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은 어찌하여 서양에 뒤쳐지게 되었나?
17세기 이전에는 동양이 서양보다 우위라는 것은 역사적 팩트다.
서양의 근대적 농업, 근대적 조선, 근대적 석유산업, 근대적 천문대, 근대적 음악 십진법, 지폐, 우산, 릴낚시, 일륜차, 다단 로켓, 총, 수뢰, 독가스, 낙하산, 열기구, 비행, 브랜디,, 위스키, 장기, 인쇄술, 심지어 증기기관의 기본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동양에서 가져왔다.
배의 키, 나침반, 이중의 돛대가 있는 선박과 항해의 기술이 중국에서 전달되어 콜럼버스의 항해와 식민지 제국 건설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발명된 등자로 인해 서양인들이 말을 안정적으로 탈 수 있었고 이것이 아니었다면 유럽의 기사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은 어찌하여 서양에 뒤쳐지게 되었나?
막스 베버는 관료제도의 존재를 말한다.
대항해를 통해 신대륙을 개척한 서양과, 만족의 고립을 택한 동양의 차이를 말하기도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경쟁과 과학이다. 경쟁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분열된 정치 때문이다. 여러 나라로 나누어져 경쟁하여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경쟁하려니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과학기술자를 우대했다.
주변 나라와 싸워서 이기려면 강력한 군대와 이것을 뒷받침하는 기술과 경제력이 필요하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하는 귀중한 중용을 가진 도전을 받은 것이다. 각국의 왕들은 좋은 무기를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면 속히 병사들을 무장시켰다. 경제력을 높일 새로운 농사법을 적극적으로 찾았다. 돈을 벌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역에 열을 올렸다. 또한 유럽 안에서 경쟁에 는 한계가 있으니 눈을 밖으로 돌렸다. 식민지 확보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물자는 유럽을 부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유입되는 물자 덕분에 활기가 넘쳐나고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식회사나 증권시장이라는 혁신적인 경제 시스템을 개발했다.
종교적인 영향도 있다. 서양의 기독교는 종교혁명 이후 실용 사상을 강조했다. 상품을 만들고 이것을 거래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유학의 주자학이 득세했다. 유학에는 크게 두 개의 학파가 있었는데 주자학과 양명학이다. 주자학은 학문과 명분을 중시했고 실용적인 것을 천하게 생각했다. 반대로 양명학은 실용주의에 가깝다.
이런 많은 이유와 함께 필기구의 차이가 중요한 변화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록하는 방식의 차이다.
동양= 사물의 전체를 중시해 명암의 표현이 가능한 붓이 발달
서양= 사물의 경계를 중시해 정밀한 선을 그리기 편한 펜이 발달
붓과 펜은 각각 동·서양을 대표하는 필기구다. 붓은 끝이 부드럽고 뭉뚝하여 넓은 면적에 걸친 명암 표현에 적합하고 펜은 끝이 뾰족하고 딱딱하여 정밀한 선의 표현에 적합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동양은 사물 간의 경계보다 전체를 하나로 볼 수 있는 직관을 중시했던 반면, 서양은 사물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분석하는 것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적 차이가 생활용품에 영향을 미친 결과가 붓과 펜으로 드러난 것이다.
17세기 서양은 펜과 노트의 문화였다. 쉽게 메모하고 노트하고 들고 다니며 기록했다. 모여서 토론하고 경쟁하려 비망록이 유행했다. 로크는 비망록 기술을 책으로 냈다. 붓으로 한지에 쓰고 토론하고 모으고 이동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종이를 먼저 발명했지만, 기록과 저장하는 필기구의 차이로 문명의 속도에서 차이가 났다.
미켈란젤로, 뉴턴, 아인슈타인의 노트를 보라.
붓과 펜의 차이, 즉 기록 방식의 차이가 문명의 차이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