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의무, 기회와 재화, 이익과 부담, 지위와 특권 등 여러 사회적,경제적 가치들의 절대량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이들 가치들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가에 관심을 두게 된다. 따라서 사회정의란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를 의미하며, 분배적 정의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향유하여야 할 사회적,경제적 가치의 응분(應分)의 몫을 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정의의 실현이 오늘날 행정국가 하에서는 정부 정책을 통해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하나의 정책을 정의로운 것으로 또는 정의롭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고자 할 때 이를 판단할 수 있는 바람직한 기준으로서의 정의의 기준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롤즈는 정의의 원리를 도출하기 위한 발견적 장치(heuristic device)로서 순수절차상의 정의가 보장되는 원초적 입장을 가정하고, 그러한 가정 하에서 합의되는 일련의 원칙이 곧 사회 정의의 원칙으로서 다음과 같은 정의의 원칙이 합의되리라고 한다. 롤즈에 따르면 원초적 입장에서는 우선 첫째로, 평등한 자유(equal liberty)의 극대화에 합의할 것이고, 둘째로 최소수혜자를 위시한 모든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해 준다는 조건부 차등을 허용하는 데 합의할 것이라고 한다.
첫째, 정의의 제 1 원칙은 ’평등한 자유의 원칙(Principle of Equal Liberty)‘으로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사한 자유와 상충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평등한 기본적 자유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둘째, 정의의 제 2 원칙은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으로서 사회적,경제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정당한 불평등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1) 불평등의 모체가 되는 직위와 직무는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기회 균등의 원칙). (2) 불평등이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한의 이익이 되어야 한다(차등의 원칙).
롤즈는 사회정의의 문제가 크게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하나는 국민의 기본적 자유에 관한 문제요, 다른 하나는 사회적 및 경제적 가치들의 분배에 관한 문제이다. 첫째의 원리는 인간의 기본적 자유에 대하여 모든 국민이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기본적 자유는 투표권 및 피선거권을 포함한 정치적 자유, 언론과 집회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인신(人身)에의 자유와 재산소유의 자유 등으로 민주주의의 이념과 일치하는 것이다. 둘째의 원리는 사회적 및 경제적 가치의 분배에 관한 원리로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불평등(justifiable inequality)의 기준을 밝히기 위한 원칙이다.
그런데 롤즈는 이들 세 가지 원칙들 사이의 우선 순위에 대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들 세 가지 원칙들 사이에 축차적 우선 순위(lexical order)원칙을 적용한다. 그리하여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밝힌 제1원칙이 제2원칙에 우선한다. 따라서 첫째 원칙에 의하여 규정되는 인간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는 둘째 원칙에 의해 발생하는 어떠한 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익과도 교환될 수 없다. 롤즈는 이를 ’자유 우선성(priority of liberty)‘의 원칙으로 설명한다. 단 롤즈에 의하면 자유가 제한되는 경우는 오직 보다 큰 자유를 위해서만 허용된다. 즉 a)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자유의 전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자유에 제한을 가하여도 무방하다. 또한 b) 자유의 불평등이 그 불평등에 있어서 자유를 적게 가진 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그러하다.
한편, 정의의 제2원칙은 정당한 불평등의 기준의 문제, 즉 불평등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은 어느 경우인가의 문제이다. 롤즈에 의하면 첫째로, 그 불평등한 분배에 있어서 보다 큰 몫을 차지할 수 있는 지위나 직무는 기회 균등의 원칙에 의하여 모든 사람에게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둘째로는 그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것이 사리에 따라 예견되어야 한다. 즉 그 사회에 있어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까지도 그 불평등한 분배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도리어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그러한 내용과 정도의 불평등이어야 한다.
롤즈의 축차적 우선 순위의 원칙은 제2원칙 사이에도 적용된다. 즉 제2원칙 (1)의 기회 균등의 원칙이 (2)의 차등의 원칙에 우선하여 적용된다. 나아가서 이러한 제2원칙은 효율성이나 공리의 원칙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롤즈의 축차적 우선순위의 원칙이 의미하는 바는 제1원칙이 제2원칙에 우선함으로써 제1원칙이 요구하는 평등한 자유의 제도로부터의 이탈이 보다 큰 사회적 및 경제적 이득에 의하여 정당화되거나 보상될 수 없으며, 사회적․경제적으로 정당한 불평등은 기회 균등이 보장이 된 전제하에서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때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 배경
롤즈의 정의론을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롤즈가 제시하고 있는 정의론의 전제적 여건으로서의 정의의 여건과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롤즈 정의론과 법칙론적 윤리설 : 롤즈의 정의론은 공리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일로부터 시작되며 이는 곧 목적론적 윤리체계에 대한 비판으로서 법칙론적 윤리설에 대한 옹호를 의미한다.
목적론적 윤리설에 대비되는 법칙론적 윤리설(혹은 의무론적 윤리설)은 옳음(right)과 좋음(good)이라는 두 가지 대표적 가치 차원에서 이 두 가지의 상관관계를 논하는 데 있어서 옳음과 상관없이 좋음을 규정하지도 않으며, 옳음을 좋음의 극대화로서 해석하지 않는 입장이다. 이는 목적론과는 반대 방향에서 이론을 구성하여 목적이나 좋음에 비해 의무나 옳음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먼저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옳음에 위반되는 좋음(good)은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하여 옳음의 원칙이나 의무의 체계가 선행되고 그에 따라서 가치 있는 선의 한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칙론 적윤리설이 대답해야 할 근본 문제는 그러한 법칙이 무엇이냐 라는 것이다. 롤즈는 이러한 법칙으로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공리주의가 목적론적 윤리설에 기초하고 있는데 반해, 롤즈의 정의론은 법칙론적 윤리설에 기초하여 정의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2)롤즈 정의론의 전제적 여건 :
(1) 사회계약설과 자연상태 : 롤즈는 중세 이후의 도덕 및 정치철학에 있어서 체계적인 이론을 전개한 두 가지 주요 전통을 구분하여 그 중 하나를 흄 (D. Hume), 스미드( A Smith), 벤담, 시즈위크 ( H. Sidgwick), 에지워스( Frnacis Y.Edgeworth) 및 기타의 많은 현대적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이 가담하고 있는 공리주의적 전통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를 홉스(T.Hobbes) 록크(J.Locke),루소(J.J. Rousseau),칸트(Immanuel Kant)등에 의해 계승되어 온 사회계약론적 전통이라 부르고 있다.
롤즈의 정의론에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측면 중의 하나는 사회계약론적 전통을 새로운 차원에서 재활 시키려는 시도로서 그는 자신의 이론이 고전적 계약론의 입장을 일반화한 것이요, 고도의 추상적 수준에서 재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롤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사회 계약론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역사적으로 플라톤의 철인정치(哲人政治)나 중세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은 철인이나 왕의 전능성에 기초한 사회질서였는데 반해, 근세 이후는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의 이성을 절대시하고 이에 의거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이성의 능력은 철인정치에서의 철인이나 왕권신수설에서의 왕과 같이 어떤 절대적인 지혜를 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닌 상대적이고 유한한 지혜만을 산출할 수 있는 한정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유한하고 상대적인 능력의 이성을 소유한 인간들이 함께 모여 중지를 모아 그들이 함께 살아갈 사회의 기본 틀과 구조를 합의에 의해 형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한정적 이성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토론을 통해 어떤 합의에 이른다는 주장은 곧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계약의 의미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다. 사회계약설은 바로 이러한 기본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사회계약설은 인간이 아무런 정치적․사회적 관계도 갖지 않은 원초적 상태를 가정하고, 이와 같은 원초적 상태, 즉 자연상태 하에서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에 의거하여 어떤 사회형태를 도출한다는 가정에 입각하고 있으며, 그 결과 도출되는 사회의 형태는 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일 것임을 가정한다.
그런데 사회계약설의 전제가 되는 자연상태 하에서의 인간관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록크의 견해와 홉스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된다. 이들 양자는 자연상태 하의 인간들이 합리적 이성의 소유자들이라는 점에서는 견해가 일치한다. 그러나 홉스는 자연상태 하의 인간을 이기적 불신의 소유자로 봄으로써 자연상태 하에서 설사 인간들이 합리적 사고에 입각해서 어떤 사회 상태에 대한 계약에 합의하게될지 라고 그들 사이에 이기적 불신이 작용하여 결국 약속을 불이행하게 됨으로써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전락해 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홉스는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합의한 계약의 내용을 유효하게 보장하는 길은 강력한 공권력이나 전제적 통치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편, 로크는 홉스가 보는 인간관과는 달리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아 자연상태 하에서도 이미 사람들은 상당한 정도로 자연법에 따르게 되어 어느 정도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자연상태 하에 있는 인간이 계약을 통해 국가나 정부를 수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록크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전술한 바와 같이 인간 이성의 한계성을 든다. 즉, 자연상태 하에 있어서도 자연법이 존재하여 사람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질서가 형성이 되지만 인간 이성의 한계성으로 인하여 자연법의 인식이나 해석이 사람에 따라 다르고 다양할 수 있으며, 자연법의 시행에 있어서 규제나 처벌의 공평성과 구속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판정해 줄 공정한 판관(判官)과 그 판정을 시행하고 그 위반을 방지, 처벌해 줄 적절한 권력기반이 필요한 바 이 때문에 자연상태의 사람들은 계약에 의해 국가를 형성하고, 그를 통해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시민들의 자연권의 수탁자인 동시에 그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전적 계약론에서 당사자들이 자연상태(state of nature)로부터 계약을 통해서 시민사회를 형성하듯이 롤즈는 그의 계약론에서 평등한 '원초적(原初的)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곧 사회계약론에 있어서 자연상태에 해당한다고 한다.
(2) 정의의 여건 : 롤즈에 의하면 가능한 모든 사회가 다 정의의 원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요구되는 일정한 사회적 여건이 전제된다고 한다. 롤즈는 이를 '정의의 여건(circumstances of justice)'이라고 부른다. 롤즈에 따르면 정의의 여건, 즉 정의의 원칙을 필요로 하는 사회 여건으로는 주관적 여건과 객관적 여건이 있다고 한다. 그는 객관적 여건으로 '자원의 적절한 부족상태(moderate scarcity)'를 들고, 주관적 여건으로서는 협동의 주체들이 제한된 이기심의 소유자들일 뿐만 아니라, 서로 상이한 이해 관계와 목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여건을 든다. 그가 객관적 여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자원의 적절한 부족상태라는 개념은 천연자원이나 기타 자원이 협동체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풍족한 것도 아니며, 보람있는 협동체가 결렬되기 마련일 정도로 여건이 궁핍한 상태도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 즉 그가 제시하는 객관적 여건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체제가 실현 가능한 동시에 그 체제가 산출하는 이득이 여러 사람이 내세우는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 즉 적절한 부족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주관적 여건이란 첫째, 협동의 주체들, 즉 협동하는 사람들에 관련된 측면으로서 협동의 주체들이 제한된 이기심의 소유자들로 구성된 사회적 여건을 의미한다. 정의는 인간이 완전히 이타적인 존재도 아니고 순수히 이기적인 존재도 아닌 여건에서 문제가 되고 의미를 갖는다. 만약 인간이 완전히 이기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홉스적인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상태에 머무를 것이고, 그 반대로 인간이 순전히 이타적이라고 한다면 정의의 원리에 관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의의 문제는 인간이 제한된 이기심을 가지고 있는 여건을 필요로 한다. 두 번째의 주관적 여건은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상이한 목적 체계를 갖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는 구성원 각자가 실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특이한 인생계획과 가치관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각각 상이한 목적체계를 갖는 개인과 집단이 상호 상충하는 가치관을 둘러싸고 이해의 갈등이 발생할 때 정당한 이해관계를 판정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제약체계로서의 정의의 원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사회구성원들이 그들 자신의 인생계획과 가치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들 구성원들은 대체로 비슷한 욕구와 관심을 갖거나 혹은 여러 면에서 상호 보완적인 욕구를 가짐으로써 그들간에 서로에게 유익한 상호 협동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호 협동이 가능한 상황하에서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하려는 데 관심을 가지며 그들 상호간에는 동정이건 시기이건 어떤 선행적인 도덕적 유대도 존재하지 않는 상호 무관심한(mutually disinterested)자들 이라고 가정한다.
이상의 주관적 여건과 객관적 여건을 종합해 보면 롤즈가 제시하는 정의의 여건은 간략히 말해서 상호 무관심한 자들이 자원의 적절한 부족 상태에서 사회적 이득의 배분을 두고 서로 대립하는 요구를 제시할 때면 언제나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건이 성립하지 않을 경우 정의의 덕은 무의미하며 그것이 요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롤즈는 그가 제시한 정의의 여건이 현실의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본다.
(3) 계약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자격요건(원초적 입장) : 전술한 정의의 여건 하에서는 계약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그들 자신이 속하게 될 사회를 규제해 주는 정의의 원칙을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롤즈는 계약 당사자들이 여러 대안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자격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데, 이러한 자격요건을 갖춘 도덕적 관점을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고 부른다.
원초적 입장, 즉 계약 당사자들의 자격요건을 충족시키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당사자들의 인지상(認知上)의 조건으로서 '무지(無知)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동기상의 조건으로서 '상호 무관심적 합리성(mutually disinterested rationality)'이라는 조건이다.
① 무지의 베일 : 이는 원초적 입장의 조건 중에서 계약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어야 할 지식에 관련된 조건으로서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자신과 소속된 사회의 특수한 사정에 무지하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에서는 이론의 기초로서 순수절차적 정의(pure procedural justice)라는 개념을 채용하고 있는데, 이는 합의된 원칙이 정의로운 것이라는 점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러한 합의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공정한 절차를 확립하기 위한 관점으로서 이를 원초적 입장이라 한다. 어떤 합의된 원칙이 정의로운 원칙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 합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각자가 타고난 특정한 사회적․자연적 제 여건 등의 우연적 요인들을 알게됨으로써 자기에게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유혹이 없게 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합의의 과정은 이러한 우연성에 대한 무지의 베일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당사자들은 제시된 대안들이 자신의 특정한 이해 관계에 미칠 결과에 의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흥정이나 결탁을 할 수 없으며 일반적인 고려 사항에 바탕을 두고서 평가하게 된다.
이러한 무지의 베일에 가려져야 할 특정 지식으로는 한 개인이 처한 사회적 지위나 형편, 그리고 그가 타고난 천부적 재능 등이다.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선(善)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가치관 및 자신의 심리적인 경향성에 대한 지식도 제외된다. 나아가서는 자신의 사회가 처한 특정 여건, 즉 정치적,경제적 상황이나 문명 및 문화의 수준을 알아서도 안되며 심지어 자기가 어느 세대에 속해 있는가에 대한 정보까지도 제외된다. 그리고 허용되는 특수 사실 가운데 유일한 한 가지는 그들의 사회가 전술한 정의의 제 여건에 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허용이 되는 다른 일반적 고려 사항으로는 인간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사실들이다. 그들은 정치 문제 및 경제 이론의 제 원칙들을 이해하며 사회조직의 기초나 인간 심리의 제 법칙을 선택함에 영향을 미치는 일반적 사실은 모두 안다고 가정되며, 그러한 일반적인 지식에 대한 별다른 제한은 설정되지 않는다.
원초적 입장에서 이러한 특정 지식이 제한되는 조건하에서는 계약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합의가 자기에게 유리할 것인지 불리할 것인지를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순수절차적 정의를 가능하게 하며 특정한 정의관에도 만장일치의 채택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② 상호무관심적 합리성 : 이는 원초적 입장에서의 동기상의 조건으로서 우선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일반적 의미에서 합리적 존재이며, 나아가서 그들은 이타적인 존재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조건은 정의의 여건 중에서 주관적 여건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한 가지의 본질적 특성만을 제외하고는 사회 이론에 흔히 나오는 합리성과 같은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은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選擇肢, options)에 대한 일관된 선호의 체계(coherent set of preferences)를 갖는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는 이러한 선택지들을 자신의 목적을 증진시켜 주는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며, 자신의 욕구를 보다 많이 만족시켜 주고 보다 성공적으로 실현시켜 줄 가능성이 큰 것을 택하게 된다.
롤즈가 이러한 일반적 합리성에 덧붙인 특수한 가정은 합리적 인간이란 다른 사람에게 손해만 입힐 수 있다면 자신의 어떠한 손실도 선뜻 받아들이는 그러한 파괴적인 심리적 시기심(envy)의 소유자도 아니고, 또한 상호간에 애정이나 동정심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점이다. 원초적 입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갖는 이러한 의미의 합리성을 롤즈는 상호무관심적 합리성(mutuallu disinterested rationality)이라 한다.
지금까지 기술한 이 두 가지 조건- 무지의 베일과 상호무관심적 합리성-이 하나의 입장으로 결합될 경우 서로 상쇄적인 효과를 갖게 된다. 즉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자들이기는 하나 자신의 신원이 무지의 베일에 의해 확인되지 않음으로써 공정성이 확보될 뿐만 아니라 결국 원초적 입장에 있는 자들은 타인의 이익까지도 고려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물론 원초적 입장이란 사회계약론에서의 자연상태와 마찬가지로 역사상에 실재한 상태나 문화의 원시상태는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정의관을 도출하기 위한 순수히 가정적 상황이다. 롤즈가 이러한 원초적 입장의 가설을 채택하게 된 데에는 도덕판단을 단순히 직관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결함으로 지적되고 있는 이유나 근거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 볼 수 있다.
롤즈는 순수 절차상의 정의가 보장되는 원초적 입장에서 당사자들간에 타산적 판단에 의해 합의되는 일련의 원칙이 곧 사회정의의 원칙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원초적 입장과 정의의 원칙과의 관계는 그에 의하면 연역적인 것이라고 한다.
③ 불확실성 하에서의 의사결정 원칙 : 이는 롤즈가 가정하는 원초적 입장에서의 합리적 계약자들은 어떠한 선택의 전략에 따라서 정의의 원칙을 택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정의의 원칙을 발견하기 위한 발견적 장치(heuristic device)로서의 원초적 입장의 여러 가정 속에서 당사자들의 합리성이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원초적 입장에 있는 당사자들은 그들이 채택할 특정 사회 체제 아래서 그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무지의 베일 속에 있기 때문에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상황하에서 합리적인 인간들이 의거하게 될 의사결정 원칙에는 라프라스(Pierre S.M. de Laplace)의 원칙(혹은 기대효용 극대화의 원칙)과 최소 극대화(maximin)원칙 및 최대 극대화(maximax)원칙 등이 있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무지의 베일에 가리워져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하에 있는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어떤 원칙을 택하게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보자.
장래 출현 가능한 상태
대 안 |
S1 |
S2 |
S3 |
S4 |
Ⅰ |
4 |
4 |
0 |
2 |
Ⅱ |
2 |
2 |
2 |
2 |
Ⅲ |
0 |
8 |
0 |
0 |
Ⅳ |
2 |
6 |
0 |
0 |
이 경우 세 가지 원칙에 따른 대안 선택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라프라스의 원칙에 따르면 모든 장래의 가능성은 같은 확률을 갖는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기대치를 극대화하는 기대 효용 극대화 원칙에 따른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위의 매트릭스에서 확률은 모두 1/4이라고 가정되므로 기대이익(E)은
E(Ⅰ)=4(1/4)+4(1/4)+0(1/4)+2(1/4)=2.5 마찬가지로 E(Ⅱ)=2.0, E(Ⅲ)=2.0, E(Ⅳ)=2.0 이 된다. 따라서 대안 Ⅰ이 선택되므로 결국 평균공리의 원칙에 따른 결과와 동일하다.
둘째, 최소 극대화의 원칙에 따르면 이 원칙은 각 대안들의 최저 이익을 조사하고 이 최저 이익 중 최대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는 각 대안들의 최저 이익이 Ⅰ= 0,Ⅱ= 2,Ⅲ= 0,Ⅳ=0 이므로 그 최대는 2이다. 따라서 Ⅱ가 선택된다.
셋째, 최대 극대화 원칙으로, 이는 최소 극대화 원칙과는 반대로 각 대안의 최대 이익 중에서 최대의 것을 구한다. 위의 예에서는 4,2,8,6중 8이 최대이므로 Ⅲ이 선택된다.
롤즈는 원초적 입장에 있는 당사자들은 최소 극대화의 규칙에 따라 결정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서 그는 원초적 입장에 있는 당사자들은 무지의 베일로 인해 미래를 예측 할만한 계산의 근거가 불충분하고 또한 일상적 경우와는 달리 이러한 결정은 자손만대에 걸친 중대사에 관련된 까닭에 당사자들은 위험을 피하고 신중한 결정을 하기 때문에 원초적 입장의 제약이 작용할 때 최소극대화의 원칙에서 표현되고 있는 보수적 태도(conservative attitude)가 채택된다는 것은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가
첫째, 롤즈의 '차등원리'는 공리주의에서와 같이 보다 사회 전체의 보다 큰 이익을 위해 불공평한 배분을 허용할 가능성을 방지하지만 그것이 롤즈가 말하는 축차적 순서(lexical order)에 따를 경우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적 배분을 결과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보자.
성 원 사 회 |
A |
B |
C |
Ⅰ |
100 |
90 |
10 |
Ⅱ |
100 |
12 |
11 |
Ⅲ |
10 |
10 |
10 |
축차적 차등원리에 따르면, 사회 Ⅱ의 경우 가장 극빈한 구성원 C의 처지가 Ⅲ나 Ⅰ보다 더 낫기 때문에 선호될 것이다. 그러나 B의 경우 사회 Ⅱ가 사회 Ⅰ의 경우에 비해 너무 현저하게 극빈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사회 Ⅰ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증대시켜 보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Ⅰ - 100, 100, 100, 100, 100, 100, 10
Ⅱ - 100 12, 12, 12, 12, 11, 11
이 경우에도 축차적 차등원칙에 따르면 여전히 사회 Ⅱ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기준은 사회에서 가장 극빈한 사람에 대한 고려를 할뿐이지 기타 구성원의 상태에 대해서는 고려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계층에 있지 않는 사람들의 수를 고려해 볼 때 사회Ⅰ이 보다 나은 것 같이 보인다. 사회Ⅰ의 선택은 곧 사회 전체의 총이익을 고려한 공리주의 원리에 따른 가치판단의 결과이다.
둘째, 롤즈의 정의론에서 가정되고 있는 사회 체계는 현실적 사회 체계가 아닌 이념적 사회 체제로서 이상 사회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다. 이상론에 있어서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가 아닌 이상적인 정의의 원칙이 지배하는 질서정연한 사회(well-ordered society)가 가정되고 있으며, 그러한 정의의 원칙이 모든 이에게 공지되어 있고, 모든 성원은 그러한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자 하는 정의감을 지닌 도덕적 인간임이 가정된다.
이러한 이상적 정의론은 우리가 달성해야 할 정의로운 사회관을 제시해줌으로써 사회의 기본 구조가 갖는 분배적 측면의 정의 여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부정의한 현대 사회제도의 개선 및 사회 변화의 지침이 될 기준을 제시해 준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적 정의론이 현실적 작용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현실적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침이나 전략의 문제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즉 정의원리는 어떤 제도(arrangements)가 정의로운가를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를 이와 같은 정의로운 제도로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기법에 의해 어떤 비용으로 가능한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보자. 인종차별을 하는 사회적 제도가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사회제도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면 그 제도는 정의롭지 못하고 따라서 우리는 이를 변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어떤 소수민족에 대한 편견을 제거하기 위하여 어떤 개혁적 조치가 취해졌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기존의 체제로부터 이익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개혁조치로 인해 손해를 당해야 한다. 이 경우 흔히 비난받지 않을 사람들조차도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1970년경부터 법과대학(law school)이나 의과대학(medical school)에서 소수민족에 속하는 지원자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베풀어 입학을 허용해 주는 대학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이는 롤즈의 차등의 원리에 따르면 옳다.),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발생한 쟁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러한 조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백인 지원자들이 그 동안 편중된 사회체제로 인해 혜택을 받아왔기 때문에 다수집단에 속하는 백인들은 입학 전형에서 설사 다소의 불이익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을 과거의 부정에 대한 보상으로서 감수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상에의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당해 인종차별이라는 부정(不正)에 무엇인가 책임이 있는 자 이어야 하는 데 그러한 책임과 전혀 관계가 없는 백인 학생 지원자가 그로 인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의의 실현이 현존 사회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든 불이익을 보는 사람이든 모두에게 손해를 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사회전체의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 산업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 산업체는 전통적으로 인종차별 관습에 따라 여자와 흑인을 조직체의 권한 있는 지위에서 배제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이 산업체가 극소수의 소수민족을 빼고는 사실상 인종차별 및 성차별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지역 사회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자. 이때 정의 실현을 이유로 인종 차별적 고용정책을 폐지하는 정책을 펴게 되면 이는 생산력을 붕괴시키고, 더 나아가 전 사회의 경제 침체를 초래해 현존 사회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도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 이 산업체의 책임자는 공정한 정의로운 관행을 초래하기 위해 어떤 변화 전략을 택할 것인가? 이 산업체의 책임자가 그 지위를 유지하면서 정의로운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변화 정책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예는 정의의 실현이 현존 체제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 뿐 아니라, 불이익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손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롤즈 역시 그의 정의 원칙이 자동적으로 제도를 평가하고 사회 개조의 전반적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 이유로 롤즈에 있어서 현행 체제의 정의 여부에 대한 판단은 그 체제의 현실적 여건 등을 포함한 배경적 구조와 역사적으로 그에 앞선 선행 체제에 대한 정보를 참조해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체제의 정의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역사적 배경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면 롤즈가 공리주의를 비난하는 주요한 예 중의 하나인 노예제도나 농노제도가 정당화될 가능성이 있다. 노예제도나 농노제도도 그것이 과거의 보다 심각한 부정의(不正義)를 구제했을 경우에는 용인될 수가 있으며, 역사상 전통 체제보다 노예제도가 나은 과도기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과거에는 포로들을 죽이던 도시국가들이 포로를 노예로 삼는다는 조약을 체결했다 해보자. 이럴 경우 공리주의적 근거에 의해서도 노예제도가 허용될 수 있으나, 롤즈에 있어서도 노예제도는 과거의 관행보다 덜 부정의한 제도가 된다. 그 체제는 노예를 혹독하게 다루지 않을 경우 분명히 현행 체제의 개선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완전한 정의의 추상적 이념은 전적으로 무의미한 것은 아니나 직관에 의해 지나치게 많은 여지를 남김으로써 현실적 지침으로서의 역할에 한계점을 드러낸다. 나아가서 역사적 여건과의 함수 관계에서 정의의 정도가 판별될 경우 우리는 정의(justice)라는 개념과 정당화(justification)라는 개념간에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게 된다. 비록 노예제도가 어떤 역사적 단계에 있어서 정당화될 수는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의롭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롤즈의 정의론은 불분명한 일면을 감추고 있다.
이와 같이 이상론에 국한된 롤즈의 정의론은 그것이 비록 현실 사회구조의 정의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 및 개조 방향을 제시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한계점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하여 롤즈의 정의원칙은 가치 판단기준체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가치 판단 기준에 있어서 완전한 체계를 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 공리주의와의 절충가능성 : 롤즈의 정의론이 가치 판단 기준과 관련하여 내포하고 있는 가장 큰 한계점은 그것이 자동적으로 현실의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침이나 전략의 문제에 적용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정의론은 그것이 자동적으로 제도를 평가하고, 사회개조의 전반적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롤즈의 정의론은 가치판단 기준의 체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기는 하나 그것만으로 가치판단 기준의 완전한 체계를 이룰 수는 없다. 그리하여 롤즈에 있어서도 기본 구조에 대한 원칙들이 결정되면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은 개인에 대한 원칙들, 즉 개인간의 의무 및 책무와 관련된 원칙들을 결정하게 되고 일단 이러한 원칙의 체계가 모두 채택되면 이의 적용을 위해 무지의 베일은 완전히 걷혀지게 되고, 구체적 관련된 모든 사실과 정보를 참조해서 특정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원칙만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행위의 문제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그 이유는 행위의 문제와 관련된 원칙들의 애매성이나 그들 원칙들간의 상충이 일어나는 경우
그 우열을 롤즈의 원칙만을 가지고 판단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롤즈는 이러한 경우 우열 판단 문제에 대해 이를 해결할 명확한 규칙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대해 롤즈는 우리의 상대적 직관에의 의존을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실적 원칙들간의 상충을 해결하기 위해 공리주의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적어도 직관주의를 능가할 여지를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롤즈의 정의의 원칙과 공리주의 원칙이 서로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상호 절충적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공리주의 이론들의 공통적 특징은 본래적 선(intrinsic good)을 극대화 해주는 행위를 옳은 행위라고 보는 극대화의 원리에 있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목적론적 윤리설에 기초하고 있다. 전술한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공리주의가 현실적 작용 가능성과 관련하여 극대화 원리에 따른 계산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순화된 선(善, good)을 전제하는 경우 계산 가능성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접어 두고서라도 그것이 우리의 정의감과 합치되지 못하는 윤리체계가 되고 또한 우리의 도덕판단에의 합당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충분히 포괄적인 여러 가지 선을 설정하는 경우 이는 반대로 계산 가능성으로 인하여 곤란성을 수반하므로 비현실적인 사회윤리가 되어버리고 마는 딜렘마에 봉착한다. 이는 곧 목적론적 윤리설의 딜렘마로서 이의 한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목적론적 윤리체계로서의 공리주의는 극대화의 원리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선을 분배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이는 공리주의에서의 행위공리주의나 규칙공리주의에서 말하는 어떤 행위나 규칙이 세계에 있어서 선의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선을 분배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부정의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공리주의가 옳고 그름의 유일한 기본 척도로 만족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며 공리주의와 같은 극대화 원리 외에 선과 악을 분배함에 있어서 지침이 될 어떤 정의의 원칙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곧 목적론적 윤리설의 한계성으로서 목적론적윤리설 외의 어떤 다른 윤리설을 필요로 함을 의미하는데 그러한 또 하나의 윤리설이 법칙론적 윤리설로서 이는 목적론적 윤리체계에서의 옳음과 좋음의 관계를 전환하여 옳음을 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옳음에 위배되는 선은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하여 원칙이나 의무의 체계가 선행되고 그에 따라 가치 있는 선의 한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칙론적 윤리설에 입각하고 있는 이론이 곧 롤즈의 정의론임은 이미 기술된 바 있다.
이상의 논의들을 통해서 우리는 공리주의 원리에 따른 판단기준이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서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정의와 관련된 어떤 원리를 필요로함을 알 수 있고 그러한 원리로 법칙론적 윤리설에 기초한 롤즈의 정의원리를 들었다. 롤즈의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은 법칙론적 윤리설에 기초한 가장 대표적인 이론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리주의 원리와 롤즈의 정의 원칙간에 상호 절충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그것은 곧 공리주의로 대표되는 효율성과 롤즈 정의론으로 대표되는 소득분배의 형평성 내지 공정성간의 절충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은 이들 원칙들이 구체적인 경우 상충하게 될 때 어디에 우선성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획일적인 결론을 객관적으로 내리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서 달리 설명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 책 구매 없이 PDF 제공 가능
✽ adipoman@gmail.com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