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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문명, 수메르인(Sumerians), 우바이드 기, 우르크 기, 우르 제1왕조

Jobs9 2022. 2. 1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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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문명

수메르 그림-생명나무와 니비루의 신들

"수메르인"이란 말은 그들의 뒤를 이은 아카드인이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방에 사는 사람을 부르던 말이었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웅 상 기가(ùĝ saĝ gíg-ga, 음성학적으로 uŋ saŋ giga) "검은 머리 사람들" 이라고 불렀고, 그들의 땅은 키엔기르(Ki-en-ĝir) "수메르말을 쓰는 사람들의 땅" 이라고 불렀다

수메르(Sumer)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으로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지역이다. 수메르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수메르인은 대략 기원전 5,500년에서 기원전 4,000년 사이부터 수메르 지방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수메르 문명이 가장 융성했던 때는 기원전 제3천년기로, 역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이 1000년의 기간을 크게 초기 왕조 시대(2900?~2350? BC), 아카드 왕조 시대(2350?~2150? BC), 우르 제3왕조 시대(2150?~2000? BC)의 세 시대로 구분한다.

그 후 기원전 2000년 쯤에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 즉 아라비아에서 온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이 수메르 지방을 점령하고 고대 바빌로니아를 세움으로써 수메르 문명은 국가 형태로서는 완전히 사멸되었으나, 수메르 종교와 문화의 흔적이 바빌로니아인 · 아시리아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 및 문화 집단들의 신화와 종교 그리고 문화 속에 남아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도

'티그리스(Tigris)' 강과 '유프라테스(Euphrates)' 강의 두 강 사이를 의미하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방은 두 강의 홍수 범람 덕분에 비옥하고 농사에 적합한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물과 식량이 풍부한 지역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기 시작했고 BC 6천년 경부터 신석기 문명이 형성되어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할라프(Halaf)', '자르모(Jarmo)', '하수나(Hassuna)', '사마라(Samarra)'를 중심으로 '할라프 문화(Halaf culture)'와 '하수나 문화(Hassuna culture)'가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BC 5천년경 기존의 할라프 문화와 하수나 문화와는 비교가 안되는 고도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갑자기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방에 나타났다. 이들은 스스로를 '검은 머리의 사람들(uĝ saĝ gig-ga)'이라고 불렀지만 훗날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방을 차지하게 되는 '아카드인(Akkadians)'들이 자신의 남쪽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던 '수메르인(Sumerians)'라는 말로 알려지게 된다. 수메르인이 어디서부터 이주해 왔는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천문학 지식과 달력, 문자, 기호, 도시 건설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바이드 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원 (始原), 수메르 (Sumer)의 초기 ‘우바이드’ (Ubaid)

'수메르 문명(Sumerian Civilisation)'의 첫 번째 시기인 '우바이드 기(Ubaid period, BC 6500년 ~ BC 3800년)'는 이라크 남부의 '우르(Ur)'의 부근에서 발견된 유적의 지역명으로부터 유래하였다. 우바이드 기는 BC 3300년부터 BC 3100년경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청동기 사용이 시작되어 석기와 청동기가 병용되는 금석 병용 시대가 시작되었다. 우바이드 기는 밀, 보리 등의 경작과 양, 염소, 소 등의 가축 사육이 시작되었고 바퀴 발명과 구리 주조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채색 토기를 수반한 펴묻기와 니그로풍의 여자 토우가 있고 신전을 중심으로 한 작은 규모의 도시도 나타났다. 본래 수메르인의 종교적인 중심지는 에리두였으나 점차 인근의 우르크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첫번째 우바이드 기가 끝나게 된다. 또한 일부에서는 우바이드 기를 수메르와 무관한 서아시아 고대 민족의 별도 문명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수메르의 초기 도시의 탄생에 대해서는 수메르의 여러 기록에 신화로 남겨져 있다. 수메르 신화에 의하면 천신 '아누(Anu)', 대지의 신 '엔릴(Enlil)'과 함께 주요 신으로 숭배되는 물의 신인 '엔키(Enki)'가 다른 신들인 '아눈나키(Anunnaki)' 50명을 이끌고 내려와 최초의 도시인 '에리두(Eridu)'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후 최초의 5개 도시인 '바드-티비라(Bad-tibira)', '라르사(Larsa)', '시파르(Sippar)', '슈루팍(Shuruppak)'이 차례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대홍수로 인해 모든 문명이 사라졌는데 이 홍수 신화는 성경의 '노아의 방주(Noah's Ark)'를 비롯한 세계 홍수 신화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대홍수가 끝난 후 '키쉬(Kish)'가 탄생하여 다시 수메르 문명을 일으켜 세우게 된다. 

 

수메르 도시들은 정치, 경제, 군사, 생활등이 모두 신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신관 '엔시(Ensi)'가 통치하는 신전 국가였으나 수리권이나 농경지, 교역로 확보 등을 둘러싸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루갈(Lugal)'이라고 불리는 왕이 선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루갈이 최초로 등장한 '도시 국가(City-state)'가 키쉬로서 이후 23명의 루갈을 배출하면서 성쇠를 이어갔지만 마지막 왕인 아가(Agga)가 우르크의 왕인 '길가메쉬(Gilgamesh)'에게 패배하면서 키쉬가 멸망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아가와 길가메쉬의 싸움은 유명한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에 잘 나타나 있다. 

 

 

우르크 기

수메르 문명의 두 번째인 '우르크 기(Uruk period, BC 3100년 ~ BC 2900년)'는 수메르 문명의 대표적인 특징인 '지구라트(Ziggurat)'와 '설형 문자(Cuneiform, 쐐기 문자)'가 등장하면서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수메르 문명의 모습이 비로소 나타난다. '우르크(Uruk)'는 현재의 이라크 '알무탄나(Al-Muthannā)' 지구의 '아스-사마와흐(As-Samawah)'에서 동쪽으로 30km 지점에 해당하며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고대의 닐 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습지대에 위치하였다. 현재의 '이라크(아랍어 al-'Irāq)'라는 이름도 우르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우루크는 AD 1912년 독일의 율리우스 요르단(Julius Jordan)이 이끄는 발굴단이 처음 발굴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World War I, AD 1914년 ~ AD 1918년)'으로 잠시 발굴 작업이 중단되었고 이후 AD 1928년부터 AD 1939년까지 두 번째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세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우르크는 최대 인구가 5~8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렇게 밀집된 인구가 하나의 도시 국가를 이루면서 전문 관리와 군인, 노예 제도가 등장하여 본격적인 계층화 된 사회를 이루고 군왕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수메르 신화에 따르면 우르크는 태양과 정의, 법의 신인 '우투(Utu)'의 아들, '메쉬-기-앙-가세르(Mesh-ki-ang-gasher)'가 건설한 도시였지만 메쉬-기-앙-가세르의 아들인 '엔메르카르(Enmerkar)'가 사실상의 창건자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엔메르카르는 수메르 문자의 발명자라고도 한다. 

 

이후 우르크는 루굴반다(Lugalbanda)와 두무지(Dumuzi)가 차례로 통치한 후 길가메쉬(Gilgaméš)가 4번째 왕으로 즉위하여 키쉬를 무너뜨리고 수메르 도시 국가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길가메쉬에 대해서는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가 적힌 점토판이 발굴되면서 세상에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우르크는 총 12명의 왕을 배출하며 수메르 도시 국가들을 지배하였으나 마지막 12번째 왕인 루갈키툰(Lugal-kitun)이 우르의 메산네파다(Mesannepada)에게 패배하면서 수메르 도시 국가의 패권은 이제 우르에게 넘어가게 된다.

 

 

초기 왕조 시대

 

BC 2900년 경부터 본격적인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대대적인 도시 혁명이 일어났고 많은 수메르 도시 국가들이 세워졌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최초 5개 도시(에리두, 바드-티비라, 라르사, 시파르, 슈루팍)와 우르크에 이어서 '우르(Ur)', '움마(Umma)'와 같은 도시 국가들이 건설되었고 북부에는 '키쉬(Kish)'와 '니푸르(Nippur)', '아다브(Adab)' 등이 형성되었다. 

 

수메르 신화에 의하면 수메르인을 지배하는 패권은 우르크에서 다시 우르와 '라가쉬(Lagash)'로 차례로 옮겨갔다고 한다. 다만 니푸르의 도시신인 엔릴이 각 도시 국가에서 숭배되면서 니푸르가 수메르의 종교 상의 중심이 되었다. 수메르 도시 국가들은 계속해서 늘어나자 서로 분쟁이 발생했고 이후 병합이 이루어지면서 영토 국가로 발전하는 '초기 왕조 시대(Early Dynastic Period, BC 2900년 ~ BC 2350년)'에 접어들었다.

 

 

우르 제1왕조

 

우르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페르시아 만(Persian Gulf)'으로 흘러들어가는 하구에 위치하였는데 현재는 해안선의 상승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사라졌으나 영국의 고고학자인 찰스 레너드 울리(Charles Leonard Woolley)에 의해서 AD 1922년부터 우르 유적이 대대적으로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특히 우르 유적 중 16기가 왕가의 묘로서 금·은 세공과 보석을 박은 머리 장식품, 빗, 귀걸이, 가슴 장식품, 하프, 7현금, 2마리 당나귀가 끄는 썰매, 황금그릇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며 수메르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설형 문자로 기록한 많은 점토판 덕분에 수메르의 신화와 역사가 단편적이나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우르의 지구라트는 보존 상태가 가장 좋으며 '성경'의 바벨탑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우르크의 패권을 무너뜨리고 메산네파다가 창건한 '우르 제1왕조(First Dynasty of Ur)'는 170여년 간 지속되다가 BC 2463년 경 멸망하게 된다.

 

 

아다브 시대

 

수메르 유적의 기록 상으로 가장 먼저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수메르 전체를 지배한 사람은 '아다브(Adab)'의 루갈-안네-문두(Lugal-Anne-Mundu)라고 한다. 지금의 이라크의 '텔로(Tello)'와 '니푸르(Nippur)' 사이에 위치했던 아다브의 왕인 루갈-안네-문두는 수메르 기록에 의하면 BC 25세기 경 《세계의 네 모퉁이의 왕(수메르어 lugal-an-ub-da-limmu-ba)》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지중해로부터 '자그로스 산맥(Zagros Mountains)'까지 이르는 메소포타미아 전부를 90년간 통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다브의 성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루갈-안네-문두가 죽자 곧바로 붕괴되었다.

 

 

라가쉬 제1왕조

 

아다브의 짧은 성쇠 이후 수메르의 패권은 라가쉬가 차지하게 되었다. 라가쉬는 전설상의 군주인 엔헨갈(Enhengal)에 의해 건설된 도시로서 우르크, 우르, 니푸르와 함께 번영을 구가하기 시작했고 특히 근처의 '이신(Isin)', '기르수(Girsu, 지금의 텔로)'를 점령하고 세 도시를 수로로 연결하면서 도시 국가를 넘어선 영토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이후 라가쉬의 '에안나툼(Eannatum)'이 니푸르, '악샤크(Akshak)', 라르사, 우루크를 포함한 수메르의 전부를 정복하였고 특히 이웃한 움마와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쟁 기록이다. 라가쉬의 지배도 오래가지 않았는데 BC 2400년 경 라가쉬 왕의 우루카기나(Urukagina)가 신관과 관리의 부정을 혁파하고 부당한 과세를 바로잡는 개혁을 추진했으나 이로 인해 반대파의 원한을 사면서 치세 7년만에 움마의 루갈-자게-시(Lugal-zage-si)의 공격으로 폐위되고 만다.

 

 

움마 시대

 

움마는 라가쉬와의 오랜 국경 분쟁을 벌일 정도로 강성한 도시였다. 비록 라가쉬의 에안나툼에게 패배했지만 루갈-자게-시가 왕이 된 후 절치부심하여 BC 2400년경 마침내 라가쉬의 우루카기나를 폐위시키고 '라가쉬 제1왕조(First dynasty of Lagash)'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루갈-자게-시는 남아 있는 수메르 도시들도 모두 정복하여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전체를 25년 동안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움마의 지배도 오래가지 않아 BC 2350년 경 '아카드 제국(Akkadian Empire)'에게 멸망당하면서 수메르의 초기 왕조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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