 기다리다가 아침에 일어나 산정에 해 비치고 그 모습을 드러내면 후다닥 전화해 모일 수 있는 사람들만 다녀오기도 한다.


밴쿠버에서 1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나서면 아름다운 교량인 포트맨교(Portman Bridge)를 지나 30분 거리에 아보츠포드(Abbotsford)를 만난다. 시내를 보자마자 92번 출구(Exit 92)로 나가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수마스(Sumas)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게 된다. 911 사태 이후 검문이 강화되기도 했지만 최근 추가 테러경고로 더욱 철저하게 검문하고 있다.

또 한국인이라면 월경 사건이 잦은 관계로 더 자세히 본다. 미국 비자가 있어도 처음 입국하게 되면 사무실에 들어가 수속을 한다. 수속비(US$6)도 내게 되며 같은 차에 탄 사람들도 같이 들어가야 된다.

국경을 통과하면 미국 땅이다. 조그마한 동네를 지나 베이커산 안내판을 따라 좌회전해 547번 도로를 탄다. 30분쯤 가다가 542번 도로를 만나고 계속 따라가면 국경에서 1시간 거리쯤에 글레이셔(Glacier)라는 동네에 이른다. 여기서 여러 산길을 선택하게 되어있다.

일단 여행안내소(Glacier Public Service Center)에 들려야 된다. 산길 정보도 얻고 지도를 받으며 주차권(US$5)도 거기서 산다. 여기서 1마일(1.6km)더 가서 글레이셔 크리크 로드(Glacier Creek Rd)를 따라 우회전해 13km 산길을 오르면 고도 1,112m에 위치한 주차장에 이른다.

여기서 왕복 10km, 고도차 600m를 오르는 헬리오트로프 능선 트레일(Heliotrope Ridge Trail)이 시작된다. 처음에 산길로 들어서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우거진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길이나 있다. 골짜기에서 폭포를 만나고 개울을 건넌다. 물이 많이 불어 있으면 목적지에 가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지난 11월 말에는 개울에 물은 많지 않았지만 바위 사이에 얼음이 얼어 있어서 엄금엉금 기다시피 개울을 건넜다. 눈이 많이 쌓인 겨울철이라면 차라리 산길이 없으니 짐작으로 눈속에 길을 내면서 빙하로 접근하기도 하나 눈이 쌓인 비탈길을 여러 사람이 건너가는 일이 아슬아슬 하기도 하다.

지난 해에는 산에서 굴러내려온 눈덩어리가 우리 회원과 부딪친 일이 있었고 눈사태가 날까봐 마음 졸인 일도 있다. 그러나 눈밭에 새 길을 내면서 빙하로 접근하는 겨울 산행 맛이 특별한 곳이다. 큰 산 기슭에 뿌리를 내리고 선 나무들, 가끔 들리는 물소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빙하를 본다는 기대감이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들린다. 발목 잡힐라 어서 가자. 얼마나 얼음에 갇혔던가. 앞서 가라 뒤에 설께. 간다, 간다. 강을 따라 넓은 곳 바다로 가자. 앞서 가라, 뒤에 설께. 더 추워지면 또 붙잡힌다. 어서 어서 내려가자. 앞서 가라, 뒤에 설께 하며 흐른다.

 

마지막 산길을 힘겹게 오르면 베이커 산정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빙하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산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마지막 비탈길에 이른다. 오르막길에 눈이 쌓여 있어 발목을 잡고, 물 흐르는 소리가 얼음 아래서 울리니 허공일시 분명하다. 꺼져 내려앉지 않을까 두드려 보면서 조심조심 건너간다.
산을 훑고 내려오는 바람이 차서 빙하가 가깝다고 일러준다. 산길에서 마지막은 언제나 힘들다. 저만치서 강 회장 내외분이 힘겹게 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드디어 언덕에 올라 빙하를 본다. 칼날 같은 얼음 조각이 찬란한 빙하다. 

빙하에 이르면 힘들었던 산길은 어디로 가고 거대한 빙하만 남는다. 흔히들 만년빙하라고 한다. 만년이 아니다. 이 산이 태어나고부터 있었던 빙하니 그 누가 나이를 계산해 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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