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죄악시했습니다. 당대 지식인이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불임 이론(doctrine of the sterility of money)’으로 자기 논리를 무장했습니다. 그는 동식물은 자연스럽게 번식할 수 있지만, 화폐가 증식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고 봤습니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대출과 대부는 그에게 부도덕한 행위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상업을 통한 이윤 획득도 비난했습니다. 이윤을 위한 생산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용을 위한 생산이야말로 중요하다고 본 것이죠. 상인과 장사꾼을 사악한 존재로 본 철학자였습니다. 경제에 관한 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소 무지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중세 기독교에선 '이자 받으면 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서양 사상에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유대-기독교적 전통 역시 돈을 버는 행위, 이자를 받는 행위를 좋지 않게 봤고 심지어 부도덕한 일로 간주했습니다. ‘빌려주되 아무것도 바라지 마라’, ‘돈을 빌려주고 고리대금을 얻지 말지어다’라는 문장도 구약성서에 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는 고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예외 구절도 있습니다만, 이자에 대한 반감이 지배적입니다. 이자나 고리대금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관은 중세 기독교 성직자에게도 이어졌습니다. 5세기 교황 레오는 “사고 파는 일을 하면서 죄를 범하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며 상업과 이윤, 이자를 교회법으로 막았습니다. 1139년 라테란 종교회의 포고령은 ‘가증스럽고 수치스러우며 만족할 줄 모르는 대금업자들의 탐욕’을 비난했습니다. 아무리 이자율이 낮아도 그랬습니다. 40여 년 뒤 교회는 고리대금업자를 파면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이 그때라면 은행들은 모조리 불탔을지 모릅니다.
교리 상관없는 유대인 富 축적
현실 비판적인 소설가들도 돈과 이자를 좋지 않게 그렸습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재산을 탕진해서 돈을 빌려야 하는 바사니오보다 더 악마화했습니다. 이유는 바사니오를 대신해서 돈을 빌리러 온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를 싫어했던 샤일록이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잔인한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을 기한 내 갚지 못할 경우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베어내겠다는 조건이었죠. 이야기의 결말을 여기에 길게 쓸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악마가 되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고리대금업(금융업)은 우수한 인종이 아닌 나쁜 인종이 하는 사악한 사업이라는 당대 유럽의 인식 때문에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금융업뿐이었고, 결국 유대인 금융기업이 세계 금융시장을 석권하게 됐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