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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정등각, 無上正等覺, 위없는 바른 깨달음 , 아뇩다라삼먁삼보리

Jobs9 2022. 2. 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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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불교에서 말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 즉, 無上正等覺(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무슨 뜻인가에 대해 선문답을 피하고, 경전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는 것도 피하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無上은 위가 없다 즉 최고라는 뜻이고 正은 바르다라는 뜻이며 等은 평등하다는 뜻이고 覺은 깨달음이라는 뜻이 됩니다. 無上正等覺에서 앞에 달린 無上正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버리면 결국 等覺만 남습니다. 그렇다면 등각이란 무슨 뜻인가를 알아야 하겠지요. 

 

等이란 다들 아시다시피 平等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등하다는 것은 불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差別을 두지 않으며 또는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평등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평등의 의미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수도 있습니다. 남녀가 평등하고, 사람이 평등하여 노예가 없으며 왕이 따로 없다는 인간 세상사의 평등(萬民平等思想)이라고 생각하면 평등이라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평등은 획일적인 평등, 원론적인 평등과는 다릅니다.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평등의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풀수없는 인류의 숙제가 될것입니다. 가난과 부유, 성공과 실패, 불행과 행복, 이 모든 것들이 대립적이고 비교가 되는데 어떻게 평등을 이룰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평등은 선택의 기준 즉 좋고 나쁨을 초월한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는 가난으로부터 부자가 되는법을 가르치고, 실패하지 않고 출세하는 법을 가르치며 불행해지는 방법이 아닌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양분법에서는 결코 어느 한쪽도 버릴수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불행없이 어찌 행복을 알고, 불편없이 어찌 편리함을 취할수 있겠습니까 편리란 추구하면 추구할 수록 계속 불편함만 생산될 뿐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될수록 자신보다 더 부자들과 비교하게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말한 평등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행복과 불행이 평등하다는 이야기 일까요, 아니면 행복과 불행을 평등하게 즉, 똑같은 비중으로 받아드리라는 말일까요. 앞서 말했듯이 세상은 상대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남녀, 陰陽, 밤낮, 삶과 죽음 등 이런 것들을 부정하지 말고 똑같은 비중으로 평등 받아드리고 서로 분리될수 없는 것으로 받아드리라는 뜻이 바로 평등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平等의 智慧를 의미하며, 부처님이 설한 中道, 즉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平等함을 의미합니다.


覺이란 깨달음을 의미하고 깨달음은 본래 자성을 깨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卽心是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처는 신도 아니고 동떨져있는 존재도 아니며, 시험에 합격하면 주어지는 자격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본래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따라서 等覺이란 우리말로 번역하면 '평등한 마음'이라는 뜻이 됩니다. 결국 無上正等覺이란 '본래 고요한 평등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부처님만 깨우친 신비한 진리는 없으며 부처님이 만들어낸 진리는 없습니다. 그 진리는 원래부터 우리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등한 마음은 어떻게 생겨나느냐 하는 것이 다음 문제라 하겠습니다. 화두를 풀고, 참선을 하고, 절에가서 기도하고, 불경을 달달 외워야할까요? 평등한 마음을 보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행방법도 다 좋습니다. 어떤 한가지 수행법이 더 좋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다시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이되고 평등한 마음가짐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평등한 마음을 찾지않고 오히려 방편에 집착하고 알음알이를 구하려 한다면 어떠한 방편도 병이 되고 말것이며 약이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自性에 萬法이 있다고 합니다. 이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번뇌와 보리,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삶과 죽음, 善과 惡의 문제가 자신의 성품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것은 좋은 것이고, 저것은 나쁜것이다' 라는 二分法的 思考方式을 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평등한 마음에서는 좋고 나쁜것 어느쪽에도 치우치면 안됩니다. 이것은 산술적인 평균 즉 중간에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이러한 이분법적으로 대립되는 두 극단을 취하지말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곧 평등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等覺을 이루려한다면 번뇌를 없애려 하지도 말것이며 보리를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보리를 추구하지 않는데 어떻게 깨우친단 말인가? 라는 반론이 나오게됩니다. <신심명>의 첫 구절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아서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라는 말씀처럼 선택을 하는 분별심이 생기는 순간 평등한 마음은 사라진 것입니다. 초보자들에게는 이 말이 어렵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꾸준히 공부하여 안목을 높이면 이해할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말을 따지고 들 시간에 차라리 오로지 화두에 전념하던지 염불에 전념하는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도 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진정으로 화두를 참구 하고 염불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화두를 참구하고 있다'는 생각이나 '염불을 하고있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일어난다면 이미 화두참구나 염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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