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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도약, Quantum Leap, 퀀텀 리프, 量子跳躍, 양자역학, 플랑크, Max Planck, 전자의 분연속적 에너지, 미시적 물리학

Jobs9 2022. 6. 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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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도약(Quantum Leap)

물리적 의미
양자역학 이전의 물리학은 에너지의 흐름이 연속적이라고 가정하였고, 고전역학에서는 이러한 가정이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원자의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거동하지 않았고 전자의 거동 역시 불연속적이였고, 이를 양자도약이라 한다. 이는 미시적인 자연세계에서는 에너지가 불연속적으로 분포하고 거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적 의미
경제용어로서 양자도약은 혁신적인 경영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도약하는 기업, 혹은 그러한 혁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양자도약이 불연속적이라는 점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양자역학

양자는 플랑크 상수 단위를 가진, 나눌 수 없는 물리량을 뜻한다. 이 물리량은 기초 입자의 에너지 및 운동량과 관련된다. 양자역학은 분자, 원자, 전자와 같은 작은 크기를 갖는 계의 물리학을 연구하는 분야다. 19세기 중반까지의 실험은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루어진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의 아원자입자에 관련된 실험 결과는 고전역학으로 설명을 시도할 경우 모순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역학 체계가 필요했다. 양자역학은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계기로 에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등에 의해 20세기에 성립된 학문이다. 양자역학은 모든 역학, 전자기학(일반 상대성 이론은 제외)을 포함하는 고전 이론을 일반화하며, 고전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양자도약(Quantum Leap)은 21세기가 문을 연 오늘날 아주 유명한 단어가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개석상에서 거리낌 없이 이 단어를 입에 올리고 있지만 아무도 그 표현의 적절함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사실 양자도약은 과학의 전문용어로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가 20세기 초에 제안한 것이다. 플랑크는 당시 물체에 열을 점점 더 강하게 가함에 따라 색깔이 빨간색에서 노란색으로 그리고 다시 하얀색으로 바뀌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는 빛을 발산하는 원자가 에너지를 연속적 흐름의 형태가 아니라 조각조각 끊어서 내보내는 경우에만 이 같은 물리적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원자는 양자도약을 통해서만 에너지로 정의할 수 있는 양자(Quantum)를 방출한다. 이것은 오늘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플랑크와 동료들에게는 아직도 힘겹게 학습해야할 과제였다. 우선 자연에 그런 기이한 입자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현실 세계를 빈틈없는 전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연은 무언가 불연속적인 것, '양자적인 것'을 지니고 있었다. 원자와 빛은 모두 양자적인 성격을 띤다. 처음에 플랑크와 동료들은 그저 놀라움에 입을 벌렸지만 결국 불가해한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양자로 표현되는―양자도약을 가능케 하는―현실의 단절이 역설적으로 현실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전체로 만들기 때문이었다.

a) 빛의 강도

b) 원자의 에너지

경제적 양자도약 혹은 등불의 스위치를 켜는 순간은 연속적인 선으로 표시될 수 있다(a). 반면에 원자의 진짜 양자도약은 그렇지 않다(b). 이것을 그리려면 중간에서 선을 끊어야 한다. 경제적 결산을 할 때와 달리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끊어지는 곳이 많이 나타난다. 자연은 실제로 수없이 도약을 한다. 자연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인간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추측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양자'는 플랑크가 일상언어에서 차용해 물리학에 정교하게 적용시킨 단어다. 반면에 '양자도약'은 원래 물리학에서만 사용되던 것이 일반에 널리 알려지면서 에너지나 유전자 개념처럼 일상언어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양자도약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언뜻 듣기에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이 개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에너지나 유전자라는 단어를 접할 때는 모두들 뭔가 특별한 의미를 떠올리는 것 같다. 경제계를 포함한 각 분야의 지도층들이 이 어려운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유연한 순발력에 자못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이 개념의 정확한 의미를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비록 힘은 들지만) 충분히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한다.

경영자들은 순식간에 앞으로 혹은 위로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로 양자도약이라는 단어를 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운영하는 사업에 상당한 매출상승이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사업실적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앞의 그림 (a)와 같은 모습이 된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곡선은 대단히 가파르게 상승하지만 선을 중간에서 끊어야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것은 등불의 스위치를 켤 때도 똑같다. 빛은 시간의 지연 없이 곧바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확하게 관찰하지 않았을 경우에만 그렇다. 등불을 켜는 시점을 자세하게 관찰하면 비록 완만한 진행은 아니지만 밝기가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경제의 경우, 발전이나 전환은 엄청난 속도로 연속 진행된다. 즉 끊어짐 없이 위로 또는 밝음으로 나아간다. 자연에서 발생하는 양자도약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이 도약을 그래프로 그리려면 중간에서 반드시 선을 끊어야만 한다. 양자 세계에서의 전환은 기업의 세계나 거실에서 등불을 켜는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다.

양자도약은 (그런 경우가 실제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한정적인 경우에만 바람직한 경제성장을 위한 모델로 간주될 수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양자도약은 대부분의 경우 모든 것이 지극히 안정되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맨 밑의 기저상태(基底狀態)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또 양자도약은 자연에서 벌어지는 가장 미세한 형태의 변화를 표현한다. 이 변화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때만 극히 미미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미시적인 양자도약을 어떻게 그처럼 광범위한 차원에서 벌어지는 경제 변화에 적용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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