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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번역의 힘, K문화, K컨텐츠, 한국 문학 언어, 세계 시민의 언어, 노벨 문학상

Jobs9 2024. 10. 1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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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를 쓴 작가 한강(오른쪽)과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왼쪽)가 지난달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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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한국인을 한 명도 만나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수준높은 영어로 번역해 맨부커 국제부문(비영어 작품)상을 공동으로 받은 데보라 스미스는 말했다. 
2009년 캠브릿지 대학 영문학과를 우등First Class 졸업.
2010년 런던 SOAS 대학 한국학 석사과정에 입학하며 한국문학과 번역에 본격 관심 갖게 됐다.
이유는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했거나 아는 사람이 영국에 없다시피해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현재는 2012년부터 시작한 SOAS 박사과정서 한국현대문학 특히 1990년대 이후 현실문학을 본격 연구중이다.
한국 소설가 한강(54)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그의 대표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인 데버라 스미스(37)도 주목받고 있다.  

스미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번역가로 진로를 정하면서 번역 업계에서 ‘틈새시장’이었던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2010년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런던대 동양 아프리카대(SOAS)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스미스는 한국어를 배운 지 3년 만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만난다. 스미스는 번역은 물론 출판사 접촉부터, 홍보까지 도맡았다. 우선 ‘채식주의자’의 첫 20페이지를 번역해 영국 유명 출판사 그란타 포르토벨로에 보냈고, 맥스 포터 편집자가 영문판을 출간하게 됐다. 또 책이 세상에 나오자 평론가와 독자 등에 이메일에 보내 홍보했다. 

이처럼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게 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를 인정받아 번역가로서 함께 상을 받기도 했다. 

스미스가 주목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과 전혀 접점이 없음에도 독학으로 한글을 배워 성공적인 번역을 해냈다는 점이다. 번역 초기에는 낱말 하나하나 사전을 뒤져가며 번역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오히려 ‘채식주의자’의 번역은 원작의 섬세한 문체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평을 받는다. 

스미스는 2016년 한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항상 원작의 정신에 충실히 하려고 하며 가능한 한 훼손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언어 형태에도 충실히 하려고 한다”며 “부실한 번역은 우수한 작품을 훼손할 수 있지만, 아무리 세계 최고 수준의 번역이라도 보잘것없는 작품을 명작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 고유의 단어를 풀어쓰기보다는 그대로 사용하는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는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 만화를 ‘코리안 망가’ 식으로 다른 문화에서 파생된 것으로 쓰는 데 반대한다”며 “한강의 ‘소년이 온다’ 번역에도 ‘형’이나 ‘언니’ 같은 단어를 그대로 썼다”고 했다. 

‘채식주의자’ 이후에도 다양한 한국 작품들을 영미권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영국에서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에 특화한 비영리 목적의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Tilted Axis)를 설립했다. 이후에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흰’,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서울의 낮은 언덕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 등을 번역하며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중이다.

 

 

지난 120여 년간 노벨문학상의 영토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변방’이었다. 일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오에 겐자부로(1994), 가즈오 이시구로(2017·국적은 영국) 등 세 수상자를 배출했고, 중국은 가오싱젠(2000·국적은 프랑스), 모옌(2012) 등 두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은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 등이 2000년대 초부터 유력 후보로 외신에 등장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제대로 된 영어 번역서가 드물고, 일본·중국 등에 비해 국제사회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 문단과 출판계의 중론이었다. 그 ‘번역의 장벽’은 지난 2016년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을 받으면서 처음 무너졌다. 

이는 한국의 국력이 성장하고, K팝, K드라마 등으로 ‘문화적 영토’를 글로벌하게 확장한 것과 연관이 깊다. 당시 28세로 한국어를 공부한 지 6년 만에 ‘채식주의자’를 영역해 한강과 함께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국 문학은커녕, 한식을 먹어본 적도, 한국인을 만난 적도 없었지만 한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인 것으로 보아 한국 문학계가 활발할 것으로 짐작해 한국 문학 번역가가 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정명교 연세대 명예교수는 1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스미스가 ‘채식주의자’를 굉장히 서양인의 문학적 취향에 맞게 번역한 것은 확실하다. 식물이 되고 싶어 하는 여인과 처제의 몸에 페인트칠하고 싶어 하는 탐미주의자의 대립을 번역가가 효과적으로 대비시켰다”고 했다.  

한강은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았고, 2018년엔 스미스가 번역한 소설 ‘흰’으로 다시 맨부커상 최종심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엔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을 받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펴낸 프랑스 출판사 그라세의 조아킴 슈네프 편집자는 10일 언론에 “언젠가 한강이 노벨상을 받을 거라고 확신은 했지만 오늘이 그날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서영채 서울대 교수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큰 관점에서 보자면 ‘K’라 불리는 한국 전체 문화력의 향상 덕이라 할 수 있다. 한류 팬들이 한국을 알리기 위해 한국 문학에 접근하고 발견해 자기 문화권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그간 많은 노력을 해온 한국문학번역원의 힘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세계적 작가 올라선 한강, 번역자들 헌신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소년이 온다』, 제주 4・3 학살 사건이 남긴 피 묻은 기억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가부장제 폭력에 시달리던 한 여성의 내적 상처를 그려낸 『채식주의자』, 언어를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통해 가족 상실의 의미를 탐구한 『희랍어 시간』 등 한강의 주요 작품들은 한국 문학이 활력과 위엄을 잃어가는 2010년 이후에 주로 쓰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 작가는 자기 주변의 이야기에 대한 세밀화적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사회의 고통에 참여하고, 그 고통의 치유에 이바지하는 언어를 발명해야 한다는 점을 한강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 셈이다.

한강 작가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강 작가 개인의 노력만은 아니다. 어느 영역에서든 문화의 해외 진출은 ‘수용자 집단의 관심ㆍ평가ㆍ적극 수용’ 단계를 밟아 확산된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에도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프랑스 페미나상 등 각국의 대표적 문학상을 수상해 왔고, 그 배경엔 일찍이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등의 꾸준한 지원,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이바지한 여러 언어 번역자의 헌신적 노고가 있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2023년 12월 말 기준 44개 언어 총 2032건의 번역 및 출판 활동을 지원해 왔다. 민간 재단인 대산문화재단도 가장 먼저 이 사업에 뛰어든 이래, 지금까지 꾸준한 번역 지원 활동을 통해서 성과를 남겨 왔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도 대다수 이들 기관의 지원을 받아서 전 세계에서 출판되었다. 

아울러 작품의 좋은 평가를 얻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번역의 질이다. 한강 작가가 세계적 작가로 올라서는 데 큰 역할을 한 계기는 『채식주의자』가 2016년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맨부커 국제상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스미스의 번역은 일부 논란은 있었으나 현지 독자의 맥락을 살린 번역으로 유명하다. 이후, ‘한강 이펙트(effect)’가 형성되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 평가를 바꿔놨다. 편혜영의 『홀』(셜리 잭슨상), 황석영의 『해질 무렵』(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일본번역대상), 손원평의 『아몬드』(일본서점대상 번역부문),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그리핀 시문학상) 등 해외 수상 소식이 대폭 늘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에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죽음과 삶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한강 작가의 문학이 진도의 씻김굿에서 나온 우리 문학의 고유한 사유와 언어를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국의 문화적, 언어적 전통에서 나온 깊은 뿌리와 현대적 언어가 만날 때 비로소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은 열린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드디어 한국 문학의 언어가 세계 시민의 언어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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