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약우(大智若愚)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는 뜻으로, 큰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공명정대하여 잔재주를 부리지 않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인다는 말이다.
大 : 큰 대(大/0)
智 : 지혜 지(日/8)
若 : 같을 약(艹/5)
愚 : 어리석을 우(心/9)
(유의어)
대지여우(大智如愚)
대지불이우(大智不異愚)
“훌륭한 장사꾼은 좋은 물건이 없는 것처럼 깊이 숨겨두고, 군자는 뛰어난 덕이 있더라도 용모는 어리석은 듯이 한다. 그대의 교만한 태도와 많은 욕심, 거만한 안색과 지나친 뜻을 없애야 하니, 이것은 모두 그대의 신상에 이로운 것이 아니다.(良賈深藏若虛, 君子盛德, 容貌若愚. 去子之驕氣與多欲, 態色與淫志. 是皆無益於子之身.)”
여기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고(賈)’라 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商)과는 좀 차이가 있다. 기원전 1100년 즈음 중국에서 새로 일어난 주(周) 왕조는 상(商)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뒷날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왕족들을 모두 죽이려했다. 상나라 왕족들은 별수 없이 도망 다녔고, 먹고 살아야 하니 이들은 세상을 떠돌면서 물건을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장사하는 사람을 상나라 사람이라는 뜻으로 ‘상인(商人)’이라 했다.
상인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곳에 머물며 장사하는 이가 가게창고에 좋은 물건을 숨겨두고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노자는 장사의 비결로 봤다. 중국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해 장사하는 사람을 낮게 보았다지만, ‘상인(商人)’과 ‘고(賈)’를 구분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일찍부터 중국에서는 그만큼 상업이 세분화돼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노자열전(老子列傳)에서 노자는 훌륭한 장사꾼의 처세를 군자가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장사를 하는 이들이 군자보다 훌륭하다거나 백성들에게 장사꾼이 되기를 권유한 것은 아니고, 그저 비유를 들어 말한 것으로 봐야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군자가 다른 사람의 모범이 돼야하는 것이지, 거꾸로 군자가 상인 같이 낮은 계층에게 삶의 방식을 배워야한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유가나 도가 모두 이익을 내는 장사를 그다지 장려하는 사회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 의식이 생긴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백성들을 다스리는 지배세력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돈이 많은 상인들이 윗사람의 명령을 잘 듣지 않는 데 비해, 땅에 뿌리박고 한해 한해 농사로 살아야 하는 농민들이 더 순종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배세력의 통치 편의를 위해서라도 상업보다는 농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던 때문이기도 하다.
노자는 마치 상인이 좋은 물건을 감추고 장사하듯, 군자라는 이 역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더라도, 그것을 숨겨 드러내지 않고 어리석은 양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가만히 있으라했다. “매우 지혜로운 것은 어리석은 것과 같다(大智若愚)”는 말처럼, 조금 안다고 교만하게 으스대면 거꾸로 화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노자는 무위자연을 말하는 도가의 조종이 되고 한비자는 법에 의한 다스림을 말하는 법가의 대가이다. 그런데 노자와 한비자가 서로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사마천은 왜 노자와 한비자를 묶어서 기록했을까? 뒤의 한비열전에 사마천은 한비의 학문이 황제와 노자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고 말한다. 황제를 노자를 묶어서 고대 중국에서는 '황로학 (黃老學)이라고도 불렀다. 황제는 전설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역사상 최초로 법률을 제정한 사람이기에 법가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이런 사정이 섞여서 자연스럽게 노자와 한비를 한 테두리에 넣은 것은 아닐까?
老子者, 楚苦縣厲鄕曲仁里人也, 姓李氏, 名耳, 字耼, 周守藏室之史也. (노자자 초고현여향곡인리인야 성이씨 명이 자담 주수장실지사야)
노자는(老子者), 초나라(楚) 고현(苦縣)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厲鄕曲仁里人也), 성은 이씨고(姓李氏), 이름은 이고(名耳), 자는 담이고(字耼), 주나라(周) 수장실의 사관이다(守藏室之史也).
孔子適周, 將問禮於老子. (공자적주 장문례어노자)
공자가(孔子) 주나라에 가서(適周), 장차(將)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問禮於老子).
老子曰: "子所言者, 其人與骨皆已朽矣, 獨其言在耳. 且君子得其時則駕, 不得其時則蓬累而行. 吾聞之, 良賈深藏若虛, 君子盛德容貌若愚. 去子之驕氣與多欲, 態色與淫志, 是皆無益於子之身. 吾所以告子, 若是而已."
노자가 말하길(老子曰): "그대가(子) 말한 사람들은(所言者), 그(其) 사람과 뼈가(人與骨) 모두(皆) 이미 썩었는데(已朽矣), 오직(獨) 그 말이 남은 것일 뿐이다(其言在耳). 또한(且) 군자가(君子) 그때를 얻으면 멍에를 매지만(得其時則駕), 그때를 얻지 못하면(不得其時則) 물건을 머리에 이고 돌아다닌다(蓬累而行). 내가 들으니(吾聞之), 큰 상인은(良賈) <물건을> 깊이 감추어(深藏) 빈 듯하고(若虛), 군자는(君子) 덕이 성하여도(盛德) 용모가 어리석은 듯하다(容貌若愚). 그대의(子之) 교만과 욕심(驕氣與多欲), 위선적이 모습과 지나친 야망을(態色與淫志) 버려라(去), 이것이 모두(是皆) 그대의 몸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無益於子之身). 내가 그대에게 일러주는 까닭은(吾所以告子), 이와 같은 것뿐이다(若是而已)."라고 했다.
孔子去, 謂弟子曰: "鳥, 吾知其能飛; 魚, 吾知其能游; 獸, 吾知其能走. 走者可以爲罔, 游者可以爲綸, 飛者可以爲矰. 至於龍, 吾不能知其乘風雲而上天. 吾今日見老子, 其猶龍邪!'
공자가 돌아와(孔子去), 제자들에게 말하길(謂弟子曰): "새가(鳥), 나는(吾) 그것이 잘 나는 것을 알고(知其能飛); 물고기는(魚), 내가(吾) 그것이 잘 헤엄치는 것을 알고(知其能游); 짐승은(獸), 내가(吾) 그것이 잘 달리는 것을 안다(知其能走). 달리는 것은(走者) 그물질로 잡을 수 있고(可以爲罔), 헤엄치는 것은 낚시질로 잡을 수 있고(游者可以爲綸), 나는 것은(飛者) 화살질로 잡을 수 있다(可以爲矰). 용에 이르러서는(至於龍), 내가(吾) 그것이 바람과 구름을 타고(其乘風雲而) 하늘에 오르는 것을(上天) 알지 못한다(不能知). 내가 오늘(吾今日) 노자를 보니(見老子), 그가(其) 용과 같구나(猶龍邪)!"라고 했다.
* 蓬累(봉루): 물건(物件)을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든 모양(模樣).
老子修道德, 其學以自隱無名爲務. 居周久之, 見周之衰, 乃遂去. 至關, 關令尹喜曰: "子將隱矣, 彊爲我著書." 於是老子乃著書上下篇, 言道德之意五千餘言而去, 莫知其所終.
노자가(老子) 도덕을 닦고(修道德), 그 배움은(其學以) 스스로 숨겨서(以自隱) 명성을 없애는 것에(無名) 힘쓰는 것이었다(爲務). 주나라에 거주한 지 오래되어(居周久之), 주나라가 쇠락하는 것을 보고(見周之衰), 마침내(乃遂) 떠났다(去). 관문(함곡관)에 이르자(至關), 관령 윤희가 말하길(關令尹喜曰): "선생님이(子) 장차(將) 은둔하려고 하시니(隱矣), 억지로라도(彊) 나를 위해(爲我) 책을 지어주시지요(著書)."라과 했다. 이제(於是) 노자가(老子) 곧(乃) 책 상하 편을 지어(著書上下篇), 도덕의 뜻을(道德之意) 5천여 자로 말하고(言五千餘言而) 떠났으니(去), 누구도(莫) 그 죽은 곳을 알지 못했다(知其所終).
或曰: 老萊子亦楚人也, 著書十五篇, 言道家之用, 與孔子同時云.
누군가 말하길(或曰): 노래자도 또한(老萊子亦) 초나라 사람이고(楚人也), 책 15편을 지었는데(著書十五篇), 도가의 쓰임을 말했고(言道家之用), 공자와 더불어(與孔子) 같은 시대라고 말한다(同時云).
* 老萊子(노래자):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학자. 공자와 같은 시기의 사람이다. 난세(亂世)를 피하여 몽산(蒙山) 기슭에서 농사를 지었다. 초왕이 그가 현재(賢才)임을 듣고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강남(江南)에 머물렀다. 그가 거처하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부락을 이루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사마천은 노자와 노래자가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서 여기서 언급한 것이다.
蓋老子百有六十餘歲, 或言二百餘歲, 以其修道而養壽也.
대체로(蓋) 노자는(老子) 160여 세 또는(百有六十餘歲, 或) 200여 세를 살았다고 말하고(言二百餘歲, 以) 그가 도를 닦아(其修道而) 수명을 늘린 것이다(養壽也).
自孔子死之後百二十九年, 而史記周太史儋見秦獻公曰: "始秦與周合, 合五百歲而離, 離七十歲而霸王者出焉." 或曰儋即老子, 或曰非也, 世莫知其然否. 老子, 隱君子也.
공자가 죽은 때로부터(自孔子死之) 129년 뒤에(後百二十九年, 而) 사서의 기록에는(史記) 주나라 태사 담이(周太史儋) 진 헌공을 뵙고 말하길(見秦獻公曰): "애초에(始) 진나라와 주나라가 합쳤다가(秦與周合), 합친 것이 500년이 지나서(合五百歲而) 나뉘고(離), 나뉜 것이(離) 70년이 지나면(七十歲而) 패왕이 나올 것입니다(霸王者出焉)."라고 했다. 누군가 말하길(或曰) 담이 곧(儋即) 노자이고(老子), 누군가 말하길(或曰) 아니라고 하니(非也), 세상에(世) 누구도(莫) 그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한다(知其然否). 노자는(老子), 숨은 군자였다(隱君子也).
老子之子名宗, 宗爲魏將, 封於段干. 宗子注, 注子宮, 宮玄孫假, 假仕於漢孝文帝. 而假之子解爲膠西王卬太傅, 因家于齊焉.
노자의 아들은(老子之子) 이름이 종인데(名宗), 종이(宗) 위나라 장군이 되어(爲魏將), 단가나에 봉해졌다(封於段干). 종의 아들은 주이고(宗子注), 주의 아들은 궁이고(注子宮), 궁의 현손은 가인데(宮玄孫假), 가가(假) 한 효문제 때 벼슬했다(仕於漢孝文帝). 그리고(而) 가의 아들 해는(假之子解) 교서왕 앙의(膠西王卬) 태부가 되어(爲太傅), 이로 인해(因) 제나라에 집안이 있었다(家于齊焉).
世之學老子者則絀儒學, 儒學亦絀老子. '道不同不相爲謀', 豈謂是邪? 李耳無爲自化, 淸靜自正.
세상에서(世之) 노자를 배우는 사람은(學老子者則) 유학을 배척하고(絀儒學), 유학도 또한(儒學亦) 노자를 배척한다(絀老子). '도가 같지 않으면(道不同)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不相爲謀)'라고 했는데, 아마(豈) 이것을 이르는 것인가(謂是邪)? 이이는(李耳) 하지 않는 것으로(無爲) 저절로 교화되도록 하고(自化), 청정으로(淸靜) 스스로 바르게 되도록 한다(自正).
* 絀(출): 물리치다, 배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