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4대 문명의 공통점은 강 주변의 반건조 환경에서 관계농업으로 발전, 성장했다는 점이다. 예측할수 없는 강물의 범람을 예측하고 관리하며 문명을 발전시켰다. ①나일강의 이집트문명 ②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③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④황하강 중류의 황하문명이 그것이다.
차이점이 있지만 이 4대 문명은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적인 국가를 형성하고, 전제군저죽 통치를 했다. 모든 권력은 물의 관리를 통해 형성되었고, 물의 관리는 경제 생산의 최고요소이며, 민중들의 노동을 강제했다.
집중화된 권력을 통해 노동력을 동원하고 수리사업을 통해 물이 가져다 주는 재앙을 막는 동시에 필요한 곳에 적절한 물을 공급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물 관련 시설을 만들었다. 관개시설, 배수용 운하, 수문, 물 저장 댐, 보호용 도랑, 제방들이 그런 시설들이다.
수리 문명의 대표는 고대 이집트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달력, 종이, 숫자, 화장법, 종교 등의 많은 부분들이 이미 5000년전부터 시작되었다.
이집트 인들은 해마다 나일강이 들판을 적시며 농사에 필요한 흙을 운반해 옮에 따라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놀라운 문명을 이룩하였다. 풍요롭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이집트 인들은 현세의 행복이 내세까지 계속되기를 바랐으며, 피라미드, 미라, ‘사자의 서’는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한 고대 이집트 인들의 종교관을 보여준다.
고대 나일 강가에서는 농경이 발달하고 도시가 생겨나면서 나일강 상류의 상이집트와 하류의 하이집트 2개의 왕국이 세워졌다. 상이집트의 왕은 흰색 왕관을 하이집트의 왕은 빨간색 왕관을 사용하며 힘을 겨루었으며, BC 3000년경 상이집트의 나르메르 (메네르) 왕이 이집트를 통일하였다.
이집트는 사하라 사막과 홍해, 지중해 등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다른 민족의 침입을 받지 않고 오랫동안 통일 왕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일 강이 없었다면 고대 이집트 인의 풍요로운 삶과 수준 높은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후에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는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나일강의 물 높이에 따라 1년을 범람기(6~9월), 파종기(12~2월), 수확기(3~5월)의 세 시기로 나누었다. 시리우스라는 별이 하늘에 나타나면 나일 강이 범람한다는 것을 알고, 이 별이 뜨는 날을 새해 첫날로 하고, 이듬해 다시 나타날 때까지를 1년으로 정했다. 즉 시리우스의 주기를 계산해 1년을 365일로 하는 태양력을 만들었다. 이 태양력이 발전해서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이 된 것이다.
이들은 또한 나일강이 범람한 뒤 토지를 다시 나누어 갖기 위해 측량을 하게 되었다. 삼각형, 사각형, 원 등 모양이 제각각인 토지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과정에서 기하학이 발달하였다. 기하학은 도형이나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영어로 geometry라 하고 geo는 토지를 metry는 측량을 뜻하는 것처럼 기하학이 토지 측량에서 비롯 되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또 측량할 때 오늘날 수를 세는 방법인 10진법을 사용하였다.
이집트 인들은 남녀가 모두 눈 화장을 하였는데 강한 햇빛에 눈을 보호하고, 병을 옮기는 해충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오늘 날의 눈 화장법은 고대 이집트의 눈 화장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강가와 늪지대에 있는 파피루스라는 풀(草)을 활용하여 종이를 만들었는데, 종이를 뜻하는 페이퍼(paper)는 파피루스(papyrus)에서 유래하였다. 파피루스 종이는 이전까지 사용하던 진흙판이나 돌판보다 가볍고 글씨를 쓰기 쉬웠지만 잘 부스러져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 파피루스
이집트에서는 왕을 ‘파라오’라 부르는데, 파라오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여 모든 땅의 주인이며 그의 말은 곧 이집트의 법이었다. 이집트 인들은 신이 우주에 생명과 질서를 가져다 주듯, 파라오가 이집트에 생명과 질서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이집트에서는 사람들이 죽으면 내세에서 또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미이라와 피라미드도 내세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 시신을 잘 보존해야 내세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믿어 미이라를 만들었고, 파라오가 죽으면 피라미드를 만들어 미이라를 안장하였는데, 피라미드의 규모는 그 권력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145m나 달하며, 23년동안 기술자 4천명과 농민 10만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BC 5세기경,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여행하고 자신이 본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 이집트 여성들은 남성들이 집에서 옷감을 짤 동안 시장에 나가서 거래를 하거나 빵과 맥주를 만들거나 사람을 치료하는 등 다른 나라에서라면 남자들의 일로 여길 만한 직업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재산이 많은 집안의 여성들은 농장과 작업장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하트셉수트 여왕을 비롯해 4명의 여성이 이집트를 다스릴 수 있었던 것도 여성의 권리를 인정했던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 미라
고대 이집트 문명의 또 하나의 상징 중의 하나인 미라 역시 오늘날에도 새롭게 살펴볼만한 부분들이 적지 않다. 물론 시신 전체를 완벽하게 방부처리하지는 못했지만 수천년 이상 보존된 것은 놀라운 수준의 고대 과학기술이라 할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를 가능하게 한 것은 탄산나트륨과 염화나트륨이 결합된 물질인 소다석으로서, 뛰어난 수분 흡수효과를 가지고 있다.
또한 송진과 여러 첨가물을 혼합한 유약도 미라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성분은 오늘날에도 온전히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미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고대 이집트의 소년왕이었던 투탕카멘인데, 황금가면으로만 알려진 그의 진짜 얼굴 모습을 복원하는 기술이 최근 개발된 바 있다.
해당 기술은 머리뼈를 컴퓨터로 단층촬영(CT) 한 후에, 3차원 영상으로 재구성하여 피부를 씌우는 기법이다. 법의학자와 조각가, 컴퓨터공학자 등의 지식과 협조가 필요하기도 한데, 이러한 얼굴 복원술은 원래 범죄수사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이었다.
즉 신원 미상의 시체가 누구의 것인지 유전자 검사 등으로도 알아내기 어려운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이 방법이 시행되는데, 미국의 경우 미제 사건의 약 60~70%가 이를 통하여 해결되었다고 한다.
● 이집트 문자의 비밀을 밝힌 로제타석
1799년 프랑스의 나폴레옹군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시 근처의 로제타 마을에서 비석을 발견하였는데, 이 돌에는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즉위를 축하하는 내용이 이집트 상형 문자와 민중 문자, 그리스 문자로 함께 적혀 있었다.
학자들은 그리스 문자와 민중 문장에서 몇 가지 단어를 해독해 냈으나 이집트 상형 문자는 해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샹폴리옹이라는 학자가 필레 섬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의 글과 로제타석의 글을 비교하던 중 프롤레마이오스(PTOLMYS)와 클레로파트라(KLPOPATRA)를 뜻하는 상형 문자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하였으며, 그 뒤 많은 학자들이 이 방법을 기초로 이집트 상형 문자를 연구하고 있다.
● 나일강 [─江, Nile R.]
적도 부근에서 발원하여 지중해로 흘러드는 강.
총길이 6,671km이다. 총길이는 남반구의 부룬디 ·탄자니아 국경 부근에서 강 어귀까지이며, 유역면적은 아프리카대륙의 약 1/10을 차지한다. 나일강에는 몇 개의 원류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오지에 있는 것은 부룬디 산맥에서 발원하는 것이며, 여기서부터 카게라강이 되어 빅토리아호(湖)로 흘러든다. 빅토리아호부터는 빅토리아나일이라 하는데, 키오가호를 지나 머치슨 폭포를 거쳐 앨버트호의 북단으로 들어간다. 앨버트호에서 수단 국경까지는 앨버트나일이라 하며, 여기까지의 나일강은 산악지대를 지나면서 머치슨 폭포 같은 경관을 이룬다.
수단령으로 들어서면 서쪽에서 흘러오는 지류인 바르알가잘강과 노호(湖)에서 합류하는데, 이것을 바르알자발강이라 한다. 바르알자발강은 광대한 습지대를 지나오면서 유량의 절반은 부평초(浮萍草)에 흡수당하거나 증발로 인하여 줄어든다. 이곳에서부터 수도 하르툼까지를 백나일이라 한다. 백나일은 건조지대로 들어서 하르툼에 가까워지면 완전한 사막지대를 지난다. 여기서는 남동쪽에서 흘러오는 소바트강이 합류한다.
백나일은 에티오피아에서 흘러오는 청나일(아랍어로는 바르알아즈라크)과 하르툼에서 합류하여 나일강이 된다. 하르툼을 떠난 나일강은 도중에 에티오피아에서 흘러오는 또 하나의 지류인 아트바라강과 합류하여, 이집트 국경 근처에서 인공 호수인 나세르호(湖)로 흘러든다. 아스완 하이댐과 아스완댐을 거쳐 이집트 영내로 들어가면 합류하는 지류도 없고, 카이로 북쪽에 거대한 삼각주지대를 만들면서 지중해로 흘러든다. 아스완과 하르툼 사이에는 6곳의 급류가 있어 유량이 적은 2∼7월에는 항행할 수 없으나, 그 밖의 계절에는 작은 선박이면 지중해에서 머치슨 폭포까지 항행할 수 있으며, 우간다에서 빅토리아호를 지나 카게라강을 약 160km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나일강은 고대부터 사하라 사막을 넘어 북부아프리카와 적도 이남의 내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로였으며, 고대 이집트문명이 지금의 하르툼 북쪽 메로웨를 거쳐 에티오피아에 영향을 준 통로가 되었다. 1816년경 이집트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하는 모하메드 알리가 착수할 때까지 나일 강물의 제어(制御)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으며,1861년 카이로 북쪽에 댐이 완성됨으로써 삼각주지대의 농산물 재배가 활발해졌다. 내륙 수로로서의 개발은 19세기 말부터 1900년에 걸쳐, 부평초 때문에 항행할 수 없는 수단 남쪽의 습지대를 우회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생긴 바르엘제라프강(바르알자발강의 중앙부에서 동쪽을 북진하여 백나일과 소바트강의 합류점 부근에 이르는 강)에 일부 인공을 가하여 항행을 원활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1902년 아시우트와 아스완에 개폐식 댐을 완성, 계절적인 범람에 다소의 제어를 가하여 관개용수의 이용을 유효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공사는 그후 이스나(1909), 센나르(1925), 나그함마디(1930), 제벨아울리아(1937) 등에서도 행해졌다. 1970년 아스완하이댐이 완공되어 강의 범람을 완전히 제어하게 되었고, 이 다목적댐에 의하여 나세르호가 생겼다. 그 결과 이집트의 약 2만 4,300km2, 수단의 약 4,050km2의 농경지가 관개되었다. 나일강은 국제하천이므로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우간다 사이에 수리(水利)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수자원의 적극적인 개발과 이용은 1954년 우간다에서 오웬폭포에 댐을 완성하고 수력발전을 개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60년에는 구(舊)아스완 댐에서도 수력발전이 시작되었다. 나일강 중류 이북은 옛부터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으나, 원류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곳에 대한 탐험이 시작된 것은 17세기부터이다. 1613년 포르투갈의 파에스 신부가 청나일을 탐험하고, 1770년 영국의 J.브루스가 타나호(湖)를 탐험하여 그것이 나일강의 원류임을 확인하였다.
백나일은 이집트 탐험대가 1821∼1842년 수단 남단에 가까운 주바의 급류까지 탐험하였는데, 1830년에 그 때까지 백나일의 상류라고 생각한 나이저강이 별개의 큰 강임을 확인하였다. 1858년 영국인 스피크는 빅토리아호가 나일강의 수원일 것이라 추정하고 탐험을 시작하여, 1860년 버튼과 함께 그 추정의 정당함을 확인하였다. 또 영국인 S.베이커는 1861년부터 2회에 걸친 탐험으로, 수단 남쪽의 습지대에서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 앨버트호와 머치슨 폭포를 확인하였다. 그후 1870년대에 이르러 영국의 군인 C.G.고든과 그 부하들이 나일강의 지도를 작성하는 데 성공하고, 이어서 M.스탠리가 빅토리아호를 주항(周航)하여 백나일의 원류지대를 상세히 밝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런던의 왕립지리학협회가 아프리카 내륙 탐험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1870년대에는 나일강의 모습이 거의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2008년 5월 리마 지리학회의 발표에 따르면 아마존강이 나일강보다 긴 것으로 조사됐다.
[출처] 나일강 [─江, Nile R. ] | 네이버 백과사전
● 나일 삼각주
나일 삼각주의 NASA 위성사진.나일 삼각주 (아랍어: دلتا النيل )는 이집트 북쪽 나일 강 하류에 형성된 삼각주로 나일강이 지중해로 들어가는 하구언에 위치하고 있다.이 삼각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삼각주 지형 중 하나로 동쪽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부터 서쪽으로는 포트 사이드까지 약 240 km의 넓은 지중해 해안선이 펼쳐져 있고 남북 간의 거리는 대략 160km 정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