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三位一體, Trinitas 트리니타스
그리스도교에서 성경적으로 또한 신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리이다. 하나님은 본질에서 한 분이시며 위격(位格, 고대 그리스어: ὑπόστασις 휘포스타시스)에서는 세 분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삼위일체에 대해서 동방교회는 본질에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되는 신비를 지지했고, 서방교회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 동일본질로 한 분 하나님이 되는 신비를 지지하며 신학적 관점의 차이를 보였다.
구약성경
구약성서는 여러 구절에서 삼위일체를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났고, 신약성경에서는 여러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문구가 증거되었다.
나지안조스의 그리고리오스와 같은 교부들은 계시가 점진적이었다고 하면서 "구약성서는 아버지를 공공연하게, 아들은 더 모호하게 선언했다"고 하며 "아버지의 신격이 아직 인정받지 못했을 때에는 분명히 아들을 선포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창세기 18장과 19장은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본문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18장의 세 사람은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 삼위일체 하느님이었다.
복수 형태
구약성서에서는 복수형 히브리어인 엘로힘(אֱלֹהִים)이 하느님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된다. 또 아래와 같은 본문들은 "우리"라는 복수 인칭 대명사를 사용한다. 전자와 후자는 두 개 이상의 것들을 분명하게 지칭하는 히브리어이므로 하느님의 복수적 측면을 나타낸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이 복수형으로 지칭하는 구절이 있다.
메시야 예언
아래는 이사야 9장과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 이사야 9,6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곳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 다니엘 7,13-14
다음의 본문들은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본문으로 비춰진다.
이리로 가까이 와서 내 말을 들어라. 처음부터 나는 숨어서 수군거리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 바로 현장에 나는 있었다." 이제 주 야훼께서 당신의 영을 주시어 나를 보내신다.
— 이사야 48,16
주 야훼의 영을 내려주시며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 이사야 61,1
신약성경
요한은 요한1서에서 "하느님이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계명을 지키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한 그것을 증거하는 분이 성령이라고 시사하고 있으며, 그 셋은 하나라고 명확히 함으로 삼위일체론을 뒷받침하는 구절을 기록해 놓았다.
기독교의 경전 중에서 요한의 복음서에서도 그리스도의 선재와 성령의 오심을 설명하여 삼위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역사
기독교회에서 삼위일체론의 초기 기원은 그리스도론(기독론)의 확장에서 시작되었다. 막 태동되었던 기독교에게 70년 유대 전쟁에서 다른 유파가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바리사이파 유대교와 인성을 강조하는 에비온주의, 신성의 영적 요소만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의 등장으로 기독교 뿌리를 흔든 자극이 되었고, 육체를 가지신 제2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논리적인 설명인 신학이론이 필요했다. 이 즈음에 형성된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그리스도론과 그 그리스도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설명인 삼위일체가 등장하였다. 삼위일체는 점차 발전하여 이 세상을 설명하는 세계관과 신학적 지침으로서 기독교에 중요한 교리가 되었다.
사상적 개념으로는 기독교 초기의 환경이었던 유대교, 다신론, 영지주의 등의 배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로 보내졌고, 아들이 이 땅에 존재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후에도 함께하시는 주, 즉 기독교가 고백하는 주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요청되었다. 특히 영지주의의 유출설과 마르키온주의의 이원론은 그리스도론을 뒤흔드는 사건이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학적 개념이 필요했다. 이 새로운 개념은 흔히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호모우시우스라는 예수와 성부가 동일 본질이라는 관념을 더욱 발전시키고 논리적으로 체계화 시켜 삼위일체로서 확정했다. 니케아 공의회 이전부터 교부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던 호모우시우스의 “동질적이고 하나의 실체로 된 아들과 아버지”라는 관념에 도전하여 삼위일체를 부인한 아리우스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 의하여 파문되었다.
공의회의 결정 이전에 1세기 사도 교부인 로마의 클레멘스의 삼위 언급 즉 "하느님의 사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심, 성령으로"라고 고백하는 문헌과 성육신 이전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를 받아들이는 기록이 있다. 사도 교부인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도 이미 존재했던 세례의 문구와 요한복음서를 활용하여 삼위 개념을 언급했다. 2세기를 맞으며 기독교 변증가들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틀을 신학적으로 마련하고자 애썼다. 로고스 개념을 활용하여 유스티아누스에서 타티아누스, 안디오키아의 테오필루스로 이어지며 발전하였다. 2세기의 신학자 이레니우스의 경세적 삼위일체론의 등장과 이후 초대 기독교 전승을 기록한 사도전승에서 이미 삼위일체 개념을 따라 서품되는 감독자의 기도문이 있으며, 그 후 3세기 신학자 히폴리투스와 테르툴리아누스의 삼위일체론을 바탕으로 4세기 공의회의 결정이 이루어졌다.
삼위일체의 개념이 4세기 즈음에 고안되었다고 보기도 하는데, 일부 종교 학자들은 삼위일체설이 기독교의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고, 또 이는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초기 기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며, 기독교 선교 이전 플라톤이 주장하던 성 삼위일체의 개념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른 학자는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은 고대 이집트, 힌두교를 비롯한 고대 신앙의 영향을 받아 혼입된 교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재는 대다수의 기독교 종파들이 삼위일체를 중심적인 교리로 이해하고 있다. 요한의 복음서 14장에서 설명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를 통하여 자신이 곧 하느님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성부의 독생자로서 성부와 영원한 관계에 있다는 것과, 성령도 하느님으로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하느님은 '절대단독주체 (Absolute Singleness)'가 아니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하나이며 이를 통하여 예수는 삼위일체의 그 자체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삼위일체가 모든 기독교 종파의 주요 교리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니케아 신경과 보편교회의 세계공의회 전통을 거부하는 회복주의 계열의 일부 교파에서는 비성경적 논리에 불과하다며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기도 한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의 확정이 압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에서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은 삼위(3 Persons, 세 위격, 세 신격, 세 분, 三位)로 존재하지만, 본질(essence)은 한 분 하느님이라는 교리이다.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교회에서 구약이라고 부르고 있는 타나크는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인 삼위일체가 나타나며, 신약성경 2고린 13:13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라는 표현에서 삼위일체가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후대 교회에서 사용하였다. 또 신구파를 막론한 대다수의 기독교는 삼위에 대한 개념이 요한 복음서 등에서 간접적으로 암시함(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표현이 자주 나옴)을 주장하며 옹호하고 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기원후 200년경 라틴 신학자인 테르툴리아누스가 신을 설명하기 위해 트리니타스(trinitas)라는 말을 만들어낸 게 그 시초다. 그리스도교 찬송가는 주로 삼위일체를 세 행으로 꾸며 성부, 성자, 성령에 각각 한 행씩 배당한다. 구약성서에는 삼위일체의 '예고편'이 있다. 아브라함 족장을 방문한 '사람 셋'은 '주'라고도 지칭되는데, 일부 그리스도교도는 이를 가리켜 삼위일체가 아브라함을 방문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성자가 예수라는 세속의 형태로 태어나기 훨씬 전이다. 동방정교회의 화가들은 아브라함과 이 '구약성서의 삼위일체'를 여러 차례 그림으로 표현했다.
교부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하느님이 "세 위격" 안의 "한 본질"이라는 정식을 확립했다.
그리스 교부들은 성부의 단일기원(Μοναρχία)를 주장하면서, 성자와 성령의 위격적 존재의 기원을 공통본질에 두지 않고 성부의 휘포스타시스에 둔다. 대표적으로 나지안조스의 그리고리오스는 "동일본질이시기에 각 분이 하느님이시며, 성부의 단일기원으로 인해 한 분 하느님이시다."라고 말했다.
나지안조스의 그리고리오스에 따르면, 하나님에 관한 말씀은 삼위일체에 관한 말씀으로서 "빛으로부터(성부), 빛(성자), 빛 안에서(성령)"를 포괄한다. 즉, "간결하고 단순하게 하나님에 관한 교리"이다.
다양한 해석
삼신론: '세 인격의 세 하느님'이라는 이론이다.
양태론(modalism): 하느님이 시대에 따라 성부·성자·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한 인격의 한 하느님'이라는 이론이다. 간단히 말해서 구약의 시대에는 성부로, 신약의 시대에는 성자로, 신약 이후에는 성령으로 활동한다는 주장이 양태론적 이론의 일례이다.
종속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온전히 하나인 주체이나, 성자와 성령은 성부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양자론 : 양자론은 하느님이 예수를 양자로 삼았기 때문에,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기독교 전통
교회력을 지키는 교회들은 대부분 성 삼위일체 주일을 정하여 삼위일체인 하느님을 기념한다.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와 일부 개신교(루터교, 성공회) 등의 예절인 십자성호 및 성호경은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삼위일체가 포함된 신조
아타나시오 신경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영국 성공회 39개조 신조
칼케돈 신경
교파별 견해
찬성 견해
삼위일체 찬성 교파와 교단은 대부분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구약성경, 신약성경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보편교회 시대의 신학적 기준을 사도적 지침이라 여기고 수용하는 교단들이다. 동방정교회와 천주교회, 개신교회 교단들인 루터교회, 개혁교회, 성공회교회, 침례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오순절교회 등이다.
삼위일체의 요소는 성부, 성자, 성령인데 마태오 복음 11장 27절과 마르코 복음 10장 22절에서 예수는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다고 하는 데서 비롯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 마태오의 복음서 11장 27절 (공동번역)
또한 28장 19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가르쳤고, 요한 복음서 14장은 이를 더욱 구체화하여 서술하고 있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8장 6절에는 대구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곧 창조주와 동일함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느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이고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8장 6절 (공동번역)
반대 견해
삼위일체 반대 교단들은 대부분 19세기 이후에 등장한 교파로, 현재 주류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전통을 배교라 여기고, 초대교회에서 보편교회 시기를 지나며 현재 교회가 배교로 단절되었으며, 삼위일체 역시 단절의 이론이므로 이를 거부하는 것이 단절을 잇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니케아 신경과 보편교회의 세계공의회 교리를 거부하는 회복주의 성향들로 여호와의 증인,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 유니테리언 등이다.
구약성경 신명기 6장 4절에서 나오는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하나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라는 구절과 신약성경 마태오의 복음서 4장 10절에서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지 않았느냐?"라는 구절 등 성서의 여러 면을 살펴보면 삼위일체와 관계되지 않는 듯한 내용도 담겨져 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유니테리언, 그리스도아델피안 등의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종파는 이 점 또한 지적하며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삼위일체의 일부분이었다면 "오직 그분에게만"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에게"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슬람교
이슬람교에서는 유일신 사상을 가지며, 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하여 혐오하는 반응이 그들의 경전 코란에 나와 있다.(수라 4:171, 5:73) 이러한 유일신 사상이 전투적이며 호전적인 이슬람을 나타내기 위한 기본적인 뼈대로 보기도 한다.
삼위일체 논쟁
만일 성부가 한분이고 성자는 또 다른 분이라면 그리고 성부도 하나님이고 성자도 하나님이라면 한 하나님이 아니라 두 하나님이 게시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성부께서 참으로 한 하나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Novatian
초대 기독교가 갖고 있는 초대의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과연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가? 그는 정말 하나님이신가? 만일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라면 창조주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성부와 성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성자가 하나님이고 성부도 하나님이라면 둘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와 관련된 문제는 초대교회 수 세기 동안 쟁점이 되어왔다.
이것을 삼위일체 논쟁(새 Trinitarian Controversy)이라 부른다.
1. 삼위일체 논쟁의 역사적 배경
주후 약 90년부터 140년 사이에 활동했던 속사도들은 비록 소위 신학적 의미의 삼위일체에 관한 분명한 교리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었다. 삼위일체 개념은 그리스도의 선재성이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학문적으로 좀 더 체계화시킨 변증가들에게 오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저스틴에게 성육신 이전에 선재하신 로고스는 “하나님의 첫아들”이며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 다음 되시는 분”이다. 로고스는 하나님 다음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즉 지혜와 권능과 영과 능력에서 아버지에 종속된다고 보았다. 그의 삼위일체는 종속설(subordinationism)과 비슷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변증가들의 견해이다.
변증가들에 의하여 상당히 발전된 삼위일체 개념은 교부들에 와서 좀 더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이레니우스는 변증가들 보다 상당히 진보된 신관을 갖고 있었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 이전에 존재하셨으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영원하시다. 아버지를 계시하시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한 하나님 창조주가 계시는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하는 분이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이레니우스는 아들이 아버지와 같이 영원하시다고 가르쳤다. 인류에 관련된 하나님의 모든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요약”된다는 것이다. 이레니우스는 성자를 성부와 영원히 공존하시는 분으로 이해했다. 이 로고스는 “참 하나님이며 참 하나님”이시다.
터툴리안은 서방교회에서 가장 훌륭한 삼위일체론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삼위일체의 한 본성(one substance), 본질(nature) 그리고 삼위(three persons)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신학자이다. 사실 그의 가르침이 325년 니케아 회의 그리고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 때에 신조의 기초가 되었다. 비록 터툴리안이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니지만 삼위일체 교리의 윤곽을 제공한 최초의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2. 단일신론
우리는 삼위일체 논쟁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된 오류들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과 관련된 오류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된 오류들의 전체적인 윤곽을 제시하면 다름과 같다.
(단일신론) Monarchianism
(양태론적 단일신론)
Modalistic Monarchianism
(역동적 단일신론)
Dynamic Monarchianism
or Adoptionism
Patripassianism
(성부 고난설)
Sabellianism
(사벨리안주의)
3. 아다나시우스 대 아리우스 논쟁
동방에서 진행된 삼위일체 논쟁은 약 318년경 알렉산드리아 교회 알렉산더 감독과 그 교회 장로 아리우스 사이에서 발생한 논쟁에서 발단되었다.
서방의 양자론자들과 같이 아리우스는 하나님의 단일성에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성부 혼자만 시작이 없으신 분이며 성부만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라고 보았다. 성자는 본질적으로 성부와 구별된다. 아들은 시작이 있으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위해 로고스를 창조하셨다. 이런면에서 아리우스 사상은 헬라의 중기 플라톤주의를 반영한다. 결국 이 로고스는 무에서(ex nihilo)창조된 첫 피조물(first born of creature)이며,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이지만 성부과 같은 동질(homoousios)이 아니고 유사 본질(homoiousios)이라는 것이다.
아리안 주의
Anominism(급진적인 아리안 주의)
아리안 주의
1) 아들은 피조물이다.
2) 아들은 시작이 있다.(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다.)
3) 아들은 아버지와 교통이 없고 아버지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4) 아들은 변형할수 있고 죄 지을 수 있다.
반(semi)아리안주의 - 성자의 본질은 성부의 것과 유사
아리우스 논쟁이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한 교회지도자가 출현했으니 그가 바로 328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직을 계승한 아다나시우스(athanasius)이다.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373년에 세상을 떠난 아다나시우스는 니케아 신조의 기초를 세우는데 공헌했으며 그것을 보호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의 이름은 니케아 정통 신앙의 동의어가 되었다.
아다나시우스는 아리우스가 오리겐을 오해했다며 아리우스주의를 전투적으로 공박하였다. 사실 아리우스는 오리겐의 로고스 사상을 잘못 이해했다. 아다나시우스가 볼 때 오리겐의 영원성은 곧 성부와의 동등성을 의미하였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와 동질이라고 선언한 니케아 회의 신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는 321년 알렉산드리아 회의를 소집가혹 아리우스 및 그 동료들을 정죄하고 출교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우스를 따르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리우스의 견해가 다신론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유일성을 보호해 주는 것처럼 보였고 아리우스가 하나님이 물질계의 창조자가 될 수 없다는 헬라 사상을 주저함 없이 수용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또는 로고스를 신적 존재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니코메니아 감독 유세비우스는 전적으로 아리우스를 지지하고 나섰고 수리아에서는 가이사랴 감독 유세비우스도 아리우스 편으로 기울어졌다. 아리우스는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의 도움을 받아 은신처에서 있으면서 편지를 통해 자신의 입당을 계속 확산시켜 나갔다.
4. 니케아 회의 신조
콘스탄틴 황제는 아리우스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325년 5월 니케아에 회의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에는 약 300명의 감독들이 참석했다. 니케아 회의는 의견을 달리하는 세 부류의 집단이 주도하고 있다. 첫째가 니코메디아(Nicomedia) 감독 유세비우스가 이끄는 작은 그룹으로 아리우스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었고, 두 번째는 당대에 가장 학식있는 사람으로 알려졌던 교회사가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가 이끄는 작은 그룹으로 내심으로는 아리우스의 견해를 동정하면서 중도적 입장을 취했으며, 세 번째 그룹은 알렉산더를 중심으로한 대부분의 대표자들로 반아리우스 입장을 갖고 있었다.
니케아회의에서 처음 작성된 니케아 신조는 아리우스의 견해를 닮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콘스탄틴 황제의 황실감독 호시우스의 개입으로 니케아 신조에 동일이 삽입되었다. 이것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아리우스를 지지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교회사가들은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에 섭리하시고 개입하신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니케아회의에서 아리우스파는 정죄를 받았지만 그의 영향력은 시들지 않고 확산되었다. 심지어 아리우스 세력은 황실을 등에 업고 영향력을 확대 하였다.
5. 니케아회의 이후의 아리우스 논쟁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 전개된 아리우스 대 아다나시우스 논쟁은 3단계로 대별할 수 있다. 제 1기는 콘스탄틴 대제의 사망시기는 337년 5월 22일 까지이며, 제 2기는 콘스탄틴의 아들들이 황제의 직위에 오른 후부터 콘스탄티우스 1세가 죽던 361년 까지, 그리고 제 3기는 줄리안이 즉위할 때부터 데오도우스 1세의 통치하에 아리우스가 완전히 제압될 때까지로 대별할 수 있다.
아다나시우스 니케아 정통주의가 발전되고 더욱 체계화 된 것은 3인의 갑바도기아인(Cappadocans) 때문이다. 이들은 대 바실(Basil the Great; 330-379) - 가이사랴 감독,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335-394) - 대 바실의 동생,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330-390)등이다. 바실은 삼위일체를 위한 인정된 문구 즉 한 본질(substance, ousia)과 삼위(three persons, hypostasis)를 확정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373년에 아다나시우스가 세상을 떠나자 바실은 동방에서 정통 신앙의 수호자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바실과 두 그레고리는 삼위일체를 설명하기위한 용어 사용 방법에 일치를 보았다. 그것은 곧 “한 본체안에서 세 위격”이라는 용어이다.
6. 콘스탄티노플 회의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379년 황제에 오른 다음에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국교로 만들었다. 콘스탄틴 대제 이래 동로마에선 최초의 열렬한 서방신학 지지자였던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를 소집하여 니케아 신조를 재확인하였다. 이 회의를 통하여 아리우스파는 완전히 정죄를 받은 셈이며 독 아리우스파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삼위일체 논쟁, 도올
삼위일체는 기독교 교리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리입니다. 기독교가 체계를 확립하고 신학적 기초를 가져야 하고, 또 정경을 마련해야 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논의되고 정립된 교리가 바로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이 교리가 콘스탄티누스의 중재 하에서 교부들의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통해서 성립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유니테리언주의를 강조하는 부류에 의해서는 철저하게 비판받는 교리
종교개혁의 한 부류였던 재세례파는 회복주의(restorationism) 신앙운동을 기치로 가톨릭교회의 권위로 결정된 일체의 신앙신념을 거부하고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 운동을 추진하였습니다. 멘노 시몬스로 대표되는 메노나이트와 같은 건전한 재세례파 운동은 어쩌면 루터나 칼뱅이 실패한 개혁적 요소들을 더욱 더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제 4의 종교개혁 운동을 창출했습니다. 저들에 의해서 강조된 회복주의는 그 후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구 교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로 19세기 미국의 회중주의를 중심으로 유니테리어니즘(Unitarianism)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니테리언주의는 성경의 사상으로 돌아가자는 이 회복주의 사상에 의거해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의 진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종교회의를 통해 결정한 교리이기 때문에 비정통적이고, 따라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믿으며 예수와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는 반삼위일체(anti-trinitarianism) 사상을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이런 유니테리언 전통에서 삼위일체 논쟁을 설명하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선생님은 삼위일체든, 유니테리언적 유일신론이든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이런 식의 논의로 끌고 가는 것 자체가 기독교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가 가르치고자 하는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고백하는 신앙은 헬라철학적 사유의 표방일 뿐 기독교 성서의 계시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기독교의 삼위일체 정식의 무용성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견해는 교회 역사에서 첫 번째로 나타난 신학적 정식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고백하는 기독교신앙에 큰 파장을 주고 계십니다. 이런 파격적인 사유의 전환을 두고 김경재교수가 선생님을 한국의 루터와 칼뱅이 될 수 있다고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의 당당하신 주장은 정말로 한국교회가 선생님을 한국 기독교의 개혁자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그 입장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제시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실존적 결단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진술들은 지금까지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한 우리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선생님을 21세기 종교개혁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무언가 그에 대한 변증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 실존적 계기 앞에 다소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삼위일체 논쟁에 대한 기독교 신학적 변증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도올의 삼위일체 논쟁 이해
선생님의 책, <기독교 성서의 이해>를 읽으면서 느낀 첫 느낌은 “역사 거꾸로 보기”를 시도한 포스트모던 사학의 한 유형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포스트모던 사학이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줌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의 주관화에 처해질 위험을 가지고 있음을 역사학자들은 지적합니다. 역사는 역사가의 해석에 의해 기술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올바른 역사는 역사가의 양심에 의해서 구축될 수밖에 없다고 콜링우드는 강조했습니다. 그 만큼 역사를 다루는 것은 종교에의 숭고를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엄숙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역사관과 역사 이해라는 항목으로 좀 더 깊이 다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학자로서의 양심을 거스르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역사는 항상 양면이 있게 마련인데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에서 드러난 모든 사실들의 이면으로 돌아가서 기독교의 독선을 비판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서 기독교 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 하고 계십니다. 토머스 쿤의 통찰력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것이 패러다임 전이(paradigm shift)의 한 유형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새로운 패러다임은 완전한 귀납적 증명을 통해서 보편화됨으로서 비로소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선생님의 기독교 역사 이해가 기독교 신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유에 대한 논의의 과정과 광범위한 인식적 합의를 거쳐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과 더불어 선생님께서 설명하신 삼위일체 논쟁의 요점들을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선생님께서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오늘의 기독교 모습이 결정되었으며, 그로 인해 기독교의 진실한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을 지도 모른다고 설명하셨습니다(90-91). 이는 광의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의 영향에 의한 기독교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삼위일체 교리로 인한 기독교의 헬라화를 지적하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처럼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니케아 종교회의는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된 본질(homoousios)이 아닌 다른 본질(heteroousios)을 가졌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 사회에 파생된 신학적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였습니다. 이 회의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선생님은 특별히 아리우스의 주장의 본질을 설명하고자 애쓰셨습니다. 선생님은 아리우스를 철저한 신플라톤주의자로 보고, 그의 신론은 “인간 예수의 리얼한 모습과 인간과 신의 합일을 꾀하는 신비주의와 하나님의 절대유일한 초월성이 종합된 매우 포괄적인 체계”로부터 나온 것임을 역설하시면서, 이런 아리우스의 주장은 반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아리우스의 사상이 니케아 신경과 그 후 아타나시우스의 활동으로 인해 이단으로 정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은 유세비우스를 포함하여 동방교회의 보편적인 사상이었으며, 나중에 유니테리언주의의 사상으로까지 발전하여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음을 설명하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마도 선생님께서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지목되고 그 후 기독교사상에서부터 멀어졌지만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앙이 가지는 이론적인 문제점을 간직한 사상으로서 아리우스의 사상과 그 영향들을 강조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진술한 내용들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고자 하는 본질은 그 후에 설명하신 삼위일체론의 무의미성에 대한 논지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성경의 내러티브는 삼위일체와 상관이 없으며, 그 교리가 보여주는 헬라철학적 존재론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삼위일체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우시아’(ousia, 본질), ‘하이포타시스’(hypostasis, 위체) 등의 용어는 기독교와 무관한 헬라철학적 사유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철학적 유일신도 아니고 삼위로 계시는 삼위일체적 존재일 수도 없으며, 단지 유대인들과의 계약적 관계, 예수와의 관계적 존재로 계시는 절대적인 하나님일 뿐이라는 것이 선생님의 궁극적 이해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런 설명을 토대로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앙의 문제를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이해
삼위일체의 정식은 니케아 종교회의(325년)를 거쳐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381년)에서 공식적으로 확립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어느 한 시점에서 기독교사상의 헬라철학화를 위한 과정 속에서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의 종교회의들은 기독교 사상 속에서 300년 이상 지속되어져 오던 신(神) 존재론적 논점들을 하나의 통일체로 묶어내고자 했던 최종적인 종합의 결과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사상은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계속된 신 존재에 대한 고백들을 학문적이고 이론적 형태로 구체화하는 과정 속에서 정립된 매우 학문적이고 신학적인 결과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잘 아시듯이 삼위일체 사상의 원형은 마태복음 28:19과 고린도후서 13:13에서 나타납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세 개념의 병치가 삼위일체 논쟁을 불러일으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09). 그러나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삼위일체적 개념들의 병치가 삼위일체라는 철학적 사유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에도 역사적으로 계속 존재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명 속사도교부로 일컫는 초기교회의 교부들의 글에서도 이런 삼위일체적 개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스(“우리가 한 분 하나님, 한 분 그리스도, 우리에게 부어진 은혜의 한 성령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Mart. Polyc. 46:6), 바르나바스(“성부 하나님, 영이셨다가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 성령...”), 이그나티우스(“창세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고,” “유일무이하신 성부로부터 와서 성부와 함께 있다가 성부에게로 돌아갔다.” Magn. 6:1; 7:2)) 등의 기록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삼위일체적 정식에 가까운 내용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그나티우스와 같은 경우 경세적 삼위일체적 개념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쨌든 성경의 저자들과 그 직후의 속사도들의 신학적 인식 속에서 삼위의 개념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특히 이런 진술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선재성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빌립보서나 골로새서에서 예수의 동등본질(빌 2:6-8) 및 선재성(골 1:15-17)을 설명하는 문맥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역사적 인식이 가능한 내용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과 속사도들의 시대로부터 이미 예수의 선재성을 받아들이고, 삼위의 개념을 병치시키는 기독교 신학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당시에는 신학적 사상으로 확립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사회에서 서서히 뿌리를 내리면서 그레코-로망 사회와 충돌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교부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 신념들에 대해서 변증할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변증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몇 가지 분야에서 신학적인 틀을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재하시는 분으로서의 예수를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로고스 기독론은 이렇게 해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기독교 변증가들은 요한복음의 사상을 통해서 그것을 더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스티누스, 타티아누스, 테오필루스 등은 로고스 기독론을 통해서 예수의 선재성을 설명하였으며, 이런 사상은 아테나고라스에 의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신적인 영의 일체성과 관능으로 말미암아 성자는 성부 안에 있고 성부는 성자 안에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은 성부의 지성이자 말씀(νους κὰι λογος)이다.”라는 표현으로 로고스 기독론의 의미를 구체화했습니다. 이것은 유일신을 신앙하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진리를 훼손시키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의 관계를 지적으로 만족스럽게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기인한 신학적 결과였습니다. 아테나고라스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을 인정하고 그들의 권능이 하나이고 질서에 있어서 구별되어 있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을 비닌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Supplic. 10:3). 이러한 삼위일체적 신앙은 이레네우스에 의해서 매우 구체화됩니다. 사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가 로고스 기독론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이전에 이레네우스는 삼위일체에 대한 경륜적 개념을 확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과 본성에 있어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시지만 … 우리의 구속의 경륜에 따르면 성부와 성자가 계신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여기에 성령을 넣으면 완전한 삼위일체적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Dem. 47).
이레네우스는 헬라적 사유를 좋아하지 않았던 기독교 교부였습니다. 그는 헬라철학적 사유에 대항해서 기독교사상을 철저하게 확립하고자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테르툴리아누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 사상을 확립하는데 있어서 이레네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의 사상적 체계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삼위일체 교리는 단지 헬라철학적 사고 체계를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신플라톤주의가 편만했던 사회에서 그 이론에 대항하고 기독교사상을 변증하고자 했던 기독교 사상가들에 의해 서서히 확립되었던 매우 중대한 사유였다는 것입니다. 이레네우스는 그런 과정에서 삼위일체가 기독교 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부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이 계시하는 유일신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한 신학적 딜레마를 후에 경륜적 삼위일체로 불리는 개념을 통해서 해결함으로써 삼위일체론 신학의 한 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경륜적 삼위일체의 개념으로부터 삼위일체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작업이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최초로 삼위일체(trinitas)란 말을 사용한 그는 하나님은 한 본질(substance)속 세 위격(personae)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 용어들은 결국 양태론자들로부터 하나님을 세 분으로 설명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고, 많은 신학적 논란을 야기시켜 군주론(monarchianism), 양태론(modalism, 하나의 군주론이지만 후에는 삼위일체 사상의 중요한 이론이 됨, 칼 바르트도 여기에 속함) 등에 의해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는 사상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테르툴리아누스 이래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 삼위의 문제 등과 관련된 삼위일체론 논쟁은 기독교 신학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신학적 과제로 남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기독교 성서의 이해>에서 다루신 삼위일체론 논쟁에는 이런 1-3세기의 과정들이 생략된 채 4세기 알렌산드리아에서 아리우스에 의해서 제기된 논쟁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의 논쟁으로 인해 니케아 종교회의가 진행되었고 니케아 신경(325년)이 작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논의의 출발이 아리우스의 새로운 신앙적 노력의 결과가 아닌 것은 선생님께서도 잘 아십니다. 제가 1-3세기의 역사를 간단하게나마 진술한 이유는 4세기의 니케아 신경이 나오게 되는 역사신학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리우스가 질문한 예수의 ‘다른 본질’(heteroousios)에 대한 주장은 성경과 속사도시대의 원형적 삼위일체 고백과 변증시대에 변증가들에 의해 제기된 로고스 기독론, 그리고 이레네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해서 설명한 초기 삼위일체 정식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역사속에서 제기되었던 여러 문제들 중에서 예수의 선재성에 대한 철저한 질문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기독교 신학은 예수와 하나님의 동등한 본질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아리우스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유일성이 훼손되기 때문에 예수의 본질이 하나님의 본질과 동등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아리우스의 주장은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알렉산더와의 논쟁을 통해서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성부와 성자의 동일 본성이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우스가 성자의 피조성을 강조하게 된 것은 기독교사상을 철저하게 헬라철학으로 승화시킨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가 강조한 종속설에 대한 사상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오리게네스의 신과 로고스에 대한 이해는 삼위일체론 사상에 있어서 매우 독특합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존재 자체이고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특별히 신은 그 속에 로고스를 가지고 있는데 신은 그 로고스를 영원으로부터 방출하여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부와 로고스는 동일하게 영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만이 근원을 갖지 않은 존재, 곧 자존의 신이며, 로고스는 그에 의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신 자체는 아닌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로고스는 신의 본질이지만 신 자체는 아닌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성부만이 유일자로서 나뉠 수 없는 단자(monad)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로고스, 혹은 성자는 홀로 자존하시고 시작이 없는 존재인 성부와 동등될 수 없다는 사유가 생겨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게네스는 로고스 역시 영원하며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상상할 수는 없다고 말함으로써 로고스의 영원성을 아울러 강조했습니다.
이런 매우 심오한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적 사상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신학적으로 두 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하나가 알렉산더와 그의 부제였던 아타나시우스였으며, 다른 한 파가 아리우스였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우파에서는 신과 로고스의 동등한 영원성을 강조하였고, 한편 좌파는 로고스 곧 선재한 아들은 신에 의해 피조되었다고 하여 로고스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오리게네스의 신학을 넘어섰습니다. 이 두 진영 간의 치열한 논쟁이 결국 니케아에 이르게 되었고, 니케아에서는 그 두 진영 간의 논쟁을 포함해 삼위일체 논쟁이 품고 있던 1-4세기의 모든 쟁점들을 검토한 후에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등본질)로 결론을 내리고 니케아 신경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독교의 삼위일체 논쟁사는 이 주제가 성경의 시대로부터 제기되어져 온 중요한 주제였으며, 헬라철학화된 그레코-로망 사회에서 기독교사상의 변증적 필요에 의해 발전된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많은 신학적 사색과 논의를 거쳐 니케아 신경과 그 후 결정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론이 난 것임을 알려줍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상존하는 쟁점들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논의는 계속되고 있으며 해석학적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대신학에 이르러서도 이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계속되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몰트만의 삼위일체론, 판넨베르크의 삼위일체론 등으로 이론적 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학은 한 가지 분명한 개념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시대 이래로 기독교 신학이 견지해 온 이 삼위일체 신학을 당대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이 난해한 형이상학적 담론을 아우르고 있는 교리를 백성들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관련된 것입니다.
물론 삼위일체 교리와 같은 것을 백성들에게 제시해야 할 당위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존재론적인 개념이 아닌데 신플라톤주의 시대도 아닌 오늘날 그것을 굳이 그렇게 제시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선생님의 말씀이나, 삼위일체 신학은 이미 살이 있는 신의 의미를 해석하는 힘을 잃어버렸다고 역설하는 파울 틸리히의 주장이나, 나름대로 의미는 있는 제안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삼위일체 신학을 단순하게 무의미화 시킬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초기 기독교 사상 전통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신적 실체의 삼위적 원형에 대한 하나의 신학 사상으로 여전히 역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제거해 버리는 순간 성경으로부터 속사도시대와 변증적 교부들의 시대를 통해 일관되게 흐르고 있던 기독교 신앙 정신은 상실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기독교의 변질로 또 다시 질타의 대상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3-4세기의 기독교 사상가들이 그렇게 했듯이 오늘 21세기 신학자들은 그 사상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욱 더 구체화시키려는 신학적 작업을 해야만 하며 그것을 통해 현실적 의미 전달이 가능한 삼위일체 사상을 창출해야만 할 것입니다. 20세기의 신학적 거장들이 그 시대에 그 작업들을 추진했고, 오늘 우리 시대에는 이 시대의 신학자들이 그 작업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별히 아타나시우스가 강조했듯이 삼위일체 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이라는 기독교적 구속론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포괄적인 논의의 틀에서 결정되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께서도 삼위일체 신학을 단지 헬라철학화된 의미 없는 교의로만 제시하지 않으실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돌프 폰 하르낙은 에서 기독교 교의들을 비헬라화 작업을 통해서 철저하게 해부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 교의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과 사랑의 윤리적 교훈에 있으며, 그 나머지 교리들은 다 껍데기(husk)일 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기독교의 헬라화는 사상에 대한 변증적 과정의 산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사상가들은 반드시 헬라화시킨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역동적이고 치열했던 고대사의 흔적들이 보다 더 폭넓은 관점에서 제기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삼위일체 신학에 나타난 기독교 신앙 고백의 의미도 헤아릴 수 있는 계기가 창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선생님이 지적하는 것처럼 삼위일체 신학은 비성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에 어렴풋하게 계시된 신의 존재성에 대한 철저한 물음과 성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성경적 논의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학의 입장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