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짐은 “통치결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 지속적인 역할을 유지하려는 제도적 자원에 대한 접근 가능성(access to institutional resources)을 지닌 비공식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집단”을 의미한다(Stone, 1989). 즉, 레짐은 비공식적인 실체를 가진 통치연합(governing coalition)으로서, 자발적 결사체인 이익집단이 사안에 따른 이합집산을 통하여 정책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정부라는 제도적 기제를 매개체로 하여 비공식적이지만 일정한 세력집단으로서 그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레짐 개념은 엘리트론적 접근의 주요 요소를 포함하는 이론적 탄력성과 성장기구적 요소가 다분히 함축되어있으며, 기존의 이론들이 무시하기 쉬운 제도적 측면과 비제도적 측면의 도시정치적 연결망이 중요한 분석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도시레짐과 성장연합 개념간 유사성이 도출되지만, 레짐개념은 ‘성장연합’개념보다는 광범위한 개념적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즉, ‘개인’이나 ‘구조’가 아닌 ‘제도’에 초점을 두며, 기업의 중심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지역주민집단과 같은 행위자들의 영향력을 간과하지 않는다. 또한 레짐은 협력을 위한 비공식적인 기반으로 형성되며, 이것은 포괄적인 통제구조 없이도 가능하다.
이론적 배경
레짐이론은 도시정치에 있어 기존의 다원주의와 엘리트이론간의 논쟁을 바탕으로 네오맑스주의적 도시정치경제론과 국제레짐이론을 수용하면서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하였다. 자유주의적, 구조주의적 접근이 취하는 정치행위자에 대한 경제적 행위자의 중요성과 정치적 이해관계의 형성 및 이해관계의 행위로의 전환을 간과하는 경향에 대해 비판하면서, 레짐이론은 선택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이론과 구조적 과정을 중시하는 구조주의적 이론 사이에 중간적 위치를 취한다. 정치적 정책결정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인식하지만, 도시변동을 형성하는 데 있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Stone and Sanders, 1987). 즉, 경제와 정치간 관계(the relationship between economics and politics)가 초점인 셈이다.
이와 같이 레짐이론은 ‘사회적 통제’ 또는 ‘-에 관한 권력’으로부터 ‘사회적 생산’ 또는 ‘-을 할 수 있는 권력’으로 다원주의-엘리트주의간의 논쟁의 초점을 변화시킨다. 이것은 ‘누가 지배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벗어나 공공적 목적이 어떻게 달성되며, 특히 그와 같은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통치연합이 어떻게 구축되고 유지될 수 있는가에 관한 관심으로 문제의식이 옮겨져 간다. 또한 네오맑스주의적 연구에서 강조하고 있는 권력의 체계적 개념화와 정책결정과정에서의 기업의 특권적 위치 역시 레짐이론에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내에서도 정치제도와 행위자들은 복합적이고 상호연관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러한 조건내에서 레짐이론은 정부와 비정부 행위자들이 난해하고 비일상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다 안정적이고 강력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에 초점을 두고 있다(Stoker, G. and Mossberger, 1994).
레짐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경제적, 공동체적, 이데올로기적 영향력간의 상호작용에서 기인하는 구조화된 위치를 구성한다(Fainstein, 1994). 따라서 지방정부의 효율성은 정부 및 비정부행위자의 협력에 의존하며, 이러한 협력은 다양한 이해관계간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용이하게 하는 제도적 배열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가장 영향력 있는 5범주의 레짐 행위자 및 기관은 ①이익집단, ② 기업인, ③ 도시정부, ④ 관료제, ⑤ 연방 및 주정부 등이다(Elkin, 1987). 레짐이론가들은 비록 다양한 그룹들, 즉 지역단체, 도시보존기구 등이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있지만, 선출직 관료들과 기업집단이 대부분의 레짐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도시정치의 구조적 프레임워크에서 기인한다.
유형
1980년대 이후 발달되어져 온 레짐의 유형은 전후 미국의 도시발전과정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페인스틴 등(Fainstein and Fainstein, 1983)은 전후 시기적으로 3가지의 지속적인 레짐적 특성으로서, 지도형(directive:1950-1964), 권한양여형(concessionary:1965-1974), 현상유지형(conserving:1975년 이후)을 지적하고 있다. 엘킨(Elkin, 1987) 역시 시기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다양한 3가지 유형의 레짐을 논의하면서, 이를 각각 다원주의형(pluralist: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북서부 및 중서부지역), 연방주의형(federalist: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북동부 및 중서부지역), 그리고 기업가주의형(entrepreneurial: 2차대전 이후 남부 및 서부지역) 레짐 등으로 유형화시켰다. 페인스틴 등의 유형과 엘킨의 유형분류는 상이한 기준에서 이루어졌지만, 이중 앞서 2가지의 유형은 매우 유사하다. 이들은 이를 포디즘시기로 규정한다. 엘킨은 도시정부에서의 통치레짐 개념을 수립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고, 특히 그가 제시한 기업가주의형 레짐은 글로벌 경제적 재구조화시기에 매우 확산되어지고 있다. 한편, 레짐개념을 이론적으로 가장 체계화시킨 인물은 스톤(Stone)이다. 도시레짐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의를 차지하고 있는 스톤의 애틀란타(Atlanta) 연구(Stone, 1989)는 애틀란타시의 도시경제와 정치상호간의 상호의존성 및 시기별로 그러한 상호의존성의 성격변화를 분석하였는데, 그는 결론적으로 애틀란트시는 기업엘리트, 선출직 정치인, 언론사간의 동태적 목표지향적 연합에 의한 통치체제를 구축하여왔으며, 이 과정에서 실용성과 시민협력(civic cooperation)이 강조되어졌다고 주장하였다. 스톤의 이론적 기여는 첫째, 1980년대 초반에 풍미하였던 도시정부의 구조적 한계성과 경제적 결정론을 주장한 피터슨(Peterson)의 도시한계론을 극복하였고, 둘째, 지방정부론에서의 정치영역의 복원, 그리고 셋째, 정부와 비정부 부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도시정부체계이론을 재확립하였다는 점이다.
이상과 같이 대부분의 도시레짐과 성장연합에 관한 연구들은 미국을 초점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Elkin, 1987; Stone, 1989; Stone and Sanders, 1987; DiGaetano, 1989). 이에 대해 스토커와 모스버거(Stoker and Mossberger, 1994)는 레짐이론은 국가간 비교연구에서 만나게 되는 매우 다양한 조직적 배열(organizational arrangements)을 설명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비록 특정한 배열이 국가간에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레짐이론이 강조하고 있는 정부 및 비정부 행위자의 상호의존성은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토커와 모스버거는 비교연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레짐의 유형들을 발전시켰는데. 그들은 도시레짐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목적, 참여자들의 동기, 공통의 목적의식을 위한 기반, 상이한 이해관계들간의 일치수준, 그리고 지방 및 비지방적 환경간 관계 등에 의해 상이하다고 주장한다. 동기의 상이성에 바탕을 두고 그들은 다음과 같이 도구적(instrumental), 유기적(organic), 상징적(symbolic) 레짐으로 유형을 분류하고 있다.
① 도구적 레짐: 미국의 연구에서 주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프로젝트의 실현지향성, 가시적인 성과, 그리고 정치적 파트너십 등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레짐들은 구체적인 프로젝트와 관련되는 단기적인 목표에 의해 구성되며, 단기적인 실용적인 동기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올림픽 게임과 같은 주요한 국제적 이벤트를 유치하기 위해 구성되는 레짐은 도구적 레짐의 일례가 될 것이다.
② 유기적 레짐: 굳건한 사회적 결속체와 높은 수준의 합의를 특징으로 하는 레짐으로서 이들 레짐은 현상유지와 정치적 교섭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들은 흔히 외부적 영향에 대해 오히려 적대적이며, 소규모 도시들은 대체로 유기적 레짐을 유지하려한다.
③ 상징적 레짐: 도시발전의 방향에 있어 변화를 추구하려는 도시에서 나타난다. 이들 레짐은 기존의 이데올로기나 이미지를 재조정하려 하며, 경쟁적인 동의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해관계와 개입(commitment)에 관해서 본질적인 상이성이 참여자들간에 존재하며, 지배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상당할 정도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레짐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레짐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이념적 논쟁이 흔히 지속된다. 이러한 상징적 레짐은 연합형성을 위한 다른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도 역시 중요하다. 영국의 글래스고우(Glasgow)나 셰필드(Sheffield) 모두 그들의 이미지와 경제적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으며, 이들 레짐의 실례가 된다(Judd and Parkinsom 1990). 스토커와 모스버거에 따르면, 상징적 레짐은 흔히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하며, 그들은 보다 안정적인 연합으로 나아갈 개연성이 크다.
평가와 전망
레짐이론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고려할 수 있는 이론적 설명력은 이러한 접근법의 주요한 강점을 구성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선, 레짐이론과 성장연합개념은 정확히 말해서 동일한 것이 아니다(DiGaetano, 1989). 그럼에도 이들 두 접근법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은 매우 유사하며, 따라서 많은 비판적 연구들은 두 개념을 함께 논의하거나 그들 개념들을 상호치환 해 사용한다(Cox, 1997; Fainstein, 1994). 광범위한 용어사용에서 보면, 최근의 분석들은 1980년대 후반에 나온 연구들보다는 보다 유연해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대다수의 새로운 연구들은 상당정도 조절이론과 글로벌화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레짐이론을 글로벌경제에서의 지역성의 역할에 대한 연구와 결합시키고 한다(Cox, 1997; Lauria, 1997). 레짐이론의 지속적인 세련과 확대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몇가지 측면에서 이론적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지방경제발전에 있어 범주의 복잡성에 대한 부적절한 설명방식의 문제이다. 즉, ‘지방’개념과 관련된 실제 설명이 과도한 단순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스톤의 애틀란트연구는 세계와 미국의 구조적인 경제적 및 사회적 변동에 대한 관심이 거의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둘째, 국제간 비교연구에 있어 레짐접근의 적용성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레짐이론은 기본적으로 미국 및 영국의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어졌으며, 오늘날까지 국제간 비교연구에서는 광범위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문제는 레짐이론이 미국과 유럽(심지어는 유럽내부에서조차)간의 정치적 문화적 차이성과 미국식의 모델로서 유럽의 도시거버넌스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Newman and Thornley, 1996).
레짐이론은 궁극적으로 도시체제에서의 공공선택의 모델이다. 레짐이론은 공공정책이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다. 즉, (1) 지역공동체의 통치연합의 구성, (2) 통치연합 구성원들간에 형성되는 관계의 성격, (3) 구성원들이 통치연합에 기여하는 자원 등이다. 레짐 구성원들은 기회 뿐만 아니라 도시의 사회경제적 환경의 맥락에서 정책을 형성한다. 레짐 파트너간의 협력을 성취시키는 것은 분산화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의 기본틀이다. 정치에 있어 레짐접근방법의 본질은 정부 및 비정부 행위자들의 엘리트 파트너쉽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같은 파트너십이 창출되고 유지되는 조건을 탐색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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