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앙정가(俛仰亭歌)
송 순
작품 해제
이 작품은 작자가 41세 때 향리(鄕里)인 전남 담양의 제월봉 아래 면앙정(俛仰亭)이란 정자를 짓고,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 노니는 자신의 풍류 생활을 노래한 서정 가사이다. 자연을 즐기는 서정적 자아의 풍류 생활이 물씬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내용, 사상, 표현 면에서 정철(鄭澈)의 ‘성산별곡(星山別曲)’과 ‘관동별곡’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다. 면앙정(俛仰亭)이 있는 제월봉(霽月峰)의 형세와 면앙정의 모습을 그린 다음, 그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근경(近景)에서 원경(遠景)으로 묘사하고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의 계절 변화에 따라 짜임새 있게 묘사하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절경(絶景)에서 묻혀 노니는 지은이의 호방한 정회(情懷)를 노래하였다.
无等山(무등산) 한 활기 뫼히 동다히로 버더 이셔 멀리 쳐 와 霽月峯(제월봉)이 되어거 無邊大野(무변 대야)의 므 짐쟉 노라 닐곱 구 움쳐 므득므득 버럿 . 가온대 구 굼긔 든 늘근 뇽이 선을 야 머리 언쳐시니
구절 풀이
* 无等山(무등산) ~ 되어거 : 광주(光州)에 있는 무등산을 멀리 떼어 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다는 것으로, 제월봉의 근원을 밝힌 부분이다 * 활기 : 활개가. 지맥(地脈)이 * 동다히 : 동쪽으로. ‘다히’는 ‘편, 쪽’이란 뜻의 명사 * 버더 이셔 : 뻗어 있어 * 쳐 와 : 떼어 버리고 나와 * 제월봉 : 전남 담양에 있는 산(중심소재) * 無邊大野(무변대야) ~ 노라 : 주체는 제월봉으로, 의인화된 표현이다 * 무변대야(無邊大野) : 끝없이 넓은 들판 * 므 짐쟉노라 :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의인법) * 닐곱 구 : 일곱 구비 * 움쳐 : 한 데 뭉쳐 * 므득므득 : 무더기무더기. 우뚝우뚝 * 버럿 : 벌여 있는 듯 * 가온대 ~ 언쳐시니 : 제월봉의 일곱 굽인 중 가운데 굽이를 선잠을 막 깬 늙은 용의 머리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 굼긔 : 구멍 * 늘근 뇽 : 늙은 용이(원관념: 제월봉) * 언쳐시니 : 얹었으니
현대어 풀이
무등산 한 줄기 지맥(地脈)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무등산을) 멀리 떼어 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없는 넓은 들에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일곱 굽이가 한데 뭉쳐 우뚝우뚝 벌여 놓은 듯, 그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혀 놓은 듯하며,
너바회 우 松竹(송죽)을 헤혀고 亭子(정자) 언쳐시니 구름 靑鶴(청학)이 千里(천 리)를 가리라 두 래 버렷 . 玉泉山(옥천산) 龍泉山(용천산) 린 믈이 亭子 압 너븐 들 올올히 펴진 드시 넙든 기노라 프르거든 희디마나
구절 풀이
* 너바회 : 너럭바위. 넓고 평평한 바위 * 헤혀고 : 헤치고 * 언쳐시니 : 얹었으니. 지었으니 * 구름 ~ 버렷 : 면앙정의 모습을 천 리를 가려고 두 나래를 편 청학에 비유하여 표현함. ‘청학’의 원관념은 면앙정, ‘래’의 원관념은 면앙정의 지붕 * 가리라 : 가려고 * 버렷 : 벌린 듯 * 린 : 내리는, 흐르는(현재 시제) * 너븐 들 : 넓은 들에 * 올올(兀兀)히 : 끊임없이 * 넙든 ~ 희디 마나 : (면앙정 앞의 시냇물이) 넓거든 길지나 말고, 푸르거든 희지나 말지. 넓으면서도 길게 뻗쳐 있는 듯하고, 푸르면서도 흰 듯하다. 대구와 대조의 표현으로, 후대에 지어진 정철의 ‘관동별곡’에 ‘거든 뛰디 마나, 셧거든 솟디 마나’, ‘거든 조티 마나, 조커든 디 마나’ 등으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어 풀이
넓고 편편한 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혀 놓았으니, 마치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 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다. 옥천산, 용천산에서 내리는 물이 정자 앞 넓은 들에 끊임없이 퍼져 있으니, 넓거든 길지 말거나, 푸르거든 희지나 말거나,
雙龍(쌍룡)이 뒤트 긴 깁을 폇 어드러로 가노라 므 일 얏바 로 밤즈로 흐르 므조친 沙汀(사정)은 눈치 펴졋거든 어즈러온 기러기 므스거슬 어르노라 안즈락 리락 모드락 흣트락 蘆花(노화)를 이 두고 우러곰 좃니뇨.
구절 풀이
* 雙龍(쌍룡)이 ~ 폇 : ‘쌍룡’과 ‘깁’은 시냇물의 비유적 표현 * 뒤트 : (몸을) 뒤트는 듯 * 긴 깁을 폇 : 긴 비단을 쫙 펼친 듯, ‘깁’의 원관념은 시냇물 * 어드러로 : 어디로 * 므 : 무슨 * 얏바 : 바빠서 * 로 : 닫는 듯(달리는 듯) 따르는 듯 * 밤즈로 : 밤낮으로 * 므조친 : 물 따라 펼쳐져 있는 * 沙汀(사정) : 백사장 * 펴졋거든 : 펼쳐져 있거든 * 어즈러온 기러기 : 어지럽게 나는 많은 기러기는 * 므스거슬 : 무엇을 * 어르노라 : 통정(通情)하려고 * 안즈락 ~ 흣트락 :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함께 어울러 날아다니고 있는 기러기들의 모습을 표현 * 안즈락 리락 모드락 흣트락 : 앉는 듯, 내리는 듯, 모이는 듯, 흩어지는 듯 * 盧花(노화) : 갈대 * 우러곰 : 울면서 * 좃니뇨 : 따라다니느냐
현대어 풀이
쌍룡이 몸을 뒤트는 듯, 긴 비단을 가득하게 펼쳐 놓은 듯, 어디를 가려고 무슨 일이 바빠서 달려가는 듯, 따라가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 듯하다. 물 따라 벌여 있는 물가의 모래밭은 눈같이 하얗게 펴졌는데, 어지럽게 나는 기러기는 무엇을 통정(通情)하려고 앉았다가 내렸다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울면서 서로 따라 다니는고?
너븐 길 밧기오 긴 하 아 두르고 거슨 뫼힌가 屛風(병풍)인가 그림가 아닌가. 노픈 즌 근 닛 숨거니 뵈거니 가거니 머물거니 어즈러온 가온 일흠 양야 하도 젓티 아녀 웃독이 셧 거시 秋月山(추월산) 머리 짓고 龍龜山(용구산) 夢仙山(몽선산) 佛臺山(불대산) 魚登山(어등산) 湧珍山(용진산) 錦城山(금성산)이 虛空(허공)에 버러거든 遠近(원근) 蒼崖(창애)의 머믄 것도 하도 할샤.
구절 풀이
* 너븐 길 밧기오 : 넓은 길 밖 * 두르고 ~ 아닌가 : 넓고 먼 하늘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의 형세를 묘사 * 거슨 : 꽂은 것은, 꽂힌 것은 * 그림가 아닌가 : 그림인가 그렇지 않은가 * 근 닛 : 끊어진 듯 이어진 듯 * 일홈 ~ 아녀 :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 있는 모양을 일컫는 표현이다 * 일홈 양야 : 이름 난 체하여, 잘난 체하여 * 젓티 : 두려워하지 * 웃독이 : 우뚝하게 * 秋月山(추월산) ~ 錦城山(금성산)이 : 담양 부근에 있는 산들이 * 머리 짓고 : 선두(先頭)로 해서, 머리를 이루고 * 버러거든 : 벌려 있거든 * 창애(蒼崖) : 푸른 언덕 * 머믄 것도 : 머문 것도, 볼 만한 것도 * 하도 할샤 : 많기도 많구나.
현대어 풀이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 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지는 듯 잇는 듯, 숨기도 하고 보이기도 하며,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며, 어지러운 가운데 유명한 체하여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뚝 선 것이 추월산을 선두(先頭)로, 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어져 있는데, 멀고 가까운 푸른 언덕에 머문 것(볼 만한 경치)도 많기도 많구나.
흰구름 브흰 煙霞(연하) 프르니 山嵐(산람)이라. 千巖(천암) 萬壑(만학)을 제 집을 삼아 두고 나명셩 들명셩 일도 구지고.오르거니 리거니 長空(장공)의 나거니 廣野(광야)로 거너거니 프르락 블그락 여트락 디트락 斜陽(사양)과 섯거디어 細雨(세우)조차 리난다.
구절 풀이
* 브흰 연하(煙霞) : 뿌연 안개와 놀 * 프르니 : 푸른 것은 * 산람(山嵐) : 산 아지랑이 * 千庵(천암) 萬壑(만학) : 수많은 바위와 골짜기 * 나명셩 ~ 구지고 : ‘연하(煙霞)’와 ‘산람(山嵐)’이 바위와 골짜기에 끼었다 사라졌다 함을 표현 * 나명셩 들명셩 : 나면서 들면서. 울림소리인 ‘ㅇ’음의 첨가로 운율(리듬감)을 살린 표현 * 일도 구지고 : 아양도 부리는구나 * 여트락 디트락 : 옅은 듯 짙은 듯 * 섯거디어 : 섞어져서 * 세우(細雨) : 가랑비. 15세기 표기로는 ‘비,’ * 리다 : 뿌리는구나
현대어 풀이
흰 구름과 뿌연 안개와 놀, 이 중에서 푸른 것은 산 아지랑이로다. 수많은 바위와 골짜기를 제 집을 삼아 두고. 나가고 들어오며 아양을 떠는구나. 오르고 내리며 넓고 먼 하늘에 떠나기도 하고 넓은 들판으로 건너가기도 하여, 푸른 듯 붉은 듯, 옅은 듯 짙은 듯 석양에 지는 해와 섞이어 가랑비마저 뿌리는구나.
籃輿(남여) 야 고 솔 아 구븐 길노 오며 가며 적의 綠楊(녹양)의 우 黃鶯(황앵) 嬌態(교태) 겨워 고야. 나모 새 지어 綠陰(녹음)이 얼린 적의 百尺(백 척) 欄干(난간)의 긴 조으름 내여 펴니 水面(수면) 凉風(양풍)이야 긋칠 줄 모르가.
구절 풀이
* 남녀(藍輿) : 지붕이 없는 가마 * 야 : 재촉하여 * 구븐 길노 : 굽은 길로 * 오며 가며 적의 : 오고 가고 할 때에 * 祿楊(녹양) : 푸른 버들 * 黃鶯(황앵) : 노란 꾀꼬리 * 나모 새 ~ 모르가 : 녹음이 짙은 더운 계절이지만 면앙정 난간에 서면 바람이 서늘하여 낮잠을 즐기는 모습을 묘사함 * 나모 새 : 나무 사이 * 얼 적의 : 무르녹은 때에 * 百尺(백 척) 欄干(난간) : 높은 난간(과장법) * 양풍(凉風) : 서늘한 바람
현대어 풀이
지붕이 없는 가마를 재촉하여 타고 앉아 소나무 아래 굽은 길로 오며 가며 하는 때에, 푸른 버들 사이에서 지저귀는 꾀꼬리는 흥에 겨워 교태(嬌態)로다. 나무 사이가 빽빽하게 우거져 녹음이 엉긴 때에 백 척(尺)의 높은 난간에서 긴 졸음을 내어 펴니, 물 위의 서늘한 바람이 그칠 줄 모르고 부는구나.
즌 서리 딘 후의 산 빗치 錦繡(금수)로다. 黃雲(황운)은 엇디 萬頃(만경)의 펴겨 디오. 漁笛(어적)도 흥을 계워 롸 브니다.
구절 풀이
* 즌 서리 ~ 브니다 :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정경과 가을의 풍요로움 속에서 밤낚시를 하는 흥취 묘사 * 즌 서리 : 된서리(계절감을 드러낸 소재) * 딘 후의 : 빠진 후에, 다 내린 후에 * 錦繡(금수) : 비단. 은유법(원)단풍 든 산 * 황운(黃雲) : 누런 구름. 여기서는 누렇게 익은 곡식들을 은유법으로 표현한 것임 * 萬頃(만경) : 넓은 들판 * 漁笛(어적) : 어부의 피리소리 * 롸 : 달을 따라 줄곧 * 브니다 : 부는 것인가(‘니’는 행동의 지속을 나타냄)
현대어 풀이
된서리 걷힌 후에 산 빛이 수놓은 비단처럼 아름답구나. 누렇게 익은 곡식은 또 어찌 넓은 들에 퍼져 있는고? 어선에서 흘러나오는 피리 소리도 흥을 이기지 못하여 달을 따라 부는 것인가?
草木(초목) 다 진 후의 江山(강산)이 몰커 造物(조물)리 헌야 氷雪(빙설)로 며내니 瓊宮瑤臺(경궁요대)와 玉海銀山(옥해은산)이 眼低(안저)의 버러셰라. 乾坤(건곤)도 가열사 간 대마다 경(景)이로다 .
구절 풀이
* 草木(초목)이 ~ 경이로다 : 눈에 덮인 자연경관을 바라보는 흥겨움 묘사 * 몰커늘 : (눈에) 묻혀 있거늘 * 조물(造物) : 조물주 * 헌야 : 야단스러워 * 며내니 : 꾸며내니, 만들어내니 * 경궁요대(瓊宮瑤臺) : 아름다운 구슬로 꾸며 놓은 궁궐과 대(臺). 눈에 덮인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비유(미화법) * 옥해은산(玉海銀山) : 옥 같은 바다와 은 같은 산. 아름다운 바다와 눈 덮인 산을 비유(미화법) * 안저(眼底) : 눈 아래, 눈앞에 * 버러셰라 : 벌여 있구나. 펼쳐 있구나 * 건곤(乾坤) : 하늘과 땅, 온 세상 * 가열사 : 풍성하구나. 넉넉하구나 * 간 대마다 : 간 곳마다, 마주치는 곳마다 * 경(景)이로다 : 경치로구나. 아름다운 경치로구나
현대어 풀이
초목이 다 떨어진 후에 강과 산이 눈에 묻혔거늘 조물주가 야단스러워 얼음과 눈으로 자연을 꾸며 내니, 경궁요대와 옥해은산이 눈 아래 펼쳐 있구나. 온 세상이 풍성하여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관이로다.
人間(인간) 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업다. 이것도 보려 고 져것도 드르려코 도 혀려 고 도 마즈려코 밤으란 언제 줍고 고기란 언제 낙고 柴扉(시비)란 뉘 다드며 딘 곳츠란 뉘 쓸려뇨. 아이 낫브거니 나조라 슬흘소냐. 오리 不足(부족)커니 來日(내일)리라 有餘(유여)랴. 이 뫼 안자 보고 뎌 뫼 거러 보니 煩勞(번로) 의 릴 일이 아조 업다. 쉴 사이 업거든 길히나 젼리야. 다만 靑藜杖(청려장)이 다 므듸여 가노라.
구절 풀이
* 人間(인간) ~ 겨를 업다 : 번거로운 속세를 떠났지만 자연을 완상(玩賞)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습 묘사 * 인간(人間) : ‘人生世間(인생세간)’의 준말. 인간 세상. 속세 * 드르려코 : 들으려하고 * 도 ~ 마즈려코 : 자연 속에서의 풍류 생활을 서술 * 혀려 고 : 쏘이려하고 * 마즈려코 : (달을) 맞으려하고 * 뉘 다드며 : 누가 닫을 것이며 * 딘 곳츠란 : 떨어진 꽃은 * 아이 ~ 슬흘소냐 : 아침나절에도 아름다운 자연을 완상하느라 시간이 부족한데 저녁이라고 자연 경치가 싫을쏘냐? * 낫브거니 : 부족한데 * 나조라 : 저녁이라고. 저녁에는 * 슬흘소냐 : 싫을쏘냐? 즉 좋다 * 번로(煩勞) : 번거로운 * 릴 일이 : 버릴 일이, 즉 생략하고 싶은 일이 * 쉴 사이 ~ 전리야 : 흥취를 즐기기에 바빠서 친구들에게 면앙정 찾아오는 길을 알려 줄 시간도 없다 * 길 : 자기가 즐기고 있는 곳까지 찾아오는 경로(經路) * 젼리야 : 전하겠는가 * 청려장(靑藜杖) :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 * 므듸여 : 닳아져서 무뎌짐
현대어 풀이
인간 세상을 떠나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쏘이려 하고, 달도 맞으려고 하니,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으며,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 것인가? 아침나절에도 자연을 완상하느라고 시간이 부족한데 저녁이라고 자연 경치가 싫을쏘냐? 오늘도 경치를 구경할 시간이 부족한데 내일이라고 넉넉하랴? 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 번거로운 마음이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은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쉴 사이가 없는데 다른 이들이 여기를 찾아올 길이나마 전할 틈이 있으랴. 다만 명아주 지팡이 하나가 다 무디어 가는구나.
술이 닉어거니 벗지라 업슬소냐. 블며 이며 혀이며 이아며 온가짓 소로 醉興(취흥)을 야거니 근심이라 이시며 시이라 브트시랴. 누으락 안즈락 구브락 져츠락 을프락 람락 노혜로 놀거니 天地(천지)도 넙고넙고 日月(일월)도 가다. 羲皇(희황) 모러니 이적이야 긔로고야 神仙(신선)이 엇더턴지 이 몸이야 긔로고야.
구절 풀이
* 닉어거니 : 익었으니 * 벗지라 : 벗이야, 친구가 * 블며 : 부르게 하며 * 이며 : (악기를) 타게 하며 * 혀이며 : 켜게 하며 * 이아며: 흔들며 * 야거니 : 재촉하니, 돋구니 * 브트시라 : 붙어 있으랴 * 누으락 안즈락 :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 구브락 져츠락 : (몸을) 굽히기도 하고 젖히기도 하고 * 람락 : 휘파람을 불기도 하며 * 노혜로 : 마음 놓고. 거리낌 없이 * 羲皇(희황) ~ 긔로고야 : 현재의 생활에 대한 만족감 표현 * 희황(羲皇) : 중국 상고 시대의 제왕인 복희씨. 태평성대를 뜻함 * 모러니 : 모르더니 * 이적이야 : 이때야말로 * 긔로고야 : 그것이로구나. 그때로구나 * 엇더턴지 : 어떤 것인지(몰랐는데)
현대어 풀이
술이 익었거니 벗이 없을 것인가. 노래를 부르게 하며, 악기를 타게 하며, 악기를 끌어당기게 하며, 악기를 흔들며 온갖 아름다운 소리로 취흥을 재촉하니, 근심이 있을 것이며 시름이 붙어 있을 수 있으랴. 누웠다가 앉았다가 구부렸다 젖혔다가, 시를 읊었다가 휘파람을 불었다가 마음껏 노니, 천지도 넓고 넓으며 세월도 한가하다. 복희씨의 태평성대를 모르고 지내더니 이때야말로 그것이로구나. 신선이 어떤지 몰랐는데 이 몸이야말로 신선이로구나.
江山風月(강산 풍월) 거리고 내 百年(백 년)을 다 누리면 岳陽樓(악양루) 샹의 李太白(이태백)이 사라오다. 浩蕩(호탕) 情懷(정회)야 이에서 더소냐. 이 몸이 이렁 굼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구절 풀이
* 강산풍월(江山風月) : 아름다운 자연. 제유법 * 거리고 : 거느리고 * 백년(百年) : 한평생(옛날엔 인간의 최대 수명을 백년으로 생각함) * 악양루(岳陽樓) : 중국 악양의 악주성 서문 위에 있는 성루(城樓) * 호탕(浩蕩) 정회(情懷) : 넓고 끝없는 심정과 회포 * 이에서 : 이보다(‘에서’는 비교부사격조사) * 이 몸이 ~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임금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은 조선 전기 사대부 시가의 일반적 경향이며, 성진의 ‘감군은(感君恩)’과 맹사성의 ‘강호사시가’ 등에도 나타난다 * 이렁굼도 : 이렇게 지내는 것도. 이러함도 * 역군은(亦君恩)이샷다 : 또한 임금의 은혜이도다
현대어 풀이
강산풍월(江山風月)을 주위에 거느리고 내 평생을 다 누리면 악양루에 이태백이 살아온다 한들 호탕한 정회야말로 나보다 더할 것인가.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도다.
핵심 정리
어조: 풍류를 즐기는 호방한 어조
표현: 활유, 의인, 직유, 은유, 대구, 열거, 과장, 대조, 반복 등 다양한 기법 사용
제재: 면앙정(俛仰亭)의 아름다운 자연
주제: 대자연 속에서의 풍류와 임금의 은혜에 대한 예찬
의의: 강호가도(江湖歌道)를 확립한 노래로, 정극인의 ‘상춘곡’의 계통을 잇고, 정철의 ‘성산별곡(星山別曲)’에 영향을 주었다.
송순(宋純 1493-1583)
호(號)는 면앙정(俛仰亭), 기촌(企村). 조선 중종-선조 때의 문신. 1519년(성종 1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이후 사간원 정언, 홍문관 직제학,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전주부윤, 나주목사 등을 지냈고 77세(선조 2)에 한성부윤, 의정부 우참찬 겸 춘추관사를 끝으로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로 물러났다. 치사(致仕)하고 담양(潭陽) 제월봉 아래에 석림정사(石林精舍)와 면앙정(俛仰亭)을 짓고 가곡을 지었다. 교우로 신광한·성수침·이황·박우·정만종·송세형 등과 문하인사로 김인후·기대승·고경명·정철·임제 등이 있다. 그는 호남 출신이지만 영남 사림의 학통을 이어받은 박상·박우 형제의 영향을 받았으며, 선산부사로 재직할 때 그곳의 사람들과 교유하는 등, 학문적인 면은 사림파에 가까웠다고 한다. 또한 음률에 밝아 가야금을 잘 탔고 풍류를 아는 호기로운 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황진이와 함께 시가 문학의 정수를 계승하여 명작들을 남겼다. 저서로는 <기론집>과 <면앙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면앙정가’가 있다.
해설
작자가 41세 때 향리(鄕里)인 전남 담양의 제월봉 아래 면앙정(俛仰亭)이란 정자를 짓고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산수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노래한 작품이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흥취와 풍류 생활을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읊고 있다.
이 작품은 면앙정의 지세(地勢)로부터 시작하여 면앙정의 경치, 4계절의 경치 그리고 서정적 자아의 신선적 풍류 생활이 펼쳐지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강호에서의 풍류 생활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 노니는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면앙정에서의 풍류 생활을 노래하면서도 유가(儒家)의 도리를 지켜 ‘亦君恩(역군은)’을 언급함으로써 임금에 대한 충절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작자의 풍모가 호남 가단(湖南歌壇)의 시조이자 강호가도(江湖歌道)를 확립한 분으로 추앙받는 요인이 되었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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