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수(鳳凰愁)
조지훈
벌레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鳳凰)새를 틀어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르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泉)에 호곡(呼哭)하리라.
시구 연구
* 벌레 먹은, 빛 낡은, 풍경소리 날러간 : 사라진 지난날의 영화로움에 대한 안타까움이 투영된 시어
* 산새, 비둘기 : 나라를 좀먹는 무리, 외세의 침략자
* 큰나라 섬기다 : 사대사상(事大思想)
* 거미줄 친 옥좌 : 나라가 망하고 주권이 상실된 현실
* 쌍룡 ~ 올렸다 : 중국을 의식하여 천자의 상징인 쌍룡을 국왕의 상징물로 사용하지 못하고 대신 봉황새를 사용했다는 뜻.
*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 국권을 상실하기 전인 조선 왕조 시대에도 당당하게 국가적 영광을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한 우리 민족의 역사
*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 어느 곳에도 당당히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망국인의 모습
* 패옥(佩玉) : 옛날 조신(朝臣)들이 입던 예복의 좌우에 늘이어 차던 옥. 항상 맑고 깨끗한 소리만을 듣고자 함이었음.
*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 식민지 지식인의 설 자리가 없음
*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 운명을 슬퍼하여 눈물짓는 일은 속되고 부질없는 짓이라는 의미.
* 봉황새 : 국권상실의 비운과 우리민족 또는 시적 자아의 표상(감정이입)
* 구천(九天) : 하늘의 가장 높은 곳
* 호곡(號哭)하리라 : 소리내어 슬피 울리라.
요점 정리
* 성격 : 회고적, 민족적, 의고적
* 어조 : 망국을 슬퍼하는 이의 침통한 어조
* 시상 전개 : 先景後情 (앞: 퇴락한 궁궐을 사실적으로 그림. 뒤: 화자의 감회)
* 특징 : 역사적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고전적 소재를 통해 나타냄
* 의의 : 퇴락한 고궁의 옥좌 앞에서 왕조의 몰락과 국권의 상실을 회고하면서,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슬픔을 노래하면서 조국애와 역사 의식이 낭만적 성향과 함께 잘 드러난 작품이다.
* 화자의 심리 상태 : 망국의 한에 젖은 비통한 심정
* 주제 : 망국의 비애. 망국의 슬픔과 한탄
* 출전 : <'문장'13호(1940.2)>
구성 : 단련(單聯)으로 된 산문시. 선경후정의 시상 전개
* 선경(先景)(첫째 문장~둘째 문장) : 퇴락한 고궁의 정경
① 퇴락한 고궁의 모습 : 국권상실의 비극
* 후정(後情)(셋째 문장~여섯째 문장) : 화자의 심회
② 망국의 허망감 : 역사에 대한 비판의식, 반성하는 자세
③ 울지 못하는 봉황 : 주체를 상실한 민족사의 슬픔
④,⑤ 역사의 허무 : 괴로운 시적 자아
⑥ 울고 싶은 자아 : 감정의 직서적 표현 - 감정이입(感情移入)
심화학습
▶ 이 시와 관계된 성어 : 맥수지탄(麥秀之歎)
- 이 시와 분위기와 유사한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계워 하노라. - 원천석
* 사회 의식의 본질 : 일제에 의해 빼앗긴 주권의 상징으로서의 '봉황'을 통해 민족 전체의 슬픔으로 전이시킨 시인의 역사, 사회 의식.
* 고풍의상 : 운문적 형식, 봉황수: 산문적 형식 공통점: 의고적 표현과 민족적 정서
▶ 퇴락한 고궁의 모습 : 퇴락한 민족의 혼
▶ 나라를 패망하게 만든 상징적 존재 : 벌레, 산새, 비둘기, 거미줄
감상과 이해
- 이 작품은 국권 상실과 함께 몰락한 조선 왕조의 퇴락한 고궁을 보면서 망국(亡國)의 비애를 노래한 산문시이다. 식민지화한 현실과 대조시키다 보면 과거의 역사를 복고적(復古的)으로 미화하기 쉬운데, 이 작품은 지나간 조선 왕조 시대의 역사도 냉정한 거리를 두고 성찰하는 안목을 보여 준다.
- 제1, 2행은 고궁의 퇴락한 모습을 선명하게 포착했다. 새들이 둥우리를 친 추녀와 거미줄 친 옥좌, 그것은 무기력하게 몰락한 옛 왕조의 황량한 자취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구절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은 국권을 상실하기 이전의 조선 왕조 시대에도 당당하게 국가적 영광을 떨치지 못한 데 대한 탄식을 담고 있다. 그러한 성찰을 거쳐 시인의 눈은 다시금 자신의 현재적 위치로 돌아온다. 비록 웅장하지 못했던 역사지만 그것조차 무너진 지금 어느 곳에도 망국인이 설 자리는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슬픔을 시인은 봉황새에 투영한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도 아득한 하늘 끝까지 울리도록 목놓아 통곡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 자신도 봉황새도 그렇게 울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눈물이 속된 줄을' 알기 때문이다. 덧없이 무너진 옛 왕조의 역사를 슬퍼하여 통곡하는 것은 속된 감상(感傷)에 불과하다는 의식이 여기에 깔려 있다. 무너진 역사를 슬퍼하면서도 통곡을 억제하고 비애를 내면으로 삭이는 이 종결부에 조지훈의 지사적(志士的) 기품이 엿보인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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