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역설(obesity paradox)
심혈관질환은 국내 흔한 사망 원인의 하나이며, 비만은 관상동맥질환이나 심부전 등의 심장질환 위험을 증가시킨다. 비만에서 심장질환이 증가하는 원인은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대사이상 등이 많이 동반될 뿐만 아니라 비만 자체가 심장의 구조와 기능에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장질환이 발생한 환자에서는 비만이 동반된 경우 오히려 심장질환의 예후가 정상체중보다 더 좋다는 보고들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비만 역설(obesity paradox)이라고 부른다. 비만이 심장질환 발생에 미치는 영향 및 기전, 그리고 심장질환 환자에서 비만이 예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 비만이 심장에 미치는 영향
비만은 관상동맥질환, 심부전, 심방세동을 포함한 심장질환 발생의 독립적 위험인자이다. 이는 고혈압, 당대사이상, 이상지질혈증 등의 위험인자들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으며, 증가된 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여러 독성 혹은 염증성 매개물질이 혈류역학, 심장 구조 및 기능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매개물질로는 유리지방산, 디아실글리세롤(diacylglycerol), 산화질소 대사물과 같은 지방조직 관련 대사물질과 hsCRP, 사이토카인, 케모카인, 대식세포, TNFα 등과 같은 염증물질이 있다. 비만에서 만성적인 염증상태가 지속되면 이들 물질이 심근세포의 기능을 직접적으로 저하시키게 된다.
지방조직은 내분비조직으로 여겨지며 생리적으로 활발한 작용을 하는 여러 아디포카인(adipokine)들을 분비한다. 아디포넥틴은 지방조직에서 가장 풍부하게 분비되는 아디포카인의 하나로 항염증효과 및 인슐린 감수성을 증가시킨다. 비만과 당뇨병에서는 아디포넥틴이 감소되어 있어서 인슐린저항성과 산화대사를 증가시킨다. 이는 당 대사이상과 관련된 심근병증의 중요한 발생기전이 된다.
장에서 분비되는 펩티드인 그렐린(ghrelin)은 산화대사, 심장 아드레날린 활성의 감소, 심근세포의 세포자멸사 감소 등으로 심장 보호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렐린은 강력한 식욕증가 물질로 알려져 있는데, 비만인 경우 혈중 그렐린이 하향조절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내장뿐만 아니라 지방조직이 아닌 곳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도 심기능이상과 심장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추정한다. 심한 비만에서 심막내 지방축적이 좌심실비대 정도와 비례하고 좌심실벽 두께와 반비례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러한 지방조직 외 지방축적은 사이토카인 생성 장애, 레닌-앤지오텐신-알도스테론계와 교감신경의 과반응 등에 영향을 주며, 이로 인한 심장 기능 및 구조의 변화를 유도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만에서는 이러한 매개물질의 변화로 혈류량, 심박출량, 1회박출량(stroke volume)이 증가하여 심작업량(cardiac work)이 많아지며, 결과적으로 좌심실 확장 및 비대를 초래한다. 심실비대는 고혈압에 의해서도 발생하는데, 비만에서 고혈압이 더 잘 발생하고 그러한 경우 심장 구조 및 기능의 변화는 더욱 심해진다.
비만에서는 좌심실 뿐만 아니라 좌심방의 비대도 함께 관찰되는데, 이는 혈류량 및 이완기 좌심실 기능이상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비만에 동반되는 좌심방비대는 예후를 더욱 악화시킨다.
● 관상동맥질환(coronary heart disease)에서 비만역설
기본적으로 과체중과 비만은 심혈관질환의 유병률은 증가시키지만, 이미 확립된 심혈관질환이 있는 환자에서 체질량지수(BMI)를 포함한 비만지표(체지방, 허리둘레, 중심비만)가 높을수록 심혈관질환의 예후가 더 좋다는 비만역설 현상에 관한 연구들이 적지 않다.
한 메타분석에서는 과체중이나 비만인 사람에서 심혈관질환이 있을 경우 정상 체중인 경우에 비해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이나 전체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연구에서 BMI가 35~40 kg/m2인 고도 비만인 경우의 사망률은 더 증가했다고 하였다.
또 다른 메타연구에서는 심혈관질환에서 비만이 동반된 경우에 비해 심혈관질환 사망률이 감소하였으나, 이는 심혈관질환 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며 5년이 지나면 이러한 현상은 소실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BMI가 35 kg/m2 이상인 심한 비만이 있는 경우 장기간 관찰에서 사망률이 증가하였다.
정상체중이지만 허리둘레가 증가된 체형의 경우 심혈관질환의 예후가 가장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심폐능력이 떨어진 경우 사망률이 증가하지만 정상체중이면서 허리둘레가 증가되어 있어도 심폐능력이 정상인 경우 사망률이 증가하지 않아서 심폐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심혈관질환의 예후에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 심부전(heart failure)에서 비만역설
비만은 심장 구조와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며 심부전의 발생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심부전 환자에서 비만이 동반된 경우 심부전에 의한 생존율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나 역시 비만역설을 보여준다.
한 메타분석에서는 정상체중에 비하여 과체중과 비만인 경우 전체 사망률이 각각 16%, 33% 낮게 나타났으며 심혈관 사망률은 각각 19%, 40% 낮았다.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도 심혈관질환 사망률, 전체 사망률, 재입원율 등의 위험이 BMI가 낮은 경우 가장 높았고 과체중군에서 가장 낮게 나타났다.
전향연구에서는 급성 심부전 환자에서 고령, 좌심실 기능부전, 최근 발생한 심부전, 대사질환이 적은 경우, 심폐능력이 떨어져 있을 경우 등에서 비만역설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그러나 비만역설 현상은 BMI가 40 kg/m2 이상의 고도 비만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예후가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 심방세동(atrial fibrillation)에서 비만역설
심방세동 역시 비만에서 유병률이 증가한다. 이는 비만에서 동반되는 좌심방 비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비만에서 심혈관질환과 심부전 유병률이 증가하는데, 이 질환들은 심방세동 발생의 중요한 위험요소이다. 한 메타분석에 의하면 비만에서 심방세동의 위험이 5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혈압, 심혈관질환, 심부전 환자에서 심방세동 역시 비만역설 현상을 보여서, 한 연구에서는 심방세동에 의한 전체 사망률 및 심혈관 사망률이 과체중이거나 비만한 경우 약 50% 정도 감소한다고 하였다.
● 비만역설 현상에 대한 주의사항 및 가능한 기전
여러 심장질환에서 나타나는 비만역설은 그 기전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비만역설을 보인 연구에서 비만 지표로 사용된 BMI가 지방량을 정확히 대변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허리둘레나 체지방량을 지표로 보아도 비만역설 현상이 나타나므로, 측정편차의 문제만으로 치부하기가 어렵다.
비만역설 현상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먼저, 비만역설 연구에서 대상(정상체중, 과체중, 비만 등)에 따른 유전적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나, 사실상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비만하지 않은 대상들이 신체의 다른 이상 때문에 체중감소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각 대상군이 복용하는 약제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 또한 변수가 많아져서 확인하기가 쉽지는 않다. 실제로 당뇨병환자 대상의 연구에서 스타틴(statin)을 복용하지 않는 군에서는 심장질환의 비만역설 현상을 보였으나 스타틴 사용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비만역설을 설명하는 기전으로는, 우선 심부전 말기에 나타나는 심장 악액질(cachexia)이 비만환자에서 덜 하고, 비만한 경우 대사여유량(metabolic reserve)이 더 많기 때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또한 근육량이 많거나 근육강도가 센 경우 심부전 예후가 더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비만한 사람들에서 근육량이나 근육강도가 더 좋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 비만역설에 관한 국내 연구 결과
국내 연구결과를 보면, 2002년부터 2010년까지의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 중 30세 이상 100만명을 추출해 표본코호트를 만들어 비만에 의해 유발되는 고혈압, 당뇨, 심혈관계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BMI를 파악하고 이에 따른 사망 위험률과의 관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과체중인 경우(BMI 23~24.9)의 사망위험률을 1로 보았을 때, 중등도 비만인 경우(BMI 25~29.9)에 사망위험률이 0.86배 낮았다. 그러나 저체중인 경우(BMI < 18.5)는 2.24배로 증가하였고, 중증 비만인 경우(BMI > 30)에도 사망률이 증가하는 U자형 곡선 관계를 보였다.
즉 경도 및 중등도 비만인 경우에 전체 사망률, 심혈관질환 및 암에 의한 사망률이 낮아지는 역설적인 결과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 연령층보다 50세 이상의 고령층에서 더욱 현저하여, 저체중 환자에서 사망률이 제일 높았고, 중등도 비만에서 가장 낮았으며, 고도 비만에서 다시 증가하는 U자형 상관관계를 보였다.
● 요약
비만은 심장의 구조 및 기능에 변화를 초래하여 심장질환의 발생을 증가시키는 독립적인 위험인자이다. 여기에는 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여러 아디포카인의 변화와 비만에 동반되는 만성 염증 및 염증 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비만이 심장질환의 발생을 증가시키지만, 이미 심장질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환자에서 과체중이나 경도의 비만은 오히려 그 예후를 좋게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비만역설이라고 한다. 비만역설은 특히 고령이나 심폐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에서 더 잘 나타난다.
비만역설의 기전은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이에 대한 해석도 매우 조심스럽다. 앞으로 이를 더 잘 증명할 수 있는 대규모, 장기간의 전향연구가 필요하며, 특히 체중감량이나 운동을 통한 심폐능력 강화가 비만에 동반되는 심장질환 예후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암 환자도 '비만의 역설'…"뚱뚱할수록 암 수술 후 사망위험 낮아"
뚱뚱할수록 암 수술 후 생존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른바 '비만의 역설'이 암 환자에게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비만의 역설은 비만 그 자체가 질환이면서 다른 질환의 원인임은 분명하지만, 일부 질환에서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뜻에서 명명됐다. 관상동맥질환, 만성폐쇄성폐질환, 만성신부전 등에서 수술할 경우 비만 환자의 예후가 더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종환·박정찬 교수, 순환기내과 이승화 교수 연구팀은 비만 환자의 암 수술 후 사망 위험이 정상 체중이거나 마른 환자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2010년 3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받은 암 환자 8만7567명을 추적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이들 환자를 체질량지수(BMI)에 따라 18.5 미만인 경우는 저체중(2787명, 3.2%), 18.5~25 미만은 정상 체중(5만3980명, 61.6%), 25 이상은 비만(3만800명, 35.2%)으로 나눠 환자들의 수술 후 사망위험을 비교했다.
그 결과, 수술 후 3년 내 사망환자는 전체 환자의 6.4%인 5620명으로, BMI만 놓고 봤을 때 비만 환자의 사망위험이 가장 낮았다. 비만 환자의 경우 사망위험이 정상체중 환자보다 31% 낮았고, 저체중 환자보다는 62% 감소했다. 같은 비만 환자 중에서도 더 뚱뚱할 때 이 차이는 더 뚜렷했다. BMI가 30이 넘는 환자만 따로 추렸을 때 이들의 경우 정상 체중 환자보다 사망위험이 43% 낮았다. 암의 재발 위험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여 비만 환자의 경우 재발 위험이 정상 체중 대비 19%, 저체중 환자와 비교하면 16% 줄었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몇 가지 추론을 내놨다. 우선 체력적 부담이 큰 암 수술의 경우 비만 환자가 정상체중이나 저체중 환자보다 상대적으로 기력을 회복하는 데 용이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 비만 환자에서 보이는 우월한 수술 후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 역시 환자의 예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비만 환자는 여러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각종 검사와 검진을 자주 받는 만큼 암을 상대적으로 빨리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득이 됐던 것으로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결과가 비만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낙관하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또 비만에 따른 호르몬과 밀접한 유방암이나 부인암과 같은 여성암은 비만의 역설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암종과 병기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분석한 결과여서 향후에 보다 정교한 연구가 이어져야 비만의 영향을 정확히 평가내릴 수 있다”면서 “그러나 수술을 앞둔 암 환자의 체중이 적정 수준 이하라면 상대적으로 예후가 불량하다는 걸 입증한 만큼 이러한 경우 환자와 의료진 모두 주의 깊게 살펴보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최근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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