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백제 시대, 인천 역사적 지명
백제 시대부터 미추홀이라 불렸다. 비류와 온조 형제가 고구려를 떠나 남하하던 중 비류가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에 머물러 미추홀국을 세웠으나, 얼마 후 온조가 위례성에 터를 잡고 세운 백제에 합병되었다.
여기서 미추홀의 홀(忽)은 고구려와 백제의 특징적인 지명어로서, 한자어 ‘성(城)’으로 쓰인다. 따라서 미추홀을 미추성으로 바꾸어 표기해도 무방한데, 실제로 광개토대왕릉비의 제2면 1행에 '미추성(彌鄒城)'이라는 표기가 나온다.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軍▨▨首攻取 … 彌鄒城 …▨▨▨▨▨其國城.
영락 6년(396) 병신년에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 미추성 … 을 공격하여 취하고 그 도성에 다다랐다.
〈광개토대왕릉비〉
이후 고구려는 이곳을 매소홀(買召忽)이라 하였는데, 삼국사기에서는 미추홀(彌鄒忽)의 다른 표기로 언급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매소홀현(買召忽縣)이 설치되었으며, 매소홀현은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쳐 소성현(邵城縣)이 되었다. 삼국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邵城縣 本高句麗買召忽縣 景德王改名 今仁州 【一云慶原 買召一作彌鄒】
소성현은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으로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으니, 지금의 인주(仁州)이다.
【경원(慶原)이라고도 한다. 매소(買召)는 미추(彌鄒)로도 쓴다.】
《삼국사기》 권35 〈잡지〉 제4 지리 2 신라
실제 발음은 ‘mit-kol/mi-kol’로 추정된다고 한다.[2] 여기서 ‘mit’은 물(水)의 뜻을 가진 어휘로, 밑(本, 始, 底), 뭍(陸), 미르(龍), 믿-(信) 등의 다양한 어휘로 분화되는 어휘이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