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수난 이대(受難二代), 하근찬, 어느 부자(父子)의 수난사(제2차대전, 6ㆍ25전쟁)

Jobs 9 2020. 6. 1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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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하근찬의 단편소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 작품은 한 조그마한 시골의 읍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일제말기 식민지 시대와 6ㆍ25라는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이 작품에서 ‘외나무다리’가 두 번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 기간 동안 우리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과 고난의 역사적 현장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이 상징적인 의미의 외나무다리는 주제를 추출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며, 사건의 구성과 전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이미지이다.

   일제 징용과 6ㆍ25라는 역사적 현실에 불구가 된 아버지와 아들의 대비를 통해 현실 극복 의지와 함께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개관】

▶갈래 : 단편 소설, 전후 소설, 본격 소설, 가족사 소설.

▶제재 : 어느 부자(父子)의 수난사(제2차대전, 6ㆍ25전쟁)

▶배경 :

- 시간 : 1940부터 6ㆍ25 직후 

- 공간 : 경상도의 어느 농촌마을과 남양 열대의 섬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의 혼합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작품 전체를 보면, 장면 묘사와 심리 묘사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는 것이 좋다.

▶표현 :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차, 토속적, 해학적 어조, 사투리의 적절한 사용

▶문체 : 간결체

▶성격 : 향토적, 토속적, 의지적, 비극적, 해학적, 사실적 묘사, 상징적 서술

▶구성 : 단순 구성, 입체적 구성(과거와 현대사의 역전), 병렬식 역순행식 구성

▶주제 :

- 민족의 비극과 초월의 의지

- 수난의 현실과 그 극복 의지

- 현대사의 비극적인 측면과 그 초극의 의지

- 역사의 비극적 현실을 통한 휴머니즘의 회복

▶출전 :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표현상 특징】

  토착어의 적절한 사용, 사실적인 묘사, 비극적인 감정의 유머러스한 처리 등이 주목할 만하다. 그밖에도 빈틈없는 진행적 구성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의 기법 등은 그를 전통적 작가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하고 있다.

 - '대화'를 통해 인물의 심리적 갈등과 해소의 과정을 보여줌

 - 비극적 감정의 해학적 처리 → 감동의 극대화

 - 두 개의 에피소드의 병렬식 구성(박만도와 박진수의 수난사)→민족의 수난사로 확대

 - 요약적 제시, 장면 보여주기를 적절하게 배합하여 표현

 -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연상수법(연상의 매개물-외나무다리, 담뱃불)

 - 토착어ㆍ비속어 사용과 사실적 묘사 → 사건 및 상황, 인물 성격 제시

 

【등장인물】

▶박만도 : 아버지. 왼팔이 없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나 만주 징용에서 한쪽 팔을 잃고 불구가 되었다. 마른 코를 풀고 아무 곳에나 소변을 보는 버릇이 있다. 수난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인물.

▶진수 : 아들. 6ㆍ25에 참전하여 한쪽 다리를 잃음. 상이군인이 되어 귀향. 고난을 감수하며 살아가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인물.

☞ 이들 부자는 각기 다른 시대적 불행을 겪은 인물들로 민족의 수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성】

▶발단 : 전장에서 돌아오는 진수를 마중 나감

▶전개 : 박만도의 과거 회상

- 일제징용에 끌려감(중일전쟁 이후), 징용지에서의 고통, 공습 중 한쪽 팔을 잃음

▶위기 : 진수가 불구로 돌아옴 - 만도의 절망감, 내적 갈등

▶절정 : 극도의 갈등을 차차 해소시켜 나감 - 술로 마음을 달램, 만도의 위로

▶결말 : 힘을 합하여 외나무다리를 건넘(고난의 극복)

 - 진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외나무 다리를 건넘

 - 용머리재가 내려다 봄

 

【사건】

   현재의 사건 속에 과거의 사건이 삽입되어 현재와 과거의 사건이 교차되는 형식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징용에 끌려가 팔을 잃은 아버지, 6ㆍ25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아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그들의 불행이 극복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줄거리】

   『'박만도'는 삼대 독자인 아들 '진수'가 돌아온다는 통지를 받고 마음이 들떠서 일찌감치 정거장으로 나간다. 그런데 그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길이라 하니 많이 다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는 팔이 없어서 늘 주머니에 한쪽 소맷자락을 꽂고 다닌다. 아들의 귀향 생각에 휩싸여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린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언젠가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옷을 널어 말리면서 사람들이 지나가면 물 속으로 들어가 얼굴만 내놓던 일을 생각한다. 정거장 가는 길에 '진수'에게 주려고 고등어 두 마리를 산다.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만도'는 과거의 일을 회상한다. 일제 강제 징용에 의해 남양의 어떤 섬에 끌려갔었다. 비행장을 닦는 일에 동원되었는데, 굴을 파려고 산허리에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하여 불을 당기고 나서려는 순간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당황한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했던 굴로 들어가 엎드렸다가 팔을 잃었다.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는데도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만도'는 초조해진다. "아부지" 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로 돌아선 '만도'는 다리를 하나 잃은 채 목발을 짚고 서 있는 아들을 보고 눈앞이 아찔해진다. '만도'는 분노를 씹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다가 주막에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부정(父情)을 나타낸다. 술기운이 돈 '만도'는 '진수'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수류탄에 그렇게 된 것을 알게 되고,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겠냐는 아들의 하소연에 아들을 위로한다.

   외나무다리에 이르러 '만도'는 머뭇거리는 '진수'에게 등에 업히라고 한다.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들고 아버지의 등에 슬그머니 업힌다. '만도'는 용케 몸을 가누며 조심조심 걸어간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아들이 돌아온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었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는 여느 때 같으면 한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어설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채고 만 것이다. 아들이 타고 내려올 기차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도착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마음은 바빴다.

   삼대 독자가 죽다니 말이 되나, 살아서 돌아와야 일이 옳고 말고. 그런데 병원에서 나온다하니 어디를 좀 다치기는 다친 모양이지만, 설마 나처럼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만도가 읍에 나올 때마다 들리는 단골 주막집이 있다. 그러나 만도는 주막 앞을 거치면서도 나중에 돌아올 때 들리기로 했다. 아들이 돌아오는데 무엇을 살까 장에 가보았으나 산 것이라고는 고등어 한 손뿐이었다.

   한쪽 팔이 없는 그는 3대 독자인 아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렸다.

   12∼13년 전 일제에 강제 징용을 당해 끌려간 곳은 남양의 어떤 섬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비향장 닦는 일을 끝내고 산허리에 굴을 파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하고 불을 붙이고 나오는 데 연합군의 비행기 공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만도는 놀란 나머지 굴속에 다시 들어가서 엎드려 버렸다. 그리고 다이너마이트 폭발과 동시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의 의식이 깨어났을 때는 눈앞에 주인 모를 팔뚝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만도는 아들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그때 뒤에서 아부지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도 돌아본 순간 만도의 두 눈은 무섭도록 크게 떠지고 입은 딱 벌어졌다. 아들이 맞긴 맞았으나 다리가 하나 없어진 아들이었다.

   아들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자 만도는 자기 사는 것을 보라고 하면서 잘 살수 있다고 했다. 걷다 보니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진수는 한 다리로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 없었기 때문에 물위로 건너려고 하자 만도는 등허리를 대면서 업히라고 했다. 만도는 아들을 업고 조심스럽게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깨 바람이 날 일이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는 여느 때 같으면 아무래도 한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어설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채고 만 것이다.

   박만도는 3대 독자인 아들 진수가 전쟁터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마음이 들떠 있다. 그는 아직 아들이 탄 기차가 들어오려면 멀었음에도 일찌감치 역전으로 나간다. 병원에서 나온다는 말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기는 했으나, 설마하니 아들이 자기처럼 불구가 되진 않았으려니 하고 애써 마음을 편히 먹는다. 그는 한쪽 팔이 없다. 일제 때 강제 징용을 나가 비행장 건걸 중 폭격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때 그는 기절까지 했었다. 그는 항상 왼쪽 소맷자락을 조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꽂아놓고 다녔다.  일말의 불안감이 없었던 바는 아니나, 그는 아들이 돌아온다는 생각에 어서 시간이 흘러가 버렸으면 한다.

   아들에게 주려고 역전으로 가는 길에 고등어도 한 마리 산다.  정거장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40분, 점심때쯤 온다고 했으니 시간은 아직도 한 시간이나 넘게 남았다. 기다리는 동안 박만도는 옛날에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울려 만도는 벌떡 일어선다.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아들의 모습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상이군인 하나가 서있을 뿐이다. 조바심에 안달이 난 박만도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아부지!"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뒤로 돌아선 순간 그는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은 무섭도록 크게 떠지고 만다.

   아들은 틀림없었으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쪽 다리가 없어져 빈 바지 자락이 펄럭이고 있었고, 목발을 집고 있었던 것이다. 박만도는 눈앞이 아찔해진다. 기진하고 실성한 모습으로 두 부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 진수는 이같은 꼴을 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느냐고 아버지에게 하소연한다. 만도는,

   "나 봐라! 팔뚝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왜 못 살아!"

라며 격려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외나무다리가 하나 있다. 진수는 도저히 다리를 건널 수가 없다. 머뭇거리는 아들을  바라보던 만도는 대뜸 등을 돌리며 진수에게 업히라고 한다. 팔 하나가 없는 아버지와 다리 한쪽이 없는 아들이 조심스레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만도는 아직도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 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상】

   일제에 의해 한 팔을 잃은 아버지와 6ㆍ25전쟁으로 한쪽다리를 잃은 아들의 상봉, 즉 2대에 걸친 수난이 한자리에서 확인되는 짧은 한 순간의 이야기를 통해 민족사적 비극을 암시한다. 간결한 문체 위에 이야기하는 시간의 사건과 과거 회상의 사건이 서로 적절히 교차되어 흥분과 격정이 고조되는 미적 쾌감을 가능케 한다.

   <수난이대>는 한국 현대사가 당면했던 역사적 비극을 조그만 마을에 사는 부자를 통해 보여준다. 이 수난이대는 단편 소설로서 정통적이고 모형적인 가족사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제목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역사의 변환 속에서 한 가족 부자이대(父子二代)가 겪는 비극과 수난의 역사, 즉 수난의 가족 세대적인 역사의 기술이라는 면에서 다분히 가족사 소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역사적인 비극의 재확인이 아니라 차례로 팔과 다리를 잃은 이 두 세대가 서로 협력하여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인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재기를 위한 화합(和合)을 기본 주제로 하고 있다.

   외팔이인 아버지가 외다리가 된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장면은 수난의 연대기를 살아가는 삶이 지탱해야 하는 휴머니즘의 귀결적 화해라는 측면이기도 했다.

 

   작가는 두 번의 전쟁과 이대(二代)에 걸친 비극을 단 하나의 장면으로 응축시켜 감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전쟁이나 역사가 우리 민족에게 남겨 준 처절한 아픔과 불행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형상화환 점이다. 아버지 박만도는 일제 강점하에 강제 징용되어 어떤 섬으로 끌려갔다가 팔을 잃었지만 일제에 대해 분노나 원망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박만도는 ‘우짜다가’, ‘똥이다, 똥’ 등 농민들이 사용하는 투박한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그 순박한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전쟁이란 배경과 함께 중요한 것은 작품 앞뒤에 한 번씩 나타나는 외나무다리이다. 이 외나무다리는 단순한 배경의 요소로 그치지 않고, 전체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나무다리’와 아들 진수의 ‘외다리’는 상징적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외나무다리’는 그 자체의 허술함과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강물 속에 오랜 세월 놓여 있었다는 강인함이 곧 주제와 연결된다. 비극적 역사의 상징인 동시에 극복의 가능성을 암시해 주고, 이 작품이 민족의 수난과 비극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부자(父子)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행위를 통해 불구인 상황을 협동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민족의 비극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부자의 수난사가 가족사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비극적 역사현장에서의 두 부자의 아픔만 그린 것이 아니라, 팔과 다리를 잃은 두 세대 가 서로 협력하여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통해 비극을 딛고 재기(再起)하는 이른바 ‘화합하는 모습’을 주제로 형상화했다. 이 점이 수작으로 만든 요인이라 하겠다.

   <수난이대>의 내용은 우리 나라 근대사의 가장 불행한 두 시대를 부자 이대(二代)의 모습에 집약한 것이다. 두 인물의 개인적 상실과 좌절은 물론 실제의 현실에 숱하게 있었던 사실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의미는 그러한 체험을 한 쌍의 개별적 사실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겨냥한 것은 박만도와 그의 아들이라는 불행한 두 인물의 형상이 우리 민족 전체의 역사적 상처를 드러내는 가족사적 전형성(典型性)을 지닌다는 점이었다.

   작품의 세부 내용은 이러한 전형성을 생생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소설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아들에게 앞날의 희망을 걸고 마중 나가는 박만도의 기쁨,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 아들을 만난 순간 절망, 돌아오는 길의 비통한 심경과 분노, 그리고 외나무다리에서의 새로운 화해, 이러한 삽화의 세밀한 관찰은 물론 작가의 상상의 산물이며 허구다.

   그러나 이 허구는 역사적 사실을 더욱 절실한 구체적 형상으로 그려내기 위한 방법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역사책은 요약된 사건과 숫자, 도표로써 사실의 윤곽을 말해주는 데 비해, 훌륭한 소설은 상상과 허구의 매개를 통해 생생한 체험으로 전형화된 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작품 분위기의 상승과 하강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고,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한몫을 하는 상징물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아버지 박만도가 전쟁이 끝나 고향에 돌아오는 아들을 만나러 고개를 넘어 역으로 나가는 장면은 기쁨에 들뜬 상승의 국면이다. 거기에 만도의 징용 체험, 즉 한쪽 팔이 잘려나가는 비극적 체험이 끼어들면서 만도는 설레임과 동시에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초조와 긴장을 느낀다. 이러한 긴장과 초조는 역에서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 아들 진수를 발견하는 순간 절망으로 변하면서 상승하던 분위기가 극적으로 추락한다.

   만도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뼈아픈 탄식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만도는 주막에 들러 술을 마시다가 아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솟구친다. 이러한 연민은 다시 외나무다리에 가서 극적으로 표출되어 역사에 의해 상처를 입은 두 부자가 힘을 합쳐 외나무다리를 건너감으로써 화해를 맞이한다. <수난 이대>의 외나무다리는 원수가 만나는 곳이 아니라, 화해와 희망의 자리였던 것이다.

   하근찬은 두 부자의 시련과 극복을 드러내기 위해 역과 외나무다리, 고등어와 같은 몇 가지 상징물을 이용하고 있다. 역은 만도가 징용을 떠났던 곳이며, 다리를 잃은 진수가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들의 불행은 늘 같이 있다. 또, 외나무다리와 고등어가 있었기 때문에 두 다리를 가진 만도가 아들을 업고 두 팔을 가진 진수가 고등어를 든 채로 하나가 되어 서로의 부족한 곳을 채워 다리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부자의 앞에는 태평양전쟁과 6ㆍ25전쟁이 가로놓여 있었다. 두 전쟁은 전연 별개의 전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 지배 때문에 남북이 갈라진 것이고, 또 6ㆍ25전쟁도 터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 전쟁과 거기에서 부상을 입은 두 부자의 수난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서 두 부자는 손과 발을 잃었다. 사람이 손과 발을 잃는 것은 삶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절망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2대에 걸친 이들의 불행은 그들의 잘못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두 부자가 겪어야 했던 삶의 고통은 일제와 6ㆍ25전쟁을 겪었던 우리 민족 모두의 피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들은 대물림된 전쟁의 상처에서 새 살을 돋게 하는 따스한 마음과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수난 이대>는 민족의 고통과 수난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고난을 극복하며 삶을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현재적 배경은 6ㆍ25전쟁이지만, 이것과 구성상 대칭 관계에 있는 사건의 배경은 태평양전쟁이다. 아버지가 겪은 태평양전쟁과 아들이 겪은 6ㆍ25전쟁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되고, 이 배경이 작중 인물의 삶의 조건을 결정한다. 그리고 공간적 배경은 경상도의 농촌인데, 이 농촌이란 배경은 농민들의 삶의 현장이긴 하지만, 이 경우는 농사와 관련된 배경이 아니라 전쟁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피해를 입는 소박한 농민들이 모여 사는 장소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전쟁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이 아닌, 오직 우직하게 농사만 짓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희생당하는 비극적 현실이 존재하는 장소로서의 농촌이 공간적 배경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 소설이 조명하려는 민족사적 비극이 잘 드러나게 된다.

   이 소설은 아버지가 겪은 과거의 사건과 아들이 겪는 현재의 사건이 병렬적으로 배치되는 구성적 특징을 보여 준다. ‘수난 이대’란 글자 그대로 아버지와 아들이 겪는, 이대(二代)에 걸친 가족의 수난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으로 한 팔을 잃고, 아들은 6․25전쟁에 한 다리를 잃는다. 이 아버지와 아들이 겪는 수난은 그들 가족 단위의 수난이자 우리 민족이 겪는 수난의 의미를 지닌다. 수난 이대의 가족사적 수난은 민족사적 수난의 하위 개념이자 대유적(代喩的)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고등어, 국수 등은 불행을 당한 가운데서도 그들끼리 따뜻하게 감싸는 인정, 특히 부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은 이들이 현실적인 불행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배경 역할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홧술을 마신다든가, 투박한 사투리로 욕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불행을 삭이려는 과장된 몸짓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현실적 갈등의 해소가 가능하리라는 조짐을 보여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 팔이 없는 아버지가 오줌을 눌 때 아들이 고등어를 받아 든다든가,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한 다리가 없는 아들을 아버지가 업고 건넌다든가 하는 것은 이들이 억울하고 불행한 현실을 극복해 가고 있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들이다. 그들에게는 이념이나 정치적 견해 같은 것은 없다. 그들은 비록 흙이나 파먹는 무지한 농민들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 역사의 강풍을 꿋꿋이 이겨내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고등어를 든 진수를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박만도 부자(夫子)의 모습은 역사적 비극을 극복하는 순박한 농민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 소설은 그 구성의 탄탄함과 주제의 견고성, 그리고 암시와 상징의 기법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단편소설의 한 전범(典範)으로 평가된다.

 

   하근찬의 작품 세계는 전쟁을 비롯한 역사적 상처를 받은, 비극적 사회 현실을 다루고 있는 특징을 보여 준다. 이러한 그의 소설 속에 피력된 전쟁 수난의 슬픈 이야기들은 ‘비극을 통한 인간 정신의 고양(高揚)’이나 ‘인간애, 즉 휴머니즘의 회복’이라는 주제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우리 민족의 보편적 삶의 아픔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대체로 전쟁 후의 후일담이나 주변담을 통하여 수난의 아픔을 수용하면서 적응해 나가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하근찬의 <수난 이대>를 비롯한 일련의 소설들은 ‘민족의 비극과 사회 병리(病理)’를 포착하여 형상화하면서 우리 사회의 상징적인 축도를 그려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수난 이대>에서도 우리 민족이 겪은 2차대전과 6ㆍ25를 연결시키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수난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부자 2대의 수난은 한 순간의 일회적인 비극이 아니라, 민족의 근본적인 비극이라는 현실 인식으로 극화되고 있다는 데 소설적 의의를 지닌다.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다.]

   하근찬의 <수난이대(受難二代)>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것은 분명히 이 작품의 상황을 서술한 지문(地文)이면서 동시에 ‘박만도’라는 인물의 독백이다. 아니 ‘박만도’의 내면을 여과(濾過)해 온 이 작품의 상황이며, 분위기인 것이다.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하는 이 서술의 배후에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리고 이 작가, 또 우리들이라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공동의 경험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박만도’라는 인물은 항상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낯익은 이웃이며, 극히 낙천적(樂天的)인 인물이다. 또 여기 나오는 전반부의 외나무다리나 주막집은 그의 낙천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좋은 무대장치가 되어 있다. 물론 이것들은 후반부에 가서 인간의 위약성을 드러내는 폭군으로 바뀌지만……다음 예문을 읽어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낙천적인 인물인가는 누구나 쉽게 짐작할 것이다.

   [만도는 왼쪽 조끼주머니에 꽂힌 소맷자락을 내려다보았다. 그 소맷자락 속에는 아무것도 든 것이 없었다. 그저 소맷자락만이 어깨 밑으로 덜렁 처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상 그쪽은 조끼주머니 속에 꽂혀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박만도’의 외모를 묘사한 것이다, 여기에 곧 이어서,

   [볼기짝이나 장딴지 같은 데를 총알이 약간 스쳐갔을 따름이겠지. 나처럼 팔뚝 하나가 당장 달아날 지경이었다면, 그 엄살스런 놈이 견뎌냈을 턱이 없고 말고.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하는 듯 그는 속으로 이런 소리를 주워섬겼다.]

   이렇게 작가의 시선은 ‘박만도’의 내면으로 돌려진다. 우선 방법적으로는 외면 묘사에서 행을 바꾸지 않고 주인공의 독백으로 옮아가는 방법 같은 것은 작가가 효과를 거두기 위한 특별한 의도인 것이다. 얼마나 순진하고 낙천적인가. 동시에 여기에는 작가와 등장인물의 동질적인 염원이 스며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박만도’의 앞에 나타난 것은 뜻밖에도 다리가 잘린 진수였다.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첫 마디는 ‘애라이 이놈아!’, ‘이기 무슨 꼴이고 이기.’

   그가 내뱉는 첫 마디 속에는 기대에 대한 배신감과 동시에 사회에 대한 분노와 항의가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아들에게서 자기의 비극을 읽었다. 팔이 잘린 아버지와 다리가 잘린 아들, 이 두 죄 없는 수난자(受難者)들은 등에 업고 업히어서 외나무다리를 건너간다. 무척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운명도 역시 그런 거루 거고 또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것인 것이다.  - 김우정(金宇正) : <한국단편문학대계>(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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