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선택, 自然選擇, Natural Selection
자연 선택은 자연계에서 환경에 적합한 종이 더 잘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는 원리로, 찰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핵심이다. '자연 도태'라고도 한다.
자연 선택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모두 돌연변이(突然變異, Mutation)의 후손이다. 즉 모든 자식들은 서로 다른 조합의 유전자를 가지며, 이중에서 환경에 알맞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번성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숫자가 많아지고 그렇지 못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는 번식에 불리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숫자가 줄어드는 것.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인데, 당연히 자연이 어떤 능동적인 의지를 갖고 살아남을 생물을 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연에 잘 적응해야 생물들이 살아남는다는 원리가 마치 자연이 생물을 선택하는 듯한 느낌이라 자연선택이란 이름이 붙은 것.
자연 선택은 진화를 일으키는 주된 원동력으로, 찰스 다윈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그 내용은 "주어진 환경에서 번식하지 못하는 종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주어진 환경에서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성질을 가진 종들이 자신의 성질을 후대로 전달하며 생태계에 널리 퍼진다"는 원리이다. 여기서 자연에서는 그 어떠한 목적도 없이 진화가 이루어진다. 흔히 생물도감에서 보이는 문장인 "A라는 생물이 B하게 진화했다."라는 말은 곧 풀이하자면 "A라는 생물이 환경에 의해, B의 성질을 갖고 태어난 후손들만 번식에 성공했으며 나머지는 다 죽어서, 지금은 B만 눈에 띈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된다.
핵심은 살아남아 번식하는 생물을 결정하는 것은 개체의 형질이 아니라 환경이라는 것, 진화의 진행은 피동적이라는 것이다. 포켓몬이나 디지몬처럼 자기가 막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일대에 식물이 부족한 환경이라면 많은 식량을 요구하는 초식동물은 제 풀에 못 이겨 굶어 죽고 적은 식량을 요구하는 초식동물만이 살아남는다. 그 동물의 힘이 약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돌연변이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최소한의 식량을 요구하는 동물이 살아남아 후대에 유전자를 남긴다. 이것이 진화다. 이 미물들은 매우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유전자적으로는' 끝의 끝까지 생존해 왔다. 따라서 그 미물들은 충분히 '진화된' 생물이라 할 수 있다.
자연선택이 종 분화를 유발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방법[2]으로 증명되었으며,[3] 그에 의거하여 지구상의 생물이 어떤 방법으로 지금과 같이 여러 종으로 나뉘고 다양화되었는가에 대해 설명하는 이론이 진화론이다.
자연선택에서 선택압(Selection Pressure)을 가하는 주체는 자연, 즉 환경이다. 이 환경은 말 그대로 날씨나 지형 같은 요소가 될 수도 있고, 다른 포식자나 피식자 혹은 공생관계의 종들이 될 수도 있다.[4] 또한 언급한 대로 갑작스런 기후 변화 또는 환경 재난 역시 요인이 될 수 있다.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 및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번성하기 때문에, 간혹 고립된 장소에서 전혀 다른 계통의 두 종이 서로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를 수렴진화라고 한다.
또한 매우 긴 시간도 중요한 요소이다. 간혹 인간의 뇌와 같은 복잡한 기관이 우연히 나타났다고 하기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절대적인 설계자의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한 유전자(의 표현형)에서 조금이나마 생존에 유리한 요소가 있으면 그 유전자가 퍼지는 데 도움이 되고, 그 미세한 차이가 긴 시간을 거치면서 복잡한 기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일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참조. 인간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오 대표되는 원시 인류 기준으로 약 수십억 년이라는, 인간의 상상력으로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거쳐 진화를 거듭해 호모 에렉투스라는 형태를 거쳐 현재까지 왔다. 당연히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물은 지금도 어떤 완성된 존재가 아니며,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예를 들어 대규모의 핵전쟁이나 화생방전이 터져 대부분의 인류가 사망한다면, 방사능에 내성이 강한 소수의 인간들이 살아남아 미래의 인류 중 주류가 되는 식이다. 그들의 외모가 괴상하다든가 지적 능력이 좀 떨어진다 하는 것은 상관 없다.
어떤 생물학 교과서에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은 모든 살아있는 종에 의해 전달되는 유전자의 다양성은 수백만, 수천만, 수억 년에 걸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그리고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의 결과”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단지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을 설명할 뿐이지, 적자의 도착(Arrival)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즉, 자연 그 자체는 결코 각 동물의 DNA를 바꾸지 못하며, 부적합한 개체를 제거함으로써, 한 종의 전체 유전자 풀을 바꿀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전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잃게 하는 것이다. 유전적 부동은 단지 어떤 개체군 내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빈도를 변화시킬 뿐이다. 이것은 어떠한 유전자의 발생(origination)을 설명하지 못한다. 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새로운 대립유전자(alleles)들은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생겨난다.”라고 적혀 있다. 생물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 외의 새로운 유전자를 획득하는 방법은 돌연변이 뿐이다. 진화는 목적을 지닌 설계를 부인하기 때문에, 유전적 변화는 단지 무작위적이거나 우연적일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무작위적이거나 우연적인 변화들이 자연선택을 통해 걸러지면서 방향성이 생기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자연 선택 예시
강력한 적응 능력을 가진 생물의 대표적인 예시로 바퀴벌레를 들 수 있는데, 심지어 최근 들어서도 눈에 띄는 진화의 양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전에 비해 단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도록 진화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사람이 단맛이 나는 독극물을 사용해 바퀴벌레를 대량으로 죽이다 보니 단맛을 좋아하는 바퀴벌레들은 죽고 단맛을 선호하지 않는 바퀴벌레들이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모기 역시 인간에게 잘 포착되는 모기는 계속 퇴치당하면서 인간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되다 못해, 날갯짓 소리가 인간의 가청 범위 밖으로 벗어나는, 일명 '스텔스 모기'로의 양상을 보인다.
바이러스도 비슷하다. 너무 치명률이 높은 바이러스는 숙주가 너무 빨리 죽어 전염이 잘 되지 않아 다른 방향으로 진화되지 않으면 도태되기 쉽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치명률은 낮아진다.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자연 선택의 유명한 사례들은 대개 자신들을 멸종시키려고 눈에 쌍심지를 켠 인간들에게 맞서는 병원균이나 해충의 생존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생태학과 진화학을 다룬 연구 결과를 본격적으로 살펴 보면 다양한 야생 생물들이 소소한 자연 선택을 거치며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수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기린의 목
자연선택의 예시로서 항상 거론되는 예시가 기린의 목이다.
기린을 예로 들자면, 옛날 어떤 지역에 기린의 공통 조상으로 이루어진 어떤 집단이 있었다고 하자. 그들은 지금보다 목이 짧았는데 목이 짧다 보니 당연히 높은 곳의 나뭇잎을 먹는데 불편함이 존재했다. 그런데 그 집단의 유전자급원(=유전자 풀, Gene pool) 안에는 약간이나마 목이 긴 개체도 있을 것이고 목이 짧은 개체도 있었을 것이다.[6] 그 중에 목이 긴 개체는 높은 곳에 있었던 나무를 더 먹기 쉬웠을 것이고, 다른 놈들에 비해 먹이 경쟁에서 유리하니 더 잘 먹게 되고 영양 상태가 좋아 아주 미세하게나마 다른 목 짧은 개체들보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다.
이 유리한 개체가 자식을 낳으면, 그 체질이 그대로 유전되어 당연히 자식도 목이 길 것이고 그 자식들도 어미 세대와 마찬가지로 다른 개체에 비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목 짧은 개체들과의 먹이 경쟁에서 유리하단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집단의 유전자급원은 (생존에 유리한) 목이 긴 개체들로 점점 채워지게 될 것이다. 목이 일정 길이 이상 길 필요는 없으므로 일정 길이 이상의 목을 가진 개체들은 먹이 경쟁에서 동일한 경쟁력을 갖는데, 목의 길이가 너무 길어지면 에너지 소비량 측면에서 오히려 불리해지므로 무한정 길어지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 관여한 변수는 환경, 변이, 시간이다. 환경이 달라지면 자연 선택의 방향도 달라진다. 기린의 긴 목이 다른 환경에서는 생존 및 번식에 불리한 요소일 수도 있고 그런 환경에서는 기린의 목이 눈에 띄게 길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기린의 목이 길어지면서 기린의 되돌이후두신경과 같은 이상해보이는 해부학적 구조들도 나타나지만, 그러한 요인들보다 긴 목을 갖고 있다는 게 그 환경에서 더 유리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되돌이후두신경은 미주신경의 갈래로서 뇌에서 내려오다가 대동맥궁을 우회해서 다시 올라와 후두에 분포하는 신경이다. 다른 동물들에서는 기껏해야 몇 십 cm 우회하지만 기린에서는 4~5미터나 우회한다. 그 밖에도 긴 목 위에 달린 뇌로 혈액을 올려보내기 위해 심혈관계의 진화가 받쳐줘야 한다. 평균 심박수가 150bpm이고, 목을 낮췄을 때 혈압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도 진화되었다. 반대로 다리 아래 쪽의 혈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부가 두껍고 탱탱하게(즉, 압박붕대 역할을 하도록) 진화됐다. 또한 얼굴을 수직으로 세워서 더 높은 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절 또한 변화되어있다.
정작 기린의 예시는 다윈이 든 게 아니라 라마르크가 용불용설을 주창할 때 제시한 것으로, 과학적 사실과는 관계없이 용불용설과 자연 선택설의 비교를 위해 널리 이용되고 있다.
갈라파고스 섬의 핀치
또다른 적절한 예로 갈라파고스 섬에 서식하는 다윈 핀치의 자연선택이 있다. 1976년~1978년 갈라파고스의 중간땅핀치(G, fortis)의 개체수, 몸의 크기, 먹이인 씨앗의 양, 씨앗의 크기와 단단함을 나타낸 그래프이다.
이 그래프에서 알아낼 수 있는 얘기는 다음과 같다. 중간 땅핀치의 먹이인 씨앗의 수가 줄고, 씨앗의 크기는 더 커지고 단단해지게 된 적이 있었다. 더 커지고 단단한 씨앗들이 많아지자 이전부터 있던 작은 땅핀치는 그 씨앗을 먹지 못해 도태되고 큰 씨앗을 먹기에 알맞은, 몸 크기가 큰 땅핀치가 살아남았다.
코끼리의 상아
상아 없는 코끼리의 개체수가 늘어난 것은 인간이 만든 극적인 진화로 꼽힌다.
인간은 코끼리의 상아를 노리고 코끼리들을 밀렵했고, 상아 없는 코끼리는 밀렵할 필요가 없어 살려두었다. 밀렵이 계속되다 보니 상아 있는 코끼리의 유전자는 유전자풀에서 줄어들고 상아 없는 코끼리의 유전자만 보존되어, 결과적으로 상아 없는 코끼리만 자꾸 태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밀렵이 성행하기 이전에 상아가 없는 코끼리의 개체수 비율은 4% 내지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상아 없는 코끼리의 탄생 비율이 30%에 달한다. 상아는 싸움이나 먹이 찾기 등에 필요한 동물의 발톱과 같은 도구로 코끼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위다. 이럼에도 상아 없는 코끼리의 개체수가 급증한 것이다. 이는 환경(인간의 밀렵)에 따라 코끼리 무리의 특성이 바뀐 것으로 엄연히 진화에 부합한다. 큰 상아는 생존에 유리한 특징이나 되레 인간이라는 특이한 성질을 지닌 포식자의 표적이 된 것이다. 인간이란 종이 매우 번성한 상태이기에 통상적인 경우보다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이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는 수염고래류, 악어 등이 있다.
자연선택론(및 진화론)과 종교
그리고 이런 이론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면서 진화론은 종교계의 거대한 장애물로 꼽히게 된다. 진화론에 따르면 현대의 생물은 모두 과거의 어떤 생물들로부터 변화(진화)한 생물들인데, 그렇다면 왜 인간은 아니겠냐는 합리적 의심이 발생한다. 이는 대부분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핵심 교리인 '특정한 신이 지금의 모습을 한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은 다른 생물과 차별화되는 선택받은 존재이다'를 정면에서 깨부수는 이론이었다.
종교계의 극적인 반발이 없었다면 진화론이 지금과 같은 인지도를 얻지 못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할 정도로 종교계에서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 포용적인 것으로 인망 높은 가톨릭조차 '신께서 생물(인간 포함)이 진화하도록 설계하시지 않았을까' 정도로, 창조주가 있음을 굽히지 않으면서 타협을 본다. 근본주의 색깔이 진하기로 유명한 개신교는 물론 진화론을 적극 부정한다. '원숭이가 인간이 되었다면, 왜 원숭이가 아직도 남아 있느냐?'는 원색적인(진화론를 의도적으로 멀리한 듯한)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원숭이 다음 단계의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일직선적인 구조이다. 진화론은 나무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듯, 과거의 원숭이들 중 인간과 원숭이가 구별되어 별개로 뻗어나갔다는, 파생형의 구조를 갖고 있다. 물론 현대의 원숭이들도 과거의 원숭이로부터 수도 없이 변화하여 뻗어나가고 있는 가지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원숭이가 구별되는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 계기를 '돌연변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우연이다. 어떤 원숭이는 조금 더 똑똑하게 태어났을 수도 있고, 어떤 원숭이는 손을 좀 더 잘 쓰도록 태어났을 수도 있다.
생물학자들의 유신론자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종교계의 적인 악마는 지식이 뛰어나다고 비유되곤 하는데 우연은 아닐 것이다. 알면 알수록, 의심이 많을수록 종교에서 멀어지는 건 당연하다. 여담으로 천문학자들도 유신론자 비율이 낮다. 지구나 인간이 엄청나게 작은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원숭이들 중 환경에 따라 살아남은 동물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변화하고 살아남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해 살아남은 결과가 현대의 인간이라는 결론으로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 더 간결하게 설명하면 '살아남았기에 인간'인 것이다. 특히 정교하게 발달된 손과 고도화된 연산이 가능한 지능은 과거의 '원숭이'와 '인간'을 구별짓는 중요한 지표로 평가 받는다.
이 때문에 진화론은 종교인의 입장에서 충분히 모욕적이다. 종교가 해석하는 인간이란 신께서 '자신의 모습을 닮게' 창조하신 존재이며, 고결하고, 영혼을 가졌으며,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차원적이고 절대적인 신께서 은총을 주시어 창조하신 인간이란 특별한 존재를, 진화론은 다른 동물과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자연 선택은 종교 그 자체에마저 적용이 가능하다. 현대인이 믿고 있는 종교들은 긴 역사를 통해 온갖 위기와 경쟁을 거쳐가면서 살아남은 종교라는 발상이다. 과거에 수많은 종교들이 있었으나 그 종교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소멸되었고, 인간들의 호응으로 '살아남은' 종교들이 보편종교가 되었다는 결론이다. 아즈텍의 틀랄록 신화는 생육신의 인신공양을 요구하는 극악무도함으로, 사회에서 퇴출되었으나, 그 역사는 보존되어 현대인들이 그러한 종교가 한때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옴진리교나 신천지만 보아도, 그 종교는 나름대로 '진리'를 주장하고 있으나, 반사회적이기에 퇴출되었다. 심지어 현존하는 종교들 중 가장 큰 가톨릭에서도 마르틴 루터에 의해 당시 사회적 배경에 따라 개신교가 떨어져 나갔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마녀사냥이니 공의회니 하면서 내부적으로 구조를 개편해 나갔다. 그러니 종교가 사람들의 요구에 진화해 왔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연선택과 우생학
진화론의 흑화판인 우생학은 자연선택과는 오히려 대비된다. 우선 우생학은 너무 인위적이고 주관적이며,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은 엄연히 자연 선택에 따라 살아남아온 이들이다. 또한 인권 문제도 중요하다.
만약 누군가는 열등하므로 이들을 학살해서 우월한 개체만 남겨야 한다는 논리가 퍼지면 대규모의 학살과 차별이 퍼질 것이며, 이는 실제로도 킬링 필드나 홀로코스트, T4 작전 등으로 재현되었다. 이런 학살은 대개 사회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주류 세력에 의해 자행된다. 사회 주류 세력에 의해 혐오되거나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특징을 가진 개체들을 말살하기 위해서이다.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혐오는 모든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품이지만, 우생학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혐오대상이 되는 개체들을 적극적으로 말살하려 든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공동체 유지와 인류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명분 하난 좋지만, 현실적으로 전세계 모든 인간이 다 같을 수는 없으며, 사회에 의해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특성[9]을 가지는 개체는 낮은 확률이지만 결국 어떻게든 태어나게 되어있다. 때문에, 이런 소수자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존재했고, 우생학으로는 그들의 유전자를 말살하는게 불가능할뿐더러[10] 그 과정 또한 매우 반인륜적이고 인권유린에 해당된다. 만약 이들이 원하는대로 전 세계 80억 인류가 모두 정형화된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로만 채워져 ’이상적인‘ 사회를 형성한다고 가정하면, 그 안에서도 또 다시 더욱 더 세분화된 분류로 우월함과 열등함이 또 다시 나뉠것이며, 인류의 유전자풀에 다양성이 감소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비슷하게 획일화된 유전자를 갖게됨에 따라 코로나같은 전염병 한번으로도 전 인류 멸종이 가능해지게 된다. 인류는 안 그래도 다른 모든 동물종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극히 떨어져 유전자풀이 매우 협소하다는 걸 기억하자. 안그래도 비슷비슷한 유전자풀이 더 획일회되게 되면 전염병이나 환경 변화에 극히 취약해져 대량 멸종될 가능성이 상승하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외모나 신체적/생물학적 특징이 우월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며,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는 키크고 마른 체형이 우월하게 여겨지지만, 실제로 키가 크고 마른 남성은 기흉의 발생확률이 높아지며 가장 건강한 것은 키가 평균에 가깝고 적당한 체중을 가진 사람이다.
또한, 잦은 빈혈 증세로 인한 심폐기능이 극히 떨어지는 겸상 적혈구를 가진 형질은 신체능력이 열등하다고 여겨지기 쉽상이지만, 정작 말라리아에는 정상 적혈구보다 상당한 내성을 가진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에서 유독 겸상 적혈구 형질이 많이 발견된다. 정리하면 모든 유전적 특성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며, 환경에 따라 유불리가 다르게 적용한다.
다윈과 월리스가 제시한 종의 진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같은 종 안에서도 개체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즉, 개체변이가 있다. 모든 사슴의 목과 다리의 길이가 다 같지는 않다.
둘째, 어떤 변이는 자식에게 유전된다. 어떤 사슴의 평균보다 긴 목과 긴 다리는 자식에게 대물림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사슴의 긴 목과 긴 다리는 자손에게 전해질 수도 있다. 진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자손에게 대물림되는 형질변화이다.
셋째,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개체 간의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모두가 해피하고 안전하게 잘 살면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도 개체들이 늘어나다보면 한정된 자원 때문에 생존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도태된다. 사슴이 많아지면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따먹을 수 있는 사슴들이 더 많이 살아남을 것이다.
넷째, 도태되지 않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체는 자손을 남긴다.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형질을 대물림할 수 있는 개체라면 계속 자손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긴 목과 긴 다리를 가진 사슴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고 만약 그 형질이 후대에 전해진다면 그 후손들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위의 네 항목은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즉, 진화가 일어났다면 네 가지 요소가 다 갖춰졌다는 말이고, 반대로 네 요소가 다 작동한다면 반드시 진화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이 중에서 셋째와 넷째, 즉 생존경쟁을 통해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는 과정을 '자연선택'이라 한다. 자연선택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자연선택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공선택이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익숙한 단어를 쓰자면 육종이나 품종개량이 여기 해당한다. 벼나 옥수수를 인간의 요구에 맞게 개량하거나 개 또는 비둘기를 인간 취향에 맞게 품종을 관리하는 일은 말하자면 인공선택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 이미 인공선택으로 종의 진화를 이룩한 셈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선택 대신 자연 속에서의 생존경쟁을 통한 선택이 자연선택이다. 그래서 《종의 진화》 앞부분엔 지루하리만치 길게 비둘기 이야기가 나온다.
다윈의 진화론 하면 또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다. 적자생존은 다윈의 개념이 아니라 당대 사회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1820~1903)가 1864년에 출간한 《생물학의 원리》에서 처음 사용했다. 흔히 적자생존이 자연선택과 함께 다윈 진화론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적자’로 옮긴 ‘the fittest’가 최상급임에 유의하자. 이 단어를 그대로 옮기자면 적자생존이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1등만 가리는 과정이 아니다. 자연이 1등만 가려서 선택했다면 아마 거의 모든 생물종은 멸종했을 것이다. 자연선택과 잘 어울리는 표현은 최상급인 'the fittest‘라기보다 최재천의 주장처럼 비교급인 'the fitter’이다.
이는 마치 군대에서 ‘선착순 집합’으로 얼차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20명의 부대원에게 선착순 10명으로 나무 돌아오기 얼차려가 주어졌다면, 굳이 내가 1, 2등까지 할 이유는 없다. 나머지 10명보다만 더 잘 뛰면 된다. 자연선택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다.
종의 기원: 1859년 11월 출간돼 인류의 세계관을 뿌리째 흔들어놓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사진제공 오클랜드박물관)
1859년 11월 출간돼 인류의 세계관을 뿌리째 흔들어놓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오클랜드 박물관 제공
《종의 기원》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굉장한 논란과 논쟁도 뒤따랐다. 모든 생물종이 진화하고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면 우리가 원숭이의 후손이냐 하는, 진화론을 접했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법한 의문이 그때에도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나 또한 어렸을 때 다윈의 진화론을 접하고서는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유인원에 가깝게 진화되는 원숭이가 있다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이런 통념은 다윈의 진화론보다 중세까지 유행했던 존재의 큰 사슬에 더 가깝다. 즉, 모든 생물이 하나의 큰 사슬 속에 각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여기에 진화의 개념을 적용하면 하등생물이 진화해서 고등생물이 되고, 그 정점에 인간이 있다는 식이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종의 가지치기식 분화, 즉 공통조상론이다. 이에 따르면 아주 오랜 옛날에 인간과 원숭이의 조상이 같았다. 그 어떤 분기점에서 인류와 원숭이는 서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원숭이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자체로 계속 진화해 영화 《혹성탈출》에 나오는 시저 같은 똑똑한 새 종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인류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오랜 미래에는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태어날 종이 출현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원숭이와 우리는 오래 전에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이 포인트이다. 분기점 이전의 공통조상은 지금의 원숭이도 인간도 아니다.
지금도 진화론 하면 우리가 원숭이의 자식이란 말이냐는 질문이 나오는데, 다윈 시절에는 어땠으랴. 가장 유명한 일화는 1860년 6월30일 옥스퍼드 박물관 도서관에서 있었던 영국 학술협회 회의자리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진화론의 열렬한 옹호자 토머스 헉슬리(1825~1895)와 진화론을 경멸했던 윌버포스 주교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윌버포스는 헉슬리에게 원숭이가 할아버지 쪽 조상이냐, 할머니 쪽 조상이냐 하고 조롱하듯 물었다. 진화론의 반대론자들이 크게 박수치고 환호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헉슬리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재능을 천하게 팔아먹는 돈 많은 주교가 되느니 차라리 저는 원숭이의 자손이 되겠습니다.”
진화론은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냐 아니냐는 논란보다 현실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오용되기도 했었다. 다윈의 외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은 인류의 유전학적 품종개량학인 우생학을 창시했다(1865년). 우생학이 20세기의 나치즘과 만나 어떤 참혹한 짓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생존경쟁과 자연선택, 적자생존 등의 단어는 당시 번성하던 제국주의와 궁합이 잘 맞는다. 즉, 제국주의가 약소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은 자연선택의 일환이며 이는 자연의 순리라고 주장할 수 있다. 자연선택이라는 방패는 국제사회의 약육강식을 숨기기에 더없이 좋은 피난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