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 미시마 유키오
Patriotism
우국 : 죽음으로 완성되는 미의식
일본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군부쿠테타 사건을 소재로 한 군인 부부의 동반자살을 다룬다. 선정성으로 많은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 내셔널리즘, 에로티시즘, 그리고 죽음.
#작품해설
한 군인이 '우국지정'을 말하며 혼인한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내를 동반하고 할복으로 삶을 끝낸다. 소설을 발표한 뒤 10년 뒤 작가는 이를 재현하듯 활복으로 삶을 마감했다.
<우국>은 1960년 10월 경에 집필되어 1960년 <<소설 주오코론>> 12월 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1936년 2월 26일 일어난 2,26, 사건을 배경으로 이후 발표된 다른 작품들과 함께 '2.26 사건 3부작' 중 하나로 언급된다. 작가는 실제로 2.26사건에서 자살한 아오지마 겐키치 중위 부부의 활복을 다룬다. 하필이면 전후 일본사에서 가장 큰 민중운동으로 평가받는 1960년대 안보투쟁이 좌절한 후에 1930년대의 실패한 군부반란사건을 연속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도 이 소설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비평가 에토 준은 이 작품을 '제국 육군의 반란'이라는 정치적 비상시의 정점을 '정치'적 측면이 아니라 에로티시즘의 측면에서 포착한 걸작이라고 극찬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1966년 직접 영화로 만들었다. 각색, 제작, 감독, 주연을 모두 맡았다.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을 하고 인기를 얻었다. 작품 속 선정적 활복 장면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고의적인 오해와 몰이해를 낳는 연극적인 행동을 많이 하였는데, 그의 극적인 죽음의 방식은 전형적이었다. 그로 인해 미시마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평가는 대립을 보였다. 주로 동성애자, 활복자살, 극우주의자로 부정적인 평가, 동시에 재기발랄하고 섬세한 문장, 본질적인 문제제기에는 갈채를 받았다.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의 작품 중에서 작가로서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보이는 <우국>을 독자에게 가장 추천한다고 하였다. 이번 장에는 정치적 맥락이 아닌 문학적 맥락에서 소설을 고찰한다. 왜 다케야마 중위는 죽음ㄹ 선택했는가? 이를 통해 문제가 되는 천황주의와 무사도같은 내셔널리즘과 죽음에 투영된 에로티시즘이라는 미의식, 전후 일본의 문제를 키워드로 삼는다.
제1부 충성과 의리의 갈등
이 소설은 총 5부로 구성된다. 전개에 따르면, 죽음을 결심하기까지의 1~3장이 전반부, 활복을 하는 과정이 묘사되는 4~5장이 후반부에 해당된다. 1장은 메이지 시대 신문기사의 문체를 모방하여 기사처럼 사건의 전모를 요약해 보여준다. 2장에서는 생전의 다케시마 중위와 아내 레이코의 결혼식 기념 사진을 제시하여 생전에 그들이 알고 지낸 지인들의 증언을 제시한다. 지인들의 "이렇듯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남녀의 결합에 불길한 살이 끼었냐고 탄식했다." 는 말은 결혼식 이후의 예상치 못한 사건전개를 암시한다. 또한 이 장에서는 부부의 신혼생활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군인으로서 부부의 처신을 언급하고, 나아가 부부가 결혼으로 성적 쾌락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3장에서는 신혼 6개월째 2.26사건이 발발한다 영문도 모른 채 다케야마 중위가 출동한 후 아내 레이코는 라디오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접한다. 남편의 친한 벗들이 반란사건을 일으킨 것을 알고, 레이코는 군인의 아내로 집안을 정리하며 죽음을 각오한다. 귀가한 중위는 반란군을 진압해야 하는 자신이 동료를 배신할 수 없어 죽음을 결심했다고 토로한다. 아내도 남편의 죽음에 동반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둘의 의사가 일치하자 더할 나위 없이 끼뻐한다. 죽음을 앞둔 부부는 마지막 행위로서 마지막 성교를 엄숙하게 수행한다.
1 노기 장군과 2.26 청년 장교 그리고 다케야마
소설의 시작은 신문기사처럼 사건의 전반을 설명. 시간적 배경이 되는 2.26 사건은 육군 장교들이 일으킨 군부반란 사건. 1936년 2월 26일부터 2월 29일까지 일본 육군 장교들이 내각과 군부의 잘못으로 시국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쇼와 천황의 직접 통치를 주장하여 일어났다. 그들은 사이토 마코토 대신을 살해하고 여러 기관을 점령했다. 그러나 29일, 천황이 주모자들을 처단하라고 지시하면서 진압되었다. 현 정부에 저항하며 천황을 위해 궐기했으나 정작 쇼와 천황본인은 그들을 지지하지 않았다.
주인공 다케야마 중위는 2.26 사건을 일으킨 근위보병 소속으로, 천황이 거처하는 황거를 지키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그와 아내의 활복 사건은 '노기 장군 부부의 순사'를 연상시킨다. 노기 마레스케 장군은 1945년 패전 이전까지 천황에 대한 절대적 충성시으로 '군신'으로 추앙받았던 군인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참전하여 두 아들을 잃고 가쿠슈인 대학 원장으로 황실의 교육에 관여하였으며, 쇼와 천황이 가장 신뢰한 일인이었다. 그는 메이지 천황이 죽자, 부인과 함께 1912년 9월 13일 활복으로 천황을 따랐다.
노기의 죽음이 '순국'이라면 다케야마의 죽음은 충성을 어렴풋이 상기시키지만 번민과 통분은 바로 충성과 우국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1장은 마치 희곡의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실제 막이 열리고 연극이 진행되면 지문의 설명과 배우들의 실제 연기가 달라져 관객들을 당황하게 하는 구조와 유사하다. 즉 다케야마의 우국지정이 무엇인가, 라는 이 소설의 가장 큰 수수께끼가 나온다. 다케야마에게는 어떤 대의가 있었는가?
아이가 없는 부부의 죽음. 그들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 노기가 노인이었다면 다케야마는 인생의 절정기를 구가하는 청년기. 독자는 젊은 부부에게 더 연민을 느끼고 죽음은 더 비극성을 띤다. 2장에서 신혼이라는 사실이 갖는 중요한 의미. 그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육체의 쾌락에 눈뜬 삶의 절정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2. 아름다운 영웅들.
둘의 결혼사진. 정치적 사건과 지극히 비정치적인 사건이 연동하는 구조는 '거사'를 앞둔 두 주인공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1장의 열부열녀는 2장의 미남미녀로. 부인 레이코는 '박꽃 봉오리' 하는 전통적인 일본의 아름다운 여성. <겐지모노가타리>에도 등장하는 '박꽃' 같은 여인상은 가인박명의 상징이다.
첫날밤의 예사롭지 않는 풍경. 부부는 시국이 비상시라는 이유로 신혼여행을 하지 않고 자택에서 첫날밤. 잠자리에 들기 전, 다케야마 중위는 군도를 무릎에 두고 군인의 처로 언제든 죽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레이코는 은장도를 보인다. 주인공들은 죽음에 대한 일체감 위에 삶에 대한 극도의 희열을 느끼는 인물들,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을 상상하지 않고는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부부는 결혼 이후 죽음에 대한 각오 위에 급속도로 성의 쾌락에 눈뜬다.
그럼에도 다케야마 중위는 성적 유희 중에서 자신들이 진지하였다고 엄숙함을 강조한다. '이 모든 것은 도덕적이고 천황이 내린 교육칙어의 부부는 서로 금슬이 좋아하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기술한다. 이들은 신사에서 받아온 부적과 천황 부부의 사진을 걸고, 매일 아침 새 정화수와 신전에 꽂는 비쭈기 나무도 새롭게 하는 충성스러운 신민으로 묘사된다. 그들의 삶은 '엄숙한 신의 권위에 의해 지켜지고, 그럼으로 인해 구석구석까지 전율하는 쾌락'으로 차 있다고 기술된다.
성스러운 세계와 성의 세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세계. 이는 고대사회에서나 가능한 세계다. 이 두 인물은 철저하게 관념으로만 가능한 인물상이지만 내레이터는 이러한 과장된 비현실적인 인물에 가장 응축된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3. 충성과 의리
레이코는 반란이 아니라 정당한 대의를 가진 자들로 본다. 다케야마 중위는 신혼이기에 2.26 사건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지 않은 벗들을 원망한다. 심정적 공감을 엿볼 수 있다.
왜 작가는 1960년대에 2.26사건의 주모자들에게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주인공을 설정했을까? 중일전쟁에 돌입하기 직전인 1936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군부가 천황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군인들의 불만과 국가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천황의 명령으로 좌절되고 청년장교들은 죽음으로 희생되었다. 이후 일본은 전쟁을 거쳐 결국 패전과 점령에 이르는 역사적 수순을 밟았다.
1960년대 전후 일본은 미국에게 종속된 상태로 미일안전보장조약 개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군사적으로 더욱 미국에 예속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이에 반대한 것이 1960년대 안보반대투쟁이다. 청년들의 반정부, 반미 투쟁은 격렬하였고, 청춘들의 삶이 희생되었으나 전후 일본은 경제적인 부흥 속에서 무사한 일상으로 흘러간다. 미시마는 1960년대 반정부운동과 1936년 군부 반란 사건을 겹쳐서 보고 있다. 그는 죽음을 불사한 저항의 에너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다루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쿠테타를 일으킨 장교들의 마음이 '우국'이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심정이 중위의 '우국지정'이 될 것이다. 다케야마는 2.26 사건의 주모자와 정치적으로 같은 입장에 서서 토벌하라는 천황의 입장과 대립한다. 이는 천황에 대한 비판이 된다. 이는 상징 천황제로 대표되는 전후 일본 체제에 대한 역설적인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4. 완전한 도덕
동반자살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아내는 남편에 대한 신뢰를, 남편은 교육의 효과라고 믿는다. 이 장면에서는 어쩌면 애정문제로 인한 '평범한 동반자살'로 보일 수 있는 사건을 다케야마가 교육의 성과에 의한 도덕적 죽음으로 만들고자 한 동기를 읽을 수 있다. 마지막 성행위. 다케야마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 부정하다는 인식을 털어내듯이 육체의 욕망과 우국 사이에 그 어떤 모순도 당착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과연 모순은 없는가?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우선이지 우정이 먼저일 수 없다. 죽음으로 그들의 '신혼'을 소거시키는 것은 친구들과의 완벽한 결합을 위해서.
프로이트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여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 환원시키려는 죽음의 충동을 타나토스(Thanatos)라고 하고, 이에 대해 자기를 보존하려는 충동을 에로스라고 하였다. 3장에서 다케야마 중위 부부의 육체는 에로스를 추구하고 우국지정은 타나토스를 추구하는 모순에 처해 있다. 미시마가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서 사용한 배경음악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 타나토스적인 욕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예로 유명하다.
다케야마는 자신의 죽음을 나라를 걱정해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누구도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한다. 이 절망감은 우국지정을 반란으로 오명을 씌우는 현실에 기인한다. 쇼와천황은 2.26사건을 진압하라고 했듯이 안보투쟁에서도 일관되게 일미 협력 및 반공의 필요와 주둔군에 의한 일본의 안전보장이라는 2대 이념을 고수했다고 한다. 이러한 천황이 충성에 합당하고 이러한 나라가 우국지정에 합당한 존재인가? 오히려 이러한 천황에 거역하는 것이 진정한 우국이 아닌가.
죽음을 결심한 후 부부는 마지막 행위를 나누는데, 작가는 그 장면을 단편에서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해 묘사한다. 죽음의 전야에 이런 관능적인 쾌락의 추구는 천황에 대한 불충으로 보인다. 그들의 죽음이 정말로 나라를 근심해서인지 명확하지 않고 이 작품을 모순에 가득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죽음의 고통은 부부의 쾌감을 정련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관념과 관능은 이상적인 관념에 의해서 쾌감이 증폭된다. 보다 큰 관능의 추구를 위해 보다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도의와 명분이 필요할 뿐 도의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도쿄 황거 주변 : 도쿄 한가운데 지요다 구 1번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은 거처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긴다. 부지가 도쿄돔의 25배에 해당하는 광대한 규모로 궁전 밖은 해자로 차단되어 있다. 1945년 이후 천황의 권력이 사라지며 궁전 대신 '황거'라고 불린다. 황거의 북쪽에 있는 기타노마루 공원에는 근위보병 1연대를 기념하는 비가 남아 있다. 황거에서 나와 북서쪽으로 가면 지요다 구 구단시타이고, 이곳에 야스쿠니 신사가 있다. 황거에서 남서쪽으로 가면 미나토 구 아카사카인데, 이곳에 메이지 천황을 따라 활복 자살한 노기 장군이 살았던 터와 그의 이름을 딴 노기 신사가 남아 있다.
제2부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
후반부는 4~5장. 4장에서 마지막 행위를 끝낸 부부는 '지성'이라는 족자 앞에서 각각 유서를 작성한다. 다케야마는 황군만세, 레이코는 불효를 사죄하는 내용을 적는다. 자살하기 전 아내의 아름다움과 국가라는 대의명분이 포개지는 환상 속에서 다케야마 중위는 더없는 행복의 순간을 경험한다. 레이코도 죽음을 앞둔 중위에서서 더할 나위 없는 남성을 느낀다.
마침내 중위는 각성 상태에서 활복을 치르고 그 과정 하나하나를 의식한다. 레이코는 남편의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의무를 띠고 죽음의 고통을 견디는 남편을 지켜보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처음으로 레이코는 더 없는 쾌락으로만 인식했던 죽음에서 '고통'이라는 감각과 삶의 죽음 사이에 사로놓인 명확한 경계와 이해불가능성에 직면하게 된다.
5장에서는 레이코의 죽음. 대의를 위해 죽은 남편을 뒤따르기로 했으나 불안.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확인하고 불단속, 문단속 같은 일상적인 행위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의식을 치르듯이 화장을 하고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1. 활복이라는 죽음
죽음의 장면은 액자틀 안에서 움직이듯 대단히 연극적이고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 장면에서 강조되는 것은 백과 흑, 또는 백과 적의 대비, 그리고 연극적인 과장이다.
왜 활복인가? 1945년 이전의 군인정신은 사무라이 정신과 비교된다. 미시마는 무사도 정신을 대단히 중시하여, 에도 시대의 무사도를 기술한 <<하가쿠레(葉隱)>>라는 서적에 심취했다. 18세기 야마모토 쓰네토모가 구술했다고 하는 이 사상서는 '무사도란 죽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란 구절로 유명하다. 단어의 의미대로 나뭇잎 그늘에 숨듯이,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주군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무사의 용기를 강조.
<군인칙유>는 군인들에게 충절, 예의, 무용, 신의, 소박이라는 5덕목을 요구하고 이를 '성심'을 다해 지킬 것을 요청했다. 誠은 일본어로 마코토, 즉 거짓이 없는 진실함을 가리킨다.
활복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도덕적 수단이라는 이미지가 일본 문화 속에서 만들어졌다. 다케야마는 죽음을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 행위로서 의지적으로 수행하고자 한다.
2. 보는 자-보이는 자의 드라마
4장의 전반부에 활복 장면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펼쳐진다. 다케야마에게 죽음은 단순히 생의 종결이 아니라 장렬한 하나의 의식이기 때문에 그 과정은 형식과 법도에 따라 수행된다. 활복은 즉각적인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지연하며 고통스런 과정을 인내하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죽음의 과정을 보여주는 연기자와 연기를 보는 관객이 존재하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 활복을 보는 관객들은 '명예'를 확인해주는 목격자들이기 때문이다. 레이코가 목격자를 맡는다. 레이코의 목격이 있어야 이 죽음의 의식이 명예를 위한 것임이 증명되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죽음의 순간에도 자제력을 잃지 않는 군인과 군인 아내의 놀라운 의지력은 이들의 죽음을 영웅적으로 만든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드라마는 3장의 마지막 행위에도 드러난다. 다케야마는 레이코의 육체를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며 마음에 새긴다. 레이코도 마지막으로 그의 육체를 하나하나 눈으로 탐한다. 이 장면에서 보는 자와 보이는 자는 상호적이다. 그러나 죽음의 장면에서 주로 레이코가 다케야마를 보고, 다케야마는 보이는 입장에 놓인다.
사디즘적. 마조히즘적. 다케야마자 죽는 장면은 레이코 입장에서 보면, 원하지 않는 것이 강제되는 폭력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레이코 또한 이 상황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이 부부는 죽음을 전제로 하거나 고통을 목도하는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쾌락을 느낀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은 이 부부의 타나토스적인 충동을 보여준다.
보이고 보는 관계는 상당히 연극적이다. 미시마는 연극대본과 근대적인 노를 여러 편 집필한 작가이기도 했다. 무대에서 활용하는 고전적인 양식미를 소설에서도 추구했다.
미시마는 1946년 개정된 현대 구어 표기를 사용하지 않고 평생 그 이전 표기를 관철하였는데, 문학에서 실용적인 사고보다는 전통과 역사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 점은 서양 고전문학에 대한 동경으로도 나타나는데, 그는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서양과 달리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중시하고 육체의 아름다움을 중시한 그리스 시대를 동경했다.
3. 숭고한 고통
죽음에 대한 자세한 묘사. 이 죽음이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 의지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것은 삶뿐만 아니라 죽음조차도 통제하려는 욕망의 발현이다. 자결장면의 묘사가 전체 작품의 3분의 1. 작가 미시마는 과장되고 참혹하며 고통스런 묘사를 통해 그것을 감내하려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가 충격적이고 잔혹한 일순에 깨닫게 되는 삶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리얼리티를 전달하려는 작가라는 점이 이 길고 긴 장면에서 드러난다.
죽음의 묘사장면은 노의 무대처럼 유장하고 장엄하다. 일본의 노는 죽음을 가장 장엄한 양식으로 표현한 예술장르이다.
남편은 고통의 우리 안에 갇혀 죄인이 된다. 생과 사라는 유리벽으로 갈린 부부.
5장에서는 레이코가 남편의 죽음에서 이해 불가능한 것을 발견하고 만다. 레이코는 인간의 죽음과 삶이 내포하는 근본적인 이해불가능성에 직면하다. 둘은 죽음 앞에서 철저하게 분리된다.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부조리다.
4. 신주라는 사랑의 방식.
남편은 친구를 따른다는 대의 명분. 그렇다면 레이코는? 무사의 죽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따르는 신주, 순사라는 개념에 가깝다. 신주. 일본의 내세사상. 사랑하는 남녀가 신주를 하면 내세에서 다시 ㅅ결합한다는. 신주는 생과 사를 뛰어넘어 사랑을 영원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지극히 에로스적인 동기. 이점에서 둘의 죽음은 동일하지 않다. 화장을 한다.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지금 인터넷 세상은 가축의 왕국이다… 사색 대신 검색에 만족, 변혁 없이 즐길 뿐이다”
도쿄대 ‘전공투’ 학생들은 미시마 유키오를 힘센 ‘근대 고릴라’라고 불렀다. 그가 근대를 이야기하던 1960년대는 이제 다 지나갔다. 그 시대, 근대의 아들과 딸은 총리와 대통령이 되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이제 ‘편평 납작한’ ‘포스트모던’의 자식들이 번성하고 있다. 패전 이후 고도성장기에 일본의 근대를 다시 세워 보려 했던 미시마 유키오. 그의 자위대 진입과 할복의 퍼포먼스는 일본의 근대를 넘어서기 위한 우국이었을까? 아니면 극우 ‘똘아이’의 쇼? 지금 우리에게 나라를 걱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타산지석으로 쓸 수 있을까?
1. 근대와 소시민
나는 전후 미군 지배 아래에서 고도성장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던 소시민을 증오했다. 그들이 소비자본주의의 욕망과 ‘중산층 일체화’의 신화에 빠져드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전후 대중소비사회의 일본은 구심점 없는 허구였으며 자본주의의 더러운 모습을 수면 아래 감춘 미친 빙산이었다. 나는 그들 소시민이 역겨웠고 그런 도덕관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나는 소비자본주의에서 대중의 혼을 갉아먹는 병든 천황의 모습을 보았다. 패전 후 일본에서 신이었던 천황은 인간으로 하락하였고 짐승에 가까웠던 신민들은 거꾸로 ‘인간’으로 상승하였다. 일본은 인간이 거주하는 평화로운 제작자와 상인들의 나라가 되었다. 내가 기꺼이 내 몸을 바칠 국가가 있고 그를 위해 죽는다면 나는 하나의 미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천박한 소비자본주의 나라를 구해낼 이상이었고 꿈이었다. 나는 천황 없는 자위대를 천황을 위한 군대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안심하고 살고 있는 일본의 보통 사람이 싫었다. 나는 일본의 권력구조, 체제의 눈 속에서 불안을 보고 싶었다”(<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새물결, 20쪽). 한국은 꼭 20~30년 시차를 두고 일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나 인터넷이 일상화되고 세계화가 추진되던 1990년대 후반 이후 그런 시차는 무의미해졌다. 1960년대 고도성장기의 일본인들처럼 안심하고 지내던 당신들이 다행스럽게도 요즘 대한민국 체제의 눈 속에서 불안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나약한 소비자본주의 나라의 소시민을 바꾸어 힘센 일본의 근대를 이루기 원했다. 그 꿈을 실현하려면 초인이 필요했다. 천황은 그런 초인의 메타포였다. 아마 지금쯤 당신들도 초인이 필요할 거다.
많은 한국인이 나를 그냥 “배째고 죽은 똘아이 우익” 정도로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시대착오적인 천황제를 주장했던 골빈 똘아이가 아니다. “나는 오지도 않을 미래에서 내 행동의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그것을 과거에서 찾는다”(미시마 유키오, 같은 책, 67쪽). 당신들의 근대 시인 김수영도 ‘거대한 뿌리’에서 과거와 전통에 기대지 않았던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로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그러나 김수영의 ‘놋주발’과 나의 ‘일본도’는 다르다. 놋주발은 ‘쨍쨍’거리지만 일본도는 ‘쉬익’ 한다. 나는 시간 속에 사는 인간이지 공간에 정주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게는 당대의 혁명보다 역사가 중요했다.
끔찍한 사고와 사건 앞에서 당신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지만 나는 차라리 불안을 직시하길 권한다. 이제 나는 그동안 불안해하지 않던 당신들의 눈에서 불안을 본다. “우리는/ 이제 차디찬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다/ 어제 국회의장 공관의 칵텔 파티에 참석한/ 천사같은 여류작가의 냉철한/ 지성적인/ 눈동자는 거짓말이다/ 그 눈동자는 피를 흘리고 있지 않다/ 선이 아닌 모든 것은 악이다/ 신의 지대에는/ 중립이 없다”(김수영, ‘이혼취소’). 나에게도 중립은 없다. 난 날계란이나 찐 달걀은 먹어도 반숙은 안 먹는다. 이제 그대들도 나의 우국지심이 무엇이었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까?
2. 가축 사료가 되는 사상
나는 우쭐대는 다이쇼 교양주의의 콧대를 꺾어버린 ‘전공투’에 경의를 보냈다. 나는 사상과 지식에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만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지식인이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지금 인터넷 세상은 세계를 바꾸려 하기는커녕 세계를 설명하기도 포기한 채, 단지 세계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가축의 왕국이 되고 있지 않나? 나는 인터넷 세상의 그런 불안 부재를 경멸한다. 나는 세계를 설명하는 데 만족하는 지성주의에 환멸을 느낀 사람이다. 그렇다고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는 가축들의 반지성주의를 추수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반지성주의는 지성주의를 초극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인터넷 세상의 빅데이터는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계산 가능한 것은 예측 가능한 것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통제 가능한 것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데이터베이스 감시이고 통제이며 사이버네틱스가 노리는 목적이다. 이런 사회에서 ‘자유’와 ‘정의’, ‘진리’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말과 사물이 가짜로만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상의 데이터베이스 시대에는 시인의 시어도, 소설가의 이야기도 존재하기 힘들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육체를 잃어버린 소설가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사색 대신 검색에 만족하면서 가축이 되어버린 인터넷 이용자가 시를 읽거나 생사와 관련된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환경관리사회’의 젊은 오타쿠 ‘잉여’들은 스스로 배를 가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오직 ‘가스통 할배’들만 직접 행동한다고 들었다. 아름다움도, 죽음도, 에로스의 찬란함도 내가 할복할 때 모두 함께 죽어버렸다. “하시야마 슈조의 낙엽이 생활인 것처럼/ 5·16 이후의 나의 생활도 생활이다/ 복종의 미덕!/ 사상까지도 복종하라!/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필시 웃을 것이다/ - 당연한 일이다”(김수영, ‘전향기’).
일본에서 1980년대에 등장한 만화 캐릭터 오타쿠, 인터넷 세상에서 ‘모에 캐릭터’에 열광하는 ‘덕후’들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단순화되고 즉물화된 애완동물들이다. 2010년 내가 주는 ‘미시마 유키오상’을 받은 아즈마 히로키는 인터넷 세상을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라 칭했다. 인터넷 세상은 자기 머리로 스스로 생각하던 사람들을 반복과 작은 차이에 열광하는 가축으로 길들이고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인 시뮬라크르를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축적하고 교환하면서 오타쿠는 빅데이터의 애완동물이 된다. 아즈마 히로키는 데이터베이스가 지배하는 ‘아키텍처형 관리사회’에서 ‘동물이 되고 있는 오타쿠’를 보았다. “전자 밀실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나르키소스”는 “부드럽게 관리”된다.
일본의 사상은 내용 자체의 충실도가 아니라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꼭 의식적이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여 내용에 비해 행위에 압도적인 중점이 놓여 있는 상태가 바로 일본사상의 특색이다”(사사키 아쓰시, <현대일본사상>, 19쪽). 내가 일본의 사상가 반열에 드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 생각과 사유의 내용보다 내가 행한 퍼포먼스 행위가 더 위대하다. 자위대에 난입하는 용기, 단신으로 도쿄대에 뛰어들어가 학생들과 대담을 나누는 만용, 할복하여 자살하는 최후의 죽음까지 내 삶은 퍼포먼스로 점철되어 있다. 내 소설조차 일종의 퍼포먼스다. 나는 사상의 내용보다 수행이 앞섰던 사이비 지식인의 전위였다. 한국의 근대를 상징하는 김수영 시인은 술 먹고 집으로 돌아가다 승합버스에 치여 죽었다. 그것은 사고였다. 하지만 나는 자위대 본부에 진입하여 배를 가르지 않았는가. 시인의 죽음은 순수 사고였다. 나의 죽음은 퍼포먼스였기 때문에 그것은 사건이다. 나는 사건을 일으키고 싶었다. 나는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찾아 죽음으로 실천했다. 적어도 내 육체와 생각은 분리되지 않았음을 죽음으로 보여주었다. 이게 내 힘이자 매력 아니겠는가.
일본의 사상 퍼포먼스는 과거의 낡은 것과 자신의 새로움 사이에 날카로운 대립항을 제시한다. 그래서 내용 없이 돌출하는 행동과 부흥회 비슷한 강연이 사상계 진입의 지름길이 된다. 요즘은 아예 시뮬라크르 사상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장에서 팔리고, 퍼포먼스 잘하고, 강연 무대에서 연기 좀 잘하고, 내가 새로운 것 하나 들고 나왔다고 소리치면 사상가로 등극할 수 있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게 퍼포먼스 없이는 사이비 사상가의 문턱에도 진입하지 못한다. 요즘은 그래도 염치가 있는지 사상가란 말은 차마 못 쓰고 스스로를 철학자라 칭하는데, 그 또한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당신들의 인터넷 세상에서는 ‘인터넷 논객’들이 출몰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사무라이나 자객처럼 그들은 서로 결투를 하거나 뒤통수를 때리거나 딴지를 걸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유명해진다. 시작도 모르는 것들이 ‘끝장 토론’을 들먹이며 죽기살기로 물고 늘어진다. 대중이 열광하여 따르면서 ‘형아’가 되고, 그 ‘형아’를 쫓아다니면서 씹으면 그도 덩달아 논객이 된다. 그런 게 사상가를 대신해 대중을 이끄는 한국 인터넷 논객의 모습이다.
3. 육체와 초월
내가 도쿄대 교양학부 900호 교실로 찾아갔던 당시 도쿄대 전공투 학생들은 나를 ‘근대 고릴라’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는 고릴라보다는 원시 인간에 가깝다. 나는 원시의 몸에 기대어 훌륭하고 힘센 근대 초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적어도 요즘 인터넷 세상의 포스트모던한 동물이나 가축은 아니었다. 나는 체제의 끝장을 보고 싶었다. 집권당은 더 반동적이 되고 야당은 더 폭력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끝장이 난다.
나는 육체와 칼로 세상을 초월하려 시도했다. 나는 정신이 아니라 육체를 확장하고 싶었다. 당신들은 육체 바깥으로 1㎜라도 나갈 수 있나? 시나 사유로 정신을 확장하여 세계를 포괄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들이 존경하는 시인은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김수영, ‘절망’)고 노래했다. 나는 구원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와 반대의 방향을 세웠다. 육체를 강화하고 확장하여 행동하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칭송했던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가 “아름다운 단단함”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피지 못한 미래의 씨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김수영, ‘사랑의 변주곡’)라는 사랑의 변주곡 또한 연주되지 못하는 불모의 씨다. 멋진 환상이지만 그런 단단함에서는 생명이 나오지 않는다. 사쿠라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는 풍경을 봄마다 만나본 내게 살구씨 사랑꿈은 개꿈에 불과하다. 당신들의 시인이 죽기 얼마 전부터 죽은 전통의 ‘씨’가 아니라 살아있는 ‘풀’을 찾아나선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뒤집힌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그대들이 돌아갈 전통의 ‘복사씨와 살구씨’는 없다.
몸이 허약했던 시인은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씩 옆으로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그러나 스스로 몸을 만든 나는 내가 원할 때 절정에 설 수 있었다. “나는 바리케이드나 돌이 아주 직접적으로 자연으로 복귀하는 감각을 제공한다고 본다. 나는 전공투 어린 아이들보다 좀 더 진보한 문명을 갖고 있기에 일본도로 복귀하였다”(미시마 유키오, 같은 책, 39쪽). 데이터베이스가 모든 것을 편평하게 만드는 인터넷 세상에서 당신들이 만질 수 있는 육체와 직접적 자연으로 복귀하지 않는 한 앞으로 별 희망이 없을 거다. 조언 하나 하자. 육체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투쟁을 조직해라. 내가 배를 갈랐던 것처럼 직접 행동을 펼쳐라. 내가 말하는 자연은 짱돌과 아스팔트와 육체와 폭력이다. 나는 결국 일본도로 내 배를 가르는 육체와 자연의 연기를 실현해 보여주지 않았나. 자살을 위한 “나의 주도면밀한 준비는, 오로지 행위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최후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잉여물에 불과하다. 여기까지가 나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아니다. 어째서 나는 굳이 내가 아니려고 하는 것일까?”(미시마 유키오, <금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