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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잡는 화학자, 곽재식

Jobs 9 2024. 11. 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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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잡는 화학자, 곽재식

 

흥미로운 책이다. 화학자가 어떻게 고스트버스터가 되었을까? 옛사람들은 전염병이 돌면 악령의 저주라고 생각했다. 악령을 쫓는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병을 막으려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전염병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따라서 의학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와 함께한다. 치료제와 백신이 전염병의 공포를 풀어나간 것이다. 

 

저자의 글들은 온갖 괴물들과 화학이야기로 이어진다. 소제목들이 시선을 끈다. ‘변신한 악귀를 물리치는 클로르프로마진’, ‘지옥에서 온 괴물들을 물리치는 멜라토닌’, ‘악마의 추종자들을 물리치는 곰팡이 독소’, ‘악령이 깃든 인형을 물리치는 열팽창’, ‘사상 최악의 악귀를 물리치는 백신’, ‘유령의 발소리를 물리치는 타우 단백질’, ‘거인괴물을 물리치는 탄소 섬유’ 등등이다.

 

예전에는 조현병에 걸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악마의 조종을 받고 있다거나 귀신에 씌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때도 있었다. 심한 경우엔 묶어 놓거나 가둬 두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현병이 생기는 이유가 뇌에서 일부기능이 오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도파민의 오류이다. 조현병 치료에 전환을 가져온 약은 상품명 ‘소라진’인 클로르프로마진이다. 

 

현재까지도 기면증(낮 시간에 과도하게 졸립고, 수면상태가 비정상적인 상태, 즉, 잠이 들 때나 깰 때 환각, 수면 마비, 수면 발작 등의 증상을 보이는 신경정신과 질환)의 근본 원인과 회복 방법을 연구 중이다. 최근 의학연구에서 시상하부에서 하이포크레틴(hypocretin)이라는 화학물질이 덜 만들어지면 기면증이 나타난다는 이론이 나왔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선 ‘헌집증후군’이라고 하는 이상한 현상이 드문드문 화제일 때가 있었다고 한다(요즘은 헌집증후군보다 새집증후군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주로 낡고 오래된 집에서 발생한 현상인데, 그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몸이 아프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상황에서 오래된 집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이야기로 발전한다. 원인은 ‘독검댕곰팡이’라고 한다. 


2013년 11월 영국 BBC는 맨체스터 박물관에 있던 한 고대 이집트 조각상에 관한 신비로운 사연을 소개했다. 이 박물관엔 무려 38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유물이 전시장 유리창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조각상이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움직였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 박물관 근처 도로에서 큰 차가 지나가면서 일으킨 현상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무서운 이야기들을 분석했다. 예전에는 그저 무서운 이야기로만 받아들였던 부분들을 저자 나름대로 과학적(특히 화학적)측면에서 풀어나간다. 옛 이야기, 영화 이야기, 책 이야기, 실제로 있었던 세계적 사건들을 넣어가면서 가독성을 높였다. 물론 아직도 인간의 두뇌로 해결하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세상이지만, 마음을 열고 저자의 생각과 함께 하는 시간도 의미 있으리라고 느낀다. 

 

 

 



MBC 〈심야괴담회〉에서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채 괴담의 허점을 파고드는 악역을 자처하며 ‘괴심파괴자’라는 별명까지 얻은 곽재식 박사의 신간.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며 다양한 괴담과 미스터리 사건들을 다루고, 초자연현상에 정면으로 맞서 우리를 휩싸는 두려움의 정체를 밝힌다. 이 책에서는 물귀신부터 심령사진, 악령 들린 인형, 우물에서 기어 나오는 망령, 엘리베이터 귀신, 점성술 등 다양한 초자연현상을 다루며, 괴담과 기사(奇事)에 과학을 한 스푼 얹어 그 신비함의 베일을 벗긴다. 

혼자 탄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정원 초과 벨이 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백한 얼굴에 검은 갓을 쓴 저승사자의 정체는? 혹시 흉가에 다녀온 후 이유 없이 몸이 아픈 건 귀신에 씌었기 때문일까? 학교괴담의 단골 소재, 오싹한 발소리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귀신은 해병대만 잡는 게 아니다. 화학자이자 괴심파괴자로서 저자는 으스스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그 속에 감춰진 과학적 원리를 전한다.

 

괴담과 화학이 만났다. 귀신은 해병대만 잡는 게 아니다. 저자는 유령 잡는 화학자가 되어 괴담의 허점을 찌른다. 예를 들어 흉가에 머물 때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몸이 아픈 것은 그 집에 머무는 귀신의 괴롭힘 때문이 아니라 낡고 오래된 집에 잘 생기는 ‘독검댕곰팡이’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인형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인형에 악령이 들린 것이 아니라 ‘열팽창’ 때문이라든지, 학교 미술실에만 가면 귀신을 본다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환기가 잘 안 되는 작업실 특성상 본드 중독의 증상으로 환각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곽재식 박사의 기발한 상상력과 박학다식함은 이 책의 큰 무기이다. 다루는 소재가 익히 들은 괴담이나 구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나 대중매체, 옛 설화집의 이야기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로마 황제들이나 홀린 듯이 춤추는 유럽 각지의 무도광 현상 같은 역사적 이야기를 통해 각각 수은 중독과 맥각병에 걸린 곡물 섭취가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가설을 제시한다. 악령 들린 인형을 다룬 영화 〈애나벨〉 시리즈, 제3의 눈으로 불리는 송과선 비슷한 장치를 만드는 내용의 영화 〈지옥인간〉과 같은 공포 소재를 다룬 대중매체와 《어우야담》, 《용재총화》 같은 조선시대 옛 설화집 속 이야기를 엮어 설명하는가 하면, 코팅리 요정 사건, 최초의 강령술사 폭스 자매 사건 등 화제가 되었던 실제 미스터리 사건들도 다수 다루어진다. “궁금하잖아요. 안 궁금하세요?”를 외치던 곽 박사의 번뜩이는 눈빛만큼이나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괴담 마니아뿐 아니라 과학 마니아들의 지적 호기심도 채워줄 것이다. 

핼러윈이 되면 도심 곳곳에는 각종 유령 분장을 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금은 축제처럼 즐기고 있지만, 그 유래 역시 초자연현상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두려움은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키고 더 나아가 보지 않은 것을 본 것처럼 믿게 만든다. 예를 들어, 저자는 1970년대에 바이킹 탐사선이 화성 시도니아 지역에서 찍어 보낸 사진을 소개한다. 화성의 바위 일부분이 사람의 얼굴 형상과 비슷해 보여 당시 큰 화제였는데, 사람들은 화성에 외계물체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식의 가설을 쏟아냈다. 이처럼 우연한 모양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현상을 ‘파레이돌리아’라고 부른다. 바람이 불어 닫히는 문소리를 악령의 목소리로 착각하는 것이나, 나무에 걸린 하얀 비닐을 소복을 입은 귀신으로 보는 것, 인터넷에서 떠도는 심령사진이 우리에게 오싹한 느낌을 주는 것도 모두 이 현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검은 옷을 입고 갓을 쓴 저승사자는 어떤가? 우리가 쉽게 떠올리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 목격했다고 증언하기도 하는 저승사자의 전형적인 모습은 저자에 따르면 사실 〈전설의 고향〉의 제작진이 만들어낸 것이다. 옛사람들이 생각한 저승사자는 이와 다른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저승사자는 갓을 쓰지도 않고 울긋불긋한 관복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인간의 기억은 생각보다 더 정확하지 않고 착각이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등장해온 초자연현상들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일 뿐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저자가 괴담을 폄하하거나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괴담은 괴담대로 재미있고, 괴담에 대한 해석도 그 자체로 즐기면 될 뿐이다. 이 책이 막연한 두려움의 정체를 벗겨 밝고 정확하게 세상을 보는 데 유쾌한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무서운 이야기를 과학 이론으로 분석해서 착각이라는 것을 밝히는 사람들은 외국에도 많이 있었다. 외국에서는 그런 사람을 스켑틱(Skeptic)이나 디벙커(Debunker)라고 부른다.

스켑틱은 회의론자라는 뜻으로, 의심하며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보는 사람을 말한다. 정밀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할 과학 연구에서 꼭 필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용어는 상대방이 들려준 무서운 이야기를 처음부터 믿지 않으려 하고, 의심하며 부정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더벙커라는 말의 어감은 더 심하다. 디벙커는 속임수나 비밀로 숨겨져 있는 진실을 찾아내 공개하고 까발리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칫 누가 들려준 무서운 이야기가 사실 다른 사람을 혼란시키기 위해 속임수를 숨겨둔 것이라는 느낌을 줄 위험도 있다.


만델라 효과(Mandela effect)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델라 효과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실제와 다른 내용을 사실이라고 잘못 기억하고 있는 사건을 말한다. (19p)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는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고 대단히 지능이 뛰어나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뇌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뇌세포들이 일부 손상되었고, 그 때문에 성격이 친절해졌지만 대신 음악을 싫어하게 되었으며, 지능도 평범한 수준의 사람이 되었다. 만약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유령으로 변하게 된다면, 그 유령은 어릴 때 성격과 지능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머리를 다친 이후의 성격과 지능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일까? 

원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으로 활동하는 것이 유령 세계의 규칙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가 많이 들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심장이 멎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몸이 쇠약해져 별다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별다른 행동도 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다수의 유령은 그냥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는 병석에 가만히 누워 있는 모습일 뿐이어야 한다. (30-31p)


최근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목격한 저승사자의 모습은 검은 한복에 검은 갓을 쓰고 있고 얼굴은 창백한 남성인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전통적으로 한국인이 목숨을 잃으려고 할 때 찾아오는 저승사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전설이나 옛이야기에 나오는 그 저승사자가 실제로 내 꿈속에 나타나 누구인가의 생명을 빼앗고 죽음의 세계로 데려간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사실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이 창백한 저승사자의 모습은 먼 옛날부터 내려온 한국 저승사자 모습의 대표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유행했던 KBS 〈전설의 고향〉에서 저승사자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상식 PD와 제작진이 개발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럴듯해 보였고 시청자 반응도 좋아서 최상식 PD를 비롯한 제작진은 그 모습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계속 활용했고, 그런 방송이 몇 차례 TV에 나오는 사이에 무심코 한국의 전통적인 저승사자는 저런 모습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퍼진 것이다. (50-51p)


깨어 있다가 잠으로 빠져드는 중간 과정에서 꿈과 현실이 섞이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것을 의학에서는 입면환각(hypnagogic hallucination)이라고 부른다. 손영민 교수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런 증세는 일반인도 경험할 수 있으며, 단순히 사람이나 동물을 닮은 형체를 보는 환각부터 이상한 소리를 듣는 환청, 촉감이나 팔다리가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 체감 이상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58-59p)


그냥 자연적으로 바위가 깎이다 보니 우연히 그런 모습이 되었고 누군가가 얼굴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자 맞장구를 치면서 진짜 그런 것으로 여겨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그렇게 말하게 된 거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우연한 모양에 불과한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부른다. 파레이돌리아 현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험한다. (103p)


무도광이라는 이상한 현상의 정체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다. 대체로 집단 히스테리 현상에 의해 사람들이 너도나도 춤추는 분위기에 휩쓸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는 데 많은 이가 동의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심리 때문에 무도광 현상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146p)


맥각병에 걸린 호밀을 사람이 먹게 되면 식중독에 걸린다. 맥각이 곰팡이 종류이니 곰팡이 핀 음식을 먹고 탈이 나는 현상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그런데 맥각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독성 물질 중에는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구역질을 나게 하는 비교적 평범한 독성 물질 이외에 다른 특수한 물질도 들어 있다. 그 중에는 사람의 신경과 뇌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도 있다. 그런 물질들 중 일부는 신경과 뇌를 망가뜨려 사람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들고, 엉뚱한 환각을 보게 하며, 괴상한 몸짓을 하고 싶게 만들 수 있다. 

16세기 유럽의 어느 호밀밭에 맥각병이 살짝 퍼져 있었는데 주의 깊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 먹었고, 그러다가 맥각 속에 들어 있는 독성 성분이 몸에 들어와 뇌가 망가지는 바람에 괴상한 환각, 착란, 정신 이상을 경험했다고 상상해보자. 빵을 먹은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을 테니, 그 결과로 수십 수백 명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이상한 몸동작으로 날뛰는 난리판이 벌어졌을 수 있다. 무도광 현상의 정체는 바로 이 맥각 중독증이 아니었을까? (148p)


우물의 망령을 물리치는 EDTA- 에틸렌다이아민테트라아세트산(ethylenediaminetetraactic acid EDTA)은 유기화합물의 일종이다. 금속이론과 결합하여 카이랄성을 가진 킬레이드 화합물을 만든다. (165p)


중금속 중독 사례 중 수은 중독은 오래전부터 그 위험성이 명확히 확인되어 많은 지적을 받아왔다. 수은은 몸의 여러 곳을 망가뜨릴 수 있는데, 특히 뇌의 기능과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큰 물질이기도 하다. (185p)


모두에게 평균적으로 대충 맞아떨어질 만한 말을 자신에게 특별히 잘 들어맞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을 가리켜 포러효과(Forer effect)라고 한다. (232-233p)


발표편향(Reporting bias)이란 널리 소문이 나고 발표된 현상일수록 사람들이 더욱 많이 믿게 되고 발표되지 않고 소문이 나지 않은 현상은 사람들이 잘 안 믿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렇지만 너무나 일이기 때문에 걸려들기 쉽다. (236p)


조선 후기 이야기책인 <천예록>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와 있다. 김씨 성을 가진 한 선비가 서울에서 영남 지방으로 가던 주에 문경세재 길에서 혼령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혼령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선비의 친구 모습이었다. 선비는 이미 저승에 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승을 돌아다닐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혼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죽은 뒤에 병을 퍼뜨리는 귀신이 됐어.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병을 퍼뜨리는 게 일이냐, 이제 막 서울, 경기 일대를 돌고 지금 영남으로 가는 길이야.”

선비가 혼령을 자세히 보니 높은 벼술이라도 하는 것인지 멋진 말을 타고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수백 명의 어린아이들 형체가 뒤따르고 있었다. 혼령은 자신과 자기 부하를 뒤따라오는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혼령들은 바로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은 서울, 경기 지역의 아이들이야.”

선비는 깜짝 놀라 혼령에게 살아 생전에는 착하게 살았던 사람이 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을 하고 있느냐고 캐묻는다. 혼령은 좀 겸연쩍어 하면서 운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선비는 혼령에게 당부한다.

“이 친구야. 비록 지금과 같은 처지라도 최대한 사람 목숨을 구해주려는 쪽으로 일한다면 그만큼 착한 일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고 나서 혼령과 헤어졌는데, 나중에 선비가 머무르던 집에 살던 아이가 병에 걸리자 그 혼령 친구를 부르며 살려 달라고 부탁하는 제사를 지냈고 그러자 아이가 곧 병에서 나았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248-249p)



어찌나 악귀에 대한 공포가 강했는지 집에서 나갔다가 들어올 때마다 웃어른에게 하듯 옷차림과 모자를 반듯이 하고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하고 악귀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병세가 심해졌을 때는 몸을 깨끗이 씻고 악귀에게 그러지 말아 달라고 열성적으로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의 비슷한 풍속이 조선 후기에 나온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악귀에 대한 믿음은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이 병이 무서운 것이었고, 동시에 병이 걸리는 원인과 그 치료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 병이야 말로 ‘병원에 가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데, 귀신이 붙은 건지 몸은 계속 아팠다’고 할 만한 병이었다. 그러면서도 무척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재난이었다. 

이 병은 다름 아닌 옛 시대 전염병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천연두였다. 조선시대에는 두창(痘瘡)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두창을 옮기는 악귀를 보통 두신(痘神)이라고 불렀다. (252p)



19세기 독일의 과학자 로베르트 코르(Robert Koch)는 전염병을 연구한 결과 그것에는 네 가지 규칙이 있음을 알아냈다. 이 규칙을 보통 ‘코흐의 가치(Koch’s postulates)’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는 병을 않는 사람에게는 병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 있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그 물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물질을 사람에서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 물질을 건강한 사람에게 주입하며 그 사람도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그렇게 병에 걸린 사람으로부터 다시 그 물질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코흐의 가설 첫 번째 규칙처럼 천연두를 앓는 사람에게는 천연두 바이러스라는 물질이 있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구 바이러스가 없다. 몸에 바이러스가 없는데 단지 악귀에게 기도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그 벌로 천연두을 앓게 되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세 번째 규칙처럼 사람 몸에 천연두 바이러스를 집어넣어 바이러스가 몸속에서 퍼지며 자리 잡는 데 성공하면 그 사람은 천연두에 걸린다. 그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밥과 떡을 차려놓고 온 힘을 다해 악귀에게 정성을 바치더라도 천연두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 퍼지면 천연두에 걸린다. 천연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바이러스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255-256p)


유령 진동 증후군(Phantom ringing syndrome)이라는 말은 유령이 정말로 나타나 진동을 일으키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다만 전화기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실제 전화기가 울리지 않는데도 울린다고 잘못 느낄 때가 가끔 생긴다는 뜻일 뿐이다. (298-299p)


재차의 이야기에서 짚어볼 만한 대목은 가끔 이렇게 일부러 남을 속여서 유령이나 괴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악한 마음을 품고 남에게 겁을 주거나 이익을 얻기 위해 유령 이야기를 거짓으로 지어내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재차의 이야기처럼 적어도 자기 입장에서는 선량한 목적을 위해 괴물 이야기를 지어내 남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을 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은 애매한 경우도 있다. 1917년 초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이후 전 세계에 알려진 코팅리 요정(Cottingley Fairies) 사건이 좋은 예다. 이 사건은 영국의 코팅리 마을에 머물던 엘시 라이트와 프랜시스 그리피스 두 사람이 조그마한 요정이 자기들 주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당시 두 사람은 10대 초반과 후반의 나이였는데, 두 사람과 함께 시골 마을의 숲 한편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날개 단 요정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힌 사진이 공개되었다. 요정이 정말로 세상에 있고, 그것이 발견된 것일까? (325p)


만약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는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고 대단히 지능이 뛰어나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뇌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뇌세포들이 일부 손상되었고, 그 때문에 성격이 친절해졌지만 대신 음악을 싫어하게 되었으며, 지능도 평범한 수준의 사람이 되었다. 만약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유령으로 변하게 된다면, 그 유령은 어릴 때 성격과 지능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머리를 다친 이후의 성격과 지능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일까? 원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으로 활동하는 것이 유령 세계의 규칙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가 많이 들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심장이 멎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몸이 쇠약해져 별다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별다른 행동도 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다수의 유령은 그냥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는 병석에 가만히 누워 있는 모습일 뿐이어야 한다.  
--- pp.30~31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목격한 저승사자의 모습은 검은 한복에 검은 갓을 쓰고 있고 얼굴은 창백한 남성인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전통적으로 한국인이 목숨을 잃으려고 할 때 찾아오는 저승사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전설이나 옛이야기에 나오는 그 저승사자가 실제로 내 꿈속에 나타나 누구인가의 생명을 빼앗고 죽음의 세계로 데려간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사실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이 창백한 저승사자의 모습은 먼 옛날부터 내려온 한국 저승사자 모습의 대표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유행했던 KBS 〈전설의 고향〉에서 저승사자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상식 PD와 제작진이 개발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럴듯해 보였고 시청자 반응도 좋아서 최상식 PD를 비롯한 제작진은 그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계속 활용했고, 그런 방송이 몇 차례 TV에 나오는 사이에 무심코 한국의 전통적인 저승사자는 저런 모습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퍼진 것이다.  
--- pp.50~51

맥각병에 걸린 호밀을 사람이 먹게 되면 식중독에 걸린다. 맥각이 곰팡이 종류이니 곰팡이 핀 음식을 먹고 탈이 나는 현상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그런데 맥각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독성 물질 중에는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구역질을 나게 하는 비교적 평범한 독성 물질 이외에 다른 특수한 물질도 들어 있다. 그중에는 사람의 신경과 뇌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도 있다. 그런 물질들 중 일부는 신경과 뇌를 망가뜨려 사람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들고, 엉뚱한 환각을 보게 하며, 괴상한 몸짓을 하고 싶게 만들 수 있다. 16세기 유럽의 어느 호밀밭에 맥각병이 살짝 퍼져 있었는데 주의 깊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 먹었고, 그러다가 맥각 속에 들어 있는 독성 성분이 몸에 들어와 뇌가 망가지는 바람에 괴상한 환각, 착란, 정신 이상을 경험했다고 상상해보자. 빵을 먹은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을 테니, 그 결과로 수십 수백 명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이상한 몸동작으로 날뛰는 난리판이 벌어졌을 수 있다. 무도광 현상의 정체는 바로 이 맥각 중독증이 아니었을까? 
--- p.148

어찌나 악귀에 대한 공포가 강했는지 집에서 나갔다가 들어올 때마다 웃어른에게 하듯 옷차림과 모자를 반듯이 하고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하고 악귀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병세가 심해졌을 때는 몸을 깨끗이 씻고 악귀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열성적으로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의 비슷한 풍속이 조선 후기에 나온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악귀에 대한 믿음은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이 병이 무서운 것이었고, 동시에 병이 걸리는 원인과 그 치료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 병이야말로 ‘병원에 가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데, 귀신이 붙은 건지 몸은 계속 아팠다’고 할 만한 병이었다. 그러면서도 무척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재난이었다. 이 병은 다름 아닌 옛 시대 전염병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천연두였다. 
--- p.252

재차의 이야기에서 짚어볼 만한 대목은 가끔 이렇게 일부러 남을 속여서 유령이나 괴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악한 마음을 품고 남에게 겁을 주거나 이익을 얻기 위해 유령 이야기를 거짓으로 지어내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재차의 이야기처럼 적어도 자기 입장에서는 선량한 목적을 위해 괴물 이야기를 지어내 남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을 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은 애매한 경우도 있다. 1917년 초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이후 전 세계에 알려진 코팅리 요정Cottingley Fairies 사건이 좋은 예다. 이 사건은 영국의 코팅리 마을에 머물던 엘시 라이트와 프랜시스 그리피스 두 사람이 조그마한 요정이 자기들 주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당시 두 사람은 10대 초반과 후반의 나이였는데, 두 사람과 함께 시골 마을의 숲 한편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날개 단 요정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힌 사진이 공개되었다. 요정이 정말로 세상에 있고, 그것이 발견된 것일까? 
--- p.325






곽재식
2006년 단편 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MBC에서 영상화된 이후 소설가, 괴물 전문 작가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는 소설 『고래 233마리』 『지상 최대의 내기』 『이상한 용손 이야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과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한국 전통 괴물을 소개하는 『한국 괴물 백과』, 과학 논픽션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 등이 있습니다. EBS [인물사담회],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 매체에서도 활약 중입니다. 공학 박사이며, 현직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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