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

원 간섭기 고려 - 도평의사사, 정동행성, 권문세족

Jobs 9 2020. 5. 1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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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 ㉠ )의 정치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도병마사는 성종 때 처음 설치되어 국방 문제를 담당하였다. …(중략)… 원 간섭기에 ( ㉠ )(으)로 개칭되면서 국정 전반에 걸친 중요사항을 관장하는 최고기구로 발전하였다.

① 도당으로 불렸으며 조선 건국 초에 폐지되었다.

② 법제의 세칙을 만드는 고려의 독자적인 기구이다.

③ 정책을 집행하는 기능을 담당했으며, 그 밑에 6부를 두었다.

④ 관리의 임명이나 법령의 개폐를 동의하는 서경권을 행사하였다.

 

 


 Q  다음과 같은 주장이 나온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왕 원년 2월 대부경 박유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우리나라에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한 아내로 그치고 아들이 없는 사람도 감히 첩을 두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이 와서는 아내를 얻는데 제한이 없습니다. 장차 인물이 모두 북쪽으로 흘러갈까 두렵습니다. 신하들에게 첩을 두는 것을 허락하면 짝이 없어 원망하는 남녀가 없어지고 인물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으니 인구가 점차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재상과 장군 가운데 아내를 무서워하는 자가 많아 그 논의를 중지하여 실행하지 못하였다. 


① 경당에서 공부하는 학생 
② 도평의사사로 출근하는 관리  
③ 정방 설치를 지시하는 무신집권자 
④ 쌍기의 과거 시행 건의를 듣는 왕 

【해설】 정답 ② 
자료는 충렬왕 시기 박유가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는 것으로 원간섭기이다. 
② 도평의사사는 원간섭기의 최고 권력기구 였다. 
①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지방에 경당을 세워 한학과 무술교육을 실시하였다. 
③ 최우는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최우처삼팔금정 
④ 광종은 쌍기의 과거 시행 건의를 들어 과거제를 시행하였다.  광노안과 공복주제 송광풍여사 

 

 

 

● 원 간섭기 고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있었던 최고 의결기관
고려 초기 도병마사의 후신이며 도당(都堂)이라고도 한다.
여러 관청의 관원이 참여하는 합의기관이며 국방기관이었다가 정무를 아우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비변사와 비교된다.

순마소~고려인의 항몽투쟁 감시, 개경의 치안담당
정동행성 설치, 부속기구로서 이문소가 불법적인 사법권행사로 작폐심함
쌍성총관부(철령➜공민왕때 탈환), 동녕부(자비령), 탐라총관부(목마장)➜충렬왕때 탈환
원간섭기의 관직 격하 : 이부,예부➜전리사, 호부➜판도사, 병부➜군부사, 형부➜전법사,  중추원➜밀직사, 3성➜첨의부, 국자감➜성균관

 

 원 간섭기 정치

왕이 공주와 함께 개경의 궁전에 도착하였다. 유천우가 장일에게 말하기를 "왕이 만일 오랑캐 옷을 입고 성에 들어오면 나라 사람이 놀라고 해괴하게 여길 것이다."라고 하고는 여러 신하들을 시켜 왕에게 예복을 입고 들어올 것을 청하였으나 왕(충렬왕)이 거절하였다.​

​-고려사-



신 이제현 삼가 아뢰옵니다.​ 연경에 머물러 만권당을 지었던 우리 왕(충선왕)께서 어린 나이에 후사 없이 돌아가시어 온 나라가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복속되지 않은 일본이 이웃하고 있어 하루라도 왕위를 비울 수 없사오니, 죽은 왕의 삼촌과 서자 중 선택하시어 왕으로 결정해 주실 것을 황제께 바라나이다.

-고려사-

->왕위 결정에 원나라가 관여​함



왕이 강릉대군 왕도를 황제에게 알현시키고 왕위를 계승시켜 줄 것을 요청하자 황제가 왕도를 (고려 왕에) 책봉하였다. 또 조카인 연안군 왕호를 심왕의 세자로 삼았다. 왕이 일찍이 심왕에 책봉되었으므로 당시에 심왕이라 일컬어졌다.

-고려사-

->심양왕 제도 : 충선왕이 원 무종의 즉위에 공을 세워 심양왕의 작호를 받고 랴오양 지방의 고려인을 다스림

                               ->고려 왕위 계승 분쟁 발생



도첨의사사 이제현이 "듣컨대 조정에서 우리나라에 행성을 설립하여 다른 성들과 같이 하기를 의논한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고아로는 다시 거론하지 않더라고 세조의 어지는 어찌하겠습니까. --- 까닭없이 4백년 왕업을 하루아침에 끊어 사직과 종묘에 제사가 끊어지게 한다는 마땅한 처사가 아닙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 성을 설립하자는 논의가 마침내 그치었다.

​-고려사절요-

​->입성책동 : 고려를 원의 직속령으로 만들고자 한 사건, 4차례 발생 but 실행안됨





정동행성 설치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해 설치되어 군대와 물자를 징발하였다. 두 차례의 원정을 실시하였으나 태풍으로 인하여 모두 실패하였다. 일반 행정을 담당한 좌우사와 사법 사무를 담당한 이문소, 군무를 담당한 도진무사 등 여러 부속 기구를 두었다. 원정이 실패한 이후에도 계속 남아 정치에 간섭하였는데, 특히 이문소의 횡포가 극심하였다.

->정동행성 : 충렬왕 때 일본 원정을 위해 설치, 승상은 고려 왕이 겸임

->일본 원정 실패 -> 태풍(가피카제)으로 고전

->이문소 : 정동행성의 부속 기구 -> 불법적 사법 행위로 폐단 발생​






권문세족의 성장


이제부터 종친의 경우에는 마땅히 여러 대를 내려오면서 재상을 지낸 집안의 딸을 취하여 부인을 삼을 것이며 재상의 아들은 종실의 딸과 혼인함을 허락한다. 그러나 만일 그 집안이 한미하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 철원 최씨, 해주 최씨, 공함 허씨, 평강 채씨, 청주 이씨, 당성 홍씨, 황려 민씨, 횡천 조씨, 파평 윤씨, 평양 조씨는 다 여러 대의 공신이요, 재상의 친족으로서 대대로 혼인할 만 하다.

-고려사-​

->재상지종 : 충선왕 발표, 대체로 권문세족 ->도평의사사, 정방(인사권) 장악, 원 간섭기 등장(친원파)



당시에 겁령구, 내수, 청구까지 다 사전을 받아서 그 중 많은 자는 수백결에 이르렀다. 그들은 보통 농민을 유인해서 전민으로 만들고 또 민전으로서 그 부근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전조를 거두어 들였으므로 주현에서는 세납이 들어올 곳이 없었다.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약탈) -> 대농장 소유 -> 농민 생활 불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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