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맨발, 문태준 [현대시]

Jobs 9 2022. 3. 2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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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ㅡ,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ㅡ,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시어 풀이

*개조개 : 이미패강 백합목 백합과에 속하는 조개. 한국과 일본, 황해 등지에 분포한다. 모시조개 등 일반 조개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크기는 6~10cm로 다 소 큰 편이며, 크기로 인해 ‘대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물전(魚物廛) : 어물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

*조문(弔問) : 남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는 뜻을 나타내어 상주(喪主)를 위문함. 또는 그 위문.

*궁리(窮理) :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함.

*탁발(托鉢) : 승려가 경문을 외면서 집집이 다니며 동냥하는 일.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어물전 밖으로 ‘맨발’을 내민 개조개를 관찰하면서 힘겨웠을 개조개의 삶을 통해 인간의 고단한 삶에 대한 성찰과 연민,  그리고 위로의 태도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연상(聯想)의 방식을 통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즉 ‘개조개’ 부처의 맨발과 인간의 맨발을 연상하면서 개조개의 삶에 대한 경건함과 위로를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처리한 사유시이다.

  전체 15행의 구성된 시는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5행에서는 부처처럼 맨발을 내미는 개조개의 삶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드러내고, 6~9행에서는 고단했을 개조개의 삶을 성찰해 보고, 마지막 9~15행에서는 인간의 힘겨웠을 삶을 돌아보고 있다.

  1연에서 화자인 ‘나’는 개조개의 ‘맨발’을 바라본다. 여기서 개조개의 ‘맨발’은 개조개의 속살을 표현한 것으로, 이 시에서는 화자에게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 준 시어이다. 그런데 화자는 개조개의 속살에서 죽은 부처의 관 밖으로 내민 맨발을 떠올리고 있다. 이것은 부처가 열반에 들 때 늦게 도착한 제자 가섭(迦葉)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부처가 관(棺) 밖으로 맨발을 내보인 것을 원용한 것으로, 수행을 위해 인도 전역을 돌아다닌 부처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맨발과 대응하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개조개의 맨발을 ‘펄과 물속’(고단한 삶의 현실)에 잠겨 ‘부르튼 맨발’로 표현하여 개조개의 고단한 삶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조문하듯 개조개의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고 한다. ‘천천히’라는 개조개의 느린 몸짓은 시련을 견디며 살아온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화는 이런 개조개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며 개조개의 삶에 정중하게 위로를 표하고 있다.

  2연에서 화자는 천천히 발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고단하게 살았을 개조개의 삶을 ‘~ 을 것이다’와 ‘ ~ 으리라’ 등의 추측성 서술을 통해 성찰하고 있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는 것은 개조개가 ‘맨발’을 천천히 거두어 가는 속도를 통해 개조개가 살아온 시간과 삶의 길을 추측케 한다. 그리고 화자는 ‘사랑을 잃고서는 ~ (중략) ~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며 개조개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며 개조개의 삶을 돌아 보고 있다. 

  이어 화자는 3연에 와서 인간의 맨발로 시상을 전환하여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집안 식구들이 생계로 힘들어할 때에는 불교의 걸식수행에 빗대어 생계를 위해 애썼을 인간(가장)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은 가난한 삶의 모습을 의태어와 후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의 힘든 삶을 형상화한 것이며,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라라’라는 대목에 이르면, 가족들이 굶고 있는 캄캄한 한밤중에 양식을 구해 들어가는 가장의 뼈저린 외로움이 차라리 고행이자 ‘부르튼 맨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렇듯 이 시에서 보여주는 ‘개조개의 맨발’, ‘부처의 맨발’, ‘탁발승의 맨발’, ‘부르튼 맨발’은 고귀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살다 간 것들을 일깨워준다. 개조개가 그 느린 몸짓으로 시련을 견디며 살아왔듯이, 식구들의 생계를 떠안고 있는 가장(家長) 역시 늘 맨발로 아등바등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으리라. 이 시의 주제는 개조개의 맨발을 통해 성찰하는 삶의 고단함이다.

 

작자 문태준((文泰俊, 1970 ~ )

시인. 경상북도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處暑〉외 아홉 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사소한 자연물도 귀하게 여기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박한 정서를 통해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2000), 《맨발》(2004), 《그맘때에는》(2005), 《가재미》(2006), 《그늘의 발달》(2008), 《먼 곳》(2012),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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