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모래톱 이야기, 김정한, 저항문학, 농촌문학

Jobs 9 2020. 6.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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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류에 있는 모래톱인 조마이섬을 배경으로 하여 부당한 권력의 횡포와 그에 대항하여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섬사람들의 처절한 저항을 그리고 있다.

* 갈래 : 단편 소설, 농촌 소설, 참여 소설
* 성격 : 사실적, 저항적, 현실 고발적
* 배경 
① 시간 - 일제 강점기부터 1960년대
② 공간 - 낙동강 하류 조마이섬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소외된 인간들의 비참한 삶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

 

어휘 풀이

* 역둔토 : 역의 경비를 충당하는 역토와 역에 주둔하는 군대의 자급자족을 위해 경작하는 둔전을 아울러 이르는 말.
* 불하 : 매각. 국가 또는 공공 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팔아넘기는 일.
* 동척 :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준말로, 1908년 일본이 한국의 경제를 독점·착취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책 회사.
* 접낫패 : 접낫을 들고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을 건지려는 패거리.
* 후욕 : 꾸짖어서 욕함.
* 패설 : 사리에 어긋나는 말.
* 컁컁한 : 얼굴이 몹시 여위어 날카롭게 보이는.
* 정지(整地) : 땅을 반반하고 고르게 만듦.

 

이해와 감상

낙동강 하류의 모래톱 조마이섬을 배경으로 하여 일제 시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곳 주민들의 삶의 역사를 조명한 작품이다. 작가는 1인칭 관찰자인 ‘나’의 입장에서 이들의 삶의 내력을 보고하는 위치에 서 있으며, 소수 유력자와 선량한 다수 민중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외세의 압제와 제도의 불합리성으로 말미암아 피땀으로 토지를 일구면서도 한 번도 그 땅을 소유하지는 못했던 민중들의 원한은 핍박하는 자에 대한 갈밭새 영감의 살인 행위를 통해 극대화된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창조해 낸 조마이섬은 낙동강 하류의 조그만 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마이섬의 소유권 변천 과정을 통해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부조리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전체 줄거리

이 글은 ‘나’가 20년 전 알았던 건우와 조마이섬에 살던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학교 교사였던 ‘나’는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지각한 일을 계기로 조마이섬에서 통학하던 건우를 눈여겨보게 된다. 건우네 집에 가정 방문을 간 ‘나’는, 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전사하고 삼촌은 삼치잡이를 나갔다가 죽어서, 어부인 할아버지 갈밭새 영감의 벌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 건우네 사정을 알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전쟁 때 육군 특무대 감옥에서 만났던 윤춘삼 씨를 만나 갈밭새 영감을 소개받고, 그들에게 조마이섬의 내력과 섬 주민들의 애환을 듣는다. 그해 처서 무렵 홍수가 나고, 유력자가 쌓아 놓은 엉터리 둑 때문에 섬은 위기에 처한다. 주민들은 섬이 더 위험해지기 전에 둑을 허물려고 하는데 유력자의 앞잡이가 나타나 이를 방해한다. 화가 난 갈밭새 영감은 그중 한 명을 탁류에 던지고 경찰에 끌려간다. 폭풍우가 끝난 뒤 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인물 소개

* ‘나’ : 건우의 담임이자 소설가. 이 글의 관찰자(서술자)이자 고발자 역할을 수행한다.
* 갈밭새 영감 : 건우의 할아버지. 거친 바다와 싸우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어민으로, 유력자들의 횡포에 맞서 조마이섬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 건우 : K`중학교 학생으로 순박하다. 조마이섬에서 나룻배로 통학을 한다.
* 윤춘삼 : 부당한 옥살이를 한 적이 있으며, 갈밭새 영감과 같이 의로운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작품 연구

이 소설의 서술상 특징

이 소설은 건우라는 제자를 통해 알게 된 조마이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가 전달하고 있다. ‘나’는 관찰자, 서술자인 동시에 조마이섬 사람들이 겪는 부조리에 대한 고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나’가 교사였던 시절 알게 된 이야기를 20년이 지난 지금 회상하는 형식을 띠고 있어 액자 소설의 성격이 드러난다.

조마이섬의 소유권을 통해 드러난 부조리

둑을 만들고 물과 싸워 가며 조마이섬을 일구고 지켜 온 주민들은 소외된 채 동척, 국회 의원, 유력자 등 당시의 권력자에게 소유권이 있는 상황을 통해 부당한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조마이섬의 소유권 변천 과정

둑을 허무는 행위에 담긴 의미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조마이섬 사람들의 노력
*조마이섬을 차지하려고 하는 유력자의 부당한 권력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결말의 분위기와 상징성

이 작품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는 농민들의 힘과 저항 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고, 이것이 농민의 후예인 ‘건우’에게 그대로 전해질 것임을 서술자가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개 부분에서 서술자가 ‘건우’에게 말했던 것처럼 민중의 생존권을 빼앗은 유력자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현실과 그에 맞서는 삶 - ‘갈밭새 영감’

조마이섬의 주인은 섬을 힘들여 개척해 살고 있던 주민들이어야 하지만, 정작 그 소유권은 전혀 엉뚱한 사람들에게 넘어간다. 이를 주도한 일제, 해방 후의 한국 정부 모두 권력자들을 감싸는 세력이며, 경찰 혹은 관청 역시 주민들의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자들의 소유권을 보호해 주기 바쁘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는 홍수를 계기로 하여 폭발한다. 조마이섬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존권마저 유린하려는 부당한 권력에 과감히 맞서게 되는 것이다. 모순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삶을 보여 주는 대표적 인물이 갈밭새 영감이다. 작가는 갈밭새 영감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는 정의로운 인간상을 창조하여 보여 주고 있다.

 

‘모래톱 이야기’의 성격

* 농촌 문학 : 농민과 어민이 대부분인 조마이섬의 상황을 통해 농촌의 현실과 생존의 힘겨움을 그려 냄.
* 저항 문학 : 유력자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대항하는 갈밭새 영감(조마이섬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불의에 굴하지 않는 민중의 의지를 드러냄.
* 사실주의 문학 : 작품이 쓰인 당시 낙동강 유역 마을의 곤궁한 삶과 삶의 터전을 잃은 소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나타냄.

 

이 작품의 문체와 인물 성격의 관계

거칠면서도 부정적인 어휘의 사용과 수식이 없는 문체, 강건한 어조, 억센 사투리의 사용 등은 작품 전체로 볼 때 건조하면서 절박한 느낌을 주는 문체를 형성한다. 특히 저항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동원된 어휘나 어조 또한 강경하다. 이와 같은 문체적 특징은 주인공 갈밭새 영감의 무뚝뚝하고 고집 센 성격과 부합한다.

 

작가 소개 - 김정한(金廷漢, 1908~1996)

소설가. 호는 요산(樂山).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사하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통해 민족적 현실의 모순을 신랄하게 파헤치고 민중 속에 잠재된 건강한 가능성을 추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사하촌’, ‘모래톱 이야기’ 등이 있다.

 

 

 

〈전략〉

건우 할아버지와 윤춘삼 씨가 들려 준 조마이섬 이야기는 어젠가 건우가 써 냈던 '섬 얘기'에 몇가지 기막히는 일화가 붙은 것이었다.

"우리 조마이섬 사람들은 지 땅이 없는 사람들이오. 와 처음부터 없기싸 없었겠소마는 죄다 뺏기고 말았지요. 옛적부터 이 고장 사람들이 젖줄같이 믿어 오는 낙동강 물이 맨들어 준 우리 조마이섬은 ―"

건우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개탄조로 나왔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 자기들 것이라고 믿어 오던 땅이 자기들이 겨우 철들락말락할 무렵에 별안간 왜놈의 동척(東拓) 명의로 둔갑을 했더란 것이었다.

"이완용이란 놈이 '을사 보호 조약'이란 걸 맨들어 낸 뒤라 카더만!"

윤춘삼 씨의 퉁방울 같은 눈에도 증오의 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1905년 ― 을사년 겨울, 일본 군대의 포위 속에서 맺어진 '을사 보호 조약'이란 매국 조약을 계기로 소위 '조선 토지 사업'이란 것이 전국적으로서 실시되던 일, 그리고 이태 후인 정미년에 가서는 '한국 정부는 시정 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수할 사'란 치욕적인 조목으로 시작된 '한일 신 협약'에 따라 더욱 그 사업을 강행하고 역둔토(驛屯土)의 대부분과 삼림 원야(森林原野)들을 모조리 국유로 편입시키는 등 교묘한 구실과 방법으로써 농밀들로부터 빼앗은 뒤, 다시 불하하는 형식으로 동척과 일인 수중에 옮겨 놓던 그 해괴 망측한 처사들이 문득 내 머리속에서도 떠올랐다.

"쥑일 놈들."

건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다시 국회 의원, 다음은 하천 부지의 매립 허가를 얻은 유력자…… 이런 식으로 소유자가 둔갑되어 간 사연들을 죽 들먹거리더니,

"이 꼴이 되고 보니 선조(先祖) 때부터 둑을 맨들고 물과 싸워 가며 살아온 우리들은 대관절 우찌 되는기요?"

그의 꺽꺽한 목소리에는, 건우가 지각을 하고 꾸중을 듣던 날 '나릿배 통학생임더' 하던 때의 그 무엇인가를 저주하듯이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그들의 땅에 대한 원한이 컸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섬 사람들도 한번 뻗대 보시지요?"

이렇게 슬쩍 건드려 봤더니 이번엔 윤춘삼 씨가 그 말을 얼른 받았다.

"선생님은 그런 걸 잘 알면서 그러네요. 우리 겉은 기 멀 알며, 무슨 힘이 있입니꺼. 하도 하는 짓들이 심해서 한분 해 보고는 해 봤지요. 그 문딩이 떼를 싣고 왔을 때 말임더……"

윤춘삼 씨는 그 때의 화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듯이 남은 술을 꿀꺽 들이켰다.

"쥑일 놈들!"

마치 그들의 입버릇인 듯 되어 있는 이 말을 안주처럼 되씹으며 윤춘삼 씨는 문둥이들과 싸운 얘기를 꺼냈다.

― 큰 도둑질은 언제나 정치하는 놈들이 도맡아 놓고 한다는 게 서두였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동포애니 우리들의 현실정이 어떠니를 앞세우것다! 그 때만 해도 불쌍한 문둥이들에게 살 곳과 일거리를 마련해 준다면서 관청에서 뜻밖에 웬 문둥이들을 몇 배 해싣고 그 조마이섬을 찾아왔더란 거다. 그야 말로 섬 사람들에게는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미는 격으로 ― 옳아, 이건 어느 놈의 엉큼순지는 몰라도 필연 이 섬을 송두리째 집어 삼킬 꿍심으로 우릴 몰아내기 위해서 한때 문둥이를 이용하는 거라고 ……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이런 말이 퍼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 섬사람들뿐 아니라 이웃 섬 사람들까지 한 둥치가 되어 그 문둥이 떼를 당장 내쫓기로 했더란 거다. 상대방은 자다가 호박을 주운 격인 병신들인데 오자마자 그 꼴을 당하고 보니 어리둥절은 하였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 떠나갈 배짱들은 아니었다. 결국 나가라거니 못나가겠느니 싸움이 벌어졌다.

"그 때 바로 이 갈밭새 부자가 앞장을 안 섰능기요. 어데, 그 때 문딩이한테 물린 자리 한분 봅시더―"

윤춘삼 씨는 하던 말을 별안간 멈추고 건우 할아버지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골동품 같은 마도로스 파이프를 뻑뻑 빨고만 있는 건우 할아버지의 왼쪽 팔을 억지로 걷어올렸다.

나이에 관계 없이 아직도 우악스러워 보이는 어깻죽지 밑에 커다란 흉터가 하나 남아 있었다.

"한 놈이 영감 여길 어설피 물고 늘어지다가 그만 터졌거든!"

윤춘삼 씨는 자랑삼아 이야기를 이었다.

― 그렇게 악을 쓰는 문둥이, 괭이, 쇠스랑 할 것 없이 마구들이 대고 싸웠노라고, 그래서 이쪽에서도 물론 부상자가 났지만, 괜히 문둥이들이 많이 상하고, 덕택에 자기와 건우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문둥이 떼처럼 줄줄이 경찰에 붙들려 가고 …… 그러나 뒷일이 더 켕겼던지 관청에서는 그 '기막힌 동포애'를 포기하고 그 문둥이들을 도로 싣고 갔다는 얘기였다.

"그 바람에 저 사람은 육이오 때 감옥살이 또 안했능기요, 머 예비 검거라카드나……"

건우 할아버지가 이렇게 한 마디 끼우니,

"그거는 송아지 때문이라 캐도……"

"누명을 써도 뺄갱이는 되기 싫은 모양이제? 송아지 뺄갱이는 좋고."

건우 할아버지의 이런 농에는 탓하지 않고서,

"그런 짓들 하다가 결국 그것들이 안 망했나."

윤춘삼 씨는 지금도 고소한 듯이 웃었다.

"다른 패들이 나와도 머 벨 수 있더나?"

건우 할아버지는 내처 같은 표정을 하였다.

"그 놈이 그 놈이란 말이지? 입으로만 머니머니 해댔지, 발 맨드라 카니 제우 맨들어 논 강둑이나 파헤치고, 나리 막는다 카면서 또 섬이나 둘러 마실라카이……"

윤춘삼 씨도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선생님!"

건우 할아버지가 별안간 그 그로테스크한 얼굴을 내게로 돌렸다.

"우리 건우란 놈 말을 들으니 선생님은 글을 잘 씬다 카데요? 우리 섬에 대한 글 한분 써 보이소. 멋지기! 재밌실 낌데이. 지발 그 썩어 빠진 글을랑 말고……"

"썩어 빠진 글이라뇨?"

가끔 잡문 나부랑이를 써 오던 나는 지레 찌릿해졌다.

"와 그 신문 같은 데도 그런 수타 난다 카데요. 남응 보릿고개를 못 냉기서 솔가지에 모가지들을 매다는 판인데, 낙동강 물이 파아랗느니 푸르니 어쩌니……하는 것들 말임더."

갈밭새 영감이 이렇게 열을 내기 시작하자 곁에 있던 윤춘삼 씨가,

"허허이 우리 선생님이 오늘 잘못 걸렸네요. 이 영감이 보통이 아임데이. 그래도 선배의 씨라꼬……"

핀잔 비슷이 말했지만 건우 할아버지는 벌인 춤이 되어 버렸다.

"하기싸 시인들이니칸에 훌륭하겠지요. 머리도 좋고…… 선생도 시인 아입니커. 그런데 와 우리 농사꾼이나 뱃놈들의 이바구는 통 안 씨는기요? 추접다꼬? 글 베린다꼬 그라능기요?"

입이 말을 한다기보다 차라리 수염이 떨어댄다고 느껴질 정도로 건우 할아버지는 열을 냈다.

"그만 하소, 영감이 머 글이나 이르능기요. 밤낮 한다는 기 '곡구롱 우는 소리'지. 어데 그기나 한분 해 부소."

윤춘삼 씨가 또 참견을 했다.

"곡구롱 우는 소리라뇨?"

나도 윤씨의 그 말에 귀가 쏠렸다. 어떤 고시조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데 해 보소, 모처럼 선생님을 모신 자리니."

하는 윤춘삼 씨의 말에, 그는 괜한 소리를 했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 꺽꺽한 목청에 느린 가락을 넣기 시작했다.

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니러보니

작은아들 글 이르고 며늘아기 베 짜는데

어린 손자는 꽃놀이 한다.

마초아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 하더라.

건우 할아버지는 갑자기 침착해진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불렀다. 땀에 번지르르 한 관자놀이 짬에 가뜩이나 굵은 맥이 한 줄 불쑥 드러나 보이기까지 하였다. 가락은 육자배기에 가까웠으나 내용은 역시 내가 생각했던 오(吳) 아무개의 고시조였다.

"이 노래 하나만은 정말 떨어지게 잘 한다 카이!"

윤춘삼 씨는 나 못지않게 감탄을 하면서 그가 그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연을 대강 말했다. ― 그러니까, 그의 증조부 되는 분이 옛날 서울에서 무슨 벼슬깨나 하다가 그 놈의 당파 싸움에 휘말려서 억울하게 그 곳 조마이섬으로 귀양인지 피신인지를 해 와 살았는데, 그 분이 살아 계실 때 즐겨 읊던 시조란 것이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새삼 생각되는 바는 있었다. 그 노래를 부를 때의 갈밭새 영감의 표정에, 은근히 누군가를 사모하는 듯한 빛이 엿보였을 뿐 아니라 그 꺽꺽한 목청에도 무엇인가를 원망하는 듯, 혹은 하소연하는 듯한 가락이 확실히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착각이 아니리라! 동시에 나는 아까 본 건우 군의 집 사립 밖에 해묵은 수양버들 몇 그루가 서 있던 광경이 새삼 기억에 떠오르고, 건우 어머니의 수인사 태도나 집안을 다스리는 범절이 어딘지 모르게 체통이 있는 선비 가문의 후예같이 짚어졌다.

"아드님은 육이오 때 잃으셨다지요?"

내가 술을 한 잔 더 권하며 위로 삼아 물으니까,

"야……큰놈은 그래서 빼도 못 찾기 되고 작은놈은 머 사모아 섬이라 카던기요, 그 곳 바닷속에 넣어 버렸지요."

"사모아 섬?"

나는 그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했다.

"야, 삼치 잡이 배를 탔거든요……"

이러고 한숨을 쉬는 건우 할아버지의 뒤를 곁에 있던 윤춘삼이가 또 받아 이었다.

"와 언젠가 신문에도 짜다라 안 났던기요. '허리케인'인가 먼가 하는 폭풍을 만내 시운찮은 우리 삼칫배들이 마구 결단이 난 일 말임더."

나도 건우 할아버지도 더 말이 없는데 윤춘삼 씨가 혼자 화를 내듯,

"낙동강 잉어가 띠이 정지 바닥에 있던 부지깽이도 띤다 카듯이 배도 남 씨다가 베린 걸 사 가주고 제북 원양 어업인가 먼가 숭내를 낼라 카다가 배만카에는 사람들까지 떼죽음을 안 시켰능기요. 거에다가 머 시체도 몬 찾았거니와 회사가 워낙 시원찮아 노오니 위자료란 기나 어디 지데로 나왔능기요. 택도 앙이지 택도 앙이라!"

"없는 놈이 할 수 있나. 그저 이래 죽고 저래 죽는 기지 머!"

갈밭새 영감은 이렇게 내뱉듯이 해 던지고서는 아까부터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던 두 알의 가래 열매를 별안간 세차게 달가닥대기 시작했다. 마치 그렇게라도 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기나 하려는 듯이. 어찌 들으면 남은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그 딱딱한 소리가, 실은 어떤 깊은 분노의 분출을 억제하는 그의 마음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따그르르 따그르르 하는 그 소리가 바로 나룻가 갈밭에서 요란스럽게 들려 오는 진짜 갈밭새들의 약간 처량스런 울음 소리와 흡사하다 느꼈다. 한편 또 조마이섬의 갈밭 속에서 나고 늙어 간다는 데서 지어졌으리라 믿어왔던 갈밭새란 별명에, 어쩜 그가 즐겨 굴리는 그 가래 소리가 갈밭새의 울음 소리와 비슷한 데 연유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 사람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갓 나온 듯한 흰 부나비 두 마리가 갈팡질팡 희미한 전등불에 부딪칠 뿐이었다. 파닥거리는 소리도 없이.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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