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Bob Dylan), 비틀즈(The Beatles), 롤링스톤즈(The Rolling Stones)
미국에서 건너간 록 뮤직이 영국에서 가다듬어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시대의 정신이라 불리던 포크의 왕자와 조우했다.
처음 비틀즈와 롤링스톤즈가 미국에서 건너가 애들설리반쇼에 나가고 투어를 시작하며 인기를 끌 때 이미 밥 딜런 역시 포크뮤직의 왕자로써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었다. 자연히 이들은 서로를 알게 되었고 이들의 시너지 효과로 록음악은 큰 발전을 하게 된다. 어떤 시너지였냐면 바로 "음악과 가사의 만남"이다.
사실 밥 딜런을 만나기 전까지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의 노래는 음악적으로는 굉장히 새롭고 강렬했지만 그 가사내용이 사랑타령이나 평범한 일상이야기, 혹은 당시 다른 대중가수들이 하던 그런 큰 의미는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음악으로써 세상에 저항하고 수많은 히피들을 포크음악으로 다스리던 밥딜런의 심오한 정신세계는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에게 엄청난 자극이었다.
비록 딜런 스스로도 주체 못 한 내면세계였지만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는 그에 자극을 받고 한층 성숙한 락밴드가 되어간다.
더 이상 사랑노래나 너저분한 일상이 아닌 내면세계의 성찰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찰, 혹은 자기 내면의 감정표출이 음악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를 더 많이 발전시켜 주는 큰 계기가 되었고 롤링스톤즈와 비틀즈는 자신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록음악의 정체성의 일부를 담당하게 된다. 말하지만 요즘 흔히들 말하는 "록 음악의 저항정신"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만약 록음악의 본질에 저항과 마초 자유가 있다면 "롤링스톤즈는 Rock music 그 자체다!"
사실 록음악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척베리 리틀리쳐드 로이오비슨 그 누구도 저항을 위해 록음악을 하지 않았다.
엘비스는 더더욱 그랬고 본래의 록음악은 소외된 음악도 저항을 위한 음악도 아니었다. 록음악은 그저 블루스의 작곡방식에 컨트리뮤직의 편곡을 가미하고 소울의 기법/창법을 덧씌워 연주하는 경쾌한 조이뮤직에 불과했다. 그랬던 록음악이 밥딜런과의 만남으로 지금처럼 "저항"이라는 딱지를 달게 되었으니 비록 딜런이 정통파 락뮤지션은 아니라 해도 록음악에 끼친 영향력은 비틀즈 못지않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밥딜런 역시 포크뮤직의 틀에서 벗어나 록음악을 도입해 소위 "포크락"으로 불려지는 새로운 음악세계를 선보인다.
특이나 "Like a rolling Stone" 과도 같은 명곡이 탄생하는 데에는 영국 락앤롤의 침공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것이다. 물론 록음악이 있어서 척베리, 리틀리쳐드, 로이오비슨, 도어즈, 헨드릭스 등 위대한 락커들도 많지만 영국의 락앤롤이 미국에서 가져간 건 새로운 방향성이었고 록음악이 한층 더 발 전하는 계기였다.
물론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음악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탄탄해진 록음악은 영국에서 레드제펠린, 딥퍼플, 블랙사바스, 섹스피스톨즈 등 위대한 밴드들에 의해 더더욱 뻗어나갔으며 미국에서도 에어로스미스, 키스, 씬리지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밴드들에 의해 발전해 나갔다.
"록음악의 음악적 시작은 컨트리와 블루스를 하던 척베리였고, 정신적 시작은 포크음악을 하던 딜런이었고 그것을 조합한 게 롤링스톤즈였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레드제펠린"
아마도 딜런과 비틀스, 롤링스톤즈의 만남은 록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손에 꼽히는 위대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순간 록음악의 본질이 "저항"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 또한 영국밴드들을 만난 밥딜런의 정신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밥딜런의 내면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본인도 주체 못 할 정도의 난해함이 있어 최근에는"그저 멋대로 말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견도 있지만 밥딜런은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을 가사로 표현했고 그 시대의 대중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환호했다.
밥딜런은 수년 전 출간된 자서전에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주체하지 못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매일매일 허무하고 괴롭다고 말했고, 그런 딜런에게 롤링스톤즈의 믹재거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딜런 , 너는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놈이야. 나의 일부 역시 너의 테두리에 있어. 자신감을 가져. 네가 못했던 일을 떠올리지 말고 네가 해낸 일을 생각해 보라고.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 쓰는 것도 좋지만 이젠 너 스스로에게 신경 쓰고 애정을 가질 때인 것 같아.알잖아. 우린 이제 그런 나이야."
미 대중문화 잡지 “롤링 스톤”은 오래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1위”로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구르는 돌처럼)>(1965)을 선정했다. 이 잡지의 이름이 부분적으로 딜런의 이 노래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이 노래가 “가장 위대한 곡”으로 꼽힌 사실을 퇴색시키지 않는다. 1950년대 이후 60년대 영미 대중음악의 내용과 흐름을 아는 팝. 록 팬이나 전문가들은 롤링 스톤지의 이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롤링 스톤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순위에 비틀즈의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를 1위에 올려놓은 것에 대해, 그 실험성과 미학성, 대중적 인기 등에서 평가의 당연함을 인정하면서, 팝록이 아닌 ‘록’ 앨범이라고 할 때는, <Like A Rolling..>이 수록된 딜런의 앨범 <Highway 61 Revisited>(1965)에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그 파격성과 관능성, 반항적 미학성에서. 가공하지 않은 날 것으로서의 록의 성질과 혼돈성에서.
** 록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 대중문화잡지 '롤링 스톤'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1위"로 선정한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1967) 비틀즈는 자신들이 존경하는 문화, 예술, 철학계 유명 인물 등을 몽타주 기법을 사용, 앨범 커버에 등장시켰다. 맨 위 오른쪽 밥 딜런을 비롯, 딜런이 자신의 '이름(성)'을 따온 시인 딜런 토마스, 오스카 와일드, 올더스 헉슬리, 칼 융, 칼 마르크스, 현대 "사타니즘의 대부"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등.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힌 걸작"이란 평가와 함께 "마약에 절은 환각 앨범"이란 평가도 받고 있는 이 앨범 재킷의 붉은 글씨 "BEATLES" 위아래의 녹색 풀들은 '마리화나'(대마초)다. **
초기 밥 딜런에게 영향을 끼친 대표적 인물을 꼽는다면, 미 모던 포크 음악의 선구자 우디 거스리와 비트 문학의 대표작가 잭 케루악,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랭보 등이다. 포크 가수이자 작가로서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초들의 대변자“ 역을 자임했던 거스리는 딜런이 자신의 음악적, 정신적 자아를 동화시키려 했던 딜런의 20대 초 ‘절대 우상’이었지만, 딜런이 본격 음악활동을 시작하면서 뒤안길로 사라진다. “가수로서의 성공”의 야망을 품은 딜런에게 거스리는 애초 ‘감당할 수 없는 거인’이었다.
밥 딜런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경험한 예술과 사상과 철학에서 필요한 부분을 취해 체화하면서, 지난 것은 되돌아보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는 점이다. 그래서 딜런은 변신의 달인이다. 딜런은 거스리의 저항적 포크 계승자가 되기를 포기했지만 그로부터 음악작법과 ‘저항성’을 취득했다. 거기에 그는 “랭보”와 “케루악” 등으로부터 습득한 문학 스타일과 보헤미안적, 반체제적 반항성을 혼합해 20대 중반 자신의 음악적 방향과 정체성을 확립한다.
1964년 밥 딜런과 비틀즈가 뉴욕에서 처음 만났을 때 딜런의 권유로 함께 대마초를 피웠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밥 딜런이 비틀즈에게 마약을 가르쳐줬다"란 말이 나온 것 같은데, 그보다는 이미 데뷔 전 클럽 활동 시절부터 약물 경험이 있던 비틀즈가 딜런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 마약을 기분전환이나 쾌락추구 차원을 넘어 창작의 영감을 주는 수단 같은 것으로 인식했을 수 있다. 이 시기 딜런은 시인 엘런 긴즈버그와 가까이 지내고 있었는데, 비트세대의 영향력 있는 인물인 긴즈버그는 내로라하는 ‘마약 찬양자’였다.
<비트세대는 두 차례 세계 대전 후 1950년대 미국의 물질중심적 가치관, 체제순응적인 가치관에 반기를 든 일군의 “랭보적” 젊은이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도시문명에 반감을 품고 개인적인 각성을 통해 새로운 자유와 진리를 찾겠다는 구도적인 삶의 태도를 지향했다. 이들은 마약, 섹스, 무모한 유랑을 서슴지 않으며 동양의 선불교에서 깊은 진리를 찾으려고 했다. 사회에서 ‘패배한(beaten)’ 것처럼 느낀다고 해서, 또 재즈 리듬의 ‘비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비트족이라 불렸다.>(미국사 산책/강준만
* * 엘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1926~1997). 미 비트세대의 대표적 시인. 1956년 내놓은 시집 <울부짖음(Howl)>이 공전의 히트를 친 후 비트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1960~70년대 밥 딜런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딜런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딜런은 10대 후반 자신을 매혹시켰던 비트 시들을 통해 이미 긴즈버그를 알고 있었으며, 긴즈버그는 딜런의 음악들이 비트 철학과 상통하는 저항성과 신비주의를 깔고 있음에 주목했고 딜런의 재능에 매료됐다. 그는 오랫동안 딜런의 멘토로 알려졌으며, 당시 시대적 예언자 같은 존재로 각광받은 두 사람 사이에는 예술적 사상적 공감대와 함께 유대인으로서의 유대감도 있었다. 긴즈버그는 "마약, 자유로운 sex, 선불교, 록"의 예찬가로서, 60년대 히피운동과 록 문화를 위시해, 40년 이상 미 문화 예술 정치 사화 영역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의 대학시절 얘기를 그린 영화 <킬 유어 달링>(2013) 등이 있다 **
비트운동의 주도적 인물이었던 긴즈버그는 대중을 움직이는 록 음악의 폭발적 잠재력을 인식한 사람이었고, 대표적으로 밥 딜런, 비틀즈의 존 레넌 등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그들의 예술적, 철학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긴즈버그는 “대마초와 환각제가 인식에 자극을 주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도구”라고 했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 세계에 마약이 급속히 확산되고 대중화하는 ‘마약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여기에는 비트족의 마약예찬 철학과, 이에 부응한 비틀즈를 위시한 영미 록 뮤지션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딜런은 마약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노래에서 노골적으로 마약을 찬양하거나 환각 체험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암시하는 노래들은 있다. 젊은 시절 딜런이 비트 사상과 문학에 심취했고, ‘견자’, '감각의 혼돈' 개념 등으로 딜런을 사로잡았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 역시, '예언적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환각제 사용이 필수라고 역설하며 아편과 대마초에 탐닉했던 인물이란 점 등에서, 당시 딜런이 ‘예술창작에 있어서 마약의 효용성’에 관심을 가졌을 개연성은 작지 않다.
딜런의 비트 문학과 사상에 대한 관심은 이미 10대 후반부터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의 시 쓰기는 비트 문학의 영향을 받아 시작됐고, 그는 비트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길 위에서(On the Road)>의 작가이자 시인 잭 케루악을 특히 좋아했다. 딜런은 “<길 위에서>는 내게 ‘성경’과 같은 책이었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일찍이 왕성한 문학적 욕구로 딜런이 섭렵한 윌리엄 블레이크, T.S. 엘리엇, 랭보, 그리고 비트세대의 긴즈버그와 개리 스나이더, 윌리엄 버로스 등 많은 작가 중 딜런에게 영향을 끼친 대표적 인물로 우디 거스리(가수이자 작가)와 잭 케루악을 들 수 있다.
** 잭 케루악(Jack Kerouac 1922~1969). 비트세대의 대표 작가로 '비트의 왕(king of the Beats)'으로 불린다. 그의 출세작인 소설 <길 위에서>는 60년대 히피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지금도 읽히고 있다. 본래 가톨릭 신자였으나 불교에 심취, 다수의 불교 관련 작품을 쓰기도 했다. 비트족은 마약과 알코올 탐닉을 선(禪, 불교의 수행법)의 경지를 깨닫는 의식으로 여겼는데, 아무튼 그는 술을 많이 마셨고 결국 알코올 남용이 원인이 돼 47세로 생을 마감한다. 비트 작가 중, 긴즈버그와 더불어 케루악을 특히 좋아한 딜런은 <Bring It All Back Home>(1965), <Highway 61 Revisited>(1965), <Empire Burlesque>(1985) 등 앨범에 케루악의 소설과 시를 인용했다. 필자는 케루악을 밥 딜런의 음악과 정신세계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본다. **
미 서부와 멕시코 여행 체험을 바탕으로 한 케루악의 1957년 작 <길 위에서>는 당시 젊은 층에게 열광적 호응을 받으며 단숨에 그를 비트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었고, 이 작품은 이후 60년대 히피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여러 책을 낸 케루악은 가톨릭 신자였으나, 불교와 명상에 심취해 <다르마 행려(Dharma Bums. 국내출간)>, <나의 불교 안내서> 등 불교철학을 담은 책을 쓰기도 했다. 당시 비트작가를 중심으로 비트족이 주창한 선불교 사상은 히피운동과 함께 젊은이들의 눈을 동양종교로 돌리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이는 이어 뉴 에이지 운동을 촉발시킨다.
딜런은 케루악에 강하게 끌렸고, 무엇보다 문학전통과 관습을 무시한 케루악의 즉흥적이고 역동적인 문체에 반했다. 딜런은 60년대 중반 팬들의 야유를 뒤로한 채 어쿠스틱 포크와 결별을 선언하고 록으로 방향을 틀면서 음악 속에 비트 철학과 비트 문학 스타일을 강하게 드러낸다. 딜런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앨범 <Highway 61 Revisited(다시 찾은 61번 고속도로)>(1965)의 수록곡 <Desolation Row(황폐한 거리)>와 <Just Like Tom Thumb's Blues(엄지손가락 톰의 블루스처럼)>의 제목과 가사 일부는 케루악의 소설 <Desolation Angels(황폐한 천사들)>(1965)에서 인용한 것이다.
‘음유 시인’이란 말과 함께, 지금도 가장 흔히 밥 딜런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 중 하나가 ‘포크록의 창시자’, ‘포크록의 전설’ 이란 말이다. 이 말은 그가 포크와 록을 결합해 포크록이란 음악을 만들었고, 딜런이 포크록을 대표하는 가수라는 것인데, 이는 틀린 말일 수 있다. 왜냐하면 밥 딜런은 “나는 포크록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딜런이 “내 음악은 (정체도 불분명한) ‘포크록’이란 말이 아닌 ‘록’으로 불리는 게 맞다”라고 한 말로 들린다.
밥 딜런의 음악은 포크록인가? 포크처럼 가사가 돋보이는 록이기에, 포크의 저항성을 지닌 록이기에 포크록으로 불려야 하는가? 그가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나타난” 1965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은 포크로, 이후 음악은 그냥 ‘록’으로 부르는 게 맞다. 그의 음악은 블루스에 “깊은” 뿌리를 두고, 거기에 컨트리와 포크, R&B, 가스펠, 도시 블루스, 초기 로큰롤 등을 모두 편입시킨 ‘록’의 전형이다. 내가 생각하는 밥 딜런은 ‘포크록’의 창시자가 아니라 ‘록’의 창시자다.
밥 딜런 앨범 중 최고 걸작으로 칭송되는 <Highway 61 Revisited(다시 찾은 61번 고속도로) 1965>는 록 역사의 전기를 마련한 혁명적 앨범으로 평가된다. 61번 고속도로는 미 중부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대표적 고속도로로서, 1900년대 초 남부의 흑인 블루스 뮤지션들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북으로 올라간 고난의 이동경로다. 이 도로를 통해 도시에 정착한 블루스는 후일 로큰롤을 탄생시키고, 로큰롤 음악은 이어 20세기 미국, 나아가 지구촌의 주류 대중음악으로 떠오른다.
** <Highway 61 Revisited(다시 찾은 61번 고속도로)>(1965). 밥 딜런의 최고작이자 록 역사의 기념비적 앨범으로 평가받늗다. 롤링스톤지에 의해 "대중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로 선정된 <Like A Rolling Stone(구르는 돌처럼)>과 함께, 이 앨범의 수록곡 중 지금도 파격적 걸작으로 칭송되는 11분 21초의 대작 <Desolation Row(황폐한 거리)>의 제목은 잭 캐루악의 소설 <Desolation Angels>(1965)에서 차용한 것이다. **
이 앨범의 제목은 “강하게” 61번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는 남쪽 끝 미시시피 델타(삼각주)를 가리키고 있다. 로큰롤(록)의 ‘뿌리’인 블루스의 ‘발원지’를 주시하라는 것이다. 딜런은 이 앨범을 통해 초기 로큰롤(블루스)의 원시성과 관능성, 반항성, 정곡을 찌르는 노랫말의 풍유와 신비감을 환기시키면서 로큰롤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록의 방향성을 천명했다. 그가 제시한 록은, 로큰롤의 본래성에 그가 습득한 모더니즘의 초현실주의 예술과 문학, 그리고 그 근간의 실존주의 철학을 융합한 ‘카오스’적 록이었다.
이 앨범에 실린 <Like A Rolling Stone(구르는 돌처럼)>(1965)은 20세기 ‘록의 어법’을 새롭게 규정한 노래로 평가받는다. 당시 관행을 깬 6분 넘는 길이의, 강렬한 일렉트릭 블루스 사운드에 실린 이 노래는 예상을 뛰어넘는 빅 히트를 치며 록의 새 이정표를 쓴다. 롤링스톤지는 후일 이 곡을 “대중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 중 1위”로 선정했다. 록 역사의 관점에서 이 노래에 대해 여러 의미가 부여되고 있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노래가 품은 ‘저항성’이다.
이 노래는 한 때 그와 사귀었던 여배우의 몰락을 조롱하는 내용이나, 딜런은 그 이상을 겨냥하고 있다. 이 노래가 가리키는 것은 그가 심취했던 비트 철학, 즉 “제도권에 대한 저항과 이탈”이다. 전통적 사회관습과 기성체제에 ‘순응하는’ 안락한 삶을 거부하는, “like a rolling stone(돌멩이가 구르는 것처럼)' 사는 ‘랭보적’ 방랑자, 보헤미안적 삶의 예찬이다. 필자는, 이 노래를 그의 우상이었던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의 록 버전으로 생각한다. 앨범 제목도 “고속도로(길)”다.
** 내로라하는 블루스와 록의 열광자로서, 다수의 록 다큐멘터리를 만든 할리우드 스타 감독 마틴 스코세지의 밥 딜런 다큐 <No Direction Home_Bob Dylan>(2005) DVD 커버. 제목 "노 디렉션 홈(집 없이 떠돌다)"는 딜런의 노래 <Like A Rolling Stone(구르는 돌처럼)> 가사에서 따온 것. 방향도 목적도 없이 떠도는 보헤미안적 라이프스타일은 비트세대의 상징이다 **
당시 딜런이 포크에서 록으로 방향을 틀자, 팬들은 그가 포크의 순수성을 배신했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사람들이 왜 저항노래를 부르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내 노래는 하나같이 다 저항음악이고 나는 오직 저항음악만 한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그의 음악이 포크음악의 어떤 ‘협소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저항성’ 차원을 넘은 보다 근원적인 ‘저항정신’을 탑재하고 있으며, 그 저항성은 포크처럼 ‘가사’에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록음악 자체에 있다’는 걸 의미한 게 아닐까.
록의 핵심 철학은 무엇인가? 바로 ‘저항성’이다. 록의 영원한 슬로건 “젊음, 자유, 저항”의 정신이 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에 농축되어 있다. 록이 말하는 자유란 과연 무엇이고, 록의 저항은 무엇에 대해서인가. 기성관습과 체제, 가치에 대해서다. 그리고 근원적으로 이 저항은 '절대자’를 향하고 있다. 실존주의의 선구자 ‘니체’와 모더니즘의 창시자 랭보가 ‘노예화의 윤리’라 비난했던 기독교와, 그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저항(정확히 말하면 ‘반항’)이다. 이것이 록 스피릿이다.
오늘날 “록의 자유와 해방감”을 상징하는 말이 된 “구르는 돌(rolling stone)”을 기독교 관점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삶, 하나님을 잃어버린 삶이며 그 끝은 허무주의를 향해 있다. 1960년대에 구축된 록의 철학, 즉 반항성과 무정부주의적 태도, 자유로운 sex, 동양종교와 신비주의, 술과 마약의 권장 등은 비트세대의 반체제 정신과 마약예찬, 선불교 사상에 잇대어 있다. 비트 없이는 밥 딜런도, 비틀즈도, 짐 모리슨도, 섹스 피스톨스도, 커트 코베인도 없다.
록 역사의 두 거목인 비틀즈와 밥 딜런은 서로를 자극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60년대 록을 주도했다. 그들은 수많은 록 뮤지션의 영웅이 되었고 사람들의 우상이 됐다. 그들이 일으킨 “사상적, 예술적, 사회적 문화혁명”의 여파는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모든 철학과 사상은 지식인과 예술가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
밥 딜런은 <Like A Rolling Stone(구르는 돌처럼)>을 전설적 컨트리 가수 행크 윌리엄스의 노래 가사("나는 길을 잃은 외로운 방랑자...")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딜런의<Like A Rolling..>에서 케루악의 불교적 체취도 느낀다. 가사에 나오는 단어 "bum(구걸하며 떠도는 자)"가 케루악의 자전적 "불교 소설" <다르마 행려(Dharma Bums)>를 상기시킨다. "구르는 돌처럼"이란 말도 다른 관점으로 보면, <다르마 행려>에서 묘사된, 세속을 떠나 방랑하는 불교의 "구도적" 삶을 연상시킨다. 케루악과 긴즈버그로 대표되는 비트세대 철학은 당시 미국사회의 전통주의와 순응주의, 소비주의적 라이프스타일에 반발하면서, 마약과 자유로운 섹스, 선불교, 예술, 방랑 등을 통해 체제 저항과 '영적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것이었고, 딜런은 이 노래를 발표할 당시 비트철학에 강하게 매료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