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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리 악명, 맛없는 영국요리, 청교도 금욕주의

Jobs9 2022. 1. 1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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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리 악명

우선, 영국은 지리적 한계로 식재료 풀이 부실했고 향신료 사용이 미비했으며, 요리 문화 자체가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식문화로 만들어졌다. 이는 종교 문화와 결부되면서 더욱더 강해졌고 금욕적인 식문화를 미덕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요리에 정성을 들이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게 되었다. 

산업 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영국의 국민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층이 탄생한 것은, 영국 요리가 변화할 수 있었던 찬스인 근대화 시기에도 이를 저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시 이주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하여 그나마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미약했던 전통 농촌사회에서의 식문화마저 상실하고 이를 회복, 유지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또한,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시작해서 빅토리아 시대까지 이어진 금욕주의를 무조건적으로 강조하는 교육제도는 열악한 식문화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권장하고 합리화하게 되었다.

여기에 추가로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의 경제는 극도로 침체되어, 근현대시기마저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전후 영국의 식문화는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전쟁을 겪었던 세대는 보급에 의지하는 식생활을 꾸려 나가며 열악한 수준의 악독한 음식들을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먹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영국은 별로 좋아지지 않는 경제 속에서 싸고 질이 나쁜 음식만이 나돌았고 영국인들에게 이러한 식생활은 점차 당연시되어 갔다. 전후 보급은 1954년 끝났지만 어디까지나 제도의 종결이며 그 이전과 이후의 시기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긴 세대가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 이는 '영국의 식문화'를 안 좋은 쪽으로 바꾸고 고착화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36]

심지어 제이미 올리버의 학교급식 개조 프로그램 중에 등장한 급식사는 너겟을 튀기는 것 이상의 요리가 지나치게 손이 많이 간다면서 눈물을 보이는 장면마저 등장한다. 즉, 그 이상의 조리에 대해서는 경멸을 넘어서서 불필요함을 주장하고 있기까지 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렇게 요리를 하는 과정마저도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는 수준이니,[37] 노력과 정성도 없이 요리가 맛있어지리라 생각하는 것이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시작부터 막장이었던 환경 등 선천적인 요소를, 여러 중간과정을 통해 더더욱 막장으로 몰아가며, 막장 속의 막장으로 틀어박히길 1000년 넘게 이어진 결과가 바로, 요리 문화의 완전사멸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영국 특유의 청교도 금욕주의는 근대 영국 식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데에 일조했다. 프랑스 요리를 비롯한 세계 여러 요리들의 발전 과정을 보면, 사치스러운 풍조와 화려한 식문화에 대한 특정 계층의 열의가 전반적인 식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일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프랑스 요리가 아주 좋은 예시인데,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 서민들의 식문화는 지금의 프랑스 요리처럼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혁명 전엔 귀족들의 고급 식문화와 사치스러운 풍조가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식문화를 보다 고급스럽게 만들었고, 이게 혁명으로 붕괴되자 귀족 문화를 본받아 자신들을 돋보이게 만들고 싶어했던 상공 계층 및 부르주아들에게 전파되었으며 차차 근대 이후에는 전국민에게까지 확산되어온 결과물이다. 한국에서도 궁핍했던 시절을 거쳐 70~80년대가 되자 늘어난 중산층들이 경양식 요리를 찾음으로써 외식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역사가 있고 비슷하게 2000년대 초반 패밀리 레스토랑 붐이 있어서 이러한 식문화가 정착하고 발전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영국은 상류층과 서민 사이를 잇는 중간자 역할을 해야할 젠트리, 요먼 계층들이 대부분 청교도들이었기 때문에 청교도 특유의 금욕주의에 따라 식문화를 사치스럽게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산업혁명 시기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기술의 발달로 식재료의 전국적인 유통과 국가간 수출입이 서서히 가능해지는 시기가 되어도 영국에서는 사치스러운 식문화 풍조 자체가 생성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돈없는 서민들에게까지 기술 발전의 혜택이 돌아갈 시기는 아니었기에 전세계의 풍부한 식재료를 끌어다모을 재력을 갖춘 계급들이 나서서 해줘야 하는데 금욕주의 풍조는 이때까지 이어져 식문화를 천대하는 경향은 여전했기 때문. 이로 인해 영국의 인도음식 침투도 영국 현지인들이 나서서 진행한 것이 아니고, 영국으로 이민을 온 인도와 파키스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청교도 금욕 문화가 널리 퍼졌기에 영국 기독교인들은 금요일엔 금육, 일요일은 교회에 가기 전까지 단식하는 교리가 있었는데, 이런 교리는 선데이 로스트와 피시 앤 칩스가 성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8] 여기에 한발 더 가서 영국 가정의 음식은 일요일에 엄청난 양의 고기를 구워서 그날 저녁에 먹고 남은 고기와 밀가루 기반의 요리들로 그 주의 메뉴를 편성하는 식으로 발전되었으며, 이의 여파가 다름아닌 셰퍼드 파이 와 파이 앤 매시, 샌드위치 등이 영국의 가정식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됐다고 피력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재료가 밀가루, 한번 구운 고기, 감자, 버터 및 제철 채소 등으로 제한되니 나올수 있는 결과들도 한정적이였다고 풀이할 수 있다. 영국 요리에서 유별나게 스튜계열 요리가 적은 이유도 염장고기 조리의 산물이며, 가정이든 군이든 재료의 다양성이나 조리방식이나 생계 패턴이나 종교적 문화로 인해 상당히 경직적이고 요리 전반의 고착화를 불러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종교적인 규제의 발생 원인 중에는 지리적 요인이 결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장 이슬람권에서 돼지고기를 터부시하는 이유 중에 규율이 만들어질 당시 돼지 사육 환경이 열악했고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영국도 지리적 환경이 화려한 식문화를 일구기 좋은 환경이었다면 굳이 이를 종교적인 근거를 대며 제약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당장 영국에서 건너간 청교도들이 개척한 미국의 음식 문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현재는 물론 과거에도 영국 이상으로 종교의 영향력이 막강한 사회였는데도, 그리고 미국 요리 자체가 영국 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도 미국 요리가 맛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종교의 영향력이 덜한 북동부 미국 요리보다 아직도 종교가 강한 영향을 행사하는 남부 미국 요리가 더 맛있다고 평가를 받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당장 치느님이 탄생한 곳이 미국 남부다(...). 반대로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는 음식 문화 면에선 영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즉, 종교는 어디까지나 음식 문화에 영향을 주는 부수 요인일 뿐, 주 요인은 지리와 기후 같은 자연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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