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 (不可知論, Agnosticism)
세계의 인식가능성을 부인하고, 인간은 의식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실재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반(反)유물론적 주장. 근대에 있어서의 대표자는 흄과 칸트인데, 두 사람의 견해는 불가지론의 2개의 형식을 드러내고 있다. 흄은 인간의 인식이 오로지 인상과 관념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상, 그것의 외부에 객관적 실재가 존재하는지는 간단히 알 수 없다고 한다. 칸트는 의식의 외부에 '물자체'(物自體)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진실한 모습은 인간에게 인식되지 않는다고 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러한 불가지론을 실천적 견지에서 반박하고 있다. 흄과 같은 논리에 대해서는 '사과가 존재한다는 것의 증명은 먹어 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칸트의 논리에 대해서는 어떤 인식에 따라 '어떤 자연 현상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에 성공한다면, 이 인식이 주관적 사고만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라는 것이 증명된다고 반박한다. 현대의 부르주아 철학도 계속해서 불가지론의 입장에 서 있다.
사물의 본질, 본체, 혹은 실재 그 자체를 인식하는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입장. 인지, 혹은 영지(靈智)를 뜻하는 그노시스(gnosis)에 대해 이를 반대하는 입장을 아그노시스(agnosis), 불가지론이라 한다. 19세기의 실증주의자 헉슬리, 스펜서 등이 처음 사용한 말로 알려져 있다.
불가지론은 그리스 철학의 소피시트(sophist)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시간을 계속해서 줄여나가면 날아가던 화살도 정지하게 된다거나, 순수한 공간 속에서 토끼는 거북이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Zenon's paradox) 등은 본질주의적인 인지론에 대한 근본적인 공격이다.
중세의 신학은 대표적인 불가지론이다. 가톨릭은 인간은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선험적으로는 알 수 있으나 그 본질은 파악할 수 없다고 하여 신성을 불가지의 영역에 놓았다. 신은 언제나 지금-여기(now-here)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no-where) 존재다. 신은 에피파니(epipany, 현현)라는 특수하고 순간적인 현상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근본적으로 신은 인간세계와는 다른 계에 속해 있으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18세기 이후로 불가지론은 주로 철학적 논의에 흡수되어 발전하게 된다.
회의주의로 유명한 흄은 <절대적 비연속성>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실재를 ① 무기적 세계 ② 유기적 세계 ③ 가치의 세계로 나눈 다음 절대적인 지식이 가능한 ①, ③과 달리 ②는 엄밀성을 결한 상대적인 세계라고 하였다. 여기서 ②는 일종의 불가지 영역이다.
현상학적 전통에 있어서 불가지의 영역은 불가피하다. 칸트의 '물 자체(things itself)'는 인간이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사물의 본질을 지칭한 개념으로 유명하다. 훗설 역시 인식에는 일상적으로 파악 가능한 독사(Doxa, 신념, 억설(臆說)) 외에도 근본 독사(Ur-doxa)가 있다고 하여 불가지를 인정하였으며,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 사르트르의 실존 등도 불가지를 감안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다.
감각적 경험만이 인식되고, 그 배후에 있는 객관적인 실재는 인식될 수 없다는 설(說). 그리스어 agnostos(알지 못하는)에서 온 말로서 참된 존재의 불가인식성에 관한 가르침이다. 감추어진 신(deus absconditus), 신적인 것의 초월성, 진리, 현실의 불가지성을 문제로 삼는다.
불가지론은 형이상학을 과학적 입장에서 거부한다.
일반적으로 사물의 궁극의 실재; 절대자, 무한자, 신은 알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영어로는 agnosticism. 이 말중의 <알 수 없다(agnostic)>라는 말은 T. H. 헉슬리가 1869년,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전한 아테네의 <알 수 없는 신에게(agnōstō theō)>라고 새겨진 제단에 언급되어 있는 자기의 입장을 말한 강연이 기원이다. 헉슬리 이외에서는 인간의 인식을 유한 것의 경험으로 제한하며, 무한하고 절대적인 신에 대해서는 학적인 인식은 있을 수 없으며, 단지 신앙에 의한 도덕적 확신을 이용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W. 해밀톤, 진화의 법칙으로 현상계를 설명해서 인식할 수 있는데, 상대적인 현상, 사실의 인식은 과학적으로는 사고되지 않는 실재하지 않는 힘, 즉 <알 수 없는 것(the Unknowable)>을 전제로 하고, 현상이나 사실을 그 <표명>으로 보는 H. 스펜서 등이 불가지론자에 속한다. 즉, 불가지론은 절대자, 무한자는 알 수 없거나(알 수 있는 것은 유한자, 상대자만이다), 이론적ㆍ대상적으로는 알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이론적 인식, 과학 이외의 인간의 태도에는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두 가지 형으로 나뉘어져 있다.
인도철학
인도에서는 오래전부터 일반적으로 진실은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즉 개념적 사고에 의해서는 파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인도의 신비주의자의 대부분은 동시에 불가지론자이기도 하였다. 가령 우파니샤드의 철인 야쥬냐바르키야는 아트만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며, 대승불교의 중관파의 논자 나가르주나(용수)는 세계는 불생불멸(不生不滅), 불일불이(不一不異), 즉 공(空)이며, 고정적 언어표현에 의한 진여의 파악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또한 종교실천상의 관점에서 다양한 세계의 것에 대한 판단은 쓸모없거나, 그런 판단을 정지하는 편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수 있다는 생각도 유력하였다. 가령 <잉어처럼 미끌미끌해서 잡기 어려운 의론>을 이용한 산쟈야 베라티푸타, 내세의 존재 등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답하지 않았던 석가 등은 그런 생각의 소유자였다.
① 초경험적인 것의 존재와 본질은 인식 불가능하다고 하는 철학상의 입장. ② 일반적으로 사물의 궁극적인 실재(절대자, 무한자, 신)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 ③ 세계의 인식가능성을 부인하고, 인간은 의식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실재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반(反)유물론적 주장. 이 같은 불가지론은 '신의 본체는 알 수 없다'는 중세의 신학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은 일종의 지적 직관(신비적 지식)인 그노시스(gnosis)에 의하여 신의 본체를 직접 알 수 있다는 그노시스 파나 본체론자의 주장에 대하여 그노시스를 부정하는 것이 불가지론이다. 로마 가톨릭은 '신의 존재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이성에 갖추게 되는 자연의 빛에 의하여 알게 되지만, 신의 본체 자체는 알 수 없다'고 하여 그노시스를 부정했다.
불가지론은 근세에 들어서,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 그 지력도 한정되어 있어, 세계 그 자체가 무엇인가를 알 수는 없다고 말한 철학설에 다시 등장한다. 즉 자연의 속성은 무한하지만, 그중에서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연장(延長, 物體)과 사유(思惟, 精神)뿐이라고 주장하는 스피노자의 설이나, 의식의 외부에 '물자체'(物自體)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진실한 모습은 인간에게 인식되지 않는다고 하는 칸트의 주장이나, 인간의 지식은 인상(印象)과 관념에 한정되어 있어 그것을 초월한 사항은 지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D. 흄의 주장도 어떤 면에서 불가지론이다.
'불가지론'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T. H. 헉슬리는 1869년의 저술 〈사도행전〉에서 agnosticism의 agnostic(알 수 없는)이라는 말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전한 '알 수 없는 신에게'(헬, 아그노스토 데오)라고 새겨진 제단에 대한 자기의 입장을 말한 강연이 그 기원이 된다. 이외에도 인간의 인식을 유한한 것의 경험으로 제한하며, 무한하고 절대적인 신에 대해서는 학적인 인식은 있을 수 없으며 단지 신앙에 의한 도덕적 확신을 이용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W. 해밀톤, '사람은 알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부정적인 회의론자의 입장을 고수한 H.스펜서 등이 불가지론자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