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가문, 유대계 대부호 가문.
로스차일드는 "붉은 방패"를 뜻하는 독일어 '춤 로텐 실트'(zum rothen Schild)를 영어식 발음으로 바꾼 것인데, "붉은 방패"라고 하는 그 뜻은 그들의 문장에서 따온 뜻이며 Izaak Elchanan Rothschild가 1577년 로스차일드 특유의 집을 건설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의 집안은 환전 혹은 고철 쓰레기를 매매 등 잡다한 일들을 하던 천민 출신[1]으로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이후 현재까지도 많은 재산을 소유한 가문이다. 주된 사업 분야는 금융업이고, 그외 석유, 금, 레저, 와인, 광산업, 호텔 등 각종 분야에서 활동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떠오르게 된 사건들과 비밀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각종 음모론과 서브컬처에서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밀스럽게 세상을 지배하는 흑막으로 자주 지목받는다. 사실 이런 이미지가 생긴 이유는 현재까지도 미국 내에서 정치, 금융 등 큰 영향이 있고, 중요한 것들은 유대인들과 유대자본이 많이 쥐고 있으며,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이 적어도 근대 초까지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밸푸어 선언이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와 로스차일드 가문 사이의 뒷거래로 성사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규모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금융 감독 시스템은 전례 없이 정교해지고 있다. 록펠러 가문이 쪼개지면서 과거의 영향을 상실하였듯[2] 로스차일드 가문도 긴 세월동안 대규모 전쟁과 재산 분할 등으로 그 영향력이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재산
로스차일드 가문 재산 규모는 관련 기업들이 상장을 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무엇보다 19세기 후반부터 가문에서 소유했던 토지와 성들, 그리고 다수의 미술 작품들을 팔았기 때문에 재산을 측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대중의 눈을 피해 사업의 규모를 차근차근 축소해온 정황을 고려하면 과거 전성기에 비해 재산의 규모가 줄어든 건 확실해 보인다. 무엇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7세기부터 시작해서 내려온 가문이기 때문에 재산이 100명이 넘는 후손들 사이에 나뉘었고, 각 국가마다 수장이 따로 존재한다. 여러 가문들 중 현재 가장 영향력이 강한 곳은 영국과 프랑스로, 영국 쪽 가문의 수장였던 에블린 드 로스차일드(Evelyn de Rothschild)의 사유 재산은 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는 미국 지부의 사유재산이 150억 달러(약 1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는데, 많긴 하지만 마치 세계 경제의 숨겨진 지배자처럼 알려진 세간의 이미지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액수다. 물론 음모론자 등은 포보스지의 발표를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참고로 페이스북 회장 마크 저커버그의 2017년 재산이 70조 원 가량이었고, 세계 최고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우드 왕가의 재산이 약 1.5조 달러, 그리고 아부다비 왕가의 재산을 1조 달러 가량으로 추정한다.
또한 모든 로스차일드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정확히는 성공한 걸 죄다 털렸다 나폴리의 로스차일드는 이탈리아 통일 이후 쇠락하다 1920년대 은행업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오스트리아의 로스차일드는 철도 산업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안슐루스 당시 나치에 의해 재산이 몰수당하고 가문의 수장 루트비히 나탈니엘 폰 로트실트 남작이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들이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1999년에 돌려받은 미술품의 가치만 1억 달러 이상. 못 돌려받은 현금과 현물이 얼마일지는. 또한 프랑스의 로스차일드의 은행업은 1981년 미테랑 정부의 은행 국유화로 큰 타격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다시 합류하면서 프라이빗 뱅킹에 눈을 돌렸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848년 혁명, 1930년대 대공황, 1940년대 나치즘이 전 유럽의 로스차일드에게 큰 타격이었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야말로 로스차일드의 원수 중의 원수인 셈
국제 금융
로스차일드 가문은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유럽의 산업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전 세계에 철도를 까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심지어 수에즈 운하와 같은 거대 정부 사업에도 관여하여 이익을 남겼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브라질의 독립에도 크게 관여했다.
세실 로즈의 아프리카 식민지 사업에도 자금을 지원하였고, 이로인해 1880년대 후반 아프리카의 광산 회사를 인수하게 된다.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마치 사치와 부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가문은 예술품 수집, 궁전, 자선 사업으로 유명하였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들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수도 41개나 되었다. 심지어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마저 1909년에 로스차일드가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라고 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