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대공국 당시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는 한 나라였다. 리투아니아인과 중세 루테니아인들은 언어와 종교가 달랐지만 둘 다 공통의 적인 타타르인과 튜튼 기사단에 대항해 협력하는 사이였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성문법에는 "리투아니아인과 사모기티아인과 루테니아인은 상호간의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보장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으며,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들의 성웅 프란시스크 스카리나는 빌뉴스에서 인쇄소를 차렸다. 중세 리투아니아 역사와 벨라루스 역사는 거의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역사마냥 상당부분 겹친다.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당시에 귀족들의 권한이 커지고 벨라루스 지역에 대해 농민들을 탄압하다보니 벨라루스에서도 반발하게 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쇠퇴하면서 벨라루스 지역은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몰락 이후, 벨라루스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918년에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몰락한 이후, 벨라루스는 벨라루스 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소련의 공화국으로 편입된 반면, 리투아니아 지역은 독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도중에 리투아니아 지역과 벨라루스 지역이 나치 독일의 지배를 잠시 받았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벨라루스 지역과 리투아니아 지역은 소련의 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 80년대에 리투아니아 지역에서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벨라루스 지역은 소련 해체에 반대했다. 91년에 소련이 해체된 뒤에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는 각각 독립국이 되었다.
근대 이후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는 남남이 되었고, 오늘날 기준으로는 벨라루스와도 러시아와 폴란드 다음으로 나쁘다. 리투아니아가 반러정책을 추진하면서 유럽연합,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한 반면, 벨라루스는 지금도 루카셴카 대통령이 친러정책을 펼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물론 리투아니아가 반러, 벨라루스가 친러인 것도 있지만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를 가지고 리투아니아가 항의한 적도 있다. 그리고 벨라루스가 러시아 지원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자 반발했고 훈련도 시작했다.# 다만 최근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갈등이 생긴것으로 보아 관계는 어느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벨라루스 대선 야권 후보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가 대선 결과에서 루카셴카가 승리한 것으로 나온 이후 야당의 부정선거 논란 및 살인 협박을 피해 리투아니아로 망명했다. 벨라루스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리투아니아 정부는 벨라루스 야권과 시위대를 지지했다.
그리스 아테네 국제공항에서 리투아니아 빌뉴스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라이언 에어 소속 여객기가 벨라루스 측의 강요로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하고, 해당 여객기 내 벨라루스 반정부 운동가가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기에 대해 벨라루스 측에서는 하마스의 항공기 테러 위협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강제 착륙시켰다는 해명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