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고전문학

박연의 피리, 성현(成俔)

Jobs9 2021. 4. 28. 08:07
반응형

박연의 피리
                                     성 현(成俔)

 대제학(大提學) 박연(朴堧)은 영동(永同)의 유생이다. 젊었을 때에 향교(鄕校)에서 학업을 닦고 있었는데 이웃에 피리 부는 사람이 있었다. 제학은 독서하는 여가에 겸하여 피리도 배웠다. 온 고을이 그를 피리의 명수(名手)로 추중(推重)하였다.

 제학이 서울에 과거보러 왔다가 이원(梨園)의 피리 잘 부는 광대를 보고 피리를 불어 그 교정(校正)을 청하니, 광대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소리와 가락이 상스럽고 절주(節奏)에도 맞지 않으며, 옛 버릇이 이미 굳어져서 고치기가 어렵겠습니다.”고 하였다. 제학이 말하기를, “비록 그러하더라도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고 하고, 날마다 다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일 후에 듣고는 말하기를, “규범(規範, 법도)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장차 대성할 수 있겠습니다.”고 하였다. 또 수일 후에는 광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끓고 말하기를, “제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그 뒤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또 거문고․비파의 여러 악기를 익혀서 정묘(精妙)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세종(世宗)에게 지우(知遇)를 얻어 드디어 발탁 등용(拔擢登用)되었다.

 관습도감제조(慣習都監提調)가 되어서 음악에 관계되는 일을 전담(專擔)하였다.

 세종이 일찍이 석경(石磬)을 만들고 제학을 불러 교정하게 하였더니, 제학이 말하기를, “어느 음률(音律)이 일분(一分) 높고, 어느 음률이 일분 낮습니다.”고 하였다. 다시 보니 음률이 높다고 한 곳에는 찌꺼기가 붙어 있었다. 세종이 찌꺼기의 일분을 떼어내라고 명령하였다. 또 음률이 낮다고 한 곳에는 다시 찌꺼기 일분을 붙였다. 제학이 아뢰기를, “이제 음률이 바르게 되었습니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다 그의 신묘(神妙)함을 탄복하였다.

 그의 아들이 계유의 난(亂)에 관여하여 제학도 또한 이 때문에 벼슬이 파면되고 시골로 돌아가게 되었다. 친한 벗들이 한강 위에서 전별하였는데 제학은 필마(匹馬)에 하인 한 사람을 거느린 쓸쓸한 행장이었다. 함께 배 안에 앉아서 술잔을 주고받다가 소매를 잡고 장차 이별하려 할 즈음에 제학이 전대에서 피리를 꺼내어 세 번 불었다. 그리고 떠났다. 듣는 이가 모두 쓸쓸한 느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
                                   <용재총화(慵齋叢話)>


  어휘풀이
* 제학: 박연이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음
* 추중: 추앙하여 존중히 여김
* 이원: 조선조 장악원(掌樂院)의 별칭
* 지우: 남이 자신의 인격과 학식을 얻어서 후히 대우함
* 관습도감제조: 관습도감은 향악과 당악(唐樂)을 가르치는 일을 맡은 관아이며 관습도감제조는 그 관아의 일을 다스리던 사람을 말함
* 석경: 아악기의 한 가지, 돌로 된 타악기
* 전대: 돈이나 물건을 넣고 허리나 어깨에 매게 만든 폭이 좁고 긴 자루

  핵심정리
* 작자: 성현(成燥) 
* 연대: 조선 초기
* 갈래: 경수필, 서정적 수필 
* 성격: 관조적, 교훈적, 서정적
* 구성: 추보식 구성 
* 문체상 특징: 문답법의 사용, 예시적, 설명적
* 특징: 서술자가 주관적 해석을 가하지 않고 자기가 본 그대로 간결하고 사실적으로 서술 
* 제재: 피리
* 주제: 음악가 박연의 맑고 고매한 삶
* 출전: 『용재총화』


  해설 1
 이 글은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제8권에 실려 있는 수필이다. 원래 제목이 없었는데 편의상 「박연의 피리」라고, 붙여 보았다. 박연이라는 15세기에 살았던 한 예술인의 삶을 한 자루의 피리로 압축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세 개의 삽화(揷畵)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박연의 배움에 대한 성실한 태도를, 둘째는 음악에 대한 그의 뛰어난 감수성과 감식력(鑑識力)을, 셋째는 피리 한 자루를 삶의 반려로 삼고 홀홀히 떠나는 박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한 폭의 그림과 같으면서도 지성인의 고매하고도 깨끗한 성격이 간결히 표현되어 여운이 감돈다.


  해설 2
 이 작품은 성실한 배움의 태도와 예술적 재능을 갖추고서 맑고 깨끗한 삶을 지향한 박연의 모습을 서술자의 주관적 해석이나 의사 표현이 아닌 객관적이고 간결하며 꾸밈없이 제시하고 있는 글이다. 이 작품에 드러나는 피리는 간단한 생김새이면서도 청아(淸雅)한 음색을 가진 악기이다. 이러한 소재를 통하여 음악가인 박연의 맑고 고매(高邁)한 삶을 표현함으로써 소재와 주제의 조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피리는 간단한 만큼 그 소리와 가락을 절주(節棄)에 맞춰 익혀 연주하기란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데, 처음 특별한 지도 없이 잘못 익혔던 습관을 바로잡아 마침내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 과정을 통하여 그의 성실한 생활 태도를 부각시킬 수 있었고, 청빈(淸貧)한 그의 생활 역시 피리의 맑은 가락과 잘 어우러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세속을 초월한 듯한 박연 의 삶의 자세에서 연상되어지는 당시 예술가들의 삶의 태도 는 오늘날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게 함으로써 깊은 감동과 더 불어 교훈적 효과를 상승시키고 있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스마트폰 공무원 교재

 

✽ 책 구매 없이 PDF 제공 가능
✽ adipoman@gmail.com 문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