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역사
영어(英語, English, English language)
영국의 구성국인 잉글랜드에서 기원한 서게르만어군 언어이다. 오늘날에는 영국과 영연방, 북미의 국가를 중심으로 공식 언어뿐만 아니라 그 외 지역에서는 제2언어로 활용한다. 또한 영어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쓰였으나,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 대영 제국의 군사적, 경제적, 과학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영향과 20세기 우드로 윌강화 회의에서 주장한 이래의 미국의 영향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배우고, 활용하는 언어로 링구아 프랑카에 비유하기도 한다.
영어는 서게르만어군의 방언이었던 앵글로색슨족의 언어가 여러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하면서 형성되었다. 5세기 무렵 브리튼 제도에 앵글로색슨족이 이주하면서 시작한 고대 영어는 이후 바이킹의 침입과 함께 전파된 고대 노르드어의 영향을 받았다.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고대 영어는 단어와 철자법 등에서 노르만어의 영향을 받으며 중세 영어로 발전하였다. 영어(English)라는 단어의 어원은 12세기 고대 영어인 Angl 또는 Engle에서 파생했다. 근대 영어는 15세기 잉글랜드에서 있었던 대모음 추이가 기준이다. 이 무렵 여러 나라에서 유래한늘었다. 특히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기술 용어들도 늘었다. 또한, 각국 국민들의 모국어 억양이 영어에 흡수되었다.
지구적 링구아 프랑카로서 언급된다. 영어는 통신, 과학, 무역, 비행, 오락, 방송, 외교 등의 분야에서 국제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영어의 사용은 종종 언어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영어는 대영제국의 팽창과 함께 브리튼 제도의 밖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국이 된 미국으로 인해 영어 사용의 세계화는 더욱 확산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전의 공용어로는 프랑스어가 꼽힌다.
의료나 컴퓨터 사용과 같은 여러 분야는 기초적인 영어 사용 능력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 수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영어를 배운다.
영국의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은 전 지구적인 영어 사용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다른 언어가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한다.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지구 곳곳에서 영어 사용이 일반화됨으로써 각 지역의 자연어가 갖고 있던 언어 다양성이 감소하고 심지어 더 이상 쓰는 사람이 없는 사어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영어의 영향은 역사언어학의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언어 공동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사용되고 있는 영어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언어 변화를 가져왔다. 크리올과 피진은 이러한 영어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어족이다
영어의 역사
영어의 뿌리를 찾자면, 먼저 유럽 문화의 시발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가 및 통치 개념이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 로마는 크게 라틴, 사빈, 에트루리아라는 3개의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리스 문명에 토대를 두고 발전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는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2세기에 로마인이 영국을 점령함으로써 이 라틴어가 영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용되는 영어 어휘들을 분석해보면 그리스어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러한 판단이 틀리지 않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원래 영국 원주민은 켈트족이나 로마인들이 영국을 점령함으로 인해 라틴어의 영향을 받고, 이후 5세기에는 덴마크 남쪽에 살던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이때부터 지금과 비슷한 영어가 사용된 것으로 많은 학자가 소개하고 있다. 이 앵글로 색슨족은 게르만족의 일파다.
이때 영국 원주민인 켈트족은 영국 남서쪽 웨일스(Wales)와 서쪽(Ireland) 지방으로, 그리고 스코트인들은 스코틀랜드 즉, 영국 북쪽으로 쫓겨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그 역사의 흐름이 남아 있다.
이후 지금의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일대에 살던 바이킹족 즉, 유럽 곳곳을 다니며 침략과 약탈을 일삼던 노르만족의 윌리엄(William) 공이 프랑스 서쪽 노르만디(Normandie) 지역을 프랑스 샤를 3세로부터 할당받아 살다가 앵글로 색슨(Anglo-Saxon)족의 통치가 약해진 틈을 타 11세기경에 영국을 점령하고 영국 왕으로 즉위한 후 대이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바탕에서 보면 오늘날 영국(England)에 살고 있는 영국인들은 앵글로 색슨족과 11세기에 영국으로 이동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던 노르만족의 후손이라 볼 수 있다. 이 당시 노르만 귀족들이 불어를 사용했으므로 왕실이나 법정에서 불어를 사용했고, 이 때문에 현대 영어에도 이러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때부터 앵글로 색슨족과 노르만족은 점진적으로 동화되어 갔고, 평민들은 영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결국 많은 사람이 사용하던 언어, 즉 영어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영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로 정착되었다.
따라서 영어는 유럽 문명의 태생 및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유럽 여러 민족의 언어로부터 영향을 받고 합쳐지면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영어는 스칸디나비아 제국 즉, 영국, 스코틀랜드, 덴마크, 노르웨이의 지대한 영향 아래 발전되었다.
1. 언어적 선사시대
영어의 역사는 서기 600년을 조금 넘긴 시기부터 시작된다. 그 전에는 언어적 선사시대라고 불린다. 서기 600년 전에 대해서는, 추측은 할 수 있지만 학문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가 태어나기 1000년 가량 전부터 영어의 언어적 조상들은 북부 유럽의 숲을 떠돌며 생활했다. 그들의 언어는 인도유럽어에 속하는 게르만어의 한 종류였다.
로마제국시대 (대략 예수가 태어난 시기부터 서기 400년 까지라고 친다)에, 미래에 영어로 발전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북부 유럽 해안선 여기저기에 퍼져있었다. 그들의 언어란 저지(抵地) 독일어 Low German의 방언이었다. 여기서 고지(High) 또는 저지(Low)라는 말을 쓴 것은 지리상의 편의성 때문인데, 고지 독일어 대신 남부 독일어(South German), 저지 독일어 대신에 북부 독일어(North German)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더 정확히는, 부족마다 서로 다른 사투리를 썼다. 이 중, 현재의 영국이 될 곳으로 이주하는 부족은 앵글족, 색슨족, 그리고 주트족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간편하게 그냥 앵글로색슨족이라고 부른다.
(1) 로마시대, 처음 문명과 조우한 앵글로색슨족
앵글로색슨족이 문명과 처음 조우한 것은, 로마제국의 국경에 살면서 미약하게나마 접한 것이 그것이다. 앵글로색슨족이 가끔 제국 안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고, 로마의 상인들도 당연히 부족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을 것이다. 어찌 되거든, 이 시기에 우리는 현대 영어에 아주 깊숙이 들어온 라틴어 오리진의 단어들을 처음 발견할 수 있다. kettle, wine, cheese, butter, cheap, plum, gem, bishop, church 과 같은 예의 단어들이 바로 이 시기에 들어온 말이다. 이 단어들의 패턴으로 보아 우리는 로마와 앵글로색슨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앵글로색슨족은 처음으로 문명을 맛본 것이다.
그들이 갈 길은 물론 아직 멀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그들이 할 일은, 그들이 배워가는 문명의 원천을 박살내는 일에 손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2) 브리튼 섬 침략
서기 4세기가 되자 로마의 힘은 극도로 약해졌고, 고트족이 지중해에서 로마를 치는 동안 그들의 친척인 앵글로색슨족은 브리튼 섬에 공격을 가했다.
로마는 브리튼 섬을 서기 43년부터 통치해오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켈트족을 복속시켜 로마 행정기관을 세웠다. 하지만 로마의 힘은 브리튼 섬의 외곽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의 켈트족들은 자유로웠으며 가끔 잉글랜드 지역에 있는 로마인들에게 공격의 위협을 가했다. 이들의 공격을 막자는 취지에서 로마인들은 그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방벽 (Hadrian’s Wall)을 쌓는다.
하지만 잉글랜드 지방에서 조차 로마의 힘은 약했다. 갈리아, 에스파탸와 달리 라틴어는 국어(國語)가 되지 않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켈트어를 사용했다. 라틴어와 로마의 영향만 겉치레로 치장한 채로 말이다.
4세기가 되자, 브리튼 섬의 로마인들이 가진 문제는 더욱 증폭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거친 부족들의 위협이 늘어난 것뿐만이 아니라 이젠 앵글로색슨족까지 동쪽 해안에서 해적질을 일삼곤 했다. 브리튼 섬뿐만이 아니라 제국 전체에서 문제가 들끓어, 잉글랜드 지방의 군대가 다른 곳으로 파견될 때도 있었다. 마침내 서기 410년이 되자 잉글랜드의 마지막 로마 총독은 황제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마지막 군대까지 이끌고 섬을 떠나버렸다. 브리튼 섬은 켈트족의 소유로 남았으나 앵글로색슨족의 공격에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다.
앵글로색슨존의 잉글랜드 도래에 대해서 그다지 알려진 것은 없다. 8세기의 역사가 비드(Bede)에 따르면, 주트족은 켈트족의 왕 보르티건(Vortigern)으로부터 북쪽지방의 픽트족의 공격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잉글랜드에 도착했다. 주트족은 픽트족을 제압했으나, 보르티건과 싸움이 일어나, 대륙에 남아있던 병력들과 합세해 지금의 켄트지방에 영구 정착해 버린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앵글족은 잉글랜드 동부에 정착하고 색슨족은 남부와 서부에 정착한다.
하지만 이것이 단 한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잉글랜드의 켈트족이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외곽으로 추방당하거나 노예가 되기까지 100년 정도가 걸렸다. 이 때가 바로 아서왕이 활동한 시대다. ‘아서왕’은 신화적 인물이 아니다. 그는 로마화된 켈트인으로, 장군이긴 했으나 왕까지는 아니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는 앵글로색슨족을 물리치는데 성공했지만, 그건 오직 잠시의 승리였을 뿐이다. 550년이 되자 앵글로색슨족은 아주 굳건히 정착했다. 영어가 잉글랜드에 정착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은 언어적 관점에서 선사시대라 불린다. 앵글로색슨족이 크리스트교로 개종을 하고 라틴어 알파벳을 배운 600년 이전엔 영어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개종은 정확히 서기 597년에 일어났으며, 완전히 정착하는 데는 삼사 십 년이 걸렸다. 크리스트교로의 개종은 앵글로색슨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심리적, 영적인 혜택뿐만 아니라 로마 문명과의 접촉이 재개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로마가 망한 게 비교적 최신이라 황폐해진 로마에서 나올 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당시 영국에 있었던 문명보다는 훨씬 풍부했다.
영어의 역사는 보통 고대영어, 중세영어, 근대영어, 이렇게 세가지로 나뉘어진다.
2. 고대영어
(1) 앵글로색슨 7왕국
역사가 처음으로 기록될 당시의 영국엔 여러 가지 독립적 왕국들이 있었다.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이고 나서 한세기 동안은, 험버강과 스코틀랜드 국경 사이에 위치한 노섬브리아 왕국이 가장 진보한 왕국이었다. 서기 700년쯤 되자 노섬브리아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도 찬란한 문명을 이룩하는데, 이것을 가끔 노섬브리아 르네상스라고도 부른다. 노섬브리아 문명은, 멸망한 로마의 폐허를 딛고 유럽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문명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일어난 문명이기도 하다. 바로 이 시기에 여러 뛰어난 고대영어 문학이 쓰여졌으며, 베오울프가 쓰여진 시기로도 추정되기도 한다.
8세기엔 힘의 중심이 노섬브리아에서 머시아(Mercia)왕국으로 옮겨졌다. 한 세기 후 권력은 다시 웨스트색슨의 웨식스(Wessex)로 옮겨졌다. 웨식스의 가장 유명한 왕은 9세기 후반에 통치한 알프레드 대왕이다. 알프레드 대왕은 문화를 많이 장려했다. 그의 통치 아래 학교가 세워지고, 라틴어로 쓰여진 문학들이 영어로 번역되고, 두 세기전의 노섬브리아 문학이 웨스트색슨으로 옮겨진다. 현재 전해 내려오는 고대영어 문학의 커다란 가지는 서기 900년 이후의 웨스트색슨의 방언이다.
(2) 고대 노르웨이어의 영향
알프레드 대왕은 바이킹에게서 여러 번 승리를 거둔 것으로 군사적인 면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9~10세기, 덴마크와 스칸다니비아 반도에 살던 북구 유럽인(바이킹)들이 배를 타고 브리튼 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먼 곳까지 돌아다녔고, 가는 곳마다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이 어디까지 갔냐면,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약탈하고, 프랑스, 러시아, 아일랜드에 정착했으며,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식민지를 세우고, 콜럼버스보다 수세기 앞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그런 그들이 영국을 가만 둘 리 없었다.
수년 동안 자행되어온 약탈 후, 서기 855년 바이킹들은 잉글랜드 동부 해안지방에 눌러앉아 버렸다. 바이킹과의 투쟁 후 서기 877년, 웨식스가 바이킹이라면 이제 아주 지긋지긋해졌는지, 잉글랜드 북동지방에서 남동지방까지 선을 하나 그리고는 선 동쪽 지역을 아예 바이킹들한테 줘버렸다. 이 땅을 데인로(Danelaw)라고 부른다. 선의 왼쪽은 웨식스가 통치하는 식이였다.
언어적 관점으로 볼 때, 이 역사적 사건은 고대노르웨이어가 영어에 상당히 많이 주입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재와 달리, 고대 노르웨이어는 당시의 영어와 별 차이가 없었다. 영어 원어민과 영국동부의 새로운 정착자들은 아마 서로를 대충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영어는 이 시기를 빌어 노르웨이어의 많은 단어를 빌려온다. 영어에 새로 들어온 고대노르웨이어의 예를 들자면, sky, give, law, egg, outlaw, leg, ugly, scant, sly, crawl, scowl, take, thrust 등이 있다. 이것 외에도 수백 개가 있다. 단순한 단어뿐만이 아니라, 대명사 they, their, them 도 고대노르웨이어가 그 기원이다. 이 단어들은 수백 년간의 기간을 거쳐 서서히 영어에 자리잡았다.
고대 노르웨이어는 영어의 발음 체계와 문법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3. 중세영어
서기 1000년과 1200년 사이엔 영어에 여러 가지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고, 이로써 고대영어는 중세영어가 된다. 이 변화들은 노르만 정복이라는 정치적 사건과 함께 시작된다. 노르만족은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본래 스칸디나비아 출신이다. 10세기 초에 그들은 북부 프랑스에 정착하면서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여러 가지 왕국을 세웠으며 꽤 괜찮은 문화발전을 이룩한다. 1066년에는 윌리엄 공(Duke William)이 이끄는 군대가 영국해협을 건너 해이스팅스 전투에서 앵글로색슨계 왕을 격파하고 영국의 주인이 되었다. 그때로부터 다음 수백 년간, 영국은 모국어가 프랑스어인 왕들에 의해 다스려진다.
노르만 정복 이후에 왜 프랑스어가 아예 영어를 제치고 영국의 국어(國語)가 되지 않았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프랑스어가 국어가 되지 않은 이유는, 앵글로색슨의 이동과는 달리 노르만 정복은 노르만족의 대대적인 이동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르만족이 영국에 많이 오긴 했으나 그들은 통치자로서, 주인으로서 왔다. 프랑스어는 궁정에서 사용되는 언어이자 귀족의 언어였고, 즉 상류사회의 언어였으며 문학의 언어였다. 하지만 ‘백성의 언어’인 영어를 대신하지는 못했다. 고위정부관리가 어쩌다 방문하게 되는 때만 빼고는 프랑스어를 전혀 들어보지도 못하는 마을은 수백 개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가 국어로서 계속 생존했을지는 몰라도 노르만 정복 이후 꽤 많은 변화가 적용되었다. 그 변화들 중 몇 개는 노르만 정복이 있었건 없었건 어차피 나타났을 변화이다. 영어 명사와 형용사의 ‘격’ (소유격 따위) 은 1066년 이전에도 이미 더 간소화되고 있었다. 사람들 또한, 문장의 어미 변화보다는 어순과 전치사를 활용하는 방법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 변화는, 단어 끝의 발음을 서로 비슷하게 만든 발음상 변화에 의해 가속화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노르만 정복에 의해 주도된다. 노르만 정복을 겪지 않은 독일어는 오늘날에도 사촌인 영어보다 격이 휠씬 많이 적용된다.
4. 초기 근대영어
서기 1400년에서 1600년 사이엔, 초서가 사용했던 영어와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영어가 서로 아주 다른 언어가 되게 만든 두 가지 발음의 변화가 있었다. 이 변화들이 바로 오늘날, 영어를 철자대로 발음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을 높이게 한 주범이다.
변화 중의 하나는 강세가 없는 단어 끝 모음의 발음을 제거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초서의 시대엔 name, stone, wine, dance 같은 단어들은 ‘나마, 스토네, 위네, 단세’ 처럼 두 음절로 발음되었으나, 셰익스피어의 시대엔 오늘날처럼 한 음절로 발음된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각 단어의 끝에 오는 e는 묵음이 되었다. 중세영어가 사용되었던 초서의 시대엔 묵음이 아니었다. 그 때엔 엄연한 모음발음의 하나였다.
이 변화는 영어의 수천 개의 단어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엔 언어 그 자체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했다는 점에 아주 중요하다.
또 다른 나머지 변화는 대모음 추이 (Great Vowel Shitf) 라는 것이다. 대모음 추이로 인해 강세가 없는 7개의 장모음의 장음 위치가 1단계 이상 높아지고, 단모음의 상당수가 이중 모음화되었다.
대모음 추이는 또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등 모음추이가 이루어지지 않은 언어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음발음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 영어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 (例: sine)을 보게 된다면, 영어 발음 규칙대로 ‘사인’이라고 읽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똑 같은 낱말을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같은 언어 규칙대로 읽는다면, ‘시느’, ‘시네’ 등, ‘이’ 라는 모음이 들린다.
위의 두 가지 변화는 중세영어와 근대영어의 기본적 변화를 주도한 요소다. 하지만 그 외에도 중세영어에서 현대영어로 발전시킨 여러 가지 변화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활자의 보급 (AD 1475)이다. 활자의 보급으로 인해 그 동안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갑자기 많은 양으로 싸게 보급되었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읽고 쓰는 법을 배우면서 그 동안 지역마다 약간씩 달랐던 철자법이 하나의 표준으로 통일되었다. 발음상 변화는 굉장했지만, 철자엔 발음의 변화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는 스페인어와 달리 철자대로 읽히지 않는다.
활자의 보급과 철자법 통일, 그리고 사람들의 전반적인 교육수준의 상승으로 인해 초기근대영어 시대 (16세기~17세기)는 영국 르네상스 (English Renaissance)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이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과거에 대해 흥미를 갖고 진지하게 통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해 더 상상적이고 모험적인 전망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의 변화가 없었던 암흑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넘쳐흘렀고, 새로운 아이디어란 곧 새로운 언어를 의미했다. 노르만 정복에 의해 프랑스어 어휘를 빌려오는 것에 익숙해진 영국인들은 이제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말들을 빌려오기 시작했다. 영어는 고대영어시절과 그 전부터 이미 라틴어 어휘를 빌리곤 했으나 이젠 정말 노골적으로 마구 들여오기 시작했다. Pedestrian, bonus, anatomy, contradict, climax, dictionary, benefit, multiply, exist, initiate, scene, inspire, paragraph 등이 작은 예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평균적인 미국인은 아마 순수영어보다 프랑스 어휘들을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프랑스 어휘보다 라틴어 단어를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초기 근대영어 시대에 살았던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작가는 셰익스피어이고, 가장 잘 알려진 책은 1611년에 출판 된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of Bible)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킹 제임스 성경 덕분에 오늘날 더 이상 그 시대의 언어적 요소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초기 근대영어가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다.
셰익스피어는 등장 이후 영문학에 하도 많은 영향을 끼쳐서, 딱히 근대영어를 그렇게 파고들지 않았던 영어권 화자라도 햄릿에 나왔던 “Fie on’t, sirrah” 는 곧 “어쩌라고 짜샤.” “아씨, 이젠 나도 몰라 아오” 와 비슷한 의미라는 것을 웬만하면 다 안다.
초기 근대영어로 쓰여진 문학들의 힘이 너무나 막강하고 위세를 떨치기 때문에, 그 작품들의 언어 표현은 현재에도 기억되고 있다. 비록 더 이상 사용되는 않지만.
하지만 다시 상당한 많은 변화가 초기 근대영어 시대와 현대영어 시대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은 잘 인식되지 못한다.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은 현대의 영어발음으로 연기를 한다. 하지만 정작 셰익스피어는 자기 작품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엔 reason (한글로 대략 ‘리-즌’)이 현대의 raisin (‘레이즌’)처럼 발음되었고, face 는 현대의 glass 같이, ‘패-스’ 처럼 발음되었다. would, could, palm 등등의 단어에 있는 l도, 묵음으로 처리해버리는 현대와 달리 분명히 발음이 되었다. 1600년 이후에도 그 밖의 수많은 요소가 변하면서 현대영어의 초석이 서서리 다져졌다.
5. 근대영어 – 현대영어로의 발전
서기 1700년 이후의 영어의 역사는 여러 가지 변화와 그 변화들을 역행하려는 많은 움직임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영어라는 언어를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언어의 변화를 조장하는 자연적인 섭리를 몰랐던 18세기의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너무 확산되어서 ‘오염’되고 있는 영어를 철저히 규제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가지치기 함으로써 한층 더 매끈하고 ‘알맞은’ 언어로 만들려고 했다.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쓰면 안 되는지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자는 얘기도 많이 돌아다녔다. 실현은 안 됐지만.
언어를 ‘고친다’는 소망의 산물은 사전의 편찬이다. 최초의 영어사전은 서기 1603년에 편찬되었는데, 이 사전엔 2500개의 영어단어와 그 간단한 뜻풀이가 실렸다. 그로부터 조금 조금씩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한 사전들이 편찬되었다가 마침내 1755녀, 사무엘 존슨이 그의 English Dictionary 를 발간한다. 이 사전은 꾸준히 개정되어 오면서 거의 100년간 영국의 사전분야를 독점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노아 웹스터가 1828년 그가 편찬한 사전을 발간했고 오래지 않아 사전출판업은 이 나라에서 큰 사업으로 발전했다.
20세기에는 정말 대단한 사전이 편찬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Oxford English Dictionary 인데, 수많은 학자들의 75년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전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한 사람이 옥스퍼드 영어사전 제2개정판에 실린 59000000개 가량의 단어를 타이프 하는 데는 120년, 교정을 보는데 60년이 걸릴 것이고, 이 단어들을 컴퓨터 데이터로 처리하는 데는 540메가 바이트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제는 서점에서 그냥 흔히 구할 수 있는 상업적 사전도 넘쳐난다.
18세기의 또 다른 산물은 ‘영어문법’의 발명이다. 영어가 라틴어를 대신해서 학구적, 문학적 언어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자 영어 또한 라틴어처럼 규제하고 해부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관념이 들어선다. 그래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라틴어 문법을 영어에 억지로 접합시킨 것이다. 영어는 형태와 신호, 뜻 전달 같은 면에서 라틴어와 완전히 다른 언어였기 때문에 이 움직임은 어리석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의 라틴어 문법은 널리 적용되었고, 학교에서는 이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몇몇 학교는 아직도 이 규칙을 가르친다.) 학생들한텐 별로 인기가 없는 활동이었지만, 논리적인 면에서 볼 때는 가끔 흥미롭고 유익한 면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억지 변화가 불러 온 가장 큰 해악은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흥미를 잃게 만든 것과 영어의 진정한 특색을 가린 것에 있다.
허나, 근대에 들어서 영어의 발전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서기 1500년 까지만 해도 영어는 조그만 섬에 사는 몇몇 사람들만이 사용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언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계 여기저기에 있는 수억 명의 모국어이며 또 다른 수 많은 사람의 제 2언어로 거듭난 세계적 언어다. 현재 각 지역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꽤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냥 ‘영어’가 아니라 ‘미국영어’ ‘영국영어’ ‘호주영어’ ‘인도영어’ 등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전으로 지역간의 소통이 실시간으로 빠르고 쉽게 진행되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 흩어진 영어가 이전처럼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