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의 본질적 차이, 역사의 진보와 방향성, 역사 속 행복의 문제 등 광범위한 질문을 주제로 한 연구를 하고 있다. 2009년과 2012년에 ‘인문학 분야 창의성과 독창성에 대한 플론스키 상’을 수상했고, 2011년 군대 역사에 관한 논문으로 ‘몬카도 상’을 수상했다. 2012년 ‘영 이스라엘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에 선정되었고, 2018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인류의 미래에 관해 기조연설을 했다. 2017년에는 《호모 데우스》가 독일 유력 경제지인 〈한델스블라트〉가 꼽은 ‘가장 통찰력과 영향력 있는 올해의 경제 도서’에 선정되었다.
기로에 선 21세기 사피엔스를 위해 인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탐색한 ‘인류 3부작’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출간되어 1,600만 부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21세기 사상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인류 3부작’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선행 연구로, 하라리의 옥스퍼드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이다. 이제 역사와 미래를 바라보는 새롭고 대담한 관점을 제시하는 하라리 사상의 원류를 일별할 차례다.
리뷰
전 세계 모든 지역 사람들은 놀라운 신기술에 접근할 수단을 가지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우리에게 그것으로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지의 여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 p.10~11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추가로 노동을 더 하려고 결정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면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수확량이 많이 늘어날 거야. 흉년 걱정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거야. 아이들이 배가 고픈 채로 잠자리에 드는 일도 없을 거야.’ 그것은 이치에 닿았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계획은 그랬다. (…)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추가로 생산된 밀은 숫자가 늘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때문에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쟁기질을 도입함으로써 마을의 인구가 1백 명에서 110명으로 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중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굶어죽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열 명이 있었겠는가?
--- p.133~134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는 위대한 신이나 자연법칙에 의해 창조된 객관적 실재라고 늘 주장해야 한다. 사람이 평등하지 않은 것은 함무라비가 그렇다고 해서가 아니라 엔릴과 마르두크가 그렇게 명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평등한 것은 토머스 제퍼슨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신이 그렇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이 최선의 경제체제인 것은 애덤 스미스가 그렇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불변의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 p.169~170
역사는 교차로에서 교차로로, 뭔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이 경로를 택했다가 다음에는 저 경로로 진입했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인류의 운명뿐 아니라 아마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혁명은 서유럽에서, 아프로 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커다란 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던 지역에서 말이다.
왜 과학혁명은 하고많은 곳을 놔두고 하필 그곳에서 일어났을까? 어째서 중국이나 인도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어째서 실제보다 2세기 앞이나 3세기 뒤가 아니라 두 번째 천년의 한중간에 일어났을까? 우리는 모른다. 학자들은 열몇 가지 이론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그럴싸한 이론은 없다.
--- p.346~347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산업혁명은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불과 몇십 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고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 가능한 화석연료가 고갈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세상에는 에너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 p.480
머나먼 인류의 시원에서 사이보그까지,
한 권으로 읽는 인류의 탄생과 진보 그리고 미래!
작년과 올해 전 세계 출판계와 언론을 들썩이게 한 책이 있다.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는 젊은 이스라엘 학자의 책 한 권이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세계뿐 아니라 브라질 등의 남미와 중국과 대만 아시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올해의 책에 선정하거나, 출판상을 수여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북클럽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추천하였고, 재레드 다이아몬드, 데미안 허스트, 헨닝 망켈 등 여러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명사들이 주저 없이 읽기를 권했다. 인류의 기원과 발전, 진화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인류학,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 행복에 대한 논고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유발 노아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에 바쳐진 찬사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주목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한국나이로 갓 마흔에 접어든 이 젊은 저자는 이미 유튜브, TED, MOOC 등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 전 세계 8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저자가 보여주는, 역사를 읽는 포괄적인 시선과 방대한 이야기를 정교하게 펼쳐내는 놀라운 문장력, 그 문장력을 압도하는 비상한 이론과 깜짝 놀랄 만한 통찰 그리고 절묘한 재치와 대학교 1학년도 읽을 수 있는 책, 전 세대가 공감하고 읽을 수 있는 쉬운 책을 쓰고 싶었다는 열정까지, 이것들의 훌륭한 조화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의 팬으로 만들었고, 《사피엔스》는 이 모든 것을 녹여낸 유발 하라리 사고의 정수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인간은 마침내 신이 될 것인가
《사피엔스》는 약 135억 년 빅뱅으로 물리학과 화학이 생겨나고 약 38억 년 전 자연선택의 지배 아래 생명체가 생겨나 생물학이 생기고,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이 발전하여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개척하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이 거대한 수만 년의 역사를 관통하여 인간의 진로를 형성한 것으로 세 가지 대혁명을 제시한다. 바로 약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약 12,000년 전의 농업혁명, 약 500년 전의 과학혁명이다. 과학혁명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이고, 농업혁명은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지만, 인지혁명은 여전히 많은 부분 신비에 싸여 있다. 끝나지 않은 발견과 빈약한 사료들을 근거로 펼쳐내는 상상의 언어들은 놀랍도록 이성적이며 빈틈이 없어 독자들을 몰입하게 한다.
저자는 역사 발전 과정의 결정적인 일곱 가지 촉매제로 불, 뒷담화, 농업, 신화, 돈, 모순, 과학을 지목했다. 인지혁명의 시작으로 불을 지배함으로써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라선 인간은 언어(뒷담화)를 통해 사회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수렵채집인에 머물던 인간은 농업혁명을 통해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를 경험한다. 늘어난 인구를 통제하는 강력한 무기는 종교, 계급, 권력 등 허구의 신화들이다(물론 수렵채집인 사회를 지배한 것도 역시 허구의 신화들이었다). 농업의 발달은 부의 증가와 정착생활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돈을 맹신하게 되었으며, 돈의 맹신은 사회적 모순을 야기한다. 500년 전 과학혁명은 우리에게 이전 시기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보였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19쪽) 40억 년간 자연선택의 지배를 받아온 인류가 이제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인간의 지적설계로 만들어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사피엔스》는 이런 중요한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이 있는지, 지금이 전망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한다.
평원에는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다
저자는 이런 장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모순의 순간순간을 통해 역사에 결코 자비가 없음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이 세 혁명을 통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질주해왔지만, 과연 “이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19쪽)라고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여섯 종의 인간 종이 살던 평원이 마치 눈에 보일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이후 호모 사피엔스 종이 어떻게 유일한 승자로 지구상에 살아남게 되었는지 아느냐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사실은 이렇다. 2백 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왜 안 그랬겠는가? 오늘날에도 여우, 곰, 돼지 등 수많은 종이 동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26쪽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가 사라진 평원에는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고,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대형 동물군들이 홍수에 쓸려가듯 사라져버렸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강제로 복종한 소, 돼지, 양, 개 등 몇몇 종만이 개체수를 늘릴 수 있었지만, 산업적으로 강제사육 당하는 그들의 삶은 비참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다. 유럽 사람들에게 돈은 죽음도 불사할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신대륙을 찾아 떠난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활용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했다. 노예산업에 돈을 투자한 평범한 유럽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단지 무관심하고 무지했을 뿐이다. 이런 자본은 서구 세계의 과학과 문화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고, 이제 인간의 과학은 불사(不死)의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약속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기술 발달도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예견한다. 부자들은 영원히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 세상. 이런 미래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말이다.
“앞으로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생리기능, 면역계, 수명뿐 아니라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전공학이 천재 생쥐를 만들 수 있다면 천재 인간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일부일처제 밭쥐를 창조할 수 있다면 평생 배우자에게 충실하도록 유전적으로 타고난 인간을 왜 못 만들겠는가?”
-570쪽
우리는 수렵채집인 선조들보다 더 행복할까
한 권의 책으로 역사의 모든 것을 재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피엔스》에서 한눈에 본 인간의 역사는 매 순간순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생각할 거리로 넘쳐난다. 가진 것은 얼마 없었지만 기대는 높았던 옛사람과,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지만 좀처럼 만족할 수 없는 현대인 중 누가 더 행복한지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는 특히 흥미롭다. 저자는 ‘인간이 지금보다 더 강력했던 적은 없지만, 우리가 선조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메시지 중 하나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진일보한 현대 인류는 왜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이전 시기에는 타인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다면 이제 사피엔스는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있다. 권력도 돈도 기술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이것들을 추구한다. 위험한 만큼 매혹적인 기술은 신성모독 그 자체이다. 저자는 “우리는 스스로 신이 되려하는 길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인본주의, 민족주의 등의 의미들은 망상일 뿐이고, 개인의 환상을 집단적 환상에 맞추어 행복을 찾으려 해도 결국 이것은 자기기만일 뿐이라고 우울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일말의 여지를 남긴다. 행복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행복에 대한 가능성은 더 많이 열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고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우리가 아는 바로는 인간의 주관성을 그리워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552~553쪽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 인지혁명 '가상의 실제'를 믿는 능력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7만 년 전~3만 년 전 사이에 사피엔스 종에 출현한 사고-의사소통(언어)의 변화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하라리는 이를 인지 혁명이라 부른다. 사피엔스뿐 아니라 인류의 다른 종들과 수많은 영장류들도 목소리로 내는 언어를 사용한다. 심지어 원숭이는 더 많은 바나나를 얻기 위해 동족에게 거짓 정보 (거짓말)를 주기도 한다. 고래, 코끼리도 다양한 소리로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침팬지는 우두머리 (알파 수컷)가 껴안고, 만지고, 털을 골라주는 등의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통해 우호적인 동맹을 이끌며 집단을 형성한다. 이는 우두머리가 도전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알파 수컷은 결코 직접적인 완력만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알파 수컷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무리의 신뢰를 얻고 이를 통해 전체 집단을 지배한다. 침팬지 무리는 때때로 다른 무리를 학살하거나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51p) 그러나 이런 식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신뢰 구축으로는 많아야 50 마리 정도의 집단 형성이 가능하다.
험담 이론은 집단 내에서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공유하며 어떻게 집단을 형성-유지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들은 서로 시기 질투하기도 하고, 우정 어린 눈빛을 보내기도 하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공감하기도 하며 누군가를 계속 험담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피엔스의 언어는 현존하는 것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험담은 그 사람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상을 말하고 믿는 능력은 추상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고 이는 전설, 신화, 원시종교를 믿게 만드는 접착제로 작용했다. 침팬지와는 달리 사피엔스 종은 서로 험담을 하며 더 큰 집단을 결속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결과 험담으로 결속시킬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 명'(52p)에 불과하다. 300 명이 넘는 직원을 가진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20~30 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더 큰 집단을 통제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집단 내 언어로만은 부족하다. '사피엔스가 이 임계치(150명)를 넘어 마침내 수십만이 거주하는 도시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허구의 등장에 있다.'(53p)
하라리는 '가상의 실제'를 믿는 것이 인지 혁명의 본질이라 보았다. 사피엔스가 믿는 '가상의 실제'는 교역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훨씬 큰 집단을 형성하게 해 준 신뢰의 끈이었다.
하라리는 '가상의 실제'를 믿는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출발점이었다고 본다. 200만 년 동안 호모 에렉투스의 석기 제작기술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는데 인지 혁명으로 사피엔스는 짧은 기간 동안 유전자의 변화 없이 다음 세대로 바뀐 형태와 지식을 전달하고 네안데르탈인은 하지 못했던 대규모 협력체계를 만들어 집단 사냥에 성공했다.
3만 년 전 사피엔스 유적지에서 발견된 조개껍데기는 장거리 교역의 증거다. 뉴기니, 북부 아일랜드 사피엔스들은 날카로운 도구를 만들기 위해 흑요석을 사용했다. 당시 흑요석은 400km 나 떨어진 곳에 산지가 있었다. 교역은 사피엔스만의 특이한 능력으로 이는 처음 보는 다른 집단을 신뢰하고 인류 생존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조개껍데기의 가치, 즉 '가상의 실제'를 믿지 않느나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 농업혁명 : 역사상 최대 사기극이라는 신선한 시각
사피엔스 종 대부분은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건강과 거리가 먼 고칼로리 음식에 끌리는 우리의 본능 (게걸스러운 유전자 이론) 은 이로부터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사피엔스 종은 15,000 년 전 개를 가축화했고 드물게 교역도 하며 넓은 지역을 이동하며 드물게 퍼져 살았다. 그들은 기후, 먹거리, 생물의 생장주기에 따라 거주지를 옮겼고 영양 섭취와 동식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수렵채집인은 후손인 농부들보다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걸리는 일이 적었으며, 화석 뼈에 나타는 증거가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키가 더 크고 신체도 건강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어린이 사망률이 높았던 탓에 평균 기대수명은 30~40 년에 불과했다. 출생 1 년 이내 영아사망률이 가장 높았고 이 시기를 지난 아이는 60 세 까지 살 가능성이 높았고 일부는 80 세 까지 살았다. (85p)
1만 년 전 즘 농업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생겨났다.(122p) 1 만 8 천 년 전 즘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온화해지며 밀의 생육환경이 좋아졌다. A.D 1세기에는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부가 되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농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지역은 자생한 가축이나 식물이 작물화/가축화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주장한다.
농업 혁명은 집단의 식량 총생산량을 늘렸다. 사피엔스는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고정된 주거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는 비, 추위, 위험한 동물로부터 고대 인류를 보호해주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 식량 생산 증가에 따라 인구는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계층의 분화는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하라리는 여기서 '농업 사회가 보다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웠다는 이야기는 환상'(124p)이라고 주장한다. 하라리는 농업혁명으로 종족 번식(DNA 복제)에 크게 성공한 사피엔스 종의 대부분은 오히려 선대 수렵채집인 보다 더 열악한 식사를 해야 했고 전염병에 더 쉽게 노출되었으며 노동으로 혹사당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고 주장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밝혔듯이 훗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초토화시킨 유럽인들의 '균'은 농업 혁명 당시 가축화된 동물들로부터 유래했다. 천연두, 홍역, 조류인플루엔자 등 인류를 수 천 년 동안 괴롭힌 전염병은 농업으로 인한 높아진 인구밀도와 가축화로부터 유래했다.
식량 총량이 늘어남으로써 인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계층 분화가 가속화되면서 잉여생산물을 착복하는 방대한 지배 계층의 등장했다. 그들은 잉여생산물로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누렸고 정치, 문화, 철학, 예술 등은 이런 토대 위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농부들은 더 힘들게 오래 일했고 밀, 쌀, 감자 등에 의지하며 가뭄이나 기후 변화에 더욱 취약한 토대 위에 살아야 했다. 종의 성공을 번식과 총생산량을 기준으로 보면 농업 혁명은 인류 문명을 꽃피게 한 사피엔스 종 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농업 혁명 당시에 살았던 대부분의 사피엔스 종들의 행복도를 측정한다면 그 이전 시대보다 훨씬 열악했을 것이라 하라리는 주장한다. 굉장히 도발적인 주장이다.
가축화로 소, 말 , 돼지, 닭 등은 번식에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단순히 DNA 복제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종이라 할 수 있지만 가축화되어 도살당하고 자신의 본성에 맞지 않게 길러지고 노동으로 혹사당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오늘날에도 가장 비참하게 사육되고 도살되는 종이 닭, 돼지 종이다. 이들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앙이었다. 143~147p
오늘날 닭은 지구에 250 억 마리 넘게 번식했다. 가축화를 위해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닭들은 아주 끔찍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도살된다. 닭들은 사피엔스의 도움으로 유전자를 널리 퍼뜨려 종의 번식에 성공했지만 과연 성공한 종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도시 국가의 출연과 신화와 종교
수렵채집인들을 묶어주었던 공통의 신화는 느슨했고 제한적이었다. 이것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공통의 사냥을 하고 처음 보는 집단과 원시적인 교역을 가능하게 해 주었지만 수 천, 수 만 명이 거주하는 복잡한 사회를 이어 줄 수 없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위대한 영웅과 신들에 대한 이야기, 즉 정교하게 짜인 신화였다.
인류 최초의 기록은 세금과 관련이 있다. 잉여생산물을 축적하기 시작한 지배계층이 훨씬 복잡해진 사회와 생산물을 통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생산물을 거둬들이는 일이었다. 문자를 읽고 쓰는데 비상한 재능을 가진 관료조직은 이렇게 탄생했다. 최초의 기록과 관료들은 모두 세금 부과와 획득 그리고 저장과 관련이 있었다. 역사상 최초의 기록은 수메르인의 세금 문서였다. 언어는 보다 정교해졌고 그들을 묶어준 신화는 국가의 통치수단이 되었다. 일정한 시기에 범람하는 나일강 유역의 도시들은 약 5,000 년 전 최초의 거대 왕국으로 통일되었다.
● 농업혁명 이후 인류 통합과 과학혁명 그리고 신이 되려고 하는 인류
인지 혁명과 농업혁명을 거쳐 국가의 형성까지 하라리는 쉴 새 없이 달려 나간다. 사피엔스 종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핵심은 인지 혁명으로 촉발된 '가상의 실제'를 믿는 능력이다. 이것은 인류의 다른 친척 종들을 제치고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가상의 실제'를 믿는 사피엔스의 능력은 언어의 발달과 함께 더욱 정교해지고 거대한 국가 단위의 집단을 만들게 해 주었다. 이것은 종교와 같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크기의 집단이 공통으로 믿는 신념을 만들어냈다. 사피엔스 역사에 신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애미니즘은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 중 하나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신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신과 관계를 맺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지구단위의 교역을 가능하게 해 준 돈-화폐에 대한 믿음은 바로 사피엔스의 상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라리는 주장한다.
● '빅 히스토리', 거대한 질문에 대한 방대한 답변
농엽 혁명 이후 사피엔스 종이 밟아 온 궤적들, 돈과 화폐, 전 지구적 제국주의의 잉태와 확산, 종교와 신념, 서양과 동양의 발전 양상 그리고 종국에는 달로 우주선을 쏘아 올린 과학혁명의 성과들을 빠르게 훑으며 하라리는 자신이 시작한 사피엔스 종의 역사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고찰한다. 인지 혁명과 농업혁명 그리고 국가의 형성과 이것이 과학혁명으로 이어지는 궤적은 매우 흥미롭다. 책을 덮으며 우리 자체이자 조상인 사피엔스 종이 겪어온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다. 책 후반부로 가면서 논의가 정리되지 못하고 많은 역사적 논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증이 취약한 부분 그리고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가는 느낌도 없지 않다.
유발 하라리는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큰 영감을 받아 [사피엔스]를 저술했다고 한다. [총, 균, 쇠]가 진화생물학, 동식물의 생장, 기후, 화석의 근거 등 방대한 자료와 예시를 통해 문명 간 극명한 발전의 차이를 보인 이유를 생태학적 우연에서 찾았듯이 하라리 역시 신체적으로 특별할 게 없었던 사피엔스 종이 같은 인류에 속해있던 친척 종들을 멸종시키고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과정을 긴 시간의 흐름 안에서 규명하려 했다.
대부분의 사회 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2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