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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오웰 1984 비교

Jobs 9 2022. 7. 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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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멋진 인간들이여!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들인가! 오, 멋진 신세계여..."
ー 야만인 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인용하며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1984 및 우리들과 함께 디스토피아 소설의 3대 고전이다. 과학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체주의 하에 통제된 세속적 인본주의라 볼 수 있다. 소설상 시간은 A.F. 632년인데(After Ford) 헉슬리는 과학의 발전의 역사를 보자면 약 600년 후 미래는 "멋진 신세계"와 같은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낸 연도다. 작품에 묘사된 디스토피아에 훨씬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현대 사회 덕분에 예언서쯤의 고전문학이 되면서 SF소설의 바이블에 올랐다.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로 분류되면서도 두 소설이 그리는 디스토피아가 현격하게 다르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닐 포스트먼에 따르면, 오웰이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공포와 기만이 지배하는 세계이며, 올더스 헉슬리가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욕망과 말초적인 자극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오웰이 책을 금지할 자들을 두려워했다면, 올더스 헉슬리는 아무도 책을 읽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책을 금지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을 두려워했다고 할 수 있겠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오웰은 책을 읽지 못하는 세계를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책을 읽지 않는 세계를 두려워한 것.

 

배경 및 줄거리

대전쟁 이후 거대한 세계정부가 들어서, 모든 인간은 인공 수정으로 태어나며 이를 통해 세계인구는 20억 명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은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그들의 지능에 따라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가 결정되어있다.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으로 나뉘는데, 대체적으로 알파 계급은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엘리트 계층, 베타 계급은 행정 업무를 맡는 중산층, 감마 계급은 하류층에 해당하며 델타나 엡실론 계급은 사실상 몇 가지 유전자 타입을 가지고 고의로 비정상적으로 작은 키, 추한 외모, 지적장애를 유발한 채 양산되어 단순 노동을 담당한다. 2000년대 이후 현대인이 본다면 로봇이나 디지털화된 공정으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 정도도 모두 저능아 클론들이 하는 것을 보면 소설 상의 세계에서 인간은 그저 사회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인류는 태아 시절부터 조건반사와 수면 암시 교육으로 자신의 계급에 맞는 세뇌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  

촉감 영화라고 하는, 포르노에서 촉감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오락 수단이 주요 여가 생활의 하나이며, 모든 성애(性愛)는 기본적으로 자유롭다. 심지어 7살짜리 아이들이 성놀이를 통해 성을 학습하는데, 오늘날처럼 결혼을 통해서 정해진 파트너와만 섹스를 하는 것이나 섹스를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이 추잡하다고 생각한다. 

문명인에게는 소마라고 불리는 일종의 마약이 주어지는데, 이것을 복용하면 그야말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공장제 대량 생산의 고안자 헨리 포드를 신적 존재로 받들며 첫번째 포드 모델 T의 생산일을 A.F.(After Ford)라는 연도의 기준으로 삼는다. 작중에서는 '신'이란 말이 들어가는 격언에서 '신'만 '포드님'으로 바꿔서 쓰는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위가 잘린 채 포드 모델 T를 상징하는 'T'자로 남아있다. 

얼핏 보기엔 진짜 멋진 신세계로 보인다. 독자들 중에서도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은지 해외의 SF 세계관 관련 스레드에서는 "정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거라면 차라리 '멋진 신세계' 같은 상황이 나을거다"라는 말들이 종종 나오곤 한다. 1984나 매트릭스처럼 세계관이 완전 시궁창인 것들에 반해 멋진 신세계는 상당히 얌전한 편이고, 어찌됐든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라도 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세계는 21세기의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태생부터 신체 조건을 조작해 신분을 만들고, 그 신분에 맞추어 직장을 배분하기 때문에 원하는 지위에 오르지 못해 좌절할 일이 없다. 하위계급이라 해서 딱히 학대나 착취를 당하지도 않고 소마도 따박따박 배급받으므로 아무런 불만이 없다. 작중 소마 배급에 잠시 차질이 생기자 분위기가 험악해진 상황이 딱 한 번 있었으나 그나마 소마 물대포 세례를 받고 모두가 행복해 한다. 모든 물자는 철저하게 통제되어 생산되고 배분된다. 모든 오락 수단은 자유롭게 즐길 수 있으며 결혼은 없어지고 모든 섹스는 자유롭다. 이러한 점으로 공산주의 사회의 전체주의적 변종인 스탈린주의와 전체주의 사회를 기본 모델로 삼은 1984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위의 견해는 멋진 신세계의 '멋진'을 한쪽으로만 해석한 것일 뿐이다. 지능에 따라 신분을 만들며, 그 신분에 따라 사람들을 세뇌한다. 또한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핏 멋진 신세계일뿐 또다른 디스토피아가 맞다.. 갈등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강제적인 세뇌교육과 마약을 통해 없앤거라면 그게 긍정적인 것인가? 그런 사회를 진정 '갈등이 없는 사회'라고 말 할 수 있다면 거의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급의 막장 논리다. 현실의 예시로 들자면 북한도 겉보기엔 국민간 내부갈등이 없다. 이유는 당연하다. 말 안 들으면 매장/숙청시키고 철저히 세뇌시키기 때문이다. 괜히 디스토피아소설인 것이 아니다. 또는, 멋진 신세계의 디스토피아상이 그나마 괜찮아보이는 것은 작중 장면묘사의 초점이 알파~베타계급인 버나드와 그 주변인물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볼수도 있다. 작중에서 <저능화 조치와 주기적으로 배급되는 소마 알약으로 인해 그들 자신은 충분한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끼고 살게 되어있다>고 설명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현대인 독자가 보기에 이 삶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며, 만약 디스토피아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멋진 신세계 같은 디스토피아가 낫다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델타나 엡실론 계급의 삶이 아닌 알파나 베타 계급의 삶을 기준으로 보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등장인물들의 시각과 위치를 비교적 상위 계급으로 설정한 것은 이러한 모순적인 면을 소설에 반영하려 한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고, 세계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섬에 보내서 특정 사상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인 버나드 마르크스는 우연히 아직까지 이런 '문명 사회'가 정착하지 못한 야만인 거주 구역으로 갔다가 야만인 존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한직으로 추방하려는 국장의 시도를 물먹이기 위해, 국장이 임신을 시킨 뒤 야만인 거주 구역에 버린 여자와 그 여자의 아들을 국장 앞에 데려온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임신'이나 '출산', '어머니'나 '아버지' 등의 개념이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추잡하고 더러운 것이 되어 있다.(아예 그런 단어만으로 아주 상스러운 음담패설 취급이다.) 이 야만인 거주 구역은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를 보존해둔 지역이다. 작중 설명으로는 '굳이 비용을 들여 개척할 필요가 없어서 남겨둔 곳'이다. 존은 문명 사회에서는 이미 사라진 셰익스피어 등의 문학 작품을 읽어 왔었는데, 처음에는 아버지의 나라인 문명 사회를 동경하여 그들을 따라와 무스타파 몬드 총통과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존은 문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기가 원래 살던 곳의 방식으로 고행을 하면서 '문명인'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걸 견디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같이 따라온 야만인의 어머니 린다는 오랜만에 문명 세계로 돌아왔다는 기쁨과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비탄 등이 섞인 '위험한 감정'에 빠져(이 세계에서는 깊은 감정 그 자체를 위험 요소로 본다) 하루에 소마를 정량 몇 배씩을 과다 복용하며 몇 달간을 마약에 취해 누워 지내다가 그대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고는 영안실에 들어가 아이들의 '사회화'를 위한 교재가 되어 버리는데, 여기서 받은 문화 충격이 존이 '문명 사회'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난 불편한 편이 더 좋아요." 
"우린 그렇지 않아요." 통제관이 말했다. "우린 편안하게 일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 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무스타파 몬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좋을 대로 해요."
그가 말했다.
-한 챕터에 걸쳐 논쟁을 벌인 존과 무스타파 몬드의 대화의 마지막 부분. 소담출판사 안정효 역

 

 


1984와의 비교

미래를 얼마나 잘 예측했는지로 SF소설의 우위를 결정하는 시각은 곤란하다. '멋진 신세계'의 미래 예측이 '1984'의 예측보다 더 정확하다는 분석은 냉전이 종식된 90년대 말~21세기 이후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양대 진영이 극단적인 대립을 벌이던 냉전 시기만 해도 '1984'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역시 충분히 예언적이었고, 결국 북한과 중국은 문자 그대로 1984가 현실이 되었다. 이는 결국, 소위 '이성의 시대'의 끝자락이던 1930년대에 쓰여진 '멋진 신세계'가 기술의 발전이 곧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리라던 이전 시대의 믿음에 대해 의문을 던진 작품인 데 비해, 1949년에 쓰여진 '1984'는 당장 눈 앞에서 시작되고 있는 극단적인 적의와 광기, 감시의 시대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적 특성 역시 가진 작품이라는 차이를 통해 접근할 문제이지, 한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더 우월하다고 볼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쾌락과 과도한 정보에 통제당하는 사회는 어디까지나 한국이나 미국 등 자유가 보장된 국가의 시선에서 디스토피아인 것이다. 중국이나 북한 등 과도한 통제와 억압에 사람들이 꼼짝 못하는 사회도 엄연히 존재하며 그 규모도 작지 않다. 1984이든 멋진 신세계이든 미래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예언한 것은 마찬가지이며 두 작품 모두 사실성이 있다. 

또 이 부분에서는 독자가 접하는 '멋진 신세계'의 디스토피아상은 기본적으로 알파 계급 이상에 속하는 작중 인물의 관점을 통해 접하는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멋진 신세계가 제시하는 사회상은 그나마 1984의 음산한 사회상보다는 덜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알파 계급 이상인 버나드나 헬름홀츠등의 관점을 통해 보여진 세계상이다. 그리고 작중 각 계급의 구체적인 인구 비율은 안 나오지만 알파~엡실론의 다섯 계급 중 최상위 계급임을 생각하면, 멋진 신세계의 알파 계급은 1984로 치면 내부당원 정도의 강력한 특권계급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며, 1984에서도 내부당원인 오브라이언은 외부당원 윈스턴 스미스에 비하면 훨씬 여유롭고 덜 고통스러운 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묘사된다. 반면 멋진 신세계에서도 감마~엡실론 계급의 삶에 대한 묘사를 보면 (묘사의 양이 아주 제한적이긴 하지만) 알파계급(+베타계급인 레니나)의 삶에 대한 묘사와는 전혀 다르다. 물론 이는 '감시와 억압, 빈곤을 통한 지배' 대 '과잉과 무관심을 통한 지배' 라는 양 작품의 주제의식 대비에 비하면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지만 전혀 다른 관점과 방향에서 디스토피아를 조명한 두 작품의 사회상이라도 디스토피아의 형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동질감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셈. 결국, 위 만화를 현대 기준에서 가장 '적절히' 독해하는 방법은 얼핏 보면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에 가깝다고까지 여기는 일종의 '오독'에 대한 경계로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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