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의 독립
1755년에서 1763년까지 오하이오 강(Ohio River) 주변의 인디언 영토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인 프렌치 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유럽에서는 1756년에서 1763년까지 주로 오스트리아-프랑스-작센-스웨덴-러시아 연합 대 프로이센-하노버-영국 연합으로 싸운 7년 전쟁 또는 포메라니아 전쟁(Pomeranian War)이 벌어졌습니다.
두 전쟁 다 영국의 승리로 승부가 나게 되면서, 영국은 식민지에 대한 지배와 조세를 강화하기 위한 1765년 인지세법(Stamp Act), 1767년 타운젠트 법(Townshend Acts)을 제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식민지 차별 정책으로, 식민지 국민들의 민심이반으로 거센 저항을 불러오게 됩니다.
결국 1776년 7월 4일 당시 영국의 식민지 상태에 있던 북미 13개 주의 연합체가 미국 독립선언(United States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의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을 만듭니다.
2. 포르투갈의 식민지
유럽의 지도를 살펴보면, 포르투갈(Portugal)은 스페인(Spain)에 가로막혀 유럽 내에서의 활약은 기대하기 어려운 지형입니다. 그래서 내륙이 아닌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즉, 대항해 시대의 주역이 됩니다.
빨간 부분이 1415년에서 1999년까지를 통합한 포르투갈 제국
또한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가마(Vasco da Gama, 1460년 또는 1469년 ~ 1524년 12월 24일)는 최초로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해안을 거쳐 인도까지의 항로를 개척합니다. 콜럼버스와는 달리 자세하고 보다 정확한 항로를 개척한 것입니다. 그렇게 대항해 시대의 주역으로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함께 남미의 상당 부분을 식민지로 지배하게 됩니다.
녹색이 포르투갈 계열, 남색이 스페인 계열 (1790년)
3.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포르투갈이 스페인과 함께 식민지를 넓혀 남미를 양분하던 시대인 1799년, 프랑스(France)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는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는 19세기 첫 10년 동안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켜 유럽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됩니다.
당시 스페인은 국토의 대부분이 나폴레옹에 의해 유린당하게 됩니다.
1812년 유럽
녹색 : 프랑스 제국
연두 : 프랑스 지배 상태
빨강 : 포르투갈
3. 포르투갈 망명 정부
스페인이 프랑스에 유린당하는 것을 본 포르투갈 왕정은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식민지로 망명해 버립니다. 당시 포르투갈의 식민지 총독부 중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로 싸우기도 전에 도망칩니다. 스페인 정부는 그래도 자국에 남아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포르투갈의 망명 정부를 시작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두 국가는 전쟁으로 인해 재정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재정 충당 방법으로 영국과 같은 식민지 수탈을 하게 됩니다. 미국과 같은 혁명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4. 페닌술라르와 크리올
유럽의 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국민을 두 계층으로 분류하게 됩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베리아반도)에서 태어나 식민지에서 자란 순수 유럽 혈통 페닌술라르(Peninsular)※와 그 아래 계층으로 식민지에서 태어난 유럽인 크리올(Creole)※이 그것입니다. 크리올은 후에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도 포함하는 말이 됩니다.
※ 이베리아반도(Peninsula ibérica) 출생 백인이란 뜻, 우리말로는 반도인.
※ 포르투갈 크리올루(Crioulo), 스페인 크리오요(Criollo), 프랑스 크헤올(Créole).
문제는 페닌술라르가 크리올을 천한 신분으로 심한 차별을 벌이면서 시작됩니다. 게다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크리올에게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면서 심각하게 불만이 쌓이자, 남미 곳곳에서 독립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5. 시몬 볼리바르(1783년 7월 24일 ~ 1830년 12월 17일)
시몬 볼리바르의 풀 네임은 시몬 호세 안토니오 데라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볼리바르 팔라시오스 이 블란코(Simón José Antonio de la Santísima Trinidad Bolívar Palacios y Blanco)로,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 즉 리베르타도레스(Libertadores)로 불립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독재자가 된 영웅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볼리바르는 대표적인 크리올로, 12살에 정치적 자유주의의 신봉자인 시몬 로드리게즈(Simón Rodríguez)에게 지도를 받습니다. 당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생각하는 크리올들이 많았으며 볼리바르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자유주의 사상을 신봉하게 됩니다. 그러나 로드리게즈는 독립운동이 적발되어 망명하게 되었고, 볼리바르는 안드레스 베요(Andrés Bello)에게 스페인어와 웅변술의 지도를 받습니다. 14세가 되자 사관학교에 입학합니다.
15세가 된 1798년 준위가 되고, 1799년에서 1802년까지 멕시코와 유럽을 여행합니다. 이때 다른 크리올과의 만남으로 독립의 의지를 키우는 한편, 자유주의 사상과 교양을 익히게 됩니다. 1807년 남미의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되고 잠깐 보았던 미국에서 독립 국가의 모습을 구상하게 됩니다.
1811년 그는 독립운동을 이끌어 베네수엘라 공화국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호세 데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ín)과 함께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베네수엘라를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로 독립시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독재와 하야 그리고 쓸쓸한 죽음을 맞습니다. 미국과 같은 연방 국가를 꿈꿨던 그란 콜롬비아 또한 지금의 국가들로 갈라집니다.
우리는 과거의 유산을 거의 지니고 있지 못하며,
그렇다고 원주민이나 유럽인도 아니다.
이 땅의 합법적인 소유자와 스페인 침략자
사이 중간쯤에 위치한 메스티소다.
태생으로는 아메리카인이며,
법적으로는 유럽인이다.
우리는 원주민과 소유권을 놓고 다퉈야 하는 반면,
침략자에 맞서 이 땅에서 우리의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이중의 갈등상태에 놓여 있다.
시몬 볼리바르
6. 브라질 독립
1814년 라폴레옹은 지중해의 작은 엘바 섬의 영주로 추방됩니다. 이에 유럽에 일었던 전쟁의 소용돌이는 잠잠해지게 됩니다.
이에 1821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6세(João VI)는 리스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들 페드로 1세(Pedro I)를 리우데자네이루에 남겨 둡니다.
그는 브라질을 식민지 지위로 되돌리길 거부하는 브라질인들의 힘을 엎고, 1822년 9월 브라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등극합니다. 그렇게 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1826년 3월에 아버지 주앙 6세가 사망하면서 페드로 4세(Pedro IV)라는 이름으로 약 2개월간 포르투갈 왕국의 국왕도 겸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루과이를 놓고 벌인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그에 대한 반대 시위가 벌어지자, 1831년 5살 난 아들 페드로 2세(Pedro II)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포르투갈로 가버립니다.
7. 아르헨티나 독립
한편 1806년 영국은 스페인의 식민지인 아르헨티나(Argentina)의 항구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를 침공합니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탓에 스페인 본토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라 플라타(La Plata) 부왕은 도피해 버립니다. 그러자 포르테뇨(Portenos) 민병대는 부왕이 없는 상황에서 영국군을 격퇴해 버립니다.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하여 자신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트르(Joseph Bonaparte)를 스페인의 국왕 호세 1세(José I)로 임명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왕에 대한 충성을 거부합니다. 1816년 7월 9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수도로 정한 리오 데 라 플라타 연합주(Provincias Unidas de Sud América, 현재의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8. 호세 데 산마르틴
호세 데 산마르틴(José de San Martín)은 아르헨티나의 장군이며, 페루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정치가입니다.
그는 1819년 칠레(Chile)를, 그리고 1820년 페루(Peru)※를 각각 독립시킵니다. 그러나 그는 콜롬비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시몬 볼리바르와 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부로부터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유럽을 떠돌다 1850년 프랑스의 불로뉴쉬르메르(Boulogne-sur-Mer)에서 쓸쓸히 사망합니다.
※ 공식적인 페루의 독립은 1821년 7월 28일에 이루어집니다.
그는 훌륭한 독립운동가로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세 나라의 독립에 공헌했고 그 자신의 이름을 딴 훈장은 아르헨티나의 최고 훈장이며 아르헨티나 어딜 가도 동상을 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9. 우루과이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며,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사이가 나쁘듯이 이 두 나라 또한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브라질 제국에 합병되어 있던 우루과이(Uruguary)가 아르헨티나(리오 데 라 플라타 연합주)의 지원을 받아 1825년 8월 25일 독립을 선언합니다. 그런데 이에 반발한 브라질이 우루과이를 침공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500일간의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Argentina-Brazil War)이 발발합니다.
그러나 침공한 브라질은 오히려 아르헨티나군이 자신들의 본토까지 들어오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브라질은 연이은 패배로 인구 부족 현상까지 겪게 됩니다.
1828년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하여 중재에 나섰고, 1830년 우루과이는 신생 독립국이 됩니다. 신생 독립국 우루과이는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싸워준 아르헨티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자국의 국기를 제작할 때 아르헨티나의 국기에 있는 5월의 태양(sol de mayo)※을 동일하게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브라질과는 지금도 사이가 나쁩니다.
※ 잉카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 인티(Inti)를 의미합니다.
아르헨티나(좌측)와 우루과이 국기
10. 남미의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