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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저서, 디지로그, 축소지향의 일본인, 서울 올림픽 개회식, 초대 문화부 장관

Jobs 9 2022. 3. 3.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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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문학평론가로 시작해 소설가, 시인 등 작가로서는 물론 언론인, 칼럼니스트, 문화 기획자, 교수, 출판인 등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큰 자취를 남겼다. 
변화의 시기마다 시대 정신과 문화적 방향성을 짚어내고 새로운 비전을 내놓으며 한국 지성의 큰 산맥으로 자리를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고인은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디지로그'라는 개념을 만드는 등 '창조자'로서 시대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서울대 국문과 동창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와 1958년 결혼한 고인은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따서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설립한 영인문학관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23세 때인 1956년에 쓴 '우상의 파괴'라는 글이 한국일보에 실리면서 고인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중견 문인이었던 소설가 김동리, 시인 조향, 소설가 이무영을 각각 '미몽의 우상', '사기사의 우상', '우매의 우상'이라고 비판해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문학평론가로 데뷔했다.

같은 해 잡지 '문학예술'에 '현대시의 환위와 한계'가 추천돼 정식으로 등단한 고인은 황순원, 염상섭, 서정주 등 문단의 거목들을 향해서도 '현대의 신라인들'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청년 이어령의 눈에는 기성 문단이 어려운 시절에 직무유기하는 한가한 문사들로 비쳤던 것이다. 이후에는 문화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문학이 사회 비판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해 순수·참여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경기고 교사로 3년간 재직하고서 고인은 1960년 서울신문 논설위원이 된다. 이후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60여 년 동안 수많은 책을 펴낸 고인은 독보적인 다작 저술가다.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1963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은 것으로 '한국 문화론'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풍토(風土)에 대한 글을 제의받은 고인은 풍토를 우리말로 바꾸고 바람과 흙의 순서를 뒤집어 '저'를 덧붙인 제목만으로도 신선하다는 평을 얻었다. 이 책으로 고인은 '젊은이의 기수', '언어의 마술사'로도 불리기도 했다. 단행본으로 1년 동안 국내에서 10만 부가 팔렸고, 해외에서도 번역본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 다른 대표작인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 외무성 초청 동경대 비교문학과 교수(1981∼82년) 시절 집필했다. 일본어로 원고를 써낸 이 책은 한국인이 쓴 책으로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 단시 하이쿠(俳句)를 연구한 고인은 일본 문화의 독창적 특징을 축소지향이라고 본다. 하이쿠와 분재, 트랜지스터 등 일본의 축소지향적 요소가 일본의 공업을 발전시켰으며 침략 등 확대지향 시도는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인은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의 총괄 기획을 맡아 문화 기획자로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냉전 여파를 딛고 모든 진영이 참가하자 딱딱한 표어 대신 '벽을 넘어서'라는 구호를 만들었고, 개막식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굴렁쇠 소년'을 연출했다.

문화공보부를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하면서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을 맡아 이듬해 12월까지 재임하며 문화정책의 기틀도 마련했다. 관료가 아닌 문화예술인 장관으로서 문화부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당시 "앞으로 문화부는 자율성,다양성,창조성을 바탕으로 국민문화의 공감대를 증폭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문화예술이 의식주생활 다음에 있는 장식품이 아니라 생활 속에 호흡하는 문화여야 한다는 뜻"이라고 문화를 강조했다.

장관 재임 2년 동안 국립국어연구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전통공방촌 건립, 도서관 업무 이관 등 공약했던 '4대 기둥 사업'을 마무리하고 물러났다. 장관 시절 '갓길'이란 말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에도 올림픽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범국민독서 새물결운동추진위원회 상임고문,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6 조직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2006년 '디지로그'(Digilog) 시대가 온다'는 칼럼을 일간지에 연재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또는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시대의 흐름을 표현한 이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칼럼을 모은 단행본 '디지로그'는 디지털 기술의 부작용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들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한국이 산업사회에서는 뒤졌지만, 정보화 사회에서 선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해온 고인은 한국인은 분명 디지로그 시대를 앞장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학자답지 않게 당시 고인은 영인문학관 내 서재에 각종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직접 컴퓨터들을 네트워킹했다고 한다.

고인은 '창조'라는 키워드를 오래전부터 설파했으며 스스로 '크리에이터'라 불러왔다. 2009년에는 창조학교를 세워 명예 교장을 맡기도 했다. 고인은 군사력, 경제력보다 창조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들고나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랜 세월 무신론자로 살았던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 기독교 신자가 된다. 미국에서 검사로 활동하다 개신교 신앙을 갖게 된 딸 이민아 목사에게 닥친 암과 실명 위기, 손자의 질병 등을 겪으면서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졌다.

고인이 신앙을 고백한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를 펴내면서 "제가 처음 쓴 내면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약점, 슬픔을 고백한 일종의 일기장이라고 할까요"라고 말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2년 뒤 딸 이 목사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책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다. 화려한 이력과 직함을 뒤로하고 온전히 이야기꾼으로 남고자 세상에 보탤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2020년 2월 시리즈 첫 권인 '너 어디에서 왔니'를 출간하면서 "생과 죽음이 등을 마주 댄 부조리한 삶. 이것이 내 평생의 화두였으며,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 아닌 탄생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고인은 '21세기의 패관(稗官)'을 자처했다. 술청과 저잣거리, 사랑방을 드나들며 이야기 꾸러미를 기록으로 챙겨온 옛 패관처럼 온갖 텍스트와 인터넷에 떠도는 집단 지성을 채록하고 재구성해 '한국인 이야기'에 풀어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1973년, 프랑스에 머물면서 롤랑 바르트의 「일본론」과 조르주 플레의 「플로베르론」 등의 책을 읽다가 이어령은 우연히 축소지향의 개념을 떠올리고, 이것이 일본론을 풀어나갈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문학사상'의 잡지 관계로 자주 만나던 삼성출판사의 김봉규 사장이 그 말을 듣고 그 책을 일본에서 한번 출간해 보자고 제의했고, 이어령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당시의 분주한 사정으로 이 기획은 점차 잊혀져 갔다. 

이후 김 사장의 주선으로 일본의 출판사인 학생사에서 책을 내자는 권고가 들어왔다. 계약을 맺고 난 뒤 약 8년간 틈만 나면 일본 관련 책들을 읽고 자료를 수집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준비한 자료의 일부를 일본의 잡지 아세아공론에 발표한 것을 계기로 일본 국제문화교류기금의 초청을 받아 1년간 동경대에서 연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책의 전체 분량으로 1천 매가 넘는 원고를 반 년만에 써냈다. 그것도 일본어로. 그야말로 두문불출하며 집필한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각종 언론과 강연의 초청을 받게 된다. 한국인이 쓴 책으로는 일본에서 최초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다. 

이 책에서 이어령은 그동안의 일본론이 서양인과 비교한 일본인의 특징을 이야기한 것뿐이지 사실 그 중 대부분은 바로 이웃나라인 한국에도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 일본 문화가 가진 독창적인 특징이 바로 축소지향이라고 주장한다. 하이쿠, 분재, 트랜지스터, 쥘부채 등 일본인이 가진 축소지향적(혹은 미니멀리즘하고도 상통하는) 요소가 일본을 공업사회의 거인으로 끌어올렸으며, 반대로 침략의 야욕을 벌이는 등 확대지향을 하려는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이 났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도깨비가 되지 말고 난쟁이가 되라'고 역설한다. 

축소지향적 성격이 일본 산업계에 반영된 대표적 사례로 워크맨, 토요타 코롤라, 피카츄 등이 주로 꼽힌다.

 

 

디지로그

2006년 1월, 이어령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말인 '디지로그'를 전면에 내세운 신문 칼럼을 연재했다. 사실 이전에도 '디지아나'라던가 '디지로그' 같은 말이 간간히 쓰이기는 했으나 이를 사회적 용어로 사용한 사람은 이어령이 최초였다. 이어령은 디지털만을 앞세운 당시의 정보화 사회의 측면을 지적하면서 후기 정보화 사회를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 상생하는 디지로그 사회로 정의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금니로 씹는 디지털'인 것이다. 이 주장은 이후 본격 출시된 닌텐도 Wii와 iPhone의 대성공, 한편 한국에서는 먹방 컨텐츠의 흥행몰이와 백종원 시대의 개막으로 여실히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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